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273호)에 실은 인문분야 전문가리뷰를 옮겨놓는다. 시몬느 코르프-소스의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해피스토리, 2010)를 다루면서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한길사, 2000)의 내용을 곁들였다. 원고를 펑크낸 지난 5월 초에 나왔으면 더 '시의성'이 있을 뻔했다. 하지만 그땐 영화 <하녀> 얘기로 서두를 떼진 못했겠다... 

기획회의(10. 06. 05) 아버지의 역사

“장모님 질문은 제가 합니다. 제 애라고 하던데요. 이봐요. 당신 딸이 낳아야만 내 애인 것 같습니까?”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 재벌 사위 훈(이정재)이 장모에게 던지는 말이다. 말 그대로 ‘훈훈한’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온다. 비록 아내의 ‘빤스나 빠는’ 여자가 가진 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애라면 다른 사람들이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침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부드러운 남자로 묘사되지만, 장모를 면박하는 그의 대사는 그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가부장적 권위의식 또한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경우엔 근육질 몸매가 뿜어내는 남성적 권위가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권위’다.   



아버지란 무엇일까. 보통은 잊고 지내지만,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밤에 자기 전에 뜬금없이 “아빠는 왜 아빠야?”라고 물어올 때가 있다. “아빠니까 아빠지.”라고 대충 얼버무리는데, 막상 진지하게 “왜 아빠일까?”를 따져보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니 제목부터 눈길을 끈,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시몬느 코르프-소스의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를 손에 든 건 뭔가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에서였다. ‘찬사’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아버지란 존재가 혹 ‘부정적인 환각’이 아닌가란 질문부터 던진다. 프랑스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듯한데,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널리 퍼져 있지만 그건 과학적 기초가 결여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나는 이런 호들갑스러운 견해들에 반대한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입장이다. 사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같은 노래가 아빠들을 힘나게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아버지의 위상과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뜻도 된다. 대략 IMF 이후라고 봐야 하나? 그 무렵 해서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이렇다.  

“오늘날 우리는 부성의 과거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지만 새로운 모델을 찾아내지는 못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부성은 재구성되고 있는 제도이다. 이것은 현재의 아버지들이 직면해야 하는 도전이다.”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먼저 왜 아버지들이 ‘기능부전의 존재’가 되었는가를 살펴보는데, ‘부성의 과거 모델’이 어떤 것이었나를 알려면 역시나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인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가 요긴하다. 부제가 ‘아버지에 관한 라캉의 세 가지 견해’인만큼 다소 딱딱한 저작이긴 하지만, ‘아버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책이다.  

쥘리앵에 따르면, 먼저 아버지는 ‘아이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다. 원래 아버지로 불린 것은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지배자, 즉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즉 아버지의 일차적인 의미는 ‘정치적․종교적 아버지’였으며, 가족적 의미의 아버지는 그로부터 파생된 개념이다. 말하자면 정치적․종교적 지배자라는 것이 아버지가 갖는 권위의 기원이겠다. 이런 경우엔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아버지임’에 대한 이러한 정의에서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 즉 자녀를 살리거나 죽일 수 있고 벌하거나 가둘 수 있는 권리, 그들의 결혼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들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아버지’는 18세기에 커다란 전환을 맞는다. 루이 16세의 처형은 그러한 전환을 말해주는 사회적 증상이었다. 말 그대로 ‘부친살해’였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낳은 결과는 두 가지다. 첫째, 정치․종교․가족의 영역 모두를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적용되던 아버지의 권위가 가족에 대한 권리로 축소되었다. 이제 아버지의 권리는 한 여자를 데려와 그녀를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남자의 권리일 뿐이다. 둘째, 절대왕정이 쇠퇴하면서 정치적 절대주의 및 ‘가정의 왕권’이 배척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만을 말하던 시기는 지나가고, ‘아이의 권리’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의 행복과 이익, 안락함을 위해 점점 더 많은, 그리고 세분화된 권리를 가지며 이로써 ‘아버지임’의 새로운 정의가 생겨난다. 곧, 아버지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 즉 단지 삶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아이를 문화세계로 편입시킴으로써 어른들의 사회로 통합될 수 있는 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의 아버지가 19세기 도시에 거주하는 부르주아 핵가족 속에 뿌리를 내렸다. 이제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직접 말을 걸고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아이의 권리’로서의 아버지는 몰락하기 쉬운 아버지라는 점이다. 그때의 아버지란 어린아이에게 이익과 행복, 안락함을 제공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아버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쥘리앵은 아버지의 역할이 점점 약화되는 요인으로 두 가지를 덧붙인다. 첫째는 시민사회가 어린아이의 복지와 관련하여 아이와 아버지 사이에 끼어든다는 점이고, 둘째는 민법상 어머니의 권리가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정이 아버지의 사회적 몰락을 더 촉진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남은 건 정자 제공자로서의 생물학적 아버지뿐이다.  

