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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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회 영남일보 책읽기賞 독서감상문 대회에 출제한 글입니다.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인간은 뇌가 있음으로써 문화를 만들고 역사를 기록한다. 무기를 발명해 맹수나 큰 동물들을 사냥하는 것도, 농업을 통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모두 뇌의 덕이다. 자연계를 통틀어 농사를 짓고 산업을 일으킨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실제로 사회성이 높은 생물들은 하나같이 지구상에서 가장 영리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현명한 인류)’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류가 똑똑할지는 몰라도 결코 현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문명을 통해 굶주림, 질병, 폭력 등을 막을 수 있는 보호막을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인간은 희망과 환상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모든 면에서 현재가 과거보다 나아졌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나아질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첫 번째 믿음은 (god)이 존재하며, 이 세계에는 장엄한 신의 계획이 내재하여 있다는 것이었다. 인류는 수천 년간 권위는 신에게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다음은 진화론이다. 진화론의 등장으로 신의 역할이 줄어들었다. 인간은 진화론을 내세워 자신의 우월성을 정당화했다. 진화가 인간이라는 종을 탄생시키기 위해 진행되는 과정이며 인류의 발전은 곧 진보의 역사라고 믿었다. 거의 맨몸으로 짐승을 사냥하며 생활하던 시절에 비한다면 지금의 인간은 엄청난 진보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놀라운 과학 문명의 발달로 편리한 물품과 풍족한 음식에 둘러싸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듯하다. 이 시점에서 인류보다 더 위험한 것이 있는지 한 번은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매우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호모 데우스(Homo Deus)’라는 책의 제목은 매우 도전적이다. 호모 데우스의 등장이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우월한 종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암묵적 두려움의 근원을 표면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작 사피엔스(김영사, 2015)로 전 세계인들로부터 단숨에 주목받은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또 한 번 술술 읽히는 언어로 넓은 오지랖을 과시하고 있다. 농업 혁명부터 과학 혁명까지, 전통적 인본주의에서 기술적 인본주의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어렵거나 심각하지 않게 미래의 총체 상을 손에 잡힐 듯 그려준다.

 

인류는 인본주의와 자유주의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더 이상 신은 필요 없어!’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하라리는 전통적 인본주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지능과 의식이 출현했듯이 인간과 비슷한 알고리즘의 등장으로 자유의지의 의미가 희미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온라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정보를 선택해서 읽고 공유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는 알고리즘 체계 내부에서 제한된 선택만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검색엔진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는 알고리즘의 거대한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거대한 알고리즘의 체계 속에 살고 있으며 현대사회는 알고리즘에 의해 조합되는 사회라 부를 수 있다.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사회에 데이터(data)를 숭배하는 새로운 신흥 종교 데이터 교가 등장한다.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준 혜택을 누린 인간은 더 이상 한계를 갖지 않는 신을 만들려고 한다. 하라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류가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생명공학과 사이보그 기술에 힘입어 신이 된 인간, 호모 데우스는 데이터 교를 만들어 낸다. 하라리는 데이더 교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 인류는 신체적 · 정신적 측면에서 상당한 한계에 직면한다고 전망한다. 데이터 교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면 결국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모두 알고리즘의 결과가 되는 셈이다. 자신의 판단 따윈 사라지고 모든 것을 데이터에 의존하게 된다. 하라리의 전망이 허황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상상임이 틀림없다.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경고하기 위해 방대한 인류사를 책 한 권에 빼곡히 담아냈다. 근성이 느껴지는 그의 자료 수집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호모 데우스를 냉정하게 단 한 줄로 평하고 싶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을 경고하는 하라리의 주장은 새로운 게 아니다. 그리고 우린 이미 알고리즘이 주는 편익에 익숙해졌다. 어떤 언론은 호모 데우스서평 제목을 하라리표 호러 극이라고 썼다. 그 제목을 보면 마치 밀레니엄이 임박한 데 따른 공포감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호들갑 떨던 언론들의 모습이 떠올린다. ‘호러 극은 과장된 표현이다. 데이터 중심의 사회를 경계하는 전망은 빅 데이터의 강점이 주목받던 2013년부터 나왔다. 빅토르 마이어 쇤버거와 케네스 쿠키어 공저의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21세기북스, 2013), 루크 도멜의 만물의 공식(반니, 2014), 한병철의 심리정치(문학과지성사, 2015)만 읽어 봐도 데이터에 의존하는 사회 현상을 경고하는 전망을 확인할 수 있다.

 

진화론적 자본주의(또는 인본주의)’를 중립적으로 바라본 하라리의 입장에 대해 유감스럽다. 진화론적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기원,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적자생존과 거의 유사하다.

    

 

진화론적 자본주의는 갈등은 한탄할 일이 아니라 박수 칠 일이라고 주장한다. 갈등은 자연선택의 원재료로 진화를 추동한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고, 따라서 인간의 경험들이 서로 충돌할 때는 최적자가 다른 모든 이를 누른다. 우월한 인간은 열등한 인간을 억압할 권한이 있다. 우리가 이런 진화 논리를 따른다면 인류는 점점 더 강해지고 점점 더 최적자가 되어 결국에는 초인간을 낳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 350)

 

히틀러와 나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의 극단적 형태를 대표하는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나치즘의 공포 때문에 진화론적 인본주의의 통찰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나치즘은 진화론적 인본주의에 특정 인종차별주의 이론들과 초강력 민족주의 감정이 결합해서 생겨난 산물이었다. 모든 진화론적 인본주의자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며, 인류가 더 진화할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 세력이 반드시 경찰국가와 강제노동수용소의 설치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유발 하라리, 355~356)

    

 

사회진화론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주의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 깔렸다. 그들은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통곡할 정도로 진화론을 왜곡한다. 사회진화론과 진화론적 자본주의는 사람의 권리와 존엄성을 철저히 배제한 자기중심적인 논리이다. 진화론과 비교할 수 없는 조야한 논리일 뿐이다. 이 논리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사회 전반의 시스템까지 자신들의 틀 속에 종속적으로 편입시키려고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심을 폭력과 차별을 통해 표출한다. 모든 진화론적 인본주의자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들의 논리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라리가 잘못 알고 있는지 아니면 번역본이 인쇄되는 과정에서 나온 오식인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의 소설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연도를 잘못 적었다.

