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닝햄 - 나의 그림책 이야기
존 버닝햄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6년 6월
품절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가족과 함께 '캐러번'이라는 주거용 트레일러에서 살았다. (...)우리는 캐러번을 타고 지방을 전전했고 아버지는 허드렛일을 했다. 아버지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쟁에 대해 더 묻고 싶었기 때문에 '부모에게 묻는 날'이 국경일로 정해져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15쪽)

(사진은 클릭하면 엄청나게 커집니다.)

킬콧에 있는 나무 집에서 누이와 함께.(21쪽)

--열여섯 살 때 학교에서 파리로 여행을 간 것이 외국에 나간 첫 경험이었다. 난 여행을 위해 차링크로스 거리의 세슬 기 상점에서 파는 밝고 엹은 자주색 코르덴 재킷을 정말 갖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게 볼품없는 트위드 재킷을 사줬는데 그것이 내 파리여행을 망쳤다. 세슬 기 상점에서 파는 엹은 자주색 재킷을 샀더라면, 모든 게 잘되었을 것이다.

서머힐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문 소년이 존 버닝햄. 자주색 코르덴 재킷에 대한 그의 미련이라니.....

--학교를 마치고 병역을 수행하는 대신에, 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등록했다. 나보다도 아버지가 더 기뻐했다.(34쪽)

관련서류와 존 버닝햄이 직접 그린 지방병역 면제 심사 장면.
아이가 어릴 때 그린 그림이나 물고 빨았던 장난감, 중요한 기록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맥클린이란 노인은 한도를 넘어선 사람이었다.(...) 내가 베갯잇도 없는 그의 베개를 들자 베개는 마치 양피지처럼 부서졌다.
우리가 방을 덥히고, 벽에 회를 바르고, 짐 정리를 하고, 페인트칠을 하고, 창문에 유리를 끼우고, 새 침대와 새 침구를 마련하는 동안에 맥클린 씨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돌아온 뒤에도 같은 자리에 앉아서 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뀐 것에 대해 한마디 말도 없었다.(39쪽)


병역대체근무의 내용 중에는 글래스고의 빈민가를 재건하는 일도 포함되었는데 이 무렵 세상의 어두운 면을 많이 목격한 것일까, 존 버닝햄의 그림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어두운 분위기.


--내가 헬렌 옥슨버리를 만난 것은 센트럴 미술학교 시절이었다. 헬렌은 무대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결혼한 뒤이다. (...)
우리가 직업이 같아서 힘들지 않는냐고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나는 헬렌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헬렌은 내가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마도 부부로서 살아남지 않았나 싶다.(50쪽)

<곰사냥을 떠나자> <행복한 돼지>를 그린 헬렌 옥슨버리와 존 버닝햄이 부부라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준 적도 있었다, 괜히......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 뭐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포트폴리오를 들고 잡지사와 출판사로 갔다. 편집자는 "이건 포스터이지, 일러스트레이션이 아니군요."라고 했다. 그래서 난 직접 모든 걸 하기로 마음먹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보르카라는 기러기에 대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65쪽)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에 관한 노트.
뒤에 사진도 나와 있지만 보르카는 어릴 때 갖고 놀던 그의 장난감을 많이 닮았다.

--나는 놀이방, 학교, 가정에서 벽에 붙일 수 있는 띠 벽지들을 디자인했다. 나는 그림이 겉에서도 보이도록 아코디언처럼 접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책과는 달리 띠 벽지에는 세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책방에서는 띠 벽지 파는 것을 그만두었다.(95쪽)

존 버닝햄의 그림 띠 벽지라니, 책을 읽는 중에 눈이 번쩍 뜨였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인데, 중단되었다니 아쉽기 짝이 없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 중 내가 처음으로 접한 것이 바로 <사계절>. 딸아이 돌선물로 그림 그리는 친구가 고른 책들 중 한 권이었다.
아이가 선사한 인생의 즐거움 중에는 그림책 읽기도 포함된다.
그의 그림책은 유아용 몇 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샀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의 할아버지에 관한 기억과 내 딸 에밀리와 아버지의 모습을 관찰하여 조합한 것이다. 대부분의 장면은 에밀리와 아버지가 나눈 대화를 엿듣고서 썼다.(152쪽)

<우리 할아버지>는 <스노우맨>과 <노란 잠수함>을 제작한 존 코츠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변화는 피상적이다.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와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면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174쪽)

분홍셔츠 차림의, 못말리는 술꾼처럼 나온 존버닝햄의 이 사진이 나는 제일 마음에 들었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구미가 당기는 걸로 몇 장 찍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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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7-2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버닝햄 전시회 보러 가야 하는데, 언제나 가려는지..쩝.
그 동안 뭐 하셨어요? 혼자서만 어디 좋은 데 놀러가셨나 했다구요.

