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점심 시간에 여의도에서 자주 식사도 함께 하고 얘기도 서로 나누는 '아끼는 후배'가 있는데,  그를 facebook에서도 자주 접하다 보니 그 후배가 '무슨 생각'을 주로 하는지, 주된 '관심사'는 또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그 후배가 facebook에 '좋은 글'도 자주 올려 주어서 (facebook에서) '좋아요' 버튼을 자주 클릭해 주는 사이가 되고 또 심심찮게 그의 글에 '댓글'도 달아주곤 한다. 그러다 보니 그 후배가 가끔씩 '내가 읽는 책들'에도 얼마간 관심을 보이길래 '언제' 기회가 되면 책을 좀 선물하고 싶다는 '언약'까지 하게 되었다.

오늘은 드디어 이 후배한테 내가 '약속'한 대로  책을 선물하게 되었다. 그래서 알라딘에 있는 '선물하기' 버튼도 클릭하고 무슨 '메시지' 같은 것도 쓰고 해서 그 후배의 집주소로 택배를 신청했다.

그런데 이곳 알라딘에서 내 나름대로 딱 10권을 '엄선'해서 주문버튼을 클릭했더니 "확인해주세요. 이전에 구매하셨던 상품들입니다'란 메시지가 뜬다. 그동안 나는 책을 구매할 때 거의 대부분 '온라인 서점'인 이곳 알라딘에서만 구매해 왔으니 너무나 당연하다 싶어 '그려려니...' 했는데, 가만히 '주문일자'를 보니 2004년, 2005년, 2006년에 구매했던 책들도 제법 있었다. 이 책들을 구매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그렇게나 훌쩍~ 지나왔나 싶어 무척이나 놀랐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내가 골랐던 10권의 책이 '모두' 아직까지는  '절판'된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림 1 :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평소에 구매하려고 마음 먹었던 책들도 이것 저것 모아서 무려 14권을 또 주문했다(16권을 주문했다가 2권은 이미 구매했던 책이어서 '알라딘'에게 들켰다. 그 2권은 이미 진작에 사 두고 읽지도 않은 채 또 구매할 뻔했다. 알라딘만 이용하다 보니 '정말 좋은 점' 하나는 이렇게 '이미 구매한 책'을 정확하게 '확인'해 준다는 점인 것 같다).

두 번째 주문까지 다 마치고 나니 얼핏 '잉카 최후의 날'이라는 책이 '오늘만 반값'이라고 외치는 모습이 순간적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알라딘의 광고에 딱~ 걸려 들었다 싶었지만, 그래도 이왕 책을 사는 김에 '반값'에 책 한 권 더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어 (전부터 마음에 담아 두었던 책인) '주석달린 월든'까지 집어넣어 '또' 구매했다.

결국 '지금 진행중인' 주문현황을 클릭해 보니, '상품 준비중'이라는 글씨가 무려 세 개나 '깜빡'거린다. 평소에 책을 열심히 읽지도 않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너무 많은 책을 산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구매한 책들을 설령 내가 (죽기 전까지)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또 언젠가는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히는 날이 또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떠올려 보니 문득 '괜찮다' 싶은 생각도 든다. 비록 이것도 다 내 스스로 얼른 '합리화'하는 것이겠지만......


<그림2 : 지금 진행중인 주문현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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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9-2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받으시는 분이 무척 좋아하시겠어요. 저는 요새 제가 읽은 책의 내용과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읽는 와중에도 앞서의 얘기를 잊어버리는... 오렌님 도서 목록을 보니 제 독서가 너무 문학 쪽으로 편중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oren 2011-09-23 00:22   좋아요 0 | URL
혹시... 책을 너무 많이 읽으셔서 그런 건 아니세요? 좀 쉬어가면서 책이 많이 '고플 때' 읽으시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 않을까요? 저는 예전에 청춘일 때는 '문학'을 꽤나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을수록 '문학이 아닌'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늘 불만이랍니다. 각자 취향이 조금 다른 거라고 보여요.

라로 2011-09-22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그 많은 책을 한 번에 선물하신거에요????
저도 오렌님과 같은 친구를 두고 싶어요!!!ㅎㅎㅎ
저는 중고샵에서 책을 많이 주문하게 된 이후로 제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어요,,아직까지는 잘 확인하고 있지만요,,,그나저나 제 독서는 님의 독서와 비교해서 너무 쉬운 책에 편중되어 있다는 생각,,,생각을 많이 하게 해줄 그런 책도 좀 읽어야 겠어요.^^

oren 2011-09-23 00:30   좋아요 0 | URL
택배아저씨가 좀 고생할 것 같아요..ㅎㅎ
나비님과 저는 이미 친구 사이 아닌가요? ㅎㅎ
중고샵에서 책을 주문하면 '확인'을 해주지 않는가 보군요. 저는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적어서 항상 책을 고를 때마다 '꼭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나'를 많이 고민하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니 읽기 쉬울 것 같은 책들은 일단 '다음 기회'로 자꾸 미루게 되더라구요.

