잔해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0
쥘리앵 그린 지음, 김종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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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 하루에도 수백 번씩 짜증스러운 신비로 가득 찬 여러가지 삶이 우리의 인생과 나란히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삶은 우리에게 그 신비 중에서 어떤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니 수수께끼와 비밀이 가득한 자기 자신의 운명에 집착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불안감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늦은 밤. 정체모를 남녀가 크게 다투는 소리가 들린다. 경찰을 부르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필리프. 그가 유일했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필리프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필리프는 신비로운 내일에 온 정신을 쏟는 것 만으로도 삶이 벅차다머 그들을 지나친다. 그는 14페이지의 문장으로 자신의 비겁함을 정당화한다.  


위험에 빠진 여자를 못 본 체 하고 지나간 이 사건은 필리프라는 인간의 내면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것은 회복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 미세한 균열은 자신의 삶에서 생겨난 무수히 많은 잘못된 선택과 연결되어 점점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필리프라는 인간은 한없이 쪼그라든다. 필리프는 자신을 무능한 인간으로 판결내렸다. 


2.


필리프는 앙리에트와 결혼을 했지만, 처형인 엘리안과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엘리안은 필리프에게 욕망을 느끼고 있으며, 아내인 앙리에트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인 티스랑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관계로만 보면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인 설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모든 원인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접근하면 필리프의 균열을 재차 발견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등장인물 전체의 균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열등감을 채우기 위한 상대. 이들이 타인을 탐하는 이유는 단지 그 이유밖에 없었다. 


필리프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물려받은 유산이 상당할 뿐만 아니라 대대로 내려오는 회사까지 있는 큰 부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리프라는 사람 자체가 인간적인 매력이 없으며, 그렇다고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능력치가 뛰어나지도 않었다. 이것은 필리프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인정하며 고백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이 비정상적인 가정파탄에 대해서 어렴풋하게 알고 있지만,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3. 


<잔해>의 주인공들은 통속적인 패러다임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필리프는 어리고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여 자신에게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채웠다. 앙리에트는 돈많은 남성과의 결혼을 통하여 빈곤한 삶에서 탈출한다. 


현재 시점의 필리프는 법적으로는 부부사이라고는 해도, 둘 사이에 애정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렇게 혼자 남겨졌다. 현재 시점의 앙리에트는 안락한 삶을 살게 되자 매력적이지만 가난한 남자 티스랑과 얽히게 된다. 과거의 엘리안은 앙리에트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열등감에 필리프를 앙리에트와 이어주고, 그 대신 먹고 살만큼의 안락한 삶을 제공받았다. 그러나 현재의 엘리안은 앙리에트로부터 버려진 필리프를 차지하여 지금까지 보상받지 못했던 모든 것.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보상받으려 한다. 


4. 


쥘리양 그린은 <잔해>를 통해 이렇게 얽혀있는 주요 인물의 심리를 천천히 써내려간다. 한밤중의 아주 우연한 사건. 면밀히 따지고 보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 사건.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필리프 가정에 잠재되어 있는 복합적인 갈등을 하나씩 들쑤시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은 물론 책을 읽는 독자들까지 모두가 불편해진다. 알고는 있지만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좌절감은 나비효과처럼 몰아친다.  인간은 이토록 나약한가?라는 물음에 다시금 접근한다.


5.


물론, 가톨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처럼 이 소설에는 초월적인 존재가 등장한다. 그 인물은 다름 아닌 필리프의 아들 로베르다. <잔해>의 초반부. 그러니까 자존감이 극도로 하락한 필리프에게 있어서 로베르는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였고 마주치기 싫은 존재였다. 하지만, 로베르와 친밀하게 지내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필리프는 로베르를 보면서 과거의 자기 모습을 오버랩하게 된다. 그러니까 좌절감을 맛보지 않은 필리프의 과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로베르. 이것은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한다. 


