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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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밖에서 놀다가 다쳤으면 병원에 가면 된다. 자녀가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부모는 자녀에게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 무엇인지 가르치면 된다. 이것이 자녀를 위한 부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자녀가 인터넷을 하다 음란물이나 성인 화상채팅앱을 본다면? 불법 유해정보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피해가 늘어나도 대부분 부모는 ‘내 아이는 안 그러겠지.’라는 생각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십대 딸을 둔 저널리스트 페기 오렌스타인은 다르다. 그녀는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평범한 아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성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한 것인 줄 모른다.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의 장본인 중 A군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가해 학생 A군의 부모는 아들이 잘 자랄 거라 믿었다. A군은 부모님이 집에 없는 시간에 거의 음란물을 보면서 지냈다.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친구들은 음란물에서 본 장면을 따라 하고 싶었다. 그들은 여학생을 조용한 장소로 불러내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경찰에 끌려간 뒤에도 A군은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부모는 A군에게 성폭행이 세상에서 나쁜 일이라고 꾸짖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청소년들의 인터넷 음란물 접촉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스마트폰 채팅앱이다. 성인 인증 없이 청소년들도 접속하는 채팅앱은 불법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인터넷 보급률과 소셜 미디어 이용자 수는 급증하고 있다. 십 년 전 청소년들은 컴퓨터로 음란물을 접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아주 손쉽게 음란물을 접한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인이 처음 성생활을 시작하는 연령대는 15세에서 20세 사이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십 대부터 이십 대 여성 70명을 심층 인터뷰하면서 청소년이 경험하는 성문화의 심각성을 확인한다. 미국 십 대 청소년들은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훅업(hook-up) 문화’에 빠져 있고, 스마트폰으로 외설적인 메시지나 음란 사진을 주고 받는 ‘섹스팅(sexting)’을 통해 이성을 만난다. 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많은 십 대 소녀들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핫(Hot) 한’ 면모를 보여주려고 한다. 또래 이성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소녀들은 자신의 외모, 몸무게 등에 지나치게 신경 쓴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외모를 보여주고 확인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와 섹스 코드로 청소년을 사로잡는 대중문화를 십 대 소녀들의 몸을 성적 대상화로 전락하게 만드는 사회적 원인으로 지적한다.

 

미국 청소년들은 임신 위험성이 낮은 오럴 섹스를 선호한다. 그런데 성에 잘못 눈뜬 남학생들은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여학생에게 오럴 섹스를 하자고 제안한다. 여학생은 상대 이성의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찝찝한 첫 경험’을 하게 된다. 삽입이 없는 오럴 섹스가 어째서 ‘첫 경험’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럴 섹스도 ‘성생활’의 일부이며 남녀 모두 만족스러운 성 생활을 하려면 서로 마음이 일치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청소년의 오럴 섹스는 남녀 간의 애정이나 화합과 무관하며 남학생이 주도하는 반강제적 성행위다. 그리고 ‘찝찝한 첫 경험’을 겪은 여학생은 남성이 주도하는 성행위에 수동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섹스’와 ‘성생활’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부모, 특히 아버지들은 아들이 이성 교제를 막 시작했거나 음란물을 본 사실을 알아차리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 아들,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구나. 대견해!”, “너도 야동을 보다니 요 녀석 다 컸구먼.” 이러한 아버지들의 반응에는 ‘남성이 이성을 만나고, 성에 눈을 떠야 어른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욕과 쾌락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반면 딸이 이성 교제를 잘못해서 본의 아니게 임신을 하면 부모는 딸을 꾸짖는다. 여학생을 임신시킨 아들을 둔 부모들은 사건의 책임을 여학생에게 전가한다. 성폭행 피해자가 된 여학생은 주변으로부터 배척당한다. 사람들은 야한 옷을 입거나 남성을 유혹하게끔 대화를 하는 여성의 행동이 성폭행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이러한 잘못된 통념 때문에 성폭행 가해 남학생에 대한 법적 처벌이 미미해지고, 성폭행 피해 여학생은 ‘걸레’, ‘창녀’ 소리를 듣는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부모야말로 바람직한 성행위가 무엇인지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부모는 자녀의 성적 욕구를 이해하고 확인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부끄러워하면 지는 거다. 부모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나타나게 될 몸의 변화와 남녀 모두 만족하는 첫 경험이 건강한 성생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녀에게 알려줘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올바른 방향으로 성에 눈뜰 수 있도록 늘 지켜보고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방비한 상태의 자녀는 편견과 위험이 도사리는 성문화에 빠져든다.

