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29

4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이월 이십구일
몇십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이월의 다섯번째 일요일

한친구의 전화를 받았고
그동안의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듯
지칠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긴 통화는 휴일 무료통화로

잘못 끼워진 단추구멍 같았다고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니까 겉잡을 수 없었다고
근데 나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몰랐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내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던 것들을
설명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니얘기 내얘기
너희얘기 우리 얘기
재수있는 사람 얘기 재수없는 사람 얘기
섭섭했던 얘기 미안했던 얘기

그렇게 얘기하다보니
한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먼저 전화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했었는지 안했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4년에 한번 오는, 지난 2월 29일에 적어놓았던 일기다
그러니까 투데이히스토리,라는 미니홈피 내의 버튼을 이용한다면
4년에 한번 나오는 일기인 거다

오늘 미니홈피에 들어가 투데이히스토리 버튼을 누르면서
나는 과연 4년전 2월 29일에 내가 일기를 적었을까, 안적었을까,라는 괜한 궁금증에
조마조마했다. 아, 적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다행히 일기가 있었다

니가 누구였는지, 또 그 때의 내가 누구였는지
너희는 또 누구고 우리는 또 누구인지
재수있는 사람은 누구였고, 재수없는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뭐가 섭섭했고, 뭐가 미안했는지,

그래서 나는 고맙다는 말을 했던 건지, 안했던 건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저 말투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속에 있던 우리가
굉장히 가슴 뜨끈한 통화를 하면서
내가 내지 못한 용기를 내준 상대에게 내가 굉장히 고마워했을 상황인 건데,

그 와중에, 나는 저 일기를 보며,
아니 잘못 끼워진 단추 구멍을 왜 겉잡을 수 없다는 거야, 다시 끼우면 되지, 하면서
나는 또 크득크득거린다
저 땐 나름 심각했을텐데 말이지


4년이라는 세월은 그런가보다
그 땐 매우 심각해서, 가슴 한구석이 저릿저릿하던것들도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만들어버리고, 혹은 잊어버리고
나름 심각하게 힘주어 이야기하고 생각하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말이다


다시 4년 뒤에, 오늘의 내가 우스워졌으면, 혹은 아무것도 아닌 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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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2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4년 후 재수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야 겠다는 강박증 발동 중...

웽스북스 2008-03-01 20:06   좋아요 0 | URL
흐흐
그보다는 4년 후에 제가 메피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알라딘 마을을 떠나지 마시고....

밥사주세요 ㅎㅎㅎ

L.SHIN 2008-02-2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좋은데요, 이 글.^^
4년전 글도, 지금의 글도, 그리고 앞으로 기다릴 4년 후의 글도 분명 좋겠죠.
조금 더 완숙한 색과 냄새가 나는 그런 글로 -
나도 '4년전의 2월 29일'을 한번 기억해 봐야겠습니다.
(아, 그렇다면 오늘의 일기는 '바지에 낑겨버린 뱃살'로 끝날 순 없잖아 =_=)

웽스북스 2008-03-01 20:07   좋아요 0 | URL
와, 좋아요? 다행이에요 ^_^
바지에 낑겨버린 뱃살 말고 무슨 일이 더 생겼는지 궁금해요 에쓰님 ^^

순오기 2008-02-29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실하게 기록을 남기는군요.
지나간 일기를 들추어보는 것도 꽤 운치있어요.^^

웽스북스 2008-03-01 20:07   좋아요 0 | URL
네, 근데 제 기록은 좀 띄엄띄엄이긴 해요 ㅎㅎ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그 나무 자체가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하늘과 어우러지는 그 나무의 모습을 좋아한다



출근길에는 절대 볼 수 없고, 퇴근길에만 볼 수 있는 나무다
조금 이른 시간, 그러니까 해질 무렵 퇴근을 하던 어느 날
삭막한 도시의 풍경을, 거기 있어주는 것만으로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이 나무를 발견하고는
나는 가방에서 바로 카메라를 꺼내 들어 한 장의 사진을 남겼었다

미니홈피에 이 사진을 올렸을 때,
같은 동네에서 출퇴근하는 회사 후배가 이 나무를 알아봐 주었다
하늘과의 어우러짐이 좋았다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만의 나무가 빼앗긴 것 같았던 섭섭한 마음보다는
나와 똑같은 곳에서, 똑같이 지쳤을 그녀에게도 이 나무가 위로가 됐겠구나, 하는 사실이
또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

오늘도 퇴근이 늦었다
그런데, 콜택시를 잡지 못하고, 그러니까 뺀찌를 먹고
지하철을 타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긴 계단을 오르면서 이 나무를 발견하고는 그만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눈이 쌓인 이 나무의 모습, 그리고 그 위로 계속 눈이 날리고 있는 모습에
이 나무를 한 여섯배쯤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갑자기
콜택시가 나를 버린 건
나에게 이 나무를 선물해주기 위해서,라는 말도 안되는 예정론을 펼치며
주변의 모든 풍경이 사랑스러워진다

희희낙낙 걸으며 온갖 나무들의, 눈과 함께한 새로운 풍경을 보며
장갑도 안끼고 눈을 뭉치며
놓쳐버린 신호등을 보면서도 기뻐하며
오늘은 택시를 타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듯 걷는다


집으로 향하는 골목 앞에 있는 홍목련이 피던 나무에 쌓인 눈을 보며
너는 목련보다 눈이 잘어울리는 것 같아, 라는 시덥잖은 말을 걸며
(목련피던 봄밤에 흥분하던 건 기억도 못하고 -_- 배은망덕한것 같으니)
집으로 향하는 길 미끄러지듯 골목 앞에 서는 서울 택시를 보며

헉, 저 콜 어디야? 라며 잠깐 콜 업체를 바꿀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_-

그렇지만 20분 세이브의 편안함과 신속함이 주는 기쁨과
오늘 마치 마지막 겨울밤인 것만 같던 오늘 밤이 주던 기쁨은
아마 다시 선택하래도, 바꾸지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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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2-26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엄청 늦게 주무셨나봐요~ 오늘 출근하시는데 지장은 없으신지..

