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혹은 삼십대 까지도 열심히 살다보면 세상은 반드시 변하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바램만큼은 아니어도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을 것같은 나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6월 혁명을 거쳐 느꼈던 역사의 진보에 대한 희망이 세월호의 퇴행을 거치면서도 뭉개지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최근 민주당은 세월호의 충격보다 심하게 인간에 대한 믿음을 뭉개고 있는 느낌이다.

그들이 내편이라고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안에 혹시 내편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같은게 있었던 걸까? 

때로 민주당이  못미덥고 싫어도 자한당을 찍을수는 없어 투표장에서 인질같은 마음으로 찍었던 그 한표가 이리도 심한 모욕으로 돌아올 줄이야 . . . .

 

시민운동가에서 성공적인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인간의 선함이라는게 있긴 한건지 의심스럽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던 지방자치제도도 부패한 지방토호의 모습들을 반복해 보여주고, 개인의 사생활을 국가가 통제하는게 지나치다던 간통제폐지는 성공한 권력자의 성비위를 은폐하기 쉽게하는데 이용되기만 하는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젊어서 진보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늙어서도 진보주의자면 뇌가 없는거라던 농담같은 말을 씁쓸하게 떠올리며, 내가 믿었던 신념들에 자꾸 혀를 차게 된다.

어쩌면 침조차 뱉게 될지도  모른다.

늙고 고집스러운 나이가 되니, 세상이 만들어준 실망에 더 큰 상처를 만들어내고 싶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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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십이월이다.

어제밤 군대에 간 건우가 전화를 했다. 전화기너머로 강원도 화천의 한기가 넘어와 가슴이 시렸다. 입김이 하얗게 묻어나오는 것같은 시린 목소리 . . 

건우가 삼월이면 제대를 하니 이달 말부터 복학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건우가 온다고 집으로 오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군에서 돌아올날이 얼마남지 않으니 기쁘다.

이렇게 추위를 지나고 전방의 고립감도 지나며 아이는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힘든일을 물을때마다 괜찮다 하고 필요한것 없냐고 물을때마다 원하는게 없는 아이가 안쓰럽다.

깊은밤 눈이 떠지면, 면회가서 보았던 건우와 또래의 새파란 아이들, 그 어린 청춘들을 낯선 숲속 어딘가에 모아놓고 자는 나의 단잠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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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20-01-0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님, 행복한 새해되시길 . . .
수험생부모노릇도 만만찮더라구요. 늘 건강하시고 자주 뵈어요^^
 

2016년과 2017년을 관통한 촛불은 매혹적이었다.

나는 조금 들떴었던 것 같다. 세상이 조금은 변할지도 모른다고.....

5월이 가고, 6월도 7월도 8월도 9월도 간다

그러나 여전히 비리와 차별과 불관용의 벽은 높고, 타협은 보이지 않고 나의 생활은 아직 죽기살기로 아둥바둥이다.

 

대기업 정규직노동자에게도 삶은 여전히 가파른 고갯길이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타인과 공존하며, 내것을 내주어도 사회적으로 안전하고, 내 아이는 실패속에서도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으며 부족한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를 꿈꾸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지렁이보다 더디게 움직이는 변화가 올바르다는 확신도 없는 오늘, 누군가는 기회조차 박탈된 세상에서 분노의 칼을 갈것이다.

불특정다수에게 휘두를 칼을 타협으로 내려놓게 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공전을 거듭하고,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발밑이 불안한 정규직노동자는 꽉  쥔 주먹을 펴지 않고, 정치는 제 앞가림도 못하는 오늘,

세상은 더디고 더디게 바뀌어, 내가 살아 생전에 그런 세상이 오기는 하는 걸까?

아니면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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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중간고사를 마치고 거실에 앉아 뉴스화면을 보던 건우녀석이 내게 물었다.

<엄마, 왜 아무것도 안하세요?>

<뭘?>

<분향도 안가고, 집회도 안가고...>

4월 16일 이후로 뉴스란 뉴스는 죄 돌려보고 검색하고 간간히 울기도 하며 거실에서만 웅크리고 있는 제엄마가 건우에겐 생소했던가 보다

<건우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뭘 하면 좋을까 싶다가도 모든 행동이 몰염치한 어른이 제 책임을 덜어보고자 하는 뻔뻔스러운 짓같아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4월 16일 사무실에서 나는 인터넷으로 중계된 수많은 이들의 강제 수장을 지켜봤다.

