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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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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을 때, 그가 원하는 대로 나를 바꾸고 싶었지. 그래도 포기가 안되는 것들이 있었고, 너 자신을 찾으라고 책들은 말했지. 사랑을 위해서 나를 더 이상은 조절하거나 바꾸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사랑은 끝난 것일까. 사랑이 끝났기 때문에 더는 나를 바꾸고 싶지 않아졌던 것일까. 그것들의 인과관계는 잘 알 수 없지만 나는 종종 생각한다. “(p.148) 사과받고 싶다고. 딱 한번 이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일어난다 해도 나 자신이 변할 일은 없다.

*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 집에서 한 번, 그리고 이 연작 소설집에서 또 한 번.
<우럭한 점>은 총 두 번을 읽었는 데, 읽을 때 마다 같은 부분에서 목이 메인다.
˝(179) 그러니까 말이야, 엄마 있잖아, 단 한번이라도 내게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엄마의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도,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알지만, 나는 엄마를, 당신을, -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뭘? - 정말 미안한데, 아마도 영영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왜 <우럭한 점>이 ‘그’로 시작해 ‘엄마’로 끝나는 지,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돌고 돌아 결국 ‘엄마’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 내가 얼마나 비겁한지도 너무, 잘 알아.

*

읽는 동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이 생겼던, 만감이 교차하는 소설이었으나, 덮은 순간은 그 하고 싶던 많은 말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개빻은 산부인과 의사의 조언에 병원의 자궁모형을 들고튀던 그녀 재희의 모습과, 정규직 전환을 꿈꾸던 비정규직의 쇼맨쉽으로 묻지 않은 자기소개를 자동반사적으로 예의바르게 떠들던 나와, 종종 길바닥에 드러누워 비오기전 우글거리는 질감의 하늘을 덮고 있었다는 규호는 이미지처럼 선명하게 기억에 남겨둘 예정이다.

*


여전히 나는 엉망진창이지만, 그런 나를 견딜 수 있어진 것은 다행이다.

겨우, 
정말인지 겨우.
여기까지. 

왔다.




재희의 말을 들은 의사는 피임과 정결한 삶의 중요성에 대해 20분도 넘게 일장 연설을 했다고 했다. 차트를 넘겨보며 주기적으로 방광염에 걸리는 것도 무분별한 성관계가 원인일 수 있다며 재희의 느슨한 순결 의식과 주색에 경도된 망나니 같은 삶 전반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재희는 벽에 걸린 십자가를 보며, 분노를 꾹꾹 삼키며, 말했다.
-저 같은 애도 있어야 선생님이 먹고 살죠.- P37

그리고 침묵. 당시의 나는 (정규직 전환을 꿈꿨던) 비정규직의 쇼매십을 온몸에 품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그러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나서서 저는 대학생이고, 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요즘 재밌게 본 드라마는 무엇입니다, 취미는 독서이고, 이 수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계속 하나 마나 한 말들을 떠들어댔다. - P84

도대체 뭐가 신선하다는 건지. 박근혜가 옛날 사람인 건 전세계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왜 나이든 꼰대들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만 만나면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백명쯤불러대고, 자신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어젠다를 천개쯤 대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걸까. 알아서 뭐 하게. 알면 뭐가 달라져. 비슷한 것을 알고 있고, 비슷한 생각을 하면 나이 차이가 줄어들기라도 해? 다른 생각을 하면 어쩌게. 역시 애 같은 생각을 하는 군, 내가 살아온 세월이 헛되지 않았군, 여기며 엉망진창이 된 얼굴이며 몸 같은 것들을 자위질해대려고?- P132

그와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삶을 알아갈수록 그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그는 나와 뭔가를 맞출 생각이 없었고, 다만 아무도 없는 칠흑 같은 밤마다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는 어린애인 나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나와 몸을 섞는 일을 즐거워했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나를 바꾸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여겼으나, 불행히도 나는 누군가에 의해 쉽게 바뀌는 성격이 아니었다. - P153