 

아이가 이성 친구를 만나 첫 경험을 했는지, ‘원 나잇 스탠드’와 ‘데이트 강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은 부모와 자녀 모두 부끄럽게 만드는, 민망한 질문이 절대로 아니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을 ‘자극적인 언어만 난무한 섹스 보고서’라고 했다. 이 책을 읽고도 저자의 성교육 방식이 낯 뜨겁다고 생각한 독자들이 꽤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그들은 구시대적 성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여전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구시대적 성교육을 배우고 있으며 그걸 배우면서 자란 부모는 성에 관련된 현실적 문제를 만나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섹스와 피임만 가르쳐주는 성교육이 전부가 아니다. 성 평등, 동성애, 데이트 강간 등 현실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가르쳐야 한다. 성교육은 아이만 배우는 과목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어른들도 배워야 한다. 성교육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성교육 지도 방식에 주도적으로 피드백해줄 수 있는 학문이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성교육’은 아이, 어른 모두를 위한 교양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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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0 11: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섹스에 따른 책임 의식을 자녀에게 알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이 정도 말은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하라 2018-01-09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위터에서 어느 뉴스기사로 봤는데 서울 어느지역 고교에서 청소년 피임문제로 콘돔을 나눠 주기로 했다더라구요. 이젠 청소년 성문제도 동서양의 차가 없어진 것 같아요. 야동도 하나의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이고 그와 동시에 성문화의 동서양의 차가 사라지고 문명 간의 차이가 점점 더 사라져가는 것 같네요.

cyrus 2018-01-10 11:44   좋아요 0 | URL
청소년들이 스스로 섹스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콘돔을 착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전 세계가 소셜미디어에 익숙해지니까 청소년 성문화와 성 문제의 동서양 차이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나온 ‘훅업 문화’와 ‘섹스팅’은 우리나라 ‘원 나잇 스탠드’와 ‘성인 채팅’과 비슷했습니다.

stella.K 2018-01-0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책 읽었구나.
뭐 나름 좋긴 했는데 사례가 너무 많아서
나중엔 어질어질하더군.
그런데 정말 필요한 말도 많이했어. 그지?^^

cyrus 2018-01-10 11:46   좋아요 0 | URL
네. 부모로서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저자의 말이 인상 깊었어요. ^^
 
똑똑함의 숭배 - 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
크리스토퍼 헤이즈 지음, 한진영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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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한 개인을 평가할 때 학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근대화 이전, 양반 계층이 교육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었다. 교육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대중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제공됐다. 하지만 그것도 형식적이었고, 해방되자 비로소 누구나 공부만 잘하면 출세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을 보기 어려워졌다. 돈이 없으면 공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권력 창출과 신분 상승의 수단이다. 인력 채용 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학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아이들은 명문대학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공부 외에 과외 공부를 하게 되고, 사교육비는 부모들이 부담하게 됐다.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라 자식의 가방끈길이가 결정되는 세태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을 아직도 대중은 실제 현실로 믿고 싶어 한다. ‘개천의 기적을 보고 듣고 자란 부모 세대는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다. 과거와 많이 달라진 현실은 심각하다. 우리는 부모 잘 만나면 용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를 따르는 국민들에게 신뢰의 징검다리여야 한다. 국민은 지도자가 새로운 정책을 통해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와 혁신에 앞장설 것을 기대한다. 지도자가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그 추종자들은 실망과 함께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래서 자칫 사회가 무질서하고 생활이 고통스러워지면 국민은 개인의 불행을 지도자의 무능 탓으로 돌리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는 꽤 긴 시간 동안 무능한 권위에 제대로 속았고, 국민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손해를 감수했다. 왜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반복되는 것일까. 과연 국민들의 촛불로 탄생한 현 정부는 과거를 답습할 것인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냉소에 빠지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감시하는 참여민주주의를 강화하려면 능력주의의 허상에 벗어나야 한다. 지나친 능력주의 숭배는 리더십 부재, 불평등 문제, 사익을 추구하는 엘리트 계층 양산 등 온갖 문제들을 낳는다. ‘능력 좋아서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능력주의의 병폐는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을 어렵게 만든다.

 

똑똑함의 숭배는 지금 시점에서 읽어 봐야 하는 것은 여전히 손에 특권을 꽉 쥔 엘리트 계층이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주위의 비판적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엘리트 계층의 비리와 위선 행각은 그칠 줄 모른다. 똑똑함의 숭배믿는 능력주의에 발등 찍히는 미국인들의 사례를 보여준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을 때, 위기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 는 미국 명문대 출신 금융인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이 자랑하는 명문 대학이 배출한 월 스트리트의 핵심 인재들이었다. 사익에 눈이 쏠린 금융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쓰다가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었다. 능력 좋은 인재들의 오만은 나비의 조용한 날갯짓이었다. 월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날갯짓은 미국 전체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를 집어삼킨 태풍이 되었다.

