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엔 같이 밥먹어줄 사람 찾기가 어렵다. 아무리 야근 많은 회사라지만 금요일까지 야근하는 건 너무 우울하잖아. 갑작스런 업무 요청이 많은 광고실과는 달리 우리 실 사람들은 듀데이트가 정해진 업무를 많이 하는 편이라 금요일에 야근하지 않고 업무를 끝낼 수 있을 정도로 평일에 조정해 놓는 경우가 많다. 나도 금요일엔 거의 야근을 하지 않는다. 밖으로 떠돌지. 그런데 오늘은 일도 애매한 시간에 끝났고,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다. 집에서 좀 할 게 있어 너무 늦게 들어올 수가 없었거든. 일이 끝난 시간은 7시 반 정도.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너무 늦을 것 같고, 여기서 먹자니 혼자 먹기 좀 싫고, 샌드위치를 사먹으면 딱인데, 하필 점심 메뉴가 샌드위치였네.

그냥 집에 가야겠다, 라며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려는데 못보던 떡볶이가게가 생겼다. 갑자기 침이 스읍~ 고인다. 헤헤헤 떡볶이 먹고 가야지. "아저씨 떡볶이 1인분에 얼마에요" "2천원입니다" "그럼 떡볶이 반만 주시고, 오징어튀김 반 주셔서 2천원 어치 주시면 안되요?" 이걸 거절하는 주인은 거의 없다. 떡볶이도 먹고 튀김도 먹고싶은데 어쩌라고 ㅠ_ㅜ 떡볶이라는 것이 먹기 전에는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도 먹다보면 또 달달한 맛에 은근 질려서 그렇게 2천원어치를 시켜도 다 못먹는 경우가 태반이다. 역시 이 아저씨도 주신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떡볶이 그리고 오징어튀김. 어라 근데 이 오징어 튀김을 '그냥 준다......' 아저씨 가위는 없나요? 라는 나의 물음에 매우 곤란해 하는 아저씨 아래 쪽으로 몸을 숙이고 한참이나 가위를 찾는다. 이내 민망해진 나는 '그, 그냥 먹을 게요' 라고 이야기한다. 아 가위없이 오징어튀김 먹는거 난감한데, 나보다 아저씨가 더 난감한 것 같았다.

사실 아저씨는 날 모르지만 난 아저씨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떡볶이를 달라고 말하는 순간. 아, 여기서 신발 팔던 아저씨구나. 노점에 예쁜 구두가 가끔 날 유혹할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서서 신발들을 구경하곤 했는데 언젠가 플랫슈즈가 너무 신고 싶던 날, 그 아저씨 노점에서 한참이나 골랐던 기억이 있다. 굉장히 친절하게 잘 찾아주셨는데, 내가 맘에 들어한 신발은 사이즈가 없어서 결국 그냥 왔던 기억. 그럴 수도 있는 건데,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다. 사실 아저씨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그러니까, 내 눈에는 감우성, 남들 눈에는 김용만?) 로 생겨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 ㅋㅋ

왠지 결혼한 지 5년쯤 되서 3살짜리 딸이 있을 것만 같은 아저씨. 안그래도 한참동안 그 자리가 비어 있어 지나면서 그만 두셨나, 생각했는데 업종을 바꾸셔서 짜잔, 하고 나타났나보다. 오늘이 첫날인가보다. 집게질이 서툴다. 그동안 떡볶이 만드는 걸 연습하셨을 것 같기도 하고 ㅋㅋ 떡볶이는 고추장 맛이 강해 매운 밀가루 떡볶이였다. 사실 처음에 좀 실망을 했는데, 아 이 중독성. 먹을수록 맛있다. 질퍽한 떡볶이 국물이 묻은 오징어 튀김을 먹는다. 오징어가 잘 안끊어져 처음엔 밀가루만 먹고, 다음엔 오징어만 먹고.

