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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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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읽겠노라 벼르면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바가지 타놓고 책상에 앉은 밤인데, 사실은 실컷 쓰고 싶은 날 인가보다.

오늘, 아니 어제는 이별했다 믿었던 어떤 과거들이 발목을 잡았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뿌리치는 다른 종류의 사건이 연달아 두 번 일어났다. 두 사건 다 마음 속 상처와 무관하지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눈물이 나지 않고 화가 났다. 책을 읽다 말고 일기장에 왜 때문에 어이가 없고 화가났는지 적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모든 진실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만 보이는 것이며, 나는 그것을 왜 이제서야 쓸 수 있는 것인지.
아니 어쩌자고 난,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종료되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만 겨우겨우 적을 수 있게 된 것이며, 차라리 적지않고 그냥 덮어버려도 누구도 뭐라하지 않을 사건들을 헤집어 파고, 시간내어 곱씹는 지. 그래야만 괜찮아지는 건지.

누군가들이 ‘넌 너무 과거에 매여사는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하나같이 나를 잘 안다는 사람들이 나를 위한답시고 해준 말이었지만 이 밤, 콕콕 찔리는 느낌으로 되살아나는 것으로 보아 그 말은 ‘나를 의심하게 하는 그때의 나에게 해가 되었던 말들’이었지 싶다.

‘과거에 매여있다’라...
여전히 그 혐의를 벗을 수는 없지만, 조금씩 그 과거들이 아주 멀었던 과거에서 꽤 가까운 과거로 당겨지고 있는 느낌.
여전히 비슷한 실수와 잘못들을 반복하긴 하지만, 상처를 인식하는 시간과 아픔을 깨닫는 시점이 조금씩 당겨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오늘의 일기를 적으면서는 조금 안도했다. 그만큼 나 자신에게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무언가들을 예전보다는 빨리 캐치해내고 있다는 것이겠지. 여전히 더딘 편이지만.

과거에 매여있는 미련한 나를 좋아해보려고 한다.
과거와 재빨리 단절하고 냉큼 내딛는 미래만큼 위험한 것도 없거니와,
과거에 산다(?)는 내가 과거를 떠올리며 위로받는 것은 명확히 현재이기도 해서. (그 말을 한참 들을 때는 현재를 긍정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제 와서야 옛날의 일들을 겨우 꺼내서 생각하고 적어내리는 것은
그 시절을 낭만화하기 위함도 마냥 자책하며 진저리 치기 위함도 아닌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해석해 내야만 나는 지금의 삶을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뚜벅뚜벅 살아가보려고.

요즘 내가 공들이도 있는 것은-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 정도다. 열심히해도 별로 지치지 않고 내키면 언제고 그만할 수 있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내가 연마(?)하고 있는 이것들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 데 맞춤한 문장이 생각나서, 이름붙여 보았다.

“삶을 해석하는 능력”
난 그 능력을 키우고 싶은 거였다.

언젠가는 과거가 아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잘 해석할 수 있으면 좋겠다.
혹은 지금처럼 사후에라도 해석하는 것을 주저않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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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2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쟝쟝 2019-06-12 19:55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 안녕하세요, 정말 왜 우리 친구가 아닌거죠? ㅋㅋㅋ !!!!! (저도 이렇게 익숙한데..) ㅋㅋ 먼저 친구 신청 고맙습니다!
 
태도의 말들 - 사소한 것이 언제나 더 중요하다
엄지혜 지음 / 유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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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48시간 법칙을 만들었다. 순간 기분이 상하더라도 일단 참고 본다.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황당한 말을 들어도 우선 좀 참는다. 메일을 쓰다가 전송을 누르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의 이 기분 나쁨을 즉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나은가 따져 본다. 24시간이 지나고도 마음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면, 또 24시간을 참는다.
이틀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때가 많다.”

_
그제 늦은 열 한시경 갑자기 속에서 깊은 빡침이 올라와 매우 정갈한 아무말 대잔치를 적어 발송해보내려다, 문득 이 책에 나온 48시간의 법칙이 생각나서 이틀 뒤에 보내려고 아껴놨었다.
이 책 읽기를 얼마나 다행인지 ㅠ_ㅠ...


