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궁(梨峴宮)이 부쩍 궁금해졌다. 지난 일요일 뜻밖으로 청계천을 걸었을 때, 그 출발점인 배오개다리 이름에서 이현궁을 떠올리고 나서부터다. 이현궁은 당연히 소령원(昭寧園)-최숙빈 묘소-으로 이어지고 소령원은 육상궁-최숙빈 사당-으로 이어진다. 소령원은 학술 목적으로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일반인이 드나들 수 없으니, 이현궁 터를 확인하고 육상궁까지 걸어서 최숙빈 서사를 일단 마무리하기로 한다.
신설동역 9번 출구에서 나와 하정로로 접어들자마자 반갑고 정겨운 풍경과 맞닥뜨린다. 지난해 <두물머리 두름대로>(6. 25.) 이야기할 때 청계천을 거슬러 올라와 서울풍물시장 가는 골목에서 본 바로 그 풍경이다. 그때는 이야기에 담지 못했지만, 온갖 중고품을 파는 노점 행렬이 거리를 아련하고 구성지게 만들고 있어 그 나름 순례객을 부른다. 물건 하나하나에 깃든 기억들이 새 상상을 불러 오늘을 구성한다.

과거와 미래는 허구고 현재만이 실재라고 강조하지만 따지고 보면 현재란 과거 기억과 미래 상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움트는 찰나 사건, 더 엄밀히 말하자면 ‘서사’가 아니던가. 내가 오늘 청계천 따라가 이현궁 거쳐 육상궁으로 가는 행로가 전형이고, 그런 맥락에서라면 이 하정로 노점상들과 마주쳐 일어나는 서사 또한 돈독한 실재다. 옛 도량형기만 모아놓고 파는 아낙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허사일 순 없다.
그 “平平한” 세계를 섭새김하며 비우당교 아래서 출발해 “폴짝폴짝” 배오개다리로 향한다. 가을장마 끝난 뒤라 그런지 어디에서든 은은히 풍기는 청계천 하수 내음이 사뭇 옅다. 다양한 얼굴들을 지나치며 오간수교 자리에 다다른다. 흥인지문 정남방에 자리한 한양도성 일부이기도 하고 배수 요처라 중요한 시설이었던 듯하다. 어정뜬 복원은 아쉽되, 오늘 서사 구성에 더없이 소중한 역사와 만나니 해낙낙하다.

오간수교 아래 벽면에는 영조 대왕 어필이 조형되어 있다. 개천(開川) 준설에 공 있는 신하들을 치하하는 내용이다. 개천이 얼마나 큰 일이었던지 영조는 준천사(濬川司)라는 관청을 새로 만들어 치수 공사를 일으켰으며, 이를 재위 3대 치적 중 하나로 꼽을 정도였다. 그토록 중대사였다면 영조가 현장에 직접 나와 봤으리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가까운 길목에 어머니 최숙빈의 이현궁이 있다. 그냥 지나쳤을까.
나는 그 여정을 거슬러 간다. 종묘와 창경궁이 있는 언덕과 현재 서울대병원이 있는 언덕 사이로 흘렀던 옥류천을 왼쪽에 끼고 올라간다. 그 오른쪽이 배오개며 거기 어디에 이현궁이 있었다. 검색한 기록에 따라 대중하고 어떤 골목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은행나무 한 분이 우뚝 서 계신다. 바로 저기다, 하고 달려간다. 그 나무 아래 ‘이현궁 터’라고 적혀 있다. 그 나무는 분명 최숙빈을 기억하고 있을 터이다.

나는 내 고유한 물 의례 올리고 사연을 고한다. 은행잎 두 장 거두어 종묘-창경궁-창덕궁을 거쳐 육상궁으로 간다. 인사 하고 은행잎 한 장을 삼가 묻어드린다. 나머지 한 장은 원릉(元陵) 영조 몫이다. 육상궁 나올 때 아연 떠오른 얼굴은 역겹게도 김명신이다. 종묘까지 능멸한 저 왜년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순례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다. 내 반제 주술 끝날 날은 과연 올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