300. 어떤 인간 존재가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 아이도 자기처럼 겁을 먹은 것이다. 어둠 속에서 입을 열어 소리 없이 길게 웃었다. 그는 안개가 허파 속까지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아들의 어깨를 잡은 그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이토록 커다란 기쁨과 갑작스러운 위안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몇 마디 말만으로도 자신이 더 이상 혼자다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충분하단 말인가? 갑자기 어마어마한 삶의 욕망이, 마치 강과도 같은 욕망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잔해>는 노련한 소설이다. 일말의 가능성이 생겼다고 모든 것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지 않았다. 이 부분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오만했던 기억들이 필리프의 내면을 통해 흘러나온다. 그렇게 희망과 좌절은 영원히 전투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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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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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는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인간이다. 사이코패스 하니까 가장 최근에 읽었던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 떠오른다. 그 작품이랑 간단히 비교하자면. <종의 기원>이 타의에 의하여 억눌려왔던 사이코패스의 폭주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편의점 인간>은 사이코패스가 자기의 정체를 감추고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2.


후루쿠라는 남들처럼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녀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관찰했고, 그들의 표정과 목소리와 억양 등을 흉내내는 방식으로 평범한 사람 연기를 해온다. 인간에게는 '거울뉴런'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후루쿠라 같은 경우는 이러한 변화를 알면서 카멜레온처럼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98.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 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이런 마음가짐은 그녀는 18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계속 되었고, 덕분에 별탈없이 살아왔다. 편의점의 일에 대해서도 프로페셔널졌고, 동료들도 그녀를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후루쿠라는 조금 더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을 부린다.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동창들의 모임에도 참석한다. 그녀의 가족도 후루쿠라가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 작품의 잔인한 점은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질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린다는 것이다. 작가는 후루쿠라씨의 사이코패스적인 본성을 간헐적으로 내비침으로써 이것을 보여주는데. 특히, 울고있는 조카를 조용히 하는 간단한 방법을 탁자 위에 놓여있는 작은 칼을 보면서 생각하고 있는 장면(p.71)에서 후루쿠라는 극도로 불안정해진다. 동시에 독자는 우울해진다.


3.


이런 상황에서 시라하라는 부랑자가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으로 새로 들어온다. 그는 온몸에 자격지심과 심술을 덕지덕지 붙인 비호감스러운 남자였다. 시라하는 그저 혼활상대를 찾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런 사상을 거리낌없이 바깥으로 표출했다.


108.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삭제되어갑니다. 사냥을 하지 않는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 현대사회니 개인주의니 하면서 무리에 소속되려 하지 않는 인간은 간섭받고 강요당하고, 최종적으로는 무리에서 추방당해요.


109. 이 세상은 현대사회의 거죽을 쓴 조몬시대에요. 커다란 사냥감을 잡아오는 힘센 남자에게 여자들이 몰려들고, 마을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시집을 갑니다. 사냥에 참가하지 않거나 참가해도 힘이 약해서 도움이 안 되는 남자는 업신여김을 받죠.


시리하는 후루쿠라의 생각처럼 106. 피해자 의식은 강한데 자신이 가해자일지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는 사고 회로를 가진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가 늘어놓는 불평이 터무니없는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을 거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 하기 위한 역겨운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4.


아이러니하게도 <편의점 인간>에서는 시라하의 존재를 서른여섯이 되도록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독신 여성인 후루쿠라를 보통 사람들의 눈에 정상인처럼 보이게끔. 정확히 말하자면, 혼기가 지난 후루쿠라가 시리하와 동거를 한다는 소식은 그녀의 주변사람로 하여금 ' 아 얘도 남자를 밝히는 보통 여자로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존재로 그린다는 점이었다.   


후루쿠라에게 필요한 듯 보이는 존재. 이런 상황에서 사상 최악의 인물 시라하의 민낯이 가감없이 노출한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시라하는 조몬시대 운운하며 투덜거리던 사회의 불만을 후루쿠라에게 풀어버린다. 후루쿠라가 정상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이용해서 시라하는 그 틈으로 숨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남자가 필요하니 시라하 당신을 받아들이고, 대신 나에게 자유를 달라고 주장하는 시라하의 논리는 역겨움 그 자체였다.


한편, 편의점 사람들은 후루쿠라를 못살게 군다. 일 하는 내내 시라하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녀에게 던진다. 일에 충실하고 싶은 후루쿠라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세금 따위로서 시라하의 찌질한 삶과 관련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만난 시라하의 제수는 시라하 만큼 최악인 인간이었다. <편의점 인간>의 등장인물들.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인물은 주인공 후루쿠라였지만, 후루쿠라 보다 더 사이코같은 인물이 바로 시라하와 그의 제수였다.