 

19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나톨 프랑스와 아름답고 재능 있는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의 만남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마 실화는 아닐 것이다. 던컨은 당시 인기 있던 우생학 운동을 거론하며 내 외모와 당신의 머리를 물려받은 아이가 태어난다고 상상해봐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이렇게 대꾸했다. “좋지요. 하지만 내 외모와 당신의 머리를 물려받은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82~83)

 

프랑스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해는 19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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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6-27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두꺼운 책을 나도 사서 읽어야할까 말아야할까 조금은 고민했는데 너의 리뷰를 보니 그 고민 한 방에 해결됐다. 고마워!

그런데 너의 리뷰는 점점 편집증에 가까운 것 같아.이 꼼꼼함이란...! 덕분에 나야 좋지.ㅋㅋ

cyrus 2017-06-27 19:37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빌린 책은 더 꼼꼼하게 읽어요. 대충 읽거나 다 못 읽고 책을 반납하면 다시 읽을 일이 없거든요.. ^^;;

alummii 2017-06-27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꼼꼼함 좀 보소... !!^^전 언제쯤 이런 리뷰를 쓸 수있을까요 부럽부럽

cyrus 2017-06-27 19:37   좋아요 0 | URL
저 말고도 리뷰를 열심히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

꼬마요정 2017-06-27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책 샀단 말이에요ㅜㅜ

cyrus 2017-06-27 19:41   좋아요 1 | URL
소장 가치가 높은 책입니다. 반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라서 반박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람강기 2017-06-27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저도 절반정도 읽었는데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 중입니다. 그래도 다 읽어는 봐야겠습니다..

cyrus 2017-06-28 08:29   좋아요 0 | URL
책의 중간 부분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힘들었어요. 책의 핵심 내용이 챕터 1과 마지막 챕터에 있어서 읽다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한 적 있어요. ^^;;

2017-06-27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28 08:31   좋아요 1 | URL
《총균쇠》는 몇 년동안 책장에 꽂혀 있는 책입니다. 여러 번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완독을 달성하지 못한 책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6-27 2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피엔스>를 읽으시고 제국주의를 중립적으로 쓴 하라리에 대해 비판하셨던 거 기억납니다.
저도 하라리 책 읽을 때마다 중립성 그 점이 불편했는데, 그게 바로 하라리 강점 아닌가 생각됩니다. ^^

cyrus 2017-06-28 08: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제가 하라리의 관점을 비판한 것은 그가 틀렸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죠. ^^

목나무 2017-06-2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cyrus님 리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냉큼 데려오려고 했지만 다른 책들 데려오다보니 이 책 보류중이었는데...
음음~~~ 계속 보류 상태인 걸로...ㅋㅋ


cyrus 2017-06-28 17:36   좋아요 0 | URL
읽을 만한 책입니다. 저는 <호모 데우스>를 하라리의 대표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

나비종 2017-07-01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터에 의해서든 미래에 나타날 그 어떤 것에 의해서든 인간은 결국 인간이 만든 무언가에 의해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호모‘와 ‘데우스‘가 결합된 단어가 책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이겠군요. 이렇게 오만해지다 어디까지 갈런지. . 스스로 그러한 ‘자연‘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할텐데 말이죠.

이사도라 던컨 관련 일화의 대상은 버나드 쇼였던 것 같은데요^^;

cyrus 2017-07-01 15:07   좋아요 0 | URL
인간의 자만심이 지나치면 파멸을 초래하게 됩니다. <호모 데우스>를 읽으면서 바벨 탑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인간은 신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듣고 싶어서 탑을 세웠지만, 사실은 신이 되기 위해서 탑을 만들었던 거죠. 버나드 쇼와 던컨이 엮이는(?) 일화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습니다. 버나드 쇼 대신에 아인슈타인이 등장하는 일화도 있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님(약칭 곰발’)의 글 선동과 증언 사이에 비회원 계정으로 남긴 댓글 3개가 달렸습니다. 몇 분 후에 댓글 작성자는 자신이 쓴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다행히 삭제되기 전에 3개의 댓글 모두 확인했습니다. 자신이 쓴 (악성) 댓글을 직접 삭제해놓고선 모른 척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어요. 그런 사람들이 후안무치한 자세로 나올까 봐 문제 있는 댓글은 무조건 사진으로 찍어 저장해놓습니다. 제가 인용한 문장은 곰발님의 글에 달린 댓글 내용입니다. 토씨 하나 안 빼놓고 그대로 썼습니다.

    

 

정리하죠. 이 세상이 이 꼬라진 건 남성의 잘못을 아무리, ~무리 높게 봐도 52% 이하라고 봅니다. , 여성들 잘못이 최소 48% 이상이라는 거지요. 물론, 수천만을 평균낸 거니 최대 4% 차이가 나는 거라면 적은 차이는 아니지요.” (첫 번째 댓글, 2017년 6월 15일 1331분 작성)

 

 

댓글 작성자는 남성의 잘못은 52% 이하’, ‘여성의 잘못은 48% 이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저분이 들고 나온 수치의 출처는 무엇일까요? 해당 수치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주장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치 결과가 편향적입니다. 수치 결과를 그대로 해석하면 여성이 잘못한 일의 비중이 남성이 잘못한 일의 비중보다 높다는 의미가 됩니다. ‘52% 이하라고 하면, 최대 수가 ‘52%’입니다. 반면 ‘48% 이상48을 포함한 최대 수를 의미합니다. 이러면 수치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여성의 잘못한 일의 비중을 ‘48%’로 볼 수 있고, 52보다 더 높게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치 결과가 부정확한 정보라고 생각했습니다.