 

2000년대 메이저리그는 약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암묵적으로 약물을 복용해왔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거의 20년간 금지약물 사용을 묵인해왔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부정을 은폐하려고 약물에 의존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실태를 고발한 미첼 리포트를 깎아내렸다. 야구팬들은 미첼 리포트에 기록된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팬들은 팀 리그 우승에 보탬이 되고 선수 개인의 역대 최고 성적을 내는 야구선수들의 실력을 높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소위 인기 스타이며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실력에 따라 높은 금액의 연봉을 받는다. ‘약물의 시대거포로 활약했던 새미 소사(Sammy Sosa), 마크 맥과이어(Mark McGwire)는 약물 스캔들에 휘말렸고, 두 사람 모두 엄청난 개인 기록을 세웠음에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책에 나온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 모두 능력주의 숭배가 낳은 최악의 결과들이다. 대중이 엘리트의 실력을 우러러볼수록 엘리트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지낸다. 그렇게 대중은 엘리트로부터 , 돼지소리를 듣게 된다. 순진한 개, 돼지들이 빛 좋은 개살구인 능력주의 앞에 자꾸 머리를 숙이면, ‘수준 이하 개, 돼지들은 사회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착각한다. 똑똑함의 숭배에 소개된 사례들은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왜곡된 능력주의 때문에 악순환에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사회악순환을 심화시키는 이들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똑똑함의 숭배의 저자 크리스토퍼 헤이즈(Christopher Hayes)는 엘리트에게만 부가 쏠리는 불평등, 점점 심각해지는 엘리트의 도덕적 해이 등의 근본적 원인을 능력주의 숭배를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저자가 내세운 해결책은 너무나도 간단하게도 평등이다. 그는 기회의 평등뿐만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회가 균등하더라도, 즉 경기규칙이 공정하더라도 승자와 패자에 대한 대우가 너무 불합리하다면, 즉 승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져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면 그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결과의 불평등을 초래한다. 물론, 결과의 불평등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이 점은 저자도 인정한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의 해결책은 왠지 찝찝하기만 하다.

 

이 책을 보면서 찝찝하게 느낀 내용이 한 가지 더 있다. 저자는 브라질의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 성공한 루이스 이나시우 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우리나라에선 룰라로 잘 알려져 있다)의 사례를 언급했다. 똑똑함의 숭배2013년에 발표되었다. 이 책이 나온 지 2년 뒤에 시우바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저자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워했을까. 우리나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볼 수 있듯이 소수의 정치 엘리트가 권력을 잡으면 사익에 집착하게 되고, 보통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시우바는 국민들이 원하면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만약 브라질 국민들이 그의 복귀를 환영한다면 똑똑함의 숭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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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2 12:47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구직자들이 공무원을 희망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지나친 능력주의 숭배가 낳은 기이한 현상으로 생각해요.

표맥(漂麥) 2017-12-1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능력주의의 허상... 이 말 와 닿습니다. 똑똑한 사람의 한계는 자신의 생각을 일반화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표준화하려고 하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걸맞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개.돼지로 치부해 버리구요... 정작 자신들도 또다른 의미의 개,돼지임을 몰라요.

cyrus 2017-12-12 12:50   좋아요 0 | URL
책의 핵심 내용에 근접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엘리트는 자신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아 일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게 독단적으로 처리하면 문제가 됩니다.

sprenown 2017-12-1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똑똑이의 신화는 깨져야 합니다.

cyrus 2017-12-12 13:1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 똑똑한데 이기적인 사람,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수이 2017-12-12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친구는 이제 막 애기 낳았는데 내년에 제주도로 이사한대, 국제학교 보낸다고, 다섯 살부터 입학 가능이래, 그래서 제주도에 집 사고 이사할 준비 한다는데 뭔가 멍하다. 출발선이 다르네 하고 너털웃음만 지었어. 나도 똑똑한 거 좋아하긴 하는데 뭔가 기묘해. 귀신 홀린 기분. 남편도 뭐 이래저래 안 좋은 이야기 잔뜩 갖고 들어오고. 아아아;;;;

cyrus 2017-12-12 13:15   좋아요 0 | URL
주변 사람들 신경 안 쓰면서 살고 싶어도, 타인과 비교하게큼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피할 수 없어요. 저도 연락 뜸한 친구가 잘 나간다는 소식을 접하면 기분이 이상해요.. ^^;;

transient-guest 2017-12-12 0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인이나 공인의 경우엔 실체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그간 살아온 삶을 잘 짚어보면 실수가 좀 적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을 데리고 일해보면 어느 정도는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교육열과 경쟁이 너무 높아서 그야말로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학력/학벌과 실제능력의 상관관계가 맞이 않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측정가능한 자료로 무엇인가를 평가하는 건 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cyrus 2017-12-12 13:19   좋아요 2 | URL
학벌이 좋아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엘리트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학벌과 실제 능력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어요. 그런데 정유라처럼 학력을 속이면서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예요. 애초에 그들은 정당한 경쟁을 하지 않고, 비상식적인 특권을 누려요. 엘리트층들은 그런 상황을 문제 삼지 않아요.
 

 

 

미국의 여성 운동가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여성의 신비에서 이렇게 썼다.

