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말 -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인터뷰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조르주 샤르보니에 지음, 류재화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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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한 일이 아님에도 민음사에서 나오는 < 누구누구의 말 씨리즈>를 다 읽게 된다. 부끄럽게도 아직 레비스트로스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보르헤스 와 달리, <레비스트로스의 말>은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고, 레비스트로스 사상의 정수를 엿보았다, 라는 느낌 따위도 없다. 그럼에도 <레비스트로스의 말>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인류학자의 연구 대상이 되는 사회와 우리가 사는 사회 사이의 기능과 구조를 말할 수 있는가?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사회를 외부에서 보느냐, 내부에서 보느냐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부에서 볼 때 하나의 죽음은 진부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과 친척들에게는 하나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경험일 수도 있다.

 

속도와 위치, 두 가지 모두를 알 수 없는 물리학자의 입장이랄까. 인류학자 역시 가능한 방식은 외부에서 다른 사회와 비교, 분류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레비스트로스는 서구 사회가 원시 사회보다 더 뛰어나다는 관점을 수용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오히려 원시 사회를 더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시는 문화에 비해 질서를 더 적게 만듭니다. 우리는 오늘날 그것을 미개발 민족이라고 부르지요. 그러나 이들은 사회에서 훨씬 적은 엔트로피를 생산합니다. 대략적으로 보면 이런 사회는 평등해요.....문명화의 가장 큰 문제는 격차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식민주의, 제국주의, 다시 말해 끊임없이 사회 한가운데서 혹은 정복한 민족을 예속시키면서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사이의 격차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 p 57.

 


예술에서도 중요한 것은 합리적 사유가 아니라 야생적 사고다. 현대 미술이 미술의 진보가 아니듯 현대 사회는 원시 사회에서의 진보가 아니다.

 

초현실주의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통해 그의 사상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듯 하기도. 뒤샹의 을 예로 들어, 레비스트로는 이렇게 말한다.

 

말하자면 어떤 오브제든 상관없고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 오브제 자체가 반드시 이런 잠재 가능성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어떤 맥락에 어떤 오브제가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렇다고 오브제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는 건 아니다.

 

오브제 자체가 예술 작품이 아니에요. 오브제들 간의 어떤 배치, 배열, 서로 가까이 놓음으로써 대조와 조화를 만들어내고 어떤 연관성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게 예술 작품이죠. 언어에서 단어들 같은 거예요. .....단어는 문장 안에 있을 때만 그 의미가 가득 합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예술가에 대해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하는 것이지, 그들이 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그것을 생각하건 생각하지 않건 중요하지 않아요. 미적 창조 행위를 분석하는 심리학자에게는 중요하겠지요.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겁니다.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제가 보기에 가장 위험한 것은 나는 새로운 기호 체계를 만든다’, ‘나는 새로운 코드를 만든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만든 게 아니고, 아마 유사 코드를 만든 거겠지요. 고백하자면 저는 추상주의, 이른바 추상적이라고 불리는 회화 앞에서 흔히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 아마 추상화에는 기호 체계가 있을 겁니다. 이 기호 체계는 오브제에 비해 임의적이지요.

 

- p 142


레비스트로스의 말에 동의한다. 한마디로 추상회화는 쓰레기라는 것. 현대의 팝 아트는 두말하면 잔소리.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된다는 제프 쿤스의 작품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이런 걸 예술이라고?? 현대 미술의 천박함이 극에 달했다. 막스 에른스트는 이렇게 말했다지. “추상화 애호가가 많다면 그건 대단한 재산이 가진 계층이 나섰기 때문이다. 이것이 추상화의 영향력이다.” 5초에 한 명 씩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마당에, 소수의 자본가들은 돈을 주체할 수 없어 쓰레기 같은 오브제에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하며 자신의 재력을 과시한다.

 

레비스트로스의 일차적 관심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언어가 아닐까. 언어에 대한 인터뷰 내용은 그리 많지가 않다.

 

저는 모든 문제가 언어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예술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그것 역시나 언어 체계입니다. 언어는 나에게 가장 탁월한 문화적 실체로 보입니다. 여러 호칭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우선 언어는 문화의 일부분이고, 우리가 외부 전통으로부터 받아들인 능력 혹은 습관의 하나입니다. 언어는 본질적인 도구이며, 우리가 집단 문화에 동화될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수단입니다.

 

- P 183

 

아무래도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이해보다는 호기심을 자극 하는 책이다. 무지를 까발리는. 레비스트로스를 향해 핸들을 한 번 꺽어야겠다. ‘신비한 결속을 느끼고파.파, 파~~ 

 

 

p11. 레비스트로스는 용어는 음악 용어든 미술 용어든 그것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관계들이라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 사유의 한 키가 이 말에서 엿보인다. 명사화, 범주화, 분류화, 서열화보다는 일종의 자유 연합이다. 레비스트로스가 강조한 관계들은 논리적, 인과적 관계가 아니라 세분을 거부하거나 초월해버리는 원시인의 야생적 사고에 가까운 신비한 결속이다. 그것은 환유적 연상 작용이다. 비현실적이며 신화적인 세계, 그러나 바로 그곳에 생이 있다.

 

p14. 연언적으로만 존재한다고 했던 자연 실재계의 단절된, 불연속적인 것들을 가로 연산적 통합축으로, 세로 층위 승수적 계열축으로 사고하여 논리적 건축물을 지어내는 것이 인간의 사고 구조라고 보고 그러한 방법론으로 수많은 분석을 시도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이 분석 체계의 축조물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 축조물을 통해 차이가 아닌 닮은 차이, 즉 다르나 결국 같은것을 환기하는 것이 목표다.

 

가령 토테미즘이 종교라는 신성 체계가 아니라 환유법에 가까운 인간의 정신 작용과 그 소산에 불과한 이유가 이런 식으로 설명된다. “곰은 내 보족이다라고 말할 때 내 부족의 등가 관계는 등치가 아니라 대등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이라는 종과 혹은 나의 부족이라는 사회집단이 유사적 연쇄의 통합축으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대체나 치환이 가능한 근접성의 환유 관계, ‘계열축에 각각의 층으로 놓이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곰과 나는 a=b의 관계가 아니라 a:b의 관계다. 이것이 바로 닮은 차이. 서로 다른 층위에 놓여 있으면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 다를 수 있다. 만물은 이런 식으로 실제한다.

