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전 K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문득 스무살의 내가 참 반짝거렸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그 때의 내가 온맘으로 누군가를 빛나게 하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정작 빛나고 있던 건 그 때의 내 마음이었다.
이젠 다시 그 때의 순수한 절박함을 닮기는 힘들 것 같다,라고 하면
슬픈 일일까, 덤덤한 일일까.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 때의 마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양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스무살의 나를 생각하면 가끔 아찔해지더라는 그 농담아닌 농담 뒤에서 나는,
내심 그 때의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질펀질펀하게 맥주를 마시며
처음에는 베바 방영시간에 눈을 감고,
다시 다가온 막차시간따위 알면서도 모른척해주시며
그저 깔깔거리기 바쁘던 오늘의 나는, 스무살이었다.


2

이전에는 만나서 옛날얘기만 하는 관계들은 참 후지다, 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만나서 건설적인 얘기만 하는 관계보다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과거의 어떤 시간이 있어,
그것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추억이고 위로가 될 수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얘기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진상을 떨게 되서 좀 민망하긴 했지만 말이지.


3

오늘은 맥치, 담번엔 와치.
이들과 술잔을 기울이게 되는 날이 올줄이야. ㅎㅎㅎ


아. 졸립다. 출근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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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11-07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또리또리한 분이였구나^^ 음주중에도 말이야. 스무살의 나도 반짝였다고, 믿고 싶어요. 음주 페이퍼인데 너무 좋잖아요.

웽스북스 2008-11-08 14:24   좋아요 0 | URL
겁이 많아서 그래요. ㅎㅎㅎ
좋았다니, 고마워요~!

Mephistopheles 2008-11-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주가 추억이였다면 숙취마져도 달콤할껍니다.

웽스북스 2008-11-08 14:25   좋아요 0 | URL
제가 원래 숙취는 별로 없답니다. ㅎㅎ
그 시간이 참 달콤했던 것 같아요. 정말.

무스탕 2008-11-0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뉫-! 출근하셔야 하는 분이 새벽 세시까정 뭐 하신거에욧-?!
그래, 지금 속은 괜찮으세요? :)

웽스북스 2008-11-08 14:26   좋아요 0 | URL
헤헷 네네 괜찮아요. 회사는 10분 늦었지만. ㅋㅋㅋ

Jade 2008-11-07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에서는 '치맥'이라고 불러요 ㅎㅎ

아 치맥 땡긴다...

웽스북스 2008-11-08 14:27   좋아요 0 | URL
오옷 치맥, 왠지 어떤 과자 이름일 것만 같아요. (보리로 만든 치토스? ㅋㅋㅋㅋ) 그냥 줄임말로 써본 거였는데, 정말 그렇게들 부르고 있는 사람이 있을줄이야. ㅋㅋ
 


점심시간에 밥을 패스하고 아래층 다방으로 내려가 책을 좀 읽고 있다가 올라가니 C가 묻는다.

C : 요가갔다왔구나
W : 아니
C : 그럼, 잤어?
W : 아니
C : 그럼?
W : 책봤어

C는 이런 뭥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W : 나 요즘 대인기피증 생겼나봐. 사람들이랑 마주보고 밥을 먹기가 싫으네

C는 더욱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비웃기 시작한다.

C : 너 올해 목표가 뭐였는지 기억나?
W : 응? 올해 목표?
C : 그래, 올해는 질퍽질퍽하게 살겠다며

쿵.

아 맞다. 올해는 질퍽질퍽하게 살기로 했다. 쿨함을 지향한다는 C를 비웃으며 했던 말이다. 제법 노희경 드라마 말까지 흉내내면서, 얘, 인간이 어떻게 쿨할 수 있니? 나는 올해 무조건 질퍽거리면서 사람들한테 치대면서, 끈적끈적하게 살테야, 라는 말을, '겁도 없이' 내뱉었었구나.

