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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다가 영영 못 읽을까봐 - 강연으로 쉽게 시작하는 노벨문학상 읽기
심원섭 외 지음, 한국근대문학관 기획 / 홍시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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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책의 만듬새가 예뻤다.

연보라색도 예쁘지만, 작가들의 일러스트와 인스타그램이 떠올려지는 정성스런 내지 편집.. 빌려봐서 몰랐는 데, 검색해보니 겉싸바리에는 노벨문학상 연보가 디자인 되어 있다고 한다. (센스+정성 돋고요) 무엇보다 넘나 뼈때리는 책의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지. 생각보다 내용도 알차서 읽고나니 교양이 막 쌓인 것 같은 기분.


2. 최진석_ ‘알렉시예비치 목소리 소설’

여전히 소설에 무지몽매한 내가 이 책에 언급된 작품들 중에 완독한 책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데미안>정도. 그래도 좀 읽었다고, 알렉시예비치 편은 특별히 잘읽혔다. 작년에 그녀의 ‘목소리 소설’을 읽으며 어찌나 마음이 복잡했던지 (방금 찾아보니) 당시 알라딘 독후감에 “결론내지 않음을 견디는 연습”을 하겠다고 적어놨었다.

소설을 읽는 내 머릿속은 혼돈의 카오스였는데, 뭔가 그 생각이 왜 떠오르는지도 설명이 안됐었다.🤯 이 책을 읽으니까 좀 정리되는 기분이다. 최진석님이 그 혼란함의 정체를 아주 장황하고 간결하게(?!) 설명해주셨다!!! (ㅠㅠ소설 다 읽고 독후감을 쓰고도 정리못한 부분을, 소설을 정리한 책을 읽어야 정리되는 나의 뇌는 참 나답다🤷🏻‍♀️🤷🏻‍♀️🤷🏻‍♀️)

“(125) 작품을 읽다보면 당혹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가가 인터뷰한 증인들의 상당수는 물론 여성들이에요. 그들이 호소하는 삶의 비극은 전쟁으로 인해 빼앗기고 훼손된 여성의 삶과 권리로부터 연유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박탈당한 여성성이 전통적인 가부장제 하에서 형성된 여성의 이미지에 굉장히 가깝다는 데 있습니다. 증언자들은 여성으로서 ‘상적인’ 삶을 살지 못한 자기들의 일생을 한탄하고 슬퍼하며, 남자들이 일으킨 전쟁을 원망합니다. 그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남자들의 일’이기 때문이에요.”

“(131)그럼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은 어디를 향하는 걸까요? 그녀의 문학이 갖는 진정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도덕인가요, 윤리인가요? 저는 방금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에 나오는 여성 등장인물 들이 도덕적 경계 안에 머무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이 작가의 문학은 단지 우리의 통념에만 복무할 뿐, 별다른 새로운 의미를 갖지 않는 걸까요? 하지만 우리는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에서 모종의 파토스를,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는 것도 분명하지 않습니까? 작가의 진정성이란 게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했는지 캐물을 필요가 있어요. 달리 말해 그녀의 글쓰기가 어떤 진정성을 일깨우고 문학의 윤리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있다면, 내용이 아니라 형식(표현방식)으로부터, 사실의 형식이 아니나 허구의 형식이라는 이중의 시점에서 이야기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147)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에서 여성적인 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이런 유령적인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도덕을 말하지만 도덕을 빠져나가고, 사실을 추종하지만 늘 사실과 배치되거나 반하는 비남성적인 흐름이랄까요. .. 우리가 사실과 동치시키고 싶어하는 실재the real는 손에 잡을 수 있는 현실을 빠져나가 단지 흩뿌려지기만 하는 목소리로 실존하고, 그 목소리는 발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듣기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소리 소설은 본래 허구적일 수 밖에 없고, 그것의 윤리는 병리적일 수 밖에 없는 게죠.”