이런 식으로 쥘리앵이 ‘아버지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간추려준다면, 코르프-소스는 50년대에서부터 특히 70년대에 생겨난 변화에 주목한다. 양성평등, 동성애 운동, 감성적 결합에 입각한 부부, 자유로운 합의에 따른 공동보조를 취하는 탈제도화된 가족 등이 이 시기에 등장한 변화의 양상이다. 게다가 생물학적 부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면서 전통적인 모델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됐다. 전통적으로 어머니는 확실한 사람(Mama's baby)인 반면에 아버지는 항상 불확실한 사람(Papa's maybe)이었다. 모성은 물질적인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부성은 가설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DNA를 통한 친부확인검사가 가능해진 시대다. 아버지가 아니라는 생물학적 증거는 자연스레 법적인 부성을 제거하게끔 된 것이다. 이렇듯 평가절하된 ‘아버지’를 저자는 어떻게 구제하고자 하는가.

“가부장의 종말은 새로운 아버지의 행동이 광범위하게 등장한 다음 일어난 사회적 현상이다. 그것은 출산, 가계, 교육, 부부의 삶, 남성과 여성의 역할 등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현재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성의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진화라기보다는 진정한 인류학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결론이라면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 애초에 ‘찬사’란 말은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란 뜻이었을까. 

10. 06. 09. 

P.S. '기획회의'의 취지와 무관하게 서평감으로 잘 소개되지 않은 책을 주로 고르는데, 대개는 그럴 만한 이유가 한두 가지씩 있는 책이다.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도 저자명이 앞면에서는 '시몬느 코르프-소스', 저자 소개란에는 '시몬 코르크-소스', 그리고 판권면에는 시몬 코르프-소스'라고 기재돼 있다. 저자명만 세 가지 버전이 있는 셈인데(본문 각주의 '시몬느 코르프 소스'까지 포함하면 네 가지 표기방식이다), 한번이라도 교정을 본 것인지 의문스럽다. 교정을 안 보았다는 쪽에 내기를 걸 수 있는 건 이런 대목도 나오기 때문. 

"클라인의 오이디푸스가 위치하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보다 훨씬 이전의 심리적인 삶이다."(145쪽)

뭔가 빠져 있고, 띄어쓰기도 엉터리다. 이런 기본적인 교정도 안 돼 있다면, "남성은 아기를 분만해줄 수 없다. 그는 수태를 시킬 수는 있지만 나을 수는 없다."(134쪽)에서 '나을 수'는 '낳을 수'가 되어야 한다는 건 감히 지적할 수 없겠다. 과연 더 나은 책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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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미 2010-06-09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본적 교정도 안된 책 읽을 때... 정말 화 나지요... 그나 저나, 임상수의 <하녀>가 보고 싶네요. 여기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봐야 할 듯...

로쟈 2010-06-09 08:49   좋아요 0 | URL
많이 팔리는 책도 아니어서 좀 안타까운 경우죠. 명분과 실리를 둘다 잃게 되는 거니까요...

2010-06-09 0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9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06-0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기도/생식기도 아닌/비뇨기만 남았다.'는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글이에요.

