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번의 정신은 모든 저명한 서구 역사가들 중에서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하고 눈부시다. 기번은 역사를 탐구하고, 구성하고, 서술하면서 역사 분야뿐 아니라 그 어느 문학 장르의 작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걸작을 만들어 냈다.

 - 아놀드 토인비

 

 * * *

 

꼬박 두 달이 넘도록 매달린 끝에『로마제국쇠망사』를 다 읽었다.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마침내 장대한 산맥 하나를, 중도에 힘에 부쳐 지레 포기할 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불안감을 지닌 채 성큼 들어섰던, 온갖 험난한 지형과 울창한 삼림들과 사나운 야생의 짐승들로 둘러싸인 그런 산맥을 용케 넘어섰다는 후련함이 왜 없겠는가. 소문으로만 익히 들어왔던 에드워드 기번의 장려한 문장들과 벌써(!) 이별이라니 진한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때로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처럼 재기발랄하고 다정다감한 문장들을 툭툭 던지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맹렬한 폭포수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문장들은 얼마나 박력이 넘치고 해박하고 놀라운가. 숱한 역사가들이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모른 체 일부러 덮어버리곤 했던 역사의 진실 앞에서 그의 탐구심은 얼마나 맹렬하게 타오르고, 그의 판단력은 얼마나 날카롭고, 그의 기개는 얼마나 당찼던가. 역사가에게 주어진 자유 혹은 의무를 위해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단호하게 써내려간 그의 붓끝은 얼마나 매섭고도 아름답게 빛나는가.

 

이 방대한 역사책을 읽고 난 감회를 쓰자니 문득 옛날이 좋았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옛날엔 책 한 권을 뚝 떼면 책거리로 '떡'을 지어 먹었다. 나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 책 덕분에 떡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형이 우리 마을에서 학식이 가장 높으신 어르신 한테서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을 배웠는데, 그 중에 어떤 책을 다 배우고 났을 무렵에 어머님께서 떡을 만들어 어르신한테 갖다 드렸고, 형 덕분에 나에게도 떡을 먹을 기회가 돌아왔던 것이다. 시쳇말로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겠지만, 책 한 권을 뗐다고 떡이 생기더라는 말을 들어보긴 처음인 알라디너도 없지는 않을 듯하다. 사실, 알라디너에겐 책을 다 떼면 짐만 생긴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괜히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생겨나니 말이다.

 

아무튼 『로마제국쇠망사』라는 책은 너무나 방대하기로 널리(!) 소문난 책인지라, 왠지 '책거리'로 떡이라도 누구한테서 받아먹고 싶어지는 그런 책임에는 틀림없다. 우선 외관 하나만 보더라도 이 책은 얼마나 우람한가.

 

(책소개에 나오는 사양은 이렇다. 양장본, 4,150쪽, 152*228mm, 6,225g. 실제로는 3,719쪽이다 )

 

 

이 방대한 저작을 읽고 난 느낌을 솔직히 어떤 방식으로 정리해야 옳을지 잘 모르겠다. 역사가나 문장가로서의 작가의 탁월함과 위대함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도 없고, 얄팍한 독서 이력을 지닌 머나먼 변방의 일개 독자가 느끼는 경외감과 곤혹스러움과 왜소함만을 강조할 수도 없을 뿐더러, 작품 속에 담긴 온갖 엄청난 역사적 사건들이나 인물들에 대해 새삼 개괄할 수도 없고, 온갖 사료들로부터 그지없이 꼼꼼하게 발굴한 끝에 페이지마다 거장다운 솜씨로 흩뿌려놓은 그 많은 지식들을 한낱 가냘픈 조막손으로 솜씨 좋게 다시 옮기고 펼칠 재주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한 감회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남겨보고픈 욕망은 억누르기가 어렵다. 책을 읽는 동안에 수없이 자주 느꼈던 독특한 감회들을 이런 기회에 기록하지 않으면 영영 되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감회를 밝힐 때 첫 번째로 눈길을 돌려야 마땅할 방향은 당연히 작가의 서재 쪽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꼬박 20년 이상을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온전히 다 바쳤지 싶다. 그는 아마도 이 책을 쓰기 위해 결혼도 기꺼이 포기했던 듯하다. 불후의 작품을 쓰기 위한 그의 노고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평탄한 결혼 생활과 장기간의 방대한 연구 과정을 필요로 하는 걸작의 출산이 순조롭게 병행되기는 어려웠으리라는 생각부터 앞선다.

 

그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다루는 역사의 범위는 5현제의 치세가 시작되는 서기 98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1453년까지 1,355년 동안이다. 그러나 어떤 역사가라도 이 기간 동안의 로마 역사를 깊이있게 다루기 위해서라면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서기 97년까지의 선행 역사를 도저히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가 건국된 B.C 753년부터 5현제의 치세가 시작되기 직전인 기원후 97년까지 850년의 역사가 자연스레 덧보태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로마제국 쇠망사』에는 로마 건국 초기의 역사가 상당 부분 자세하게 다뤄진다. 또한 건국 초기의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에 이를 때까지 로마의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숱한 인물들도 수없이 자주 등장한다.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가문의 영웅들을 비롯하여,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브루투스, 카토, 키케로, 아우구스투스 등이 여러 차례 기번의 붓끝에서 되살아 난다.

