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집에 돌아오니 11시쯤이었나. 노트북을 켜고 일기를 쓰려는데 엄마가 방으로 들어온다.
그것 좀 알아봤니?
알아봤을 리 없다. 나는 늘 그런 식이다. 엄마는 예전부터 상담심리 교육을 듣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며 관련한 광고가 신문에 났으니, 사이트 좀 들어가서 정보를 봐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 노트북 옆에 앉았고, 나는 쓰던 일기를 잠시 하단 바에 내려놓았다. 사이트에 들어가 이런 저런 정보들을 같이 읽었다. 50만원을 조금 넘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수업을 듣는 코스. 라는 정보 외에 홈페이지에 그렇게 많은 정보는 없었던 터라 쉽게 끝났다. 자, 나는 다시 일기를 써야 한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할 일들이 쌓여 있다. 그런데 엄마가 나가지 않는다.
나는 성격이 못되먹어서, 옆에 누가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런 사람이 기숙사 생활은 어떻게 했고, C와는 어떻게 1년도 넘게 살았는가를 묻는다면, 그들은 이 공간 내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거고, 이 공간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 (공간 = 방) 타인이 들어오면 나는 계속 신경이 쓰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엄마가 빨리 나가길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가 나가지 않더니, 심지어는 바이올린 악보까지 들고 오는 것이다. 엄마는 교회 분들과 함께 아는 분을 통해 매우 저렴하게 레슨을 받고 있는데, 사실 음표 보는 법부터 새로 해야 하는 초짜다. 나는 초반에는 웃으며, 응, 엄마 나도 피아노를 연습하니까 괜히 마음이 부드러워지더라, 라고 하며 매우매우 응원모드였으나, 엄마의 질문이 계속됨에 따라 짜증모드로 변모하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물어본 것들을 계속 물어보게 되면. (바이올린은 모르지만, 악보 보는 것에 관련한 질문)
아, 그러니까, 꼭 짜증을 내게 되는 영역이 있는데, 나는 엄마나 아빠가 무언가를 잘 몰라서 물어볼 때 짜증을 내는 것 같다. 특히 컴퓨터 같은 것. 생각해 보면 모르는 게 당연한 건데도, 나는 엄마나 아빠가 나보다 잘 못하는 그 무엇을 맞닥뜨리게 되는 그 감정의 어색함이 짜증이라는 감정으로 나타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젠 당연히 그런 것들이 더더욱 많아졌고, 그저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가르쳐주면 되는데, 여전히 그게 어려워서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도무지 친절한 설명이 안된다. 동생 가르치기보다 더 마음이 어려운 게 부모님께 뭔가를 가르쳐주는 일이 아닌가 싶다. 도무지, 이게 왜 그렇게 안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에게 파워포인트의 기능을 설명해줄 때, 엄마에게 인터넷 이용법을 알려줘도 매일 까먹을 때, 나는 그렇게도 못되진다. 그래놓고는 내가 못된 게 아니라 어색해서 그런 거라고 막 핑계중이다.
엄마는 원래 학교 때부터 음악을 못했어. 그냥 좀 친절하게 가르쳐주면 안돼? 엄마가 너 피아노 학원도 보내줬는데. 이럴 때 써먹자 좀.
엄마도 지금 바이올린 레슨 받잖아. 돈 받고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써먹어야지.
너보다 어린 선생님한테 어떻게 일일이 계속 물어봐. 챙피하게.
그 선생님은 가르칠 의무가 있는 거야. 그냥 좀 선생님한테 물어봐. 나도 좀 집에선 편히 쉬자고.
엄마가 너한테 피곤함을 주는 존재니?
누가 그렇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계속 똑같은 걸 물어보니까, 대답하기가 힘들잖아.
(쓰다보니 진짜 못됐군 -_-)
라는 싸움을 계속 한다, 엄마는 그간의 서운함을 또 마구 이야기하고, 나는 나 나름대로의 항변을 하다가 짜증을 내며 휙, 샤워를 하겠다고 먼저 나가 버린다. 샤워를 하면서는, 당연히, 반성의 쓰나미다. 아. 도무지,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이 모양인걸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건데. 그냥, 4번, 5번 설명해 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다 씻고 나가 반성의 손길을 내밀어도, 이미 늦었다. 오늘은 이 상태로 자야 한다.
라는 상태로 어제를 마무리하고, 그리고 오늘, 오늘은 집에 오니 12시쯤. 또 마음이 바쁘다. 그래도 어제의 미안함에 엄마를 보고 생긋 웃고 들어가려는데 엄마가 통 하나를 들고 온다.
짠
뭐야?
휘리리리릭 쏟아낸 것은 100원짜리, 500원짜리 동전이었는데, 아, 정말 끝도 없이 나온다.
이걸로 엄마 학비 하려고
우와 진짜 많다
그 동안 모았던 동전을 새로 배울 상담심리 공부에 보태려고 꺼냈다는 엄마는 내게 동전을 같이 세보겠느냐고 묻는다. 순간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오늘만은 잠시 접어 두고 같이 동전을 세기로 한다.
이거 사실, 나중에 손주들 용돈 주려고 모아놓은 건데
하하하하, 그런 거 필요 없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식에게는 미안하지만, 엄마가 몇년간 모은 동전을 나올지도 안나올지도 모를 그녀석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일에 쓰는 일이 나는 더 기쁘다. 거의 30분 가량을 동전만 셌나보다. 짤랑 짤랑. 스윽 스윽. 둘 넷 여섯 여덟 열, 손끝을 가끔 스쳐가며, 백원짜리는 엄마쪽으로 밀어줘가며, 오백원짜리는 내 쪽으로 밀어줘가며, 주거니 받거니 동전을 세고, 가끔은 수다를 떨다가 몇개까지 셌는지 까먹기도 하다 보니, 어느 덧 이십개씩 탑으로 쌓은 오백원짜리가 하나, 둘, 셋....서른 여섯, 서른 일곱, 서른 여덟개. 거기에 백원짜리를 더하니 동전은 47만원을 조금 넘는다. 모자라는 십만원 가량은 내가 보태기로 한다.
실은 어제 일이 미안해서 같이 동전을 센 거였는데, 나중에는 동전을 모을 때조차 손주들 용돈을 줄 생각인 엄마가 그래도 뭔가 시작해보는 걸 같이 응원한 마음으로 센 것 같다. 손이 시커매지도록 열심히. 덕분에 이렇게, 이래저래 늦은 잠을 청하게 됐지만 말이다.
그런데 몇년도 동전이 디게 가치가 높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던 것 같아. 아, 나는 몰라 이제.
라고 이야기하며 동생에게 떠넘긴다. 인터넷 검색좀 해보라고.
동생은 검색 후 98년도 동전이라고 말한다. 20-3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그럼 엄마가 안찾을 수가 없지.
라고 이야기하며 다시 앉아 500원짜리를 뒤적이는 엄마에게 '으아, 나는 패스' 라고 말하는 것. 사실은 이게 자식들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응?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