saint236 2011-09-2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리터리 클래식 저거 꽤 명작인데요. 도중에 구하기 힘든 것들이 몇 권 있습니다. 주로 밀덕후들이 볼만한 책들이요. 물론 저는 밀덕후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다만 전략 게임을 좋아하는 관계로 조금 아주 조금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oren 2011-09-23 13:07   좋아요 0 | URL
saint님 반갑습니다. 지금 살펴보니 밀리터리 클래식이 전집으로 무려 11권이나 있네요. 저는 딸랑 두권 있습니다. 다른 한권은 『나폴레옹의 전쟁 금언』이구요. saint님처럼 전략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밀리터리 클래식을 찾으시는군요. 제 개인적으로『전쟁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승리의 한계정점'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감은빛 2011-09-23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책들 여러권을 알게되었습니다.
보관함에 담으면서 어떤 책인지 살펴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11-09-24 10:5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반갑습니다..
가끔씩은 책들을 미리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흥미로울 때도 있더라구요. 마치 영화의 예고편처럼 말입니다.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려요.
 


○ 시간 : 2011-09-20 오후 6:36:54 ∼ 오후 6:48:54
○ 장소 : 일산 호수공원

(사진을 클릭하시면 조금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36:54



2.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2:17



3.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3:05



4.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4:03



5.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4:30



6. Shooting Date/Time 2011-09-20 오후 6:48:5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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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09-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지네요! 일산 호수공원은 한번도 못가봤습니다. 사진을 보니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드네요..멋진 사진입니다~^^

oren 2011-09-21 09:48   좋아요 0 | URL
yamoo님께서 '저기'를 한 번도 못가보셨다니 그것도 놀랍군요. ㅎㅎ
언제 '저기' 들르실 기회가 있으시면 제게도 꼭 연락주세요. 제가 시원한 맥주라도 한 잔 쏘겠습니다~

신지 2011-09-21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무슨 태양의 표면 같군요. *.* 저런 하늘을 제가 언제 본 적이 있나 싶습니다. (하늘이나 일몰 사진 좋아하는데, 실제로는 잘 안 보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ㅠ

oren 2011-09-21 09:51   좋아요 0 | URL
신지님의 표현대로 '태양의 표면' 같더라구요. 요즘엔 하늘과 구름과 태양이 빚어내는 풍경이 너무 예쁩니다. 그저께 저녁도 어제 저녁처럼 '불타는 저녁노을'이었어요.. 어제는 낮에도 하루 종일 '구름떼'가 장난이 아니게 예뻤답니다.

마늘빵 2011-09-2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 멋지네요. 정말. 바탕화면으로 하고 싶을 만큼!

oren 2011-09-21 09:5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아프락사스님.
(오래 전부터 필명은 자주 접했던 것 같은데 댓글로 만나 뵙기는 처음인 것 같아 더욱 반갑습니다.)

아프락사스님의 칭찬을 들으니 앞으로 더욱 멋진 풍경을 담아보고 싶네요.

2011-09-21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1-09-21 09:56   좋아요 0 | URL
'지상 최대의 방화사건'이라......
***님의 표현이 사진보다 훨씬 더 멋진데요.

라로 2011-09-2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멋진 사진이에요!!!
호수공원 자주 가시나봐요????
호수공원에서 찍은 사진이 꽤 되는 듯..^^

oren 2011-09-21 13:30   좋아요 0 | URL
호수공원이 가까워서 자주 가는 편입니다만, 좀 더 색다른 포인트가 없을까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이 즈음에는 '하늘공원' 같은 데도 '하늘'을 즐기기에는 참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pjy 2011-09-2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게 찍어놓은 사진이 우와~~~~ 호수공원에 모기많은거로 들은 기억만나는데...하늘 좀 쳐다보러 놀러가야겠습니다^^

oren 2011-09-21 13:32   좋아요 0 | URL
모기도 물론 먹고 살아야겠죠..ㅎㅎ
호수 속에는 커다란 잉어들도 많이 삽니다. ㅎㅎ

페크pek0501 2011-09-2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져부러...^^^ 추천감입니다. 그래서...꾸욱~

그런데 누가 찍은 것인지요? 혹시 오렌님이?

oren 2011-09-21 13:59   좋아요 0 | URL
'출처'가 따로 없으니 만큼, 제가 찍은 것으로 생각해 주세요~

페크pek0501 2011-09-21 15:07   좋아요 0 | URL
그러면 by oren 이라고 써야죠. 더 폼나잖아요. ^^^ 또 그런 표기가 보는 사람을 위한 하나의 예의?이죠. 잘 모르는 사람은 출처가 궁금하지 않겠어요. 궁금증 해소 차원에서...