 

로마의 건국으로부터 제국의 멸망까지 다루는 데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또다른 역사는 수많은 이민족들의 역사다. 여기에 포함되는 국가와 민족들은 쉽게 말하자면 아메리카 신대륙을 빼고는 거의 다 포함된다고 봐도 좋다. 로마 제국의 영토와 겹쳤던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이란, 이라크, 사우디 정도로만 그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는 물론 저 멀리 볼가 강과 돈 강 너머에 살았던 러시아 대륙, 티무르가 지배했던 중앙아시아, 징기스칸의 몽골, 무굴제국의 인도, 중국은 물론 '고려(Corea)'까지도 두루 자세히 언급된다.

 

이 작품이 다루는 역사적인 무대의 시공간적인 방대함이야말로 외형적으로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봐도 좋다. 물론 아놀드 토인비가 쓴 『역사의 연구』라는 작품이 전 인류의 전 지구적인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훨씬 더 방대한 시공간을 자랑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마의 기나긴 역사에 대한 기번 특유의 깊이 있는 고찰, 로마 제국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았던 수많은 이민족 국가들과의 경쟁에 대한 상세한 연구(게르만족, 사라센족, 페르시아, 몽골족, 타타르족, 투르크족 등), 십자군 전쟁에 관한 자세한 연구,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과 종파 간의 갈등, 그리스도교 세력들과 이슬람 세력들과의 분쟁 등을 포함하는 기번의 방대하고 깊이 있는 연구는 토인비의 작품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그 어떤 역사책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방대함과 깊이를 자랑한다.

 

기번의 역사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이 느끼게 되는 특별한 감동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저자의 방대한 독서 경험과 놀라울 정도로 비상한 기억력이다. 그는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기록해 나가는 동안에 특별히 기억할 만한 역사적 장소와 장면을 묘사할 때마다 거기에 딱 어울릴 만한 또다른 인물이나 장면들을 다른 책에서 끌어와 절묘하게 겹쳐 놓는다. 똑같은 무대에서 주인공만 바뀐 채 500년 혹은 1000년의 간극을 두고 벌어지는 '영웅들의 행위'를 비교하는 재주야말로 기번을 따를 역사가가 없을 듯하다. 그가 로마의 역사를 설명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불러 내는 인물들은 역사상으로 실재했던 영웅들도 많지만, 특별히 문학작품들로부터 인용하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이다. 단순히 로마 제국의 영토가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와 겹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번의 호메로스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웅숭깊은 데가 많다. 훗날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율리아누스를 설명하는 몇몇 대목들만 보더라도 그는 호메로스를 얼마나 자주 불러냈던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카였던 율리아누스가 제위에 오르기 전, 사실상 볼모나 마찬가지 상태에서 로마 황제였던 사촌 형님 콘스탄티우스와 함께 전차를 타고 궁정으로 귀환하는(사실상 끌려가는) 동안 마음 속으로 암송했던 싯구절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운데 어떤 대목이었다는 식의 설명은 얼마나 놀라운가. 율리아누스 황제는 특히 웅변 실력도 탁월했는데, '호메로스의 연구'를 통해 그런 실력을 갈고 닦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메넬라우스의 단순하고 간결한 화법, 겨울의 싸락눈처럼 쏟아져 나오는 네스토로의 달변, 오뒷세우스의 감상적이면서도 호소력 있는 웅변을 모방하는 방법이야말로 율리아누스가 호메로스를 열심히 공부한 덕분이라는 식이다.

 

기번이 호메로스를 어떤 식으로 인용했는지 두 대목만 더 소개하고 넘어 가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경기 대회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그리스에서는 저명한 이들이 직접 경기에 참가한 반면, 로마에서는 관람객들이 저명한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올림피아 경기장은 부와 공훈,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경기에 출전하는 자가 스스로의 기술과 민첩함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면 디오메데스와 메넬라오스의 발자취를 따라 전차를 전속력으로 몰아 봄직도 했다.(56쪽)

 

(기번의 주석)

『일리아스』 23권을 읽어 보면 전차 경주의 방법과 예절, 그 열정과 정신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고대 올림피아 경기에 관한 학술 논문을 보면 더욱 흥미진진하고 근거가 분명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그는 거친 군대 생활을 통해 강인한 심신을 무쇠처럼 단련했다. 스뱌토슬라프는 곰 가죽으로 몸을 감싸고 말안장을 베개 삼아 땅 위에서 잠자곤 했다. 그는 먹는 음식도 거칠고 소박해서 호메로스의 영웅들처럼 고기를(주로 말고기) 석탄에 구워 먹었다. 실전을 거치면서 그의 군대는 안정되고 규율이 잡혀갔다. 대장이 누리는 것 이상의 사치를 감히 누릴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532쪽)