“(149) 역사에 기입되지 않은 비가시적 실존으로서의 증언들, 그들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들리지만 입증할 수 없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기에 허구적이지요. 건전하고 승리에 찬 도덕이 아니라 우울증적 충동으로만 표현되기에 병리적이라고 할 만해요. 우리가 증인들의 이야기에서 남성의 도덕과 권위, 질서의 각인을 필연적으로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것은 그와 같은 병리성의 일면일 겁니다. 요점은 여성 증언자들의 목소리에 포함된 남성 도덕을 발견해 그들을 힐난하거나 절하시키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여성의 목소리에 실린 남성과 도덕의 파열점, 그 좁은 틈새로부터 흘러나와 이리저리 유동하는 비일관적이고 망가진 목소리를 포착하여 끝까지 듣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유령적 대상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 역시 유령적이라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겠어요? ‘사실의 문학’이 아니라 ‘유령적 글쓰기’로 알렉시예비치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듯 합니다.”


음하하! 기억해 둘 만한 문장들을 가져와 보았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제가 그래서 혼란스러웠던 것이로군요? 책을 읽으면서 가려웠던 부분이 잘 긁힌 느낌이었습니다.
최진석님 그대, 배우신 분.


3. 니논한테 물어봤어?

“(258) 1931년 11월 54세의 헤세는 36세의 젊은 니논과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특이한 점은 성생활을 배제한 결혼생활을 약속했다는 것이지요. 결혼식 후 부인은 이탈리아로 혼자 신혼여행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같이 있으나 따로인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은 평생을 헤세에게 헌신합니다. 그녀는 가사를 도맡고, 책을 읽어주고, 편지를 대신 써주고, 방문객을 통제하면서 거의 부모와 같은 돌봄으로 헤세를 지켜줍니다. 영리하고 이해심 많은 니논의 애정과 그녀 스스로 자처한 봉사를 헤세도 좋아했습니다. 그는 스위스 남쪽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에 침잠하여, 시와 소설을 쓰고 수채화를 그리면서 만년의 안정을 찾습니다.”

얼마 전에 이외수의 (전)부인 인터뷰를 읽었던터라, 절대로 곱게보이지 않았던 문장. 정말로 그녀가 평생 스스로 ‘자처한 봉사’를 행복하게 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이런 이야기(큰 인물 뒤에 현모양처)가 너무 흔해서 싫다. 이런 서사가 당연해지면 ‘엄마가 잘못해서, 부인이 악처여서 내가 성공을 못해’ 류의 대환장 주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여성의 돌봄없이 알아서 혼자서도 잘해내며 대작 쓰는 남성 작가 찾기는 정말 하늘의 별따기로구나. 반면에 몰래 쓰고, 쓰다가 쫓겨나고, 애키우며 쓰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혼자 살며 쓰는 여성 작가는 너무 흔하다.

모든 것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언설대로 문학이 끝났니 어쩌니 한다면, 그건 남자들이 쓴 문학이 끝난 것이라는 생각.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여백으로만 남아있던 돌봄'을 다시 텍스트로 적어 내리는 것이 문학과 (어쩌면)여성들에게 남은 몫 일 것이다. (난 오래오래 살아서 그 적히지 않은 것들을 실컷 읽을것이다!!💪)

저 단락을 읽으면서 작품에 대해서는 찬탄하더라도, 작가에 대해서는 환상을 가지지말자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였다. 자기를 돌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작가들의 곁에서 끝까지 여백이 되어버린 그네들의 돌봄에 대한 나름의 의리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남자 저자들 연보 뒤져서 지 빨래 지가 돌렸는 지, 싱크대 개수대 비우고 나서 남은 음식물 낀거 수세미로 뽀득뽀득 닦았는지 확인해보고ㅋㅋㅋ 아닌 상태에서 삶과 세계를 고뇌하고 있으면 별을 반개씩 깎겠습니다!!!!