하루가 채지나지도 않은 다음날, 자고 일어나자마자 안보내길 잘했다 싶었다. 어차피 내가 화난 건 나만의 사정이고 상대방의 사과를 받고 싶은 것도(진심이 아닐테니까) 화낸다고 뾰족한 방법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졌다거나 마음이 편해지지도 않았지만, 다스리지 못한 분노로 상처주지 않은 건 다행이라도 생각한다.
유용한 구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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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07) 
어느 날, 피해 여학생 중 한 명이 다른 여학생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해자들이 더(?)놀란다. 그녀는 성폭행을 당한 다음 날, 삭발을 하고 단정한 교복 차림으로 등교해 공부에 매진한다.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한다. 가발을 쓰지 않는 한, 삭발한 채 원조 교제 시장에 나갈 수는 없을 테니까. 이 지옥에서, 여성 특히 10대 소녀들의 가치는 섹스 뿐이다. 그러므로 ‘삭발한 계집애는 필요 없다’. 그녀는 그렇게 그들에게 쓸모없는 여자가 됨으로써 살아남는다.
세상이 망했지만, 망한 사회도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그 사회가 원하는 주체가 되려고 한다. 그래야 성원권을 얻으니까. (...) 성폭행을 당하면 인생을 포기하고 그들이 원하는 여자가 되어야 하는가? 고통스럽게도 이 영화의 여학생들은 그 방식을 택한다. 그런데 그 소녀는 삭발이라는 ‘반여성적인’외모로 이렇게 선언한다. “너희들이 나를 망치기 위해 아무리 발악을 해도, 나는 너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이 소녀가 희망을 찾는 방식은 망한 세상의 타자가 되는 것이다. (....)
상처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이기도 하다. 상처를 강조하면 상대방의 권력도 커진다. 그 소녀는 ‘상처받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권력에 저항하고 그들을 비웃는다. “너희들은, 나를 망칠 만큼 대단하지 않아.” ‘우리’는 상처받았음을 강조하는 대신에 저들의 폭력을 폭로해야한다. ‘우리’의 상처가 크고 작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 우리는 지배 집단과의 싸움보다 누가 더 큰 상처를 받았는가를 두고 ‘경쟁’하게 된다. 문제는 ‘그들’이 사는 메커니즘 자체이고 그들의 잘못이지 ‘우리의 약함’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주체이자 타자이다. 물론 이것은 곡예다. 주체가 되는 방식은, 여성이지만 남성의 규범을 따르는 ‘주변부 남성’이 됨으로써 가능하다. 타자되기는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고 낙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성폭력과 성매매라는 제도에 강제당함으로써 성적 타자로 만들어진 상태에서는 ‘반여성’이 되어야 한다. 남자들이 원하지 않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이 영화에서는 삭발, 즉 자원으로서 외모를 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 소녀의 저항방식을 알려준다. 피해자는 여성의 성 역할이다. 이 소녀는 피해자 역할을 거부했다. 




내가 사랑했던 영화에 내가 사랑했던 장면을 내가 왜 좋아했는 지 말로 표현하지 못했었다. “쿠노야ㅜㅜ잘해써.. . 츠다야ㅜㅜ아..안돼..” 당시 내 감상의 전부. 15년 전 소녀였던 나에겐 언어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페미니즘이 없었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작가가 그의 프리즘으로 영화 장면을 해석한 글을 읽었다. 2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텍스트가 지금과 딱 붙어있다. 

15년 동안 잊지 못한 영화 속 장면에 적절한 각주가 생겨 너무 반가웠던 나는 거의 페이지들을 씹어먹을 뻔 했다.

(102)이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관객이 있고,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관객이 있을 것이다” 

맞춤한 언어가 없어 너무 아파 후자의 관객이었던 나, 근 미래에 ‘(두 번은 볼 수 없었던)인생 영화’를 한번 더 보기로 마음먹다. 이젠 소녀도 아니거니와 영화가 폭로하는 고통에 당하지만은 않는 무기를 갖게 되었으므로.