웬디님의 이런 섬세함이 좋단 말이죠 (공개적인 애정표현 ㅋㅋ) =3=3=3=3

웽스북스 2008-02-26 10:37   좋아요 0 | URL
어 제이드님 요새 너무 적극적이야 흐흐 (좋아서~)
근데 난 섬세보다 역시 단순 ^^

어제 야근해서 오늘은 1시간 늦게 나왔지요 흐흣

무스탕 2008-02-26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고마운 나무네요. 웬디양님의 피로를 살짝 걷어가버린 이쁜 나무..
저도 아파트 입구에 있는 엄청 큰 나무 대따 좋아해요.
가지치기 하는게 아까울 정도로 멋진나무에요 :)

웽스북스 2008-02-26 21:24   좋아요 0 | URL
아 궁금해요
무스탕님이 대따 좋아하는 나무 ^^

마노아 2008-02-2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나무는 사진 안 찍었어요? 분위기 너무 좋은 밤이었네요. 그 자체가 그림같아요!

웽스북스 2008-02-26 21:24   좋아요 0 | URL
음, 찍었는데,
역시 혼자만 간직하는 편이 낫겠어요
(휴대폰 카메라인데, 지가 200만화소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녀석이에요)

실비 2008-02-2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때가 있어요
표현을 잘 하시네요. 님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웽스북스 2008-02-26 21:24   좋아요 0 | URL
아이쿠, 고마워요 실비님 ^^

네꼬 2008-02-2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유. 예쁜 웬디양님. 저도 저 나무 나눠 가져도 돼요? (한쪽으로만 올라갈게요.)

웽스북스 2008-02-26 21:25   좋아요 0 | URL
네꼬님, 전 나무에 못올라가요~ ㅎㅎ
네꼬님이 위쪽 다 가지세요, 전 아래에서 그냥 볼래요 ^^

Mephistopheles 2008-02-2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 앞에서 서성거리셨다는데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나버렸다는..^^

웽스북스 2008-02-26 21:25   좋아요 0 | URL
저 그래도 좀 운치있게 서성거렸거든요? ㅋㅋ

Mephistopheles 2008-02-27 02:05   좋아요 0 | URL
아...난 문학적으로 서성거렸다는 뜻이였는데...

웽스북스 2008-02-27 02:15   좋아요 0 | URL
아하하, 고등학교 때 봤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몇 장면들이 떠오르는 바람에 ㅋㅋ

Mephistopheles 2008-02-27 02:27   좋아요 0 | URL
뜨끔!

웽스북스 2008-02-27 02:32   좋아요 0 | URL
쳇 역시 ㅜㅜ

바람돌이 2008-02-27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를 타고 다닐때와는 다르게 걸을때는 아주 많은 것들을 볼 수가 있죠. 느림이 주는 즐거움일거예요.

웽스북스 2008-02-27 02:33   좋아요 0 | URL
네 그걸 분명 알면서도 느림을 지향하는 삶은 참 힘들어요
 

1

M은 최근 교회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좀 많이 보고픈 웬디누나'라고 나를 지칭했는데 사람들 사이에 웬디가 누구냐는 파문을 일으켰다. 선아가 없는 걸 보니 선아가 웬디인가봐,라는 추측에 S집사님, 어? 웬디는 작고 귀여운 요정이잖아 -_- 너무해요 집사님. 크고 안귀여운 나는 가서 '작고 귀여운 요정은 팅/커/벨이에요 흑'이라고 말해줬다. M아 민망하다. 다음부터는 그냥 이름 써주라)

M이 편지를 써달라고 하는데, 난 동생이 군대에 있을 때 한번도 편지를 쓰지 않은 죄인이라 M에게 편지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내가 M을 아무리 이뻐라해도, 동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이러면서 -_- 그런데 벌써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M의 부재를 느끼는 건 능숙한 반주자가 사라진, 사모님의 가끔 틀리는 반주 소리를 들어야 하는 찬양 시간이 아니다. 그 시간은 이미 각오한 시간이었으니까. 난 아동부 예배를 마치고 늘 간이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M은 마지막 반주를 마치고 내 옆에 와 앉았다. 우린 그냥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거나, 예배시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했다. 이건 그냥 일상적인 시간이어서, 미처 각오하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허전함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느껴지더라.

2

저녁엔 인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 동기인 우리는 숟가락 친구들,이라는 별칭이 있다. 같은 선생님 밑에서 같은 걸 배우며 자란 우리는 서로 매우 개성있다,고 여기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는 비슷비슷할 거다.

