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송어낚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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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고 나면 리뷰와 상관없이 어떤 글이든 한 편 당장 써갈기고 싶을 때가 있다.
<미국의 송어 낚시>는 엊그제 받자마자 단숨에 읽었는데  컴 앞에 바로 달려오고 싶었고,
손이 근질거렸다.
이 책의 무엇인가가 내 마음속의 깊은 곳을 슬쩍 건드렸다는 말이다.

손창섭이라는 작가의 일절로 기억하는데,오래 전  '혈서 쓰듯 하루를 살고 싶다'는 구절을 읽다가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너무 놀라서.
혈서라니, 끔찍해라!
소설이든 실제든 나는 그런 자세를 좋아하지 않는다.
건들거리고 딴전 부리는 듯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스타일이 딱이다.

일찍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회귀성에 대해 윤대녕, 안도현, 신경숙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들이 이야기하고 강산에는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지만, 사실 나는
연어든 은어든 송어든 문절망둥어든 상관없다. 맛만 있다면......
문절망둥어는 히라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에서 처음 만난 물고기 이름.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이 대목에서 써먹네.)

--에스키모인들은 평생 얼음 속에서 살지만 그들의 말에는 '얼음'이라는 말이 없다.
                                   (<인간, 그 첫 100만 년>,  M. F. 애슐리 몬테규)

--인간의 필요를 표현한다면, 나는 언제나 '마요네즈'로 끝나는 책을 쓰고 싶었다.(231~ 232쪽)

언제 어떤 책(아마도 하루키?)에서 옮겨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의 송어낚시>의 이 구절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은 '마요네즈 주는 걸 깜빡 잊었어. 미안해!'라는
편지의 추신으로 끝나니 '마요네즈로 끝나는 책을 쓰고 싶었다'던 말을 작품 속에서
그대로 실행한 것.  나는 똑똑히 눈으로 확인했으니 됐고.
보충설명과 작가 인터뷰가 부록으로 달려 있었지만 아무튼 본문의 마지막 페이지를 탁 덮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서랍 한 개가 정리된 기분?
그 정도로 이 책이 궁금했다는 말이다.

--1967년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대학생들은 이 소설에 담겨 있는 반체제 정신,
기계주의와 물질주의 비판,  목가적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허무감 등에 매료되어,
마치 성서처럼 이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책 날개의 작가 소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책을 읽은 영혼의 절반은 이미 히피인 그 젊은이들이
2년 뒤 전설적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군중이고, 또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시위대의
맨 앞에 서지 않았을까?
잠시 그런 기분좋은 상상을 해본다.

'자연 보호'나 '문명 반대'의 직접적인 메시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데,
송어낚시를 위해 발명한 회전낚시 미끼 이름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라거나
송어하천을 피트당 얼마에 파는 가게(폭포는 옵션으로 따로 판다)를 구경하다 보면
실실 웃음이 나온다.

보내는 족족 출판사들에서 퇴짜 맞은 이 원고를 거둔 것이 <제5도살장>의 커트 보네거트라니,
말끝마다 '그렇게 가는 거지!'라고 하여 배꼽을 잡게 했던 작가답다.

쓰다보니 멋진 에세이는커녕 '마요네즈 병에 꽂힌 시든 꽃' 같은 리뷰가 되어버렸구나.
아무튼 '마요네즈'로 마무리했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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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11-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 서평단 뽑히신 건가요?
아~ 이 리뷰 보니까 신청하고 싶어집니다.

로드무비 2006-11-1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어떤 분이 보내주셨어요.
아주 재밌습니다.
(그런데 의욕에 비해 리뷰 쓰기는 쉽지 않았다는......)
꼭 뽑혀서 리뷰 올리시길.
궁금해요.^^

건우와 연우 2006-11-1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드무비님의 리븁니다.
연어든 송어든 문절망둥이든 맛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님의 말씀에 적극 동감하면서 추천하지 않을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딧불,, 2006-11-1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로드무비님 리뷰 읽으면 안읽으면 큰일날 듯. ...;
그나저나 요새 글이 뜸하세요.

mong 2006-11-17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무비님 꼬옥~ 읽도록 하겠습니다
^^

Mephistopheles 2006-11-1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들거리고 딴전 부리는 듯한.....(저군요...)
연어든 은어든 송어든 문절망둥이든 상관없다. 맛만 있다면......(역시 또 저군요..)

마노아 2006-11-1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에 있던데 되든 안되든 신청해야겠어요. 갑자기 호기심이 화르륵!