    

 

“p.s. 어쩌면, 님은 한국 남성을 비판하는척 한국 여성의 안타까운 현실을 위로하는 듯 제스쳐를 취하지만 그 기저에는 남성 우월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닌가란 의심이 든다는 얘길 수도 있겠네요. (첫 번째 댓글, 여기서 말하는 '님'은 곰발님을 지칭한 명칭)

 

 

제가 어느 분의 글에 페미니즘에 대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분이 저 보고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제 내면에는 남성 우월주의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제 의견에 남성 중심적 가치관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유의하겠습니다.

 

 

메갈들이 잠재적 가해자란 개념을 만들어 낸 머리로, 왜 잠재적 이타자란 개념은 못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성들의 가정폭력은 분명 급속이 줄어들어 왔습니다. 한국 남성이 선한존재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겁니까?? 여성의 경제력 향상이 핵심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성들의 인식전환이지요.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은 쓰레기로 보는 문화를 정착시킨 게 이게 가장 중요하지요.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더라도 타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른 남자라면 우선 배제해버리는 문화가 전반적으로 자리 잡혔기 때문에 웬만큼 인생 막사는 남성 아니라면 여성에게 손을 대는 건 상상하기 힘든 문화가 됐지요.” (두 번째 댓글, 2017년 6월 15일 1338분 작성)

    

 

남성들의 가정폭력이 급속히 줄어들었다고요? 정말 그럴까요?

 

 

 

 

기사 전문 :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455546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는 가정폭력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가 남편을 학대하는 가정폭력 건수도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전체 가정폭력 피해자 중 아내가 절반을 넘습니다.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배우고 전달받은 생각과 행동 방식 등을 말합니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을 쓰레기로 보는 문화를 정착하는 일에 주도하지 않았습니다.

 

 

 

 

 

 

 

 

 

 

 

 

 

 

 

 

 

 

* 토니 포터 맨박스(한빛비즈, 2016)

 

 

 

저는 남성들의 인식 전환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남성성에 대한 틀에 박힌 편견을 지워야 합니다. 그리고 여성 혐오, 여성 폭력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대부분 남자는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자를 배제하는 동시에 여성을 잘 대해주는 착한 남자로서의 위치를 선점합니다.여성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범죄야. 죗값을 무겁게 받아야 해.” 당연히 남자들은 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만약 자신의 친구가 애인이나 아내를 학대한 사실을 알게 되면 모르는 척할까요, 아니면 경찰에 신고할까요? 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남자들끼리의 동맹은 여성 폭력을 묵인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남성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다른 남성을 배제하는 사고방식이 용인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남성이 폭력을 행사한 남성을 '쓰레기'라고 손가락질하고, 거리를 둔다고 해서 여성 폭력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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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6-15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간 베스트‘이후 페미니즘 물결이 더 활발했는데, 반면 지난 5년간 여성에 대한 폭력은 더 증가했다. ; 는 것이 사실이라면 페미니즘 (운동,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맺었는지, 오히려 역상관관계라면 페미니즘은 남녀차별의 현상으로 존재한다는 결론이 되는군요.

나와같다면 2017-06-15 23:01   좋아요 2 | URL
제 생각은 가정내 폭력이 5년간 5배 증가
했다는 거는, 가정사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내 마누라에게 폭력을 행한게 무슨 문제냐?
라는 인식에서

이제는 가정내 폭력이 범죄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그 범죄가 더 드러나는거는 아닐까요..?

마립간 2017-06-15 23:20   좋아요 1 | URL
질병에 대한 진단률이 높아지면서 유병율이 높아지는 착시 현상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래 고양이라디오 님도 같은 의견을 주셨네요.)

만약 두 분의 의견이 옳다면, ‘가정폭력 5년간 5배 늘었다‘는 선동적인 왜곡된 기사 제목이고, 그 기사에 근거에 주장한 cyrus 님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죠.

cyrus 2017-06-16 09:55   좋아요 1 | URL
여성 폭력이 늘어났다고 해서 페미니즘의 노력이 물거품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성 폭력 증가의 원인을 페미니즘에 대한 역반응(ex. 페미니스트는 여성이 남성을 차별한다)으로 찾는 마립간님의 해석에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여성 폭력은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문제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폭력의 심각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피해자만 두둔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통계 자료를 해석하는 과정에 착시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은 동의합니다. 통계 착시가 부른 결론은 왜곡된 게 맞습니다. 어제 제가 인용한 기사와 이 기사를 통해 내린 결론도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립간 2017-06-19 04:44   좋아요 0 | URL
제 댓글에 오해가 있는 듯하여 답변드립니다.

상관관계는 원인을 수도 있지만,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여성 폭력의 증가를 페미니즘의 역반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언급한 것은 페미니즘이 남녀차별의 반응일 수 있다는 것이죠.

아래 댓글을 보니, 남성이 여성 배우자에 대한 폭행이 신고 건수가 늘은 것이지, 실제로는 늘지 않았다는데 의견이 모아진 것 같은데, cyrus 님은 페미니스트의 노력을 남성 배우자 폭력이 감소했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그대로라고 보시나요?

cyrus 2017-06-19 08:42   좋아요 0 | URL
제가 마립간님이 표현한 ‘남녀차별의 현상(반응)‘을 잘못 이해했군요. 그렇다 보니 남편의 아내 폭행 신고 건수와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의 상관성을 단순하게 해석했습니다.