로쟈 2010-06-09 16:16   좋아요 0 | URL
음, 좀 '슬픈' 시네요.^^;

비로그인 2010-06-1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리/의무라는 법적 개념으로 축소된 친자 관계는 슬프네요.DNA로의 환원은 더욱 그렇고요. 저는 서로가 서로에게 다양한 의미로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게 모호하고 때론 이름뿐인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이번주의 가장 주목되는 신간은 우카이 사토시의 <주권의 너머에서>(그린비, 2010)이다. 감기 후유증으로 골골대고 있는 나에게 '헛기운'이라도 불어넣어주는 책이다. 저자는 다소 생소하지만 이미 <반일과 동아시아>(소명출판, 2005)가 소개된 바 있다. 찾아보니 데리다의 <불량배들>, <정신분석의 저항>,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 등을 일어로 옮긴 전력을 갖고 있다. 책소개는 이렇다.    

우카이 사토시는 자크 데리다에게서 배운 학자답게 데리다가 말한 환대의 윤리, 주권론과 폭력론, 테러리즘 비판 등의 정치철학을 이어받아 일본 내의 내셔널리즘적 현실 변화를 비판하기도 하고,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특히 미국의 폭력적인 세계 통치를 비판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와 주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적 논리를 펴 나간다. 이 책은 1995년에서 2006년 사이의 세계 현실과 마주하며 쓴 글이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9·11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기지화, 히노마루·기미가요 법제화 등 점차 우경화하는 일본, 주권 밖으로 배제된 노숙자와 외국인 문제 등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을 재조명하여 국가 간 혹은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차별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범세계적인 정치적 사유를 통해 오늘날 주권 너머, 자본주의 너머를 생각할 수 있는 아젠다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인 저자라는 이유로 덩달에 떠올리게 된 이는 얼마전 <전후 일본의 사상공간>(어문학사, 2010)이 번역된 오사와 마사치. 편저인 <내셔널리즘의 명저 50>(일조각, 2010)도 올해 나왔고, 처음 소개된 건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그린비, 2005)를 통해서였다. 두 사람이 교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흥미로운 생각을 촉발시켜준다는 점에서 같이 묶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주권의 너머에서
우카이 사토시 지음, 신지영 옮김 / 그린비 / 2010년 6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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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과 동아시아
우카이 사토시.천꽝싱.쑨꺼.권혁태 외 지음, 연구공간 수유+너머 번역네트워크 옮김 / 소명출판 / 2005년 12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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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의 사상공간
오사와 마사치 지음, 서동주.권희주.홍윤표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4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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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0년 06월 07일에 저장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오사와 마사치 지음, 송태욱 옮김 / 그린비 / 2005년 8월
14,900원 → 13,41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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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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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이단의 경제학>(시대의창, 2010)을 다루고 있는데, 책은 내가 아니라 편집부에서 고른 것이다. 마땅한 인문사회과학서가 드물게 나오고 있어서 선정에 애를 먹었다. 그런 이유에다 개인적인 피로감이 겹쳐서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한겨레21의 서평은 쉴 예정이다. 재충전을 위해서 다른 일들도 줄여갈 예정이다. 충전이 되긴 되려나...   

한겨레21(10. 06. 14) 개도국 경제에 이단을 허하라 

<이단의 경제학>(시대의창 펴냄)은 저자가 ‘스티글리츠 외’로 표기돼 있지만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를 앞세우고 있지만 공저자 5명은 모두  '정책대화구상'(IPD: Initiative for Policy Dialogue) 회원들이다. IPD는 ‘워싱턴 합의’에 반대해 2000년대 중반 미국 워싱턴에서 출범한 단체로 경제학자, 정치학자, 정책입안자, 시민사회 대표 등으로 이루어진 인적 네트워크라고 한다. 이들이 반대하는 ‘워싱턴 합의’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20년 넘게 전 세계에 강요해온 정책을 말한다. 주로 낮은 인플레이션, 긴축재정, 민영화, 자유화를 강조하며 다른 견해들을 배제한 채 그동안 ‘주류경제학’으로 행세해왔다.   