내가 놀부처럼 생기긴 했어도 또 남들이 하자는 대로 곧잘 하거든. 정규 교육과정을 무사히 이수한 한국인이거든. - P221

회사 입장에서도 내 입장에서도 (야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결정이라 할 만했으나 나는 매일 출처 없는 분노감을느꼈으며, 출근을 할 때면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하루를 끝낼 수 있기를 빌었다. - P259

혹시 한국어로 ‘즉페이칭사이‘가 무슨 뜻입니까?
네? 그게 무슨말씀이신지?
호텔밖에서 내내 그런 소리가 들려서요. 시위대가 외치는 말이었습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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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요즘 함께 수업듣는 언니동생들과 막걸리 집에 앉은 시각은 오후 네시 반. 간단하게 마시고 집에 가서 각자의 저녁일정들을 무리 없이 소화하자는 다짐은 서로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순간, 접시에 놓인 편육들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네. 낮부터 술을 아주 진탕 퍼마셨던 고로, 진짜 해가 너무 길었고, 그래서 오래오래 먹었고, 오래 먹다 보니 섞어 마시게 되었으며, 섞다보니 드디어 술이 사람들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이윽고 밤이 되었는데, 이 아줌마들이 집에를 안가. 그래서 나도 안가. 나는 남편도 없으니 더욱 안가. 아, 신난다. 부어라 마셔라의 결과는........ 오늘 수업은 장렬하게 쨌고요... 숙취 때문에 수업 못간 거 대학시절에는 일상이었지만, 다 커서는 너무 오랜만이라서 뿌듯하기까지 하고요.


_

오전 내내 물까지 토하는 숙취에 허덕이다 두통이 사라진 시각은 세시 반. 쌀국수 쌀국수!!!!!! 매운 쌀국수를 반드시 먹어야겠어!!! 🥵몇 주 전부터 눈여겨 봐둔 집 근처의 맛있을 것같은 쌀국수집까지 흐느적거리며 십분을 걸어갔는 데, 세시~네시반은 재료준비중인 시간이래..ㅜㅜ 알콜의 잔해물을 몰아내야 하는 나의 위장은 쌀tothe국수를 견딜수 없이 원하고 있었으므로 다시 반대로 십오분을 더 걸어 지하철 근처의 그저그런 쌀국수집에 안착했다. 어젯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알라딘 택배봉지는 뜯어놓은 나라는 인간. 발에 걸리는 박상영 신간 딱집어 들고 나오길 잘했네, 쌀국수님 만들어지는 동안 읽으려는 데, 두 번째 페이지 세 번 째 줄. “너 아직도 술 그렇게 마시냐..........”

에씨...



_

아아마도 올해들어 가장 꽂힌 작가는 박상영인듯 한데, 그의 소설이 좋은 이유는 역시 맨날 술이나 마시는 등장인물들 때문이다. 그때 문득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쌀국수에 대한 것인데 대체 라면이나 짬뽕따위로 해장을 하던 시절이 기억이 안날 정도로.......... 어쨌든, 쌀국수는 정말로 숙취해소의 완전식품 같은 음식인 것이다. 여러분 술먹고 난 다음날엔 베트남 쌀국수를 먹어보세요. 

일전의 박상영 단편 모음집에서 소라는 취하면 해장(?)빅맥을 먹었는 데, 지금의 소설 속 재희는 진라면을 먹었다고 한다. 신김치에 밥말아서. 스무살 재희에게 쌀국수를 권하고 싶다. 쌀국수는 국물이 맑아 라면보다는 덜 헤비하고 속이 편한 느낌이고, 면이 쌀이니까 어쩐지 건강에도 좋아.... 그런데 특별히 그냥 쌀국수도 좋지만 역시 해장에는 ‘매운 베트남’ 쌀국수를 찾게 되는 것은 한국인 고유의 해장습관? 

_

여튼 쌀국수 한그릇 해치우고 나니, 어제부터 24시간이 딱 지난 네시 반. 드디어. 술.이.깼.다!!! ..........