2017-06-15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6 09:54   좋아요 1 | URL
작년에 어떤 사람이 저한테 댓글로 시비를 걸었어요. 그 사람이 나중에 자기가 쓴 댓글을 삭제하고, 모른척할까 봐 사진으로 캡처했어요. 만약에 캡처하지 않았으면 그 사람의 정체를 몰랐을 거예요. 그 사람, 닉네임을 바꾸고 다른 사람한테는 친한 척 행동하더군요.

고양이라디오 2017-06-15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가정폭력이 늘었다는 기사는 충격이군요. 하지만 자료가 가정폭력 검거 현항이니 과거에는 신고나 검거가 되지 않았던 가정 폭력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에는 가정 폭력을 신고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갈수록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그로인해 가해자들이 처벌받게 되는 건 아닐까요?

나와같다면 2017-06-15 22:41   좋아요 1 | URL
저 오늘 스켑틱 SKEPTC 잔뜩 전시된거 보고 고양이라디오님 생각났어요
근데 그 말을 할 수가 없어서 ㅋ

고양이라디오 2017-06-15 22:54   좋아요 0 | URL
저를 떠올려 주셨다니 감사하네요^^ 나와같다면님도 <스켑틱> 좋아하시나요ㅎ?

나와같다면 2017-06-15 22:57   좋아요 1 | URL
ㅋ 아뇨 스켑틱 잘 알지도 못해요. 댓글에 사진이 안 올라가죠.. 저 오늘 올린 글 사진 봐주실래요?^^

cyrus 2017-06-16 09:59   좋아요 1 | URL
마립간님과 고양이라디오님의 의견을 듣고 보니 통계 수치만으로 어떤 현상이 증가했다고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7-06-15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6 10:00   좋아요 0 | URL
자식이 보는 앞에서 남편 또는 아내를 폭행하는 것은 정말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그건 자식에게도 정신적 상처를 안겨 줍니다.

나와같다면 2017-06-15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팩트체크를 저는 좋아해요.
사회현상에 대한 견해, 세밀한 번역에 대한 의견이라던지..
집요하고 예리하고 섬세한 시선이 매력 있으십니다

cyrus 2017-06-16 10:01   좋아요 1 | URL
제가 예리한 분석을 할 정도의 능력은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집요한 것은 맞습니다. ^^;;

:Dora 2017-06-1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팩트체크성 글을 올리시고 혹여 공격받지나 않으실까 걱정이 드는 건 ... 페미니즘이 사라지는 완전 평등의 그날이 아직도 머나먼 일임을 역설적으로 알게됩니다. 가정폭력은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국한하기보다 폭력이라는 관점에서도 용인되어서는 절대 안 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7-06-16 10:03   좋아요 2 | URL
제가 잘못 해석했거나 제대로 알지 못한 점이 있으면 떳떳이 인정하고, 수정하면 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쓰면 비판 받는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

:Dora 2017-06-16 10:26   좋아요 0 | URL
멋진 글 감사요^^ 계속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다락방 2017-06-16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양이라디오님의 의견과 같은데요.

‘네 잘못이 아니다‘, ‘나쁜 놈은 가해자다‘ 같은 인식이 점차 퍼지면서 신고와 검거가 기존보다 활발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그나저나 인용하신 댓글은 댓글의 의미 자체가 없네요. 저도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하나만 알려드리면 여성의 의무군복무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면 됩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 분 가운데 여성의 군복무, 최소한 공익근무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분은 한 분도 없는게 페미니즘 발전의 가장 큰 장벽이예요] 이런 댓글 받고 어이상실 했는데요. 누가 누구한테 페미니즘 인정 방법을 말하고 있는건지, 페미니스트가 왜 인정을 받아야 하는지... 하아-


갈 길이 진짜 아주 먼 것 같아요.

cyrus 2017-06-16 10:09   좋아요 0 | URL
어제 다락방님이 곰발님의 서재에 달린 댓글을 보셨다면 또 한 번 어이상실 했을 겁니다. 어제 댓글 작성자도 ‘페미니즘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 비슷한 대안을 제시했거든요. 납득이 되지 않았고, 논리 비약이 심했습니다. 그 분의 논조가 ‘페미니즘이 잘못했으니, 페미니즘이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이렇게 해라’ 식이었습니다.

나는달걀 2017-06-16 10:51   좋아요 0 | URL
여성군복무가 도입된다해도 그분은 달라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뭔가 다른 공격 이유를 찾겠죠. 역시 갈길은 멉니다 ㅎㅎ

다락방 2017-06-16 11:14   좋아요 0 | URL
네, 별로 달라질 거란 생각은 안들어요. 한숨만 나요. 갈 길이 너무 멀어요 ㅜㅜ

곰곰생각하는발 2017-06-16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11 ㅎㅎㅎㅎㅎㅎㅎ
이야, 사이러스 님의 수집력에 감탄을 보냅니다.
사실은 댓글이 5개 정도 되었습니다. 혼자 흥분해서 막 횡설수설하다가
나중에는 자삭하는 걸로.. ( 나중에 한줄짜리 댓글 하나 남겼길래 불쌍해서 제가 고것은 삭제했습니다. )

cyrus 2017-06-16 10:58   좋아요 1 | URL
원래 계획은 댓글 작성자의 의견을 반박하려고 사진을 찍어둔 것이었습니다. 댓글 2개도 봤습니다. 하나는 곰발님의 댓글이었고, 또 하나는 문제의 댓글 작성자가 ‘조한일보’라는 닉네임으로 단 것이었죠. 댓글을 처음부터 끝가지 읽어봤는데, 급하게 쓴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블랙겟타 2017-06-16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성들의 인식 전환, 저도 공감하는 바 입니다.
저도 이쪽에 관심이 많지만 ‘착한 남자‘로 선점하기 위함인지 진짜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건지 제 자신에게 의문이 있을때도 있습니다.
아직 제 안에 내재되어있는 편견이 있거나 알게모르게 ˝동맹˝을 용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저 조차도 조금 더 노력해야겠어요.

cyrus 2017-06-16 10:54   좋아요 2 | URL
저도 그래요. 마음이 혼란스럽지만, 내 생각 속에 남아있는 편견을 끄집어내려면 성차별, 여성 혐오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내 의견이 비판 받으면 수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전에 저지른 착오를 또 다시 반복할까 봐 걱정됩니다.