사진작가라, 멋져요.

oren 2011-09-21 15:42   좋아요 0 | URL
유명한 사진 사이트(가령 slr클럽) 같은 곳에 가보면 대부분의 사진에 스스로 출처(?)를 달더군요.
전 '무명'이 어울립니다. 사진작가라뇨.. 정말 가당치도 않습니다. ㅎㅎ

blanca 2011-09-22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장관이네요. 일산 호수공원 아름다움과 오렌님의 촬영 실력의 조화가 놀랍습니다. 제도 어제 스마트폰으로 하늘 사진 찍었는데 완전 아기 수준이네요^^

oren 2011-09-22 11:10   좋아요 0 | URL
요즘 하늘이 너무 예쁘죠?
이틀 전 저녁 무렵의 저 '붉은 구름'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알라딘의 '분위기'가 점점 더 이상해 지는 것 같아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플라톤의 신성한 잠언(箴言)이라고 키케로(Cicero)가 정확하게 부른 것, 즉 자기 부모에 대해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자기 조국에 대해서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말]처럼, 어떤 영리조직이든 자기 자신의 고객에 대해서는 결코 폭력(혹은 폭력이라고 느낄 만한 '힘')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 * *
















되풀이되는 엄중한 도발의 결과 때문이라는 것 65∼66쪽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때 비로소 분개심을 표출하는 우리의 행위가 방관자에게 완전히 유쾌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방관자로 하여금 우리의 분개에 완전히 동감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분개를 격발시킨 원인이, 만약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분개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이 비열한 인간으로 되어버리고 그리고 두고두고 모욕을 받게 될 그런 것이어야 한다. 사소한 침해에 대해서는 무시해 버리는 편이 오히려 낫다. 사소한 시빗거리가 있을 때마다 흥분하는 심술궂고 남의 말꼬리 잡고 시비하기 좋아하는 성격만큼 비열한 것도 없다. 우리가 분개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불쾌한 격정으로 화가 나서가 아니라, 분개하는 것이 적절하고 또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분개하기를 기대하고 또 요구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어야 한다.

인류가 느낄 수 있는 격정들 중에서 이 분개의 격정만큼 우리로 하여금 그것의 정당성에 대하여 재삼 의문을 가져보게 하고, 우리가 그것을 표출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우리의 본래의 적정성 감각에 비추어 보게 하고, 또한 냉정하고 공정한 방관자가 우리가 표출하는 분개를 보고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관대함이나 우리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존엄을 유지하고자 하는 관심만이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이 격정의 표현들을 고상한 것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동기이다. 이 동기가 우리의 전체 품격과 태도를 특징짓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태도는 반드시 소박·소탈하고, 감추는 것이 없고, 솔직해야만 한다. 과단성이 있되 독단적이 아니어야 하고, 고결하되 오만하지 않아야 하며, 무례하고 상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상해를 가한 자에 대해서조차 너그럽고 솔직하면서도 모든 적절한 배려를 다해 주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분노의 격정 때문에 인간의 선한 본성이 훼손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만약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복수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마지못해서,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되풀이되는 엄중한 도발의 결과 때문이라는 것이 우리가 그것을 표현하려고 일부러 노력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전체 행동에서 저절로 드러나야 한다.

분노가 이런 방식으로 억제되고 진정된다면 그것은 심지어 관대하고 고상하기까지 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개(憤慨)의 감정 149쪽

분개(憤慨)는 방어를 위해서, 그리고 오직 방어만을 위해서, 천성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감정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정의를 지키는 보호장치이자 죄없는 사람을 지키는 안전장치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가해지려는 해악을 물리치고 이미 가해진 것에 대해서는 보복을 하도록 촉구한다. 그리하여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반성하도록 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움을 갖도록 함으로써 유사한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다.


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 181∼182쪽

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은 우리의 적으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하여금 자신이 자신의 과거의 행동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고, 또한 그로 하여금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도록 만들고, 그로 하여금 그가 해악을 가한 그 사람이 그와 같은 식으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드는 데 있다. 우리를 해치거나 모욕을 준 사람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분개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우리를 무시하는 태도, 우리보다 자기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불합리한 태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의 편의에 따라 또는 기분에 따라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의 터무니없는 자애(自愛: self-love) 등이다. 그의 행동에 나타난 두드러진 도덕적 부적정성, 그의 행동에 담겨 있는 큰 오만과 불의는 종종 우리에게 우리가 당한 해악 그 자체보다도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우리를 격분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 응당 받아야 할 몫에 대한 보다 올바른 감각을 그에게 심어주는 것, 그가 우리에게 지고 있는 빚이나 그가 우리에게 행한 잘못을 그가 깨닫도록 해 주는 것 등이 우리가 보복하려는 주요 목적이다. 만약 이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다면 보복은 항상 불완전하다.