 

 

 

 

 

 

 

 

 

 

 

 

 

 

* 베티 프리단 여성의 신비(이매진, 2005)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이 문제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여성들이 이것을 표현하려고 애쓸 때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체 어떤 것이었던가? 때때로 어떤 여성은 무언가 공허하고…‥불완전한 기분이 들어요라고 했다. 또는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여성은 가끔씩 진정제를 사용해 그런 느낌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중략] 어느 여성은 때때로 감정이 너무도 격해져서 집을 뛰쳐나가 길거리를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아니면 집안에 처박혀 울기도 한다.[1]

 

 

 

1960년대 미국의 전업주부들은 집 안을 청소하고, 장을 보고, 자녀들을 돌보고, 남편의 곁에 누우면서도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문제와 싸워야 했다. 세 아이를 둔 프리단은 당시 전업주부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우선 동창들을 인터뷰하면서 문제점을 밝혀냈다. 5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한 끝에 그녀는 여성의 신비를 펴냈다. 이 책은 어머니또는 아내역할에 만족하는 여성들을 흔들어 깨운다.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신비는 미국 여성들을 괴롭히는 강박적 관념이다. 프리단은 여성을 남편과 자녀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신비에서 프리단은 여성들에게 여성을 신비화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주체성을 확립할 것을 호소한다.

 

 

 

 

 

 

 

 

 

 

 

 

 

 

 

 

 

 

 

 

 

 

 

 

 

 

 

* [구판] 로즈마리 푸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 : 종합적 접근(한신문화사, 1995)

* [개정판] 로즈마리 푸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 : 종합적 접근(한신문화사, 2000)

* 카트린 칼바이트 20세기 여인들 : 성상, 우상, 신화(여성신문사, 2001)

* 김호기 세상을 뒤흔든 사상 : 현대의 고전을 읽는다(메디치미디어, 2017)

 

 

 

프리단은 보부아르(Beauvoir)2의 성을 읽고 여성 운동에 헌신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페미니즘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보부아르는 글을 쓰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거부했다. 그녀는 전업주부의 일을 여성 노예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2] 반면 프리단은 페미니즘과 결혼 및 가정이 공존하길 원했다. 여성의 경제적 · 사회적 자립이 가능한 가정이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향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자 프리단은 중도적인 여성 운동에 앞장섰다. 그녀는 자신이 창설한 전국여성조직(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회장직에 물러났고, 남성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했다. 프리단은 1981년에 펴낸 <2의 단계(The Second Stage)>를 통해 페미니즘 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것을 촉구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사회를 원했으며 남성에 대한 투쟁적 여성 운동 노선을 포기하는 입장을 취했다.

 

 

 

 

 

 

 

 

 

 

 

 

 

 

 

 

 

* 스테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민음사, 2014)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엄마는 페미니스트(민음사, 2017)

 

 

 

프리단은 직장과 집안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슈퍼우먼(superwoman), 슈퍼맘(supermom)의 등장을 바랐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일과 가정 모두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여성을 부담스럽게 한다. 그리고 프리단이 지향한 슈퍼우먼은 중산층 백인 여성을 위한 대안적 역할에 불과했다. 프리단은 인종차별 · 성소수자 · 계급 문제 등 백인 여성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안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나왔다. 특히 그녀는 페미니즘이 동성애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노선(레즈비언 페미니즘, Lesbian Feminism)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여성의 신비는 약점이 있음에도 페미니즘 운동을 빛나게 해준 교과서로 추앙받는다. 이 책이 세상에 끼친 영향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이 성전(聖典)으로 취급하는 것에 불편하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그녀의 입장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여성의 신비한 권으로 변화가 많은 프리단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다.

 

 

 

 

 

 

 

 

 

 

* 나왈 엘 사다위 스핑크스의 여인들(한마당, 1995)

 

 

 

여성의 신비보다 훨씬 늦게 나왔지만, 스핑크스의 여인들(원제: Femmes Egyptiennes)은 프리단의 책에 비견될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 책은 이집트의 여성 운동가 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가 가부장제 사회로부터 억압받는 이집트 여성들과 상담했던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다.

 

 

 

 

 

 

 

엘 사다위는 정신의학을 전공했으며 1969년에 <여성과 성(Women and Sex)>이라는 책을 발표하여 가부장제에 억압당한 여성의 성적 권리와 성생활을 공론화했다. 이 책이 엄청난 반응을 얻게 되자 이집트 정부는 그녀를 위험인물로 경계했다. 엘 사다위는 정부 권력층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 운동을 펼쳤다. 여성 할례 금지 운동에 앞장섰으며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를 거부했다. 결국 1981년에 그녀는 감옥에 수감되었고, 정부는 그녀의 집필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자국의 탄압으로 엘 사다위의 글은 이집트보다 유럽에 더 많이 알려졌다.

 

엘 사다위의 여성운동은 보부아르가 지향하는 여성운동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엘 사다위는 여성의 희생을 부추기는 결혼 제도에 반대했으며 여성의 글쓰기 행위를 예찬했다. 여성의 글쓰기 행위는 여성의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활동이다. 남성이 차지하고 만들어낸 권력은 여성의 창조행위를 막는다. 여성의 창조행위는 사회적 제도에 질식하여 죽어가는 여성을 진정한 인간으로 부활하게 만드는 힘이다.