이하라 2017-06-17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내학대의 고발율이 높아진건 아마도 페미니즘이 확장하면서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왔기에 그런 것 같네요, 오히려 남편학대,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은 숨겨진 채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cyrus 2017-06-18 12:1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가정폭력, 특히 아내 학대의 고발율과 검거율이 높아진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페미니즘 운동의 노력을 꼽고 싶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편의 아내 학대만 가지고 문제 삼지 않습니다.

마립간 2017-06-19 04:21   좋아요 0 | URL
≪이웃집 살인마≫를 포함한 몇 권에 책에 의하면 여성 배우자에 의한 배우자 폭행 및 학대는 남성 배우자에 의한 폭행 학대보다 신고 건수가 훨씬 낮다고 합니다.

또한 남성의 강간 피해 사례 역시 여성의 강간 피해 사례보다 신고 건수가 훨씬 낮다고 합니다. (이 경우에도 대부분의 가해자는 남성입니다.)
 
서민적 정치 -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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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 먹자!” 아기가 징징대고 떼를 쓰다가도 과자 하나만 주면 만사 오케이다. 정치를 잘 모르는 어른들도 까까를 참 좋아한다. 까까는 과자가 아니다. 어른들의 까까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을 까는 행위를 의미한다.나는 깔 거야. 빨갱이 정치인을 깔 거야.” 박사모는 까까를 엄청 좋아한다. 그들은 ‘좌파 까기 인형이다. 좌파 까기 인형은 진보 정치인들을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여 빨갱이딱지를 붙인다. 박사모의 집단행동은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인형의 모습과 같다. 여전히 수인번호 503’을 잊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다. 정치가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변질될수록 까까를 찾는 어른들이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정치 잘 모릅니다. 까는 것만 잘할 뿐이죠.” (5)

 

서민적 정치의 머리말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이 말은 서민적 정치의 저자 서민 교수가 밝힌 솔직한 고백이다. 이 사회에 정치에 무지한 사람들이 엄청 많다. 나도 그렇다. 정치뿐만 아니라 정치인도 모른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내버려 두면 무식(無識)으로 직결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치가 뭔지 전혀 모르고 정치인을 까기만 한다. 정치인을 까면 정치 무식자 소리를 듣지 않는다. 정치를 더 모를수록 여론 주도층의 분위기에 쉽게 빠져든다. 내 주변 사람들이 공통으로 한 명의 정치인을 까기 시작하면, 눈치껏 따라 한다. 정치인을 까는 것을 정치적 식견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정치를 몰라서 근거도 없이 정치인을 까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권력을 올바르게 감시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공정한 감시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야구에서도 정치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망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누가 감시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관중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판의 관중, 즉 유권자들은 야구경기의 관중들과 같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직 승패만이 중요하다 보니 자기 팀이 부정한 방법을 쓰고, 그들과 결탁한 심판이 눈감아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7~8)

 

정치판은 정치인들만 짜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국민이 내 손으로 권력을 선택해서 바꿀 수 있어야 민주적 정치가 정착된다. 그러나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은 권력의 들러리로 전락한다. 박사모처럼 일편단심 응원부대가 되기도 한다. 정치는 게임이 아니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숙한 시민의 노력이다.올바른 사회에서는 강자만이 아니라 약자도 번영할 수 있고, 어려운 사회 문제를 만나면 이념을 초월해서 협력할 수 있다. 반면 정치를 게임으로 보는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선거를 자신의 앞날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도박으로 생각한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 생명을 걸고 선거 운동에 임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낙선이란 굴욕적 패배를 의미한다. 그래서 선거 구도에 불리한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반전을 꾀하려고 극언(極言)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대통령 후보는 대선에 이기지 못하면 보수 우파들이 한강에 투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로서 그의 극언은 불쾌하다. 왜 내가 한강에 빠져야 하는가.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야 한다라는 사고방식은 이념 하나로 똘똘 뭉친 집단에서 나타나는 심리이다. 낙선 후보 정치인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한강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정치인의 극언은 그저 웃고 지나갈 말이 아니다. 다음 선거에도 이념 세력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어필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정치인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선거를 국가의 미래가 결정되는 국민의 소중한 선택이 아닌 세력의 운명이 결정되는 게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치를 게임으로 보는 정치인과 지지 세력들은 결과를 인정하지 못한다. 다음 대선에 이기려고 여당을 까기 시작한다. 근거 없는 소문을 동원해서 비난을 일삼고,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탄핵하자는 소리까지 한다. 우리의 정치권은 정치 게임을 원하는 정치꾼에 의해 심각히 오염되었다. 정치꾼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의무는 팽개쳐 놓고 권한만을 행사하기 위하여 아전인수 격으로 행동한다. 본래 염불에는 보다는 잿밥에만 마음이 있으니 인간적인 기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공정한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할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서 교수는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가 진행되는 광장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과거를 반추하는 동시에 뼈아픈 교훈을 확인한다.