선진국의 '완전고용'과 개도국의 '경제성장'
<이단의 경제학>은 이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려 한다. 비판의 빌미는 많은 개발도상국, 특히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침체다. 워싱턴 합의가 위세를 떨치던 지난 20년 동안 이 지역의 경제성장은 20세기 들어 최악을 기록했고 세계화와 워싱턴 합의에 대한 환멸을 키웠다. 대안적 이론과 정책의 모색이 필요한 건 당연한데, IPD의 초점은 주로 개발도상국의 거시경제학과 자본시장 자유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 두어진다.  

선진국 위주로 발전해온 거시경제학의 주된 관심사는 인플레이션 억제, 완전고용, 경제활동의 안정화를 위해서 어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써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경제이론상으로도 견해차가 적지 않다. 경제안정과 자본시장 자유화 등에 대해서 보수파(신고전파), 케인스학파, 비정통파의 입장이 각기 다른 것이다. 하지만 IMF를 비롯한 국제 금융기구들은 개발도상국에 ‘워싱턴 합의’에 따른 정책만을 강요했고, 이것이 오히려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경기침체를 가져오는 일이 잦았다. 경제정책의 목표와 상충관계 등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차이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어떤 차이인가?  

선진국에서는 거시경제정책의 초점을 ‘물가안정을 동반하는 완전고용’에 맞추지만 개발도상국의 초점은 경제성장이다. 선진국은 인플레이션 억제에 많은 비중을 둔 정책을 쓰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인플레이션과 성장, 그리고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의 관계가 불확실하다. 사실 산업구조가 다르고 투자환경이 다르며 성장 동력에도 차이가 있는 두 그룹의 국가에 동일한 정책적 처방을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선진국에서는 교육비 지출이 줄면 학급 당 학생 수가 조금 많아지고 교직원 임금 인상률이 낮아지는 정도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아예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 수가 늘어나게 된다. 정책 효과가 그만큼 다르다는 얘기다.  

물론 경제법칙은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재화의 희소성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며 경쟁시장에서 균형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는 법칙들 말이다. 덧붙여, 가장 보편적인 차원에서 경제정책의 목표가 ‘장기적인 사회적 후생을 공평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점에도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정책 또한 달라져야 하니까. 중요한 것은 경제정책의 선택이 순전히 경제학자나 경제 관료들만의 몫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학이 아무리 발전했어도, 경제학자들은 가장 좋은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까지 합의를 보지 못했다.”는 고백을 유의미하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경제정책은 '정치과정'의 일부
따라서 경제정책은 본질적으로 ‘정치과정’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포함하여 IPD가 지향점이 대안적 견해를 설계하고 거시경제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제도 틀에 대한 민주적 토론을 활성화하는 데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안적 정책을 모색하고 제시하는 일은 경제학자들의 책무겠지만, 어떤 정책이든 장단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 그 선택은 정치적 선택이다. 그러니 ‘성장과 안정의 이분법’을 넘기 위해서도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다.  

10.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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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하여 파견된 러시아 조사단이 '소리소문 없이' 귀국했다고 한다. 초계함이 정말로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면 천안함 선원들은 해군이 아니라 '밥통'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인 듯하다. 이래저래 국제적인 웃음거리다. 이왕 조작하려면 제대로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경향신문(10. 06. 07) “러시아, 천안함 조사결과 의문 제기”

지난달 31일 한국을 방문,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조사를 벌인 러시아 전문가팀이 한국의 조사결과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고 홍콩 언론이 보도했다.