로드무비 2006-07-2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잘 지내셨죠?
휴가 다녀왔어요.
그런데 존 버닝햄 전시회 아직 하나요?

mong 2006-07-2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닝햄의 그림은 온기도 거친 표현도 그대로 느껴져서 좋아요
휴가 잘 다녀오셨어요? ^^

건우와 연우 2006-07-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휴가 잘 다녀오셨나요?
로드무비님 이름이 뜨니 눈이 번쩍 뜨여요...^^

로드무비 2006-07-28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반갑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반겨주시는 듯하여 기뻐요.^^

mong님, 온기도, 거친 표현도.....
맞아요.
먼저 맞는 매처럼 서둘러 휴가를 다녀왔답니다.^^

치유 2006-07-28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리뷰가 멋지네요..

잘 다녀오셔서 다행이네요..^^

urblue 2006-07-28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 초까지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설마 아닐까요...? --a

nada 2006-07-28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트레일러 너무 탐나요!!

플레져 2006-07-2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다. 저두 저 분홍셔츠 차림에 올인...
분홍셔츠 잘 어울리는 남자를 좋아해요. 호호.

로드무비 2006-07-3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전 회지 남방 쪽.ㅎㅎ
다른 사진들은 너무 깔끔한 모습이라 술병을 옆구리에 꿰찬 저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더군요.^^

꽃양배추님, 저도요, 저도요.^^

블루님, 9월 초요?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배꽃님, 존 버닝햄의 팬이라면 이런 사진, 이런 정보를 원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포토리뷰를 올렸답니다.
저의 군소리는 빼고요.^^

산사춘 2006-07-3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 또 새로운 세계... 찍어올려주신 정성에도 감사...
휴가 잘 다녀오셔서 다행요(라기보다는 부러오요)...

로드무비 2006-07-30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저 좋아서 한 짓인데요, 뭐. 헤헤~

반딧불,, 2006-08-0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한참 담아뒀는데..;;

로드무비 2006-08-0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어요?^^

반딧불,, 2006-08-0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무비님 포토리뷰만 떴다하면 사고 싶어서 들락거린다는 것. 흑.

로드무비 2006-08-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도 재미죠, 뭐.^^

해리포터7 2006-08-12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더더욱 사고파지네요..과연 책값을 할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08-14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 7님, 존 버닝햄의 팬이라면 이 책 좋아하실 듯.
(싫어하는 분들도 더러 있더라고요.)
 
하나오 1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마츠모토 타이요의 만화 <하나오>는 어느 날, 아이쇼핑 중
비싼 책값과 함께 독특한 그림으로 먼저 내 시선을 끌었다.
철딱서니 없는 아빠에 영악하고 하드보일드한 초등학생 아들이라니,
어째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고,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1권만 주문했다가 결국 다음번에 2, 3권을 마저 주문했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든지, 30대 가장의 역할이라든지에
도무지 자신의 삶을 대입시킬 줄 모르고,
동네 시장통의 사람들과 야구단을 만들어 시끌벅적 어울려 놀며
팔다남은 야채나 생선을 얻어 연명하는 걸로 보이는 한심한 아빠 하나오.

자이언츠의 정식선수로 마운드에 서는 것이 꿈이라는 아빠를
시게오는 현실도피자로 매도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엄마의 요청으로
헤어져 살고 있던 아빠에게 와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되었으니
지지리궁상의 냄새나는 방이며 꾀죄죄한 그의 이웃들이
이 영악한 소년의 마음에 찰 리가 없다.




앞으로 유명한 선수가 되어 인터뷰를 할 때에 대비, 인터뷰를 연습중인 하나오.


걸핏하면 등교하지 말고 자신과 하루종일 놀아달라고 조르는 아빠 하나오에게 소년은
바보라든가 쪽팔리는 인간이라든가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하나오의 움막이 있는 동네 주민들도 하나오와 비슷한 부류인지,
그리고 하층민답게, 도무지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다.
아빠에게 버림받은 줄 알고 속으로 쫄아 있는 시게오를 발견, 가게 안으로 불러들여
밥을 한끼 먹이는 점방 할머니가 하는 말이, "너는 버림받은 게 틀림없어!"일 정도이니.
그런데 그런 강펀치 같은 말이 읽는 독자에게는 참 통쾌하다는 것이다.