4. 제목 good👍

이번 주 책 읽을 시간이 통 안나서, 버스타고 오가는 동안만 독서시간으로 사용했는 데, 제목 탓인가 금새 읽어버렸다. 조근조근 구어체의 강연해주는 느낌의 책들도 대중교통에서 잘 읽히는 것 같다. (점점 대중교통에서 책읽기 마니아가 되어가는 듯)

유튜브로 영화 소개영상 보고 난 후 막상 그 영화는 안보고 다 본 것 처럼 느껴버리는 문화생활 가성비(?)주의자인 나같은 사람에.. 이처럼 책을 소개해주는 책이란... 네, 참 잘읽었고요, 노벨문학상 받은 작품들 덕분에 다 읽었으니.. 다른 책 볼 시간이 늘어났네요. 감사합니다? 🤣
미루다 영영 못 읽을 노벨문학상 작품들을 대강이나마 훑었고 영영 미루게되었으며 (ㅋㅋㅋ) 그래도 오르한 파묵 소설과 에세이, 언제나 읽다 포기했던 <유리알 유희>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끗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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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u 2019-06-07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밌게 읽기좋게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덕분에 이 책에 관심을 가져 봅니다

사소한 오타 : 금새 -> 금세

^^
신나는 하루 보내세요!

공쟝쟝 2019-06-07 09:18   좋아요 0 | URL
앗!! 고맙습니다! 사소한 오타가 아니라 정말로 잘못알고 있었어요 ~ㅋㅋㅋ 금세! 기억하겠습니다 ^_^

붕붕툐툐 2019-06-13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쟝님 페이퍼 읽으니 저도 관심이 확 생기네요~ 읽고 싶은 책에 살포시 담겠습니다:)
 
은유가 된 독자 -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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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구엘은 ‘세계 최고의 독서가’라는 데,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내용의 절반은 이해 못했어.😭)

이 얇은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무척 방대하다는 것에서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책의 구조가 돋보였다. 


1.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을 읽는 ‘독자’라는 큰 메타포(은유)안에서
2. ‘독자’에 붙어온 세가지 메타포-여행자, 은둔자(상아탑), 책벌레-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서양의 고전들을 훑고
3. 고전의 내용과 주인공들을 ‘독자’로 한 번 더 은유해낸다.

이를 테면 망구엘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상아탑에 갇힌 독자’로 비유했는 데 그 내용을 읽다보니 ‘아, 햄릿이 이런 내용이었어??’(원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각하게 되어 버린달까.

“(108) 햄릿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어서가 아니라 학문적 가르침에 잔뜩 얽매여서다. ‘대학의 교리 문답 서를 모두 잊고, 현실의 경험에서 다시 배워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소재에 꽂혀서 영화나 책 등을 보면 그 영화가 나에게 만큼은 다 그 소재 위주로 해석되어 버리는 것 처럼, 이 세계 최고 독서가(!) 망구엘은 그 명성 답게 숱한 책의 내용들을 ‘독서’라는 행위와 ‘(어떤 유형의)독자’라는 키워드로 다 해석해 내버리신다.

어찌보면, 진정한 책 덕후가 집필한 책 속에 나온 책 덕후들의 은유+분류 라고 할 수 있을 듯??😏

*

독자로서의 나는 여행자의 목적을 가지고, 사실은 은둔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 섭취의 내용은 책벌레 유형인 혼종의 형태를 하고 있다. 텔레비전 소리로부터 도망쳐 슬그머니 방문을 잠그는 나에게 어제도 엄마는 “그놈의 책책책~” 하시지만, 가끔은 내가 읽어서 이렇게 세상에 적응을 못하나 싶기도 하지만, 😢

나는 정말인지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읽는다. 좀 더 많이 이해하면 이해되지 않아서 화나는 상황들이 줄어들 거든. 물론 무심코 이해해버려서 나를 해쳐온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않을 권리도 가르쳐 준다. 책은.


“(168) 우리는 ‘독서하는 피조물’이다. 단어를 섭취하고, 단어로 이루어져있으며, 단어가 존재의 수단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단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자아도 확인한다.”

*

어쨌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몽테뉴로 살아보고 싶다. 3층에서 책을 읽다 지치면 2층 침실로 내려와 쉬는 삶이라니. 게다가 3층에는 다섯개의 서가마다 천권의 장서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고 한다.