5.


시라하는 그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후루쿠라로부터 떨어질 생각이 없다. 오히려, 정상인이 되고 싶으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직장을 찾으라고 말한다. 후루쿠라는 그의 말을 따라서 일을 그만둔다. 일을 그만둔 시점에서 소설은 결말과 가까워진다. 일을 하지 않는 후루쿠라의 존재는 갈수록 희미해져갔다. 일을 하는 공간과 시간에 맞추어 움직이던 그녀가 그것이 사라짐으로써 무력감에 빠져든다. 빈둥빈둥거리다가 결국 면접자리를 따내고, 면접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편의점을 방문한다.


그곳에는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거리가 한눈에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낯선 편의점에 이끌려 버린다. 무의식적으로 빨려드는 순간 깨닫는다. 자신은 편의점에서 일을 해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정상인이나 비정상인 같은 남들의 기준에 맞추어 발버둥쳤던 지난 시간은 헛된 시간이었고, 따라서 시라하라는 인간 따위 그녀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깨닫고, 시라하에게 이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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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
하바 요시타카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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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표지를 넘겼다. 그랬더니 "읽어보는 것도 좋다"라는 진심을 담은 문장 보라색 빛 면지에 궁서체로 박혀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감각은 추천사를 남긴 가수 요조가 놀라워했던 인과성에도 드러난다. "사람들이 서점에 오지 않는다." 이 문장 바로 다음에 "그래서 나는 책을 가지고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일을 한다."라는 문장을 밀어넣는다. 천연덕스럽게.  


하바 요시타카라는 인물은 생소하다. 표지에는 이 사람을 세계적 북 디렉터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해보니 국내에서 그를 다루었던 기사는 현대카드에서 진행하는 문화사업.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도서 선정 작업에 참여한 이력으로 간단한 인터뷰를 실은 기사가 유일했을 정도다. 현대카드 측에서 이 사람을 초청해서 도서관의 장서 선정을 의뢰했다면 세계적인 북 디렉터라는 수식어는 과장된 말은 아닌듯 싶다.


그는 책을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는 일본의 각 지역에 도서관을 만드는 일을 한다. 병원, 백화점, 카페, 기업 같은 곳에서 간이도서관처럼 작은 공간을 만들면, 저자 하바 요시타카는 그곳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책을 선정해서 비치하는 일을 한다. 바흐라는 회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면 직접 작업에 참여한 도서관의 이미지와 그동안 썼던 칼럼을 읽을 수 있다.  


2.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에 실린 글이 홈페이지에 소개된 칼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작가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주제에 맞게 정리한 것이다.


하바 요시타카는 사람들에게 책 따위는 안 읽어도 좋지만, 읽어보는 것도 좋다라고 수줍게 이야기를 건넨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가져오는 가장 큰 이점은 뭐니뭐니해도 연결고리를 생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경험에서 그와 유사한 사례를 책은 무한히 생성한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의 선택과 책을 읽은 후의 선택은 굉장히 큰 차이가 난다.


그가 칼럼을 쓰는 스타일도 그렇다. 그는 어떤 주제와 거기에 관한 책을 굴비엮듯이 엮어서 한꺼번에 소개한다. 이런 방식으로 인하여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진다. 예를 들면 [축구와 책이 만나다]라는 챕터에 실린 '고통으로서의 오락'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아스널의 광팬인 그는 닉 혼비의 책을 통해서 연결고리를 공유한다. 그리고 유대감이 더욱 강화하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아스널과 열한 살의 닉 혼비가 처음 만났던 1960년 말 이후의 아스널. 보다 완벽한 아스널을 사랑한다. 폭이 넓어진다. 선택에 확신이 더해진다.


3.


이 책에 실린 모든 칼럼은 대부분 무난하게 읽혔다. 이 가운데서

- [창작자의 시선] 챕터. 어떻게 자신을 단련하는가의 고찰


40. 이렇게 물건과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인데, 하는 변명을 하면서 '봤다'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 본 척' 지나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63. 손과 마음을 쓰지 않으면 기분 좋은 장소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몸을 사용해 디자인한 것만 몸에 전해지고 기억에 남죠.