 

 

 

 

 

엘 사다위가 스핑크스의 여인들을 집필하는 데 걸린 시간은 17. 엘 사다위는 열여섯 명의 이집트 여성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녀들의 우울증과 불안한 감정 등을 분석했다. 스핑크스의 여인들여성의 신비의 공통점은 모두 남성 위주 사회에 억압받는 여성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다. 프리단과 엘 사다위는 여성의 정신 상태를 정신병광기로 규정하는 정신과 의사들의 섣부른 진단을 비판했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프로이트 정신분석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프리단과 엘 사다위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1985년 케냐 나이로비에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를 통해 엘 사다위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어려움에 처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프리단은 엘 사다위가 발언을 하지 못하게 말렸다.

 

 

그녀는 내가 팔레스타인 여성들에 관해 연설을 하려고 하자 말렸습니다. 그건 정치적 문제이므로 페미니즘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했지요.” [3]

 

 

유대계 미국인이었던 프리단은 유대인 정통국가인 이스라엘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프리단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프리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성 차별에 대한 주제로 연설을 했다. 본인은 페미니스트로서 정치적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해놓고선 엘 사다위의 발언을 제지한 것이다. 엘 사다위는 프리단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에 실망했고 소신 있게 발언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의 일화는 1세계 페미니즘(유럽 백인 중심 페미니즘)이 제3세계 페미니즘을 대하는 시대착오적 반응을 잘 보여준다.

 

 

 

 

 

 

Trivia

 

 

 

 

 

 

 

 

 

 

 

 

 

 

 

알라딘에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를 검색하면 1996평민사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과 2005년에 재출간된 이매진 출판사 판본, 두 권이 나온다. 검색 결과만 보면 1996년 평민사 판본이 국내 첫 번역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996년 번역본은 중판이며 초판은 1978년에 나왔다. 초판과 중판의 역자는 동일 인물. 그리고 이 책의 번역본 일부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대모이효재 이화여대 전 교수가 엮은 여성해방과 이론과 현실(창비, 1989)에 수록되었다. 1978년 평민사 판본의 4장을 발췌한 내용의 소제목은 여성 자아의 위기이다.

 

 

 

 

 

최근에 문 대통령 부부가 청와대를 방문한 이효재 씨를 만났다. 이효재 씨는 엘 사다위보다 3년 늦게 태어났고, 현재 나이는 93세이다. 세 분이 함께 모여 찍은 사진, 정말 보기 좋다.

 

 

 

 

[1] 여성의 신비62~63

[2] 20세기 여인들78

[3] 20세기 여인들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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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11-1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크 제 얕음인가요....페미니즘과 디자이너 동명이인을 떠올리다가 마지막에...

이처럼 좋은 글을 기꺼이 모두에게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7-11-14 13:13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여성운동가 이효재님을 몰랐어요. 헌책방에 이분이 쓴 책을 발견하면서 알게 됐어요. 7, 80년대 국내 여성운동 저작물을 수집하는 중입니다. 인터넷 서점에 등록되지 않은 페미니즘 책들이 많습니다. ^^

표맥(漂麥) 2017-11-1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신 비 저 책을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놨다간 웬지 성희롱 행위로 문책 당할 듯한... 실제로 그럴거란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극보수와 페미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제가 살짝 도외시하는 영역이라 항상 배움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11-14 13:15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좀 난감했어요. 그래서 《여성의 신비》 혼자 빌리기가 뭐해서 《여성의 권리 옹호》와 같이 빌렸어요.. ^^;;

sprenown 2017-11-1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역시 매우 정치적이군요.. 하긴 모든 주의와 이즘은 정치영역에서 벗어날수 없는 숙명이긴 하겠지만..^^

cyrus 2017-11-14 13:19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 운동이 정치에 영향을 준 사실은 무시할 수 없어요. 시기가 많이 늦었지만, 여성의 투표권 확보를 위해 노력한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stella.K 2017-11-14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신비는 2005년도 판도 절판됐네.
요즘 같이 페미니즘이 활성화된 때에
이 책이 절판이란 건 좀 아이러니 해.
그런데 표지는 좀 거시기 해.
할게 없어서 저런 표지를 썼나?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난 별로라고 생각한다.
<스핑크스의 여인>도 다시 나와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이효재 교수 정말 많이 연로해 보인다.
모르면 위안부 할머니 중 한 사람인 줄 알겠어.
언제 청와대 간 걸까?

cyrus 2017-11-14 13:22   좋아요 0 | URL
《여성의 신비》 표지 저도 별로예요. 엘 사다위의 대표작이 소설 《영점의 여인》이에요. 저는 그녀의 소설이 번역됐으면 좋겠어요. ^^