프레이야 2006-11-1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요네즈 병에 꽂힌 시든 꽃이라니요? 직접 코를 대고 비벼보고 싶은 꽃인걸요. 마요네즈냄새는 나겠죠.^^ 갑자기 마요네즈를 머리카락에 바르던 배우 김혜자가 생각나요. 예전에 최진실과 나왔던 영화요... ^^

2006-11-17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udan 2006-11-1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 책 나왔군요!

sudan 2006-11-1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막 주문했어요. 헤헤. 이제 페이퍼 읽을께요.

nada 2006-11-17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부르는 숲의 하천 버전이지 않을까 싶어 무지 궁금했어요.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얼른 신청했는데 무비님까지 불을 지르시네요. 아, 꼭 뽑혔으면..

perky 2006-11-1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무지 읽고 싶었었는데 드디어 재출판 됐군요. 너무 반가운 소식이네요. 거기에 포스트모더니즘에 해박한 김성곤교수님이 직접 번역하신 책이니까 더더욱 반가운 소식이구요. 저도 조만간 읽어봐야 겠어요. ^^

sudan 2006-11-1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우티건의 소설 제목에서 따온 '워터메론'을 닉으로 쓰시는 분이 있어요. 잠적하신 후로 쭉 안부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제 홈에 인사를 남겨주셨더라구요. 어찌나 반갑던지. 그래서 오늘 브라우티건 소설이랑, 연락이 뜸했던 옛지인들이랑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출근했었는데, 꼭 이럴때 이런 리뷰를 써주시다니요. 로드무비님. 게다가 마요네즈로 마무리까지 하셨으니, 누가 뭐래도 훌륭한 리뷰에요. ^^

sandcat 2006-11-1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 님이 책의 필자였다면, 마요네즈보다는 걸죽한 다른 무엇이었을 것 같아요.
잘 읽고 갑니다.

2006-11-17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8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1-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 멋지게 님, 님 덕분에 주말 멋지게 잘 보냈습니다.^0^

휴대폰줄 님, 이번 주말에 하는데요.
헤헤 그런데 무슨 핸드폰줄일까?
님 방에 갈게요.^^

샌드캣 님, '와사비'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마요네즈와 바꾸어도.
저, 저는 좀 콤콤하지요?^,.~

수단 님, 워터메론도 곧 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있던데......
저도 그분이 궁금하네요.
그런데 여기 알라딘 말고 님 홈피가 따로 있나요?
저도 좀 가보고 싶은데.
마요네즈로 마무리한 것이 저도 무척 기뻤답니다.
무슨 심오한 구절도 아닌데 왜 그렇게 좋았던지 모르겠어요.^^

차우차우 님, 김성곤 교수의 번역은 물론 훌륭하지만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었어요.
한 문장에 같은 단어가 두세 번 들어가는 등.
아무튼 꼭 읽으시길요.^^

꽃양배추 님, <나를 부르는 숲>의 하천 버전이라니, ㅎㅎ.
서평단 꼭 뽑히시길,
떨어지면 제가 한 권 사드릴지도.( '')

sudan 님, 오늘쯤 책이 도착했겠군요.^^

마요네즈 못 먹는 님, 그런데 아직 책이 도착 안했어요.
못 부치신 건가?

배혜경 님, 저도 그 영화 봤어요.
책보다는 좀 재미가 없었죠.
마요네즈 요즘 튜브로만 나오는 건가요?
갑자기 궁금합니다.^^

마노아 님, 반가운 소식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로드무비 2006-11-2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 님, 한마디로 저랑 같은 과라는 거죠?^^

mong 님과 찰떡궁합일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오는 책!^^

반딧불 님, 예전에 비하면 좀 뜸하지만 이 정도가 딱 좋다는 생각이.
님도 그러시면셔셔셔.^^

건우와 연우 님,
님의 격려 덕분에 제 서재가 유지되고 있는 듯해요.^^




라주미힌 2006-11-20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흐흐흐...
문절망둥어를 마요네즈에 찍어먹으면 무슨 맛일까가 궁금하다는...

로드무비 2006-11-2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라주미힌 님, 문절망둥어입니까?
문절망둥이가 아니고?
찾아보니 문절망둥이가 맞네요.;;

아무튼지간에 그 맛은 좀 느끼할 듯.ㅋㅋ


2006-11-21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1-23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콩달콩 재밌게 님, 나중에 정리 대강 마치고 빌려드릴게요.
지금은 막 섞여 있어서 정신이 없어라.
이사는 모레 토요일입니다.^^

2006-12-0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2-03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2-04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친 자의 오만함을 충분히 만끽하기엔 집이 구석구석
너무 엉망입니다.
주말 잘 보내셨어요?
딸아이 남친과 그 엄마가 어제 놀러왔어요.
그 먼 곳에서 이 추운 날......하는 마음에 뭉클했답니다.^^

브리즈 2006-12-3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 참 좋지요. 제 서재 대문에 걸려 있는 문구가 바로 "미국의 송어낚시"에서 따온 것이나까요.
혹시 읽지 않으셨다면 "워터멜론 슈가에서"를 추천해드립니다. 반어법이나 아니러니는 고스한히 살아 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서정성이 가득합니다.(아시죠? 몇 마디로 줄이다보면 과장하게 되는 거 ^^)
아무튼 브라우티건의 소설은 한때 제가 즐겨 선물했던 책이었고,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브라우티건에 대해 생각하니 그 또한 기분이 좋네요.
아 참, 로드무비 님의 감칠맛 나는 리뷰도 잘 읽었습니다. ㅊㅊ하고 갑니다.