 

(기번의 주석)

『일리아스』 9권에 나오는 아킬레스의 식사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서사 시인이 이런 묘사를 했다면 자기 작품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독자들의 비위를 거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서사시는 조화로우며 사어(死語)라서 실감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2700년의 세월을 둔 지금으로서는 고대의 원시적인 풍습에 재미를 느낄 따름이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호메로스 다음으로 자주 인용되는 인물들은 고대의 시인, 철학자, 역사가들이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등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와 희극을 쓴 메난드로스,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 철학자 키케로, 역사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리비우스, 타키투스, 플루타르코스가 대표적이다. 기번과 비교적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도 자주 인용되는데, 손에 꼽을 만한 인물들은 페트라르카, 마키아벨리,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밀턴, 몽테스키외, 볼테르, 데이비드 흄, 루소, 아담 스미스 등이다.(특히 볼테르,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는 기번과 직접적으로 교류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쓴 작품 속의 내용들이 얼마만큼 정교하게 '로마제국 쇠망사'에 녹아드는지는 기번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지 모르겠다. 가령 셰익스피어가 쓴 『헨리 4세』의 주인공은 내란을 통해 권력을 찬탈했기 때문에 무너져 가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더라도 도와줄 여력이 전혀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이런 '놀라운 주석'을 덧붙인다.

 

여러 날 런던에 머무는 동안 마누엘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영국은 성전에 참여할 준비를 하기에는 프랑스보다도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이 해에 세습 국왕이 왕위에서 쫓겨나 사형을 당한 데다가, 지금의 왕 헨리 4세는 왕위를 성공적으로 찬탈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야망에 대한 벌을 받기라도 하듯이 시기심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랭커스터 가문 출신의 헨리 4세는 끊임없이 왕좌를 위협하는 음모와 반역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성전에 직접 참전하는 것은 고사하고 병력을 빌려 줄 여유조차 없었다. 헨리 4세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의 처지를 동정하고 그의 인품을 칭송하며 연일 연회를 베풀어 주기만 할 뿐이었다. 이때 만약 영국의 군주가 십자가를 메는 체 했다면, 그것은 경거한 대의명분을 따르는 시늉으로 신민들의 마음과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394∼395쪽)

 

(기번의 주석)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는 왕이 십자군 서약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맨 마지막에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극을 마친다.

 

(나의 생각)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라는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나는 그 작품을 읽고 난 뒤로도 헨리 4세가 다 쓰러져 가는 동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간절한 파병 요청을 받았을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한 적이 없었다. 또한 그 작품이 시작되는 부분이 '십자군 전쟁'과 연관된 줄도 전혀 몰랐다. 또한『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으면서 헨리 4세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될 줄도 몰랐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책의 표지를 뒤집어 펼치면 각 권마다에 해당하는 세계 지도가 펼쳐진다. 겉표지를 벗긴 책의 모습은 왠지 너무 고색창연한 색상이어서 조금은 아쉽다.)

 

이토록 많은 인물들의 작품을 『로마제국 쇠망사』에 절묘하게 버무려 녹여 낸 기번의 박학다식함과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독자가 얼마나 될까. 기번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느꼈던 생각 가운데 하나는 훌륭한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체력뿐만 아니라 책력(冊歷, '책을 읽은 이력'을 뜻하는 나만의 신조어)도 알맞게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기번의 책들을 읽는 동안에 내가 이미 읽었던 책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얼마나 기쁘고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걸 느꼈던가. 기번의 책들을 읽는 동안에 내가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무수한 책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얼마나 의기소침해지고 시무룩해졌던가.

 

이 책을 읽은 감회를 정리하기 위해 '기번의 서재 쪽으로' 향했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언급할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기번의 문장력이다. 기번 특유의 지독한 만연체는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가 없다. 6권을 읽는 동안에 '만연체' 때문에 문장의 정확한 뜻을 해독하는데 애를 먹은 경우가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아마도 기번에게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났다고 믿고 싶다. 그런 문장들만 제외한다면 기번의 독특한 만연체가 독해를 특별히 방해한다거나 작품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도리어 특유의 긴 호흡 한 번으로 유장하고도 장중하게 역사를 매조지하는 점에서는 기번의 만연체만큼 멋들어진 역사 서술도 찾기 어렵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기번의 역사책 속에서 가장 매혹적인 문장들은 아마도 '너무나 문학적이거나 철학적인 표현들'을 역사 서술에 서슴없이 과감하게 도입했다는 점일 듯하다. 그런 문장들은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자주 등장하는데, 빛나는 명문장들을 일일이 여기에 소개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수도사들은 독방에서 보내는 낮 시간에는 개개인의 신앙이나 열정에 따라 묵도나 통성 기도를 했다. 저녁이 되면 모두 모여서 밤이 되어도 자지 않고 수도원의 공공 예배에 참석했다. 이집트의 맑은 하늘에는 거의 구름이 끼는 일이 없었으므로 정확한 시간은 별의 위치로 정해졌다. 예배 시간을 알리는 신호는 투박한 모양의 뿔피리나 나팔을 두 번 울려 광활한 사막의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불행한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라 할 수 있는 수면마저도 엄격히 제한되었다. 노동도 쾌락도 없는 수도사들의 공허한 시간은 느릿느릿 무겁게 흘러갔으므로, 하루가 끝나기 전까지 그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태양의 지루한 발걸음을 탓했다.(448∼449쪽)