(우씨,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좀 질퍽질퍽해져서 대인기피증이 생긴걸지도 몰라. 쿨한거랑 팀이랑 밥 안먹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쿨하면 그냥 웃으면서 먹어야지. 그치 않나?) 라는 반항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냥, 잊고 있었던 목표가 떠올랐다는 게 중요한 거다. 내가 그런 목표를 세웠었지. 그런데, 모르겠다. 쿨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우겼으면서도, 나는 어느 순간, 쿨해지는 게 더 쉽다는 걸 깨달았나보다. 질퍽함을 걷고 난 뒤 신발 뒤꿈치에 묻어있는 끈덕끈덕한 진흙같은 감정들을 내 손으로 닦아내거나, 혹은 여기저기 묻히고 다니는 게 나는 아직도 그렇게 싫은가보다. 그래서 아스팔트 깔린 매끈한 길로만 다니다 보니, 갈 수 있는 길은 그저 여기까지. 그래도 난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성가시게 닦지 않아도 되니, 편안해, 라고 말하긴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아직 거기에 서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저런 목표를 세우고, 자신 있게 공표까지 했건만... 까먹다니. 까먹다니. 도무지 목표는 뭐하러 세운단 말이냐. 그러게 목표는 한가지만 세워야지, 왜 이틀에 한번씩 목표는 세워서 공표하고 까먹고 못지키고 망신당하고의 악순환을 반복하는게냐, 라며 자책하지만, 그게 어디 '목표 실행' 이라는 하잘것 없는 이름 하에 가당키나 한 일이더냐. 암튼 올해도, 참, 다치지 않고 '잘' 살았구나. 그런데, 내가 참 잘 살고 있구나, 라는 허망한 믿음이 무너지는 건 언제나 한 순간이다. 돌아보면 잘 살지 못했으니까.

난 여전히 C가 쿨함을 지향한다고 하면 비웃을 작정이고, 나는 질퍽하게 살겠다고 말해줄 작정이다. 난 여전히 쿨함보다 질퍽함을 지향한다. 이건 C가 쿨하지 못한 인간임을, 또 내가 질퍽하지 못한 인간임을 반증하는 예이다. 사실 우린 비슷한 류의 인간이다. 뼛속까지 쿨하지도 못하면서 질퍽한 인간도 되지 못하는. 다만 뼛속과 뼈밖의 괴리가 괴롭기에, 그녀는 뼛속의 쿨함을, 나는 뼈밖의 질퍽함을 추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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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9-16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밥 먹은 난 뭥미? ㅎㅎㅎㅎ

웽스북스 2008-09-16 22:01   좋아요 0 | URL
아니, 사실 저녁도 굶으려고 했는데....
점심 굶었더니, 저녁에 너무 배가 고프잖아요 -_-

(대인기피증을 능가하는건 배고픔? 막이러고 ㅋㅋㅋ)

2008-09-16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6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8-09-17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쿨한 것, 쿨한 사람이 싫어요. 웬디양님이 쿨하기로 작정이라도 한다면 난 정말 고민에 빠질 거예요. 계속 친구해야 되나, 하고. 우리 질퍽하게 살아요. 그러기 위해서 노력해요, 응?

웽스북스 2008-09-17 00:51   좋아요 0 | URL
그죠 네꼬님, 저도 쿨한 것, 쿨한 사람이 싫어요.
그런데 저 자꾸만 쿨한 척을 해서요. 응, 응, 일단 머드팩 기꺼이 바르겠다는 사람은 구해놨으니, 네꼬님은 제가 머드팩으로 변신하기 전에 인생 선배로서, 질퍽 특강을 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좋아요, 네?

치니 2008-09-17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이런 말 하면 쿨 하다고 네꼬님이랑 웬디양님 싫어할까봐 망설이다가 ㅋㅋ),
점심시간에 밥 패스하고 혼자 책 읽고 싶어지는 것이 하나도 안 이상한 그런 사회에 살고 싶어용.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는 그런 사회.

웽스북스 2008-09-17 09:21   좋아요 0 | URL
치니님, 제가 위에도 투덜투덜거리긴했지만, 그건 쿨한거랑 상관 없는 것 같아요, 진짜 쿨한척 하는 건 내가 사람들이랑 밥먹기 싫어도 으하하하 하면서 먹는거 아닐까, 라는 자기합리화 ㅋㅋ 어음, 그건, 그러니까, 내가 너무 자기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어서 그런 걸 거에요, 그죠 그죠? (이제 막 다그치고 ㅎㅎ 내가 이래서 인간이 안변해요 ㅋㅋㅋ) 암튼 전 오늘도 점심 패스할거란말이죠 ㅎㅎㅎ

에디 2008-09-1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정말 치니님 말씀처럼 점심시간에 혼자 놀아도-.- 안 이상한 사회에 살고 싶어요. 라고 쓰고 보니, 이미 사람들이 날 충분히 이상하게 보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이 드네요-.- 저도 오늘 시도해 봐야겠어요. (근데 배고프겠....)