73. 늘 검은색 작은 공책과 연필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자신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을 그대로 붙잡아둔다.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넘쳐나는 감정을 가능한 한 솔직하게 흘러가는 대로.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서평. '된장국과 무라카미 하루키',


90. 스토리성을 거부한 나고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자키 스쿠루는 차례로 일어나는 부조리에 대한 내성이 있는 만큼 사람들이 통과해 지나는 플랫폼 같은 자신의 존재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다. 색채가 없는 그는 무색의 유리그릇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 <호빵맨>에 담긴 정신을 다룬 기고문. '왜 태어났고 무얼 하며 살까',


232. 얼굴 없는 영웅이 하늘을 난다. 그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도 없고, 알아보는 것은 호빵을 받은 사내아이 한 명뿐이다. "진짜 정의는 결코 멋진 것이 아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자신도 크게 상처를 입는다." 그림책 에필로그에서 야나세 씨는 그렇게 말한다.


232. 헌신과 살신의 안티히어로. 그것이 야나세 씨가 그리고 싶었던 호빵맨이었다.


- '전자책 사용 후기'


252. 종이에 비해 '되돌아가 읽기' 조작이 미덥지 않은 전자책은 직선적인 이야기의 재생에서는 타고난 특색을 발휘한다. 하지만 단편이 복잡하게 얽혀 몇 가지 시간축이 병행하거나 오가는 이야기는 솔직히 조금 읽기 어렵다.


이런 칼럼들은 인상깊었다.


4.


특히, '소리 내서 읽어보면' 같은 칼럼은 날짜에 맞춰 번호를 부르고, 일으켜 세워서 그렇게 읽기를 시켰지만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낭독의 진실. 낭독을 어떤 마음으로 하는 것이 올바른지 알려줘서 감사했다. 그의 말을 정리하자면. 낭독은 글씨를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낭독을 하면서 낭독자가 완성한 그림을 듣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행위라고 한다.


262. 낭독자는 단순히 책을 소리 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들려준다. (...) 시각을 포기한 채 청각으로 스며드는 말에 젖어들면 어느 순간 갑자기 시야기 넓어진다. 소리가 된 영감이 자신 안의 이미지를 키워 이야기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 이미지는 또렷한 윤곽을 갖고 듣는 사람 안에 뿌리를 내린다.


낭독자가 만들어낸 그림이 듣는 사람에게 정확히 닿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낭독해서는 안될 것이다. 머리로 충분히 그림을 그릴 시간이 필요하므로 읽는 속도가 빠를 수도 없을 테고 말이다. 결국, 읽는 것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표상하는 행위들이다. 여기서 다시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만약, 그런데 이런 것이 중단되고, 모두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수용하기에 바쁘면 사람들은 더는 상상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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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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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탁환 작가의 <읽어가겠다>를 읽는 중이다. <읽어가겠다>는 오 년간 라디오 방송에서 다루었던 책 가운데서 '열망과 덧없음'에 관한 스물세 편의 소설을 뽑아낸 독서에세이다. 이 가운데 처음 다섯 편의 작품은 나름 친숙한 작가의 작품이라 견해를 경청하면서 읽었다. 그런데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이 작품 때문에 읽기가 막혀버렸다. 이 소설은 스물세 편의 소설 가운데 여섯 번째 소설이다.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이미지도 형성되지 않았다. 이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예전에 사두었던 소설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

2.

<연인>은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은 노년의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이어간다. 작가는 <연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자신의 연인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는다. 그녀가 회상하는 기억은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라 의식의 흐름에 안개가 짙게 깔린 것처럼 뒤죽박죽 섞여서. 엉켜서 나열된다. 안개가 자욱할 때는 그녀를 고통과 억압으로 가두었던 가족들과의 기억이 서술되고, 안개가 걷히면 그제서야 연인의 존재는 그녀의 펜 끝에서 나타났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예고도 없이.  

이러한 글쓰기 스타일을 '누보로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연인>은 이 공식을 아주 충실하게 따른다.


사실적인 묘사와 이야기의 치밀한 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을 부정하고, 작가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적인 생각이나 기억을 새로운 형식과 기교를 통해 재현하려는 경향의 소설을 의미한다. 반소설(antinovel)이라고도 한다. 특정한 줄거리가 없기 때문에 독자는 직접적으로 작품에 참여해서 적극적인 독서를 해야 한다.