"결국 네가 그린 행복의 마운드에선 개미 한 마리도 못 놀겠구나.
장점과 단점을 나눠 생각하니까 무리가 생기는 거야!"(제3권 175쪽)

아빠에게 버림받은 게 틀림없다고 아이를 놀려먹던 심술궂은 할멈도
동네 꼬마 중의 한 명에 불과한 영악한 소년 시게오의 문제와 본질을 정확하게 꿰고
필요할 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얼핏 보면 정신없는 그림이요, 뒤죽박죽인 내용인데, 몇 번을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 만화를 읽은 게 약 보름 전.
리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다 며칠이 흘러버렸다.
그런데 손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이 만화를 두게 되고 가끔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게 된다.
그런 만화로 <하나오>만한 게 없다.
좀전에 우연히 맨 앞장을 펼쳤더니,'1991년 7월,  여름방학이 시작됐다.'로
시게오 부자의 이야기가 시작되길래,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왜냐고?
바로 오늘은 마이 도러의 여름방학이 시작된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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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7-21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제 주하의 기발한 이야기가 더 자주 올라오는건가요? 기대기대^^
저는 이희재만화의 선을 좋아하는데 저그림도 좀 비슷한데가 잇는것 같아요..
아무튼 로드무비님의 리뷰는 뭐니뭐니해도 명품이예요.

로드무비 2006-07-2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희재 만화 저도 좋아합니다.
<악동이>를 제일 좋아했는데 건우와 연우님은요?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인간이 더 교만해지는데요.=3=3=3

oldhand 2006-07-2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츠모토 타이요는 젊은 나이에 참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더군요. 그의 명작 '핑퐁'을 보고 '최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절판되서 구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만화방에서도 찾기 어렵더라구요. 타이요의 작품이 또 나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보관함으로.. ^^

로드무비 2006-07-2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저도 그 <핑퐁> 보고 싶어요.
이 작가의 만화 아주 유니크합니다.
멋져요.^^

oldhand 2006-07-21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퐁.. 전설적인 절판본이라서 '그 책을 구한 자 3대가 덕을 쌓았군요'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랍니다. ㅠ.ㅠ 최근 일본에서는 애장판이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다시 나올 확률이 거의 희박한 것 같아요.
절판 도서지만 알라딘에 리뷰가 남아 있네요.
표지 이미지라도 맛보기로 보시려면..
http://blog.naver.com/hagusin_rock?Redirect=Log&logNo=100013094437

로드무비 2006-07-2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가봤습니다.
더더욱 보고 싶군요.
그림이며 줄거리가 을매나 땡기는지, 원.
(고맙습니다. 저도 뭔 좋은 정보 보면 님께 달려갈게요.^^)

Mephistopheles 2006-07-2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딱서니 없는 아빠에 영악하고 하드보일드한 초등학생 아들이라니, -
여기서 아빠를 엄마로 아들을 딸로 바꾸면 되는 건가요..?? =3=3=3=3=3

2006-07-21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06-07-21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바보라든가, 쪽팔리는 인간이라든가.. 그런 말을 아빠에게? 주하는 방학을 뭐하고 보내나요? 줄줄이 학원에 보내시진 않을 거 같고..(아님 혹시 정말? =3=3=3)

2006-07-21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하 2006-07-2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만화는 특히 '약간의 상상'을 크게 부풀리는 특성이 있는 거 같아요. 독특한 상황설정이 좋은 이야깃거리가 된 작품일듯.... 우리 동네 만화가에 있는지 물어봐야겠네요...^^;
주말 잘 즐거이 보내셔요....

usisi01 2006-07-23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고 당장이라도 읽어보고 싶네요.. 감사^^
 
본 컬렉터 1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읽은 몇 권의 탐정물을 제외하고는 추리소설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알라딘 서재활동을 하게 되면서 안 읽으면 안 될 것 같은 추리소설 몇 권을
님들의 리뷰나 페이퍼를 통해 소개받아 읽긴 했다.
하지만 추리소설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호감은 느꼈지만 데이트 신청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약간 매력적인 남자 정도랄까.

그런데 제프리 디버의 <본 컬렉터> 두 권을 어제오늘 이틀 만에 해치우고,
데이트 신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라임은 문득 캔디바를 한입 베어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초콜릿을 먹어본 지 1년이 넘었다.
설탕이나 캔디처럼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음식을 삼가왔던 것이다.
가장 사소한 일들이 가장 무거운 짐이 되고, 사람을 가장 슬프고 지치게 만들었다.
스쿠버다이빙이나 알프스 등반을 못한다 치자. 그게 어떤가.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안하고 산다.
하지만 양치질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일이다. 치과에 가서 이를 때운 다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 아무도 안 볼 때 잇새에 낀 땅콩조각을 몰래 빼내는 일,
링컨 라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제2권 11~12쪽)

'법과학자'라는 명칭으로는 부족해  '범죄학자'라는 신조어를 만들게 할 정도로
범죄현장 감식 능력이 뛰어나고 게다가  <범죄의 현장>이라는 책까지 펴낸 적 있는 링컨 라임.
어느 날 현장감식 중 대들보가 무너지는 사고로 네 시간 매몰되어 있다가 구출되지만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자신의 생존과 관련되어 침대에 달려 있는 각종 전자제어장치를
누를 수 있는 왼손 손가락 하나, 그리고 머리뿐이다.
범죄현장을 신들린 듯 누비던 그가 마흔줄에 접어들어 지금은
잇새에 낀 땅콩 조각조차 몰래 감쪽같이 파낼 수 없는 처지라니,
그 심정이 어떨지 이해가 된다.
자신의 마지막 인생 프로젝트는 '자살'이라고 공언하고 도와줄 의사를 몰래 수배하는 등
호시탐탐 죽을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경주마를 닮은 음울한 아름다움"(이라니 참 멋진 표현이다!)을 지닌 순찰경관 아멜리아 색스가
어느 날 아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게 살해된 범죄현장을 목격하면서 링컨 라임과
절묘하게 연결된다.
이 잔인한 살인마는 어쩌자고 살인 현장마다 자신을 뒤쫓는 경찰을 비웃듯 희미한 단서를
하나씩 남겨놓는다.