전 관계에 있어서는 좀 쿨한것도 좋지 않을까 -.- 생각해요 (네꼬님이 싫어하시겠다.)

웽스북스 2008-09-17 12:08   좋아요 0 | URL
네 사실 저 점심시간에 혼자 자주 놀아요
별로 안 이상하게 보기도 하고요 ㅎㅎ

다만 괜히 소심해져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또 같이 먹어야지
이러고있어요 ㅎㅎ

주이님도 지금 굶고 계신가요? ㅎㅎㅎ
(다들 여기서 막 네꼬님 눈치보고 ㅋㅋ)

다락방 2008-09-18 10:47   좋아요 0 | URL
나는!

쿨하든 뜨겁든 뭘하든간에,
주이님과 웬디양님이 배고프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웽스북스 2008-09-18 18:23   좋아요 0 | URL
저 오늘 배고파서
점심 굶고 결국 햇반에 컵라면 냠냠 ㅋㅋ

2008-09-17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7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집에 오니 큰 택배 박스가 있다. 어 저거 뭐지? 잡지인가?

친구 H가 에디터로 있어 3년째 정기구독하고 있는 모 잡지. 박스가 커서, 우와 디게 큰 선물인가보다, 하고 신나는 마음으로 박스를 열었다.

에이... 창간호를 맞아 '선물'이라는 주제의 별책부록을 함께 보냈는데 그 책이 너무 커서 큰 박스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약간 실망스런 마음으로 잡지를 꺼내 그 큰 별책부록의 내용이 대체 뭔가 하고 펼쳐봤다. Editor's Letter 라는 코너에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은...'이라는 제목으로 에디터들이 쓴 글들이 나열돼 있다.


그러고보니 며칠전, H가 메신저로

아,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 뭐였는지 써야되는데...... 뭐라고 쓰지? 라는 고민을 했었다. 같이 고민을 해주면서 아, 나는 H가 기억할만한 최고의 선물을 준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 좀 미안해졌다.

"야, 뭐 그렇게 주제가 어렵냐. 나한테 쓰라고 해도 못쓰겠다, 생애 최고의 선물이라니..."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도 H가 뭔가 떠올려내긴 했구나, 라고 생각을 하며 그녀의 이름이 적혀진 쪽을 읽어내려갔다...



계절과일, 콩, 뻥튀기, 먹거리를 귀찮아하지 않고 매번 사주고 해주시는 엄마. 자조적인 넋두리를 늘어놓은 리포트에 '글 계속 써라'라고 격려해 주셨던 김연종 교수님, 출판하신 책 머리말에 고맙다며 인사를 남겨주신 류대영 선생님, 그리고 친구 조선아, 성격 참 안맞지만 그래도 사심 없는, 하나 있는 친구 돼 줘서 고마운. - 뷰티 에디터 H


아, 우리가 성격이 참 안맞긴 하지, 그래도 오랜시간 친구하고 있는 거 서로가 참 신기해 하지. 장난처럼 나니까 니옆에 있는다고 말하긴 하지만, 사실 나도 항상 고맙다. 장난처럼 늘 '간택'받은 친구라고 말하고 다니기도 하고. ㅎㅎ H에게 바로 감동이라고 문자 보내고, 엄마한테 자랑하고... 글을 보더니 엄마가 H도 너랑 자기랑 성격 안맞는건 아나보다. 라고 얘기하신다. 하하. 모를리가 없잖아. 나도 괜히 읽고 또 읽고, 헤벌쭉 웃어본다. 선물을 주지 못한 게 미안했는데, 선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의 기쁨이라니. ^_^

고맙고, 고마워서 또 고마운 밤, 이 밤 나도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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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08-21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완전! 전 이 페이퍼가 선물인데요.^^

웽스북스 2008-08-21 19:37   좋아요 0 | URL
헤헷 ^_^

마늘빵 2008-08-21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 누군지 참 착하다요. 웬디양님과 친구해주고. =333

웽스북스 2008-08-24 16:19   좋아요 0 | URL
흐흐흣 그럼요 그럼요 착하죠~
 



1

사당역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는 생각밖에 할 게 없어, 오늘 나눈 얘기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당신들이 내게 새벽의 찬 공기와도 같은 존재같다는 생각을 한다. 당신들을 만나고 나면 코끝이 뚫리는 것 같고, 숨통이 트이며 시원해지는 것 같은 마음. 당신들은 분명 내게 위로자가 되어주지만, 나는 현재 나의 삶에서 당신들의 몫을 위로자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거기에서 그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아오고 나면 잠이 안온다. 생각할 게 많아서, 그게 기쁘고 또 참 고마워서. 괜히 헤헤거리고 좋아하면서 당신들 중 아무도 내 앞에 없는데 나 혼자, 함께함이 참 좋다고 주절주절거린다.