로드무비 2007-01-0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터멜론 슈가에서는 절판이네요.
최승자 시인이 번역했고.
안 그래도 읽고 싶은 소설이었어요.
꼭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서정성이라니,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군요.
추천 고맙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작은글씨) - 라로슈푸코의 잠언과 성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지음, 강주헌 옮김 / 나무생각 / 2003년 4월
구판절판


욕심은 못하는 말이 없고 못하는 역할이 없다. 심지어 욕심이 없는 사람의 역할도 해낸다.-27쪽

정신의 세련됨은 즐거운 일을 유쾌하게 말하는 솜씨다.-51쪽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 섬세하다는 뜻은 아니다. 진정한 섬세함은 믿음직한 예민함이다.-63쪽

최고의 재능은 사물의 가치를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다.-111쪽

우리의 행위는 각자 마음에 드는 음을 늘어놓는 각운脚韻과 다를 바가 없다.-159쪽

자연스럽게 보이려는 욕심만큼 자연스러움을 방해하는 것은 없다.-178쪽

우리가 받은 혜택을 되돌려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또한 우리가 친구에게 빚진 것을 갚음으로써 친구가 어떤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일 수 있다.


--------------

--'놀라지 말라'는 말보다 놀랍고, '부담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말처럼
부담스러운 게 또 있을까.

이사를 앞두고 새 냉장고를 사주겠다는 사람이 둘.
"지금 냉장고가 낡았고 작긴 하나 고장도 안 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최대한의 겸양으로 일단 사양은 하고 있으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자, 이제 어떻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남의 돈으로 새 냉장고를 들여놓을 것인가.

17세기의 모럴리스트 라로슈코프의 잠언과 성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표지에는,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
라고 떠억하니 적혀 있다.
511개의 잠언은 대부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술궂은 표현들로 가득하다.
특히 여성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한지.......
그럼에도 그의 몇몇 말은 통쾌하고 음미해 볼만하다.-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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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11-1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섬세함은 믿음직한 예민함이다.
로드무비님의 글에서 느끼는 점이 딱 그렇더군요.^^
참, 이사는 언제 하시나요?

blowup 2006-11-1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마음은 카탈로그인가요?^.^
로드무비 님은 그 심술이 어떤 놈이냐에 따라 귀여워도 하시잖아요.
뜨끔도 하고, 통쾌도 하고.
거 참. 복잡하겠는데요. 저런 책.

2006-11-14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1-1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심술백과 님, ㅎㅎ 이사 준비는요,
이게 바로 저의 심술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폼 잡는 것보단 심술을 내는 쪽이 낫더라고요.^^

namu 님, 마음은 하이마트입니다. 헤헤~~
제가 좀 변덕이 심하지요?!
그나마 쪼매 솔직하긴 합니다.
마음에 없는 소리는 거의 안하니까요.
이런 식으로 변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 책은 따끔하게
일침을 놓더군요.=3=3=3

건우와 연우님, 25일입니다.
'믿음직한 예민함' 저도 갖고 싶어요.^^

프레이야 2006-11-1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심을 경계해야겠어요. 이 말을 하는 순간, 저는 또 하나의 욕심을 더 부리고 있는 꼴이네요.^^

마노아 2006-11-14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에서 진한 감동을...!

로드무비 2006-11-1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 헤헤 감동씩이나요.
읽다 보면 밑줄긋기 하고 싶은 책이 있어요.^^

배혜경 님, 욕심 좀 부리면 어떻습니까.^^

2006-11-16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문쿨루스 1
야마모토 히데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시내의 최고급호텔과 노숙자들이 진을 치는 공원 사이에 차를 세우고
엄지손가락을 빨며 자궁 속 태아의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자는 나코시.
그는 공원의 노숙자들에게 '자가용 형씨'로 불린다.

공원의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으며 노숙자들과도 격의없는 인사를 나누는 그에게는
자신은 저들과 다르다는 남모를 자부심이 있다.
어느 날 돈이 떨어지고 자동차 기름이 떨어지고 거기다 견인까지 당하자
'두개골에 구멍을 뚫게 해주면 거액을 주겠다'는 피어싱에 문신이 장난이 아닌 
무시무시한 펑크족 청년의 인체실험 제안에 응하게 되는데,
알고봤더니 그는 유명한 병원집 자제에, 꼴에 의사이다.
의학, 심리학, 오컬트를 포함하여 수상한 정신세계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을 연구하고 있다나.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트리퍼네이션)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과연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제6감(식스 센스)이 갑자기 생겨 유령을 볼 수도 있고
초능력이 생기는 사례가 왕왕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오싹.

스포일러의 위험이 있는 이야기를 다소 길게 소개한 것은 <호문쿨루스>의 경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수술 후 나코시의 눈에 비친 사람들.
거리에서 먼지가 들어간 오른쪽 눈을 비비는데 문득 이상한 세상이 펼쳐진다.

머리통 뚜껑에 해당하는 부분이 비스듬하게 3분의 1쯤 날아가고 없는 사람,
아주 뚱뚱한 청년의 몸피는 철판처럼 얇아 여기저기 구부러지고,
옷은 그대로인데 상체와 하체의 위치가 바뀌어 다리를 번쩍 들어올리고
물구나무 서듯 두 팔로 걷는 처녀.
제각각 기괴하게 비틀리고 변형된 모습으로 보이는 사람이 절반, 나머지가 반.