 

 - 『로마제국 쇠망사_제3권』

 

 

십자군 전쟁의 일단을 소개하는 대목은 이렇게 멋지게 마무리된다.

 

왕실 역사가인 아불페다는 하마 부대에 종군하면서 성전을 직접 목격했다. 아무리 타락한 프랑크인이라 해도 열정과 절망으로 용기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들은 열일곱 명이나 되는 대장들의 불화로 갈가리 찢겨 사방에서 술탄의 병력에 제압당했다. 33ㅇ리간의 공방전 끝에 이중 성벽이 이슬람군에게 돌파당하고, 중심 탑도 그들의 공성 무기 앞에 무너졌다. 마말루크인들의 일제 공격에 도시는 초토화되고, 6만 명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죽음 아니면 노예가 디는 운명을 맞았다. 요새에 가까운 템플 기사단의 수도원은 사흘을 더 버텼으나, 대장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며 500명의 기사 중 살아남은 자는 단 열 명이었다. 그러나 부당하고 잔인한 사형 명령에 따라 교수대에서 고통을 겪었다는 점에서 칼에 찔려 죽은 자보다 운이 나빴다. 예루살렘 국왕, 총대주교, 요하네스 기사단의 대장은 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바다는 거칠었고 배도 부족했다. 대부분의 도망자들은 키프로스 섬에 닿지 못하고 익사했다. 술탄의 명령으로 라틴인들이 건섫나 도시의 교회와 요새들이 파괴되었다. 탐욕이나 공포심 때문에 여전히 일부 신앙심 깊은 비무장 순례자들에게 성묘로 가는 길을 열어 주기고 했으나, 세계적인 항쟁이 그토록 오랜 세월 메아리쳤던 해변에는 이제 슬픔에 잠긴 고독의 침묵만이 깔렸다.(113∼114쪽)

 

 - 『로마제국 쇠망사_제6권』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진두지휘한 끝에 완성된 성 소피아 성당을 묘사한 대목은 또 얼마나 철학적인가!

 

어느 시인은 성 소피아 성당의 초기 모습의 광휘를 보고, 10∼12종의 대리석과 벽옥, 반암의 색상과 음영 그리고 반점까지 하나하나 다 열거하면서, 특히 각 광석의 반점은 자연이 매우 열심을 다하여 다양하게 만들어 낸 것으로 마치 매우 뛰어난 화가가 배합하고 대조시킨 것 같다고 감탄했다. 그리스도의 승리로 이교도들에게서 빼앗아 온 마지막 노획품으로 이 성당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그 값비싼 돌의 대부분은 소아시아의 채석장, 그리스 본토와 여러 섬들, 이집트, 아프리카, 갈리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 둥근 천장의 빛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했다. 지성소에는 4만 파운드가 넘는 은이 사용되었고, 성스러운 물병들과 제단의 옷들은 순금으로 만들어지고 수많은 보석들로 장식되었다. 이 교회가 땅에서 위로 2큐빗의 높이가 되기 전에 이미 4만 5200파운드의 돈이 소비되었고, 결국 전체 비용은 총 32만 파운드에 이르게 되었다. …… 장엄한 성전은 그 나라의 취향과 종교를 반영하는 칭찬할 만한 기념비이다. 열렬한 신자는 성 소피아가 신의 거처이거나 심지어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건축물도 성전 바닥을 기는 가장 하찮은 벌레가 만들어 놓은 벌레집과 비교해 보면, 인간의 재주란 얼마나 둔하고 그 수고는 얼마나 하찮은지!(93∼94쪽)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장구한 세월에 걸쳐 펼쳐지는 무수한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두루 살펴보노라면 새삼 인간의 삶이 하찮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는 그 드넓은 공간이라고 해 봐야 기실 지구에서 충분히 멀리 벗어난 거리에서 바라보면(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그만큼 멀리 떨어진 우주탐사선에 딸린 특별한 눈으로 그런 광경을 생생하게 바라봤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창백한 푸른 점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머나먼 우주 밖에서 보내온 한 장의 감동적인 사진에 마음을 온전히 다 빼앗긴 채 로마 제국의 드넓은 영토를 한낱 부처님의 손바닥 가운데 일부인 것처럼 하찮게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우리의 현실 공간으로 돌아 오자.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는 수많은 도시들과 바다와 강과 산맥들은 우리의 귀에 익숙한 경우보다는 낯선 경우가 훨씬 많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옛 지명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그 이름이 변치 않은 도시들, 가령 로마, 밀라노, 라벤나, 나폴리, 베네치아, 파리, 아테네,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메카, 메디나 등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쉽지만, 그 반대인 경우에는 보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인터넷을 뒤져야 하는 번거로움도 뒤따랐다.