3.

<인연>을 다루는 몇 독서에세이에서는 이 소설을 사랑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은 다음 사랑의 다양한 표정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쾌락과 탐닉이라는 원초적인 사랑의 부각. 두 사람의 사랑은 미성년인 빈곤층의 백인 소녀와 나이가 많은 부유층의 아시아인 남성이라는 신분과 인종을 초월한 사랑으로 읽을 수 있다.

신분과 인종. 이것은 차별을 야기하는 금기들이었다. 금기를 벗어난다는 것은 억압과 굴레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녀가 사회로부터.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채,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가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여인으로서의 한정된 역할에 만족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27. 욕망을 외부에서 끌어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욕망은 그것을 충동질한 여자의 몸 안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첫눈에 벌써 욕망이 솟아나든지 아니면 결코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든지 둥 중에 하나이다.

<연인>에서 일탈의 형태는 욕망으로 변하고, 탐닉과 관능의 사랑으로 반항적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나는 이것에서 탐닉과 관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불러일으킨 억압에 대한 반항, 그리고 저항에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에 대한 반항인가? 백인 소녀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히스테리컬한 측면. 그리고 큰오빠의 무능함에 대한 저항. 즉, 가난한 환경, 학대받는 생활. 큰 오빠에 대한 편애와 큰 오빠의 방탕한 삶. 그녀를 형성하게 한 존재에 대한 부정. 이것들에 대한 반항으로 부유한 중국인 남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일 테다. 그리고 중국인 남자의 경우에는 가문의 억압. 정해진 미래라는 억압에 저항해서 아름답고 젊은 백인 소녀에 반하게 되었을 테다.  


77. 내게 전쟁은 큰오빠와도 같다. 전쟁은 큰오빠처럼 도처에 번지고, 침입하고, 훔치고, 또 감금한다. 또한 모든 것에 섞여들어 머릿속에도 몸속에도 생각 속에도 존재하며, 깨어 있을 때나 자고 있을 때나 시종일관 제어할 수 없는 취기 같은 욕망에 사로잡혀 사랑스러운 영혼 같은 어린아이의 몸을, 나약한 자들이나 패배한 민족들의 육체를 점령한다. 악은 바로 거기에, 우리 피부에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119. 그녀가 이따금씩 자기 인생에 대해 품는 혐오감도 그를 두렵게 했다. 이런 혐오감에 휩싸이면 그녀는 갑자기 어머니를 떠올리곤 소리를 지른다. 이제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고, 어머니가 죽기 전에는 행복해질 수가 없으며 이런 불행을 초래한 자들을 죽여 버릴 수도 없다는 생각에 분노의 눈물을 흘린다. 그녀에게 얼굴을 갖다 대고, 그는 그녀의 눈물을 삼킨다. 그녀의 눈물과 그녀의 분노는 그의 욕망을 자극한다. 미친 듯이, 그는 자기 몸 아래 그녀를 눕히고 짓누른다.


소녀의 반항에 비해서 남성의 반항은 진지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소녀는 탈출을 원했지만, 남성은 정복을 원했기 때문이다.


4.


<연인>은 형식으로도 그렇고, 내용으로도 제약을 두지 않는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은 쾌락과 절망의 지점을 불규칙하게 왕래한다. 그것을 느끼는 의식으로 하여금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도록 가만히 놓아둔다. 주인공이 자유와 쾌락에 갈망하는 욕망 역시 어떤 제약을 벗어던지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이것은 억압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마르그리트 뒤라스 작가는 억압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 질문이 아마도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학작품 <연인>을 이야기하는 가장 알맞은 질문이 아닐까 싶다.  


<연인>의 문장들은 한마디로 염세적이다. 대부분 염세적인데 결정적인 순간 나르시즘이 등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녀는 무너져가는 삶을 억지로 지탱한다. 아슬아슬하다. 이 가운데서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들에 대한 정의들이 뒤라스의 의식을 빌어 튀어나온다. 좋게 말하면 아주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5.


이 문장은 위(3)에서 이야기했던 억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회에서부터 시작된 것(금기)이 작은 공동체로, 가족으로, 이어져서 마침내 어머니와 큰오빠에게 전염되는. 그런 형태로 그려진다.


