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야근이 많았던 지지난 주, 금요일엔 머리가 너무 아파 사무실을 뛰쳐나가 샤방한 영화 한편을 보려고 했는데, 보고 싶었던 '트루맛쇼'는 시간이 안맞고, 이래저래 재고 고민하다 결국 이 영화를 봤다
당연히 머리는 더 아파졌지. 내가 생각해도 참 바보 같은 선택. 게다가 사람들이랑 부대끼기 싫어서 사이드자리에 앉았는데, 윽, 맞다, 여긴 아트하우스 모모였지 -_- 모모의 사이드자리는 절대 비추. 고개가 매우 아팠 ;;
그럼에도, 이 영화(? 다큐멘터리?)는 매우 볼만한 것이었다. 미국에 서브프라임사태를 몰고 온 원인들, 그리고 그 주역 작자들을 보여주는데, 화딱지가 나다가도, 감독의 유머감각에 피식, 웃고 만다. 물론 용서가 된다는 건 아니다 ;;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로만 넘길 수도 없기에, 보면서 더 답답하고 화가 났던 것 같다. 이런 날이 오기 전에 내 대출금이라도 얼른 갚아야지 ;;;; 하지만 그런다고 무엇이 해결되나...
영화 중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들은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그저 꿈을, 희망을 설계하는 대가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들이 설계한 꿈은 악몽이었다. 라는 말. 그 악몽의 대가는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지불한다. 어쩌면, 가장 약하고,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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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은 시너스이수에서 상영중(?)인 시네클래식페스티벌 마에스트로6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자의 2007 루체른 부활절 페스티벌을 보러 갔다. 아. 젊구나. 화면 밖으로 쏟아져나올 것 같은 그 에너지, 스테미너, 젊음! 엄청났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와 두다멜 지휘자에 대해서는 글로만 접했는데, 이렇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기회가 오니, 새삼 그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참 신나게 공연에 함께했던 것 같다.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 공연을 (물론 실제로 보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단돈 1만원에 이렇게라도 볼 수 있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기회, 라며 또 보러 가겠다고 다짐했으나, 아직까지 그 다짐은 지켜지지 못하고 있을 뿐이고... 아직 다섯 지휘자가 남았으니, 나는 매우 무료하거나 또는 마음이 허한 여름밤이면 4호선을 탈 작정이다. 아직 시간은 좀 더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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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최고 화제작인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도 읽었다. 나와 동갑인 작가가 쓴 글이다. 나와 동갑 언저리에 있는 또래들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던 나와 동갑인 작가가, 이제 그 또래를 '부모님 세대'로 등장시킨다는 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나에게 나는 소설에서도 나, 였는데, 이제 소설에서의 나, 가 나의 자식세대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걸 (물론 막연히 알았겠지만서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의 세대의 이야기를 써주었다,고 처음 인식했던 작가가 썼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 작가는 부모 세대로서의 나의 세대, 추억할 것이 있는 눈부신 어떤 '시절' 을 그리워하는 세대로서의 내 또래 이야기를 쓰는구나, 라는 생각에, 뭐랄까, 참, 충격적이었다. (유쾌하진 않아요, 엉엉 ㅜㅜ) 어쩔 수 없이 우린 같이 늙어가는거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럼에도 난, 이 책에 세간에 쏟아지는 헌사만큼의 온전한 헌사를 보내기엔 조금 복잡한 마음이다. 음. 뭐랄까. 멍청한 작가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이 작가가 너무나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영리함이 나에게 자꾸만 보이는 것 같아서, (그렇다고 내가 더 영리하다는 게 아니라) 뭐랄까 좀 불편하고, 그렇다. 더욱 영리해서 내게 보이는 그 영리함을 좀 덮어주면 어떨까, 라는, 뭐, 말도 안되는 구리구리한 생각들이 들고 마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암튼, 분명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털썩, 하고 마음을 놓게 되는 지점들이 이 소설에는 분명 존재한다. 특히 소설 중간에 삽입된 검정치마의 노래 Antifreeze는 이 소설 전체를 압도할 정도로 아름답다. 간만에 검정치마의 음악을 며칠 째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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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본 이 작품. 진짜 우여곡절끝에 가서 봤다. 회사에서 미로스페이스 가는 법을 몰라 버스를 무작정 탔다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결국 택시를 타고 가서 영화를 보고, 휴대폰을 회사에 놓고 온 것을 깨달아 다시 택시를 타고 회사로 갔던 멍때리던 금요일 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마음 속에 선명하게 기록됐다.
막연히 알고만 있는 것과, 그걸 눈으로 확인하는 건 확실히 다르다. 맛집, 다 조작이야, 라고 어렴풋이 알면서도, 내 눈 앞에서 그 조작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란듯이 펼쳐질 때 느껴지는 분노의 게이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아니, 차라리 분노면 좋겠는데, 이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기다. 맛집 촬영 전문 브로커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방송용 메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메뉴를 브로커가 만들어내고, 실제로 맛이 어떤지보다는 그럴듯하고, 특이한 것을 그렇게 대놓고 추구해온 줄도 몰랐다.