 

우리는 합리주의적 사고를 하기보다 야생적 사고를 한다. 주술적, 신화적 사고를 한다. 끊임없이 은유, 환유 관계를 연상함으로써 몽상을 하고 예술을 한다. 예술은 느닷없는 난입이며 교란이다. 예측 불가능한 것을 증가시키면서 허무라는 구멍을 끊임없이 파는 일이다. 이미 실재라는 거대한 허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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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열대>를 한 번도 읽어봤습니다. 뭣도 모르고 덤비다가 포기한 적 있습니다. ㅎㅎㅎ

추상회화가 한때 유행했고, 그림이 비싼 가격이 거래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비평가들의 전폭적인 지원이었습니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현대미술 편에 보면 추상회회에 관한 내용이 있어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린버그라는 비평가는 잭슨 폴록을 띄워줬는데, 폴록이 죽은 뒤에는 로스코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팝 아트를 대놓고 무시했죠.

시이소오 2016-07-11 15:25   좋아요 0 | URL
슬픈 열대 어렵나보군요.
다른 입문서를 봐야겧어요^^

cyrus 2016-07-11 15:39   좋아요 0 | URL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주제나 책의 분량이 잠을 부르게 합니다. 조금만 더 두꺼웠으면 베개로 안성맞춤이었을 거예요. ^^

시이소오 2016-07-11 15:52   좋아요 0 | URL
잠자기전에 읽어야 겠어요 ^^
 
언제나 당신이 옳다 - 이미 지독한, 앞으로는 더 끔찍해질 세상을 대하는 방법
자크 아탈리 지음, 김수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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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뷰 쓰는 책은 대체로 두 번씩 읽는다. 대개 첫 독서 이후, 열흘이나 보름 이후에 리뷰를 쓰곤 하는데, 이 두 번째 독서에서 책에 대한 평가가 270(?) 정도로 바뀌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 좋은 책인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네하고 느낀 적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로지 그 반대의 경우만 있었다. 자크 아탈리의 <언제나 당신이 옳다>도 그러한 예다. 어떤 문장은 두 번이 아니라, 오토 리버스 기능의 카세트테이프 마냥 읽고 읽고 읽고, 묻고, 묻고, 물었다.

 

자크 아탈리에 따르면, 오늘날은 악이 부상하는 시대다. 폭력이 난무하고, 전 세계 실업은 증가하고,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일자리를 로봇에게 빼앗기며, 지구의 평균 기온은 3도 이상 오르고, 기후 난민, 정치 난민이 늘어나고, 온갖 전염병의 발생 빈도 역시 높아질 것이다.

 

공무원들의 부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국가와 국제기구가 힘을 잃어가는 사이, 대기업들의 권한은 점차 강화되어, 인간은 점차 사축으로 전락하고 전쟁광, 마피아, 근본주의 종교,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전 세계의 소말리아화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아탈리는 이러한 현실에 좌절해 체념하고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라고 말한다. 내가 최면에 걸린 듯 반복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자크 아탈리가 제시한 자기 자신이 되는 5단계의 길이었다. 아탈리에 따르면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을 걷기 위해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건이건 간에 사건 하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적어도 정신적인 측면에서 한순간 단절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침묵과 집중, 명상의 단계인 휴지기. 아탈리에 따르면, 이 휴지기 동안에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 을 거치는 것이 적합하다.

 

자기 자신이 되는 5단계의 길

 

1. 자기 소외에 눈 떠라.

 

첫 번째 단계에선, 우리가 처한 상황과 주변 상황, 다른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삶에 가해진 속박과 한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아탈리는 스스로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져볼 것을 제안한다.

 

오늘 이 순간까지 인생을 살면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자유롭게 내 성공의 기준을 선택했는가?

내가 살 곳, 공부할 것, 현재 내 감정을 공유하는 감정적 동반자, 직업, 자녀를 자유롭게 선택했는가?

진정으로 나의 재능을 발굴하고 이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가?

어떤 슬픔과 행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가?

나는 재력이나 게으름 때문에 제약을 받았는가?

나는 내가 극복해야 했던 비극의 희생자인가, 아니면 그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인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라 내 자신이 구속되지는 않는가?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혹시 체념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체념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지금 눈앞의 모든 것이 사실은 안 지키면 그만인 인생 계획과 마찬가지로 그저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라면 어떻겠는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순종하거나 우리의 욕망에 굴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때 우리는 그들을 소외시키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계를 인식하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감을 가지는 길로 접어들 수 있다.


2. 스스로를 존중하고 존중 받아라

 

자존감을 가지려면 먼저 자기 몸을 제대로 인식한 후 자신의 몸을 유지관리하고 일체의 중독을 거부해야 한다. 운동을 하고, 외모를 가꾸고, 거울이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하도록 한다. 더 나아가 자기 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건강관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

 

이외에도 자존감을 가지려면 선악을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명확하게 알고, 다양한 형태의 가치에 위계질서를 세워야 한다. 또한 어떤 사안에 대해 타협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 즉각적 만족과 장기적 투자를 서로 구별해야 한다.

 

자존감을 정착시키는 데 유용한 연습방법이 하나 있다. 자신이 존중받고 싶은 것을 단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번영, 우아함, 정직, 진정성, 예의, 친절 같은 단어가 그렇다. 자존감이 생기게 하려면 이러한 단어들과 그 안에 담겨 있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그 단어들 안에 내포되어 있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더불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쉬지 않고 인격을 연마하고 개혁하며, 우수한 존재가 되도록 쉼 없이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위로와 동정을 받으려 하지 않고, 나쁜 소식이나 어두운 전망이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불안해하지 않고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불행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준비를 한다.

 

자존감이 있으면 내면의 힘을 발견할 수 있고, 통찰력과 내면을 성찰하는 능력, 공명정대함과 용기가 생긴다.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해지고, 극단적인 낙관주의나 비관주의 없이 불확실한 인생을 있는 그대로 직면할 수 있다.

 

자존감이 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평화롭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그들로부터 존중 받는다. 사실, 자기가 자기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존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3.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은 고독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고독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의 원천이다.