69. 바라본다는 것은 한순간 그 대상을 행한, 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불행에 빠지는 행위이다. 누군가를 바라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그 시선에 합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그는 불명예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다. 대화라는 것은 허영이다. 이 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어휘는 수치와 자만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집단이건 혹은 다른 어떤 종류의 집단이건. 공동체라는 형태를 한 모든 것은 우리에겐 증오의 대상이자 지저분한 그 무엇이다. 우리 가족은 삶을 살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근원적인 수치심 속에 빠져 있다. 우리 형제들의 이야기 가장 깊숙한 곳에는 우리 세 사람이 사회가 목 졸라 죽인 우리 어머니, 그 선량한 여인의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우리는 어머니를 절망에 빠뜨려 버린 이 사회의 한편에 비켜서 있다. 그토록 다정하고, 그토록 남을 쉽게 믿는 우리 어머니에게 사람들이 저지른 짓들 때문에, 우리는 삶을 증오하고, 우리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   


6.


이 문장에서 드러나는 쾌락은 절정의 순간에서 얻은 것이다. 솔직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118. 그는 내가 바라던 것을 넘어, 내 육체의 숙명에 적합한 곳까지 나를 대려갔다. 그렇게 나는 그의 아기가 되었다. (...) 119. 그 사냥꾼의 육체와 그의 성기와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숲 속이나 강가에서의 용맹함에 대하여 그리고 강 하구의 검은 표범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모든 것이 그의 욕망을 자극하여 , 내 몸을 포옹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아기가 되었다. 그와 매일 저녁 사랑을 나눈 사람은 그의 아기였다.


7.


이 문장은 불멸성에 관한 그녀의 감각이다. 이 감각이 태어난 것은 작은오빠의 죽음과 관계가 있다. 나는 김탁환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소녀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중국인 남자가 아니라 그녀의 작은오빠였음을. 작은오빠의 죽음에 그녀는 불멸이라는 것 역시 유한하다는 것을 깨우친다.


123. 내 작은오빠는 불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그를 보지 못했다. 그의 불멸성은 그가 살고 있었을 때, 작은오빠의 육신에 가려져 있었다. 우리는 불멸성이 바로 육신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 작은오빠의 육신은 죽었다. 그의 불멸성도 그와 함께 죽었다.


124. 불멸성은 유한한 것이고, 불멸성도 죽을 수 있으며, 그리고 그런 사건이 일어났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불멸성은, 결코, 불멸성으로서 눈에 띄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절대적인 이원성이다. 그것은 세부적인 것에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근원 속에서만 존재한다.


125. 이런 불멸성이 살아 있을 때에만, 삶은 불멸의 것이 된다. 불멸성이 삶 속에 있을 때, 그것은 길게 사느냐 짧게 사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또 다른 그 무엇인 것이다. 불멸성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하는 것도, 불멸성은 정신의 삶과 함께 시작되어 그것과 함께 끝난다고 말하는 것도 똑같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불멸성은 정신에도 관여하고 또 바람을 쫓아가는 것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사막의 죽은 모래들,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보라. 불멸성은 거기로 지나가지 않는다. 그것은 거기에 머물렀다가 우회한다.


8. 


5,6,7에서 인용한 문장들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지닌 독특한 감각을 보여주는 문장들이며, 이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소설을 이루는 요소들 가운데서도 오직 감각을 통해 호소하는 그런 작가다. 이 호소는 결국, 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더 슬프게 다가온다. 삶에 대한 발버둥. 쾌락과 공허함. 불멸의 죽음. 불멸이라고 믿었던 존재가 사라졌음에도 세상은 돌아가는. 나이들어버린 한 여린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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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1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1.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은 작가 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특이한 소설이다. 일단,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낼 부분은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 중간마다 등장하는 미쓰다 신조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문학관에 대해서다.


233. 란포라는 작가는 분명 탐미파였어요. 그런데 탐정소설이라는 새롭고 매력적인 문학이 눈에 들어오고 말았죠. 게다가 탐정소설은 매사에 싫증을 잘 내고 인생을 지루하게 느끼던 그에게 최고의 자극제였어요.