10월 말에 만났어요. 저는 대통령 부부와 이효재님의 만남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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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특이한 수법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 이름은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을 가졌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하여 침대에 눕히고는 키가 침대 길이보다 길면 다리를 잘라 죽이고,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여 죽였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침대는 ‘자신의 주관적 기준’, ‘아집’을 비유하는 관용어가 된다. 이 악당은 ‘폴리페몬(Polypemon)’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이 이름의 뜻은 ‘해로운 자’이다. 아마도 프로크루스테스는 폴리페몬이라는 이름을 철저히 숨긴 채 나그네에 접근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폴리페몬과 그의 침대에 눕혀진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의 폴리페몬은 ‘편견’을 가진 일반인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한다. 폴리페몬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와 침대에 눕힌다. 정신질환자 혹은 성범죄자로 차별받는 성소수자, 떠날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는 외국인노동자, 그리고 ‘김치녀’, ‘한남충’으로 부르면서 서로 비하하고 경멸하는 여성과 남성들…‥. 누구나 폴리페몬의 침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침대의 주인인 폴리페몬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 폴리페몬은 영웅 테세우스(Theseus)는 에게 자신이 저지르던 악행과 똑같은 수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폴리페몬의 아집은 독선으로 변질된다. 무수히 많은 독선은 혐오를 낳는 주범 중 하나이다. 결국 그 사회에 공감은 사라지고 혐오만 자라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혐오의 형태는 다양해질 것이다.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혐오가 있는가 하면, 권력이 없어서 생긴 혐오도 있다. 특정 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혐오가 발생하는 한편, 그저 경멸 때문에 혐오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처럼 혐오의 심각성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같은 낱말들만으로는 혐오의 진짜 원인을 담아내지 못한다. 혐오는 편견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암울하다. 카롤린 엠케는 사회 곳곳에 널려있을 뿐만 아니라 숨어 있는 ‘혐오 문화’의 실체를 규명한다. 성소수자에 속한 엠케는 동성애 혐오뿐만 아니라 난민 혐오, 여성 혐오 등의 현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한 언론인이다. 《혐오 사회》는 폭력과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는 혐오 문화의 형성 과정을 헤집는다.

     

이 책에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예화가 펼쳐진다. ‘반(反)난민’을 외치는 독일 극우들,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들의 과잉 진압, 성소수자들에게 자행하는 폭력. 저자의 시선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혐오는 개인의 정서적 형태가 아닌 적대심과 방관적 태도로 설계된 집단적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주장을 ‘폴리페몬의 침대’ 이야기로 비유해서 설명하면 이렇다. 폴리페몬은 자기가 믿는 일방적 기준(곧 언급할 ‘동질성’, ‘본원성’, ‘순수성’과 같은 의미)에 따라 상대방을 혐오한다. 그리하여 폴리페몬은 ‘가해자’가 되고, 혐오 받는 대상은 폴리페몬의 침대에 누워 옴짝달싹 못 하는 ‘피해자’, ‘희생양’이 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방관자’가 있다. 방관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구경할 뿐 그들의 감정과 상처에 공감하지 못한다. 저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타자를 혐오하는 일이 가능한 ‘혐오 사회’를 지금까지의 모든 혐오범죄보다 한층 더 무서운 경종의 대상으로 여긴다. ‘혐오 사회’의 방관자는 잔혹한 사건의 중심에서 비켜 있는 비겁한 위치에 있다. 사실 방관자도 혐오범죄의 공모자이다. 따라서 저자가 정의하는 혐오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관습과 신념의 결과물’[1]이다.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은 자신의 정체성 또는 신념을 ‘표준’으로 내세우고, 이 ‘표준’에 맞지 않는 타인을 ‘비정상적’인 대상으로 규정한다. 예컨대 ‘찬란하고 순수한 민족’이 사는 땅에 외래문화 또는 종교가 밀려 들어와 사회 불안정을 일으킨다는 단순한 논리가 의외로 꽤 완강한 힘을 보여준다.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보는 가치관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사회란 하나의 집단이고, 소속감에서 오는 안도와 심리적 평정을 유지케 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인간은 집단적 동질성과 본원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구성원들끼리의 공감과 응집력을 강화한다. 소속감과 비뚤어진 편견이 뭉쳐 나오는 것이 바로 ‘혐오’이다. 사회 문제의 원인은 사회 내부에도 있는데 자신과 다른 타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든 이질성을 배제하고 동질성을 찾아 무리 지으려는 문화에 익숙하다. ‘우리끼리’ 뭉치는 ‘우리’ 의식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순혈주의에 매몰되기 일쑤였다. 지역, 피부색, 직업, 성별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는 태도, 그리고 그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되는 혐오 언어는 타인과의 인격적 관계를 해치는 증오와 분노를 만든다. 분명한 것은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혐오로 가려진 눈을 여는 것만이 또 다른 갈등과 상처를 피하는 길이다. 혐오가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1] 《혐오 사회》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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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3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끼리끼리‘ 패거리 문화가 이러한 혐오사회를 만든 원흉이지요..이런 문화와 의식은 아마,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관련있지 않을까요? 일단은 나부터 살고보자는...

cyrus 2017-11-13 18:52   좋아요 2 | URL
패거리 문화가 형성된 이유는 많을 거예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생존 본능일 것입니다. 나와 다른 타자에 두려움을 느끼면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거예요.

