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세트 - 전6권 - 개정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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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이 틀리지 않았소? 사슴을 말이라 하니 말이오."

 - 사마천, 『사기 본기』, <진시황 본기> 중에서

 

 * * *

 

 - 사마천(BC 145∼86)

 

사마천이 지은 『사기』는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하다. 동서양의 온갖 역사를 기록한 방대한 책들 가운데 『사기』만큼 풍부하고도 뛰어난 기록을 찾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한무제 때 태사령이라는 직책으로 근무했던 공무원이었다. 태사령의 직무는 공식 문서를 보관하고 왕의 언행을 기록하면서 천상과 지상의 조짐과 징조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기록하는 게 주된 임무였다. 그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훌륭한 역사가로 탈바꿈하여 '제왕학' 분야에 크게 이름을 남겼다는 점에서는 마키아벨리를 닮았고, 역사가이면서도 하늘의 뜻을 살폈다는 점에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를 닮은 듯한 인상을 준다. 플루타르코스도 무려 30년 동안이나 델포이 신전을 지키는 신관으로 지내면서 아폴론의 신탁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사기』라는 방대한 역사책을 남기게 된 까닭은 몹시 흥미롭다. 우선, 진시황의 분서갱유(BC 213∼212)가 한 원인이 되었다. BC 221년에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중앙집권적인 통치 방식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던 제자백가의 저서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460여 명의 학자들을 생매장했다. 다행스럽게도(?) 진나라는 그런 비극이 있고 나서 불과 7년도 지나지 않아 멸망(BC 206년)하고 만다. 진나라 말기에 진승과 오광이 난을 일으키고, 뒤이어 항우와 유방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치면서 진나라는 멸망하고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차지한다. 새롭게 출범한 한나라가 차츰 안정되자 분서갱유 사태로 인멸된 책자를 체계적으로 되살리는 복원 작업이 진행되면서, 태사령에게 완벽하고 체계적인 역사책을 집필하라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과거의 역사와 문헌들을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복원하고 기록하는 일은 사마천보다 앞서 태사령 직책을 맡았던 부친 사마담에게 주어졌다. 그가 생전에 미완성인 채로 남겨놓은 역사 기록 작업은 사마천에게 유업으로 남겨졌다. 사마담이 BC 110년에 사망하고, 사마천에 의해 마침내 BC 97년에 『사기』가 완성되었다.

 

사기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2,100년 전에 쓰여진 역사책이며, 궁형을 당한 사마천이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이룩한 거대한 성과다. 당시만 하더라도 책은 종이에 쓰여진 게 아니라 죽간(가로3cm, 세로 30cm 정도의 대나무쪽)에 쓰여졌고, 소가죽 끈으로 일일이 엮어 매는 형태였는데, 전체 52만 6,500자에 이르는 분량이 얼마만큼 많은 대나무쪽에 쓰여졌을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득하다.

 

『사기』는 전체 130장으로 이루어진 웅편거작이다. 황제들의 역사를 기록한 『사기 본기』는 12장이다. 제후들의 역사를 기록한 『사기 세가』는 30장이다. 황제와 제후들을 보좌했던 영웅적인 인물들을 다룬 『사기 열전』은 70장이다. 각 시대의 연표를 기록한 『사기 표』가 10장이고, 제도와 문화를 다룬 『사기 서』가 8장이다. 인물 전기로만 따진다면 모두 112장인 셈인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단지 50명의 영웅들을 다루는 데 비해『사기』가 얼마만큼 더 풍부하고도 방대한 인물들을 다룬 저술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사기 본기』, 『사기 세가』, 『사기 열전』은 '인물 중심'의 역사 기록이다. (네 권을 합하면 3,314쪽)

 