다 읽고 나서 흥분을 가라앉히며 책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언젠가 물만두님이 페이퍼로
표지 디자인 시안을 여러 개 올리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표지 절반을 차지하는 '뼈'가 참 인상적이었는데 책 속에 여러 번 되풀이해서 소개되는
살인범의 '뼈'에 대한 미학 혹은 철학이 참으로 예사스럽지 않다.

--뼈는 한 인간의 궁극적인 핵심이다.
변형되지 않고, 기만하지 않고, 휘어지지 않는다.
겉껍질을 둘러싼 무절제한 살, 열등한 인종과 나약한 성의 결함이
불에 타거나 열에 익어 떨어져 나가고 나면 우리는,
우리 모두는 고귀한 뼈이다. 뼈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뼈는 불멸이다.(제2권 32쪽)

"법의학과 과학수사에 관한 꼼꼼한 리서치로 정확한 번역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간단하게 소개된 번역자의 이름도 꼭 기억해야겠다.
조금 인색한 듯한 소개라고 느낄 정도였으니, 얼마나 생생하게 실감나게 장면장면을 묘사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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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19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링컨 라임과 사귀시기 바랍니다. 괜찮은 남자거든요^^

mong 2006-07-1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인사 나누셨으니 다음 단계로 친밀해 지셔야죠
코핀댄서를 추천해 드리면서~ㅎㅎ

oldhand 2006-07-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드디어 궁합이 맞는 미스터리를 만나셨나 보네요. 제가 다 기쁩니다. ^^
제프리 디버는 독자를 재미있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작가인것 같아요. 너무나 치밀한 전개가 약간 피로감을 주기도 하지만 말이죠. 링컨라임 2탄인 <코핀댄서>는 더 재밌습니다. 그새 4번째 시리즈까지 나왔습니다만..

Mephistopheles 2006-07-19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안보고 영화만 봐서..자꾸만 덴젤 워싱턴과 안젤리나 졸리밖에 안떠올라요..

로드무비 2006-07-19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영화도 보려고요.
두 주인공 괜찮은 캐스팅 같은데요?ㅎㅎ

올드핸드님, 제가 좀 기피했던 순간인 것 같아요.
추리소설 읽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거든요.
미스터리물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제가 쪼까 나이가 많다 보니......
그런데 일단 이 시리즈물은 다 챙겨볼 생각입니다요.^^

mong님, 이 책 속에 찰리와 초콜릿공장 영화표 두 장이
끼워져 있더군요.
누구에게 빌린 책일까요? 맞춰보세요.=3=3=3

FTA 반대 물만두님, 너무 홀딱 빠질까봐 걱정입니다.
책장수님이나 집안일을 지금보다 더 내팽개칠까봐.ㅎㅎ

어룸 2006-07-1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낚여버리셨군요, 링컨라임과 아멜리 색스의 마력에!! 으흐흐흐흐~~ 전 맨날 빌려읽다가 이번 세일에 제프리디버 다 질러버렸어요~~ 엉엉엉~~ TㅂT

로드무비 2006-07-1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일중인가요? 저도 슝.=3
(급해서 길게 못 씁니당.)

야클 2006-07-1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추리소설 리뷰도 격조가 있으시군요. 전 그래서 추리소설 리뷰 못씁니다. ^^

어룸 2006-07-19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지르시는김에 7마넌 이상지르시면 7%할인도....크크크크크크...`ㅂ'

날개 2006-07-1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핀댄서 읽으시고, 다음편 곤충소년도.....^^

비연 2006-07-1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링컨 라임 시리즈 추천해요^^ 영화하고는 차원이 틀린 재미가 있지요.
갠적으로 곤충소년도 괜챦았고, 이번에 나온 돌원숭이도 나쁘지 않았구요...^^

건우와 연우 2006-07-1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프리디버의 표현도 멋지지만 로드무비님의리뷰도 멋져요...^^

로드무비 2006-07-2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리뷰를 꼭 쓰고 싶더라고요. 간단하게라도.^^

비연님, 곤충소년, 돌원숭이 모두 접수했습니다.^^

날개님, 역시 먼저 읽어치우셨구만요.^^

투풀님, 우와 7프로요?
다행히 보관함에만 집어넣어 놨습니다요.^^

야클님, 어울리지 않게 겸손은!=3=3=3
(님은 교만한 게 더 잘 어울려요.^^)

2006-07-20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7-2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읽어볼래요님, 책을 손에 드는 날은
저녁 준비하기가 괴로우실 걸요?^^
(빨리 읽어치우고 싶어서......)