 

우리는 촛불집회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촛불로 상징되는 거리의 정치는 우리나라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130)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갔다고 해서 정치 보는 눈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없다.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heim)은 대중이 민주주의 발달에 기여했지만, 유권자인 대중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으로 현실을 오판한다고 지적했다. 무지를 먹고 사는 국민이 무섭다. 이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최악의 결과가 나타나면 책임을 회피한다.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이 높아지면 그들의 마음은 미움과 증오를 넘어 무관심과 냉소로 가득 차게 된다. “정치판이 가장 썩었다며 모든 정치인을 싸잡아 욕한 뒤 정치판과 선거를 외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나이든 기성세대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무관심이 제2의 일베, 박사모를 만들어낸다. 서 교수는 서민적 정치를 하기 위한 제안으로 독서와 토론을 강조한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일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인터넷에서 찾고,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 불행하게도 인터넷에서 정치인을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서민(庶民)’이다. 인터넷에서 불평을 늘어도 세상은 절대로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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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4 10:24   좋아요 0 | URL
비난과 비판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비난은 흑색선전의 논리에 가깝습니다. 비판은 근거가 충분해야하고,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transient-guest 2017-06-14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컨텐츠가 있어야 논쟁도 가능하죠. 그런데 극으로 달리게 되면 사실 좌나 우나 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어야 하죠. 다만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문제를 보면 우로 워낙 기울어진 탓에 논객을 자처하는 수준 낮은 자들이 너무 많았고 이들과 논쟁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오로지 비난하고 욕할 수 밖에 없었던 점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와 토론은 아주 중요해요. 요즘 저희 아버님이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고 세월호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으시면서 조금씩 비전이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영향은 오스기 사가에 자서전을 읽으면서 받으신 것 같지만요.ㅎㅎㅎ 꾸준한 독서와 토론이 중요하다는 예라고 봅니다.

cyrus 2017-06-14 10:30   좋아요 1 | URL
책이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편견과 아집에 둘러싼 사람은 책을 읽어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책을 오독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불리해지는 입장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합니다.

레삭매냐 2017-06-14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다른 책 빌리러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어서 빌렸네요.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정독
하면 바로 다 읽을 수도 있지만 쉬엄
쉬엄 읽고 있답니다.

cyrus 2017-06-14 15:16   좋아요 1 | URL
글의 장르가 정치 칼럼이다 보니 교수님 특유의 유머러스한 면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이전에 나온 책들과 비교하면 글의 분위기가 진지했어요.

yamoo 2017-06-1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을 거 같아요.. 마태우스 님이 전방위적으로 책을 내고 계신 듯합니다..ㅎㅎ

cyrus 2017-06-14 20:06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이 《소설 마태우스》 같은 소설도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생충 문학의 부활을 고대합니다. ^^

자강 2017-06-15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고 진지하게 봤습니다 역시 서민 작가님~

cyrus 2017-06-15 18:47   좋아요 0 | URL
다음 신작은 재미있고, 웃긴 내용이었으면 좋겠어요. ^^;;
 
페미니즘 무엇이 문제인가
캐롤린 라마자노글루 지음 / 문예출판사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무슬림 여성들은 다양한 종류의 스카프를 착용하고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스카프는 국가와 민족에 따라 그 명칭과 모양이 다소 다르다. 크게 히잡(hijab), 질밥(jilbab), 니캅(niqab) 등이 있다. 이 세 가지 스카프는 머리와 얼굴을 가린다. 머리에서 발목까지 가리는 것은 부르카(burka). 이란에서는 차도르(chador)라고 부른다. 무슬림 여성들의 관점에서 그녀들이 히잡을 착용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히잡은 식민지 세력에 반대하는 저항의 상징이다. 특히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많은 여성이 히잡 착용을 선호했고, 무슬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보호하려는 전통적 페미니즘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무슬림 여성은 성적인 유혹을 피하고, 정숙하게 보이도록 얼굴을 가리기 위해 히잡을 착용한다. 이 점에서 히잡 착용은 명예를 중요시하는 이슬람문화에서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방어수단이다.

     

오늘날 이슬람권에서도 여성들의 인권 보호나 사회참여 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히잡을 비롯한 전통의상이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이라 하여 착용하지 않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슬람권에서는 아직도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들이 노출방지를 위해 히잡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 히잡이 여성 억압의 상징이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는 페미니스트의 견해와 문화적 전통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하다.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무슬림 여성이다. 여성의 계층은 히잡의 종류 또는 옷차림 등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전통적인 관습을 따르려는 상류층 무슬림 여성의 반대 여론을 무시하기 어렵다.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는 아직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주민들이 가져온 이슬람 문화 중 우리 사회의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페미니즘이 다문화사회의 여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구 중심의 페미니즘만을 지향해선 안 된다. 인종 및 문화적 순혈주의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으며 협력적 규범, 열린 마음, 인간뿐만 아니라 여성의 존엄성에 대한 인정 등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급진적 페미니즘은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좀 더 급진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 백인 중산층 여성이 주도한 급진적 페미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흑인 페미니즘(Black Feminism)’을 주도한 바버라 스미스(Barbara Smith)는 모든 여성을 포용하지 못한 급진적 페미니즘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녀가 지적한 것은 급진적이지 않은 급진적 페미니즘의 한계를 의미한다.

     

내가 정말로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인종, , 계급, 성적 정체성 모두를 단 한 번에 다루려는 적이 더 급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전에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급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무엇이 문제인가216~217)

     

급진적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바버라 스마스의 입장은 급진적 페미니즘의 내부 모순을 확인한 벨 훅스(Bell Hooks)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벨 훅스는 아프리카의 할례 의식을 아프리카 여성을 억압하는 미개문화로 규정하는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식민지주의의 그늘에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960년대 이후에 등장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여성들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원인에 대해 공통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성해방을 추구하는 방식이 달랐다. 페미니즘, 무엇이 문제인가의 저자 캐롤린 라마자노글루(Caroline Ramazanoglu)는 급진적 페미니즘이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분리(division)’을 해소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분리는 급진적 페미니즘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 보이지 않는 분리를 해소하지 못하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조차 페미니즘을 공감하지 못하게 된다.