이러던 중 옆에 또 손님이 왔다. 떡볶이 2천원 어치, 튀김 2천원 어치를 먹는다.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 아, 아저씨는 가위가 없는데, 손님은 두명이다. 떡볶이를 뜨고, 튀김을 다시 튀기는 아저씨를 보는 내가 더 불안하다.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은 튀김이 나오자 당황한다. 어, 라고 하는 순간 나의 긴장은 한층 고조된다. 순간 아저씨가 말한다. "죄송합니다. 가위가 없어요" 다행히 손님들은 이해한다. 다행히 한 명은 튀김보다 떡볶이를 더 좋아했고, 한명은 떡볶이보다 튀김을 더 좋아했다. 그래도 그 둘이 튀김을 불편하게 먹을 때마다, 난 나의 불편함보다 그게 더 신경이 쓰인다. 저 아저씨는 얼마나 더했을까.

둘이 떡볶이를 거의 다 먹자, 아저씨가 접시를 달라고 하더니 다시 한가득 떡볶이를 주신다. 서비스에요. 둘은 입이 좋아서 입이 함지박만해진다. 괜히 나도 안심이 된다. 아저씨, 저런 수완도 있구나. 그리고 아직 떡볶이를 먹는 내게 묻는다. 더 드릴까요? 나도 그 서비스를 받고 싶지만 더 먹으면 남길 것 같아서 괜찮다고 말한다. 옆 손님 둘의 친구 두 명이 또 온다. 뭐야, 니들끼리 떡볶이 먼저 먹는거야? 응, 먹어봐 맛있어. 우리는 오뎅 먹을래, 나는 떡볶이. 어, 너네 근데 왜 튀김을 다 베어먹어놨냐? 응 내가 좀 그랬어 ㅋㅋ 아가씨 마음도 착하다. 가위 탓은 하지 않는다. 왁자지껄한 사이, 떡볶이가 또 다 떨어지고, 아저씨는 접시를 가져가 다시 한가득 담아준다. 가위 탓을 하지 않았던 게 고마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우와, 무한 리필 떡볶이에요, 라며 아가씨들은 좋아하고, 덩달아 나도 같이 미소짓는다. 맛있게 떡볶이를 먹어주는 모습에 아저씨도 기쁜 듯 보인다. 아저씨가 표현하는 미안한 마음이 모두의 기쁨으로 변신뿅하는 순간. 나도 웬일로 이 떡볶이는 질리지 않는다. 당장 먹기에는 달달한 떡볶이가 맛있지만 두세개 먹다 보면 질려서 끝까지 먹어본 적은 없는데, 이 매콤한 고추장맛 떡볶이는 자꾸만 젓가락을 가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한접시를 깨끗이 싹 비웠다. 옆손님들은 계속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떡볶이를 먹고, 사람많은 금요일 거리의 이 떡볶이 가게에는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기분좋게 이천원을 내고 지하철 역을 향해 갔다. 아저씨, 신발보다 떡볶이가 훨씬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내일은 꼭 가위 챙기세요! 가위가 없으면 떡을 듬뿍 챙기셔야겠어요, 그리고 오뎅 국물 맛있게 배우는 법은 꼭 부인에게 전수 받아 오세요! 라고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마음으로 되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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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2-2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쓰읍. 빠알간 매운 떡볶이 먹고 싶잖아요. -_- 오징어 튀김도 대따 좋아하는데. 자꾸만 상상돼.

웽스북스 2007-12-21 22:27   좋아요 0 | URL
오징어튀김은 자고로 생오징어에 밀가루 얇게 발라서 바삭 바삭하게 튀겨야죠, 흐흐흐 또 상상되죠? ^^

춤추는인생. 2007-12-2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훈훈해요^^ 전 떡볶이는 입맛에 잘 안맞아 밖에서 잘 사먹지 못하고 집에서 해먹는 편이지만. 이런 아저씨의 떡볶이라면 얼마든지 맛있게 먹어드릴수 있을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
맵고 짜야해요 춤인생의 떡볶이란.ㅎㅎ

웽스북스 2007-12-21 22:31   좋아요 0 | URL
아 춤인생님, 떡볶이 전 제가 하면 맛없어서 못먹어요 ㅠ_ㅠ 춤인생님이 떡볶이 만드는 법 가르쳐주시면 저도 맵고 짠 떡볶이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데요 흐흐흣 (레시피를 공개하라!)