아키타이프 2006-07-22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로만 봤는데요. 졸리 밖에는 기억에 남아 있는게 없네요. 썩 재밌지는 않았었나 봅니다. 물론 영화가요... 책은 기억해 뒀다가 챙겨 봐야겠네요.
 
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매일 밤늦게까지 책을 읽고 가끔 나가서 육체노동에 가까운 일로
삶을 지탱할 푼돈을 벌고 세월을 서성거린다.(149쪽)

--생각하는 것만큼 삶은 간단하지 않다.
내 방에서 한 발만 벗어나도 계산이 시작된다.(160쪽)

오로지 읽고 싶은 책을 사기 위해, 주유소나 편의점, PC방 등에서 필요할 때마다 일을 하며
그 외의 시간에는 줄창 책만 읽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이 나왔대서 주저없이 집어들었다.
식당 설겆이 등의 단순노동(이긴 하지만 무지 힘든!)으로 최소한의 밥벌이를 하며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만 실컷 보며 살고 싶었던 때가 나라고 어디 없었겠는가.

열흘 전인가, 모 방송 프로그램에 한 책벌레 가족이 소개되었다.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어서 그곳으로 이사를 올 결심을 했다는 40대 초반의 주부.
초등학생인 두 아이와 그가 지난 6년 동안 읽어치운 책이 도합 1만 권.
1년에 200여 권 대출해 읽었던 두어 해를  입만 뻥긋하면 자랑했는데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그런데 화면을 보고 있자니 책벌레 가족이 남편이나 아빠를 대하는 태도에 짜증이 치밀었다.
아빠는 독서에 취미가 없고 축구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퇴근해 돌아온 아빠가 축구경기를 보려고 거실의 텔레비전을 켜자
거실 한복판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있던 초등학생 딸이 눈을 부라리며
책을 읽고 있는데 
텔레비전을 틀면 어떡하냐며 있는 대로 신경질을 내는 것이 아닌가.
저녁 준비를 하던 아내도 부엌에서 뛰어나와 남편에게  한 마디!
그집 아빠는 할 수 없이 베란다로 텔레비전을 끌고 나가 문을 꼭꼭 닫아걸고 볼륨을 줄이고
쪼그리고 앉아 축구를 보는 것이었다.

아내의 소원이 남편이 독서에 취미를 붙여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책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라고.
남편은 아내의 말에 허허 웃기만 했다.

아니, 책 몇십 만 권을 읽으면 뭐하냐고!
자신이 책 많이 읽는다는 게 무슨 특권이고 자랑인 듯 다른 사람의 취미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등짝을 한 대 패주고 싶다.
독서는 인간의 수많은 취미활동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의미 부여는 개개인이 알아서 할 일.

세상에 태어났더니 마음 가는 거라곤  어떻게 된 게 책밖에 없어서 줄창 책만 읽고 있지만
그 사실이  좀 겸연쩍고, 땡볕에서 열심히 일하여 일용할 양식을 버는 친구에게 뭔지 미안해서
만나면 술 한잔 사줄 용의가 있는 정도.
책이나 자신의 독서 행위에 대해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나는 좋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떨까?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기대도 갖지 않은 채로(171쪽)" 마음의 동선을 따라
게으르게 최소한으로만 움직이는 사람이라 그런지 윤곽이 희미하다.
희미한 윤곽이 또 매력이 될 수도 있는 법인데, 내게는 그저 모호하기만 한 인물로 다가왔다
세상일에는 아무것도 관심없다며 단지 읽고 싶은 책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호랑이 아가리에라도 머리를 처박을 태세인데 뭔가 어색하고 이야기가 겉돈다는 느낌.

하루라도 가게 문을 안 열면 안 되는 줄 알고 자신의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식당에 올인하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제일 인상 깊었다.
특별히 멋진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나오는 장면도 많지 않은데......

<백수생활 백서>를 재미있게 읽으며, 아니 나는 왜 진작에 이런 글을 한 편 써볼
생각을 못했더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통을  한 대 가볍게 쥐어박아 주었다.
책 속의 '내'가  읽은 수많은 책들의 장면과 구절들이 곳곳에 적절하게 등장하는데
좀 의외다 싶은 작가의 것들도 더러 있었지만 '나'의 서술과 대체적으로 잘 어울렸다.
삶이나 독서, 영화에 대한 그의 단상도 귀기울일 만했고.