사기가 다루는 역사의 범위는 무려 2,600년에 이른다. 사마천이 이미 2,100년 전의 인물이니만큼 그가 기록한 역사가 얼마나 까마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아주 먼 옛날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다스리던 시절 만큼이나 아득한 '신화의 세계'까지도 역사로 다루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 『사기 본기』의 초반부인 <오제 본기>, <하 본기>, <은 본기>, <주 본기>는 신화와 전설과 역사가 혼재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은 본기>에 실린 사마천의 기록들은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덕분에 구체적으로 실증되었으며, 『사기』의 기록이 얼마만큼 사실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쓰여졌는지를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기』는 그 규모만으로도 엄청나게 놀랍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2,1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읽어도 여전히 흥미롭다는 점이다. 사마천이 그만큼 뛰어난 문장가였고, 그의 역사관이 그만큼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양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만큼이나 부지런했다. 그는 고문서의 기록이나 풍문 또는 전설로만 존재했던 희미한 과거를 찾아서 중국 전역의 숱한 도시들과 고문서 보관소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또한 자신이 살던 시대와 가까운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한나라 왕실의 도서관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과거의 역사를 최대한으로 꼼꼼하고 정확하게 기록하기 위해 애썼던 그의 노력은 『사기』의 전편에 고루 스며들어 있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에 '묘비명 수집가'로 맹활약했던 포조 브라치올리니를 떠올리게 만든다.(그는 1,000년 이상이나 먼지 속에 묻혀 있던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을 발굴해냈다.) 그가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낸 금석문의 글들이 『사기』의 곳곳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했던가를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 하나가 있다. 20세기 초에 일부 중국 학자들이 사마천의 <은 본기>에 기록된 여러 왕들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논쟁이 벌어진 이후 고고학적 발굴팀이 사마천이 옳았음을 입증한 것이다. 사마천이 자신이 살았던 시대보다 1,000년이나 앞선 통치자들에 대하여 그토록 정확하게 기술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사기』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기록뿐만 아니라 위대한 역사가인 동시에 탁월한 문장가였던 사마천의 혜안이 담긴 책으로도 유명하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기 이전부터 육경六經을 비롯한 제자백가의 책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10살 때 아버지를 따라 수도인 장안에 와서 고문을 배웠기 때문이다. 20세 때부터 황제를 따라 순행하면서 중국 전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고적을 탐방하고 자료를 수집한 경험이 『사기』 편찬의 귀중한 바탕이 되었다. 태사령으로 일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3년이 지나자 사마천도 태사령이 되어 무제를 시종하는 한편, 부친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국가의 장서가 있는 석실금궤를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면서 4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기원전 104년에 정식으로 사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집필에 열중한지 5년이 지났을 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흉노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어떤 장군을 옹호하다가 황제로부터 극도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1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끝내 거세형에 처해졌다. 황제가 신하들의 불충에 대해서는 몹시도 포악하게 대응하는 폭군임을 뻔히 알면서도 큰 잘못이 없는 장군을 위해 충언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옳은 일이라면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직언을 서슴치 않는 사마천의 강직하고도 대담한 성격이 엿보이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고 예상했지만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업이었던 『사기』 편찬의 대업을 위해 환관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사마천의 『사기』가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흥미로운 이유는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치 않는 인간 심리에 대한 탁월한 통찰 때문이다. 사마천이 다룬 역사는 크게 나눠서 온갖 군웅들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에 의해 중국이 최초로 통일되는 시대,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세워지는 시기, 한나라의 건국부터 한무제의 통치기까지다. 이 시기에 활약했던 인물들이 얼마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고, 그들의 삶이 얼마만큼 놀라웠던지는 『사기』로부터 비롯된 고사성어가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기 본기』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는 <진시황 본기>에 등장하는 분서갱유(焚書坑儒)와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빼놓을 수 없다. <항우 본기>에 나오는 사면초가(四面楚歌)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한 대목을 떠올릴 만큼 강렬하다. <오제본기>에 나오는 고복격양(鼓腹擊壤)은 백성들이 태평세월을 누리는 모습을 묘사한 사자성어다.

 

『사기 세가』에서 비롯된 고사성어 중에는 <월왕 구천 세가>에 나오는 와신상담(臥薪嘗膽)과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유명하다. <초 세가>에 나오는 득국오난(得國五難)은 '나라를 통치하는 데 따르는 다섯가지 어려움'을 일컫는 말이다.  <공자 세가>에 나오는 상가지구(喪家之狗)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고국을 떠나 이웃 나라들을 떠돌던 무렵의 공자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을 빗댄 말이다. 같은 편에 나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은 책이 닳고 닳을 때까지 여러 번 읽었던 공자의 독서습관에서 비롯된 말이다. <진 세가>에 나오는 할고봉군(割股奉君)은 충신 개자추가 허벅지 살을 베어 임금을 섬긴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한식()은 개자추를 기리기 위한 행사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진나라 문공은 옛날에 현명한 군주로서 나라 밖으로 망명하여 19년이나 지내면서 지극히 곤궁하였으니 군주의 자리에 오르고서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면서 오히려 개자추를 잊어버리기도 하였으니 하물며 교만한 군주이겠는가. …… 따라서 군주가 된 자가 그의 신하를 부리는 것은 정녕 쉽지 않구나!"(338쪽)

 

 - 사마천, 『사기 세가』, <진 세가> 중에서

 

고사성어의 보고는 무엇보다도 『사기 열전』이 으뜸이다. <관 · 안 열전>에 나오는 관포지교(管鮑之交), <계포 · 난포 열전>에 나오는 계포일락(季布一諾), <맹상군 열전>에 나오는 계명구도(鷄鳴狗盜), <소진 열전>에 나오는 현량자고(股), <염파 · 인상여 열전>에 나오는 교주고슬(膠柱鼓瑟),  완벽귀조(趙), <평원군 · 우경 열전>에 나오는 낭중지추(囊中之錐)와 모수자천(毛遂自薦), <회음후 열전>에 나오는 배수지진(背水之陣)과 천려일실(千慮一失),  <평진후 · 주보 열전>에 나오는 토붕와해(土崩瓦解), <유림 열전>에 나오는 곡학아세(曲學阿世)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지금껏 소개한 고사성어들은 『사기』라는 거대한 숲에 담겨 있는 무수한 이야기에서 들춰낸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일설에 따르면, 『사기』에서 유래된 사자성어만 하더라도 무려 600여 개에 이른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두툼한 책을 따로 엮을 정도이다. 『사기』에는 사자성어만큼이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역급 인물들만 하더라도 대략 200명에 이르며, 전체 등장인물은 대략 4,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는 중국과 같은 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들이 꽤나 많다. 황제급 인물로는 진시황, 항우, 유방, 여태후가 대표적이다. 제후급 인물로는 강태공, 월왕 구천, 진섭(진승), 소하, 장량, 진평 등을 꼽을 만하다. 제후들과 동급으로 볼 수 있는 성인급 인물로는 공자, 맹자, 노자, 묵자, 손자, 한비자가 자주 등장한다. <열전>에 실린 인물들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다. 굳이 고르자면 백이, 숙제, 관중, 포숙, 오자서, 소진, 장의, 사공자(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 여불위, 굴원, 이사, 회음후 한신, 편작 등을 꼽을 수 있다.

