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1

 

202399일 오전 330

 

엄마가 태어나기 시작했다

 

무한 가능성의 세계를 향해


 

(중략)

 


5

 

엄마가 떠나자 엄마가 많아졌다

 

어느 날은 동트는 아침 구름에게

어느 날은 저녁의 흰 새에게

어느 날은 정오의 개망초 군락 앞에서

어느 날은 제 그림자를 껴안은 붉은 작약 곁에서

어느 날은 오후의 너른 산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린다

 

엄마, 좋아?

 

엄마, 힘내!

 

나도 힘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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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발길을 돌린다, 함성이 울려 퍼질 서리풀(瑞草)에서 절규가 메아리칠 솔고개(松峴). 송현동 갤러리 57th에는 <‘황무지, 유령의 벌판>을 연 오십 년 지기 칡뫼 김구 화백이 있다. 전시회 이름에 이미 드러나거니와 내가 발길을 돌릴 구실은 충분하다.

 

그림은 말이다.” 칡뫼가 견지하는 회화관이다. 말은 서사를 지시한다. 서사로서 그림은 보이는 풍경을 그리지 않고 우리가 처한 상황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우리라는 말이 그가 지닌 언어 습관을 무심코 따른 표현인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강조로 읽힌다. 그가 현실 정치를 겨누는 까닭과 분단을 과녁 삼는 며리가 거기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강 하나 건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목전에 둔 김포 갈산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호만 칡뫼(葛山)로 지은 게 아니라 현실 삶에서도 분단과 전쟁, 그 후유증을 옹골차게 부여잡고 있다. 그 삶 자리(Sitz im Leben)에서 세상을 읽고 그 독해로서 그림을 그린다.

 

칡뫼 그림에서 풍겨 나오는 강한 어기(語氣)는 여기서 발원한다. 그 어기는 때때로 범람하는 직설 산문으로 드러난다. 그도 그럴 법한 것이 그는 수필집을 낸 엄연한 문학가기도 하다. 화가도 문학가도 아닌 상담의로서 그 그림과 수필에 사부랑삽작 건너가기 어려운 나는 그냥 내가 편한 운문 방식으로 읽는다. 그가 시인이기까지를 바라지 못한다.


 

이번에 새로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크다. 모름지기 그 절규가 커서일 테다. 사도와 현자 탈을 쓴 법 버러지, 언론 탈을 쓴 기레기, 영성 탈을 쓴 개독 주술사, 엘리트 탈을 쓴 부역 지식인 카르텔 총체를 드러내어 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향방을 준열히 묻는다.

 

나는 순수예술을 표방하고 표백된 고담준론을 드높이는 예술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다. 본성상 예술은 공존 행위로서 생태 실천이다. 근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투명하게 통과한 예술갑질은 학예회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시공을 초월한 보편은 없다. 설혹 있다손 치더라도 그 보편 추구에 예술가가 발 담그는 짓은 다시없는 자기기만이다.

 

예술에 치유력이 있다는 말은 예술에는 영성이 있다는 뜻이다. 예술에 영성이 있다는 말은 예술이 공생 네트워킹이라는 뜻이다. 예술에서 고립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립 개체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각 개체를 극한 고양하는 역설 사건, 그 서사가 예술이다.

 

그림을 둘러보고 작가와 대화하던 중 들마가 되어 문 닫고 나가 저녁을 같이 먹는다. 막걸리 한 잔 한 잔에 더불어 곰삭아가던 어둠이 시간을 높이 쟁여놓자 우리는 허우룩해서 또 홀가분하게 인사를 나눈다. 광장을 대신한 화랑, 함성을 대신한 절규가 함께 익어가는 밤을 걸어 우리는 각자 삶으로 돌아간다. 더 밝은 우리 내일을 꿈꾸기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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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궁(梨峴宮)이 부쩍 궁금해졌다. 지난 일요일 뜻밖으로 청계천을 걸었을 때, 그 출발점인 배오개다리 이름에서 이현궁을 떠올리고 나서부터다. 이현궁은 당연히 소령원(昭寧園)-최숙빈 묘소-으로 이어지고 소령원은 육상궁-최숙빈 사당-으로 이어진다. 소령원은 학술 목적으로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일반인이 드나들 수 없으니, 이현궁 터를 확인하고 육상궁까지 걸어서 최숙빈 서사를 일단 마무리하기로 한다.