나는 내가, 우리 학교 내에서 나름 시니컬한 편인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나름 시니컬한 편에 포지셔닝돼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학교 사람들이 아닌,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사람들이 나를 너무 반듯한 이미지로 봐서 당황스럽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들은 내 말에 맞장구를 친다. C양왈 "야야 나도 완전 긍정적인 이미지잖아" Y양 왈 "나는 천연기념물이라고 그러더라" 그리고 덧붙이는 한마디의 말에 난 또 쓰러진다

"사람들이 나한테 물어보잖아, 도대체 니가 말하는 광란의 밤,의 의미는 뭐냐고 -_-"

3

이제 우리는 곧 스물 아홉이다. 아무래도 내년에 결혼을 할 것 같은 Y는 대학원 진학과 결혼 두 가지를 모두 해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현실이 고민이다. C는 회사에서 인사기록표를 작성해 내면서 자신이 작성할 게 없었다,며 본인이 빈칸 인간이 된 것만 같아 자기 발전을 위한 한 해를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단다. R은 그토록 하고싶어하던 다큐멘터리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문화인류학과 영상을 함께 전공하는 프랑스의 학교를 찾아, 2월, 랭귀지부터 시작해야 하는 막막한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나는, 모르겠다. 올 한 해는 안주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이런 저런 도전을 했고, 여러 번 좌절을 했으며, 지금은 그냥 안주해버릴까,라는 생각을 했다가, 떨쳤다가, 했다가, 떨쳤다가, 하고 있는 중. 적당히 안정적인 직장에서 이제 일도 많이 익숙해진, 가끔 야근이 많아 피곤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일해서 다행스러운, 현실에 안주하려면 뭐 할 수도 있겠다. 

돈도 별로 없으면서, 몸값 올리기,는 늘 내 관심사의 밖에 있다. 올 한해 관심 가졌던 곳들을 보면 그렇다. 나는 그런 곳들은 내가 '마음을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힘들게 마음을 먹었는데, 우습게도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덕분에 준비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반성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그렇지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하다. 어쩌면 자기개발,과는 거리가 먼 나의 새해 계획은 현실성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그냥 몸값 올리기,에 충실하는 삶이 더 편하고 쉬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지금의 방황들을 그만두고, 그 길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또 그 확률이 결코 적지만은 않음을 알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닌 듯 하다.

역시나 이나이 먹도록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우리들. 다시 뭔가에 도전하고, 여전히 끊임없이 고민하는, '안정'과는 거리가 먼 우리들의 삶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당황스럽지는 않다. 안정,이라는 건 어쩌면 찾아오지 않을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평생. 그러니 내가 지금 안주를 선택한다해도,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또 흔들릴 예정임을 안다. 

4

돌아오는 길 지하철, 책을 읽으며 앉아있는데, 옆자리 아주머니가 자꾸만 내게 기대온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기대는 게 아니라, 좀 의식적으로 기댄다는 느낌이 든다. 기댔다가, 몸을 뗐다가, 하는 주기, 혹은 상황을 살피면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 살짝 술을 한 잔 드신 듯한 이 아주머니는 자다 깨서 자꾸만 누구에게 전화를 건다.

나에요, 나 술을 좀 마셔서 지하철에 돈도 안내고 탔어요. 그냥 담 훌쩍 넘어서.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에게 계속 이 얘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내가 지금 지하철에 돈도 안내고 타는 일탈을 감행했으며,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나 상대는 모두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지 않는 것 같다. 자꾸만 다른 누군가를 찾는 것을 보니. 피곤한 육체를 내 몸에 기대는 아주머니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 곤한 마음을 기대고 싶었던 것 같다.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피하던 내가 아주머니의 마음에서 외로움을 읽어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상대방의 이런 마음이 읽힐 때마다, 나는 묘한 마음이 되곤 하는데, 내가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이 보일 정도로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게 실은 곧 내 모습이기에 더 알기 쉽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은 아주머니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을 체념했는지 차가운 지하철 의자 옆 쇠기둥에 몸을 기대어 잠이 든다. 사람에게 기대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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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물아홉, 귀차니즘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8-01-24 00:16 
    실은 내가 삘받으면 좀 오버스럽다 싶게 챙기는 편이다. 학교 다니던 시절 학보사 동기였던 K가 군대를 갈 때, 동기들의 편지를 쌩오버를 해가면서 다 받아내고는 그걸 접착식 앨범에 친구들 사진 한장씩과 함께 붙여서 전달해줬었다. 실은 K와 내가 그렇게 친했던 것도 아니고, 별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동기가 군대에 간다'는 사실 자체에 좀 취해 있었던 것 같다. 과도한 의미부여랄까? 연대의식 강한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친구 P가 동기사
 
 
Mephistopheles 2007-12-24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는 일도 어려울 뿐더러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는 듯 합니다.^^

웽스북스 2007-12-24 09:52   좋아요 0 | URL
아울러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 또한 어렵죠-
세상엔 어려운 일 투성이인 것 같습니다

무스탕 2007-12-2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없어 내가 허전할거라는거 알면 대처하기 좋을까요..?
그냥 그렇게 익숙해 지는거.. 조금 아쉽기도.. 조금 쓸쓸하기도..