 

『사기』는 출간되자 말자 베스트 셀러가 되지는 않았다. 사마천이 생존할 당시의 황제였던 한무제와 부친인 경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당대(唐代)부터 관리 임용 과목으로 채택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당송 팔대가로부터 문장 학습의 기본서로 인정받았다. 송대의 구양수를 비롯한 숱한 문장가들이 『사기』 애호가가 되었으며, 중국 근대화의 공헌자인 양계초는 사마천을 '역사계의 조물주'라고 치켜세웠다. 위대한 문학가인 루쉰은 '역사가의 빼어난 노래요, 운율이 없는 『이소』'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동안 공을 들여 『사기』 전체를 완역한 김원중 교수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사기 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 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

 

이러한 열전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하고, 그런 갈등 자체가 인간이 사는 모습임을 강조한다. 『사기 열전』을 생명력 넘치는 산 역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본위의 역사를 읽게 만든 작가의 각고의 노력 덕분이다. 사마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져 간 인물들을 현재에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24쪽)

 

 - 사마천, 『사기 열전』, <작품 해제> 중에서

 

인류는 사마천으로부터 큰 신세를 졌다. 그가 남긴 『사기』 덕분에 '역사 서술의 훌륭한 모델'을 얻었기 때문이다.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인 24사는 모두 사마천을 모범으로 삼았고, 각 왕조는 바로 앞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는 걸 신성한 의무로 삼았다. 중국이 기원전 2세기부터 20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공식 역사서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사마천 덕분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역시 사마천으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중국과 같은 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의 독자들은 서양 사람들에 비해 『사기』를 읽는 일이 훨씬 더 쉬운 형편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때 고문(古文)과 한문(漢文)을 배운 독자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손자와 한비자, 관중과 포숙, 오왕 합려와 월왕 구천, 진시황과 여불위, 항우와 유방 등등을 한꺼번에, 그것도 위대한 역사가가 남긴 명문장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몹시 특별한 경험이다.

 

사마천은 70장으로 이루어진 『사기 열전』의 맨 마지막에 <자서전>을 한 편 끼워 넣었다. 『사기』 전체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글이기도 한데, 작품의 구성 체제뿐 아니라 자신의 집안 내력과 학문적 배경 등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아무래도 <집필 동기> 부분이다. 발분저서()라는 말이 여기서 태어났는데, 마치 그의 유언을 듣는 기분이 든다. 그 대목을 인용하며 서평을 맺는다.

 

그로부터 칠 년 뒤에 태사공은 이릉의 화를 입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한숨을 쉬고 탄식하며 말했다.

 

"이것이 내 죄인가? 이것이 내 죄인가? 몸이 망가져 쓸모없게 되었구나."

 

그는 물러나 깊이 생각한 끝에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시경』과 『서경』의 뜻이 은미하고 말이 간략한 것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펼쳐 보이려 했기 때문이다. 옛날 서백西伯(주나라 문왕)은 유리羑里에 갇혀 있으므로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左丘明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를 잘림으로써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되어 세상에 『여람呂覧(여씨춘추)』을 전했으며, 한비는 진秦나라에 가서 감옥에 갇힌 중에 『세난說難』과 『고분孤憤』 두 편을 남겼다. 『시』300편은 대체로 현인과 성인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이 맺혀 있는데 그것을 발산시킬 수 없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한 것이다."(882쪽) 

 

 - 사마천, 『사기 열전』, <태사공 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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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1 - 개정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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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사람들의 군주된 자 가운데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어질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충신을 구하여 자신을 위하도록 하고, 현명한 자를 등용하여 자기를 돕도록 하려고 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깨지는 일이 거듭 생기고, 훌륭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충신이라는 이가 충성을 다하지 않고, 현명하다는 이가 지혜롭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왕은 충신과 그렇지 않은 신하를 구분할 줄 몰라서 안으로는 정수에게 미혹되고 밖으로는 장의에게 속았으며, 굴원을 멀리하고 상관 대부와 영윤 자란을 믿었다. 그래서 군대가 꺾이고 군 여섯 개를 잃어 땅이 줄어들었으며, 진나라에서 객사하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생긴 재앙이다. 『역경』에 "우물물이 흐렸다가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구나. 이 물을 길어 갈 수는 있다.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그 복을 받는다." 라고 하였다. 왕이 현명하지 않은데 어찌 복이 있겠는가!

 

……

굴원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그러고 나서 『회사懷沙라는 부賦를 지었다. 그 문장은 이러하다.

 

……

흰 것 검다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고 하네.

봉황은 새장 속에 갇혀 있고

닭과 꿩은 하늘을 나네.

옥과 돌을 뒤섞어

하나로 헤아리니,

저들은 더러운 마음뿐이라

내 좋은 점을 알 수가 없지!

 

짐은 무겁고 실은 것 많건만

수렁에 빠져 건널 수 없구나.

아름다운 옥 있지만

곤궁하여 보여 줄 수 없네.

마을의 개들 떼지어 짖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기 때문이지.

준걸 비방하고 호걸 의심하는 것은

본래 못난 사람들의 태도지.

재능과 덕성 가슴속에 흐르건만

내 남다른 재능 아무도 몰라주네.

재능과 덕망 쌓였어도

내 가진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네.

인의를 더 닦고

삼가고 돈후하여 넉넉해졌건만

순 임금 같은 분 만날 수 없으니

누가 내 참모습 알아주랴!

예로부터 [어진 신하와 현명한 군주는 때를] 같이하지 못하니

어찌 그 까닭을 알리?