 

자기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표현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이 아닌 그 누구도 자신의 열망을 규정하고 자신의 인생 계획을 선택할 자격이 없다. 10분 후, 이틀 후, 또는 10년 후에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자기 자신보다 더 잘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 자신의 유일성을 성찰하라

 

따라서 자기성찰의 네 번째 단계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성찰하는 것이다. .....그 대신 창조자가 되어 자신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열망에 따라 정의한 나만의 의미있는 삶’, 즉 어느 누구도 똑같은 방법으로 디자인해낼 수 없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런 삶은 판을 엎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기대하는 바를 신경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강요한 기준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지 않게 한다. 또한 다른 사람도 자신만큼 잘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임무는 맡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일만 하도록 노력하고, 자기만이 갖고 있는 유일한 것이 무엇이며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

 

좋은 삶, 나만의 의미 있는 삶은 언제나 자신의 참모습을 추구하고, 수천 번 자신의 참모습을 찾았다 잃었다 하는 삶이다. 인생은 단지 그것이 유일하다는 이유만으로 언제까지나 유일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5. 참된 자신을 발견하라, 스스로 선택하라.

 

그러나 어떤 경우라 해도 일자리를 찾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를 제공할 고객을 찾고, 아직 없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들이 기꺼이 투자할 만한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찾아야 한다.

 

지금 당장, 인생의 주인이 되자.

 

만약 당신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면 당신 자신과 가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날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더 이상 기존 정당과 조합을 신뢰하지 마라. 정당과 조합에 가입한다면 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가입하라. 미래의 쟁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행동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이 등장하게 하라.


나는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오롯한 인간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하겠다.


- 헬렌 켈러.

 

아탈리는 기업가, 예술가, 활동가 등 여러 분야에서 자기 자신이 된사람들의 일화를 소개한다. 짧은 지면임에도 불구하고 수 백명의 사례를 든다. (허걱, 멍청하게도 이 사람들 이름을 일일이 다 치고 있었다.) 인상 깊었던 사회적 기업 하나만 언급하자. 필리핀 카와드 칼링가 커뮤니티 개발 재단500개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을 건설했다. 이 재단 덕분에 100만 명의 필리핀 국민들이 기아에서 벗어났다. 와우!

 

(나에게 거금이 생긴다면 무이자 대출 은행기아 종식 플랫폼을 만들겠다. 무슨 은행들이 서민들에게 연체료를 연 30% 때릴 수 있을까. 예금 많이 하면 예금 이자 30프로 줄 건가?  이게 대부업체지, 은행이라고!? ‘무이자 대출 은행이 생기면 대한민국 사악한 은행들이 쫄딱 망하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기분 째진다.

 

혹시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보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신용카드 가위로 다 잘라버리시라. , 신용카드 연체 있는 분이 있다면 갚지 마시고 주빌리 은행과 상담하시길. 애초에 신용 카드를 발급해 준 카드사에도 연체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이 자살율 11년 연속 1위를 차지한 가장 큰 원인이 빚이다. 신용카드와 빚, 이게 바로 화차. 지옥을 향해 달리는 불 수레! 은행과 카드 빚, 무리해서 갚지 마시라. 갚을 필요 없다. )

 

한 가지 사례를 더 언급하자면, 프랑스 유명 코미디언이자 배우였던 미셸 콜루치는 노숙자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는 사랑의 식당을 세웠다. 매년 90만 명이 사랑의 식당을 이용했고, 1억 인 분이 넘는 식사가 제공되었다.

 

내가 이 책의 문장들을 곱씹어 읽었던 건, 아마도 지금이 내겐 일종의 단절, ‘휴지기로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사건이 있었고 지금이야말로 침묵, 집중, 명상이 필요한 시간이다. 위기는 언제나 위험이자 기회다. 나는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도대체 어떤 행복과 슬픔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일까?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만의 의미 있는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일까? ‘나만의 유일성이라 말할 수 있는 게 과연 있기나 한 걸까? 만일 있다면 그건 도대체 뭘까? 내가 원하는 걸 나는 과연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걸까?

 

아직까지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

하여, 끊임없이 묻겠다.

내가 내 자신으로 살기위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밑줄 친 문장.

 


당신이 바라거나 믿는 바를 말할 때마다 그것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당신이다.

그것은 당신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에 대해 당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향한 메시지다.

스스로에 한계를 두지 마라.


- 오프라 윈프리

 

 

 

당신의 앞날을 스스로 개척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자신감을 가져라. 자기 자신을 존중하라. 당신 앞에 감히 모든 것이 열려 있다고 생각하라. 용기를 내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이미 수립된 질서라 해도 다시 한 번 흔들어보라. 당신의 삶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라고 간주하며 살아라.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얻으려면, 미래를 결정짓는 순간 하나하나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생각보다 자신이 훨씬 자유롭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누구건, 나이가 몇이건, 재력, 성별, 출신, 사회적 지위가 어떻건 상관없다. 당신은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려움과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이 행동하기를 제안한다. 다른 사람들의 불확실한 행동은 상관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하는 쪽에 내기를 걸라고 말이다. 그러면 어떤 가정을 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

 

P161. 그는 아테네의 현인 솔론의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나는 끊임없이 배우면서 늙어간다.”

 

P162. 칸트에게 자기 자신 되기는 스스로 생각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P167. 화자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 <되찾은 시간>의 마지막 부분에는 자기 성찰이 자기 자신이 되는 데어떤 역할을 하는지 길게 기술되어 있다. “시간에 대한 이런 생각이 내게는 마지막 선물과 같았고 자극제가 되었다. 살면서 몇 번인가 퍼뜩 느꼈던 것, (...) 인생을 살 만하게 만들고 싶다면, 바로 지금이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암흑 속에 살았던 인생에 대한 생각을 밝혀낼 것 같은 지금, 인생이 얼마나 살 만한 것처럼 보이는지 모른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인생은 끊임없이 망가져서 결국 하나의 책으로 실현된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얼마나 큰 노력이 그에게 요구될 것인지!”