그런데 다음 구절은 정말 의외였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컵라면에 붓는다. 그리고 그 위를 어젯밤을 함께 보낸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으로 덮었다.
두꺼운 양장본의 책은 컵라면 덮개로 아주 유용하다.(95쪽)


김이 오르는 컵라면 위에 자신이 읽던 책으로 뚜껑을 덮는 사람(독서광 중에서)이
과연 있을까?  알고보면 책이 구체적으로도 쓸모가 많다는 걸 말하려다가 
이 작가 그만 오버액션을 한 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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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6-07-1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한대 쥐어박고 싶은 이유가 그거였군요 ^ ^
저도 한번 읽고 싶은 책인데, 사실 저는 말씀하신 주인공의 아버지 같은 분을 요즘 존경해요. 옆에서 보면 단순하고 쉬워보이는 일이, 제가 막상 해보니 쉽지 않더라는 것을 깨닫고 부터는요.

치니 2006-07-1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엇 로드무비님, 저 그렇게 뚜껑 덮고도 남을 사람 인데요. ^-^;;;
꼭 책 뿐 아니라 뭐든지간에 자기가 하는 것만 중요하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의 다른 취향은 무시하는 사람은 미오요.

로드무비 2006-07-12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정말 한 대 쥐어박았다니까요.ㅎㅎ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 그 모습만으로도 뭉클.

치니님, 정말요? 히히~
전 새우깡 정도는 올려놓는데, 커피도 책 위엔 안 올려요. 쏟을까봐.
(생각해 보니 뭐 그럴 수도 있겠구만요.^-^)

Mephistopheles 2006-07-1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요한다고 안읽던 책을 읽을까요...?^^
책만 많이 읽으면 헛똑똑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죠...

로드무비 2006-07-1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보내주신 음악 잘 들었어요.
특히 정 모 가수의 목소리 박력있던데요?
가끔 꺼내 듣겠습니다. 감사!ㅎㅎ
헛똑똑이, 예전에 우리 엄마에게 많이 듣던 말이네요. 헤헤~

nada 2006-07-1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컵라면을 브루클린 풍자극으로 덮었다는 대목이 매우 공감가는데요? 그 짓 잘하거든요. 물론 전 독서광이 아니고, 책이나 독서 행위에 대해서 겨우 그만큼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지만요. 숫자의 유혹은 매력적이긴 합니다만. 의미 없는 다독은 자학 아닐까요.

조선인 2006-07-12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도 취미인 걸 인정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네요. 근데 비싼 양장본 책으로 컵라면을 덮는다... 전 돈이 아까워서 못해요. ㅋㅋㅋ

로드무비 2006-07-12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전 배송되어온 책에 조금이라도 이상 있으면
아주 불쾌해 하는 분들을 여기서 많이 봐서 모두 그런 줄 알았어요.
책으로 컵라면 뚜껑을 덮는다고 해서 책을 안 사랑하는 것도 아닐테고
또 안 사랑하면 어떻고, 각자 알아서 할 일이네요.=3=3=3

waits 2006-07-1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체적 쓸모란 말을 보니 문득, 예전 시트콤에서 쓸데없는 물건들 주워온다고 구박하는 며느리 보란 듯이 색소폰에다 마늘도 빻고 목욕도구들도 담고 하던 신구할아버지 생각이. 어인 딴소리~ㅎㅎ

urblue 2006-07-1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으로 컵라면 덮으면 쓰러질까봐 걱정스러워서 못 덮겠던데요. =3=3

mong 2006-07-1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책이 냄비 받침으로도 그만이잖아요
히히 =3=3=3

로드무비 2006-07-1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컵라면 뚜껑으로 책 사용 여부는 각자의 성격에 따라 다를 테죠.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 안 보는 걸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인간의 생각이 그만큼 다양한 것이니.
타인에게 강요하지만 않으면 뭐 얼마든지.....^^

건우와 연우 2006-07-12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리뷰는 너무 심해요..자꾸 어찌 지르라고...
마지막으로 인용해 놓으신 부분을보는 순간 정말 지르고 싶은 마음이 울컥 하니 참 무슨 심보인지 ㅎㅎㅎ...^^

혜덕화 2006-07-1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남편이나 아빠에게 어떻게 하라는 것은 안적혀 있어서 모르나봐요. 그 집 식구들은 그런 인간에 대한 기본 예절에 관한 책부터 읽어야겠군요. 하지만 책이 수십만권이면 뭐합니까? 좋은 말씀 좀 해주십시오, 하는 시자의 말에 서암스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처럼 세상에 좋은 말이 없어서 이 모양이겠습니까? 좋은 책은 너무 많은데, 언제나 내가 하는 일이 옳기만 한 이 아상이 문제겠지요.