 

카르타고는 오늘날의 튀니스 북동쪽 도시, 틴기스는 오늘날의 탕헤르, 싱기두눔은 오늘날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베로이아는 오늘날 시리아 북부 도시인 알레포, 니시비스는 지금의 터키 누이시빈, 아미마는 지금의 터키 디얄바클, 싱가라는 지금의 이라크 신자라, 안티오크는 지금의 터키 안타키아, 나이수스는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니슈, 무르사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오시예크, 크테시폰은 지금의 이라크 테시폰, 트레브는 지금의 독일 트리어로 명칭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읽는 작업은 흥미로울 때도 있지만 독서의 흐름을 방해할 때도 많았다.

 

수많은 프랑크족과 알레만니족이 보상이나 약속을 믿고, 혹은 전리품을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혹은 그들이 정복하는 영토는 영원히 그들 소유로 해 주겠다는 보장을 믿고 라인 강을 건넜다. 그러나 임시 방편으로 이렇듯 경솔하게 야만족들의 탐욕을 부추긴 황제는 일단 로마의 비옥한 영토 맛을 본 이 막강한 야만족 동맹군들을 다시 쫓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고 후회해야만 했다. 이 제멋대로인 도적떼들은 충성과 반역도 구분하지 못하고 그들이 원하는 재산을 소유한 로마인이라면 누구든 적으로 간주했다. 통그르, 콜로뉴, 트레브, 보름스, 슈파이어, 스트라스부르크를 비롯한 마흔다섯 개 도시와 그보다 훨씬 많은 마을과 촌락들이 그들에게 약탈당해서 대부분 잿더미로 변했다. 여전히 조상들의 신조를 충실하게 지키던 게르마니아 야만족들은 벽을 쌓고 그 안에 틀어박히는 것을 혐오하면서 그런 곳을 감옥이나 무덤 등으로 불렀다. 그들은 라인 강, 모젤 강, 뫼즈 강변에서 독립 가옥들을 짓고 큰 나무를 쓰러뜨려서 길을 가로막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기습 공격의 위험에 대비했다.(134쪽)

 

(나의 생각)

통그르는 벨기에의 통게렌, 콜로뉴는 독일의 쾰른, 트레브는 독일의 트리어, 보름스와 슈파이어는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 주의 보름스와 슈파이어, 스트라스부르크는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도시로 프랑스어로는 스트라스부르, 독일어로는 스트라스부르크로 불린다. 유럽의 도시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변방의 독자들은 이들 도시가 옛 이름인지 현재 쓰이는 이름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나는 이들 도시 가운데 트리어만 가 봤고, 트리어를 떠난 뒤 스트라스부르크를 그냥 지나쳤던 일을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는 수많은 도시들과 산과 강들을 살필 때는 '구글 어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수만 혹은 수십 만의 군대가 건곤일척의 대전투를 벌였던 유명한 장소들이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폐허로 변한 곳도 드물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위치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장소라고 하더라도 그토록 유명한 전쟁이 과연 로마 제국의 어드메쯤에서 일어났는지를 지구의를 돌려 보듯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현대인들에게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기번이 유럽의 온갖 도서관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켜켜이 먼지가 쌓인 채 낯선 고대의 언어들로 쓰여진 수많은 사료들을 뒤지거나, 혹은 고대 여행자들의 온갖 자질구레한 기록들과 지리지(志)들까지 꼼꼼하게 살피고 비교 검토한 끝에 최대한으로 오류를 바로 잡아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위치 정보는 오늘날의 독자들이 그냥 책상 앞에 앉아서 편리한 검색과 클릭만으로 찾아가기가 미안할 정도다.

 

아무튼 그렇게 드넓은 로마 제국의 영토들을 (기번의 문장과 구글 어스를 따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가끔씩 '나도 이미 가 봤던 장소들'을 마주치는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이탈리아의 로마,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같은 도시들은 단 한 번밖에 찾지 못했지만 그런 도시들을 가 보지 못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아찔한 생각마저 들었다.(특히 '제국의 수도'로서 너무나 특별했던 도시인 로마에 대한 기번의 언급은 너무나 상세하면서도 자주 반복되기 때문에 그 도시를 미처 가 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엄청난 여행 욕구를 불러일으킬 게 틀림없다.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들, 성 베드로 대성당,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포로 로마노 등등에 대해서 기번은 얼마나 자주 감탄하며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던가.)