웽스북스 2007-12-24 12:13   좋아요 0 | URL
알더라도, 사실 존재 자체를 그 무엇으로 대처할 수 있겠어요
그냥 각오하는 거죠

깐따삐야 2007-12-2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예기치 못한 순간에 느껴지는 허전함. 혼자 속으로만 짠-하죠.
2 웬디양님 반듯하고 조신한 거 맞는 것 같은데요.
3 우리가 벌써 스물하고도 아홉이군요. 되게 늙어보인다.ㅋㅋ
4 이젠 어른이어서 그런가. 기댈 때도 폼을 중시한다는.-_-

웽스북스 2007-12-24 12:14   좋아요 0 | URL
1. 의외로 사소하고 작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그런 경우가 많아요
2. 이봐이봐 이렇다니까요 ;;
3. 그죠. 스물 넷쯤에 싱글즈를 보면서 저 나이는 아직 멀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4. 역시 나이가 들면 '가오'로 먹고 살아야죠 ㅋㅋ
 



금요일 저녁엔 같이 밥먹어줄 사람 찾기가 어렵다. 아무리 야근 많은 회사라지만 금요일까지 야근하는 건 너무 우울하잖아. 갑작스런 업무 요청이 많은 광고실과는 달리 우리 실 사람들은 듀데이트가 정해진 업무를 많이 하는 편이라 금요일에 야근하지 않고 업무를 끝낼 수 있을 정도로 평일에 조정해 놓는 경우가 많다. 나도 금요일엔 거의 야근을 하지 않는다. 밖으로 떠돌지. 그런데 오늘은 일도 애매한 시간에 끝났고,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다. 집에서 좀 할 게 있어 너무 늦게 들어올 수가 없었거든. 일이 끝난 시간은 7시 반 정도.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너무 늦을 것 같고, 여기서 먹자니 혼자 먹기 좀 싫고, 샌드위치를 사먹으면 딱인데, 하필 점심 메뉴가 샌드위치였네.

그냥 집에 가야겠다, 라며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려는데 못보던 떡볶이가게가 생겼다. 갑자기 침이 스읍~ 고인다. 헤헤헤 떡볶이 먹고 가야지. "아저씨 떡볶이 1인분에 얼마에요" "2천원입니다" "그럼 떡볶이 반만 주시고, 오징어튀김 반 주셔서 2천원 어치 주시면 안되요?" 이걸 거절하는 주인은 거의 없다. 떡볶이도 먹고 튀김도 먹고싶은데 어쩌라고 ㅠ_ㅜ 떡볶이라는 것이 먹기 전에는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도 먹다보면 또 달달한 맛에 은근 질려서 그렇게 2천원어치를 시켜도 다 못먹는 경우가 태반이다. 역시 이 아저씨도 주신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떡볶이 그리고 오징어튀김. 어라 근데 이 오징어 튀김을 '그냥 준다......' 아저씨 가위는 없나요? 라는 나의 물음에 매우 곤란해 하는 아저씨 아래 쪽으로 몸을 숙이고 한참이나 가위를 찾는다. 이내 민망해진 나는 '그, 그냥 먹을 게요' 라고 이야기한다. 아 가위없이 오징어튀김 먹는거 난감한데, 나보다 아저씨가 더 난감한 것 같았다.

사실 아저씨는 날 모르지만 난 아저씨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떡볶이를 달라고 말하는 순간. 아, 여기서 신발 팔던 아저씨구나. 노점에 예쁜 구두가 가끔 날 유혹할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서서 신발들을 구경하곤 했는데 언젠가 플랫슈즈가 너무 신고 싶던 날, 그 아저씨 노점에서 한참이나 골랐던 기억이 있다. 굉장히 친절하게 잘 찾아주셨는데, 내가 맘에 들어한 신발은 사이즈가 없어서 결국 그냥 왔던 기억.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다. 사실 아저씨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그러니까, 내 눈에는 감우성, 남들 눈에는 김용만?) 로 생겨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 ㅋㅋ

왠지 결혼한 지 5년쯤 되서 3살짜리 딸이 있을 것만 같은 아저씨. 안그래도 한참동안 그 자리가 비어 있어 지나면서 그만 두셨나, 생각했는데 업종을 바꾸셔서 짜잔, 하고 나타났나보다. 오늘이 첫날인가보다. 집게질이 서툴다. 그동안 떡볶이 만드는 걸 연습하셨을 것 같기도 하고 ㅋㅋ 떡볶이는 고추장 맛이 강해 매운 밀가루 떡볶이였다. 사실 처음에 좀 실망을 했는데, 아 이 중독성. 먹을수록 맛있다. 질퍽한 떡볶이 국물이 묻은 오징어 튀김을 먹는다. 오징어가 잘 안끊어져 처음엔 밀가루만 먹고, 다음엔 오징어만 먹고.

이러던 중 옆에 또 손님이 왔다. 떡볶이 2천원 어치, 튀김 2천원 어치를 먹는다.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 아, 아저씨는 가위가 없는데, 손님은 두명이다. 떡볶이를 뜨고, 튀김을 다시 튀기는 아저씨를 보는 내가 더 불안하다.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은 튀김이 나오자 당황한다. 어, 라고 하는 순간 나의 긴장은 한층 고조된다. 순간 아저씨가 말한다. "죄송합니다. 가위가 없어요" 다행히 손님들은 이해한다. 다행히 한 명은 튀김보다 떡볶이를 더 좋아했고, 한명은 떡볶이보다 튀김을 더 좋아했다. 그래도 그 둘이 튀김을 불편하게 먹을 때마다, 난 나의 불편함보다 그게 더 신경이 쓰인다. 저 아저씨는 얼마나 더했을까.