갑자기 벌어진 눈앞의 광경에 놀라  비틀거리다가 정면으로 부딪힌 사람이 있었으니,
남의 새끼손가락 자르는 게 취미인  야쿠자 패거리의  우두머리.
평소라면 도망가기 바빴을 험상궂은 얼굴의 그 떡대는 이상하게 그의 눈에
거대한 로봇 속에 갇혀 벌벌 떠는 소년의 형상으로 비친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 마주친 건너편 테이블의 할머니 둘 중 한 명은
목이 없고 얼굴이 몸통에 바로 달라붙어 있다.
언젠가 사귀던 남자에게서 목이 졸린 경험이 있어 그 상처를 꽁꽁 숨긴다는 것이
그만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 나코시의 눈에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 할머니는 화장과 옷차림이 요란한 늙은 여인에 불과하다.

다음은 나카시의 눈에 금방이라도 부서질 모래성처럼 보이는 한 소녀에게
다각도로 인간을 연구한다는 의사 청년이 하는 말.

-- '진정한 자기자신'이 없는 게 아냐. 진정한 자기자신을 아는 게 무서운 거지.
(...) 부모에게 저항하려고 해도 그 저항이 다시 매뉴얼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는 거겠지?  매뉴얼이나 방정식의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끝없이 자기자신을 잃어가지.(제4권)

인간의 숨겨진 상처와 억압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무섭고 매혹적이다.
나카시의 눈에 나는, 그리고 이 리뷰를 읽는 당신은 어떤 형상으로 비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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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6-11-0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번 잡으면 다시 놓기 어려운 만화죠. 하지만 근 1년째 다음권 출간이 지연되고 있다는 거. 여하튼 요거 만화역사에 일획을 그을만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

Mephistopheles 2006-11-0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 은근히 섬짓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개개인의 아킬레스건이 눈에 보인다니... 식스센스..
그리고 여자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리는 왓위민원트도 생각나더군요..^^

로드무비 2006-11-08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리풀말미잘 님, 작가는 왜 그렇게 뜸을 들이고 있을까요?
너무 재밌어서 저도 단숨에 읽었습니다.^^

메피스토 님, 은근히가 아니라 노골적으로요.
그런데 님의 아킬레스 건은 뭔가유?=3=3=3
(도대체 안 본 영화가 있긴 한지 궁금 & 감탄.)

2006-11-08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1-08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만나러 갑니다 님, 아마 제 4권의 제가 소개한 저 대사에도
답이 있을 거예요.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 중에는.
질문 자체의 매뉴얼화.
묵직한 저 질문 자체가 되려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고요.
전 무척 좋았습니다만.

25일입니다.
바쁘시군요.
그럼 나중에 부탁할게요.^^

Mephistopheles 2006-11-0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아서 뭐하시게유~~~~=3=3=3=3=3

릴케 현상 2006-11-0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권만 읽고 요즘 만화를 못 보고 있었는데... 한방에 다 봐야겠네요^^

로드무비 2006-11-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호호, 한방에. 그러셔야지유.^^

메피스토 님, 흥=3 비밀!^^

nada 2006-11-0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워요. 두개골에 피어싱이라니. 나카시 눈에 저는 밥통을 이고 다닐 것 같으네요. 요즘 왜 이렇게 밥을 마니 먹는지..=3=3

2006-11-08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6-11-0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만화 딱 3권까지만 좋았어요.. 4권 5권 읽으면서 좀 실망했고 6권은 읽지도 않았다는...ㅡ.ㅜ

에로이카 2006-11-09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의와 상관없이 정신분석 당한다는 기분, 타자에 의해 성찰당하는 자아란... 정말 무섭고도 매혹적인 폭력이군요. 아마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은 옷을 입어도 그 속의 알몸까지 볼 수 있다는 안경을 쓴 사람이 옆에 있는 거 같겠네요. 나는 쓰고 싶지만 (그래서 매혹적) 다른 사람이 써서는 안되는 (그래서 무서운) 그 안경... 이 만화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11-0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이카님, '무섭고 매혹적이다'고 무심코 썼더니 님이 멋지게
보충설명 해주시는군요.
이건 어때요?
둘이 동시에 그 이상한 안경을 쓰고 있는 거예요.
공평한 건가요, 최악인가요?ㅎㅎ

이 만화 재밌어요.
날개님 말씀처럼 뒤로 가면 좀 질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래도 전 최고라고 우기고 싶어요.
작가가 6권을 끝으로 1년 넘게 뜸을 들이고 있는 이유가
희미하게 짐작됩니다.
기회 있으면 읽어보시길.^^

날개님,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알겠어요.
1권의 흡인력은 정말 무시무시하죠?
뒤로 갈수록 중언부언도 그렇고 밀도가 좀 떨어지는데.
그래도 전 재밌게 읽었다는 말씀.
모래소녀와의 차 안의 대화와 행동은 역겨웠어요.