 

프랑스의 경우 수도인 파리밖에 가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아비뇽, 아를, 릴, 스트라스부르크 등등의 도시들에 대해 단 하나의 이미지조차 떠올리지 못한다는 건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독일의 여러 도시들(뮌헨, 베를린, 드레스덴, 하이델베르크, 트리어 등)을 여행했던 경험은 기번의 책을 읽는데 특히 도움이 되었다. 이집트의 카이로, 멤피스, 아스완, 리비아 사막 등을 여행했던 경험은 그리스도교의 발달과 이집트 수도원의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데 유익했다.(알렉산드리아를 빠트린 건 두고두고 아쉽다. 기번의 책에서도 이 도시는 특별 취급을 받는다.)  저 멀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와 실크로드와 티무르의 무덤을 찾았던 여행 경험은 타타르족의 대활약을 다룬 대목들을 읽을 때 특히 유익했다. 유럽을 여행할 때 구경했던 여러 강들도 독서에 보탬이 됐다. 이집트의 나일 강, 독일의 라인 강, 모젤 강, 엘베 강, 네카 강, 동유럽을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을 여행지에서 만난 경험은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기번의 독서와 결합될 때 한층 강렬하게 되살아났다. 지중해, 아드리아해, 북해, 대서양까지도 여행지에 포함시킨다면 너무 지나친 걸까.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는 동안에 맞닥뜨리는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이 여전히 내게 단 하나의 이미지도 불러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그건 로마 제국이 그만큼 드넓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유럽권의 독자들이 유럽을 이웃나라처럼 쉽사리 드나들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라벤나, 볼로냐, 피사, 파비아, 제노아, 팔레르모 등), 스페인(바르셀로나, 톨레도, 발렌시아, 코르도바, 세르비아, 그라나다 등)과 포르투갈(리스본),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들(알렉산드리아, 트리폴리, 카르타고, 탕헤르 등), 그리스(아테네, 크레테 등), 터키(콘스탄티노플, 아드리아노플, 니케아, 에페수스, 안티오크, 알레포 등),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메카, 메디나, 바그다드,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흑해, 홍해, 카스피해 등등 수많은 도시들과 강과 바다가 내겐 여전히 미답의 상태로 남아 있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이제 다시 기번의 책으로 들어가 보자.

 