홍콩 봉황위성TV는 지난 4일 저녁 뉴스를 통해 천안함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방한한 러시아 전문가팀이 조사를 마치고 귀국했다면서 수행 러시아 기자가 한국 측에 많은 질문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해군전문가와 기자로 구성된 전문가팀은 천안함 침몰 증거에 대한 설명을 들었으며 평택의 해군기지를 방문, 선박 잔해와 어뢰 잔편을 조사했다고 봉황TV는 전했다. 봉황TV에 따르면 러시아 전문가팀은 한국 국방부 대표를 접견한 자리에서 천안함이 두 동강이 났음에도 어뢰 부품이 온전한 이유, ‘1번’ 글씨가 선명히 남아 있는 이유 등을 질문했다. 또 전문가팀은 당시 서해 연안에는 한국군함은 물론 미국의 핵잠수정까지 있었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 잠수정이 굳이 연안 경비와 순찰을 맡고 있는 초계함을 공격 목표로 삼았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그 문제는 북한에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고 봉황TV는 전했다.

한편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한국 정부가 천안함 조사결과를 발표한 직후 러시아 전문가가 “천안함이 만약 어뢰에 의해 침몰됐다면 한국해군은 바로 ‘밥통’(飯桶:바보)”이라고 말했다고 지난 3일 보도했다. 러시아 일간 ‘브즈글랴드’는 지난달 20일 잠수정 전문가이자 러시아 해군 예비역 대령인 미하일 보른스키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천암함은 어뢰 공격이 아닌 탄약폭발에 의해 침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보른스키는 “초계함은 수중음향 탐지시스템으로 주변을 모두 살필 수 있다”며 천안함이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했다면 선상에 있는 사람들은 해군이 아닌 ‘밥통’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베이징 | 조운찬 특파원

10. 06. 07. 

P.S. 기사에서 인용된 러시아 일간 '브즈글랴드'(시선)의 기사는 http://vz.ru/society/2010/5/27/405783.html 참조. '밥통'이라고 번역된 러시아어 단어는 'шляпы'(모자들)이다. 이런 경우엔 '멍청이', '허수아비'나 '보릿자루' 정도의 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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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10-06-07 10:40   좋아요 0 | URL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지난 두 달간 일어난 모든 것은 한국 국민을 관객으로 한 한 편의 연극"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네요("Всё, что происходило последние два с небольшим месяца, являло собой спектакль, причём его зрителями являются почти исключительно южнокорейские граждане. Именно для них разыгрывались все эти драматические сцены, а остальные оказались в зале случайно (ну, или по работе).")

로쟈 2010-06-07 10:42   좋아요 0 | URL
좀 '조잡한' 연극이었죠.--;

꼬마요정 2010-06-07 11:56   좋아요 0 | URL
미국 자자극이라는 말도 있던데, 미국이나 쥐나 감독이나 연출가의 자질은 없나봐요.. 배우들도 엉망이고..

로쟈 2010-06-07 19:42   좋아요 0 | URL
양해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치고나간 건 국방부죠...

무해한모리군 2010-06-07 13:39   좋아요 0 | URL
참 남사스럽습니다 ==

로쟈 2010-06-07 19:41   좋아요 0 | URL
본인들은 모르나 봅니다...

2010-06-07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7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꾸때리다 2010-06-07 15:07   좋아요 0 | URL
진짜 조작이라면 밥통은 바로 가카가 아닐런지. 조작은 조작대로 선거는 선거대로 망했으니

로쟈 2010-06-07 19:40   좋아요 0 | URL
'조야한' 반전이 또 있지 않을까 싶네요...

자꾸때리다 2010-06-07 15:12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의료민영화 안 한다고 약속하고서는 또 밀어붙이려는 기세던데 이 정부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정부인지...

로쟈 2010-06-07 19:40   좋아요 0 | URL
어찌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blanca 2010-06-07 16:11   좋아요 0 | URL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선거 끝나고 나니까 한반도내에서는 절대 전쟁 안일어난다고 하고. 예상을 뒤엎는 법이 없는 작태들에 이제 식상해지려 합니다.