오만(傲慢)한 사람 483쪽

오만(傲慢)한 사람은 표리부동(表裏不同)하지 않고, 마음속 깊숙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알아맞히기는 흔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는 당신이, 그가 당신의 입장에 있을 때 자기 자신을 바라볼 그런 눈으로, 자기를 보아주기를 바란다. 그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공정(公正)함이다. 만일 그가 자기 자신을 존경하는 것만큼 당신이 자기를 존경해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는 모욕(侮辱)을 당한 것 이상으로, 마치 그가 정말로 어떤 침해를 당한 것처럼 화를 내고 분개한다. 그러나 그런 때조차도 그는 자신이 당신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당신에게 존경을 간청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런 행동을 경멸하는 척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의 우월함을 당신으로 하여금 느끼도록 하기보다는 당신 자신의 비천함을 스스로 느끼도록 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상정(想定)한 지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마치 자기 자신에 대한 당신의 존경심을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신 자신에 대해 당신이 굴욕감을 느끼도록 자극하기를 더욱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253쪽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羞恥)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

많은 경우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신성한 미덕을 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인류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 통상 생기는 것은 보다 강한 사랑, 보다 강력한 애정, 즉 명예스럽고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 우리 자신의 성격의 숭고함, 존엄성, 탁월성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 * * * *
















도덕적 감정들 : 좋아함, 노여움, 감사, 동정, 죄의식, 수치 621쪽

트리버스는 도덕적 감정들을 호혜주의 게임의 전략으로 보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역설계했다.

'좋아함liking'은 이타적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감정이다. 대략적으로 그것은 타인에게 호의를 제공하는 자발성이고, 그 방향은 자발적으로 호의를 돌려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맞춰진다. 우리는 우리에게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노여움anger'은 친절함의 대가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막아 준다. 착취 행위가 발견되면 당사자는 그 불쾌한 행동을 불공정한 것으로 분류하고 분노와 도덕적 공격의 욕구-관계를 단절함으로써, 그리고 때때로 사기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벌을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노여움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노여움이 정당한 노여움, 즉 의분이라는 것이다. 격노한 사람은 자신이 손해를 입었고, 그래서 부당함을 시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감사gratitude'는 최초의 행동에서 비롯된 비용과 이익에 따라 보답하려는 욕구를 조절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큰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큰 손실을 겪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동정sympathy'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욕구이고, 감사를 벌기 위한 감정일 수 있다. 사람들은 호의가 가장 절실할 때 가장 많이 감사하므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은 이타적 행동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다.

'죄의식guilt'은 발각될 위험에 처한 사기꾼을 괴롭힐 수 있다. H.L. 멩켄은 양심을 "우리에게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내면의 목소리"로 정의했다. 만일 피해자가 미래의 모든 도움을 끊는다면 사기꾼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악행을 배상하고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음으로써 관계 단절을 막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람들이 사적인 범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그 행위가 공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죄가 발각되기 전에 자백하는 행위는 진실함을 입증하고 피해자에게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수치shame'는 범죄가 발각된 후의 반응으로 공개적인 뉘우침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것도 분명 같은 이유에서다

 - 스티븐 핑커,『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중에서


 * * * * * * *
















신뢰의 경제적 비용


현대세계에서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사회적 협동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재산권, 계약, 상법 등은 시장지향적인 현대 경제체제를 이룩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제도이지만, 이런 제도가 '사회적 자본'과 '신뢰'로 보완된다면 경제활동 비용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한편 신뢰는 공유되는 도덕규범이나 가치를 지닌, 그 전부터 있어 온 공동체의 산물이다. ...... 이런 공동체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 아니다. 

필자는 지난 번 책『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동기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실제로는 합리적인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구체화임을 다소 장황하게 주장한 바 있다. ......

경제생활이 가능한 한 최상의 물질적인 풍요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승인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상호 의존성은 더욱 명백해진다. ......

경제학자 알베르트 히르쉬만은 근대 부르주아의 등장을 귀족사회의 특징인 명예에 대한 '열정'을 신흥 부르주아지의 특징인 물질적인 '이해관계'로 대치시킨 '윤리적 혁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대체는 최초의 자유주의적 정치이론가 토마스 홉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홉스가 보기에 시민사회란 종교적인 열정에서든 귀족적인 허영심에서든 간에 합리적인 부의 축적에 명예에 대한 욕망을 의식적으로 종속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트러스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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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9-0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써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이번 일은 '분개'해야하는 일이라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처음에야 순간적으로 불편하고 욱~하는 정도의 일이었지만, 알라딘의 태도에 의하여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저는 아무거나 시시비비를 가리기 좋아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세상에서 완전히 올바른 것도 완전히 그른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제 행동에도 찬반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르다 생각합니다. 알라딘이 제시한 틀 내에서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면, 제가 세상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의 반응이란 정말 다양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oren 2011-09-07 13:37   좋아요 0 | URL
'분개'에 대해 깊이 성찰한 도덕철학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자면,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이 격정의 표현들'을 고상한 것이 될 수 있도록, [과단성이 있되 독단적이 아니어야 하고, 고결하되 오만하지 않아야 하며, 무례하고 상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상해를 가한 자에 대해서조차 너그럽고 솔직하면서도 모든 적절한 배려를 다해 주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으니 늘 문제 입니다.