2

그래도 서러운 건, 우리 중 대다수가 여전히 공부중이라는 건데, 직장인의 신분인 내가 그들만큼 공부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에, 앞으로도 공부할 수 있는 양으로는 내가 절대 그들을 따라갈 수 없겠지, 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좀 부럽기도 하고 샘나기도 하고 그렇다. 몸과 마음은 안따라주면서, 욕심만 많다. 하하하.


3

y는 나와 설거지를 하다가 내게 (밥벌이의 수단으로) 글을 왜 쓰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이 글을 쓸 정도의 깜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스킬의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가 넓지도, 깊지도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글을 쓴다는 건 스킬보다는, 결국 무엇이 담겨있느냐,의 문제이고, 내 안에는 잘 담아낼 컨텐츠가 매우 미약하니까.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이건 내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인데, 글을 쓰는 직업을 택한다면, 그로 인해 쓰게 될 생각과 마음에 반하는 글들을 내가 견뎌낼 자신이 없다. 글을 씀으로써 생각을 정리해나가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글을 쓴다,는 행위에 어쩌면 필요 이상인지도 모를, 민감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짧으나마 미약하나마 경험을 했었고, 괴로웠고, 나는 그냥 그런 것과 상관 없는 일을 하겠노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글은 이렇게, 일기나 잘 쓰면서 살 수 있으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고.

그래도 일기로 쓰여질 소소하고 소박한 생각 정도는 어렵잖게 표현하고 살 수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지. 그런데, 때로는 그조차 참 어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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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30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동감하며... ^^

웽스북스 2008-06-30 23:14   좋아요 0 | URL
그래도 계속 쓰다보면 더 좋아지겠죠? ^_^

도넛공주 2008-06-30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저는 마음 한구석에서 막 청량한 바람이 불어요.왜 그럴까나.다혈질의 글은 뜨거워야 하는데=33

웽스북스 2008-06-30 23:14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어설픈 다혈질이라서 그래요 ㅜㅜ

니나 2008-06-3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라인 계주에 이은 오프라인의 계주. 그 때 4학년 1학기, 기숙사 떨어졌던것을 주님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려야겠다.

웽스북스 2008-06-30 23:14   좋아요 0 | URL
그치 그치
어후, 그때 붙었으면 어쩔뻔했니

나 계주역할 좀 짱이지? ㅋㅋ
 



퇴근길, 090으로 시작되는 전화가 온다. 광고전화인 것 같아 받지 않으려다가 혹시나 하며 받았다. 군대에 있는 M의 수신자부담 전화였다. 전화가 끊길새라, 엘레베이터 문이 열린 틈을 타 얼른 내렸다. 그리고 컴컴한 계단을 내려가며 M과 통화를 했다.

요즘같은 때 군대에 있는 너도 참 답답하고 힘들겠다,고 말했다. 예전에 M이 내 방명록에, 자기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 친구들이 우경화돼있는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하다고 얘기했던 게 생각이 나서였다. 그리고 오늘은 전경으로 가 있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했다. (어제 시사인을 보니 전경들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데, 분노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권리, 옳다 믿는대로 행동할 권리, 모든 권리들을 박탈당한 그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더 화나는 건 현장에는 전경을 보내놓고 자신은 승진 시험을 준비한다는 현직 경찰들의 모습이다. 암튼 이건 곁가지이고) M은 이런 시기에, 이런 곳에 있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그만큼 여러 부분들에 대해 고려해보고 생각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군대에는, 휴가에 나가더라도 절대 촛불집회에는 참여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진 상태라고 들었다. 물론 나는 7월에 휴가를 나온다면 군인 불복종을 몰래 해볼 것을 권유할 생각이지만. 군인이기 이전에 국민이니까.

너가 아마 군대에 가지 않았으면 우리는 한 두어번쯤은 같이 촛불을 들지 않았겠니. 라고 얘기했고, M역시 동의했다. 교회 사람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나들목교회의 니나와 성공회교회의 E언니를 보며 나는 정말 부러웠던거지. 그러면서 M이 있었다면 예배 마치고 한두번쯤은 같이 나갔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밤새 메신저로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며 균형을 잡아가던 대화상대 하나가 사라지니 이리 아쉽구나. 요즘의 우리는 정말 할 말이 많았을텐데. 함께 안타까워하며, 분노할 현실이 이렇게도 많은데.