곧 저녁이 오네요 님, 어제는 꼬막을 삶아서 양념간장을
끼얹어 먹었어요. 김치찌개랑.
님은 멋진 저녁시간 보내셨는지요?
'당신은 언뜻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이 너무 여려
세상살기가 힘든 타입입니다.'
어떤 설문 문항에 이런 게 있으면 열 사람 중 아홉이
동그라미를 치지 않을까요?
너무 일반화시켜 버리면 재미없지만.^,.~

꽃양배추님, 밥통이 술통보다는 낫겟지요?=3=3=3

페일레스 2006-11-0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6권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이지 작가가 어떻게 전개해 나갈까 매일밤 머리 싸매고 고민할 거라는 짐작이 들 정돕니다.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진짜 걸작이 될 것인데... 어 제 팔이 로봇팔로 보여요!!! 농담입니다 -_-;;;

2006-11-10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1-1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수록 무서운 아이 님, 왜 남자들이 님을 보고 겁을 먹었을까요?
화사하고 다정한 님의 얼굴에 말입니다.
전 그런 말 한 번 들어보는 게 소원이랍니다.
하도 얼빵하여......
그리고 우짭니까? 이 책은 동네 대여점에서 빌려 읽었답니다.
다른 책 몇 권 골라보세요.^^

페일레스 님, 제 생각과 같군요. 호호~~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우리 함께 작가를 위해 기도합세다.^^

비로그인 2007-02-27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호문쿨루스]라... 그렇구나. 나는 '모래성 인간' 이었던가.
오늘도 또 하나 '로드무비의 강'에서 멋진걸 건졌다. 후훗-
 
내면의 침묵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김화영 옮김 / 열화당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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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라는 단어에 끌리던 시절이 있었다.
무슨 심오한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명상'이나 '禪 '이 더러는 먹고살만한 인간들의 배부른 취미로 보여져 눈살을 찌푸리게 될  때,
침묵,  한마디로 입을 닥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오래 전 내가 다니던 사무실에는 낙하산 인사들로만 들끓었다.
원로 한학자가 천거한 모 씨, 중견 서지학자가 천거한 모 씨, '구도자'로 불리는 무용가 모 씨의
비서나 진배없던 30대 중반의 독신 여성.
나?
나 또한  한 원로소설가의 추천으로 그 유령 사무실에 어느 날 
민들레 홀씨처럼 가볍게 안착했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그 명상 무용가의 비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던 그 여성은
이상하게도 '영혼'이라는 단어와 '회색' 물건이라면 정신을 못 차렸다.
'영혼'이나 '道'라는 단어가 제목으로 들어간 책을 주로 읽었으며,
옷은 물론 가방, 신발 등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회색이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가까운 남대문 삼익상가에 들러 검정색 모자 달린
캐주얼 니트 코트를 한 벌 사왔더니 심플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회색은 없더냐고 물었다.  그리고 당장 달려가 회색으로 똑같은 걸 사왔는데
검정색과는 달리  입으니까 별로였다.
커피를 끓여내는 조그만 주방 거울에 회색빛 코트를 입고 망연히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던
그 얼굴, 그 난감한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세속적인 욕망 따위는 초월했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지만 사실은 어림도 없는,
'나는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생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나도 마찬가지다.

싫건 좋건  5, 6년 동안 함께 일했던 멤버들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이
그 날 사무실 뒤 간이 주방 때 낀 거울에 비친 그 언니의 스스로 민망하고
아쉬움이 덕지덕지 묻어나던 그 눈빛이라니!

아무튼 그 언니의 기묘한 회색 집착증처럼 어릴 때부터 '침묵'이라는 단어에 꽂히는 경향이
내게는 있었는데 엔도 슈사꾸의 <침묵>도 그렇게 해서 읽게 되었다.
하지만 최인호가 영혼의 책으로 극찬한 엔도 슈사꾸의 장편소설 <침묵>보다
남편과 아내와 연인 3인의 동상이몽을 그린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엽총>이 더 좋았다.
인간관계의 심연을 이보다 섬뜩하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을까.

자, 이제 리뷰로 돌아와서.
'침묵들'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 맨 앞에 실린 아녜스 시르의 설명에 의하면,
왜 초상사진들을 묶었는가 하면, '부재하는 인물들의 침묵을 위해서'란다.
'일화나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세상의 흔한 잡지들과 달리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불필요한 효과도 용납하지 않는 그 인물들의 강한 현존을 위해서'(7쪽)다.

-- 나는  무엇보다 내면의 침묵을 추구한다.
나는 표정이 아니라 개성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8쪽)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이다.
자신의 서재나 흐트러진 침대 혹은 작업실 기타 곳곳에서 미처 포즈를 취하기도 전에
영혼을 낚아채인 듯한 이들의 표정과 시선을 따라가 보라.
누구누구는 무슨 생각인가에 몰두하고, 또 더러는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욕망과 피로, 
짜증과 불안이 희미하게 읽히기도 하지만 공허하고 뻥 뚫린  시선도 적지 않다.
그 시선 저편에는 무엇이 있는지.
"저기요, 산다는 게 뭘까요?" 하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얼굴도 있다.