2017-11-13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13 18:57   좋아요 1 | URL
개인의 이익을 얻기 위해 모임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산악회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자녀 결혼식 이후에 탈퇴하는 사람이 있어요. 축의금을 많이 받기 위해 사람들과 어울려 다녔던 거죠. 아버지가 그 산악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데 탈퇴한 회원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런 사람, 많이 있을 거예요. ^^;;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인물이라도 알려지지 않은 내밀한 흠은 있다. ‘완전무결한 위인’이 어디 있으랴. 어렸을 적 아동용 위인전 읽으며 감동했던 위인들의 또 다른 면을 좀 더 커서 알게 됐을 때 실망하게 된다. 그 개운치 않은 감정은 ‘지적 성장’을 위해서 한 번쯤, 아니 배움이 다할 때까지 여러 번 겪어야 할 성장통(growing pain)이다.

 

 

 

 

 

 

 

 

 

 

 

 

 

 

 

 

 

 

*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책세상, 2003)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근대 지식인의 시조로 추앙받는 사상가이다. 루소가 생각한 아동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도시에서 살도록 만들어진 미개인’[1]을 만드는 것이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불평등의 기원을 자연 상태에서의 자유를 잃어버렸다는 데서 찾았다. 원초적 자연 상태의 인간, 즉 미개인은 자신이 선한지 악한 것인지 구분할 줄 모르는 자유롭고 순수한 존재였다. 하지만 미개인은 공동체 경험 속에서 파괴되고 만다. 비교의식과 소유욕이 결합하면서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인간을 소외시켰고 불평등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 필립 아리에스 《아동의 탄생》 (새물결, 2003)

* 장 자크 루소 《에밀》 (한길사, 2003)

* 장 자크 루소 《에밀》 (책세상, 2003, 요약본)

* 이기범 《루소의 에밀 읽기》 (세창출판사, 2016)

* 고봉만, 황성원 《루소, 교육을 말하다 : 에밀 깊이 읽기》 (살림, 2016)

 

 

 

 

인간 중심의 사회는 결국 사람을 가꾸는 것으로 귀결된다. 계몽사상이 대두하기 전 어린이들은 ‘덜 자란 어른’으로 취급받았다. 어린이는 ‘이성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 학칙과 규율로 통제하는 기숙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그러나 하류층은 아동교육에 별 관심이 없었고 아동의 노동을 당연시했다. 18세기부터 유럽은 중세의 케케묵은 미몽을 훌훌 털어내면서 이성의 여명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계몽사상이 싹트면서 루소는 아동교육에 대한 생각을 진전시켰다. 그 생각이 집약된 것이 《에밀》이다. 이 책에서 에밀은 틀에 짜인 기숙학교식 교육이 아닌 순수한 자연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아동 성장 시기별에 적합한 전인교육을 중시한다. 교사는 아이 스스로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욕구를 느낄 수 있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맡는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유명한 말은 이와 부합된다. 따라서 루소가 지향하는 아동교육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자연스럽게 발현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 폴 존슨 《지식인의 두 얼굴》 (을유문화사, 2005)

* 리오 담로시 《루소 : 인간 불평등의 발견자》 (교양인, 2011)

 

 

 

그러나 루소 정작 자신은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 루소가 자신의 다섯 명 자식들을 보육원에 보냈다는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ès)는 루소가 비정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동에 대한 의식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과거 인식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그 시대에 자식을 보육원에 맡기는 일은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른’과 구별되는 ‘아동’의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한 18세기에 어린이는 ‘보호와 교육을 받아야 할 인격체’로 여전히 대우받지 못했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의 권리 옹호》 (책세상, 2011, 요약본)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 (연암서가, 2014)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근대 최초의 페미니스트이다. 이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녀를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의 어머니’, 또는 ‘아나키즘을 체계화한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의 아내’로만 알려졌다. 두 번의 자살 기도와 사생아를 출산한 사생활 때문에 그녀는 보수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철저히 묻혔다. 울스턴크래프트가 쓴 《여권의 옹호》는 남녀평등과 교육 기회의 균등한 부여를 강조한 책이다.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남녀 모두 이성의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 카리 우트리오 《이브의 역사》 (도서출판 자작, 2000)

 

 

 

 

그러나 그녀는 니콜라 콩도르세(Nicolas de Condorcet)제외한 여성의 교육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 계몽 사상가들’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특히 계몽사상의 거두로 많이 언급되는 루소에 실망한다. 콩도르세는 여성의 평등을 옹호했던 계몽주의 사상가로, 울스턴크래프트는 《여권의 옹호》를 쓰기 위해 콩도르세의《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책세상, 2002)을 참고했다고 한다.[2] 울스턴크래프트는 《여권의 옹호》를 통해서 루소의 《에밀》에서 드러나는 아동교육의 한계를 지적한다. 《에밀》에 등장하는 소피는 에밀의 배우자다. 에밀은 소피에게 타인, 즉 남자에게 정성과 배려를 베푸는 삶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소피를 가르치는 에밀의 태도에서 여성을 ‘남성을 즐겁게 해주는 존재’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확인한다. 남성 계몽 사상가들은 여성을 ‘감성’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그래서 여성에게 ‘이성’의 눈을 뜨게 해주는 교육을 받을 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성을 위한 여성’으로 맞춰 살아가도록 요구하는 사회를 ‘운명의 철 침대’로 비유한다.