돌아와 M에게 책을 보냈다. 군대에 가기 전에 매월 보내기로 했던 뮤지컬지와 배송료를 아끼기 위해 늘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책 한권. 그리고 쫀쫀하게 400자로 제한돼 있는 100원짜리 알라딘 선물 메시지에 (알라딘은 메시지 글자수를 늘려달라! - 귀찮아서 편지는 못쓰는 1인) 짧은 바람을 담았다.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한국 교회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프레임이 되고 싶다고. 물론 지금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나를 통해. (어후, 지금의 나는 절대 안되지)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좀 더 다듬어져야하고, 내가 좀 더 올바르게 서야겠다고. 평생 노력해도 되기 어려울 확률 매우 농후한, 그리고 자칫 보면 매우 교만하고 위험해보일 수 있는 이런 바람이 요즘 자꾸만 생각과 마음에 스민다. 이런 바람을 가지고 올바르게 서고, 그 마음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요사이, 점점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 교회의 총체적 위기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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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6-1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의 인간관계를 보면 부럽단 생각을 곧잘 해요. 좋은 지인들을 두루 둘 수 있다는 것은 웬디님이 그들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어주기 때문일 테죠. 좋은 사람 웬디님을 알고 있는 나는 그래서 복된 사람이에요. ^^

웽스북스 2008-06-18 00:20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사실 합해보면 몇명 안돼요, 알고보면 니나가 K가 되기도 하고 M군이 H군이되기도하고 썼던 사람 얘기 또쓰고 또쓰고 그러는 거에요- ㅎㅎㅎ 그치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인 건 맞아요. 그래서 저도 참 기쁘고 좋아요- 그리고 지금 마노아님에게도 슥삭슥삭 마수를 뻗치는 중이에요 흐흣

Jade 2008-06-18 12:59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저는 K도 될수있고 J도 될 수 있는데 저에게도 마수를 좀 뻗쳐주세요 ㅋㅋㅋ

웽스북스 2008-06-19 23:45   좋아요 0 | URL
제이드님에게는 이미 뻗쳐진 마수가 너무 많아요 ㅎㅎ

라주미힌 2008-06-18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 인기가 좋죠...
주위가 산만한 평화주의자라고나 할까 ㅎㅎㅎ
평화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
지갑도 잘 놓고 다니고...

웽스북스 2008-06-18 01:30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 수완이 좋죠
티안나면서도 은근 배후세력이라고나 할까나?
평화주의자를 잘 이용하시는 ㅋㅋㅋㅋ

Arch 2008-06-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은 댓글에서 더 빛을 발하세요. 전 웬디양님 덕분에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초큼 달라보여요.

웽스북스 2008-06-18 12:45   좋아요 0 | URL
어후 시니에님 이렇게 말하니까 댓글 달기 부담스럽잖아요
빛을 발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반짝반짝~~~ 하고 덧글을 달 수도 없고 (아 초유치 ㅋㅋㅋㅋ)
시니에님은 글 자체가 반짝반짝 빛나던데요 뭘~

블리 2008-06-1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웬디양의 이 글을 보니, 요즘 듣고 있는 여름성경학교 파이디온 강습회 주제가 생각나네...그 분의 마음을 갖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며, 백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도자, 느헤미야, 일은 나누고 힘은 모으는 진정한 공동체, 그 가운데 축복의 통로로 서가는 '나는 하나님의 리더'... 아이들에게 그리 가르치려면, 세상에 외치려면 먼저 나와 우리가 그런 모습이여야겠지? 근무 중이라 두서 없지만 무슨 말인지 웬디는 알리라 믿어~^^
웬디양의 이 글에 그은 밑줄.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한국 교회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프레임이 되고 싶다고.' (동감~)

웽스북스 2008-06-18 12:45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나, 라고 바라는 거겠지요
지금의 내가 프레임이 된다면
어후, 안돼요 안돼 ㅋㅋㅋ

니나 2008-06-19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니나킴~ㅋㅋ 나는 좋은 교회를 다닐뿐,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한 천오백년은 걸릴 것 같다;;

웽스북스 2008-06-19 23:46   좋아요 0 | URL
당신은 기준이 너무 높구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