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273호)에 실은 인문분야 전문가리뷰를 옮겨놓는다. 시몬느 코르프-소스의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해피스토리, 2010)를 다루면서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한길사, 2000)의 내용을 곁들였다. 원고를 펑크낸 지난 5월 초에 나왔으면 더 '시의성'이 있을 뻔했다. 하지만 그땐 영화 <하녀> 얘기로 서두를 떼진 못했겠다... 

기획회의(10. 06. 05) 아버지의 역사

“장모님 질문은 제가 합니다. 제 애라고 하던데요. 이봐요. 당신 딸이 낳아야만 내 애인 것 같습니까?”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 재벌 사위 훈(이정재)이 장모에게 던지는 말이다. 말 그대로 ‘훈훈한’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온다. 비록 아내의 ‘빤스나 빠는’ 여자가 가진 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애라면 다른 사람들이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침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부드러운 남자로 묘사되지만, 장모를 면박하는 그의 대사는 그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가부장적 권위의식 또한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경우엔 근육질 몸매가 뿜어내는 남성적 권위가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권위’다.   



아버지란 무엇일까. 보통은 잊고 지내지만,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밤에 자기 전에 뜬금없이 “아빠는 왜 아빠야?”라고 물어올 때가 있다. “아빠니까 아빠지.”라고 대충 얼버무리는데, 막상 진지하게 “왜 아빠일까?”를 따져보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니 제목부터 눈길을 끈,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시몬느 코르프-소스의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를 손에 든 건 뭔가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에서였다. ‘찬사’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아버지란 존재가 혹 ‘부정적인 환각’이 아닌가란 질문부터 던진다. 프랑스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듯한데,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널리 퍼져 있지만 그건 과학적 기초가 결여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나는 이런 호들갑스러운 견해들에 반대한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입장이다. 사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같은 노래가 아빠들을 힘나게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아버지의 위상과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뜻도 된다. 대략 IMF 이후라고 봐야 하나? 그 무렵 해서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이렇다.  

“오늘날 우리는 부성의 과거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지만 새로운 모델을 찾아내지는 못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부성은 재구성되고 있는 제도이다. 이것은 현재의 아버지들이 직면해야 하는 도전이다.” 

저자는 그런 관점에서 먼저 왜 아버지들이 ‘기능부전의 존재’가 되었는가를 살펴보는데, ‘부성의 과거 모델’이 어떤 것이었나를 알려면 역시나 프랑스의 정신분석가인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가 요긴하다. 부제가 ‘아버지에 관한 라캉의 세 가지 견해’인만큼 다소 딱딱한 저작이긴 하지만, ‘아버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책이다.  

쥘리앵에 따르면, 먼저 아버지는 ‘아이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다. 원래 아버지로 불린 것은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지배자, 즉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즉 아버지의 일차적인 의미는 ‘정치적․종교적 아버지’였으며, 가족적 의미의 아버지는 그로부터 파생된 개념이다. 말하자면 정치적․종교적 지배자라는 것이 아버지가 갖는 권위의 기원이겠다. 이런 경우엔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는다. 그리고 ‘아버지임’에 대한 이러한 정의에서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 즉 자녀를 살리거나 죽일 수 있고 벌하거나 가둘 수 있는 권리, 그들의 결혼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들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아버지’는 18세기에 커다란 전환을 맞는다. 루이 16세의 처형은 그러한 전환을 말해주는 사회적 증상이었다. 말 그대로 ‘부친살해’였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낳은 결과는 두 가지다. 첫째, 정치․종교․가족의 영역 모두를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적용되던 아버지의 권위가 가족에 대한 권리로 축소되었다. 이제 아버지의 권리는 한 여자를 데려와 그녀를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남자의 권리일 뿐이다. 둘째, 절대왕정이 쇠퇴하면서 정치적 절대주의 및 ‘가정의 왕권’이 배척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만을 말하던 시기는 지나가고, ‘아이의 권리’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의 행복과 이익, 안락함을 위해 점점 더 많은, 그리고 세분화된 권리를 가지며 이로써 ‘아버지임’의 새로운 정의가 생겨난다. 곧, 아버지는 실제로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 즉 단지 삶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아이를 문화세계로 편입시킴으로써 어른들의 사회로 통합될 수 있는 권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의 아버지가 19세기 도시에 거주하는 부르주아 핵가족 속에 뿌리를 내렸다. 이제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직접 말을 걸고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아이의 권리’로서의 아버지는 몰락하기 쉬운 아버지라는 점이다. 그때의 아버지란 어린아이에게 이익과 행복, 안락함을 제공하는 과제를 수행하는 아버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쥘리앵은 아버지의 역할이 점점 약화되는 요인으로 두 가지를 덧붙인다. 첫째는 시민사회가 어린아이의 복지와 관련하여 아이와 아버지 사이에 끼어든다는 점이고, 둘째는 민법상 어머니의 권리가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정이 아버지의 사회적 몰락을 더 촉진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남은 건 정자 제공자로서의 생물학적 아버지뿐이다.  