망했다. 오늘 수업도 안갔고, 어제 저녁에 못한 일도 해야하고 그거랑 상관 없이 오늘 해야할 일도 해야할 테고.... (진짜 코피터진다. 주경야독... 아니 주독야경....).....갑자기 수업에서 숙제도 내줘서 것도 해야하고.... 요가도 가야하는데.... 그러니까 나 왜.. 또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거야?!!!! 제발 나야 열심히 살지 좀 말라고 !!!!!!!!! (울컥) 😂😂 하지만 숙제하려고 이미 컴퓨터도 들고 나왔다. 그 와중에 요가레깅스 입고 나오기까지 했어. 무의식이 한일 치고는 너무 바른 일이라 더 화난다. 🔥🔥 숙취로 잠시 눌러놓은 줄 알았는데, 젠장.. 내안의 개미본능... 🐜🐜 개미는 터벅터벅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숙취해소의 마무리는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였으니까. 난 소중하니까 오늘은 콜드브루로 하겠어....... 🥤꿀꺽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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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마시썽...ㅠㅠ 여윽시 최고야...ㅠㅠ 알콜빠진당... 일하기 싫다. 공부하기 싫다. 숙제하기 싫다. 요가가기 싫다. 실컷 책이나 읽고 싶다. 정신 줄 놓고 싶다. 현재시각 다섯시반, 정신줄 돌아온지 막 한 시간이 지났을 따름이다. 생각해보니 올해 들어선 딱 세 번 밖에 취하지 않았다. 삼십번이 아니라 겨우.. 세번이라니.. 나이들었나보다. 그러니까. 주절주절 쓰고 있는 이 아무말 대잔치의 제목은 #대도시의해장법
은 쌀국수.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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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7-17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도시 사랑법 못지 않은 대도시 해장법이었습니다.
저녁에는 해물짬뽕 먹었는데 매운 베트남 쌀국수를 부르는 밤입니다.
책이랑 쌀국수가 제법 잘 어울립니다. 콜드브루가 샘 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공쟝쟝 2019-07-17 22:10   좋아요 0 | URL
아아, 해물짬뽕... 그또한 제가 애정하는 해장이었으나, 쌀국수가 전면에 등장하며 쓸쓸히 퇴장하셨습니다.

syo 2019-07-17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도시의 사랑법 구매하고 자이툰 파스타 읽고 있는 무지렁이가 선배님을 뵙습니다....

공쟝쟝 2019-07-17 23:39   좋아요 0 | URL
웰컴투상영월드! 자이툰 좋아요, 근데 대도시는 더더 좋아요! ㅠㅠ 중간에 덮을 수가 없어서, 방금 3/4까지 딱 읽고 이제 일할 참입니다..!

syo 2019-07-18 00:12   좋아요 1 | URL
열일하시는 동안 저는 자이툰을 독파하고 얼른 대도시에 진입하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빌어주세요.

단발머리 2019-07-18 09:41   좋아요 1 | URL
쟝쟝님~ 나한테도 웰컴투상영월드 해줘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아직 읽기 전이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19-07-18 11:16   좋아요 0 | URL
쇼님// 오늘 쯤은 넘어오셨습니까? ㅋㅋ 쇼님은 분명 상영자까님을 좋아하실거예요... 80년대 후반생들이 절대 싫어할리가 없는 자까라고 생각합니닼ㅋㅋㅋㅋㅋ

공쟝쟝 2019-07-18 11:20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웰컴투 상영월드 입니다!! 아직도 안넘어오셨단 말입니까? 모 평론가는 캡사이신 폭탄에 치즈를 곁들인 ‘빨간 맛‘이라고 하였는데 저는 진짜 동감입니다. 좀더 제 스타일로 말하자면 김치치즈피자탕수육 같은 혼종의 맛이랍니다. 건강하지 않은 맛있음 ㅋㅋㅋ 웃다가 갑자기 큭 사래걸리는..ㅋㅋㅋ 재밌게 읽고 이야기나눠용!

syo 2019-07-18 11:28   좋아요 1 | URL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80년대 중반생에게도 먹히는군요.... 날 가져요 상영쌤...