2011-09-07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1-09-08 10:18   좋아요 0 | URL
제겐 너무 과분한 말씀이네요..

그리고, 이미 인용했던 내용들이 많은데 자꾸만 울궈 먹는 것 같아 다소 식상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 글은 안 올릴까 하다가, 혹시나 처음 접하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염치 불구하고' 올린 겁니다. ㅎㅎ

암튼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1-09-0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덕분에 도덕감정론을 사기로 했어요. 예전의 페이퍼도 읽었는데 좋은 내용이 많더라고요. 감사 드립니다.

oren 2011-09-09 17:16   좋아요 0 | URL
네.. 『도덕감정론』은 저도 오래 전부터 벼르던 책이었는데, 다 읽고 나서도 또 다시 펼쳐 읽고 싶고, 또 읽을 때마다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이런 경험을 하게 만드는 책은 매우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pek님께서 이 책을 사기로 하셨다니 저도 몹시 기쁘네요. 그리고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1-09-10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1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9월 하순에 찾아가본 智異山
지리산 둘레를 따라 만난 풍경 ①
지리산 둘레를 따라 만난 풍경 ②


한걸음 한걸음이 건강이요, 재미요, 즐거움이다. 인생의 근심걱정은 금권주의, 사회의 본질적 속악함과 함께
- 김이 솟아 오르는 골짜기의 가장 낮은 밑바닥에 달라붙는 추악한 독기처럼 - 아득히 저 아래쪽에 남는다. 위쪽에서 우리는 맑은 공기와 날카로운 햇빛 속에서 신들과 함께 걷고, 인간은 서로를 알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안다. 어떤 감정도 '우리 종족의 시조들처럼 충실한 동지들'과 더불어, 어느 냉혹한 절벽을 공격하러 전진하는 감정보다 영광스러울 수는 없다. 설령 바깥쪽으로 툭 튀어나간 기울어진 바위 선반 위에서 오로지 구두징 한 개의 마찰만으로 육체가 희박한 공기 속에 떨어져 내리는 것과, 영혼이 저 위 천국으로(그렇게 희망하자) 날아 오르는 것을 막고 있을 뿐일지라도 한 손의 손가락에 아직도 한 파티의 생명을 맡길 수 있고, 아랫도리에 '무릎이 풀어지는 공포'의 기미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통쾌한 일은 없다.

 -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

 * * *

○ 일시 : 2011. 8.19(금) 13:30 ∼ 8.21(일) 13:30
○ 산행 코스 : 백무동 → 장터목(1박)  → 천왕봉  → 세석평전  → 벽소령  → 연하천(2박)  → 노고단  → 성삼재
 

거의 5년 만에 다시 지리산을 종주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지리산을 찾았던 게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1981년) 였으니, 그로부터 따지면 지리산과 인연을 맺은지도 어언 30년이 되었다. 정말 세월이 빠르다는 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리산을 오를 때마다 늘 '지리산을 처음 올랐을 때의 추억'을 되새기곤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유달리 '그 시절 그 친구들과의 추억들'이 몹시도 그리웠고, 특히나 이번 산행 코스는 여태껏 올랐던 방향과 정반대 방향(천왕봉 → 노고단)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왜냐하면 산행 도중 수없이 마주치게 된 풋풋한 젊은이들(특히 대학생들이 많았다)을 보면서 30년 전의 '우리들' 모습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애쓸 도리가 도무지 없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에 오른 대개의 대학생들은 너무나 싱그러운 젊음을 푸른 나뭇잎처럼 발산하고 있었고, 나는 어느덧 딱딱한 껍질을 온 몸에 두르고 있는 나무처럼 제법 많은 세월을 살아 온 중년이 되어 있었다.


<앨범 속 사진 1> 1981년 8월,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 지리산 정상에 오른 모습


(그 당시엔 멋도 모르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종주산행을 했나 보다. 사진 속 수박 한 통이 인상적이다)


언제부터 산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30년 전 처음으로 가 본 '지리산'은 정말 좋았다. 제법 거창한 4박5일의 종주 산행이었던 데다가, 텐트와 5일분의 식량 때문에 짐도 무거웠고, 등반대의 구성원이 남학생 6명과 여학생 2명으로 이뤄지는 바람에 텐트를 남학생용 대형(7∼8인용) 1개,  여학생용 소형 1개(3∼4인용)로 구색을 맞춰 가져 갔는데, 대형텐트는 정말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고, 텐트를 치고 걷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기 때문에 더욱 고생이 심했고, 그만큼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득 찬 산행이 되었다.

그 당시를 다시금 회상해 보면, 아무튼 그 땐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친 산길을 걷고, 하루 세끼씩 꼬박 꼬박 8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식사를 하고, 설겆이를 마치고, 또 야영을 하는 과정들이 결코 만만치 않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서로 돕고 도우며 '진한 우정'이 싹트게 되었다. 그 때 함께 산행을 한 친구들은 물론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마침 내일 6쌍의 부부가 저녁모임을 갖는데, 대부분 이 때 함께 등반을 간 친구들이다(한 쌍의 부부는 이 때 등산을 함께 간 남학생과 여학생이다).

