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일이송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그 포도를 먹지 마시오", "그 급식을 먹지 마시오"
내일은 지구의 날. 그런데 애초에 1970년 처음 열린 지구의 날 행사는 백인 중산층 중심으로 설계된 환경운동이었다. 여기엔 환경정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가장 환경오염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유색인종이 말하는 환경 이야기 말이다. 1962년 세상에 나온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현대 환경운동의 경전과도 같다. 살충제 오염을 경고해 세상을 놀라게 하고 경각심을 불어넣었다. 개인적으로도 레이첼 카슨을 존경한다. 하지만 환경정의를 이야기하는 <침묵의 봄>에도 정작 살충제 오염에 시달리는 농장 노동자 이야기는 별반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백인 중산층 중심의 환경사는 1960년대 필리핀과 라틴계 농장 노동자들이 살충제와 환경오염에 대해 어떻게 치열하게 싸우며 환경정의를 일궜는지에 대해서도 거의 조명하지 않는다. 1940년대와 50년대 오염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환경정의를 외치고 싸웠던 사실에 대해서도.
1965년 미국의 유색인종 농장 노동자들이 포도 파업을 일으켰다. 미국 최초로 불매운동(보이콧)을 노동쟁의의 중요수단으로 채택한 파업이다. 필리핀계와 라틴계로 구성된 '전국농장노동자협회'이 주도했다.
이 조직의 리더는 세자르 차베스 César Chávez. 미국 환경운동사가 간과했지만, 이 농장 노동자는 미국 최초의 환경운동가 중 한 명이다. 또 환경정의를 거의 처음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웅변한 존재다. 간디를 존경했던 그는 미국의 농장 노동자를 이끌며 비폭력 투쟁, 그리고 불매운동을 노동쟁의에 효과적으로 접목시켰고, 오늘날에도 미국 이주 노동자들의 전설로 남아 있다.
1965년에서 1970년까지 펼친 '포도 파업'이야말로 미국인들 머리에 환경정의를 각인시킨 최초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파업은 그 동안 누적되었던 저임금과 차별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지만, 환경정의에 대한 요청이기도 했다.
전국에 걸쳐 포도를 먹지 말라는 불매운동이 펼쳐졌다. 전단지가 사방에 뿌려지고 사람들이 점차 포도 불매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포도에는 독성 살충제가 잔뜩 살포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농장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살충제에 중독돼 있었다. 또 농장 노동자들의 거주지는 '암 마을'이라고 불리워질 정도였다.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다.
포도 파업은 간단한 방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의 입에 들어가는 포도에 농약에 잔뜩 묻어 있어요. 또 농장에서 일하는 우리도 농약에 절어 있어요. 우리의 노동 환경이 위험하면 사람들의 건강도 위험해집니다. 그러니 이 포도를 먹지 마세요."
몇 년의 불매운동 끝에 포도 파업이 승리했다. 1970년 농장주들은 근로계약서를 갱신했고, 살충제를 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세자르 차베스의 투쟁은 계속됐다.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80년대 후반까지 끊임없이 노동 환경 개선과 살충제 투쟁을 전개했다.
엊그제 민주노총 대전본부 강의에서 세자르 차베스와 포도 파업 이야기를 잠깐 전했다. 환경정의가 어느 지식인의 책상머리에서 뚝딱 나온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길어올렸다는 점, 중산층의 환경운동과 달리 환경정의에 기반한 빈자들의 환경운동의 시작점에는 노동자들의 실존적 투쟁의 역사가 각인돼 있다는 이야기들.
강의가 끝나고 잠깐의 뒷풀이에서 한 간부가 조심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오늘 환경정의에 대해 듣고 보니, 최근에 파업한 급식 노동자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될 것 같아요. 급식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 열악하면 결국 그게 고스란히 아이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잖아요."
당연한 이야기, 당연한 방정식이다. 아이들 굶는 게 걱정스러운 부모들 마음이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급식 노동자의 노동 환경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급식 노동자는 조리 과정에서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 암연구소는 그것을 2A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그런데도 시-도교육청은 시설비부터 삭감하고 있다. 세손 결손이 그 이유다. 내년 전국 학교 환기시설 개선 예산이 무려 31.8%나 줄었다.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기본급, 그리고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 등 노동환경과 직결된 예산 삭감 때문이다. 한국의 거대 양당이 경쟁하듯 펼쳐놓는 감세 정책은 이토록 환경에 좋지 않다.
생각해 보자. 급식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 저렇듯 위험한데 과연 부모들이 요구하는 아이들의 '건강권'이 도대체 어떻게 담보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이들의 급식이 건강하고 안전하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급식 노동자의 노동 환경이 건강하고 안전하면 된다. 이런 간단한 방정식을 도외시한 채 닥치고 파업중지를 말하는 건 아이들의 건강권을 스스로 내다버리는 자가당착에 불과하다.
모든 건 연결돼 있다. 농장 노동자가 살충제에 중독되면 포도를 먹는 우리의 몸도 중독된다. 급식 노동자가 일하는 곳이 안전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의 급식도 안전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