미쓰다 신조가 소개하고 그리고 평가하는 많은 작가와 그들이 쓴 미스터리 작품. 이 부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말은 없다. 그러나 <기관>을 통해 에도가와 란포가 일본 추리 문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작가야 말로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줄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한 렌조 미키히코라는 작가의 언급은 렌조 미키히코라는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검색해본 결과 렌조 미키히코라는 작가는 안타깝게도 이 소설이 출간된 지 12년이 지난 2013년에 생을 거두었다.


2.


1의 논의 중에서 특히, 료코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을 요약해보면 미쓰다 신조 작가는 본격 미스터리의 독자적인 장치들 속에 사건에 휘말리는 등장 인물의 심리 묘사 등을 얹어 그 자체로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집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집념의 시작이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이라고 판단해도 될 듯 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미쓰다 신조라는 이름을 걸고 출간하는 최초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루트로서는 말이다.  


결국, 미쓰다 신조라는 작가가 추구하는 소설은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문학성으로 따져도 뛰어난 소설일 것이다.곰곰이 생각해보면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은 그런 점이 일부 녹아있다. 문학성의 기준을 탁월한 심리묘사로 판단하는 미쓰다 신조 작가는 본격 미스터리 장르에 호러를 입히는 방식으로 문학성이 뛰어난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과제를 수행한다.  


실제로 읽어보면 호러라는 요소는 사람들의 심리를 뒤흔드는데 굉장히 탁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숫자 7, 그리고 서양식 건물과 관계되어서 일어나는 의문의 일가족 살인사건. 그리고 그것에 휘말리는 현실 속의 주인공과 현실 바깥의 주인공.

따지고 들면 논리는 부족하고, 궁극적인 살해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할 여지도 부족하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눈앞에 닥칠 위험을 인지하고 책장을 넘겨서 그것을 확인해 나간다는 점에서 섬뜩함을 가져온다.


초반에는 이 호러장치가 주인공인 작가와 주인공이 쓰는 작품 <모두 꺼리는 집>속의 주인공이라는 존재로 나뉘어. 개별적인 바탕에서 그려진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작가와 주인공이라는 공식이 파괴된다. 작가와 작가가 쓴 주인공이 동시에 똑같은 공포를 느끼게 되고, 이 공포가 연속으로 이어진다. 두 명의 주인공이 공포로 인하여 패닉에 접어들고, 그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진실에 대한 실마리는미궁으로 빠진다.


3.


미궁에 빠진 상태에서 소설이 지목하는 범인. 이 범인의 정의와 이유가 엉망진창이 된다. 이 진창 속에서 역설적으로 이 소설과 이 사건과 이 범인에 관련하여 발생한 어떠한 사실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확실한 무언가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불투명한 혼돈 속에서 느끼는 주인공의 절박함과 혼돈 가운데 뻗어오는 존재에 대한 공포심은 더욱 독자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 직접 읽으면 알겠지만 소설 전체를 드리우는 불확실성을 빼놓으면 딱히 설명할 거리가 없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인을 찾는 것에서 재미를 찾는 소설이 아니라, <미궁초자>라는 동인지에 미스터리 소설을 기고하는 편집자 겸 작가인 주인공 미쓰다 신조과 주인공이 쓴 소설 안에서 고통을 겪는 또 다른 주인공 코토히코가 느끼는 공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데서 더 큰 재미를 얻을 수 있는 소설이다.


한가지 더 강조하자면, 실제의 현실, 소설 안의 현실과 소설 안의 가상세계. 이 세 가지의 세계를 한데 합친 다음에 한꺼번에 붕괴시켜버리는 작가의 독특한 장치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인 미쓰다 신조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야기가 마음대로 흘러간다는 본격 소설 속의 장치를 읽으면서 드라마 W가 잠깐 생각나기도 했다.


충분히 깊이 읽지 못했다. 아마 다음 번에 읽게 된다면 일본 추리소설에 대한 지식을 쌓은 다음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171. 지금 내 몸 속에는 작가로서의 나, 독자로서의 나, 그리고 뭔가를 두려워하는 나, 이렇게 세 가람의 내가 있다. 게다가 세 번째 내가 느끼는 공포보다 첫 번째 내가 쓰고 싶다는 욕구. 두 번째 내가 읽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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