로드무비 2006-07-1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 월드컵 게임 가족 단체 시청 이벤트를
하루 펼치더라고요. 아빠를 위해서, 깜짝 이벤트로.
가만 생각해 보니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부각시키려고 방송국에서 짠
시나리오인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날 화면으로 볼 때는 짜증이 치솟더군요.
남의 가족 일에.
이런 것도 제 생각만 옳다는 아상일까요?;;

건우와 연우님, 사고 싶은 책과 꼭 한 번 빌려 읽고 싶은 책이
있지 않아요?ㅎㅎ
저도 가을쯤에는 이동도서 버스를 이용할까봐요.
빌려보고 싶은 책까지 사보려니 무리가 가네요.^^;;
(인용해 놓은 부분이 땡긴다고 하시니, 호호`~)

mong님, 잘못하면 자국이 남는데.
제 책 가지곤 안 그러실 거죠?=3=3=3

블루님, 책이야 어떻게 되든 라면 못 먹게 될까봐?
말 됩니다.^^

FTA 반대 나어릴때 님, 신구 할아버지의 심술 못 말렸죠.
그 장면이 연상되어 자꾸 웃음이 나와요.ㅎㅎ



바람돌이 2006-07-13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양장본이든 뭐든 옆에 있는 책으로 컵라면 뚜껑 덮는데.....빌린 책만 빼고요. ㅠ.ㅠ

아키타이프 2006-07-1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적으로 컵라면이 짜부러지지 않나, 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저도 讀보다는 食이 우선인 인간인겁니다. 라면은 좋아하지도 않음시롱.

로드무비 2006-07-13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이프님, 그러니까요.
저 책 정도면 꽤 무거운데.
저도 먹는 게 먼저인 인간입니다.
그런데 뭐 먹으면서 책 읽는 것도 좋아해요.
묻혀가며, 닦아가며...^^

FTA반대 바람돌이님, 그러시군요.
책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더 믿음직스러워요. 히히~~

따우님, 넝담이시죠?
전 순간 님의 말을 믿어버렸지 뭡니까.ㅎㅎ

oldhand 2006-07-13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늘고 긴 컵라면이라면, 두꺼운 양장본은 오히려 위태위태해 보이는군요.
"왕뚜껑"이라면 적당할 것 같은데, 왕뚜껑은 덮어누를 필요가 없으니. 하하.
뜨거운 라면 위를 책으로 덮는다면 습기가 차는게 문제일텐데, 그런 점에선 양장본이 어울려 보입니다. 물기는 그냥 슥 닦아 버리면 되니.. ^^

플레져 2006-07-1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밑줄도 안긋던 사람이지만 (요샌 밑줄, 긋는 게 일)
컵라면 위에 올려놓는 건 정말 이해안가는뎁쇼?
젓가락을 올려놔야 제맛인데 ^^
댓글들이 참 재밌어요. 갖가지 방법이 다 나오네요 ㅎㅎㅎ

로드무비 2006-07-15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전 밑줄 잘 그어요, 예전부터.
저도 책이 쭈글쭈글해질까봐 컵라면 위에는 못 올리겠던데.
어제 읽던 시집을 앞에 두고 밥을 먹다가 김치국물이 튀었는데
안 지워져서 스티커를 붙일까 잠시 생각했다지요.ㅎㅎ

올드핸드님, 그러게 말입니다.
컵라면은 나무젓가락으로만 고정해 놔도 충분하던데.
양장본은 무게 때문에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컵라면 같은 데
누르는 돌로 써도 되겠어요. 습기는 닦아주면 되니까.
전 그 생각을 못했네요.^^

로드무비 2006-07-17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놀랍긴 하지만 뭐 상처받을 일까지는 아니지요.
제 사전이 쭈글쭈글해지는 것도 아니고.=3=3=3
(의외의 면모로군요. 히히~)

2006-07-31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대로 두기 - 영국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 여성 편집자의 자서전
다이애나 애실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훌륭한 출판업자는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 임무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어쩌다 보니 연결이 되었다.(175쪽)

소설가 김승옥의 원고를 받기 위해 문학사상 편집부 직원들이 사무실 근처
여관에 그를 감금(?)해 놓고 옆방에 진을 치며 감시하여
몇 날 며칠 만에 원고를 받아냈다는 이야기는 편집자들에게 전설처럼 다가온다.
더구나 그 당시의 편집부 직원들이 지금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지는 우리 문단의
중진들이었으니.(이어령, 서영은 등)

1990년대 초, 춘천 모 소설가의 집에 육필원고를 받으러 갔더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상자같은 조그만 다락이 하나 달려 있는데
ㄷ출판사의 편집부 여직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주말에만 서울에 올라가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한다고 했다.
아무리 작가의 집필을 독려하기 위해서라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이든 산문집이든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가의 주변에 다른 출판사의 접근을 차단하는
의미도 있었다.
나는 그이가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었다.
소설가와 가족같이 지낸다고 해서 그도 덩달아 소설가의 가족인 것은 아니다.
내 눈에 그는 쓸모없는 일에 자신의 자유를 저당잡힌 다락방의 베키
(<소공녀>의 주인공 세라의 친구) 정도로 보였다.