둘이 떡볶이를 거의 다 먹자, 아저씨가 접시를 달라고 하더니 다시 한가득 떡볶이를 주신다. 서비스에요. 둘은 입이 좋아서 입이 함지박만해진다. 괜히 나도 안심이 된다. 아저씨, 저런 수완도 있구나. 그리고 아직 떡볶이를 먹는 내게 묻는다. 더 드릴까요? 나도 그 서비스를 받고 싶지만 더 먹으면 남길 것 같아서 괜찮다고 말한다. 옆 손님 둘의 친구 두 명이 또 온다. 뭐야, 니들끼리 떡볶이 먼저 먹는거야? 응, 먹어봐 맛있어. 우리는 오뎅 먹을래, 나는 떡볶이. 어, 너네 근데 왜 튀김을 다 베어먹어놨냐? 응 내가 좀 그랬어 ㅋㅋ 아가씨 마음도 착하다. 가위 탓은 하지 않는다. 왁자지껄한 사이, 떡볶이가 또 다 떨어지고, 아저씨는 접시를 가져가 다시 한가득 담아준다. 가위 탓을 하지 않았던 게 고마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우와, 무한 리필 떡볶이에요, 라며 아가씨들은 좋아하고, 덩달아 나도 같이 미소짓는다. 맛있게 떡볶이를 먹어주는 모습에 아저씨도 기쁜 듯 보인다. 아저씨가 표현하는 미안한 마음이 모두의 기쁨으로 변신뿅하는 순간. 나도 웬일로 이 떡볶이는 질리지 않는다. 당장 먹기에는 달달한 떡볶이가 맛있지만 두세개 먹다 보면 질려서 끝까지 먹어본 적은 없는데, 이 매콤한 고추장맛 떡볶이는 자꾸만 젓가락을 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한접시를 깨끗이 싹 비웠다. 옆손님들은 계속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떡볶이를 먹고, 사람많은 금요일 거리의 이 떡볶이 가게에는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기분좋게 이천원을 내고 지하철 역을 향해 갔다. 아저씨, 신발보다 떡볶이가 훨씬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내일은 꼭 가위 챙기세요! 가위가 없으면 떡을 듬뿍 챙기셔야겠어요, 그리고 오뎅 국물 맛있게 배우는 법은 꼭 부인에게 전수 받아 오세요! 라고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마음으로 되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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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2-2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쓰읍. 빠알간 매운 떡볶이 먹고 싶잖아요. -_- 오징어 튀김도 대따 좋아하는데. 자꾸만 상상돼.

웽스북스 2007-12-21 22:27   좋아요 0 | URL
오징어튀김은 자고로 생오징어에 밀가루 얇게 발라서 바삭 바삭하게 튀겨야죠, 흐흐흐 또 상상되죠? ^^

춤추는인생. 2007-12-2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훈훈해요^^ 전 떡볶이는 입맛에 잘 안맞아 밖에서 잘 사먹지 못하고 집에서 해먹는 편이지만. 이런 아저씨의 떡볶이라면 얼마든지 맛있게 먹어드릴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
맵고 짜야해요 춤인생의 떡볶이란.ㅎㅎ

웽스북스 2007-12-21 22:31   좋아요 0 | URL
아 춤인생님, 떡볶이 전 제가 하면 맛없어서 못먹어요 ㅠ_ㅠ 춤인생님이 떡볶이 만드는 법 가르쳐주시면 저도 맵고 짠 떡볶이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데요 흐흐흣 (레시피를 공개하라!)

이매지 2007-12-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요새 떡볶이에 묻힌 김말이 튀김이 너무 먹고 싶어요 -_ㅠ 아흑- 떡볶이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그 묻힌 튀김은 맛있는 ㅎㅎ

웽스북스 2007-12-21 22:59   좋아요 0 | URL
이매지님 강남역 놀러와요 (아 너무 먼가?) 이매지님한테 김말이 10개 사주고 싶은 급충동이 들었어요 ㅎㅎㅎ 그치만 난 오징어 ㅋㅋ

이매지 2007-12-21 23:14   좋아요 0 | URL
저 그러고보니 강남역에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뭐 회사가 우글거리는 동네라 갈 일이 없기도 했지만 ㅎ

웽스북스 2007-12-21 23:32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사람만 많고 별거 없는 동네랍니다 아쥬 그냥 맨날 맨날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동네 ㅋㅋㅋ 나 동생들 만나서 맛있는 거 사주고 이런거 좋아해요 흐흐흐 (시간나면 꼭 연락해요 ^^)

깐따삐야 2007-12-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빼놓고 이렇게 맛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뉘!
웬디양님이랑 떡볶이랑 튀김 앞에다 놓고 마구마구 수다 떨면 완죤 잼나겠어욤.^^

웽스북스 2007-12-21 23:3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우리 어여쁜 깐따삐야님은 어디살아요? 막 부산, 대구, 이렇게 멀리 사는 거 아니죠? ㅋㅋㅋ

깐따삐야 2007-12-21 23:36   좋아요 0 | URL
서울이 아니라서 일단 아쉽네요. 진짜 막 속상할라 그래. 그래도 "어여쁜"이란 말에 눈이 반짝.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쩌지 못한다는.-_-

웽스북스 2007-12-21 23:46   좋아요 0 | URL
흑흑 나도 서울은 아닌데, 그냥 수도권 정도 ㅜ_ㅜ
KTX가 다니나요 지하철이 다니나요 ㅠ-ㅠ

깐따삐야 2007-12-21 23:52   좋아요 0 | URL
그래도 머 사랑엔 국경도 없다는데 그까잇꺼 머 거리 쯤이야. 난 원거리 연애도 가능해욤.ㅋㅋㅋㅋ
난 충청도 츠자인데 언젠간 웬디양님이랑도 반갑게 상봉할 날이 있겠죠? :)

