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짖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먹는다는 것>

내 안을 허락한다는 것.
너에게 내 몸을 열고 싶다는 것 내 혀와 이빨과 목구멍과 대장과 항문을 열어준다는 것 그렇게 음탕한 생각.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것 지금의 죽음이고 싶은 것 다른 나이고 싶다는 것 사랑을 느낀다는 것.
너를 내 안에 넣고 싶다는 것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너이고 싶다는 생각 네가 아닌 나를 더는 견디지 않겠다는 의욕.
너를 먹네
포충식물처럼 끈끈하게, 세포 하나하나까지 활짝 열어 너를 맞네 세포 하나하나까지 너에게 내주네.
그러므로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 모든 구애가 그렇듯이
밥이건 고기건 사람이건
먹는다는 것은 먹힌다는 것 죽음처럼 아찔한 것 길고 황홀한 키스 먹는다는 것은 갖고 싶다는 것

새 자동차를 장화를 장미를 새끼 고양이를 향해 눈이 빛나는 것 같이 있고 싶다는 것 한 몸이 되고 싶다는 것.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랜 식욕의 역사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2-22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2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2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2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2 1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2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2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5-12-22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니, 화양연화 라는 시요...
오늘 <봄날은 간다> 영화를 다시 봤거든요. 그 영화가 떠올라요.

고전을 10년마다 한 번씩 다시 읽으라고 하더니, 영화도 그런가봐요.
많은 것을 알겠더군요, 심지어는 제 첫사랑이 저를 떠나간 이유와 그 이후에도 저를 아꼈다는 작은 징표까지도
이제야 알겠더군요.... ^^

프레이야 2015-12-22 22:03   좋아요 0 | URL
그랬구나 울마고님 정도 많고 애살도 많고^♥^

2015-12-23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3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3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3 1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3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3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4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4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ri_che 2015-12-2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셨습니까?
예수 오셨으니 또 한 해가 저뭅니다.

책이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선 반가운 마음에 인사부터 드립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_()_

프레이야 2015-12-24 16: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마음으로 기쁜 성탄일 보내세요.

2015-12-25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5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31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1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1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첫번째 수필집이 나왔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는 책이지만, 너무 쉽게
내고 싶지 않았던 탓이라 변명해 본다.
익혀서 내겠다고 생각했으나 설익은 게
있다는 건 언제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천하고 행동하여야 성장하며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알라디너들에게는 낯설지 않을 글들이다.
책머리 첫 문장에 썼듯, 사람은 한 권의 책이라 생각한다. 써놓았던 글과 새로 쓴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내며 나라는 사람 하나를 세상에 내보내는 일, 사람들에게 나라는 책 한 권을
두 손으로 드리는 일에 대해 여러모로 돌아볼 시간을 얻었다.

나라는 사람도 나라는 책도 결함이 많은지라 매사 조심스럽다.
그런 점이 역으로, 어떨 땐 무모하게 발현되기도 하는데, 그저 매사 감사할 일이다.

첫 책이라 일단 내보내고 터는 단계라 생각하기로 하며 통과의례를 치른다.
이제 남은 일들이 또 놓여 있고, 미숙한 나는 또 이리저리 부딪히며 금이 가고 아물고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끼며 두번째 세번째에는 좀 더 다르게, 더욱 심혈을 기울여 내보여야겠다.
소중한 인연에 고마움으로, 나라는 책의 한 줄 한 줄에 마음을 모아서‥

미리 축하의 말 건네주신 오공주들에게 감사하며, 이렇게나마 먼저 간단히 서재지기들에게 인사드립니다. 






댓글(130) 먼댓글(0) 좋아요(8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프레이야 2015-12-14 20:49   좋아요 2 | URL
소중한 말씀 참 감사합니다. 더욱 고민하고 정진해야겠습니다.

대장물방울 2015-12-14 2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프레이야 2015-12-14 21: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대장물방울님^^

마키아벨리 2015-12-14 2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프레이야 2015-12-14 21:43   좋아요 1 | URL
앤드류대디님, 감사합니다~

2015-12-15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5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찬샘 2015-12-15 0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요. 책 표지도 예뻐요. 생각 깊으신 프레이야님 책을 만나게 되네요. 프레이야님과의 첫 인연이 알라딘에서 나왔던 서평집 읽고 제가 쓴 서평에 그 책에 관계했던 분이라 지나는 길에 인사한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우와우와~~~ 멋져요. ^^

프레이야 2015-12-15 18:35   좋아요 1 | URL
네, 그게 어느새 오래전 기억이 되었네요. 축하,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15-12-15 0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까지 축하글 남긴다면 번거로울까요?^^
축하드려요!
왜 뜸하신가?싶었더니 이렇게 깜짝선물을??^^
생각해보면 좀 늦게 나온감도 없지않단 생각도 해봅니다
이젠 전자 페이퍼가 아닌 진짜 종이글로 읽을 수 있군요!
감축드려요 수고 많으셨어요!^^

프레이야 2015-12-15 18:37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님, 고맙습니다. 종이책의 위엄이 덜컥 겁나네요. ^^ 앞으로 더욱 정진하며 잘 쓰기 위해 먼저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진 2015-12-17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오랜만에 서재를 찾았다 낯익은 이름이 떠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들어왔어요!!
축하드리고, 한 번 꼭 읽어봐야어요 ㅎㅎ

프레이야 2015-12-17 14:52   좋아요 1 | URL
이진님 반가워요. 즐겁게 학교생활과 창작활동 하고 있겠지요^^ 축하, 고맙습니다~

2015-12-22 0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2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2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2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3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5-12-26 13:3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부산 하면 떠오르는 게 하나 더 늘었겠어요. 좋은날들 엮어가시길요^^

파란하늘 2015-12-26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부산하면 부산어묵이죠 ㅋㅋ
농담요 ㅋ 네 당연히 프레이야님이죠
엄지 척! ^^

프레이야 2015-12-26 13:53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5-12-28 2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 님, 책 출간을 축하드려요. 진심으로다...
78번째 좋아요를 누르고 갑니다. 팍~

(내일 일찍 나갈 일이 있어 잠 자야 해서 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룹니다...)