"이 늙은 호박은, 맛이 없어요, 사실 아무 맛도 안나요, 하지만 시청자들은 맛을 못보니까, 늙은 호박에서도 단 맛이 난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달고 맛있다고 해주시면 되는 거에요" 라니...!! 흑흑 얼마 전 숙대입구 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보게 된 맛집 프로그램에 나온 돈가스집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키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거다... 평소에 맛집 프로그램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더 나이브했던 걸 수도 있지만.... (진짜 맛있어 보였는데.... 등심 네장 붙여서 돈가스 만들어주시던 사장님도 거짓말이었던 거에요? 흑흑) 암튼, 국민을 사기로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던 사기극을 파헤쳤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만.
역시나 마음에 걸렸던 것은, 왜 비판의 손가락질이 '국민의 입맛 수준'으로 넘어가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그런 프로그램이 횡행하는 것에는 대중들의 잘못도 분명 있지만, 나는 가수다, 에서 보다 자극적이고, 풍부하면서도 익숙한 음악이 대접받는 것처럼, 자꾸만 자극적이고, 풍부하고, 익숙한 (조미료) 맛이 인기를 얻는 것은 대중들의 수준 탓이 어쩌면 맞는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선수라면, 그 점을 좀 더 세련되게 다루어줄 수는 없었는지, 고매한 엘리트주의자처럼, 니 입맛이 그모양이니, 그런 음식을 먹게 되는 거다, 라고 꼭 말을 했어야 하는지, 물론 대중을 계도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마음인지 알겠기에, 더 좀 잘하지... 싶은, 아쉬운, 뭐 좀 그런 맘, 이랄까. (내 맘도 제대로 설명 못하면서 누굴 탓하고 있는지 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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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의 화제작... (알고 보면 화제작만 골라 읽는?)
예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나는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늘 '텔레포트'라고 답해왔었다. 사실 가장 욕심이 나는 건 어쩌면 타인의 마음을 아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타인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을 때나 축복인 거지, 내 마음 같지 않은 타인의 마음 앞에서는 형벌이나 다름 없는 것. 그래서 나는 언제나, 아마도 내게 한번도 주어지지 않을 선택지 앞에서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망설이다, 타인이 마음을 아는 능력의 달콤한 손길을 뿌리치고 '텔레포트'라고 답해왔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 역시 형벌이다. '사토라레'를 보면서 해왔던 그 끔찍한 가정들, 아직도 난 가끔 내가 사토라레이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하나, 둘, 내 생각을 단속하고 있는 나를 만난다. 타인에 대한 적절한 무관심, 망각, 착각 등은 어쩌면 삶에 꼭 필요한 하나의 축복인지도 모를 일이다.
주인공 로즈는 음식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알게 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건, 다행히 좀 낫긴 하다. 선택할 수 있으니까. 마음을 알기 두려운 상대가 있다면, 그가 만든 음식을 먹지 않으면 되니까. 하지만, 일상적으로 늘 대해야만 하는 내 가족, 부모님 등의 마음을 자꾸만 그렇게 맞닥뜨려야 한다면, 그건 매우 곤혹스러운 일일 것 같다. 그것이 곤혹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생각해보면 참 슬픈 지점이기도 하다. 우리 대부분의 삶이 누구에게도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는 삶이라는 것은.
이 소설은 소설 그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 소설이 상상하게 만든 것들로 인해, 자꾸 자꾸 생각날 것 같은 작품이다. 누군가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누군가의 마음을 맞닥뜨릴 때마다, 이 소설이 자꾸만 떠오를 것 같다.
여담이지만, 내가 주문한 이 소설은 파본이었다. 책을 읽으려는데 시작이 1장이 아니라, 2장이었다. 교환을 해야하나, 생각하며, 일단 미리보기로 1장을 읽고 2장을 읽었는데, 나는 파본을 교환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레몬 케이크의 텅 비어 있는 맛을, 이 파본은 존재자체로 구현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1장이 텅 비어 있는 이 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는 생각. 아니, 오히려 그것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긴 리뷰를 쓰기 귀찮아서 짧게 쓰려고 시작한 페이퍼인데, 길어져버렸다.
여기에 난, 며칠 전까지 <최고의 사랑>에 푹 빠져 살았고, (독고진! 독고진! 구애정! 구애정!) 뒤늦게 무한도전에 빠져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만 기다리고 있다. 참고로 나는 파리돼지앵 커플과 GG 커플을 무한 응원한다. 욕을 욕을 해가며 <나는 가수다>도 열심히 보고 있고, 오늘 종방하는 아무도 안본다는 그 <신입사원>도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처음엔 '김대호' 빠였는데, 김대호의 진정성이 점점 퇴색되게 느껴지면서 요즘은 '정유진'이라는 친구를 매우 응원중이다. 이 친구를 과연 아나운서로 방송에서 만날 수 있을지, 오늘이면 알겠구나! :) 여기에 <반짝반짝 빛나는>을 보고 나면 한 주가 끝난다. 미국에 있는 M언니가, <반짝반짝 빛나는>을 보면 얼른 나에게 송편 같은 남자가 생기길 바라게 된다는 '무한덕담'을 해줬다. 우와. 언니.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