이 책에는 조르주 루오, 윌리엄 포크너, 사무엘 베케트, 카슨 매컬러스, 파블로 네루다,
아르투르 오네게르, 롤랑 바르트, 장 주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후안 미로,
앙리 마티스, 수잔 손태그, 자크 프레베르, 에디트 피아프, 프랜시스 베이컨,
에즈라 파운드, 트루먼 카포티 등 이름만 옮기기에도 숨가쁜 이들을 포착한
94컷의 강렬한 흑백사진이 실려 있다.

뭐니뭐니 해도 제일 좋았던 사진은 허름한 여인숙 앞에서 한 손에 만화를 들고
느긋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뚱뚱한 흑인 여인. ('빅스버그Vicksburg', 119쪽)
심플한 액자에 넣어 침대 옆 벽에 걸고 싶다.




에즈라 파운드, 1971,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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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10-2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회색과 영혼에 대한 '집착', 찔려요. ㅎㅎ
그 분처럼은 아니지만 20대때는 모노톤의 옷만 고집하는 편이었거든요.
저는 '침묵'에 담긴 속내를 파악하는 건 꽤 난감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표현되지 않는 말을 기다리기에는 아직 제 속이 너무 좁다고 느끼거든요.
가벼운 리뷰는 아닌데, 햇살 들어오는 나른한 오후의 선물 같네요.
잘 읽었어요. ^^

로드무비 2006-10-29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고 뭐 안 찔릴까요?ㅎㅎ
리뷰 쓰기는 왠지 좀 곤란한 책이어서 딴소리만 잔뜩 했습니다.
그래도 '선물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2006-10-29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owup 2006-10-30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지털 카메라가 생긴 후로는, 저도 직찍을 꽤 찍어 보았어요.
웃어 보기도 하고, 무심한 척 해 보기도 하고.
그러나 렌즈와 팔이 허용하는 거리 사이에 갇힌 사진은
(가끔은 타이머를 이용해 보기도 하지만), 겸연쩍어요.
어차피 어색한 거라면, 타인의 렌즈를 응시하고 싶어요.
(단체 사진이야 어림없지만, 어떤 사진들은, 사진을 찍어준 사진 밖의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해주더군요.)

로드무비 2006-10-30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 님, 어차피 어색한 거라면~~ㅎㅎ
이 세상에는 카메라 앞에서 겸연쩍은 사람하고
안 그런 사람하고 둘로 나뉘어지는 것 같아요.
이 사진집에 실린 얼굴들이 저는 참 좋았어요.
옷차림(대부분 정장으로 차려 입고 있는데)도 그렇고
배경이 되어준 서재나 침실의 분위기도 그렇고.
스냅사진의 경우 지나가던 모르는 이가 찍혀 있기도 하잖아요.
아무튼 오래 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져요.

배가 불렀던 님,ㅋㅋ, 제 주문이 별로였던가 보죠, 뭐.
대답할 말도 궁하고.
제 짐작이 맞죠?
그래도 댓글을 그렇게 내버려두시면 안 돼요.
무안하더란 말입니다.





sudan 2006-10-30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혼을 낚아채인 듯한' 표정은 어떤건지 궁금해요.
음. 그런데 전 누군가 사진속에 제 영혼을 드러내는 순간을 담는다면 기분 별로일 것 같아요. 내 영혼은 내가 밝히고 싶다는. 헤헤. ^^

로드무비 2006-10-30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dan님, 저도 동감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영혼은 내가.......
사진을 보시면 알아요.
'영혼을 낚아채인 듯한'이라는 표현이 뜻하는 걸.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반가워 죽갔시오.^^

2006-10-31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11-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서 로드무비님을 받들고 산지가 좀 되었군요..ㅎㅎ(리뷰면에서...)
좋은 리뷰 읽고 갑니다.
사진의 눈빛이 강렬합니다.

로드무비 2006-11-16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알라딘서 로드무비님을 받들고 산지가 좀 되었군요..ㅎㅎ(리뷰면에서...)
달팽이 님, 이게 무슨 뜻인지 해독이 안 되어요.
이 책에 실린 사진들 정말 멋진데 리뷰가 신통찮습니다.
억지로 갖다붙인 듯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리뷰라고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눈빛들이 인상 깊어서 제목을 '시선'으로 잡았어요.^^

 
식객 13 - 만두처럼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오래 전 내가 6년 동안  다니던 여학교 앞에는 미진사와 일신사가 있었다.
교복과 문구,  간식도 함께 팔던 백화점이 부럽잖은 전천후 가게였다.

일신사 메뉴 중에는 잔치국수가, 미진사에서는 라아드(돼지기름)에 구운 만두가 유명했다.
잔치국수에는 막 튀겨낸 고구마나 야채 튀김을 하나씩 집어넣어
국물이 걸쭉해질 정도로 으깨어 먹었는데, 환장할 정도로 맛있었다.
하교길, 배는 고파 죽을 지경인데 용돈이 없어 미진사 앞을 그냥 지나칠 때면
골목에 낭자한 만두 굽는 냄새 때문에 괴로웠다.

