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29

4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이월 이십구일
몇십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이월의 다섯번째 일요일

한친구의 전화를 받았고
그동안의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듯
지칠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긴 통화는 휴일 무료통화로

잘못 끼워진 단추구멍 같았다고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니까 겉잡을 수 없었다고
근데 나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몰랐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내가 막연하게나마 생각하던 것들을
설명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니얘기 내얘기
너희얘기 우리 얘기
재수있는 사람 얘기 재수없는 사람 얘기
섭섭했던 얘기 미안했던 얘기

그렇게 얘기하다보니
한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먼저 전화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했었는지 안했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4년에 한번 오는, 지난 2월 29일에 적어놓았던 일기다
그러니까 투데이히스토리,라는 미니홈피 내의 버튼을 이용한다면
4년에 한번 나오는 일기인 거다

오늘 미니홈피에 들어가 투데이히스토리 버튼을 누르면서
나는 과연 4년전 2월 29일에 내가 일기를 적었을까, 안적었을까,라는 괜한 궁금증에
조마조마했다. 아, 적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다행히 일기가 있었다

니가 누구였는지, 또 그 때의 내가 누구였는지
너희는 또 누구고 우리는 또 누구인지
재수있는 사람은 누구였고, 재수없는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뭐가 섭섭했고, 뭐가 미안했는지,

그래서 나는 고맙다는 말을 했던 건지, 안했던 건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저 말투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속에 있던 우리가
굉장히 가슴 뜨끈한 통화를 하면서
내가 내지 못한 용기를 내준 상대에게 내가 굉장히 고마워했을 상황인 건데,

그 와중에, 나는 저 일기를 보며,
아니 잘못 끼워진 단추 구멍을 왜 겉잡을 수 없다는 거야, 다시 끼우면 되지, 하면서
나는 또 크득크득거린다
저 땐 나름 심각했을텐데 말이지


4년이라는 세월은 그런가보다
그 땐 매우 심각해서, 가슴 한구석이 저릿저릿하던것들도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만들어버리고, 혹은 잊어버리고
나름 심각하게 힘주어 이야기하고 생각하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말이다


다시 4년 뒤에, 오늘의 내가 우스워졌으면, 혹은 아무것도 아닌 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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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2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4년 후 재수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야 겠다는 강박증 발동 중...

웽스북스 2008-03-01 20:06   좋아요 0 | URL
흐흐
그보다는 4년 후에 제가 메피님을 기억할 수 있도록
알라딘 마을을 떠나지 마시고....

밥사주세요 ㅎㅎㅎ

L.SHIN 2008-02-2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좋은데요, 이 글.^^
4년전 글도, 지금의 글도, 그리고 앞으로 기다릴 4년 후의 글도 분명 좋겠죠.
조금 더 완숙한 색과 냄새가 나는 그런 글로 -
나도 '4년전의 2월 29일'을 한번 기억해 봐야겠습니다.
(아, 그렇다면 오늘의 일기는 '바지에 낑겨버린 뱃살'로 끝날 순 없잖아 =_=)

웽스북스 2008-03-01 20:07   좋아요 0 | URL
와, 좋아요? 다행이에요 ^_^
바지에 낑겨버린 뱃살 말고 무슨 일이 더 생겼는지 궁금해요 에쓰님 ^^

순오기 2008-02-29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실하게 기록을 남기는군요.
지나간 일기를 들추어보는 것도 꽤 운치있어요.^^

웽스북스 2008-03-01 20:07   좋아요 0 | URL
네, 근데 제 기록은 좀 띄엄띄엄이긴 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