웽스북스 2007-12-21 23:59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충청도 츠자였구나, 좋아요 좋아요 ^^
멀지 않은 날, 반갑게 상봉할 그날을 기다려요 흐흐흐~
나는 대전은 많이 가봤는데 대전에서 내려본 적은 없어요 (기차타고 대전역만 지나가봤다는 거? ㅋㅋㅋ) 충청도는 가깝지만 참 멀게 느껴지는 곳 ^^ 깐따삐야님 덕에 한결 충청도가 정겨워졌어요 ㅋㅋ

2007-12-22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2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7-12-2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볶이 이야기 신나게 읽었는데, 충청도 츠자란 댓글에 헉~~ 나도 나도 충청도!! ^^

웽스북스 2007-12-22 00:53   좋아요 0 | URL
광주와 충청도, 제겐 둘다 낯선 동네 ^^

깐따삐야 2007-12-22 01:0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반가워요. 고향이 충청도시군요! 역시 충청도 츠자들이 쫌 착해.ㅋ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3 01:58   좋아요 0 | URL
아이고 어머니 저를 왜 충청도에서 낳지 않으신 건가요 ㅠ-ㅠ

Mephistopheles 2007-12-2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몇 줄을 읽으면서 으이구 연애 하세요 웬디양님..이랬다가 자연스럽게 떡볶기를 향한 식탐으로 앞의 말은 그냥 넘어가버렸습니다.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2 00:54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 떡볶이 사주세요 메피님

깐따삐야 2007-12-22 01:07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 저도 사주세요 메피님^^

Mephistopheles 2007-12-22 02:26   좋아요 0 | URL
애인들 만들어서 같이 오시면 떡볶기가 뭡니까 순대 오뎅이 뭡니까. 제가 떡 벌어지게 한 턱 낼께요..오호호호

푸하 2007-12-22 02:52   좋아요 0 | URL
메피님 저도 사주시면 감사히 먹을께요.^^;

웽스북스 2007-12-22 03:23   좋아요 0 | URL
흠. 푸하님과 함께 연기를 해볼까? ㅋㅋㅋㅋ
푸하님 떡볶이를 위해 잠시 영혼을 팔 수 있나요? ㅎㅎ

푸하 2007-12-22 03:39   좋아요 0 | URL
아니 연기를 하려면 시나리오를 감추셔야죠... 인제 얻어먹을 길이 막연해짐. 책임지셔요^^

무스탕 2007-12-22 10:59   좋아요 0 | URL
저도 애인 만들어서 델꼬가면 머 사주세요? +_+

웽스북스 2007-12-23 02:00   좋아요 0 | URL
제 사진은 보셨을테니, 이 분은 푸하님이 아닙니다,라고 하고 가면 되지요 (라고 하는 순간, 떡볶이 먹는 길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인가 ㅋㅋㅋ) 그리고 무스탕님, 흠, 그건, 쫌 ㅋㅋ +_+

다락방 2007-12-23 14:32   좋아요 0 | URL
저도 떡볶이 사주세요 메피스토님. ㅎㅎ

라주미힌 2007-12-22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떡볶이 먹고 왔는뎅... 순대볶음이랑... 둘 다 맛이 ㅡ..ㅡ;
냉동실에서 막 꺼내서 데운 듯 했음..
으흐. 그래도 다 먹었지요... 맛보다는 겨울의 흥취라고나 할까..

웽스북스 2007-12-22 03:23   좋아요 0 | URL
흐흐흐 또 이런날 길에서 떡볶이 한번 먹어주는, 그러면서
오뎅국물 호호 불며 먹어주는 맛이 있어야지요 ^^

푸하 2007-12-22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밌게 쓰다니...
속에 이야기가 많은 츠자군요.^^;
저도 떡볶이 일인분을 딱 갈라 튀김과 섞어 먹어요.

웽스북스 2007-12-22 03:24   좋아요 0 | URL
이런걸 재밌게 보다니...
속에 떡볶이가 많은 총각이군요
떡볶이 취향도 비슷하고 ㅋㅋ

Mephistopheles 2007-12-22 09:40   좋아요 0 | URL
와 불붙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3=3=3=3

웽스북스 2007-12-23 02:01   좋아요 0 | URL
매운떡볶이를 먹으면 입에 불이붙지요 ㅋㅋ

무스탕 2007-12-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아파트 단지는 금요일에 장이 서요. 어제 애들에게 순대를 먹이자! 결심을 하고 순대를 주문하는데 옆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가래떡 뚝뚝 끊은 떡볶이가 저를 유혹하더군요. 지금 입병이 나서 매운것에 쥐약인데 어찌까.. 하다 그냥 왔지요 -_-;;
웬디양님 페이퍼 보니 어제 놓친 떡볶이가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다음주엔 꼭 사먹어야지!!

웽스북스 2007-12-23 02:02   좋아요 0 | URL
가래떡 떡볶이, 표면적이 넓어 떡볶이 국물이 맛있게 스읍 스며들죠. 입병이 원망스러웠게겠네요 ㅠㅠ 다음주엔 꼭 사드세요 입병 꼭 나으시고요 ^^

마노아 2007-12-22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집 아래 층 방앗간에서 떡볶이를 파는데 2천원 어치는 너무 많고 게다가 지나치게 매워서 다 못 먹거든요. 그래서 어린이들 애용하는 '컵떡볶이' 500냥짜리를 애용하기로 했어요. 근데 민망해서 아무도 없을 때만 두 번 시켜봤어요. 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3 02:02   좋아요 0 | URL
아 우리동네도 그런거 있음 좋겠네요 ㅋㅋ

2007-12-23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4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12-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훈훈한 모습...보기 좋아요. ^ㅡ^