단발머리 2019-07-18 11:32   좋아요 1 | URL
날 가져요,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란테님이랑 선약 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19-07-18 12:46   좋아요 0 | URL
안돼요.. 그에게 너무 쉽게 마음주지마요, ㅋㅋㅋ

다락방 2019-07-18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점심은 저도 쌀국수 먹을까봐요. 어제 술마셨으니까.. ㅋㅋㅋㅋㅋ

공쟝쟝 2019-07-18 11:26   좋아요 0 | URL
물로온 쌀국수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해장으로 꼭 한번 드셔보세용~ㅋ 쌀국수해장. 빠지는 순간, 벗어날 수 없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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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에 대해서 예술가에 대해서 파스타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고 할 말도 별로 없지만, 실패에 대해서, 주사에 대해서 그리고 유채영의 <이모션>에 대해서라면 나도 몇가지 할 말들이 있다.

1. 이모션은 노래방에서 최고의 띵곡이라 할 수 있다.

술취해 인사불성이던 제제가 내노래야, 라며 <뱀이다>를 부르고 알바생이 탬버린을 치기 시작할 때, 이 소설 더 읽어야 하나 말아야하나 하던 고민은 눈녹듯 사라졌다. 아아, 난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될 것 같아... 바로 예감은 적중. 아... 뭐야... 이 ‘젊은 작가’... ㅜㅜ 넘 좋챠냐......
제제도 그렇지만 왕샤도 그렇고, 드문드문 소설에서 나오는 선곡들이 어찌나 토착적(?)인지 너무 신나버렸다.
최은영 소설 속 주인공들은 데미언 라이스를 듣고, 박상영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이모션을 부르며 춤춘다. 물론 내 음악앱 스트리밍 횟수는 데미언 라이스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노래방에 간다면? 역시 이모션이지!!! 🎶그 때는 몰랐었어 누굴 사랑하는 법~

“(192-3) 왕샤는 어떤 음악이 나오든 그에 맞는 춤을 출 줄 아는 프로였다. 다음 노래는 유채영의 <이모션>.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댄스곡이었다. 왕샤가 내게 소리쳤다. 왜 이렇게 신나? 유채영은 정말 최고의 아티스트야. 그리고 무선 마이크를 빼앗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었어 누굴 사랑하는 법. 미세먼지 때문에 한 소절을 다 부르기도 전에 금세 목이 아파왔다. 왕샤는 고음을 올리다 조금 울었다.
씨발 왜 다 죽고 난리야.
나도 슬쩍 눈물이 나서, 이참에 신나게 울어나 보자 싶은 마음에 함께 울었다.”

앗, 소설 읽다 나도 울었네? 시발, 왜 다죽고 난리야 하면서.
중학교 때- 한참 교복 치마 줄여입고 거북이 등딱지 같이 가방 짧게 매고 펌프라는 것을 할 때, 노바소닉 “웃기지 마라 제발좀 가라🎵” 쾅쾅 밟아줄 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오락실의 맨 마지막 코스는 거의 반쯤 미쳤었던 코인 노래방. 그 좁아 터진 곳에서 어찌나 실컷 놀았던지. 곡 리스트도 다 기억난다.
오프닝으로 이정현의 ‘와’ 불러주고 ‘런투유’ 부르면서 애들이랑 “바운쓰윗미옙배배”해주고 또 몇곡 부르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모션>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 노래는 무서울 것 없는 중딩의 리비도를 발산하기에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춘 곡이었다. 전주부분에서 테크노 머리 흔들어주고~ 노래 한 소절 부르고~ 너무 쉽게~ 뙇~내맘을 보여줬어~ 박자맞춰 떼창하고, 간주 부분에서 더 신나게 테크노추고~ㅋㅋㅋ 고음 안올라가도 신난다... 게다가 가사 마저 심금을...... 아니, 그런데.. 상영씨 저랑 중학교 친구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매우 시골 출신에, 여자친구들이랑만 놀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진짜 노래방 친구일 리는 없겠지만... 소설 속 선곡들이 다 너무 저희 노래라... (크흠흠)

여담인데, 그때 아마 평생 갈 노래방 다 가고 평생 부를 노래 다 불렀나보다. 이모션 고음 쯤 쩌렁쩌렁 성량으로 승부하던 청소녀(!)는 자라서 노래방 가자고만 하면 술자리에서 도망치는.. 그 흔한 클럽조차 평생 한 번 안가본 모범(?!!!!)삼십대가 되었거든.... 