이 한 말씀, 하고 갑니다. 멋지십니다. ^^

프레이야 2015-12-28 22:50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페크님.^^

clavis 2016-01-02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꼭 읽어보고싶네용 저도 부산떼기ㅋㅋ

프레이야 2016-01-02 22:25   좋아요 1 | URL
어머낫 부산 사시군요. 반갑습니다. 고맙구요

scott 2016-01-12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출간 축하드려요.
81번째 좋아요 쿠~~~욱^.^

프레이야 2016-01-12 21: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스캇님^^

[그장소] 2016-01-14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너무 무심한 사람였네요. 이책을 봤는데..그런데도 몰랐어요.축하 살며시 놓고 가면서요.저도 서점에 나가서 한번 살펴봐야겠어요.이건 ...꼭 봐야겠네요..^^

2016-01-14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01-14 02:18   좋아요 1 | URL
아..그럼 알라디너니까 당연한걸 ..그랬나요?^^
최근에 본것같았는데 작가가 프레이야님이신줄은 상상도 못한 ㅡ^^
미리 좀 알았음 좋았겠네요.
저도 볼게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전날 비엘리츠카의 소금광산을 보고
폴란드의 구 수도 크라코프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밤을 보냈다. 아우슈비츠로 향하던
아침, 빗방울이 아주 간간이 떨어지더니 그곳에
당도하자 멈추었다. 여기저기서 온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속, 숙연한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장애인들의 의족, 의수까지 빼앗고 아이들 특히 쌍둥이 어린아이들을 실험대상으로 한 것도 모자라

여자들의 머리카락은 모두 직물과 양탄자의 소재로까지 썼다니‥
직접 쓰게한 이름이 적힌 그들의 가방들, 벗어놓은 신발들,

하얀 알갱이의 고체가스와 수없이 쌓여 있는 독가스 깡통들‥
그들을 실어나른 기차가 당도하면 그곳이 바로 제2수용소 가스실이었다.

 발가벗긴 그들은 샤워실인 줄 알고 바로 가스실로 들어갔던 것.

그들은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구심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

신에게 바쳐진 재물이라는 뜻의 홀로코스트는 서구권에서 쓴 단어인데, 이말은 적절치않은 것 같다.

유대인들이 쓴, 대재앙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쇼아shoah가 맞지 않을까.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도 내려가는 동토,
그 땅에 길게 놓인 죽음의 기찻길과 오시비엥침 역이 수용소에 다다르기 전에 차창밖으로 보였다.

2015. 12. 9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5-12-13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하면 안되는 페이퍼인데 공감하기에 눌러지네요

그동안 왜이리 뜸하셨을까?싶었어요^^

프레이야 2015-12-13 17:40   좋아요 0 | URL
유럽의 학생들은 꼭 견학 가는 곳이라 하죠. 저는 이제야 가보게 되었어요

파란하늘 2015-12-13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퍼요 ㅠ ㅠ

혜덕화 2015-12-1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_

2015-12-13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3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력적인 문장에 푹 빠져들다.
스프를 우아하게 먹는, 천품이 귀족적인
어머니를 묘사하는 첫 부분부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5-12-0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언니.....여행하는 와중에 책도 읽으시는 센스? ㅎㅎ

프레이야 2015-12-08 21:44   좋아요 0 | URL
비행기에서‥동행자가 먼저 읽고요. 다자이 오사무의 매력에 빠지기에 충분해요^^

카스피 2015-12-0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즐거운 여행길 멋진구경 만난 음식 많이드시고 건강히 다녀오세요^^

프레이야 2015-12-09 23:59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카스피님^^
 

이 영화를 보았던 때의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이 책은 62년생,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한 남자의 가치관과 인생관, 영화감독으로서 세상을 그려내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에세이다. 자기표현이기보다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바란다고 말하는 이 감독은 인간들이 사는 세상의 존재 양상을 제시하는 역할이 감독의 맡은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진지하고 사려 깊은 품성과 냉철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잔잔한 글을 읽어가다 보면 세상을 살면서, 또 글을 쓰면서 두루 염두에 두어 볼 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어머니를 비롯해 함께 작업한 배우들과 주변인들에 대한 섬세한 감정, 적절한 거리두기에서 나오는 객관적이고 개성적인 시선도 좋다.
흑백사진속의 어릴 적 모습이 귀엽고 훈훈하다.

3.11 대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좀더 그 파문을 응시하며 주저하고 있다는 감독의 변도 믿음직하다.

˝변화에서 오는 당혹감, 그 변화를 작품이라는 형태로 그리는 것에 대한 주저, 수면에 너무 큰 돌이 던져져 물결이 아직 잦아들지 않은 상황.
연출가로서의 나는 한시라도 빨리 배우들과 공동 작업을 재개하고 싶지만, 감독으로서는 당분간 좀더 파문을 응시하고 싶다. (226쪽)˝

주저하는 마음은 필요하기도, 값지기도 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자기를 표현하려들기보다 세상과의 소통에 더욱 매진하는 글쓰기로의 향방을 생각하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15-11-24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오랫만이에요 프레이야님
^^
잘 지내시나요?

프레이야 2015-11-24 19:43   좋아요 0 | URL
네, 잘 지내요. 동희랑 태은이랑 많이 컸죠? 하늘바람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