덧, (mp3시절) 릴리슈슈 ost 였던 Glide 귀에 닳도록 들었는 데, 오랜만에 생각나서 멜론 뒤졌으나 찾을 수 없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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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다정한 하루
서늘한여름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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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우를 먹었다.
실컷 먹었다. 맥주도 먹었다.
그렇게
<나에게 다정한 하루>를 보냈다ㅋㅋㅋ

동세대의 멋진 창작자를 발견하면 마구마구 응원하고 싶다. 이번 책 역시 너무 좋았다. 게다가 서밤님이 점점 페미니스트로 변하는 모습도 멋지다. 언제나 공감가는 저자의 고군분투. 그를 응원하는 것은 어찌보면 나를 응원하는 것 같기도 해서 응원하면서 더 힘이 난달까.

“(326)
힘들었던 이야기들만 적어서 기억하면
힘든 날 희망을 찾을 수 없다.
내 인생이 제법 마음에 드는 오늘이 있었다고
잊어버리지 않게 또박또박 적어놔야 한다.
힘든 날 눈을 감고 떠올릴 수 있는 하루를
무너졌을 때 다시 돌아올 어떤 지점을
마음 안에 품고 살아야 한다.
돌아갈 곳을 안다면 조금은 덜 두려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쓴다.
좋은 날은 귀하기 때문에
좋은 날을 만나면 기억해둬야 한다.
그래야 힘든 날에도 다시 돌아갈 곳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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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타임 요가 다녀오는 길, 뻐근한 허벅지와 시장에서 풍기는 황홀한 냄새들. 봉다리 달랑달랑 크고 굵은 예쁜 딸기.

막 갈아낸 원두 냄새, 물을 주면 부풀어오르는 커피가루. 똑똑똑 커피내려오는 소리.

창밖보는 고양이, 고양이를 보는 나, 창밖의 하늘, 하늘을 보는 나. 모처럼의 미세먼지 상태는 보통.

세탁기 돌아가는 소음, 소음을 들으면서 쇼파에 비스듬히 기대 있기. 오늘 읽을 책을 펴놓고 심호흡 한 번, 허리 세워보기. 이내 자세는 무너지겠지만 그래도 시작은 번듯이.

눈으로 읽다가 좋은 구절 발견하기. 밑줄 긋기 그리고 때때로 소리내어 읽기. 이 부분 참 좋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 살펴보기. 이 부분이 왜 좋은지 머물러보기. 하지만 다음 부분이 궁금하므로 마저 읽기로 한다.

읽기, 줄긋기, 커피 마시기, 딴짓하기,
앉아있던 나는 어느 순간 누워있다.
낮잠자면 딱이겠다.zzz
낙원같은 느낌이 들어 두다다 생각나는 구절 꺼내오기.
사진찍기.


오후에는 시장에서 사온 계피로 뱅쇼를 끓여볼 예정이다. 오늘 저녁엔 책 맥이 아니라 뱅맥이 되겠군.

#나의행복포인트 #모처럼의휴식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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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19-03-08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모처럼의 휴식시간을 만끽하고 계시는 군요. .^^
좋은 책도 읽고 계시고 (저도 있는 책인데 아직 못 읽은..;;)
그리고 뱅쇼! 아아니.. 뱅맥!? ㅎㅎ
이번 겨울에 감기걸렸을 때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쟝쟝님 글에 저도 마치 휴식시간인것 같은 느낌이 물씬 ㅎ

쟝쟝 2019-03-08 15:56   좋아요 0 | URL
맥주 안주로 뱅쇼를 마시는 주정뱅이의 하루를 보낼겁니다😬 이 유토피아 책은 쇼님이 추천하셨던거 같은데 완전 좋아요~ 헤헤 얼른 읽어야지!! 어랜만이예요 겟타님^^

단발머리 2019-03-08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광경이에요. 꿀휴식 되세요, 쟝쟝님^^

쟝쟝 2019-03-08 15:56   좋아요 0 | URL
저의 휴식은 택배상자 오픈으로 완전함을 이루었어요..꿀 휴식하겠습니다! 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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