웽스북스 2007-12-25 01:32   좋아요 0 | URL
엘신님도, 주말에 훈훈한 일 하고 오셨잖아요 ^-^
 


음주페이퍼...히...나도 꼭 써보고 싶었다. 흐흐흐흐 ^^ 늘 집이 멀어 올 때쯤이면 께니까, 맨정신이었는데, 오늘은 집에서 마셨기 때문에 알딸딸한 상태가 유지된 가운데 써볼 수 있다. 아 좋아라.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원래 무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빠기에, 이런 건 꼭 내가 나서서 챙겨야 한다. 퇴근 길에 와인 한병과 케잌을 사왔다. 실은 우리집은 워낙 신실함을 표방하는 가정인지라(! -_-) 가족끼리 술한잔 마실 일도 없는 데다가 와인은 더더욱 마실 분위기가 안된다. 글라스는 저쪽 어디 구석에서 찾아 먼지 쌓인 걸 닦아서 마셨다. 트리오메를로를 사오려고 했는데 돈을 아낀다고 비슷한 맛으로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뻬르아 슈발이라는 생떼밀리옹을 추천 받았다. 가격 차이는 7천원 밖에 안났는데 맛의 차이가 좀 많이 나서 속상했던.

실은 집에서 가족들이랑 와인을 마신 게 처음이라 코르크를 처음 따봤는데, 아!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나 코르크마개 짱 잘연다. 완전 통쾌하다. 밀려올라오는 코르크가 주는 그 희열이라니. 흐흐흐흐흐.

엄마 아빠는 꼭 29년을 살았다. 넉넉하고 풍요롭게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한테 감사한 건 나를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늘 키워주셨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돈이 없다'는 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그게 인격 형성 과정에서 컴플렉스가 돼버린 사람도 많은데, 엄마 아빠는 일단 돈이 없어도 '가오를 잡느라' 그랬는지, 최대한 자식들 앞에서는 티를 안내려고 애쓰셨다. 그래서 내가 좀 철이 없이 자란 면도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내가, 마음만은 여유롭게 자랄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감사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구속에 주눅들어 자란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또 자유롭게 자랄 수 있었으니 고맙다. 방목당했다고 말하고 다니기도 하고, 엄마는 날 정말 편하게 키운 거라며 말도 안되는 생색을 내기도 한다. 이유는 "나는 가출을 안했잖아" 뭐 이런 생뚱맞은 것들 -_- 하지만 실은 나는 엄마가 나를 키운 것처럼 내 자식을 키우고 싶다. 엄마 아빠가 내게 허락했던 자유로 인해 내가 조금이나마 넓어질 수 있었다.

나를 이렇게 키워온 것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요즘 들어 더욱 느끼고, 그래서 더더욱 감사하다. 거기에 뭐 플러스 알파로 몇가지 욕심이 더 나긴 하지만, 나중에 자식을 낳더라도 기본은 엄마가 나를 키웠던 방식을 중심으로 키우고 싶다. 물론 나의 깜냥으로는 플러스 알파는 커녕 엄마 아빠가 나를 키운 만큼 키우는 것도 가능할런지 모르겠다. 쓰다보니 내가 디게 잘 자랐다는 말 같아서 좀 재수없다. 그런 의도는 아니다. -_- 그냥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 있을 때도, 최선을 다해 키워주신 게 고맙다는 순수한 의도로 부디 읽어주시길.

앞으로 엄마 아빠의 결혼 기념을 몇번이나 더 챙겨드리게 될까. 우리집은 내가 안챙기면 아무도 안챙기는데. 나중에 내가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그 전에 아빠 매너교육 좀 시켜드려야 할텐데, 도무지 경상도 남자라 재미나 아기자기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그래도 같이 한자리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하며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니 참 좋다. 나로 인해 가족이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도 가족에게 내 시간 내주는 것도 아까워하는 이기적이고 쪼잔한 가족 구성원이다. 엄마에게 옷이나 화장품을 사주는 일이 엄마와 함께 영화 한편을 보는 것보다 더 쉬운, 마음을 내는 일보다 돈을 내는 일이 더 쉽고 편한.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참 싫지만 참 더럽게도 안변한다. 엄마가 나에게 무심하다고 일곱번쯤은 시위해야 영화 한편을 보러 귀찮은 발걸음을 뗀다. 종종 엄마와 얘기하다 보면 내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일부러 그런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그런 스스로를 볼 때면 참, 남한테 하는 것보다도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암튼, 엄마는 술을 사는데 돈을 많이 썼다며 불만을 표했고, 한잔 마시고서는 달달한 맛도 없다며 더 불만을 표했지만, 아빠는 맛있게 드셔주셨다. 오늘 마신 와인은 내가 생각해도 좀 불만족스러웠다. 마시다보니 또 은근 매력이 있긴 했지만, 몇천원 더 주고 살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과의 정치 얘기는 어쩐지 껄끄러워 피해만 왔는데 오늘은 아빠가 누구를 찍을 건지 물어본다.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얘기한다. 경상도 출신인 아빠는 당연히 이명박을 지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권영길이 제일 잘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다. 물론 안될 것 같아서 찍지는 못하겠다고 하신다만, 나로서는 굉장히 의외다. 아빠를 또 너무 내 잣대로만 봤나보다. 아빠가 이명박을 지지할 거라는 생각은 거의 확고했는데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아빠, 플러스 백점. 역시 대화를 해야 이런 것들도 알게 되는데 나는 지레 짐작하고 묻지도 않고, 충돌할테니 물어보지도 말아야지, 해버리고 말아왔다. 앞으로는 한달에 한번이라도 이런 자리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