로쟈 2010-06-07 19:39   좋아요 0 | URL
국민들이 속아넘어가지 않은 게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카스피 2010-06-07 19:12   좋아요 0 | URL
ㅎㅎ 만일 정말 천안함 사태가 조작이라면 군 수뇌부와 최고 통수권자는 국민에게 어떤 식으로 사과를 해야 될까요? 무척 기대됩니다^^

로쟈 2010-06-07 19:39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도 4대강과 행정수도는 포기해도 '천안함'만은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는군요. 이게 몇 사람만 책임지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버려서 어떻게든 덮어버리려고 하겠지요. 저도 언제까지 갈는지 궁금합니다...

2010-06-09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10-06-09 17:17   좋아요 0 | URL
곧 러시아조사단의 독자적인 발표가 있을 거라네요...
 

'고등교육은 얼마나 자유로운가'는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궁리, 2008)에 실린 글의 제목이다. 도날도 마세도와의 대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하워드 진이 직접 쓴 글들도 몇 편 재수록돼 있다. 책의 원제는 '하워드 진의 민주주의 교육론' 정도다. '고등교욱은 얼마나 자유로운가'는 <하워드 진 선집(The Zinn Reader)>에 처음 수록됐다고 한다.   

 

교육은 언제나 기존의 부와 권력 분배 체계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127쪽)

아마도 6.2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펼치게 될 교육 또한 어떤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 모르겠다(그런 기대를 가져본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교육 현실에 대해 결코 과장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고등교육도 "여전히 교묘하고 정교한 통제 체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참고로, 진은 엘렌 슈렉커의 <상아탑은 없다: 대학 내부의 매카시즘>을 참고하라고 추천하는데, 찾아보니 슈렉커는 냉전과 매카시즘에 대한 연구서들도 갖고 있다.       

 

어떤 방식의 통제인가?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사상적 다원주의가 고등교육 과정에서 실현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진은 지적하는데, 이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고등교육기관의 기업적 특성을 드러내며 대학 경영자들을 정부 감독관들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매카시즘도 그저 표현의 자유를 공격하는 가장 그악스러운 것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교묘하면서도 더 확실한 방법으로는 교직원 임면 및 계약 기간 갱신을 통제하거나 정치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종신 교수직에 대한 동료 교수들의 동의 절차와 대학 경영진의 승인 절차가 있다. 특히 이들 경영자들은 대학과 행정부, 실업계, 군부라는 미국 사회의 지배 세력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하는 자이다.(132쪽) 

우리식으로 말하면 교수 임용이나 재임용 절차를 통해서 '지배 세력'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수 있다. 사업을 하거나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것보다 대학에서 훨씬 많은 자유를 누린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거기에는 이런 '계약'이 바탕이 돼 있다는 것. 대학교수로서 "직업을 통한 경제적 안정과 어느 정도 자유로운 지적 유희를 수년간 누리는 대신 졸업 후 학생들이 나라에서 허용된 제한된 다원주의에 기꺼이 동참하고 순종하는 시민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제한된 다원주의? 그건 "공화당원이 되어도 좋고 민주당원이 되어도 좋지만 제발, 그 외에는 곤란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제도권 바깥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물론 하워드 진과 같은 진보주의자도 종식 교수직을 받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진은 MIT의 촘스키나 예일대학의 몽고메리 등도 언급한다), 이들은 고등교육을 장악하기는커녕 "치밀한 감시를 받고 있는 소수파"일 뿐이다. 진이 속해 있던 보스턴대학도 마찬가지인데, 천 명이 넘는 교수진 가운데, 진보 성향의 교수는 한 줌도 안되었지만 '체제의 수호자들'은 언제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공산주의자들이 우리 학교에 침투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교육과정을 장악했다", "여성 인권운동가들과 흑인 활동가들이 전통 교육을 말살한다" 등이 그들이 내세우는 히스테리컬한 주장들이다(한국식 버전이 MB정부가 주도하는 교육계와 문화계의 '좌파척결'이겠다).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레이건, 부시, 헬름스 가문을 추종하는 정치권 근본주의자들은 부와 권력의 분배 그리고 시민의 자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싶어한다. 법조계의 근본주의자들이 ㄴ보르크와 렌퀴스트 추종자들은 사회개혁의 법적 가능성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해석하고자 한다. 교육계의 근본주의자들은 고등교육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고유한 토론의 자유에 내재된 힘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공동의 문화', '편향되지 않은 학문', '서구 문명'을 수호한다는 미명 아래 자유를 공격한다.  