내가 누구인가.
초등학생일 때 삼촌이 누나 부부가 하는 충무동 양은그릇 가게 일을 도우며
도시락을 하나 가져와 선물했을 때, 그게 너무 작아 배곯게 생겼다며 울음을 터뜨려
두고두고 식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된 인물이다.

지금도 도시락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어 얼마 전에는 곧 다가온 아이 소풍을 핑계대며
삼각김밥용 빨강 도시락과 틀을 새로 장만했다. 
막상 그날이 되면 삼각김밥은커녕 얼렁뚱땅 주먹밥을 뭉쳐 넣을지도 모른다.

요리나 맛집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인데, namu님이 최근 리뷰에 쓰신 것처럼
"어릴 때 바로 우리 엄마(혹은 할머니)가 해주시던 맛이에요!"라는, 손님들의 약속이나 한 것 같은
똑같은 찬사에 나 역시 희미한 짜증과 의문을 품었었다.

--저들의 엄마와 할머니가 전국의 유명 맛집 주인이나 주방장처럼
모두 음식솜씨가 뛰어났을 리는 없는데!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어릴 때의 그 맛'이라는 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할 수가 없는 문제이다.
내 기억이 조작을 했건 과장을 했건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싶은데 어쩌란 말인가!
튀김 두 덩이를 빠트려 꿀꿀이죽처럼 먹었던 일신사의 잔치국수나
돼지 굳기름에 노릇하게 구운 미진사의 납작한 만두가 지금 먹어봐도 과연 그렇게 맛있을지!
그럼에도 그 둘은 엄연히  '내 인생의 음식'으로 기록된다.

13권에서 기러기 아빠와 관련한  '궁중떡볶이'라는 에피소드의 팁 제목처럼
그리움이라는 허기는 어떤 산해진미로도 채울 수 없다.

이 책은 소의 내장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릴 때 나는 엄마가 가끔 끓이는 곱창전골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냄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곱창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몇 달 전 합정동의 유명한 곱창집에 가서
구이를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뭔지 모르겠지만 오묘한 인생의 자락과 구비를 모두 품고 있는 맛이었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기분좋게 콤콤한 그 향.
'곱'이 약간 흘러나온 그 매혹적인 자태라니!

절필선언을 하기 직전인 유명작가가 절망엔지 술엔지 취해 길거리에 자빠져 있다가
자신의 팬을 자처하는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나고, 또 노점의 식혜 한 사발을 먹고 
다시 펜을 잡는  일화(64화 식혜)는 좀 안일하고 진부하지만
그 식혜 한 사발로 상징되는 것이랑, 단 한 사람이 그리운 나로서는
뭐라고 트집을 잡지는  못하겠다.

13권의 마지막 일화는 '만두'로 진수와 성찬의 애정전선에 최대의 위기가 찾아오는데.....
이 리뷰의 제목을 '사랑은 만두 같은 것'으로 할까 하다가 '그리움이라는 허기'로 잡는다.
아무려나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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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10-20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맞아요. 그리움이라는 허기.
그래서 그전의 그맛은 없다라는 진실.

waits 2006-10-2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 일화들에, 로드무비님 글에서 봤던 주하의 모습이 겹쳐지는데요.
길거리 분식류는 저를 도발하는 거의 유일한 음식들인데... 반가워요. ㅎㅎ

oldhand 2006-10-2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지난주에 식객 12~14권 샀는데 아직 비닐도 못 뜯었어요.
미진사.. 일진사.. 분식집 이름이 로드무비 님의 연륜을 말해 줍니다. =3=3=3

Mephistopheles 2006-10-20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부분에서 만두님이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3=3=3=3
(합정동에 가서 꼭 곱창을 먹어봐야 겠다고 활활 타오르는 중)

로드무비 2006-10-2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지금도 가끔 생각날 정도로 맛나더라고요.
그리고 제목, '사랑은 만두 같은 것'으로 고칠까요?^^

올드핸드님, 호호, 연륜이라니, 저 아직 새파란 청춘인데.
전 13, 14권 샀습니다.
나중에 다 채워넣을 거예요.^^

평택, 나어릴때님, 땡기는 한 가지 음식에 대한 집착은
딸아이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길거리 분식류 정말 맛있어요.
'도발'이라는 표현이 딱입니다.^^

반딧불님, 솥째 밥을 들고 앉아 냄비째 국을 퍼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2006-10-20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6-10-2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리움으로 세월 보내고 있을 때 느낌은, 허기로 지쳐있을 때와 비슷해요.

아영엄마 2006-10-2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곱창 종류는 못 먹어 봤어요.(안 먹었다고 해야 하나..-.-) 언제고 저도 "오묘한 인생의 자락과 구비를 모두 품고 있는 맛"을 느껴보도록 하것습니다.