죽어라 타이핑을 하다보니 술이 점점 깬다. 알딸딸함도 사라진다. 아무래도 이런 알딸딸함을 사랑하다가 내년 한해 알콜중독에 시달리는 건 아닌지. 그럼 알딸딸 중독, 알콜중독에, 알라딘 중독. 왠 알브라더스의 트리플 콤보 공격 맥스로 인한 시너지효과 창출이란 말이냐. 이런 유치한 발언 역시 알딸딸함이 주는 선물. 술 더 깨기 전에 얼른 잠들어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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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주페이퍼 주의사항
    from 승주나무의 책가지 2007-12-19 10:18 
    술 엄청 먹고 기어들어오다..  웬디양 님에게 음주페이퍼의 전형을 보여드리려 했는데~ 깨달은 거는 음주페이퍼를 쓰기 위해서는 술이 완전히 꼴아서는 안 된다는 거다..  난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다!! 술먹고 아침에 속쓰려 일찍 일어
 
 
깐따삐야 2007-12-18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댓글을 남겨야 아침에 일어나도 못 지우겠지? 흐흐. 웬디양님 안 그런 척 하고 있지만 효녀 맞네요. 이 야밤에 주무시는 부모님을 보며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는.-_-

푸하 2007-12-18 01: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댓글이 음주페이퍼 지우는 거 막는 거 같아요.^^;

웽스북스 2007-12-18 02:00   좋아요 0 | URL
누구나 다 일면 효녀고 또 일면 불효녀겠죠 ^^ 저도 얘들이 극과 극으로 공존해요. 깐따삐야님 푸하님 근데 다들 이시간까지 안자고 왜그래요~ (자러가야지 글써놓고 댓글 다는 나는 또 뭔가 -_-)

푸하 2007-12-18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일기라고 기대하고 왔더니 오자도 없고 주제도 잘 잡히고 표현도 명료한 편이네요...--;
이 글은 음주페이퍼의 특질을 못갖춘 듯... 담엔 더 흐트러지세요(흐드러지세요).^^:

웽스북스 2007-12-18 02:00   좋아요 0 | URL
제가 취할 때마다 하는 말이 늘!
그래도 정신은 멀쩡해요~~~ 랍니다. 살짝 업되고 감상적이 됐지만 지금도 정신은 멀쩡해요! 그치만 아침 출근길에 생각해내고는 분명 또 지워야지 하면서 회사로 달려갈 거에요 ㅋㅋ

Mephistopheles 2007-12-18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주페이퍼치고는 맞춤법이 지나치게 정확하군요.=3=3=3=3

웽스북스 2007-12-18 12:11   좋아요 0 | URL
캬캬 술을 마셔도 맞춤법 틀리는 건 싫어해서 그런가? ㅋㅋ

다락방 2007-12-18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주페이퍼치고는 내용도 교훈적이예요. 후훗 :)

웽스북스 2007-12-18 12:1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제목을 '교훈적인 음주페이퍼'로 바꿔야하려나? ㅋㅋ

마늘빵 2007-12-18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덜 취했단 증거에욧. 담번에 더 마시고 쓰세욧. :)

웽스북스 2007-12-18 12:12   좋아요 0 | URL
흐흐 맞아요
심지어 끝부분 쓸때 쯤에는 슬쩍 깨나더라는 ㅋㅋ
(그냥 음주페이퍼라는 이름이 갖고싶었어요 흑흑)

승주나무 2007-12-1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이 글은 음주페이퍼의 요건을 갖추기에는 술이 너무 적고 대신 정신이 너무 맑네용~~ 아무래도 아침의 결과를 생각해서 몸을 사리시는 듯..
그래도 중간중간에 알딸딸한 맛이 나니까 매콤하네용.. 다음에 함 도전해봐야게따~~ 끊긴 필름으로 페이퍼 쓰기.. 음주 페이퍼는 역시 시비돌이 표~ ㅋ

웽스북스 2007-12-18 12:12   좋아요 0 | URL
중간중간에 알딸딸함을 느껴주셨다니 감샤
시비돌이님은 제가 도무지 따라갈 수 없지요 ^^

비로그인 2007-12-1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주페이퍼의 전형은 뭔가요?
갑자기 무지 궁금해지는군요.

푸하 2007-12-18 11:10   좋아요 0 | URL
음주페이퍼를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의 하나를 저는 이렇게 봐요.
아슬아슬한 형식(오자, 중언부언 같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취중진담' 비슷한 뭔가 언뜻 내비치는 진실 같은 것이 들어간 그런 거요.^^;

웽스북스 2007-12-18 12:13   좋아요 0 | URL
푸하님, 역시 똑부러지는 데가 있군요 ^^
승연님 대답이 되셨길
전 아무래도 자격 미달? ㅋㅋ
(수정해서 막 오자 구겨넣을까?)

웽스북스 2007-12-18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드백과 방문자 수, 뭐 이런 걸 보니 어쩐지 낚은 것 같다 -_-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ㅋ

깐따삐야 2007-12-18 17:55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음주페이퍼 보고 문득 삘 받아서 나도 오늘 엄마한테 효도 한 가지 했어요. (가끔 삘 받을 때만 효도한다고 이실직고 중.-_-)
이만치 휴머니즘과 모럴리티가 살아있는 음주페이퍼 있음 나와 보라구 햇.ㅋㅋ

웽스북스 2007-12-18 19:05   좋아요 0 | URL
역시 난 음주를 해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나 뭐라나 쿨럭.....! -_-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