우리도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자유를 제한하고 공격하는 일이 그래서 벌어진다. 인용한 대목에서 '헬름스'란 이름이 낯설어 찾아보니 네거티브 선거전술로 유명한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다. 최근 기사에서도 이렇게 언급됐다.

30년 동안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을 지냈던 제시 헬름스는 1984년 민주당 짐 헌트와 노스캐롤라이나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맞붙는다. 헬름스는 주지사를 연임하던 헌트가 위협적인 도전자로 떠오르자 네거티브전을 시작했다. “헌트가 뉴욕 등 ‘좌파 근거지’에서 모금운동을 한다”는 내용의 TV 광고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킹 목사 기념 연방공휴일 제정안을 놓고 “공휴일이 되면 연간 50억∼120억 달러의 비용이 추가될 것”이란 광고로 인종주의 논란을 부추겼다. 비열하다는 비난이 거셌지만, 노스캐롤라이나 백인들은 그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그는 막판까지 헌트를 동성애자, 노동조합의 대장, 사기꾼으로 몰아붙여 초반 두자릿수 격차를 뒤집고 52 대 48로 이겼다.(국민일보)

지난주 선거에서 야당을 친북좌파로 몰고가려고 했던 여당의 선거전략도 헬름스의 교훈을 실천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가 말해주듯이 그런 전략이 언제까지나 먹히는 건 아니다. 여러 차례 포스팅을 통해서 나도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지만, 하워드 진의 결론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강단이 학생들에게 더 넓은 정치적 선택권을 제공하면 그들이 훗날 투표소나 직장에서 이 사회에 대한 모반을 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 중 일부가 바라 마지않는 바로 그 힘을 그들은 두려워한다. 어쩌면 그 학생들이 진보적 성향을 띠거나 성 평등 운동이나 반전운동에 참여할 수도 있고, 나아가 제임스 매디슨이 보수 성향의 헌법을 옹호하며 두려워했던 한층 더 위험스러운 일, 즉 '부의 평등한 분배'를 위해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그런 희망을 품도록 하자.(138쪽)  

'헬름스'란 인명이 궁금해서 원문을 찾았다가 마저 읽게 된 부분인데, 번역문의 첫 문장은 약간 오역됐다('성 평등 운동'은 '인종 평등 혹은 성 평등 운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원문은 "They fear exactly what some of us hope for, that if students are given wider political choices in the classroom than they get in the polling booth or the workplace, they may become social rebels."  

물론 투표소에서나 직장에서도 얼마든지 '반란'은 일어날 수 있지만 그 반란은 제한적이며(투표소에서의 반란은 입후보자들 가운데의 선택으로 제한된다) 진의 요점은 다른데 있다. 다시 옮기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정확히 우리가 희망하는 바이기도 한데, 그것은 학생들이 대학강의실에서 투표소나 직장에서보다 훨씬 더 넓은 정치적 선택의 가능성을 배우게 된다면, 학생들이 사회적 반항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고등교육이 이루어지는 대학 강의실에서 더 넓은 정치적 선택(wider political choices)을 토론하고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그런 희망을 품도록 하자... 

10.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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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6-07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대보다는 제3의 영역을 제시하는 프레임으로 가는 게 여유로운 멋도 있고 품격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과연 동물이나 기계와 동일시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토론하고 사유하는 공공교육 프로그램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택광선생 블로그에 홍상수를 둘러싼 한마당이 벌어졌더군요. 흥미롭게 읽은 홍상수 관련 최신 비평 주소입니다. 로쟈님께서 홍상수 팬이시라고 하여서...어쩌면 벌써 독료이신지도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95431&PAGE_CD=21=21

로쟈 2010-06-07 10:43   좋아요 0 | URL
저보다 부지런하신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