 

신설동역 9번 출구에서 나와 하정로로 접어들자마자 반갑고 정겨운 풍경과 맞닥뜨린다. 지난해 <두물머리 두름대로>(6. 25.) 이야기할 때 청계천을 거슬러 올라와 서울풍물시장 가는 골목에서 본 바로 그 풍경이다. 그때는 이야기에 담지 못했지만, 온갖 중고품을 파는 노점 행렬이 거리를 아련하고 구성지게 만들고 있어 그 나름 순례객을 부른다. 물건 하나하나에 깃든 기억들이 새 상상을 불러 오늘을 구성한다.


 

과거와 미래는 허구고 현재만이 실재라고 강조하지만 따지고 보면 현재란 과거 기억과 미래 상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움트는 찰나 사건, 더 엄밀히 말하자면 서사가 아니던가. 내가 오늘 청계천 따라가 이현궁 거쳐 육상궁으로 가는 행로가 전형이고, 그런 맥락에서라면 이 하정로 노점상들과 마주쳐 일어나는 서사 또한 돈독한 실재다. 옛 도량형기만 모아놓고 파는 아낙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허사일 순 없다.

 

平平세계를 섭새김하며 비우당교 아래서 출발해 폴짝폴짝배오개다리로 향한다. 가을장마 끝난 뒤라 그런지 어디에서든 은은히 풍기는 청계천 하수 내음이 사뭇 옅다. 다양한 얼굴들을 지나치며 오간수교 자리에 다다른다. 흥인지문 정남방에 자리한 한양도성 일부이기도 하고 배수 요처라 중요한 시설이었던 듯하다. 어정뜬 복원은 아쉽되, 오늘 서사 구성에 더없이 소중한 역사와 만나니 해낙낙하다.


 

오간수교 아래 벽면에는 영조 대왕 어필이 조형되어 있다. 개천(開川) 준설에 공 있는 신하들을 치하하는 내용이다. 개천이 얼마나 큰 일이었던지 영조는 준천사(濬川司)라는 관청을 새로 만들어 치수 공사를 일으켰으며, 이를 재위 3대 치적 중 하나로 꼽을 정도였다. 그토록 중대사였다면 영조가 현장에 직접 나와 봤으리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가까운 길목에 어머니 최숙빈의 이현궁이 있다. 그냥 지나쳤을까.

 

나는 그 여정을 거슬러 간다. 종묘와 창경궁이 있는 언덕과 현재 서울대병원이 있는 언덕 사이로 흘렀던 옥류천을 왼쪽에 끼고 올라간다. 그 오른쪽이 배오개며 거기 어디에 이현궁이 있었다. 검색한 기록에 따라 대중하고 어떤 골목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은행나무 한 분이 우뚝 서 계신다. 바로 저기다, 하고 달려간다. 그 나무 아래 이현궁 터라고 적혀 있다. 그 나무는 분명 최숙빈을 기억하고 있을 터이다.


 

나는 내 고유한 물 의례 올리고 사연을 고한다. 은행잎 두 장 거두어 종묘-창경궁-창덕궁을 거쳐 육상궁으로 간다. 인사 하고 은행잎 한 장을 삼가 묻어드린다. 나머지 한 장은 원릉(元陵) 영조 몫이다. 육상궁 나올 때 아연 떠오른 얼굴은 역겹게도 김명신이다. 종묘까지 능멸한 저 왜년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순례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다. 내 반제 주술 끝날 날은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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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개였다······고 느낀다

아니 풀이었던가······

풀이었다면 개일 수 없었을 텐데, 개에게 말을 걸던

풀의 마음이 익숙하다

그렇다면 나는 뭐였나?