처음엔 잔혹한 농담이거나 오보인줄 알았고, 이내 안도했고, 나중엔 경악했으며, 정신을 차린후엔 안산에 사는 친척아이의 안위를 물었다.

그러고 나니 세상이 이리 되도록 나는 무엇을 하였던가, 그저 내 아이의 안위나 챙기며 남의 아이가 백주대낮에 수장당하는 걸 지켜보며 도대체 무슨짓을 한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해도 어떤 추모를 해도 그로 인해 우리 스스로를 쉬 용서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이제 얼굴조차 구분이 안될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의 기사를 보며, 딱 건우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 그 아이들을 이렇게 보내는 우리를, 우리 스스로 쉬 용서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날마다 곱씹을 일이다.

잊지 말고 더 깊이 슬퍼하고, 더깊이 분노하고 그리고 오래 기억하고, 이렇게 무능했던 우리를 용서하지 말자.

그리하여 최소한의 정의와, 최소한의 사람다움이 있는 세상이 오기를....

그런데 오기는 할까?

손아귀에 움켜쥔 권력의 미세한 위기에 동네 주민을 섭외하는 기발함과 흉탄에 가신 부모를 언급하는 뻔뻔함에 말문이 막히는데 팔십을 바라보는 친정엄마의 분노가 나와 같다는 자신이 내게는 없다.

무기력과 절망이 밀물처럼 몰려드는데, 건우가 또 내게 묻는다.

<엄마, 왜 아무것도 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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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4-05-12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동안 하루라도 안 운날이 없어요.
저희 아들도 고1이라 밤만 되면 내가 만약 진도에 있다면을 상상하게 됩니다.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지요. 아이들 키우면서 어떻게 잊겠어요. 그 참담함을....

저는 안산에 다녀왔답니다. 정말 너무너무 예쁜 아이들이었어요.
한명한명 보면서 잊지않겠다고, 세상을 꼭 바꾸겠다고 했어요

건우와 연우 2014-05-1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저도 좀더 꼼꼼히 세상을 이리 팽개쳐두고 편히 살아온 자신을 반성중이예요 아직은 잊지 않겠다 다짐에 다짐하고 있다지요
 

청년실업이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병이 되어버린지가 어느새 십수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참으면 지나가리라 여겨졌던 불경기는 일상이 되어 버렸고, 기업이 슈퍼갑이 되어버린 2014년, 제일 흔하고 값없이 되어버린게 사람이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염치도 예의도 버려야 하는게 만성실업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요구되어야 하는 덕목이 되어버린 것일까?

 

며칠전 터져나온 삼성의 총장추천제에서 나는 거대기업의 은밀하고 치밀하며 졸렬한 악의의 냄새를 맡는다.

한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115에서부터 제로까지의 숫자들.

또한 시작은 삼성이되 조만간 대부분의 대기업으로 번져나갈 그 숫자들 앞에 어느 대학에서도 거부의 단호한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에서 슈퍼갑이 되어 젊음의 존엄을 짓밟는 취업이라는 괴물의 모습을 본다.

 

어느 한순간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한적이 있었느냐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증거를 들이밀만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조금 덜 받고, 더 나누며 살만한 세상을 만들수도 있으리라는 꿈조차 버릴수는 없기에 슬금슬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 또한 막을수 없다.

 

이토록 팍팍하고 추운 겨울에 저들은 왜 새파란 젊은것들에게 자꾸 무릎을 꺽으라 종용하는가?

결국은 꺽인 무릎에 찍힌 모래며 돌멩이 자국들을 확인하며  절망하게 될 지라도 아직은 너무 젊은 그들에 앞서 우리가 좀 더 화를 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여러해를 먼저 살아온 우리들의 나이값이며, 또한 나는 아직 열몇살짜리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가?

 

그러기에 아직 나는 분노를 포기할 수없다.

내 아이들의 꺽인 무릎에 찍힐 수많은 상처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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