탕 임금과 우 임금 아득히 먼 분이라

막막하여 사모할 수도 없네.

한을 참고 분노를 삭이고

마음을 억눌러 스스로 힘써 본다.

슬픔 만났으나 절개 꺾지 않으리니

내 뜻 뒷날의 본보기가 되기 바라네.

……

 

그러고는 돌을 안은 채 마침내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이 이미 죽은 뒤 초나라에는 송옥宋玉, 당륵唐勒, 경차景差 같은 무리가 모두 글짓기를 좋아하였으며 부를 잘 지어 세상에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모두 굴원의 모습을 본뜰 뿐 끝내 감히 직접 간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뒤 초나라는 날로 쇠약해지더니 수십 년 뒤에는 결국 진나라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굴원이 멱라강에 몸을 던진 지 백여 년이 지나 한나라에 가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장사왕의 태부가 되어 상수를 지나다가 글을 지어 강물에 던져 굴원을 애도하였다.

 

가생賈生의 이름은 의誼이며 낙양 사람이다. 그는 열여덟 살 때 시를 외고 글을 잘 지어 군에서 소문이 나 있었다. …… 그래서 문제는 가생을 불러 박사博士로 삼았다. 그때 가생은 겨우 스무 살 남짓하여 (박사들 가운데) 가장 젊었다. …… 천자는 가생을 공경公卿의 자리에 앉히려는 문제를 신하들과 상의하였다. 그러나 강후絳侯, 관영灌嬰, 동양후東陽侯, 풍경馮敬 등의 무리는 모두 가생을 싫어하여 이렇게 헐뜯었다.

 

"낙양 출신의 선비는 나이가 어리고 학문이 미숙한데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모든 일을 어지럽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황제도 나중에는 그를 멀리하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마침내 가생을 장사왕의 태부로 삼았다.

 

가생은 인사하고 길을 나섰는데, 장사라는 곳은 지형이 낮고 습기가 많다는 말을 듣고 자기 수명이 길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더구나 좌천되어 떠나가는 중이므로 마음이 우울하였다. 가생은 상수를 건널 때 부를 지어 굴원을 조문하였는데 그 문장은 이러하다.

 

 

공손히 왕명을 받들어

장사의 관리가 되었네.

얼핏 굴원을 풍문에 들으니

스스로 멱라수에 몸을 던졌다 하네.

상수 흐르는 물에 부쳐

선생께 삼가 조의를 표하네.

법도 없는 세상을 만나

그 몸을 던졌구나!

아, 슬프다.

좋지 못한 때를 만남이여!

봉황이 엎드려 숨고

올뺴미가 날개를 치누나!

어리석은 사람이 존귀케 되고

헐뜯고 아첨하는 자가 뜻을 얻었구나!

현인과 성인은 도리어 끌어내려지고

바른 사람은 거꾸로 세워졌네.

세상은 백이를 탐욕스럽다 하고

도척을 청렴하다 하며,

막야의 칼날을 무디다 하고

납으로 만든 칼을 날카롭다 하네.

아, 말문이 막히는도다.

선생이 억울하게 재앙을 입음이여!

주나라 솥을 버리고 큰 표주박을 보배로 간직하고

지친 소에게 수레를 끌게 하고 절름발이 나귀를 곁말로 쓰니,

준마는 두 귀를 늘어뜨린 채 소금 수레를 끄는구나!

장보章甫를 신발로 삼으니

오래갈 수 없도다.

아, 선생이여!

홀로 이런 재앙을 겪으셨도다!

 

다시 이어지는 노래는 이렇다.

 

 

그만두자꾸나!

나라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홀로 답답한 마음 누구에게 말하랴!

봉황새는 훨훨 날아 높이 갔네

스스로 날갯짓하며 멀리 가 버렸네.

깊은 연못 속 신룡神龍은

깊숙이 잠겨 스스로 제 몸을 소중히 한다네.

밝은 빛 마다하고 숨어 지낼 뿐

어찌 개미, 거머리, 지렁이와 놀랴?

성인의 신덕神德을 소중히 여기고

탁한 세상 멀리하여 스스로 숨네.

준마도 고삐를 매어 지게 한다면

어찌 개나 양과 다르다 하랴!

어지러운 세상에서 머뭇거리다 재앙 받은 것.

또한 선생의 허물이로다!

천하를 두루 둘러보고 어진 임금 돕지 않고

어찌 이 나라만 고집했는가?

봉황새는 천 길 높이 하늘 위로 날다가

덕이 밝게 빛나는 것 보면 내려오지만,

작은 덕에서 험난한 징조를 보면

날개를 쳐 멀리 날아간다.

저 작은 못이나 도랑이

어찌 배를 삼킬 만한 물고기를 받아들일 수 있으랴?

강과 호수를 가로지르는 큰 물고기도

정녕 땅강아지와 개미에게 제압당하는구나!