이매지 2007-12-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요새 떡볶이에 묻힌 김말이 튀김이 너무 먹고 싶어요 -_ㅠ 아흑- 떡볶이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그 묻힌 튀김은 맛있는 ㅎㅎ

웽스북스 2007-12-21 22:59   좋아요 0 | URL
이매지님 강남역 놀러와요 (아 너무 먼가?) 이매지님한테 김말이 10개 사주고 싶은 급충동이 들었어요 ㅎㅎㅎ 그치만 난 오징어 ㅋㅋ

이매지 2007-12-21 23:14   좋아요 0 | URL
저 그러고보니 강남역에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뭐 회사가 우글거리는 동네라 갈 일이 없기도 했지만 ㅎ

웽스북스 2007-12-21 23:32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사람만 많고 별거 없는 동네랍니다 아쥬 그냥 맨날 맨날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동네 ㅋㅋㅋ 나 동생들 만나서 맛있는 거 사주고 이런거 좋아해요 흐흐흐 (시간나면 꼭 연락해요 ^^)

깐따삐야 2007-12-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빼놓고 이렇게 맛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뉘!
웬디양님이랑 떡볶이랑 튀김 앞에다 놓고 마구마구 수다 떨면 완죤 잼나겠어욤.^^

웽스북스 2007-12-21 23:3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우리 어여쁜 깐따삐야님은 어디살아요? 막 부산, 대구, 이렇게 멀리 사는 거 아니죠? ㅋㅋㅋ

깐따삐야 2007-12-21 23:36   좋아요 0 | URL
서울이 아니라서 일단 아쉽네요. 진짜 막 속상할라 그래. 그래도 "어여쁜"이란 말에 눈이 반짝.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쩌지 못한다는.-_-

웽스북스 2007-12-21 23:46   좋아요 0 | URL
흑흑 나도 서울은 아닌데, 그냥 수도권 정도 ㅜ_ㅜ
KTX가 다니나요 지하철이 다니나요 ㅠ-ㅠ

깐따삐야 2007-12-21 23:52   좋아요 0 | URL
그래도 머 사랑엔 국경도 없다는데 그까잇꺼 머 거리 쯤이야. 난 원거리 연애도 가능해욤.ㅋㅋㅋㅋ
난 충청도 츠자인데 언젠간 웬디양님이랑도 반갑게 상봉할 날이 있겠죠? :)

웽스북스 2007-12-21 23:59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충청도 츠자였구나, 좋아요 좋아요 ^^
멀지 않은 날, 반갑게 상봉할 그날을 기다려요 흐흐흐~
나는 대전은 많이 가봤는데 대전에서 내려본 적은 없어요 (기차타고 대전역만 지나가봤다는 거? ㅋㅋㅋ) 충청도는 가깝지만 참 멀게 느껴지는 곳 ^^ 깐따삐야님 덕에 한결 충청도가 정겨워졌어요 ㅋㅋ

2007-12-22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2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7-12-2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볶이 이야기 신나게 읽었는데, 충청도 츠자란 댓글에 헉~~ 나도 나도 충청도!! ^^

웽스북스 2007-12-22 00:53   좋아요 0 | URL
광주와 충청도, 제겐 둘다 낯선 동네 ^^

깐따삐야 2007-12-22 01:0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반가워요. 고향이 충청도시군요! 역시 충청도 츠자들이 쫌 착해.ㅋ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3 01:58   좋아요 0 | URL
아이고 어머니 저를 왜 충청도에서 낳지 않으신 건가요 ㅠ-ㅠ

Mephistopheles 2007-12-2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몇 줄을 읽으면서 으이구 연애 하세요 웬디양님..이랬다가 자연스럽게 떡볶기를 향한 식탐으로 앞의 말은 그냥 넘어가버렸습니다.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2 00:54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 떡볶이 사주세요 메피님

깐따삐야 2007-12-22 01:07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 저도 사주세요 메피님^^

Mephistopheles 2007-12-22 02:26   좋아요 0 | URL
애인들 만들어서 같이 오시면 떡볶기가 뭡니까 순대 오뎅이 뭡니까. 제가 떡 벌어지게 한 턱 낼께요..오호호호