.. 여튼 노래방 진짜 안좋아하는 데, 유채영 이모션 부르고 싶어져서 갑자기 노래방 가고 싶고- 술먹고는 한번도 이모션을 불러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요즘 술 끊었는 데) 취해야겠다 싶어졌음.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르려면 역시 나의 여수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보고 싶구나. 야야..ㅜㅜ


2. 술취하면 역시 빅맥...

소라를 대표해서 여타의 술취해 비틀거리는 인물들에서 왜 때문에 내 모습이 보이는 것인가. 술에 취할 수록 더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는 분명히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사람이 나였는데, 술자리가 길어질 수록 세상에서 나 자신과, 그런 나와 함께 술먹고 있는 니가 제일 불쌍하다. 그래서 결국은 운다. 엉엉. 인생망했어. 인생망한거 같아 시발~~ 하면서... 그리고 고집을 피우지. 고집의 대상과 집착은 그날 그날 다르다. 그러나 그 고집을 해결 하는 것은 역시.

“(69) 빅맥 세트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소라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맥도날드 있어?
응. 맥도날드 데려다 줄게.”

해장 햄버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읽다가 너무 나인게 너무 싫어서 집어던질 뻔 했다.
상영씨.. 혹시 저랑 술 친구세요? 😰

“(121) 그럴 일은 아니었고, 그려러고 했던 일도 아니었는데 역시나 술이 문제였다. 술이 문제인 것을 알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는 걸 보면 역시나 내가 문제인 거겠지.”

다음 날 후회하는 문장도 어찌나 내 일기 같은지- 작가님을 한번 쯤 만나서 딥톡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같은 별에서 온...거 맞죠...? 라고 적다가 생각해보니 대한민국의 술먹어본 성인이라면 다 한번씩 뱉는 말이라는 것을 자각. 조금 전까지 이루어진 심각한 동일시에서 빠져나오는 중입니다. (슬슬 이제 이 소설과 이별 할 시간)


3. 외롭다고 쉽게 마음주지 말자.

소설은 ‘세상의 작은 점 조차되지 못했던’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의 성장 실패담 모음이다(세라믹은 제외해야하나용??;;). 비슷한 시기 청춘을 통과한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 끝끝내 성장하지 않는 그들을 보며 잠깐 잠깐 울었다. 나 역시 그러하니까.

보통은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야 맞을 것 같은데....
실패로 가득한 청춘을 지나고 나서 난 좀 더 유치해졌다. 어른인데 더 마음이 더 어려진거지 ㅋㅋㅋ

“너무 쉽게 내 맘을 보여줬어. 너무 일찍 내 모든 것을 줬어. 항상 나를 속여왔던 외로움에 또 다시.(유채영의 <이모션> 가사)”

* 청춘을 건너 온 나의 교훈 : 외롭다고 쉽게 마음 내주지 말자.

내가 간절했을 때, 내가 힘들었을 때, 내가 취약한 상태였을 때 - 내가 동아줄처럼 여긴 사람, 생각, 관계, 도움들은 결론적으로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생사 기브&테이크. 받은 게 있으면 결국 값을 치러야 한다.
매번 필요한 만큼을 ‘조금’ 받고 생각보다 많은 값을 치렀던 것 같다.

홀랑 다 빼앗긴 것도 아니고, 받을 때는 간절했기 때문에 손해라고 하기도 그런..;;. 내가 요꼴인 걸 보면, 분명 이득은 없는 장사였다. 그 해프닝들이 차라리 대단한 상처였다면 무슨 이야기라도 됐을 것이다. 내가 매혹된, 의탁한 대상들은 ‘그저 그런’ 나의 ‘투사’였고 내가 그저 그랬기에 적당히 이불킥 한번 하고 말 정도의 후회들로만 남게 되었다.