 

 - 사마천, 『사기열전』, <굴원 · 가생 열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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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축국서(諫逐國書)
    from Value Investing 2019-08-25 16:59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간축객서[諫逐客書]를 빗대어 '간축국서'라는 제목을 달아봤다. 온통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법무장관 후보자인 조국 전 수석을 이제는 과감하게 물리치고 보다 널리 새로운 인재를 구하라는 철없이 순진한(?) 바램으로 써 본 글이다.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중국 진시황 시대에 활약했던 승상 이사가 쓴 명문장이다. 왕에게 올리는 건의를 담은 서간문 형식의 상서上書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역사는
 
 
 
문명의 충돌 -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는 무엇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 김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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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제들이 한번에 하나씩 처리될 것이고, 다른 문제들은 지속되어서 국제 정치 및 경제 관계에 머무르며 조금씩 독을 퍼뜨리는 갈등들을 만들 것이다. 어떤 협정들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을 것이다. …… 지역주의, 열강 사이의 협력, 지속적인 낮은 수준의 갈등들이 모두 약간씩 존재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혼란이 예고된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혼란 속에서 한 나라가 나타나서 세계 선두의 경제 강대국이 될 것이다. 다시 미국이? 일본? 독일? 유럽 공동체 전체? 오스트레일리아나 브라질이나 중국 같은 다크호스가? 누가 알겠는가? 나는 모른다.

 - 찰스 P. 킨들버거, 『경제 강대국 흥망사』(1996) 중에서

 

 * * *

 

세계는 날이 갈수록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격동한다. 최근 1년 동안만 하더라도 기억할 만한 변화들이 많았다. 북미회담이 대표적이다. 한국전쟁이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으로 미봉된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한반도의 대치 국면에서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회담장에서 마주한 건 지난 65년 만에 처음이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실권자와 함께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모습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국과 중국은 1979년 국교 수교 이래 처음으로 '강 대 강'으로 첨예한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또한 1965년 한일 협정 이래 54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과 심각한 무역 전쟁을 개시했다. 시야를 조금만 더 넓히면 홍콩의 격렬한 반중 시위가 현재 진행형이고, 조금 더 남쪽으로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여타 이해 당사국 간의 갈등이 활화산처럼 부글거리고 있다.

 

시야를 더욱더 넓혀 전지구적으로 돌리면 어떤가. 2011년에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언제 마무리 될 지 기약이 없고, 남수단 내전은 국제 사회(미국, 중국, 아프리카 연합)의 중재로 휴전협정을 체결했음에도 여전히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 중이며 한빛부대는 바로 엊그제 그곳으로 파병됐다. 멕시코의 불법 이민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은 여전히 안타까운 희생자만 추가할 뿐 해결의 기미는 요원하다. 여기서 시간을 좀 더 거꾸로 돌려 구소련 연방이 해체될 무렵인 1989년까지로 돌려 보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그토록 강고하게 유지된 냉전 체제가 급작스럽게 붕괴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이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내세우며 서구식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체제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했음에도 국가적, 종교적, 인종적 분쟁과 갈등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1990년에는 역사상 최초로 미국 중심의 다국적 연합군이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를 상대로 대규모 지상전을 벌였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의 철수 이후에도 오랫동안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슬람 무장 세력인 탈레반의 지도자 빈 라덴은 세계무역센터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게 침공함으로써 일순간 전세계 유일 강국인 미국 사람들을 경악에 빠트렸다. 중동의 화약고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네 차례의 중동 전쟁 이후로도 끊임없는 분쟁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대규모 인종 청소를 낳았던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사태도 오랜 기간 동안 국제 뉴스를 장식하였다. 이밖에도 체첸 분쟁,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등이 잊을 만하면 또다시 분쟁으로 얼룩졌다.

 

도대체 이토록 빈번한 지역간 분쟁과 갈등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발생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새로운 시각틀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게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다. 이 유명한 책은 1996년에 출간되자 마자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탈냉전 이후로 발생하는 전세계적인 분쟁과 갈등은 '문명 사이의 충돌'로 바라볼 때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분쟁의 해결책 또한 그러한 시각틀로 바라볼 때 올바르게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실로 방대한 시공간적 범위에 걸쳐 '문명의 본질'을 탐구하고, 전세계 여러 문명들의 부침들을 살핀다.

 

그가 분류하는 문명의 구분은 종교가 핵심적인 바탕을 이룬다. 종교 말고도 문명을 구분짓는 요소들은 수없이 많다. 마을, 지역, 전통, 인종, 언어, 문화 등등이 문명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문명은 뚜렷한 경계선이 없으며 딱 부러지게 시발점과 종착점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문명은 진화하고 적응하며, 인간들의 결속체 중에서도 유독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새뮤얼 헌팅턴의 말대로 그것은 극단적인 '장기 지속'의 양상을 지닌다.  

 

문명의 독특하고 특별한 본질은 바로 그 장구한 역사적 지속성이며 사실상 가장 오래 된 이야기는 문명이다. 제국은 일어섰다 무너지고 정권도 왔다가 사라지지만 문명은 유지되며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념적 격변의 와중에서도 살아남는다.(50쪽)

 

 과거의 주요 문명과 지금 현재의 주요 문명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되고 있다. 다만 역사적으로 존재한 바 있는 문명의 총수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이견이 분분하다. 역사상 뚜렷한 흔적을 남겼으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명은 대략 일곱 개(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크레타, 그리스-로마, 비잔틴, 중미, 안데스)로 요약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가장 뚜렷하게 현존하는 주요 문명은 다섯 개(중국, 일본, 인도, 이슬람, 서구)다. 여기에 새뮤얼 헌팅턴은 세 개의 문명을 추가해서 자신의 분석틀로 삼는다. 비잔틴 문명이나 서구 크리스트교 문명과는 별개로 진화한 러시아 정교 문명, 라틴 아메리카, 아프라카 문명이 그들이다.