"영국 출판 편집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우는  다이애나 애실의 출판 인생 자서전
<그대로 두기>를  단숨에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다른 훌륭한 출판업자들과 달리 어쩌다 보니 작가들과 연결되었다"는 말과는 달리,
'노먼 메일러, 존 업다이크, 잭 케루악 등 20세기의 비중 있는 전후 영미권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다듬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그이다.
우리가 몰랐던 작가들의 극적인 삶이나 숨은 이야기보다, 너무나 담담하고 솔직한 어조로 회상하는
그의 50년 출판 인생의 하루하루가 내게는 더 박진감이 넘쳤다.

80년대 중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사건 범인들과의 옥중 인터뷰를 통해
인간과 죄악의 어두운 심연을 파헤치는 책을 내겠다는 야심찬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교도소를 방문, 범인 중 한 명인 마이러 힌들러를 만나보고 나서 그는
책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녀가 멀쩡한 성인의 입장에서 저지른 살인사건의 기억들과 함께 계속 살아야 한다면
'나는 죽어야 된다'고 인정하거나 정신분열을 일으킨들 이 사회가 얻는 수확은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그녀를 도와 원고를 완성하고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간한다면 우리는 저질 포르노를 싣는 쓰레기 신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신문이 될 수는 없었다.(88쪽)

그날 대화를 통해 연쇄살인범 여성의 현재 상황과 그녀의 성격을 이해한 후
책을 내는 것이 당사자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야심찬 기획을 접는 순간
그의 통찰력과 용기와 결단은 눈부실 정도였다.

또한 어느 날은  진 리스라는 소설가의 새 원고('임페리얼 대로')  출간을 반대하는데
이유는 사랑하는 작가가 그 작품을 펴냄으로써 인종차별주의자로
세상에 낙인 찍히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흑인이 되고 싶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작가였지만 평소 대화에서
마음에 드는 흑인이 있으면 "충직하다"고 표현하는 등 그의 뼛속에 또아리 틀고 있는
차별을 본 것이다. 그것이 새 작품에 은연중 나타난 것이고.
진 리스라는 작가는 멋진 편집자를 만나 정말이지 적절한 보호를 받았다.

함께 일한 사람들이나 친하게 지냈던 작가들에 대한 묘사도 얼마나 구체적이고 생생한지 
바로 옆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직접 이야기를 전해듣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감탄한 건 그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유머.
'책'이나 '출판'에 대한 그의 사유도 어찌나 공감이 가는지 나도 모르게 밑줄을
북북
그어가며 읽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는 위대한 문장에 희열을 느껴서라기보다
내 좁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 복잡한 인생에 대한 감각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잡아먹을 듯한 인생의 어둠과 고맙게도 그 속을 애써 뚫고 나오는 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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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7-0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만 꾸욱..

DJ뽀스 2006-07-0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권에 도전하느라 느무 가벼운 책을 많이 읽었더니 머리속이 허합니다. 대출대기목록 0순위로 올려놨습니다. ㅋㅋ

sandcat 2006-07-03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대로 두기>가 말이예요. 왜 교정볼 때, 고치지 말고 원래 그대로 가라는 뜻에서 '生'이라고 쓰잖아요. 그런 건가요? 아무래도 이 책을 살 때가 된 것 같아요.

瑚璉 2006-07-0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기회가 되시면 이번에 나온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중 서문만 읽어보세요. 편집자의 애환이 뚝뚝 묻어나오는 재밌는 글이더군요. 본문은 재미없었지만...(-.-;).
아, 그리고 이 책은 보관함으로 보냈습니다.

로드무비 2006-07-0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질님, 수첩에 적어놨다 서점에 가게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본문은 재미없다니 안 사도 되겠군요.^^

샌드캣님, 맞아요. 그대로 두라는 의미. 生!!
웃으며 감탄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DJ뽀스님, 도서관의 책이 모두 뽀스님 것 같아요.
부럽습니다.^^

건우와 연우님, 을매나 감사헌지. 꾸벅.^^*

날개 2006-07-0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이거.. 리뷰가 너무 재밌군요....^^

로드무비 2006-07-0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호호~ 책이 재밌으니 리뷰도 덩달아.^^

따우님, 生, 그대로 두자고요.^^

瑚璉 2006-07-0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시기 벌린의 자유론 본문이 재미없는 건 제 이해력이 떨어져서 그런거지 벌린의 잘못이 아니거든요, 구입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요(휙).

로드무비 2006-07-0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질님, 호호~ 서문 읽어보고 결정할게요.^^

nada 2006-07-0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500cc 잔에 쓰인 生 자가 떠오르던디...=3=3=3

로드무비 2006-07-0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투!=3=3=3

맑음 2006-11-2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편집 사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땡스2 누릅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