덧, 사진 설명 - 진짜 책벌레가 나타났다!!.jpg

“(13) 세 번째 메타포는 ‘독자=책벌레‘라는 메타포다. 책벌레라는 개념은 좀목에 속하는 곤충에서 유래하는데, 이 곤충은 종이와 잉크로 구성된 책을 실제로 먹어치우는 벌레로 일찍이 안렉산드리아 시대부터 ˝도서관의 청소부˝로 악명을 날렸다. 책벌레란 독서를 통해 지혜를 얻지 못하고, 마치 좀벌레가 책을 먹어치우듯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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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17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낚였습니다 -

이 책 사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세월의 날카로운 이빨에 짖이겨지는...

우리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네요.

공쟝쟝 2019-04-17 17:41   좋아요 0 | URL
하지만 전 독서량이 미미하여 이 책을 매우 어렵게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습니다 ㅠㅠ 서양 고전문학 책좀 읽으신 분들께는 추천입니다! ㅋㅋ
 
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폴 메이슨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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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끝났다는 데, 포스트의 자본주의에 대한 해설은 두께에 비해서는 거의 없는 편이고.. 주로는 지난 200년 자본주의 역사 다시 되짚어 주시며 여러 좌파 경제학자들의 논의와 (주류경제학이 백안시하는) 노동가치론 가져와서 지금의 기술정보화경제의 잠재력이 신자유주의(자본주의)와 왜 불화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하여 준다. 나름 유의미 한데 나의 지금 궁금증과는 상관없는 책이어따..
스아실 기본소득 내용 기대하고 빌려왔는 데, 마지막에 두페이지 할애하고 있는 것도 반전이고... 어쩐지 제목과 부제에 대단히 낚여버린 듯한.. 그래도 오랜만에 좌파 어쩌고 사회주의자 어쩌고 하는 책 읽으니 고향(?)에 돌아온 듯.. 편하고 또 불편하구나...쩝. 어쨌든 반대만 하지 말고 내부에서 대안 만들자는 말엔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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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에서 살아남기 지혜의 시대
김대식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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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드러누워서 내가 뭘본거냥?!! 

너무 무서운 걸 읽어버렸다냥!!! 🙀



페미니즘에서 기본소득으로 4차 산업혁명으로 대체 종잡을 수 없긴 한데 묘하게 연결이 되는 요즘 나의 내 맘대로 읽기.....
<지혜의시대> 시리즈라 얇고 쉽겠다 후루룩 읽긴 했는데. 급 무서워져서 읽다 던질 뻔 했다.

50년 안에 지적노동도 인공지능이 대신 할거라고???
내가 하는 노동도 대단한 지적 노동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에 실업자(지금도 반백수 상태인데)가 된다는 소리! -> 역시 부동산이 답인가? -> 그러나 부동산은 커녕 동산도 얼마 없잖아!!! -> 그래, 국가가 나를 자르지는 않겠지. 이제라도 공무원 공부를 하자! -> 합격한다는 보장 없음. 그리고 공부 싫음 -> 망했다. 망했네. 나만 망하나? 다 망해라~~! 우하하!🐲🐲

4차 산업혁명이네, 호들갑이 많을 때 이런 저런 정보들을 주워 듣기야 했는데, 현실에서 기술이 이 정도로까지 진도를 빨리 빼고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 딥러닝 알고리즘이 만들어진지는 고작 4~5년이라고 해서 소름이 다 돋았네..

책 제목은 4차산업혁명에서살아남기 인데..살아남는 법 안알려준다.... 우리보다 센 인공지능이 나타나서 ‘결국 문제는 인간이다’하고 인류를 없애.....??? 응??? 지 않으려면 인류는 지금 부터 잘 살아가래. 근데 30년 안에 모든 인류가 잘살아가는 거 그거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 결국...??.. 

!!!!!!!!!!!!!!

여하튼 무서워... 무서워 죽는 줄. ...