     

급진적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면 내부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특권층 여성은 남성 중심의 기득권사회에 안주한다. 그녀들은 페미니즘 운동에 소극적이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자매애는 강하다(Sisterhood is Powerful)”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으나 기득권층의 권력에 익숙해진 일부 여성들은 이 구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남성 권력을 가능하게 해주며 여성을 억압하는 보편적 문제로 바라봤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에는 약점이 있다. 가부장제는 남성 권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부장제에 여성 권력도 포함된다.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이 계급 · 인종 · 문화 등을 기준을 내세워 또 다른 여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다.[1] 그러므로 가부장제를 비판하려면 좀 더 다각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캐롤린 라마자노글루는 가부장제를 단순하게 바라보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해석이 급진적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약화한 원인이라고 말한다.

     

나는 한남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남은 여성을 혐오하고, 페미니스트들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일부 남성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적합하지 않다. 여성 혐오 남성이 한국에만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성 혐오 남성들이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다. 여성 혐오는 한국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어딘가에서 지금도 각종 혐오 범죄가 발생한다. 미국은 심각하다. 매년 유색 인종 여성과 소녀들이 강간당하고, 살해당한다. 유색 인종 여성이 백인 여성보다 더 많이 경찰 공권력에 희생당한다.[2] 현재 미국에서는 인종과 계급을 떠나서 모든 여성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여성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문학동네, 2017) 서평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남성과 연대하는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여성 혐오와 여성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서 모든 한국 남자를 한남이라고 부르면서 등 돌릴 수 없다. “오빠들이 허락한 페미니즘은 필요 없다라고 주장하는 메갈리아들이 있다. 그들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메갈리아를 가짜 페미니스트라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 메갈리아들이 남성의 연대를 환영하는 페미니즘을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와 동등한 의미로 받아들여 비난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여성의 입장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페미니즘 지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페미니즘을 가짜 페미니즘으로 오해하거나 비난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페미니스트가 또 다른 페미니스트를 의심하고, 서로 싸우는 일이 지속한다면 모든 여성이 인정하는 페미니즘으로 발전할 수가 없다.

 

 

 

 

 

 

[1] 부르주아 여성과 노동계급 여성 간의 계급 차이가 극심했던 19세기 영국 사회에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었다. 19세기 영국 사회를 고찰한 필자의 졸문 [“왓슨, 하녀를 해고하지 말게.”]을 참고하면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2] [“여성 행진의 선언 원칙] (ㅍㅍㅅㅅ, 2017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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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06-08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도 페미니즘 책들은 재미가 없습니다. 페미니스트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말년에 결혼을 한 것만 봐도 페미니즘은 여성 내부에서도 많이 문제가 있는 이론인 듯합니다. 드리고 싶은 요점은 페미니스트 이론서들은 드럽게 재미없다는 거에요..--;;

cyrus 2017-06-09 08:11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이론서가 재미없는 건 맞아요. 특히 제3세계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그래요. 그래서 모든 독자들이 페미니즘에 다가설 수 있는 쉬운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이 출판 상황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3세계, 마르크스주의, 이슬람, 에코페미니즘 관련 책들도 나와야 하는데, 급진적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페미니즘의 분리 현상이 심해집니다.

박균호 2017-06-08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초는 아니지만 소위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자들을 극협하는 사람으로서 페미니즘이 들어가는 책들은 무조건 패스합니다...ㅎㅎㅎ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을 남자와 여자와의 투쟁으로 몰고 가고 일방적으로 여자는 피해자다 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더군요.

cyrus 2017-06-09 08:13   좋아요 1 | URL
일부 페미니스트들도 박균호님이 지적한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너무 나쁘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박균호 2017-06-09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17-06-09 08:47   좋아요 1 | URL
균호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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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는 조선시대 도망간 노비와 이를 쫓는 추노꾼의 삶을 다룬 사극 드라마이다. 『추노』의 첫 화가 방영되자마자 시청자들은 주인공 이대길(장혁 분)에게 ‘대길 언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남자를 ‘형’이 아닌 ‘언니’라고 부르다니.『추노』를 안 본 사람은 별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드라마에서 남자들끼리 서로를 ‘언니’라고 부른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가진 남자가 형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장면이 신선하다. 조선 시대 ‘언니’는 절친한 관계에서 쓰인 호칭이다. 그래서 동성의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끼리도 ‘언니’라고 부르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형(兄)’의 순우리말이 ‘언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가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우리 마음속의 성차별이 없어지고 얼마나 화목해질까?[1] 나는 벨 훅스(Bell Hooks)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의 ‘언니’를 호출하고 싶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언니’는 자매로서의 언니가 아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고, 좀 더 가까운 사이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언니’ 호칭을 듣는 대상에 남성이 포함된다. 여기에 착안하여 나는 ‘언니들의 페미니즘’에 남성도 참여할 수 있다는 과감한 생각마저 하게 됐다. 내게 생각할 용기를 불어넣어준 훅스 언니가 고맙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혁명파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제의 뿌리를 완전히 캐내어 버릴 기세로 등장했다. 그들은 ‘자매애는 강력하다(sister is powerful)’라는 문구를 내세워 남성들과 연대한 정치적 투쟁보다 여성들의 자매애를 부각했다. 벨 훅스는 이 메시지가 마음에 들어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했다.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를 남녀 간의 대립갈등과 투쟁의 문제로만 간주하지 않는다. 벨 훅스가 아주 간단하게 정의한 대로 페미니즘이란 남성 자체가 아닌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만들어 낸 오랜 착취와 억압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이를 종식하기 위해 싸우는 운동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페미니스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남성은 계속 늘어만 갔다. 게다가 자매애를 기반을 둔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점점 미미해졌다. 계급권력을 가진 백인 중산층 여성들은 여성 공동체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은 백인 남성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받는 흑인 또는 유색 인종 여성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힘을 약화한 것이다.