 

P168. <벼락 맞은 남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글을 쓰려면 자신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내 고독에 불을 놓았다. (....) 글쓰기는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불사르고 한데 섞여 있는 이미지들을 태워서 불꽃이 튀는 숯과 땅에 떨어지는 재로 만드는 작업이다. 하지만 불꽃이 사그라지기 시작하면서 불의 원래 모습은 신비로 남게 된다. 글쓰기란 활활 타는 것이기도 하지만, 불사조같이 타고 남은 재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169. 프로이트의 뒤를 이어 카를 구스타프 융은 자아와 자기를 구별한다. 자아는 의식의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성적 존재가 되기를 추구하는 서양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아우르는 것으로, 한 인간의 개성을 포괄한다. 융에 따르면 삶의 목표는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 즉 자기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융은 <자아와 무의식의 변증법>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기는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기는 개인이라 불리는 운명의 조합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P170 이 책에서 그는 (짐 론) 다섯 가지 삶의 원칙이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철학(생각하는 방식), 태도(사물로부터 감정을 느끼는 방식), 활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행동하는 방식), 결과(목표와 비교했을 때 현재의 위치), 그리고 삶의 방식이다.

 

P171. 하버드대학교의 마거릿 무어와 폴 해머니스 교수가 2011년에 발표한 저서 <하버드 마음 강좌>도 흥미롭다. 이 책에는 내면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시켜주는 다섯 가지 원칙이 소개되어 있다. 즉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고,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집중력을 해치는 환경에 효과적으로 반응하고, 단기 기억을 최대한 활용하고, 한 가지 임무에서 다른 임무로 신속하게 옮아갈 것을 권하고 있다.

 

P180. 그런데 이런 사건이 무엇이건 대체로 사건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특히 자기 자신 되기가 모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적어도 정신적인 측면에서 한순간 단절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침묵과 집중, 명상의 단계인 휴지기. 이 휴지기 동안에는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 을 거치는 것이 적합하다.

 

첫 번째, 인간이 처한 상황과 주변 상황, 다른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삶에 가해진 속박과 한계를 파악한다.

 

두 번째, 스스로를 존중하고 존중받도록 한다. 우리에게는 멋진 삶과 멋진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 번째, 자신의 고독을 인정한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거나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의 단계들을 떠올리며 고독을 행복의 원천으로 여기면서 산다.

 

네 번째, 자신의 삶이 유일한 것이며 누구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낙인찍히지 않을 자격이 있고, 각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또한 일생동안 여러 재능을 동시에, 혹은 차례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한다.

 

다섯 번째, 이렇게 하면 마침내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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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1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한 권 다 읽은 뒤에 열흘 안에 서평을 쓰지 않으면, 기억해둔 내용들이 다 잊어버립니다. 다 읽고 나서 바로 다음 날, 아니면 이 삼 일 안으로 써야 정리가 편해져요. 자꾸 글쓰기를 미루면 써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립니다. 그리고 바보 같이 그 책을 또 읽습니다. ^^

시이소오 2016-06-11 15:2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기억이 안나니까 다시 읽는듯하네요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참.. 여러 모로 다르십니다.. ㅎㅎ
전 책을 읽고 덮는 순간, 바로 자판을 두들깁니다. 머리가 나빠서..
그러니까 다 즉흥적입니다. 생각을 숙성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합니다.
다만 써둔 글은 쟁겨두었다가 아침에 출근하면 글 한 번 읽어보고 약간 수정하는 스타일.. 리뷰를 쓰기 위해 책을 두 번 읽는다에서 엄지 척 ~ 하고 떠나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6-11 15:26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엔 곰발님은 천재과
번쩍 번쩍 하잖아요
저는 진짜 곰처럼 느릿느릿해요
바로 쓰라고 해도 못쓸듯. 일주일 이상은생각을 굴려봐야 쓸까말까 합니다 ㅋ ㅋ ^^

곰곰생각하는발 2016-06-11 20:02   좋아요 0 | URL
그렇지가 않아요. 전.. 읽고 나서 일주일 후에 쓰면 아예 못 씁니다. 다 기억 속에서 지워져서요.. 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6-12 09:4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기억속에 지워져 다시 읽을수 밖에 없다는 ㅋ^^

alummii 2016-06-1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읽기를 하시다니 정말 본받고싶어요 ^^저는 한번 더 읽어야지 ...생각만하고 실천에 못옮기네요

시이소오 2016-06-11 18:43   좋아요 0 | URL
저처럼 모자라면 저절로 두 번 읽을수밖에 없어요 ㅋ

alummii 2016-06-11 19:36   좋아요 0 | URL
푸핫 왜그러세요 빵터졌네요 ㅋㅋ

시이소오 2016-06-11 19:42   좋아요 0 | URL
그저 경험담이에요ㅋ^^

기억의집 2016-06-1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히려 자기 자신이 되란 말에 반감이 든 책이었어요. 국가가 해야할 책임을 개인에게 떠 넘기는 듯해서...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건 옳은 일이지만 너무나 거대한 부조리와 부패앞에서 개인이 잘해야한다니.. 말도 안 돼, 이런 반감이 들더라구요. 예전에 유시민의 국가에 대한 글을 읽어서 개인의 자기 정립은 국가의 역활을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게다가 저의 주변 사람들은 뭐만 일어나면 국가가 해 주어야하나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러면 제가 아니 그럼 국가가 뭐하러 존재해야하는데. 국가가 존재하는 건 그 어떤 위기든 구해내야하는 거야라고 말하는데... 제 말은 간단히 무시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묘하게 안 맞는 책이었는데. 한번 더 읽어볼까 싶네요.

시이소오 2016-06-11 18:48   좋아요 0 | URL
저는 기억의 집님 입장에 공감합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국가의 책임을 외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건 아닌것 같아요 ^^

사마천 2016-06-1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리뷰시네요. 거의 책을 읽은 듯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도와주는 리뷰입니다. 감사 ^^

시이소오 2016-06-12 09:42   좋아요 0 | URL
사마천님, 제가 감사드려야죠.
^^

2016-06-12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6-12 23:54   좋아요 0 | URL
음ᆢ그건 작가가 그렇게 썼으니까요ㆍ pek0501 님도 ` 자기자신이 되는 5단계 길을 걸어보시는건 어떨까요 ? ^^
 
니체의 인생 강의 -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사는 변신의 삶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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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설문에 참여하고자 무인도에 가지고 갈 세 권의 책을 한 달간 고민했다. 설문은 끝났건만 아직도 두 권을 정하지 못했다. 한 권은 고민하지 않았다. 수백만 권의 책 중에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아닐까. 무인도니까 이왕이면 독일어판을 가져가고 싶다. 책은 니체 생전, 출판사의 버림을 받아 자비로 40부를 찍었고 7부만 지인들에게 보내졌다. 세계에서 단 7. 오늘날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가장 많이 출간되는 철학자가 있다면 니체다. 매달 니체관련 신간이 나오는 것 같다. 왜 오늘날 니체는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가 된 것일까.