푸하 2007-12-22 02:52   좋아요 0 | URL
메피님 저도 사주시면 감사히 먹을께요.^^;

웽스북스 2007-12-22 03:23   좋아요 0 | URL
흠. 푸하님과 함께 연기를 해볼까? ㅋㅋㅋㅋ
푸하님 떡볶이를 위해 잠시 영혼을 팔 수 있나요? ㅎㅎ

푸하 2007-12-22 03:39   좋아요 0 | URL
아니 연기를 하려면 시나리오를 감추셔야죠... 인제 얻어먹을 길이 막연해짐. 책임지셔요^^

무스탕 2007-12-22 10:59   좋아요 0 | URL
저도 애인 만들어서 델꼬가면 머 사주세요? +_+

웽스북스 2007-12-23 02:00   좋아요 0 | URL
제 사진은 보셨을테니, 이 분은 푸하님이 아닙니다,라고 하고 가면 되지요 (라고 하는 순간, 떡볶이 먹는 길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인가 ㅋㅋㅋ) 그리고 무스탕님, 흠, 그건, 쫌 ㅋㅋ +_+

다락방 2007-12-23 14:32   좋아요 0 | URL
저도 떡볶이 사주세요 메피스토님. ㅎㅎ

라주미힌 2007-12-22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떡볶이 먹고 왔는뎅... 순대볶음이랑... 둘 다 맛이 ㅡ..ㅡ;
냉동실에서 막 꺼내서 데운 듯 했음..
으흐. 그래도 다 먹었지요... 맛보다는 겨울의 흥취라고나 할까..

웽스북스 2007-12-22 03:23   좋아요 0 | URL
흐흐흐 또 이런날 길에서 떡볶이 한번 먹어주는, 그러면서
오뎅국물 호호 불며 먹어주는 맛이 있어야지요 ^^

푸하 2007-12-22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밌게 쓰다니...
속에 이야기가 많은 츠자군요.^^;
저도 떡볶이 일인분을 딱 갈라 튀김과 섞어 먹어요.

웽스북스 2007-12-22 03:24   좋아요 0 | URL
이런걸 재밌게 보다니...
속에 떡볶이가 많은 총각이군요
떡볶이 취향도 비슷하고 ㅋㅋ

Mephistopheles 2007-12-22 09:40   좋아요 0 | URL
와 불붙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3=3=3=3

웽스북스 2007-12-23 02:01   좋아요 0 | URL
매운떡볶이를 먹으면 입에 불이붙지요 ㅋㅋ

무스탕 2007-12-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아파트 단지는 금요일에 장이 서요. 어제 애들에게 순대를 먹이자! 결심을 하고 순대를 주문하는데 옆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는 가래떡 뚝뚝 끊은 떡볶이가 저를 유혹하더군요. 지금 입병이 나서 매운것에 쥐약인데 어찌까.. 하다 그냥 왔지요 -_-;;
웬디양님 페이퍼 보니 어제 놓친 떡볶이가 둥실둥실 떠다닙니다. 다음주엔 꼭 사먹어야지!!

웽스북스 2007-12-23 02:02   좋아요 0 | URL
가래떡 떡볶이, 표면적이 넓어 떡볶이 국물이 맛있게 스읍 스며들죠. 입병이 원망스러웠게겠네요 ㅠㅠ 다음주엔 꼭 사드세요 입병 꼭 나으시고요 ^^

마노아 2007-12-22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집 아래 층 방앗간에서 떡볶이를 파는데 2천원 어치는 너무 많고 게다가 지나치게 매워서 다 못 먹거든요. 그래서 어린이들 애용하는 '컵떡볶이' 500냥짜리를 애용하기로 했어요. 근데 민망해서 아무도 없을 때만 두 번 시켜봤어요. 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3 02:02   좋아요 0 | URL
아 우리동네도 그런거 있음 좋겠네요 ㅋㅋ

2007-12-23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4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12-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훈훈한 모습...보기 좋아요. ^ㅡ^

웽스북스 2007-12-25 01:32   좋아요 0 | URL
엘신님도, 주말에 훈훈한 일 하고 오셨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