* 문장들 *

(56)
알파제로는 보편적인 학습을 하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데이터를 주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인공지능도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데이터를 주지 않아도 기계가 알아서 시뮬레이션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지요. 알파고를 볼 때는 그저 바둑을 잘 두는 기계에 신기했는데, 이제는 인공지능이 자기 멋대로 영역을 넓히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77)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똑똑해지면서 니체말대로 신을 죽였습니다. 인간이 기계에 지능을 준다면, 그리고 기계가 인간보다 똑똑해진다면, 기계는 인간을 어떻게 할까요? 인간이라는 신을 없애버릴지는 않을까요? 우리 앞에는 갈림길이 있는 셈입니다.

(80)
정보기술과 인공지능은 2차 기계혁명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차 기계혁명은 현재진행형이라 언제 완성될지는아무도 모릅니다. 2차 기계혁명이 끝날 시점은 모르지만결과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육체노동뿐 아니라 지적노동까지 기계가 대체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인공지능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요.


(82)
저는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하는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미래 사회에서 인공지능이 전기와 같은 역할을 하리라고 예측하기도 하는데, 이 말은 곧 모든 일에 인공지능이 쓰이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19세기에 전기가 처음 등장하고 당시 사람들은 전기로 무엇을할까 고민했지만 지금 보면 그 고민들은 모두 무의미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전기로 돌리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118)
인공지능도 스마트폰이나 전기와 비슷합니다. 게다가 이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습니다. 인공신경망, 갠, 강화학습 ... 인간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이미 알아버렸지요. 아는 것을 다시 잊기란 모르는 것을 알게되는 일보다 더욱 어렵습니다. 내가 잊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하겠지요. 그러니 지금과 같은 흐름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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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3-24 0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뇌과학자들 중에서도 전 특히 김대식씨의 의견이 싸한~ 느낌을 많이 주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아니고 뭐였더라, 암튼 이 분 책 읽고 저도 며칠간 고민의 연속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흐름을 멈출수 없다는데서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져요. 멈출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와 함께하는 나이를 약간 벗어났다는 안도감^^

공쟝쟝 2019-03-24 14:08   좋아요 0 | URL
역시 뇌과학분야 읽으셨네요. 전 이과(?) 분야의 책은 지식이 너무 없어서 읽어본 책은 이거 한권인데 뭔가 나몰라라 하던 부분이 확 열려버린 느낌. 김대식씨 책 조금더 읽어보려구요 ^.^
 

중학교때 코인노래방에서 즐겨불렀던 노래중 한스밴드의 오락실이 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소절 “🎶오늘의 뉴스, 대낮부터 오락실엔 이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 데~”

문득 의아하다.
왜 경제의 위기는 통상 가장의 위기=아버지의 위기=남성의 위기로 기표화되는 걸까.
하긴 그 시절은 그랬을 수 있겠다 하면서도 뜨악 하게 되는 건 부지런히 쓸고 닦고 또 식구들 밥을 먹이고 가계부를 쓰는 와중에 쌀을 팔 걱정을 하며 시집살이까지 하던 엄마가 떠오르기 때문인가. 왜 엄마의 24시간 노동은 “경제”가 아닌가. 무임금 이라서?


_
“(21) 여성억압과 남성에 대한 종속을 봉건적 관계의 잔재로 보는 맑스주의의 정설에 맞서, 달라 코스타와 제임스는 여성이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인 ˝노동력˝의 생산자이자 재생산자였던 만큼 여성 착취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했다.
달라 코스타의 말에 따르면 임금노동자의 착취, 즉 ˝임금 노예제˝는 여성의 가정 내 무임노동이라는 기둥 위에 세워졌고, 이 무임노동이 임금노예제의 생산성의 비결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이는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기 때문도 아니고, 문화적 기획이 영원히 존속하기 때문도 아니다. 특히 여성의 삶을 지배했던 엄격한 규칙들을 고려하면,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남녀간의 권력차는 특정 사회적생산체제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남녀간의 권력차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생산체제란 노동자의 생산 및 재생산에 들어가는 무임노동의 이익을 보면서도 그것을 사회경제적 활동이나 자본축적의 원천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연자원 또는 개인적 봉사로 신비화하는 체제를 말한다.
달라 코스타와 제임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착취의 뿌리를 성적 분업과 여성의 무임노동에서 찾음으로써 가부장제와 계급의 이분법을 극복할 가능성을 제시했고, 가부장제에 구체적인 역사적내용을 부여했다. 또 그들은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의 역사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재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_