이런 식으로 쥘리앵이 ‘아버지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간추려준다면, 코르프-소스는 50년대에서부터 특히 70년대에 생겨난 변화에 주목한다. 양성평등, 동성애 운동, 감성적 결합에 입각한 부부, 자유로운 합의에 따른 공동보조를 취하는 탈제도화된 가족 등이 이 시기에 등장한 변화의 양상이다. 게다가 생물학적 부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면서 전통적인 모델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됐다. 전통적으로 어머니는 확실한 사람(Mama's baby)인 반면에 아버지는 항상 불확실한 사람(Papa's maybe)이었다. 모성은 물질적인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부성은 가설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DNA를 통한 친부확인검사가 가능해진 시대다. 아버지가 아니라는 생물학적 증거는 자연스레 법적인 부성을 제거하게끔 된 것이다. 이렇듯 평가절하된 ‘아버지’를 저자는 어떻게 구제하고자 하는가.

“가부장의 종말은 새로운 아버지의 행동이 광범위하게 등장한 다음 일어난 사회적 현상이다. 그것은 출산, 가계, 교육, 부부의 삶, 남성과 여성의 역할 등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다. 현재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성의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진화라기보다는 진정한 인류학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결론이라면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 애초에 ‘찬사’란 말은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란 뜻이었을까. 

10. 06. 09. 

P.S. '기획회의'의 취지와 무관하게 서평감으로 잘 소개되지 않은 책을 주로 고르는데, 대개는 그럴 만한 이유가 한두 가지씩 있는 책이다.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도 저자명이 앞면에서는 '시몬느 코르프-소스', 저자 소개란에는 '시몬 코르크-소스', 그리고 판권면에는 시몬 코르프-소스'라고 기재돼 있다. 저자명만 세 가지 버전이 있는 셈인데(본문 각주의 '시몬느 코르프 소스'까지 포함하면 네 가지 표기방식이다), 한번이라도 교정을 본 것인지 의문스럽다. 교정을 안 보았다는 쪽에 내기를 걸 수 있는 건 이런 대목도 나오기 때문. 

"클라인의 오이디푸스가 위치하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보다 훨씬 이전의 심리적인 삶이다."(145쪽)

뭔가 빠져 있고, 띄어쓰기도 엉터리다. 이런 기본적인 교정도 안 돼 있다면, "남성은 아기를 분만해줄 수 없다. 그는 수태를 시킬 수는 있지만 나을 수는 없다."(134쪽)에서 '나을 수'는 '낳을 수'가 되어야 한다는 건 감히 지적할 수 없겠다. 과연 더 나은 책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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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미 2010-06-09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본적 교정도 안된 책 읽을 때... 정말 화 나지요... 그나 저나, 임상수의 <하녀>가 보고 싶네요. 여기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봐야 할 듯...

로쟈 2010-06-09 08:49   좋아요 0 | URL
많이 팔리는 책도 아니어서 좀 안타까운 경우죠. 명분과 실리를 둘다 잃게 되는 거니까요...

2010-06-09 0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9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06-0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기도/생식기도 아닌/비뇨기만 남았다.'는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글이에요.

로쟈 2010-06-09 16:16   좋아요 0 | URL
음, 좀 '슬픈' 시네요.^^;

비로그인 2010-06-1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리/의무라는 법적 개념으로 축소된 친자 관계는 슬프네요.DNA로의 환원은 더욱 그렇고요. 저는 서로가 서로에게 다양한 의미로서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게 모호하고 때론 이름뿐인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