『로마제국 쇠망사』에는 흔히 '기번의 잡담'이라고 불리는 저자의 각주가 엄청나게 붙어 있다. 기번이 원본에 달아놓은 깨알같은 각주는 무려 8,3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국내 완역본 기준으로 따져 보더라도 한 페이지에 평균 2개가 넘는 각주가 딸려 있는 셈이다. 영문판조차 이 방대한 주석이 부담스러워 4,700여 개로 대폭 줄인 '버리 판'이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완역본이라고 자부하는 민음사 판본 또한 이 판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무튼 기번의 각주가 너무나 방대한 까닭에 번역자의 주석이 단 하나도 붙지 않는 건 아쉽다. 온갖 함축과 비유가 가득 담긴 기번 특유의 문장들에 대해 '번역자의 주석' 하나 없이 독자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 책을 모조리 읽어내야 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적잖은 선행 독서를 요구하는 셈인지도 모르겠다.(유럽의 지리뿐만 아니라 종교, 문화, 역사 등에 두루 생경할 수밖에 없는 비유럽권 독자들이 기번의 역사책을 능숙하게 독파하기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선행 과제로서 다음 두 가지를 권장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서유럽과 동유럽을 적어도 두세 번쯤은 여행할 것. 많을수록 좋으니 서양 고대의 이름난 고전들을 최대한 많이 읽을 것. 물론 이 책부터 먼저 읽고 난 뒤에 강렬한 자극을 받고 나서 서둘러 유럽 여행길에 오르거나, 서양 고전들을 부지런히 찾아 읽는 정반대의 접근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방대한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의 말미마다 적어 두었던 메모를 보노라니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얼마나 풍성했던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까마득한 옛날 <세계사 수업 시간>에 주마간산 격으로 배웠던 온갖 세계사적 사건들을 기번의 책을 통해 비로소 소상하게 알게 되는 건 '기본 소득'일 뿐이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옮겨오게 되었는지, 암살자(assassin)라는 단어가 페르시아의 전멸한 종교 분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산 마르코 대성당을 장식하는 네 마리의 청동 기마상은 언제 어떤 경로로 베네치아로 옮겨 오게 되었는지, 풍차의 기원, 화약의 발명과 사용, 인쇄술의 발명, 제지술의 전파, 나침반의 발견, 전서구의 도입, 체스 게임의 기원, 결투의 기원 등에 관해 박학다식한 역사가로부터 명쾌하고도 상세한 '역사적 설명'을 듣는 건 뜻밖의 소득이다. 또한 숱한 인물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며' 남긴 촌철살인의 명연설이나 위대한 인물들이 남긴 주옥 같은 대화나 기록들은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로 교훈적이고 훌륭하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1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2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3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6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로마제국 쇠망사』는 단지 우리가 교실에서 배웠던 역사의 큰 물줄기들에 관한 역사적 고증과 고찰만 다루는 책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로마제국 쇠망사』에 담긴 무수한 대사건들만 따로 떼놓고 보면 오늘날의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을지도 모른다. 고대 로마가 웅장한 건축물들로 장식된 과정,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로마제국 재통일과 그리스도교 공인 과정,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에 나타난 다양한 분파들간의 분쟁,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 과정,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법전 편찬과 정복 사업들, 이슬람교의 발생과 전파 과정, 십자군 전쟁의 발생 원인과 진행 경과, 징기스칸의 몽골족과 티무르의 타타르족 서정(西征), 동로마 제국의 쇠락과 오스만 제국의 부상,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제국의 소멸 등은 그 자체로 인류 역사의 대사건들임엔 틀림없지만, 하루 하루를 바삐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는 그저 머나먼 과거에 일어났던 온갖 거창한 사건들을 명명하는 타이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낸 건 결국 사람이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 자신의 시대를 영광스럽게 장식했는지 혹은 오욕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는지를 살피는 일이야말로 역사를 읽는 또다른 중요한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욕망 가운데 가장 강렬하다는 권력욕과 성욕과 재물욕을 위해 제위 찬탈은 물론 골육상쟁을 마다않는 온갖 인간 군상들의 우행과 만행, 황제가 지닌 무소불위의 권력을 오로지 개인의 뒤틀린 욕망에만 허비해 버린 한심스런 제왕들의 언행들을 통해 기번은 끊임없이 인간 행위의 불완전성과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인류의 위대한 예술혼들이 빚어낸 온갖 찬란한 예술품들과 저작들과 건축물들이 한낱 종교적 편견과 무지 때문에 마구 짓밟히고 불태워지고 폐허로 변한 모습 앞에서 기번은 얼마나 탄식했던가. 인간의 무지와 맹목과 편견으로 빚어진 어리석은 행위들을 이만큼 장구한 세월에 걸쳐 빠짐없이 끌어모은 역사책도 다시는 구경하기 어렵지 싶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에드워드 기번이 일반인들로서는 감히 상상으로도 접근하기가 어려운 '칼리프의 삶'을 역사 연구에만 몰두했던 자신의 삶과 대비해 놓은 다음 이야기는 누구라도 한번쯤 곱씹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압달라만 3세 대왕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왕후 제흐라를 위해 코르도바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 도시와 궁전, 정원을 조성하였다. 모든 것을 완성하는 데 25년이라는 세월과 300만 파운드 이상의 돈을 썼는데, 인색함 없이 자신의 취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왕은 당대 최고 기술의 조각가와 건축가인 콘스탄티노플의 예술가들을 초빙했다. 스페인, 아프리카,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만든 1200개의 기둥은 장식적인 기능까지 하고 있었다. 알현실의 벽면은 황금과 진주로 장식되어 있었고, 중앙에 있던 거대한 연못 주위는 동물과 새의 진기하고 값비싼 조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 그런데 압달라만의 궁전에는 왕후와 후궁, 흑인 환관의 수가 무려 6300명에 달했다. 압달라만이 출정할 때면 1만 2000명의 기병이 그를 호위했는데 병사들의 언월도와 허리띠에는 금이 박혀 있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우리의 욕망은 가난과 종속으로 끊임없이 억압을 받지만 전제 군주에게는 무수히 많은 목숨과 노동력이 바쳐지는데, 전제 군주가 세운 법은 맹목적으로 집행되며 그가 바라는 것은 즉시 충족된다. 그 화려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대로 압도된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냉정하게 판단한다 해도 당시 왕족들이 누리던 보살핌과 안락함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완강하게 거절할 수 있는 이가 지극히 드물 것이다. 그래서 압달라만의 경험을 빌려 보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가 선보인 호사스러움은 우리의 감탄과 선망을 자아낼 것이다. 그러면 이 칼리프가 죽은 뒤 그의 개인 방에서 발견된 믿을 만한 문서를 여기에 옮겨 보겠다.

 

나는 지금까지 약 50년 동안 평화와 승리 속에서 제국을 통치해 왔다. 백성들은 나를 사랑하고 적들은 나를 두려워하며 동맹국은 나를 존경한다. 부, 명예, 권력, 쾌락은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어서 지극히 행복하니, 지상에는 내가 누리지 못할 그 어떤 축복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온전히 내 몫이라 할 수 있는 진정으로 행복했던 날을 꼽아 보았더니 겨우 14일이었다. 오, 사람들이여! 현세의 것에 대해서 그 어떤 확신도 갖지 말지어다!