이제 (더는 청춘이 아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으로 누군가 ‘내미는 손’을 덥썩 잡지 않는다. 재고, 살펴보고 또 곁눈질 해보다가 믿지 않아도 별 상관 없을 때, 그리 대단한 도움이 아닐 때, (혹은 내 쪽에서도 줄 수 있는 것이 있을 때) 간절하지 않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뭐 그럼 그러시던가. 요렇게. 느스은 하게 관계 맺고 적당히 유지하다, 용건이 끝나면 적당히 멀어진다. 그게 안전하다. 더 실패하면 더 상처받으면 이젠 진짜 안될 것 같으니까..

“지금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지 말자. 배탈난다.”
청춘을 다 바쳐(?) 배운 결론이라고 하기엔 너무 당연하기도 하고... 서글픈 교훈이렸다.

세상은 나의 기대 처럼 선량하지 않다.
외롭다고, 취약하다고 너무 쉽게 나를 보여주면 다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15)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무언가를 줄 것 처럼 다가오는 것 (사람/관계/일/투자/사업/기타 등등)들은 절대 경계(!)해야 한다. 

빼먹을 것도 없는 것이 의심만 많아서리...그래서 더 외로워져버렸지만, 차라리 외롭고 말겠어!!!! (아.. 유치해 너무 유치해...)

나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채 외롭고 쓸쓸하게 늙어 죽어가는 것 아닐까? 조금 조바심 날 뻔 했는데.. 소설로라도 유치뽕짝인 동류들을 만난 거 같아서..... 안심되었다. 박상영 작가님이 앞으로도 이런 소설 써줄 테니까. 외롭고 쓸쓸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는 또 안심되겠지. 남은 여생은 그렇게 살아갈테다. 외로운 걸 안심하며...

작가님이 앞으로 너무 큰 성공을 거두지 않길 빈다. 성공한 자들의 자기연민과 실패담을 참으면서 맞장구 쳐 주는 것은 현실에서 (영업용) 만으로도 넘 벅차거든....

이상, 쓰고보니 작가에게 저주를 해버렸네???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박상영 자까, 그대 흥하시오~


(128)
바닥에 잔과 와인을 내려놓고 문에 기대앉았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혁은 꼭 예전의 나 같았다. 상대방에게 내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상대의 아픈 부분을 알게 되는 것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믿는 것.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믿음. 그 순진한 믿음이 거울을 보는 것 처럼 소름끼치게 싫었다. 미안하지만 더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마. 묻지도 말아줘. 넌 그냥 어깨가 넓고 키가 크고 커야할 모든 것들이 적당히 큰 군인에 불과해. 세상의 다른 모든 남자들과 다르지 않은 한 명의 남자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하지 마. 나의 아픈 부분까지 알아내려고 하지 마. 특별해지려고도 하지 마. 그냥 심심하면 만나 섹스를 하고 쓸데없는 얘기나 하는 남자로 남아 있어줘. 부탁이야.

(215)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세상의 아주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 점은 커녕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했다. 인생을 걸고 했던 일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되어버렸다. 칸영화제를 가기는커녕 제대로 된 퀴어 영화를 찍지도 못했고, 현대무용가가 되지도 못했다. 보란듯이 사랑을 하지도 못했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 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영부영 나이만 처먹었다. 동성애자이면서 제대로 동성애를 하지도 못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성애자들로부터 마이크 하나조차 제대로 훔치지 못했다. 이토록 철저한 실패는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우리는 망했다.
망해먹은 채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우리는 웃고 떠들고 술 먹고 섹스하다 죽을 줄이나 아는 동성애자들일 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며, 그러므로 영원히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263)
두 번에 걸친 데뷔조 발탁과 또 거듭되는 탈락이 내게 알려준 진실은 내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이며, 나의 가치를 똑바로 바라봐야지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랬는데, 이상하게도 도톰하고 못생긴 곰곰의 곰손이 내 손위에 포개질 때마다 나는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배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고 믿었던 현실이 실은, 헬륨을 넣은 풍선처럼 이리저리 정처 없이 나부끼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현실은 전혀 정제되어 있거나 아름답지 않으며, 일상에 연습 따위는 없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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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인가 우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는데, 대개의 눈물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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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9-06-13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7월에 박상영 작가 젊은 작가상 받은 작품으로 독서토론모임에서 발제하는데, 박상영 작가님 매니아이시더군요~단순 매니아가 아니라 이렇게 잘 통하시다니 도움을 좀 구해야겠습니다. 후후~

공쟝쟝 2019-06-13 08:47   좋아요 1 | URL
ㅋㅋㅋ 박상영작가님 좋아요 ㅋㅋ 비슷한 시대를 건너온 또래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문장들!!
 