 

 

 

 

여성이 단순히 남성을 기쁘게 하고 남성에게 복종하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결론은 오로지, 그녀가 자신을 남성에게 적합하게 만들고자 다른 모든 고려 사항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여성의 특성을 억지로 부풀리거나 혹은 축소해서라도 거기에 끼워 맞추어야만 하는 ‘운명의 철 침대’이다. [3]

 

 

《여권의 옹호》 집필 이후 울스턴크래프트는 1796년에 <여성의 학대 혹은 마리아>를 쓰기 시작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리아는 남성의 활동을 위해 희생당하는 여성을 상징한다. 모이라 퍼거슨은 마리아를 ‘여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소설 인물의 중요한 선조’로 평가한다.[4] 계몽주의 열풍으로 구체제가 무너지고 인간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그 ‘인간’에 ‘여성’은 제외되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소녀들도 국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성이 복종해야 될 대상은 남성이 아니라 ‘이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효재 엮음 《여성해방의 이론과 실천》 (창비, 1979)

* 로즈마리 푸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 : 종합적 접근》 (한신문화사, 1995, 2000)

* 캐럴 페이트만, 메어린 린든 쉐인리 엮음 《페미니즘 정치 사상사》 (이후, 2004)

* 스테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 (민음사, 2014)

 

 

 

 

그러나 그녀의 급진적 주장에는 시대적 한계가 드러나 있다. 그녀가 생각한 《여권의 옹호》의 예상 독자는 귀족적 허영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비교적 생활 여건이 우수한 부르주아 계급 여성들이다. 철학, 역사, 정치학 등 이성의 눈을 뜨게 해주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부르주아 집안에 태어나고 자란 소녀’들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하층계급 여성을 남녀공학 교육 대상에서 제외했고, 하급계급 여성에게 막일과 바느질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울스턴크래프트는 하급계급 여성을 ‘이성을 가진 평등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 《여권의 옹호》에서 하녀는 남녀평등을 실현한 부르주아 부부의 행복을 위한 희생자로 전락한다.

 

 

나는 허드렛일만 하녀에게 맡기고 자녀들을 스스로 돌보며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한 여성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았다. 이 소박한 그림을 보며 마음이 흡족해졌을 때, 나는 각자가 각자의 지위에 따르는 의무들을 이행하기 때문에 대등하게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또 서로 독립적인 이 부부는 인생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5]

 

 

영국의 사회주의 여성학자 실라 로보섬(Sheila Rowbotham)은 울스턴크래프트의 혁명적 사상이 계급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녀는 울스턴크래프트가 강조한 교육이 ‘산업 자본주의에 적합한 여성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라고 지적한다.[6] 울스턴크래프트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서구 백인 페미니즘의 원류로 평가받는다. 서구 백인 페미니즘에 반기를 드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제3세계 페미니스트들은 계급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인 여성 억압만을 강조해온 울스턴크래프트의 페미니즘을 문제 삼는다. 하층계급 소녀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울스턴크래프트는 자식들을 보육원에 맡긴 루소처럼 ‘구시대적 관행’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나의 사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접근법은 다양하다. 사상을 이해하는 수많은 관점 중 하나가 절대적인 혜안이 될 수 없다. 단일한 관점은 사상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만을 도울 뿐이며 사상의 한계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언급한 루소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두 사람의 사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한계는 그들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흠이 되지 못한다. 단 하나의 결점을 기준으로 그의 사상 전체를 쓰레기통에 넣을 수 없다. 위대한 사상을 머리로 흡수하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장단점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지식의 특징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불편한 지식의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엄중히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두렵고 괴로운 ‘지적 성장통’이 와도 조금이나마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1] 《루소, 교육을 말하다》 55쪽

[2] 《이브의 역사》 175쪽 

[3] 《여성의 권리 옹호》 73쪽 

[4] 《영미 여성 소설론》(정우사, 1995) ‘『여성의 학대 혹은 마리아』- 소설적 옹호’ 편, 20쪽 

[5] 《여성의 권리 옹호》 123쪽

[6] 《여성해방의 이론과 실천》 『여성해방 이론의 선구자들(1)』 21쪽 (실라 로보섬의 <Women, Resistance and Revolution>(1972년 출간)의 제2장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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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25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넓고도 깊이있는 지식! 리뷰 잘 읽었습니다.루소 와 울스턴크래프트.. 아무리 위대한 사상가라해도 ‘시대적 한계‘는 있을수 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cyrus 2017-10-26 11:16   좋아요 1 | URL
철학 사상을 공부하기 전에 철학가의 생애를 먼저 조사하거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철학을 공부할 때 철학 속에 스며든 철학자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철학자의 생애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하면 사상의 장점만 보여요. 나중에 사상의 문제점을 알게 되면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철학을 보는 시야의 범위가 결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