그 당시엔 1인당 회비를 15,000원씩 거뒀던 걸로 기억하는데(한 학기 등록금이 대략 50만원쯤 했다), 꽁치 통조림은 너무 비싸 정어리 통조림을 훨씬 더 많이 준비해 갔던 기억이 특히 생생하다. 매 끼니때 마다 '정어리 통조림 찌개'는 빠지지 않았고, 배낭을 꾸릴 때마다 그 속에 그득했던 정어리 통조림이 과연 '몇 개나 줄었는지' 세어보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번에 지리산 종주 산행을 다녀와서 '30년 전 추억'도 떠올려 볼겸 책장 한 켠에 수북히 쌓인 '앨범'을 뒤져보니 내가 산을 좋아하긴 좋아했나 보다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얻은 여름휴가때도 배낭에 텐트를 짊어지고 곧장 설악산으로 달려 갔으니 말이다.


<앨범 속 사진 2> 1988년 8월, 직장생활 1년차 여름휴가때 설악산을 찾은 모습

(이 때부터는 월급도 타고 등산화도 사 신었지만, 여전히 청바지를 입고 산행을 했던 모양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회사 산악회의 총무와 간사 등을 (아마도 10년쯤) 떠맡아 주말마다 이 산 저 산을 참으로 많이도 쏘다녔던 것 같다. 앨범 속을 뒤져보니 온통 '****** 산악회'를 내걸고 찍은 단체사진만 수두룩하다. 그래도 지금 되돌아 보니, 그 때가 참으로 행복했고 참으로 젊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앨범 속 사진 3> 1990년 10월, 직장생활 3년차 가을에 용문산을 오르다가 찍은 사진

(총각사원 시절에 함께 간 직장 선배님이 찍어준 사진인데, 그 분의 취미가 사진촬영인줄 나중에 알았다)


지리산을 처음 갔을 때 내 나름대로 마음 속에 '다짐'해 둔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적어도 5년에 한 번씩은' 꼭 지리산을 오르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노부부가 지리산 정상을 함께 오르는 모습을 보고 나서 마음먹은 것인데) 60세가 넘어서도 저렇게 지리산을 함께 종주할 수 있는 사람을 '평생의 반려자'로 삼자는 것이었다. 사실 아내와 함께 지리산을 찾은 건 여러 번이었지만 '종주산행'은 여태껏 함께 해보지 못했다. 다만 두 아이가 대학입시를 마치는 대로 함께 '종주산행'을 다녀오자는 구두약속만 해놓은 상태다.

어쨌든 처음 지리산에 갔을 때의 다짐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실행된 건 없지만, 딱 10년 만에 두 번째 종주산행을 다녀올 수 있었고(똑같은 노총각 신세의 고교 동창 세 명이 함께 갔다), 그 뒤로도 야간산행과 종주산행을 몇 번 더 다녀왔던 것 같다.


<앨범 속 사진 4> 1991년 10월, 10년 만에 두 번째 지리산 종주산행을 하면서......

(이 때는 4박5일 동안 야영을 하면서 [화엄사 → 천왕봉 → 칠선계곡]으로 종주산행을 했다)


지리산은 언제 찾아가도 늘 어머님 품 속 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곤 한다. 다른 산에서는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독특한 감정이다. 그리고 지리산의 품은 다른 어떤 산들도 감히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만큼 드넓고 넉넉하다. 지리적으로도 남한의 8도 가운데 3도를 차지할 만큼 넓다. 산이 높고 깊은 만큼 그 품에서 흘러 나오는 섬진강의 맑은 물은 또 얼마나 오랜 세월에 걸쳐 얼마나 많은 생명들에게 젖줄이 되어 왔던가 싶은 생각도 든다.

비록 내가 태어난 고향은 태백산맥 자락에 가깝지만, 어른이 되어 지리산을 찾고 부터는 이 곳에 매료되어 마음 속으로 늘 동경하는 곳이 되었다. 이른 봄 남녘의 지리산 자락에서부터 피고지는 구례의 산수유와 광양의 매화향기와 여름 내내 비구름과 운무를 가득 머금은 지리산의 여러 능선들과 계곡들, 가을과 겨울이면 온통 울긋불긋한 단풍과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지리산의 모든 계절이 나에게는 너무나 매혹적이다.