 

벨 훅스는 인종 및 계급을 뛰어넘어 모든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남성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제의 억압을 받은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체험을 주고받으며 자매애를 형성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의 대화는 조직적으로 형성된 강력한 목소리다. 그렇다면 남성도 남성 중심 사회를 거부하고, 여성운동의 주체가 되어 힘껏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나는 벨 훅스의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 문제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심지어 가끔 나 자신이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에 부합하는 일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의심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키보드 페미니스트(keyboard feminist)’였다. 인터넷상에서는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게시물을 작성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했지만, 오프라인상에서는 논란이 많은 성차별 문제(예를 들면 군 복무 가산점 제도 부활)를 만나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얼치기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안 좋은 소리를 듣더라도 남성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남성들로부터 냉소적인 반응을 받아도,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라고 주장해도 여성이 겪는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이해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차별주의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의식화 과정’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벨 훅스는 ‘의식화 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의식화 모임에 참석하려면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모임 참석자들은 발언 기회가 주어진다. 그다음에 토론과 논쟁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참석자는 거리낌 없는 대화를 통해 살면서 보지 못했던 성차별 의식, 즉 벨 훅스가 비유한 ‘내면의 적’을 발견하게 된다. 벨 훅스는 대중적인 페미니즘 운동을 만들기 위해 여성들을 조직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식화 모임의 방침이 ‘모두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성도 모집할 수 있다.

 

나는 ‘자매애는 강력하다’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구호는 가부장제의 힘에 억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소극적인 여성들을 동참하게 하는 매력적인 문장이다. 그렇지만, 남성의 참여를 배제한 자매애는 남성을 여성 운동에 동참하는 방향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형의 순우리말 ‘언니’와 ‘언니들의 페미니즘’과의 조화를 시도하고 싶었다. 소년과 남성을 끌어들일 수 있는 페미니즘이라면 자매 형제애(siblinghood)도 강력해질 수 있다. 내 생각, 또는 자매 형제애의 의미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을 거로 확신한다. 물론 자매 형제애도 한계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부 남성은 페미니즘을 ‘성공적인 연애와 결혼을 하기 위한 교양’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가짜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처한 상황과 고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여성운동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다. 여성이 자신의 성차별주의를 직시하지도 바꿔내지도 못한 채 페미니즘 정치의 기치를 내건다면 페미니즘 운동은 끝내 소멸해버릴 것이다. (45쪽)

 

남성 페미니스트의 역할이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남성 내부의 적, 바로 성차별주의 사고와 행동에 스스로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말할 수 있는 적’에 대한 침묵은 페미니즘 운동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여성과 함께 성차별 문제를 공유하고, 경험하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많아져야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가능해진다. 형, 아니 언니들, 함께 합시다! 다음 후손들이 ‘여자 대 남자’ 대결 구도로 싸우지 않도록.

 

 

 

[1]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우리 마음속의 욕심도 없어지고 얼마나 화목해질까.” (진영이 부른 번안곡 ‘모두가 천사라면’ 노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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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16 21:08   좋아요 2 | URL
노예가 노예를 잡아야하는 세상. 실감나지 않지만, 정말 죽을 때까지 노예로 살아야하는 사람들은 사는 게 지옥처럼 느꼈을 겁니다.

stella.K 2017-05-16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 맞어. 추노에서 언니라고 불렀던 기억나.
그 사실이 좀 놀랍긴 하더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금성과 화성의 길이 만큼이나 남성이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요원할 수 있어.
하지만 무조건 거부하지 않고 페미니즘을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

cyrus 2017-05-16 21:12   좋아요 2 | URL
존 그레이의 ‘화성남자 금성여자‘가 이분법적 성차를 강화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남성이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주 당연한 일인데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더 깊이 고민해봐야겠어요. ^^

2017-05-16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16 21:14   좋아요 2 | URL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레디컬 페미니즘의 한계를 명확히 짚어낸 책입니다. ***님이 밝히신 생각들 모두 이 책 속에 있습니다. ^^

AgalmA 2017-05-16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 정체성으로 한 인간의 모든 취향과 판단을 몰아넣고 시합을 하는 듯한 대결이 늘 눈살 찌푸려지는 풍경입니다. 그러니 이해가 더 안 되는 동성애에서는 더 가관...
사회 속 맥락을 읽고 해석하는 훈련은 성 문제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7-05-16 22:23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일수록 성차별이 심해지고, 불필요한 성 대결 양상이 생깁니다.

마립간 2017-05-17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별점을 5개 준 책인데, cyrus 님은 별 4개를 주셨네요.

cyrus 2017-05-17 14:31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도서에 별점 다섯 개는 없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이론에 장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이론이 대세라고 해서 그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을 거고, 또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그 한계를 뛰어넘을 이론을 만듭니다.

니페딘1T 2017-05-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관련해서 남자가 읽어볼 만한 책좀 추천해 주심 안될까요? ㅠㅠ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어봤는데 공감이 잘 안되네요.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이 책은 좀 나을까요?

cyrus 2017-05-27 18:53   좋아요 0 | URL
제일 어려운 일이 책을 상대방에게 추천하는 일입니다. 웬만하면 책을 추천하지 않아요. 그래도 남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페미니즘 책으로 <맨 박스>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권하고 싶어요. 내용이 어렵지 않습니다.

니페딘1T 2017-06-09 10:26   좋아요 0 | URL
오굿!!!! 감사합니다. 페미니즘...다시 도전해 봐야겠네요.

맨박스.... 오오.. 땡깁니다. 남자가 쓴 페미니즘 책이라 ㅎㅎㅎ 개다가 흑인!!! 이야, 땡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