 

이들 문명들은 오랜 시간 동안에 걸쳐 서로 조우하고, 접촉하고, 정복하고, 복속시키고, 사상과 기술을 전파하고, 교역하였다. 유럽의 크리스트교권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한 이후인 8세기와 9세기 무렵에 독자적 문명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당 · 송 · 명 시대에, 이슬람은 8세기에서 12세기까지, 비잔틴은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유럽을 훨씬 능가하는 경제력, 영토,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술적, 학술적, 과학적 성취도 면에서도 유럽을 훨씬 앞서 있었다. 다른 문명에 비해 뒤쳐져 있던 서유럽 문명이 부상한 때는 15세기부터였다.

 

문명과 문명 사이의 제한적, 간헐적 접촉은 다른 모든 문명들에 대한 서구의 지속적, 일방적, 압도적 영향력 행사로 성격이 바뀌었다. 15세기 말이 되자 무어인들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마침내 축출당하고 포르투갈의 아시아 정복과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250년 동안 서반구 전역과 아시아 주요 지역은 유럽의 지배를 받거나 그 주도권 아래 들어간다. 18세기에 들어서면 유럽의 직접적 통치는 처음에는 미국에서, 그 다음에는 아이티에서 축소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이 유럽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에는 재부상한 서구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의 전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였으며 아시아에서도 인도를 비롯한 광범위한 지역을 지배권 아래 끌어들였다. 20세기 초반으로 접어들면 터키를 제외한 중동의 거의 모든 지역이 서구의 직간접벅인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 유럽인 또는 과거 유럽 식민지 이주민은 1800년에 이르러 세계 육지의 35퍼센트를 점유하였다. 1878년에는 그 비율이 67퍼센트로 높아졌고 1914년에는 다시 84퍼센트로 껑충 뛰었다. 1920년에 가서도 오스만 제국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의하여 분할되면서 그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60∼61쪽)

 

1500년 이후 400년 동안 문명과 문명의 관계는 '서구 문명에 대한 다른 문명들의 종속'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독특하고 극적인 사태를 낳은 원인들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것은 바로 기술이었다. 대양 항해술의 발명과 화약과 대포로 무장한 첨단 군사력 앞에 다른 문명들은 한마디로 속수무책이었다. 서구의 팽창은 산업 혁명으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서구는 사상, 가치관 , 종교의 우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직화된 폭력의 우위'로 세계를 정복하였다.

 

서구 문명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유럽 민족들은 자기네들끼리도 싸웠다. 유럽의 국가들 사이에서 평화는 일상이 아니라 예외였다. 서구 문명 내부의 정치 역학을 지배한 것은 왕조 전쟁 아니면 종교 전쟁이었다. 그 과정에서 서구인은 국민 국가를 만들었으며 프랑스 혁명 이후로 분쟁의 주역은 군주가 아니라 국가로 바뀌었다. 어느 역사가의 말대로 "왕들의 전쟁은 끝났고 민족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1차 대전까지 지속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국민 국가들 사이의 분쟁은 처음에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자유 민주주의 사이의 대결로, 그 뒤에는 공산주의와 자유 민주주의 사이의 이념 대결로 바뀌었다. 냉전 시대에 이 이념들은 두 초강대국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의 정체성를 이념에서 찾았고 둘 다 유럽적 의미의 전통적 민족 국가가 아니었다. 마르크시즘이 처음에 러시아에, 곧 이어 중국과 베트남에서 권력을 잡으면서 유럽식 국제 체제는 탈유럽적 다극 문명 체제로 이행하였다. 마르크시즘은 유럽 문명의산물이었음에도 유럽에서는 뿌리를 내리지도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다.(63쪽)

 

20세기에 들어와 모든 문명들 사이에서 다각적인 교섭이 강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역사가들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서구의 팽창'이 끝나고 '서구에 대한 반항'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비서구 사회들은 서구가 만든 역사에서 단순한 대상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의 역사는 물론 서구의 역사도 이들이 조금씩 움직일 정도에 이르렀다. 서구가 주도하던 단계를 벗어나면서 문명의 쇠락을 좌우하던 이데올로기의 자리를 종교 또는 문화에 바탕을 둔 정체성이 물려받게 되었다. 서구가 잉태한 정치 이념이 빚어낸 문명 내적 충돌은 문화와 종교가 주축이 된 문명간 충돌로 대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새뮤얼 헌팅턴이 제시하는 시각틀의 요지다.

 

이 책의 특장점 가운데 하나는 현존하는 여러 문명들의 장기간 동안의 변화를 구체적인 지도나 도표를 통해 명확하게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런 대목들을 보노라면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라는 책을 통해 장기간 동안의 인류 문명의 거대한 변화를 어느 누구보다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떠올리게 만든다.

 

20세기의 100년 동안에 서구의 쇠퇴를 보여주는 극적인 통계들은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문명들이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면적'의 백분율이다. 서구문명은 1920년에 48.5%로 정점을 보인 이후 1993년 현재 24.2%까지 감소했다. 극적으로 부상한 문명은 이슬람이다. 1920년에 3.5%에서 1993년에 21.1%로 치솟았다. 1993년 기준으로 세 번째 문명은 라틴 아메리카(14.9%)였고, 동방 정교 문명이 네 번째(13.2%)를 차지했다.

 

문명들이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세계 인구의 상대적 비중 또한 극적으로 변화하였다. 서구는 1920년에 48.1%를 차지하다가 2025년에는 10.1%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중화 문명은 1920년에 17.3%였다가 2025년에는 21.0%로 선두를 차지한다. 이슬람은 더욱 극적이다. 1920년에는 불과 2.4%에 불과했으나 2025년에는 19.2%까지 치솟아 중화문명을 턱밑까지 추격한다. 네번째 문명은 힌두 문명으로 2025년에는 세계 인구의 16.9%까지 차지할 전망이다.