그해, 여름 손님 (반양장)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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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섹시했다. 소설은.. 야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은 건 큰 패착이었다. 보통은 텍스트로 생각하는 데, 이건 이미지화되어 떠올려졌다. 아아, 티모시샬라메여..아미해머여....아름다운 이들이여..😭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신나게 읽다가 (김영하 작가왈, 소설을 펼치는 순간 나는 다른 세계에 가있다고..) 책을 통해 내가 초대된 곳에 머무르기엔 내가 있는 지금 여기는 너무 사적이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덮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버글버글 분주한 서울의 현실로 소환되니 소설 속 지중해 햇살 받으며 수영하는 그들이 더 그리워지더이다.

여하튼 영화로 보고 소설로 보니 영화 장면이 머릿속에서 멋대로 구성+각색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165)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어제 마르지아에게 한 것 처럼 그의 입술로 입술을 가져갔다.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우리 사이를 말끔하게 치워 주는 것 같았다. 나이 차이도 나지 않고 그저 두 남자가 키스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이내 녹아 버렸다. 두 남자가 아니라 그저 두 인간 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에 평등함이 느껴진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저 나이가 더 적고 더 많은 두 사람이 인간 대 인간, 남자 대 남자, 유대인 대 유대인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열망하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의 미묘한 권력. (작가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엘리오가 마르지아의 입술에서는 느끼지 못했을 그 평등한 감각 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멈추어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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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려준 친구는 처음부터 끝까지(연인부터 부모까지) 너무 이상적이어서 그건 현실에 없는 거라서 이 소설이 좋았다고 했다.
난 영화도 그랬지만 역시 엘리오 아버지의 말이 좋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무 빨리 치유되려다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말. 느끼지 않으려다 느끼지 못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권고.

여름 지중해의 햇살에서 낮잠을 자며 슬픔을 슬프려하는 엘리오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슬픔을 참고 고통을 참는 것이 어떤 미학의 원리가 되어버린 이 곳에서는 확실히 어색한 부분-욕망답게 욕망하고 또 이별과도 잘 이별하는 것-이긴 하지만. 참을성이 많게 사회화 된 나는 그래서 영화, 소설 둘 다 정말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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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말마따나 이상적인 소설이었다. 그녀는 몇가지 재밌는 코멘트를 덧붙였는데... 재미없는 나의 사회과학적 언어로 풀어 적자면.. 젠더, 계급, 위계, 편견, 관습에 연연하지 않고 인간대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사랑하고, 비록 한 계절이라도 돈과 시간 연연하지 않고 순간의 감정을 실컷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아름답고 이상적인 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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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고통이 있으면 달래고 불꽃이 있으면 끄지 말고 잔혹하게 대하지 마라. 밤에 잠 못 이루게 하는 자기 안으로의 침잠은 끔찍하지. 타인이 너무 일찍 나를 잊는 것 또한 마찬가지야. 순리를 거슬러 빨리 치유되기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뜯어내기 때문에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 결핍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할 때 줄 것이 별로 없어져 버려. 무엇도 느끼면 안되니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시간 낭비야!”


덧, 돌려주기 전에 책 사진 찍겠다고 찰칵찰칵 했는데 은박지 찍지 말라던 충고 들을 걸 그랬다능... 은박돗자리 좀 너무 했다..ㅋㅋㅋㅋ 뭐 지중해에 별장은 없지만 초여름 맞이 들판에 은박 돗자리 깔고 책읽고 맥주마시고 그러했던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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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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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김밥과 라면이 먹고 싶었다. 라면이야 항상 먹고 싶지만 김밥은 대체 왜 먹고 싶지?했다. 그러다 어제는 대왕 돈까스가 먹고 싶었다. 🐽

희안하게도 썩 맛있지 않은 익숙한 것들이 먹고 싶었다는 것.. 이를 테면 “공장에서 제조된” 듯한 따분한 맛의 소스가 끼얹어져 있는 대왕 돈까스라든가, “들기름 참기름 반반” 발라서 착착썰린 김밥이라든가, “차갑게 식어서 탱탱불은, 그래서 밀가루 냄새가 쌔하게 올라오고 국물의 짠맛이 가신” 라면이라든가.