 

신은 죽었다.

 

신이 죽었기 때문에? 물론 종교적 광신도들이 저지르는 온갖 죄악과 폭력에 나날이 신도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것은 오늘날 인간들이 삶의 의미를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역으로 이렇게 말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신이 없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니체는 그의 말처럼 망치를 들고 철학을 했다. 니체는 인간이 아니고 다이너마이트다. 모두가 신의 존재를 믿었던 19세기에 그는 신의 죽음을 선포한 것이다. 신이 죽었다는 말은 절대적인 가치가 상실됐다는 뜻이다. 이제 추구해야 할 아무런 가치도 없다. “아무것도 진리가 아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허무주의다. 니체가 오늘날 팔리는 건 그만큼 오늘날의 사람들이 허무에 빠져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니체를 단지 허무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망치로 머리를 내려쳐야 한다.

 

권력에의 의지

 

권력에의 의지란 신이 없으므로 히틀러같은 파시스트가 되란 말인가? 노예가 되지 말고 노예를 부리는 주인이 되란 뜻인가?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베르크손의 용어로 말하자면 엘랑비탈이 아닐까. 약동하는 생명 말이다. 권력은 저항이다. 권력은 허무에 빠져들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힘이다.

 

위버멘쉬 ; 초인과 최후의 인간말인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자가 무엇인가? 그것이 위버멘쉬’, 초인이다. 이에 대립되는 시장의 인간. 이들이 바로 최후의 인간이다. (‘최후의 인간보다 말인末人이 더 적확한 역어로 보인다. ‘말인인간 말종을 연상시키지 않은지?)

 

말인은 안락하다. 현재를 바꾸고 싶지 않다. 자신들이 노예라는 걸 모른다. 니체는 인간에게 초인이 되라고 말한다. 초인은 자신을 넘어서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목표는 어디 있는가? 목표는 없다. 초인은 목표를 스스로 만든다. ‘말인을 한병철의 용어로 하자면 오늘날의 성과주체.

 

사람은 짐승과 초인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넘어가는 과정이요, ‘내려가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

 

영원회귀

 

만일 우리가 영원히 똑같은 삶을 반복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이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사상이다. 내가 지금 한 뻘짓이 다음 생에 또 다시 반복 되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그럼에도 니체는 영원회귀를 긍정하라고 말한다. 순간을 긍정하고 삶을 긍정하라고. 만일 지금 이 순간에 한 행동이 수 억번 반복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내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영원회귀가 거짓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영원회귀가 있다고 믿어본다면?. 만일 영원회귀가 사실이라면 지금 이 순간 게임이나 하고 있어야 할까.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을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 마냥 영원회귀사상을 떠올려보자.

 

정신의 세 단계 : 낙타, 사자, 어린 아이.

 

낙타의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가장 무거운가?” 이 낙타에 가장 어울릴법한 캐릭터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말 복서와 성석제 <투명인간>의 주인공 만수가 떠오른다. 만수는 온갖 의무만을 짊어진다. 가족, 사회, 직장, 국가..... 만수는 기존의 관습, 도덕에 복종하기 바쁘다. 전두환이 국민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만수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가족들을 돌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없다. 티비에서 누군가를 빨갱이라고 하면 그렇게 믿는다. 우리 주변엔 이 만수, 이 낙타들이 수 천만 명 있다.

 

낙타의 정신이 너는 해야 한다에 복종한다면 사자의 정신은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라는 명령에 맞서 나는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기존의 가치에 복종만 한다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선 우선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

 

마지막 어린 아이의 정신은 창조를 놀이처럼 긍정하는 정신이다.

 

어린아이는 순진 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낙타의 정신이 기존의 가치를 답습하는 것이라면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한다고 해서 삶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아이의 정신으로 도약해야 한다. 자크 아탈리의 <언제나 당신이 옳다>를 읽다보면, 악이 부상하는 오늘날에도 새로운 가치를 실천하는 어린아이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숱한 사람들의 일화가 소개된다. 어린아이를 거룩한 긍정이라 말한 것은 우리의 현실을 단지 비판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아모르 파티 : 네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를 읽을 때 마다 춤을 못 배운 게 한이다. 니체는 춤출 줄 아는 신만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디오니소스 처럼. 허무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폴론적인 것만으론 부족하다. 가끔은 술도 마시고 춤도 춰야 한다. 이성과 논리뿐만이 아니라 광기와 예술도 필요하다.

(홍대 클럽과 이태원 클럽은 주민등록증 검사를 철폐하라! 철폐하라! 나이 들어도 춤춰야 한다!! 막춤은 춤이 아니라 단지 몸짓이란 말인가. 캬바레는 구리다! 구리다!)

 

니체의 철학을 단 한 마디로 말하자면 부정성을 긍정하는 것이 아닐까. 권력에의 의지, 위버멘쉬, 영원회귀, 어린 아이의 정신, 아모르 파티 등 니체의 모든 사상들은 결국 이 한 가지로 수렴한다. ‘삶은 고해의 바다지만 우리는 삶을 긍정해야 한다.’


니체는 삶이 허무함을 인정한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단 한번도 허무에 ,고통에 주저앉자고 말하지 않았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만 말자. 니체가 말한 초인처럼 살다간 위인들 중에 조르바가 떠오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순간을 영원처럼

영원을 순간처럼 살자. 

우리는 자유다.  


 

그리고 그대들이 비록 큰 일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대들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일까? 그리고 그대들 자신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인간이 실패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좋다! 가자!


높은 종족에 속할수록, 완성하는 일은 드물다. 여기 있는 그대들,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충분히 완성되지 않은 게 아닐까?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그대들 자신에게 웃음을 퍼붓는 것을 배워라. 웃어야 마땅한 것처럼 웃는 것을 배워라!


인간이 도달할 수 있어야 할 가장 먼 것, 가장 깊은 것, 별처럼 높은 것, 거대한 힘, 그 모든 것이 그대들 항아리 안에서 서로 부딪치며 부글거리고 있지 않은가.