 

주요 언어의 사용 인구(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일반인들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1992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압도적인 1위는 15.2%를 치지한 북경어다. 2위는 이 수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6%의 영어다. 세 번째는 6.4%를 차지하는 힌두어, 네 번째가 6.1%의 스페인어, 다섯 번째가 4.9%의 러시아어다.

 

문명별 세계 총생산 비중으로는 서구 문명의 비중이 아직까지 탄탄하다고 볼 수 있으나 통계치가 1992년까지에 머무른 탓에 21세기의 빠른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도 커 보인다. 책에 실린 도표에 따르면, 서구문명의 세계 총생산 비중은 1928년 84.2%에 이르렀다가 1992년에는 48.9%로 줄어들었다. 1992년 기준으로 두 번째 비중을 차지하는 문명은 이슬람(11.0%)이다. 세 번째는 중화 문명(10.0%)이고, 네 번째는 라틴 아메리카 문명(8.3%), 다섯 번째는 일본 문명(8.0%)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2020년의 세계 총생산 전망이다. 이 책이 출간될 무렵(1996년)만 하더라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기세가 워낙 대단했던 탓일까, 전망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제법 커 보인다.

 

1992년 현재 세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는 미국이고 10개 상위국 가운데 서구 국가가 5개국, 나머지 5개국은 다른 문명들의 주도 국가인 중국, 일본, 인도, 러시아, 브라질이다. 신빙성 높은 전망에 따르면 2020년에 가서 중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력을 자랑하게 된다. 5개 상위국은 5개 문명의 몫으로 골고루 돌아가고, 10개 상위국은 중화 문명권 3개국(중국, 한국, 대만), 서구 면명권 3개국(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이 차지한다. 10대 경제 강국 중에 아시아권이 7개국 포함되고 그 중에서 6개국이 동아시아권이다. 1960년 동아시아는 세계 총생산의 4퍼센트를 차지하였고 북미는 37퍼센트를 차지하였다. 그러던 것이 1995년에는 똑같이 24퍼센트가 되었다. 한 보고서는 2013년경에 가서는 서구는 세계 총생산의 30퍼센트를, 아시아는 40퍼센트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111쪽)

 

(2019. 7.7 연합뉴스 보도)

 

지난해 경제 규모 1위는 미국으로 명목 GDP가 20조4천941억달러에 달했다. 이어 중국(13조6천82억달러), 일본(4조9천709억달러), 독일(3조9천968억달러), 영국(2조8천252억달러) 순이었다. 프랑스(2조7천775억달러), 인도(2조7천263억달러), 이탈리아(2조739억달러), 브라질(1조8천686억달러), 캐나다(1조7천93억달러)가 6∼10위에 올랐다. 러시아(1조6천576억달러)가 11위로 한국보다 한 계단 앞섰다.  

 

새뮤얼 헌팅턴의 연구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변화하는 문명의 균형'을 인구 변화와 경제력의 변화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서구 문명에 도전하거나 뛰어넘을려는 문명의 뚜렷한 두 주자는 아시아와 이슬람이다. 이 책이 쓰여질 무렵에는 이들 두 문명의 발전이 지금보다 더욱 눈부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슬람과 아시아 문명의 극적인 발전은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자부심과 서구적 가치와 제도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학자인 저자 입장에서는 이들 두 문명의 거센 도전이 부담스러웠을 게 틀림없다. 다음의 문장 속에는 서구인의 이슬람과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다.

 

아시아의 자기 주장은 경제 성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슬람의 자기 주장은 상당 부분 사회적 동원력과 인구 증가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도전은 지금도 그렇지만 21세기에 가서도 세계 정치에 심각한 불안 요소로서 파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파장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중국과 여타 아시아 국가의 경제 발전은 이들의 정부가 대외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와 자원을 제공한다. 이슬람 국가들의 인구 증가, 특히 15세에서 25세 사이 연령층의 폭발적 증가는 원리주의, 테러리즘, 폭동, 노동력 수출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한다. 경제적 발전은 아시아 정부를 강화시키고 있지만 인구 증가는 이슬람 정부와 비이슬람 사회에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133∼134쪽)

 

20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진행 중인 수많은 지역적 분쟁들은 구소련 연방의 해체에 따른 탈냉전 시대의 도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념과 강대국을 중심으로 맺어진 제휴 관계가 극적으로 사라지고 문화와 문명을 축으로 제휴 관계가 재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경계선이 문화적 경계선 곧 민족적, 종교적, 문명적 경계선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급속도로 바뀌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NATO와 EU 가입 문제를 결정했다. 구 유고 연방이었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는 이념에서 탈피하여 민족과 종교에 따라 각각 분리되었다. 냉전 시대에 소련에 맞서 부자연스런 동맹을 맺었던 그리스와 터키는 탈냉전 시대에 접어들자 말자 NATO와 EU에서의 역할을 둘러싸고 사사건건 충돌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점차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본토 의존도가 커지는 추세로 바뀌었다. 냉전 질서가 무너지면서 세계 각국은 새로운 대립과 제휴를 진전시키거나 해묵은 대립과 제휴를 소생시키는 쪽으로 재편되는 중이다.