맛없는 대왕 돈까스의 잔상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이것은 분명 만들어진 식욕이다!’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뭐지뭐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진원지는 읽고 있던 김금희 짧은 소설집이었다.

....소설 속 선미가 포장마차에서 먹던 김밥 + 칼칼한 멸치육수의 오뎅국물, 주용이 좋아하는 불은 라면 등등.... 먹고 싶으니까 먹어야지! 점심으로 분식집 김밥+라면을 시켰다. 생각해보니 꽤 오랫만의 메뉴. 항상 먹는 그맛이지만 얌냠! 🤤

<나는그것에대해아주오랫동안생각해>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사건이 시작되고 해결되기엔 분량이 너무 짧다.) 그래도 착착 감겨 읽히는 까닭은 너무 소소한 이야기이기에 내 이야기 같아서.

돈까스에서 자각한 후 다시 책을 뒤적이니 이 책.. 김밥에 에그머핀, 규카츠, 수프, 돈까스, 햄버그스테이크에 맥도날드버거, 미역국까지 참으로 오만 음식들이 등장한다. ........이 정도면 ‘나는 그 맛에 대해 생각해’로 했어야 하는거 아녀? ㅋㅋ

작가는 머릿말에 “사람의 사사로운 기억을 ‘사사롭지 않게’ 기록해두는 건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그러므로 당신들이 괜찮다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라고 썼다. 끄덕끄덕.

특별하지 않은 사사로운 하루들-맛있지 않은 일상적인 음식들-그닥 예쁠것 없는 주변 사람들-은 서로 딱붙어있어서 셋중 하나를 생각하면 나머지들도 함께 떠오르게 마련이다. 나에겐 만나면 꼭 쏘맥을 말아먹게(?)되는 동네친구와 모기업의 치킨이 먹고 싶을 때 그리운 사람들과 그 치킨에 딸려오던 떡꼬치와 떡꼬치를 함께 주는 최근 뚫은 치킨집과 연관검색어처럼 연동되는 치킨 파트너 동생, 한때는 좋아했던 로제파스타를 쳐다도보기 싫게 만든 어떤 분이 있다.. 하하하ㅎㅎㅎ

일상에서 만난 아무럴 것 없는 일인데 문득문득 머물러 오랫동안 생각하게되는 소재들. 보통은 휘발되어 날아가는 그것들을 김금희는 꺼내서 참 가지런히도 썼다. 그래서 난 소설속 등장음식(?)들이 먹고 싶어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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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날 때면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기보다 마치 밭에서 무 같은 것을 뽑아올리듯 무언가가 자신을 이불 속에서 끄집어낸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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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살롱을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불현듯 추위를 느끼고 혼자임이 실감된다면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따뜻한 것, 아주 따뜻한 것을 먹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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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돈가스는 정말 크기가 쟁반만 했고 아주 진하고 풍미가 강한, 그래서 아마도 공장에서 제조된 제품을 쓰지 않을까 싶은 흥건한 소스가 끼얹어져 있었다. 돈가스를 잘라서 우걱우걱 씹다 보니 그 소스는 지긋지긋하고 막막하고 따분했던, 선명한 분노와 어긋남의 결이 있었던 할아버지와의 동거를 떠올리게 했다.
햄버그스테이크가 있는 테이블에서 맡았던 카레 가루 냄새가 여기서도 나는구나, 그러니까 그런 건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마치 공장의 제조 소스처럼 일관되고 표준화된 추억이구나 생각하면서도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건 어떤 이별에 대한 뒤늦은 실감이자 그리움 같은 것이었고 동시에 미안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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