때로 항아리가 부서지는 일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대들 자신에게 웃음을 퍼붓는 것을 배워라. 웃어야 마땅한 것처럼 웃는 것을 배워라.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실로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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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6-06-0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고 싶게 해주는 명리뷰네요. 감사 ^^

시이소오 2016-06-06 09:02   좋아요 0 | URL
읽고 싶어지셨다니,
이럴 때 가장 리뷰 쓴 보람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

막시무스 2016-06-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은지가 좀 되었는데 덕분에 다시 새록해지네요!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6-06 12:56   좋아요 0 | URL
복습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

fledgling 2016-06-06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 리뷰 정말 잘 쓰셨네요~ 다른 책에서 본 기억으로는 ˝권력에의 의지˝가 판본마다 달라서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니체의 동생인가? 히틀러때문에 출판당시 판매를 위해 수정했다는 에피소드도 있구요. 히틀러가 권력에의 의지로 해석해서 열광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강신주 책이었는지,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이었는지 다시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여하튼 권력으로 번역할지 힘으로 번역할지 학자들 의견이 분분한 것 같은데 저는 권력보다 힘이 맞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넓은 의미로 보면 힘도 권력에 포함되기도 하네요

시이소오 2016-06-06 18:24   좋아요 0 | URL
거기까진 생각해보진 않았는데요. 분명 권력이란 역어가 부정적 뉘앙스를 풍겨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한듯 합니다. ^^

cyrus 2016-06-06 21:25   좋아요 1 | URL
fledgling님 기억이 맞을 겁니다. 니체의 여동생이 오빠의 저작물을 관리, 편집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녀 때문에 니체의 글이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왜곡되었고요. 히틀러는 그런 그녀를 좋아했고, 니체의 여동생은 히틀러의 관심 속에서 명예를 누리면서 편안한 여생을 보냈습니다.

시이소오 2016-06-06 22:00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ㅎ ㅎ

pada 2016-06-06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인도에 가지고 갈 책이라. 생각해봐야겠네요. 그전에 많은 책을 읽어봐야 할 듯. ㅠㅠ.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시이소오 2016-06-06 22:01   좋아요 0 | URL
파다님, 제가 더 감사하죠 ^^
 
에로스의 종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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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재 발명되어야 하는데.....

안락한 자리만을 바라지.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마음은,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말지.“

 

-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철>

 

강신주, 이상용의 <삼십금 쌍담의 인트로>는 랭보의 시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 <에로스의 종말>의 서문은 알랭 바디우가 썼다. 서문의 제목은 <사랑의 재 발명>이다. 알랭 바디우에 따르면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사랑을 재 발명하기 위한 투쟁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시하고 구경거리로 만듦으로써 사회의 포르노화 경향을 강화한다. 자본주의는 성애의 다른 용법을 알지 못한다. 에로스는 포르노로 비속화된다.”

 

한병철은 <피로사회>, <투명사회>, <심리정치>에 이어 <에로스의 종말>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인간의 사물화 경향을 고발한다. 무엇이 에로틱한가? 감추어진 것, 베일에 싸인 것, 무언가 미지의 것,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비밀스러운 것, 금기를 위반하는 것, 위험을 동반하는 것, 등이 아닐까.

 

보통의 포르노그래피는 질투를 미화해. 괴로움을 제거해버리지. 뭐가 미화할까 aestheticizing? 왜 마취하지 anesthetizing않을까?” 글쎄, 어쩌면 둘 다겠지. 그건 대신하는 거야. 보통의 포르노그래피는 타락한 예술 형식이야. 그것은 진짜인 체할 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진실을 버려. 포르노 영화에 나오는 여자를 원하지만 누가 그 여자와 씹을 하든 그 사람이 자신의 대리가 되기 때문에 질투는 일어나지 않아. 아주 놀랍지만 그게 심지어 타락한 예술의 힘이야.

 

그 사람은 대역이 되어, 그렇게 보는 사람에게 봉사를 하는 거야. 그것이 가시를 제거해서 영화를 즐길 만한 것으로 바꾸는 거야. 보는 사람이 그 행위의 보이지 않는 공모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제거되는 반면 내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그대로 유지돼. 나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신물날 정도로 자신을 잔뜩 채운 사람이나 얻는 사람이 아니라, 얻지 못하는 사람, 잃는 사람, 잃어버린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니까.

 

- 필립 로스, <죽어가는 짐승>

 

반면 포르노에선 모든 것이 낱낱이 적나라하게 전시된다. 포르노에서 타자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구경거리를 단지 소비할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사회를, 인간을 포르노 화시킨다. 점점 더 나르시시트가 되어가는 성과주체는 사랑 (에로스)을 두려워한다.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아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부정성이다. 내가 사랑하는 타인은 동일자의 지옥에 끌려오지 않는다.

  

플라톤에 따르면 에로스는 영혼을 조정한다. 에로스는 영혼의 모든 부분, 즉 충동, 용기, 이성을 전반적으로 지배한다. 영혼의 모든 부분은 각자 자기 나름의 쾌락 경험을 지니며, 아름다움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한병철이 사랑을 에로스로 표현한 것은 그것이 충동이자 용기이며 이성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타자는 소비되지 않는다. 타자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자아가 깨지고 무너지고 파편화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를지라도. 또한 에로스는 사유를 촉발한다. 에로스 없는 로고스는 공허할 뿐이다.

 

하이데거가 아내에게 보낸 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타자, 즉 당신에 대한 사랑과도, 그리고 다른 면에서 나의 사유와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이것이 무엇인지는 말하기 어렵소. 나는 그것을 에로스라고 부르는데, 파르메니데스의 말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신인 에로스의 날개짓은 내가 사유에서 중대한 일보를 내디디며 전인미답의 지대로의 모험을 감행할 때마다 나를 건드린다오.

 

에로스는 우리로 하여금 전인미답의 지대로의 모험을 감행케하는 것이다. <옆집의 나르시시스트>에 의하면, 오늘날 나르시시트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 한병철에 따르면 그게 포르노다. 나르시시스트에게 타인은 그저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거울속의 자신의 얼굴(face)가 아니라 타인의 얼굴(visage)을 바라봐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특히 에로스를 성애와 포르노그래피로 대체함으로써 사회의 전반적인 탈정치화를 초래한다. 신자유주의의 토대는 충동이다. 각자 고립되어 있는 성과주체들로 이루어진 피로사회에서는 용기도 완전히 불구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의 행위는 불가능해진다. 집단적 주체로서의 우리는 성립할 수 없다.