지난 달 하루 15시간 일을 하는 동안 몇일은 엄마가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병어회를 먹었고, 싱싱한 배추쌈을 먹었고, 제철 과일을 먹었고, 함께 옥상에서 빨래를 널었고, 밤에는 대화를 하다 잠들었다. 엄마가 본가로 돌아가고 나는 똑같이 15시간 일을 했고. 커피를 많이 마셨고, 청소기와 세탁기를 열심히 돌렸고, 치킨을 먹거나 라면을 먹고, 빨래를 개우고 너무 지쳐 잠도 안와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다 잠들었다. 매우 피곤했다.
아, 엄마가 필요해. 엄마가 필요했다.

“🎵가끔 아빠도 회사에 가기 싫겠지 엄마 잔소리 바가지 돈타령 숨이 막혀~”
오락실에서 놀던 (철없던) 아버진.. 아마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냈다가 망했을 것이고, 돈타령 하던 엄마는 팔을 걷고 나서서 아마 음식점이건, 청소용역이건 실직한 아버지를 대신해 혹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일터로 나갔을 것이다.

우린 엄마가 필요한 채로 자라나 엄마 처럼은 살 수 없는 딸들이 되었고, 이젠 결혼을 하지 않지.

엄마가 필요하지만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딸들 중 하나 인 나는 <캘리번과마녀>를 읽으며 #임금의가부장제 에 밑줄을 긋는다. 자본주의의 대안을 말하던 남성들이 놓친 이면의 이 텍스트들을 다 읽고 나면, 아마 더 혼란스러워지겠지. 

그러나 명료하지 않은 것들을 견디고 그 혼란을 어느덧 받아들이게 된 지금의 내가 좋다. 무엇이 명료하지 않다는 것은 이면의 여백이 있다는 것. 명료하지 않은 나머지를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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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3-15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이것이 바로 같이읽기의 묘미네요.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걸 느껴도 표현하는 건 다르잖아요. 쟝쟝님 이 글 읽으니 정말이지 크- 소리가 절로 나와요. 명문으로 가득합니다.

공쟝쟝 2019-03-15 22:03   좋아요 0 | URL
덕분에 너뮤 좋은 책 읽고 있어서 고마워요 _!! 크~라니 왓 글쓰기 의욕이 돋습니당😍

단발머리 2019-03-15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너무 좋네요.
엄마-다움에서 가장 멀리 있는 엄마이지만, 그런 제게도 엄마가 필요하고...
그 와중에 저는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못 해서... 아 ㅠㅠ

쟝쟝님 글~~ 좋아요 100개입니다!!

공쟝쟝 2019-03-15 22:05   좋아요 0 | URL
엄마는 존재 자체로 엄마!! 우린 다양한 엄마를 가질 권리가 있고 다양한 엄마가 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두 댓글에 100개 좋아요 누르고 싶어요! 고맙구 행복해요 우리!

블랙겟타 2019-03-16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쟝쟝님 글을 바로 올리셨네요. 그리고 글의 퀄리티가!!
다락방님 말대로 같이읽기의 즐거움이랄까요?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개인마다 관심가는 곳은 조금씩 다르니까 색다르네요.

열심히 필기하시고 밑줄그어가며 읽으시고 계시는 군요 ㅎㅎㅎ
저는 그냥 읽었는데..;;;

‘오락실‘에 그런 가사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우린 엄마가 필요한 채로 자라나 엄마 처럼은 살 수 없는 딸들이 되었고, 이젠 결혼을 하지 않지.˝
이 문장이 읽고난 뒤 진한 여운으로 남네요.
글 잘 읽었어요 ٩(ˊᗜˋ*)و

공쟝쟝 2019-03-16 23:46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서문 개념들이 어려워서 좀 정리하면서 봤어요~. 좀 더 읽어봐야죠 ^.^ 어여 다음책들도 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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