이번 산행은 독특하게도 '동네 성당 산악회'에서 지리산을 종주한다는 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그 선배를 따라 (종교의 장벽을 무시하고)  '지리산이 좋아서' 무작정 따라 나섰다. 그 덕분에 오히려 일행들과 함께 휩쓸리지 않고, 산행 내내 조용히 마음속으로 내가 살아온 나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가져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올해는 유독 늦여름까지 비가 많이 왔던 만큼, 이번 산행에서는 우리 일행 역시 이틀을 꼬박 빗속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지리산의 최대 장관인 '천왕봉 일출'도 볼 수 없었으며, 지리산의 숱한 비경과 절경들을 카메라에 담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다음에 또 지리산을 찾게 되면 어둠을 헤치고 말갛게 솟아 오를 붉은 태양과, 태고의 세월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은 멋진 지리산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보고 싶다.

이번 산행에서는 비록 많은 비를 맞으며 힘든 산행을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무릎이 풀어지는 공포'를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체력적인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30년 전에 처음 지리산을 찾았을 때 마음 속에 다짐했던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산을 찾아 다니고 싶고, 또 내일 만날 '오랜 친구들'과도 '다시 한번' 의기투합하여 지리산 능선을 함께 걸으며, 별이 빛나는 밤마다 까마득한 옛 얘기를 오래도록 함께 나눌 수 있는 날들을 기다려 본다.



1. 백무동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
(Shooting Date/Time 2011-08-19 오후 12:28:14)





2. 비빔밥과 청국장이 맛있었던 '옛고을' 식당




3. 지리산의 위용이 느껴지는 모습~





4. 장터목 산장을 불과 몇백미터 앞두고 마주친 장관...... (Shooting Date/Time 2011-08-19 오후 5:41:09) 




5. 빗물을 잔뜩 머금은 '모시대'(장터목 산장 도착 몇십미터 전)




6. 장터목 산장의 저녁 풍경 (Shooting Date/Time 2011-08-19 오후 6:10:22) 



7. 비바람 몰아치는 지리산 정상(1,915M) (Shooting Date/Time 2011-08-20 오전 6:58:04)




8. 잠시 '빗줄기가 약한 틈'을 이용해서 찍은 '곰취' (Shooting Date/Time 2011-08-20 오후 1:46:39) 



9. 지리산 산행길 내내 반겨준 '원추리'



10. 소박하고 수줍게 핀 '둥근이질풀'



11. 벽소령을 지나 연하천으로 가는 길목에서~ (Shooting Date/Time 2011-08-20 오후 4:34:15) 



12. 비구름만 가득하다가 아주 잠깐 보여준 운무 (벽소령과 연하천 사이)



13. 산행 3일째, 마침내 연하천 산장에서 맞은 눈부신 일출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5:52:48) 



14. 연하천 산장에서 맞은 지리산의 아침 풍경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5:57:33) 




15. 어느새 하늘은 가을이 느껴질 만큼 푸르고......



16. 아침에 보는 지리산 운해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7:37:10) 



17. 토끼봉을 지나며......



18. 아침 햇살에 빛나는 '둥근이질풀' 



19. 화개재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들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9:24:57) 



20. 아침 이슬을 머금은 '원추리'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전 9:30:27) 



21. 오고, 가고 또 머무르고.....


22. 운무에 휩싸인 반야봉과 삼도봉



23. 등산로는 아니지만 '가 보면' 좋은 곳



24. 저 멀리 섬진강이 아스라히 보이는 곳



25. 아름다운 동행~ 



26. 종주산행의 종착지, 노고단 풍경 (Shooting Date/Time 2011-08-21 오후 1:03:1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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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백산의 겨울
    from Value Investing 2013-01-19 11:27 
    지난 주말,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눈꽃열차'를 타고 태백산으로 향했었다. 겨울산으로 달려가는 야간열차 안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며 맥주를 나눠 마시는 기분은 정말 요즘 어린애들 말로 킹왕짱이었다. 함께 여행을 나선 친구들과는 대학 1학년때 같은 과 동기생들로 처음 만났으니 벌써 30년 이상을 동고동락해 온 사이가 되었다. 이 친구들과 결정적으로 뭉치게 된 건 아무래도 대학 1학년 여름방학때 난생 처음으로 함께 나섰던 '지리산 종주 산행' 덕분이 아니었을
 
 
마녀고양이 2011-08-2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요,,, 이제까지는 꿈도 안 꿨지만
이 페이퍼를 보면서 언젠가 너무 길지 않은(2박3일) 정도의 지리산 종주 여행을 저도
가족과 함께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보니 가슴이 뛰는걸요, 올 가을에 지난번 말씀하신 북한산에라도 꼭 가겠습니다.

oren 2011-08-27 11:04   좋아요 0 | URL
50대 혹은 60대에 지리산을 처음 찾는 분들도 있더군요. 원대한 계획이 꼭 이뤄지길 바라고, '올 가을엔' 아주 가까운 북한산에 꼭~ 올라가 보시길 바랄께요^^

비로그인 2011-08-2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oren님 오랜만에 들려봅니다.