 

(390∼391쪽)

 

(기번의 주석)

솔로몬이 이 세상의 덧없음에 대하여 한탄했던 이 고백과(수도원장의 장황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시를 읽어 보라.) 세그헤드 황제의 행복했던 열흘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 대해 중상모략하려는 자들에 의해 자랑스레 인용될 것이다. 이들의 기대는 과도하고 이들이 어림하는 정도는 공정하지 않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예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했던 시간은 스페인의 칼리프가 계산한 얼마 안 되는 숫자보다는 훨썬 더 많다. 그리고 나는 주저함 없이 덧붙여 말할 수 있는데, 그 시간 중 상당 부분이 지금의 글을 쓰는 동안에 느꼈던 행복이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오래 전부터 읽기를 열망했던 『로마제국 쇠망사』는 어느덧 다시 책장으로 되돌아갔고, 이 책을 읽은 감회를 쓰는 작업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아무리 고생스럽게 이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나에게 떡 하나 사 주지 않았다.'고 장난스럽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기번이 자신의 온 생애를 다 바쳐 그토록 힘겹게 연구하고 노력하여 웅편거작을 완성하는 동안에 '칼리프의 삶'보다 훨씬 더 많은 날들을 행복을 느꼈듯이, 쉽사리 읽기 힘든 기번의 대작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은 다른 책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남모르는 희열을 느끼며 그런 즐거움을 오래도록 간직할지도 모르겠다.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오래도록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꿋꿋이 버티던 『로마제국 쇠망사』가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에서 어느덧 '이미 읽은 책'으로 변신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흐뭇해지니 말이다.

 

 - 내가 처음으로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은 건 2005년 무렵 대광서림판 축약본을 통해서였다.

    ☞ https://blog.aladin.co.kr/oren/624784

 

에드워드 기번은 이 대작을 끝맺는 글에서조차 '자신의 불완전함'과 자료 부족'을 탓했다. 로마 제국과는 너무나 먼 데서 태어나고 자란 일개 변방의 독자로서는 '지리적 불리함'과 더불어 '이해력 부족'과 '기억력 부족'을 탓하고 싶은 생각부터 앞선다. 이토록 방대한 내용을 담은 역사서를 단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제대로 이해했으며 또 앞으로 얼마만큼이나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 대작을 읽고 나면 다른 작품들이 일순간 얄팍해 보이는 듯한 착시 현상이 생긴다.

   이렇게 힘이 불끈 치솟을 때 해치울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리비우스의 로마사? 몸젠의 로마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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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6-29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정말 oren님의 치열한 독서는 귀감이 됩니다..... 절로 고개가 다 숙여지네요. 진짜 숙였어요....

oren 2019-06-29 13:54   좋아요 0 | URL
어떤 작품이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완성시킨 걸작들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두고두고 변치 않는 듯합니다.^^ 기번이 기울였던 엄청난 노력들에 비하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노고쯤이야 너무나 조촐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볼 때마다 기번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Angela 2019-06-29 0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쾌한 정리와 설명까지~대단하십니다. 몸젠의 로마사는 금방 해치우시겠어요~^^

oren 2019-06-29 14:06   좋아요 0 | URL
몸젠의 로마사는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아우구스투스 시대까지‘ 다룬 역사책이어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와는 시대적으로 전혀 겹치지 않아서 언젠가는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입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도 조만간 읽어볼 작정인데, 오래 전부터 숱한 인물들이 리비우스를 두고두고 칭송한 걸 보더라도(플루타르코스, 몽테뉴, 기번, 마키아벨리 등등) 그를 오래도록 외면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Nussbaum 2019-06-29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 님 ! 일단 엄청난 인내의 시간에 박수를 드립니다. 길고 긴 텍스트와 함께한 시간과 마음의 공간은 많은 것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조만간 저도 뭔가를 정리하려고 하는데 약간의 두려움이 앞서네요 ^^

oren 2019-06-29 14:15   좋아요 1 | URL
Nussbaum 님 반갑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생각보다는 진도가 너무 잘 나가는 책이었답니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을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지느라 상당한 시간들이 소요되긴 했지만요. 아무래도 기번의 책에는 그 흔한 지도 한 장이나 그림 하나 곁들여진 게 없으니까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읽은 작품들을 제때 정리하지 않고 그냥 넘기고 나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가 되더라고요. 아무쪼록 Nussbaum 님께서도 뭔가 정리하시고자 계획중인 일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카알벨루치 2019-06-30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작을 치열하게 읽으시고 대작같은 페이퍼를 쓰셨네욧! 와우! 오렌님 근데 서재에 묵직한 두개의 그 무엇은 스피커인거죠???

oren 2019-06-30 09:53   좋아요 1 | URL
상상력도 놀라우셔라! 저 외관만 그럴싸한 수납장 문짝을 스피커로 둔갑시키다니요!

저 두 문짝은 책장 수납장과 문짝 꼭다리일 뿐입니다요.

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저 문을 열어봤더니 온갖 잡동사니가 한가득이네요..

썬글라스, 벨트, 명함, 여행용 트렁크 자물쇠, 옛날 사진, 워크맨, 잡주머니, 경조사용 봉투, 연하장, 공학용 샤프 계산기, 필통, 수첩, 화투 2목, 알라딘 도서구입 영수증, 책 띠지 수백 개, 볼펜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잘한 것들이 들어앉아 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