 

바디우는 정치와 사랑의 직접적 결합을 부정하지만, 정치적 이념의 기치 아래 실천과 참여로 점철된 삶과 사랑 특유의 강렬함 사이에는 신비로운 공명같은 것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마치 그 소리와 힘에서는 완전히 상이한 두 악기가 위대한 음악가에 의해 하나의 곡 속에 합쳐져서 신비로운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것같다.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세계,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에서 나오는 정치적 행위는 어떤 심층적 차원에서 에로스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에로스는 정치적 저항의 에너지원이다.

 

신자유주의는 사랑을 포르노로 속화시킨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개인은 사랑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만을 소진시키고 소비하고, 포르노 화 할뿐이다. 에로스를 회복할 때에야 우리는 타인과 신비로운 공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타인과 연대를 통해 시스템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고, 신자유주의의 동일자의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상처받기 싫어 사랑하지 않겠다? 자신을 포르노 화시키는 짓이다.

바타이유에 따르면, 에로티즘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죽어도 좋아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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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살롱 2016-05-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읽었어요.
늘 그랬지만
감탄과 희열을 느낍니다.
질투날 정도로 이해가고 설득됩니다.
와....

시이소오 2016-05-27 15:16   좋아요 0 | URL
한병철 교수 책을 읽다보면
저 역시 희열을 느껴요^^

우민(愚民)ngs01 2016-05-2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생각나네요

시이소오 2016-05-28 08:03   좋아요 0 | URL
아, 사랑은 머리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죠. ^^

Classicolor 2016-06-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정말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리뷰 감사드립니다.

시이소오 2016-06-08 17:31   좋아요 0 | URL
오,리뷰쓴 보람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16-09-1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가만히 읽고 보니 카치아피카스가 <한국의 민중봉기>에서 20세기 파리코뮌이라고 평가한 광주민주항쟁에서 보인 사람들의 행동을 `에로스 효과`라고 명명한 것이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 아니구나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시이소오 2016-09-19 12:39   좋아요 0 | URL
카치아피카스의책을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에로스 효과란 명명은 충분히 적절하다고 보여지네요 ^^

아라치 2022-05-2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어려운 책이 정리가 되네요. 읽었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책이었는데^^
 
명리 : 운명을 읽다 - 기초편 명리 시리즈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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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시절, 수통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우리 과엔 나와 똑같은 해, 똑같은 달, 똑같은 날에 태어난 군발이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원했다. ‘, 별일도 다 있다싶었는데, 돌이켜보니 그와 나의 사주팔자가 비슷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가 속한 는 이비인후과, 피부과와는 달리 고작 스무 명 정도의 환자가 있었다. 그 중에 생년월일이 똑같은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명리학은 무엇인가? ‘운명(運命)’이라는 말에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운용한다, 운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은 주어진 요소들을 가리킨다. ‘을 합친 말이 바로 운명이고,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각자 자기만의 소명을 갖고 태어난다. 이것이 명이다. 그 명을 키우고 발현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체의 몫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의 삶이 같은 것은 아니다.

 

명리학은 흔히 사주팔자라고 말한다. 음양오행, 천간지지, 십이운성, 신살 등을 토대로 인간의 을 알아내는 것이다. ‘운칠기삼이라기보다는 운칠명삼이다. ‘주체의 몫이 운이라면 타고난 소명이 이다.

 

군대를 제대 후, 세일즈 아르바이트를 했다. 난 그 당시 정말 이 제품을 믿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칼을 팔았다. 지금은 주부들에게 꽤나 알려진 칼이다. CUTCO 칼이었다. 팀장까지 했었지만 당시 지점장이 내 실적을 가로채 그만두었다. 천간을 살펴보면 나는 신신(辛辛)병존이다. 신신병존은 오늘날 주로 외과 의사 같은 칼잡이들이 많다고 한다. 외과의사는 되지 못해 나는 칼을 팔았던 것일까.



 

사람의 명이 갈리는 부분은 결국 십신이 아닐까. 십신은 다섯가지로 구분된다. 비겁, 식상, 재성, 관성, 인성이 그것이다. 비겁은 비견과 겁재, 식상은 식신과 상관, 재성은 편재와 정재, 관성은 편관과 정관, 인성은 편인과 정인으로 나뉜다. 나는 상관1, 식신2, 편관 1, 정재 3이다. 정재는 선비이고 학자의 마음이라고 한다. 정재의 키워드는 정도를 걷지만, 인간적으로 쪼잔하다이다. 예전에 와이프의 부탁으로 개명을 하기 위해 철학관을 찾아갔더니, 그분은 너무나 답답하다는 듯, 내가 고지식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아마도 정재가 셋이나 있었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듯. 실제로 고지식한 편이다. 넉살이나 사기를 칠 수 있는 재능이 아예 없다. 속이 훤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나는 정재가 가진 단점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십신 이외에 또 십이운성이 있다. 십이운성은 십신과 결합되어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진다고 한다. , , , 장생, 목욕, 관대, 건록, 제왕, , , , 가 그것이다. 나는 제왕이 두 개다. 제왕은 십이운성 중 가장 센 힘이라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엔 정재와 제왕이 만나서 인지 가장 유순한 편이라고 한다. 또한 나는 상관과 사가 만난다. 이런 경우 글을 쓰는 작가나 뭔가를 세공하는 장인, 수술을 주로 하는 집도의 등과 같이 정밀한 분야의 직업을 갖는 것이 좋다고 한다. 명리학으로 보건대, 나는 외과의사가 되었어야만 했다. 그런데 왜 수학을 못했을까. 이런 된장.

 

여기에 또 신살과 귀인이 있다. 대표적인 신살엔 역마, 도화, 괴강, 양인, 백호, 화개, 귀문관, 공망, 삼재등이, 귀인 가운데는 천을귀인, 천덕귀인, 월덕귀인, 문창귀인, 월공, 암록, 천의성 등이 있다.