로드무비 2006-10-20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 님, 제가 너무 멋을 부렸나요?( '')
아무 곱창이나 드시지 말고 꼭 합정동(망원동) 그 가게에 가서
드셔보세요.^^

hnine 님, 너무 잘 아시는군요.^^

투덜거리면서 님, 지난번에 리뷰 쓴 한 권, 그리고 엊그제
13, 14 두 권 샀어요.
기억하시는군요.
홍콩에서 배가 들어오면 왕창 사고 싶었는데
배가 여즉 묶여 있답니다. 흐흐~~

에로이카 2006-10-2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방금 식객 6권을 봤어요. 이번주에 짬짬이 1권부터 봤거든요. 저 맛있는 거 먹는 거, 무지 좋아하는데요... 이 만화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는지, [식객]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대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그가 들인 발품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또 시각적 이미지 전달이 비교적 용이한 만화라는 매체 형식에도 불구하고, 음식의 맛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간결한 설명문 혹은 레써피를 읽은 듯한 느낌 그 이상을 받기가 힘들더라구요... 잘은 모르겠지만, 에피소드 스토리와 요리를 오버랩시키는 게 쉽지 않아서 그런 듯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로드무비님의 페이퍼가 맛있는 것은 이런 맛과 이야기의 오버랩의 탁월함이 아닌가 싶네요.. 그 기억 저편 거리의 만두냄새와 도시락 선물, 합정동 곱창까지... 허영만의 <<식객>>보다 맛있어요.. ^^ 입맛 다시다 갑니다..

치니 2006-10-2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히 , 저도 엊그제 합정동 그 가게에서 곱창 먹었는데, 혹시 로드무비님이 어느 자리에선가 소주 한잔 하고 계셨을까나 하는 상상에, 재미있습니다.

oooiiilll 2006-10-2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정동 그 가게'란 어디인가요? 남자친구와 데이트 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곱창에 소주를 마시는데 점점 맛있는 곱창집이 사라져 안타까울 뿐입니다. ㅠ.ㅠ

2006-10-22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0-22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트님, 합정동 로터리의 황소곱창인데요.
망원동에도 새로 신축했다고 들었습니다.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가기 전 우측 코너에 꺾어져 있답니다.^^

치니님, 맛있게 드셨어요?
먹고 싶어라.
이렇게 흐리고 쌀쌀한 가을 저녁 무렵 딱인 음식인데.^^

에로이카님, 음식의 맛을 구수하게 리얼하게 잘 전달하지 못한 부분은
읽으면서 저도 느꼈답니다.
자료 위주의 너무 상세한 설명은 만화 읽는 재미를 좀 반감시킨 부분이
없지않아 있고요.
제 페이퍼가 맛있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일 기분좋은 칭찬인데요?^^



치니 2006-10-22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트님, 합정동 로터리에 있는 그 집이 망원동으로 아예 이사를 했어요 (로드무비님은 이전하기 이전에 가셨던 모양이네요 ^-^). 망원역에서 가까우니 금세 찾으실겝니다.

해리포터7 2006-10-22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드무비님의 탁월한 리뷰...저두 9권인가까지 밖에 못봤는데..얼른 연결해서 봐야 진수와 성찬의 상황을 알터인데요..전 이책 좋은 느낌이었어요.소개된음식을 보면 마구마구 식욕을 느껴서 탈이지만요.히~

건우와 연우 2006-10-2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깔나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제 어릴때 먹던 맛이 끌리는 나이>라고 수다를 떨었던건 혹 로드무비님이 정하신 제목처럼 그리움이라는 허기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2006-10-23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0-2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아마 절반쯤은?
그런데 반대로 어릴 때 그토록 싫어하던 음식이
땡기는 건 또 무슨 조화속일까요?^^

해리포터7 님, 안 그래도 과한 식욕에 욕망을 더하는.......
진수와 성찬 커플 귀엽죠?^^

치니님, 고맙습니다. 몇 달 전 일이라.....ㅎㅎ

디트님 들으셨지요?^^

산사춘 2006-10-24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울 어무이가 떡볶이나 돈까스를 해주실 때마다 울 남매는 가출을 했드랬어요. 넘 맛없어서... 그나저나 황소곱창이 눈에 박혀부립니다. 세상에나... 생각해보니 10월 들어서 한 번도 안갔어요. 어쩐지 제 곱창이 허전하더라니... 분발하렵니다. 아자!

2006-10-24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24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0-2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 3일 님, 이젠 잊지 않겠습니다.^^

산사춘님, 저런! 한달 동안이나 걸음을 안하시다니!
님의 예쁜 곱창 가득가득 채워주세요.
황소곱창으로다가.

(그런데 어릴 때 제 입엔 맛없는 것이 거의 없었어요.
돈까스와 떡볶이를 마다하셨다니, 그럴 수가!)

2006-10-25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25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26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28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10-29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님, 좀전 님의 방에 갔다가 그냥 발길을 돌렸습니다.
긴 편지를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럴 마음이 안 나서요.
늦은 밤, 혹은 새벽, 절 기다려주는 글이 한 편 있으니 좋네요.
딸아이가 키우는 햄토리 한 마리가 불만 끄면 미친듯이 쳇바퀴를 돕니다.
그 시끄러운 기척이 또 마음을 덥혀줄 때가 있습니다.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고마움이 전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