사진 참 좋습니다. 저도 조만간,, 카메라를 ^^ 가을의 문턱에서 잘 감상하고 가겠습니다~

oren 2011-08-27 11:06   좋아요 0 | URL
어느 결에 가을 바람이 살랑거리는 계절입니다. 바람결님의 댓글이 무척이나 반갑네요.
바람결님이 카메라를 손에 잡으시면 너무 멋진 작품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것 같아요. 기대만발입니다.

blanca 2011-08-2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리산. 대학교 때 과 동기가 지리산에 왔다고 전화했던 기억이 나요. 나도 언젠가는 가겠다고 결심했던 기억이. oren님 사진들 보니 저도 신입사원 연수 때 설악산을 등반했던 기억이 나서 뭉클해지네요. 정말 설산이었는데. 서로 밀고 끌어주면서 함께 했던 추억들이 참 아련하네요.

지리산에 꼭 가보고 싶어요. 사진들도 참 좋네요. 특히 일출이요.

oren 2011-08-27 11:12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만큼 아름다운 산들이 가까운 주변에 널려 있는 경우도 흔치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산들마다 뚜렷하게 사계절이 따로 있으니 더욱 아름다운 것 같구요.

blanca님처럼 지리산에 처음 가보시는 분들은 가볍게 '노고단'에 올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성삼재'에서 출발하면, 왕복으로 1~2시간 정도면 충분히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답니다.

상종 2011-08-3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의 지리산 종주 산행기를 읽으니 마음쏙 깊은 곳에서 욕정(?)이 솟구쳐나오네요
빨리 배냥꾸려 산으로 달려가라고
우중 산행이 힘들지만 그 만큼 기억에 오래 남을 겁니다.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순오기 2011-08-31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지리산 종주 멋진 산행이네요.
추억 속 사진과 지리산 풍경도 멋집니다!!
아름다운 동행은 옆지기님일까요?^^
지리산은 버스로 한바퀴 돌다가 잠시 내렸던 노고단 풍경만 알아요.ㅜㅜ

oren 2011-08-31 11:35   좋아요 0 | URL
지리산은 버스나 승용차로 돌아 다녀도 가 볼 데가 참 많은 곳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동행'에 뒷모습만 찍힌 분들은 저도 이번에 처음 만난 분들입니다. 선배님이 활동중인 '동네 성당 산악회'의 종주 산행에 저 혼자 따라 나섰는데, 사진 속 '부부'와 같은 조(組)에 편성되어 있어서 늘 산행을 함께 했는데, 참 보기가 좋더라구요.

비로그인 2011-09-0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네의 넓은 가슴과 여유로움이 무척 부럽네. 아직은 올려진 글들이 눈에 설지만, 시간날때마다 찬찬히 읽어볼 생각이네. 인생의 뒤안길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지만, 앞만 보고 달려온 협곡을 벗어나 가지않은 길에 대한 반추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슈바빙은 전혜린의 에세이에 나오는 뮌헨의 예술인의 거리라네. 가본적은 없지만 지은지 300년이나 되는 건물안에 들어서면 그 공간을 거쳐간 예술가들의 숨결을 좀 느껴보게 되지 않겠나. 좋은 글 고맙네.

oren 2011-09-02 11:15   좋아요 0 | URL
뮌헨에 그런 멋진 곳이 있는 줄, 슈바빙이 그런 곳인 줄 처음 안 것 같네. 전혜린의 책은 10대 때 뭔가 뜨겁고 숨을 할딱거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읽은 것 같은데, 지금은 그저 무덤덤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네. '나이'로부터 비롯되는 느낌의 차이가 이토록 클 수 있다는 게 놀랍지만, 어쨌든 슈바빙에서 아침을 맞게 될 때 '전혜린'의 책을 다시금 펼쳐 보고 싶은 생각도 드네. 댓글 고마워~
* * *
격정적으로 사는 것 -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이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 전혜린
 

(사진을 클릭하면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일시 : 2011-08-24 오후 7:36:14, 오후 7:38:00
 - 장소 : 일산 호수공원


Shooting Date/Time 2011-08-24 오후 7:36:14



Shooting Date/Time 2011-08-24 오후 7: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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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8-25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한순간입니다*^^*

oren 2011-08-25 14:45   좋아요 0 | URL
네.. 잠시 동안이었지만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답니다.

stella.K 2011-08-2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 일산호수 공원 갔었는데 정말 좋더군요.
사진 멋지내요.^^

oren 2011-08-25 14:52   좋아요 0 | URL
식구들과 풍동 애니골에서 저녁을 먹다가.... 저녁 노을이 예쁠 것 같아서 서둘러 호수공원으로 달려 갔는데, 정작 아름다운 일몰은 다 놓치고 뒤늦게 어두컴컴한 모습만 겨우 찍었답니다.

마녀고양이 2011-08-26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보던 호수 공원이 맞습니까! ^^
진짜 멋지게 잡으셨네요.

oren 2011-08-26 16:07   좋아요 0 | URL
너무 어두컴컴하지 않나요?
다음엔 좀 더 일찍 나가서 '불덩어리'도 담고,
좀 더 '환상적인' 풍경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볼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