 

삼재만 살펴보면 나는 해년생으로 들삼재, 묵삼재, 날삼재의 3년이 모두 힘들다고 한다. 작년이 날삼재였다. 무지 힘들었다. 올 초까지 힘들었다. 삼재 끝이다. 음핫핫.

 

귀인으로 나는 천을귀인, 천덕귀인, 문창귀인이 있다. 문창귀인은 인문학적인 귀인으로 종이를 가지고 하는 모든 행위에 재능이 있다고 한다. 지식욕이 있긴 하지만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외에 건강용신, 행운용신, 대운에 대한 설명은 한 두 번 본다고 이해하기엔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점쟁이는 나보고 한국 영화에 획을 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나는 한국영화에 점 하나 찍지 못했다. 대운은 이미 들어와 있고 삼재가 끝났다. ‘대로라면 올해부터 나는 바닥을 찍고 올라설 것이다. ‘역시 그러해야하지 않을까. 

 

을 안다는 것은 명대로 살기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을 거슬러 삶을 운용하기 위해서이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각자에게 부족한 점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게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이 책과 더불어 좌파 명리학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각자가 셀프로 자신의 을 확인해 보는 건 어떨지. ‘을 안다면 을 개척할 수 있으므로.


밑줄 친 문장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이 고정되거나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천변만화하는 우주적 속성의 한 부분으로, 인간의 근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변치 않고 말해주는 학문이다.

 

20세기 한국 명리학의 태두 중 한 사람인 도계 박재완은 인간의 길흉화복은 환혼동각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환은 사람으로 태어났는가의 여부를 말하고, 혼은 조상의 환경이며, 동은 태어난 나라와 시대이고, 각은 바로 그 사람의 자유의지의 깨달음이다.

 

명리학은 무엇인가? ‘운명(運命)’이라는 말에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운용한다, 운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은 주어진 요소들을 가리킨다. ‘을 합친 말이 바로 운명이고,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각자 자기만의 소명을 갖고 태어난다. 이것이 명이다. 그 명을 키우고 발현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체의 몫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의 삶이 같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연해자평>을 거쳐 청나라 시대를 지나며 <적천수><궁통보감>의 두 개의 틀을 바탕으로 명리학은 다양한 이론의 확산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

 

19세기와 20세기를 지나며, 일본과 중국에서는 아베 다이장과 웨이첸리라는 명리학계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한국에도 20세기 들어 세 명의 위대한 명리학자가 존재했다.....첫 번째 분은 명리학의 자존심 자강 이석영 선생이고, 두 번째는 도계 박재완 선생, 마지막은 가장 영민하고 천재적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 불리는 제산 박재현 선생이다.

 

판에는 이판과 사판이 있다. 이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어떤 현상을 인간적인 직관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다. 사판은 현실적인,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고려해서, 형이하학적인 경험론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적천수>에는 다음과 같은 음미할 만한 구절이 있다.

 

오양종기불종세 오음종세무정의

 

다섯 개의 양은 기를 따르되 세력을 쫓지 않고, 다섯 개의 음은 정과 의리 없이 세력을 쫓는다. ”

 

한마디로 양은 명분이고 음은 실리라는 이야기이며, 부드러움은 능히 굳셈을 제어할 수 있지만 굳셈은 부드러움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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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2016-05-24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리학에 관해 영화를 만들어보심은 ... ^^

시이소오 2016-05-24 13:39   좋아요 2 | URL
굿 아이디어시네용 ^^

오매불망 2016-05-29 16:0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관상이라는 영화도 흥행했잖아요^^

시이소오 2016-05-29 16:08   좋아요 0 | URL
명리를 써양겠네요^^

건조기후 2016-05-24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버지와 엄청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사주팔자에 관성이 아예 없더라고요. 소름 ; 엄청 부자는 못 되어도 평생 의식주 걱정은 안 하고 산다는데 정말 돌아보니 어찌나 근근히 잘도 살아왔는지 ㅎㅎㅎㅎㅎ 다른 책도 더 보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명리학이라는 게 꼭 누구 팔자를 맞추고 안 맞추고 이런 거 보다 인간을 분석하는 틀이 얼마나 체계적인지 그게 정말 흥미롭고 매력있는 거 같아요.

시이소오 2016-05-24 14:22   좋아요 2 | URL
평생 의식주 걱정 안하시다니 부럽습니당
저자도명리학은점치는게 아니라고 누누이 말씀하시죠
건조기후님 말씀대로
명리학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학문 같아욤 ^^

인다라의구슬 2016-05-24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헌 샘 책을 읽고 나서 여러 사람 사주를 받아 풀이해봤는데 역시 책 한 권으로는 한계가 ;;; ^^ 적용해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명리에 대한 관점은 많이 변한 것 같아요 ^^

시이소오 2016-05-24 18:17   좋아요 1 | URL
저도 책 구입해서 지인들 사주 풀이로연습을 해봐야겠어요 ^^

2016-05-24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5-24 19:10   좋아요 0 | URL
조선시대였다면 백정의 사주로군요ㅋ 침은 제동생과 아버지가 놓신답니다^^

2016-05-24 1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5-24 19:27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저도 금천지에요~~
^^ ㅋ

룰루라떼 2016-05-26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만에 북플 들어왔더니,
좋은 글들이 넘치네요^^
읽어보고 싶은 책들은
왜일케나 많은지~ㅠ
그니까
명리학(사주 등)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기에 요 책이
무난할까요?

시이소오 2016-05-26 14:32   좋아요 2 | URL
넵. 저도 완전 문외한이거든요.
편집 을 꼼꼼히 잘 한듯 싶네요 ^^

룰루라떼 2016-05-26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머낫~시이소오님...
완전 전문가 이신줄 알았어요^^ㅋ
바쁘실텐데,
넘 감사합니다^^
시이소오님의 박학하심에
다시한번 놀라며...

시이소오 2016-05-26 14:38   좋아요 2 | URL
책ㅇㅔ 씌여있어 그런거지
제가 박학한건 아니죠~~

다락방 2018-01-29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명리학 공부를 해볼까 하고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시이소오님. 이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후훗.

땡투땡투

시이소오 2018-01-29 17:20   좋아요 0 | URL
ㅋ 이책 추천이요. 저도 명리학 공부를 다시 해볼까요? 명대로라면 잘 살고 있어야하는데 어디서 어긋난것인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