내가 뭐였냐는 게 이제는 중요하지 않지만

거기그 장소의 냄새가

사무칠 때가 있다

흙과 먼지와 피와 살과 눈물의 냄새, 그 사이로

향긋하게 번지던 가느다란 풀냄새가

 

-김선우 축 생일<미륵의 고독> 1의 서장(序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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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로서 향후 삶에 큰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는 어떤 제안을 한 사람과 대화한 뒤 심사 복잡해진 일요일 낮. 점심 같이하자는 청을 정중히 물리고 그냥 지하철을 탄다. 생각에 없던 을지로4가역에서 내린다.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람 왜자기는 음식점이 나온다. 기본 차림으로 보이는 음식과 소주를 주문한다. 뜨끈한 국물에 속을 데우고 찬 소주를 들이켠다.

 

식사 마치고 나와 조금 걸으니 청계천 배오개다리 출입 계단이 나온다. 배오개다리는 본디 없었으나 복원 과정에서 만들었다. 배오개는 다리 정북향 나지막한 고개에 배나무가 많이 있어서 붙인 옛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한자로는 이현(梨峴)이고 사극 아이콘 최숙빈이 살았던 이현궁(梨峴宮)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이명박 토건이 불러낸 뜻밖 서사가 흥미롭다.

 

이명박이 복원하기 전에는 복개 위에 고가도로가 있었고, 그전에는 구정물이 흐르는 천변에 판잣집이 닥지닥지 들러붙어 있었다. 청계천이란 이름은 왜 강점기에 붙였고 본디는 개천(開川)’이었다. 조선 건국 초부터 개천도감을 설치해 치수에 힘썼을 정도로 한양도성 행정에 매우 중요한 생활하수로였다. 연인들 거니는 오늘날 풍경은 토건이 지은 가벼운낭만이다.

 

복원된 청계천을 놓고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명박 인간성과 실제 정치 행태를 보면 논란보다 더 깊은 쟁점이 존재하겠지만 그리 들어가지 않고 오늘 청계 이야기는 요즘 내 화두와 관련한 내용만 한다. 배오개다리 아래로 내려서자마자 눈길은 버드나무에 사로잡혔다. 정화 본성 버드나무가 물가에 있는 일이야 당연하거니와 내 주의는 다른 생명을 향한다.


 

죽은 등걸은 말할 것도 없고, 산 줄기에도 무성하게 핀 버섯-대부분 운지(雲芝)라 불리는 구름버섯-이 내 숨을 70번이나 멈추게 한다. 사진 찍느라 시공간은 물론 내 자신 마저 해체한 채로 흘러가다가 홀연 광통교에 가 닿는다. 지나온 물길이 아득한 소실점 되어 사라진다. 그래. 없다, 청계도 천도. 내가 본 것은 정화 버드나무와 그 주검에서 움터 산 버섯뿐이었다.

 

연인원 19천만 명 다녀간 명성도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해당 70억 원짜리 물소리도 개천(開川)이란 장소와 풍경이 6백 년 동안 간직해 온 전언이 아니다. 개천은 상수(上水)인 수십 개 지천이 백성을 먹여 살리고 내온 허드렛물을 받아 한강으로 내보내 한양을 정화하는 하수(下水)로서 숭고한 음성을 소롯이 간직하고 있다. 나는 오늘 바로 그 소리를 듣는다.

 

개천은 이 물 이름이기도 하지만 정화 하수 기능을 온전히 하기 위해 물길을 여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물을 붓는이명박식 토건과 전혀 다르다. 기술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삶을 이해하는 태도 차이다. 이명박 청계천 복원은 앵글로아메리카 제국이 저질러온 테라포밍에 해당한다. 장소와 풍경 고유함을 살해하고 우스개 삼은 범죄다. 바른길이 과연 있을까?

 

국권 상실기 왜 제국이 서울을 짝퉁 테라포밍으로 극심하게 도륙한 데다가 해방 이후 부역 정권이 미 제국 식 테라포밍을 중첩하면서 너무나 처참하게 망가뜨린 까닭에 나 같은 무지렁이 지식과 상상력으로는 절망밖에 할 일이 없다. 나는 속죄부터 한다. 나아가, 절망할 수 없어 할 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 아프고 슬픈 장소와 풍경에 더 깊게 귀 기울인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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