 

냉전의 종식은 분쟁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문화에 뿌리를 둔 새로운 정체성, 가장 광범위한 수준에서는 문명을 형성하게 될 상이한 문화에서 유래한 집단들 사이의 새로운 갈등 양상을 낳았다. 아울러 공통의 문화는 그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협조를 낳는다. 이것은 특히 경제 부문에서 국가들 사이의 지역 연합이 출현하는 현상에서 확인된다.(171쪽)

 

탈냉전 이후의 문명과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특히 중국의 역할이 급속도로 바뀌는 점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눈여겨 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중국 본토를 중국 문명의 핵심국으로 이해하고 다른 모든 중국인 공동체가 이 핵심국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인의 정체성은 인종적 용어로 정의된다. 한 중국 학자의 말대로 중국인은 같은 '인종, 피, 문화'에 속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대중국'은 그러므로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급속히 성장하는 문화적, 경제적 현실이며 이제는 정치적 현실의 성격마저 띠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아 1990년대에 극적으로 전개된 동아시아 경제 발전을 주도한 것은 본토, 호랑이들(네 마리 중에서 한국을 제외한 세 마리가 중국계), 동남아시아의 중국인이었다. 동아시아의 경제는 점차 중국 중심, 중국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의 중국인은 1990년대 본토에서 이루어진 눈부신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자본을 실질적으로 제공하였던 층이다. 그 밖에도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이 지역 경제를 틀어쥐고 있다. ……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동아시아 경제는 기본적으로 중국 경제이다. 227∼228쪽)

 

이념 중심에서 문명 중심으로 세계 정치 구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문명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충돌의 원인은 무역 갈등, 강한 라이벌 의식, 경쟁적 공존, 군비 경쟁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세계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핵심국 분쟁'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주요국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들 사이에 분쟁을 낳는 핵심적 쟁점들은 국제 정치의 고전적 주제들이다. UN, IMF 등 국제 기구의 운영을 둘러싼 문제, 핵 확산 금지, 무기 규제, 무역과 투자 문제, 인권 문제, 가치관과 문화의 갈등 등이 그런 주제들이다.

 

문명의 핵심국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적 군사 충돌은 상호 자제한다. 그러나 문명들의 세력 균형에 변화가 올 때, 핵심국들의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이른바 그 유명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 일로를 걸어 온 최근 1년 사이에 수많은 언론에서 숱하게 화두로 삼은 용어가 오래 전에 쓰인 헌팅턴의 책에 등장하는 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이 인용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용어가 바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기 때문이다.('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대중들에게 널리 확산된 건 미국의 정치학자인 그레이엄 앨리슨이 쓴 『예정된 전쟁』, 원제 :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 (2017년) 출간되면서 부터인 듯싶다.)

 

투키디데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 문명 내부에서 아테네의 힘이 강성해졌을 때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구 문명의 역사는 부상하는 강대국과 쇠락하는 강대국 사이에 벌어진 '헤게모니 전쟁의 역사다. 상이한 문명에 속해 있으면서 부상하는 핵심국과 쇠락하는 핵심국 사이의 분쟁 촉발 정도는 이들 문명에 속한 국가들이 새로운 강대국의 부상 앞에서 견제를 추구하느냐 편승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시아 문명에서는 편승 현상이 더 지배적으로 나타나지만, 중국의 부상은 미국, 인도, 러시아 같은 다른 문명권의 국가들로 하여금 세력 균형을 도모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서구의 역사를 볼 때 영국과 미국 사이에서는 헤게모니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팍스 브리타니카에서 팍스 아메리카나로의 이행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두 사회의 문화적 유대감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서구와 중국 사이에는 그러한 종류의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서구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군사 충돌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많다. 이슬람의 역동성은 비교적 소규모로 벌어지는 단층선 분쟁의 지속되는 원천이 되고 있으며, 중국의 부상은 핵심국 사이에 벌어지는 대규모 문명 전쟁의 잠재적 원천이 되고 있다.(279쪽)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은 소규모의 관세 전쟁에서부터 시작하여 대규모 관세 폭탄을 주고받는 단계를 지나 '화웨이 사태'로까지 확산일로를 걷다가 잠시 멈춰서 있다. 남중국해의 영유권 주장을 둘러싼 갈등, 홍콩과 대만의 지위를 둘러싼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미국의 애매한 태도, 티베트와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인권 문제 등도 미중간에 잠재된 폭발력 있는 갈등 요소들이다. 미중간의 갈등은 아직까지는 전쟁으로까지 확전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직까지는 미국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는 또다시 '투키디데스의 함정' 앞에서 두 나라가 건곤일척의 대전쟁을 벌이느냐 마느냐로 심각한 고민을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쨌든 이 책이 1996년에 출판된 사정을 고려해 보더라도 23년 후의 미중 갈등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았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문명 충돌에 관한 광범위한 주제들'은 오늘날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사안들이 너무나 많아서 뒤늦게 이 책을 붙잡고 읽는 독자에게도 놀라움을 안겨 준다. 핵무기 개발을 위해 온갖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 온 이란과 북한의 사례는 23년 전에 이 책을 쓴 저자가  2019년에 최신 개정판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미 기술한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히 손댈 만한 곳이 거의 없을 만큼 정확하고 날카롭다. 다만 '북한의 핵 시설물에 대한 선제 공격의 필요성'은 이 책에도 자세히 다루고 있지만 그 사안의 중요성이 지금보다는 훨씬 가볍게 다뤄졌음이 분명하다. 1993년부터 본격적으 문제가 된 북한의 핵무기는 한국과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바뀔 때마다 ('전략적 인내' 등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해 오면서) 문제를 점점 더 키워오다가 어느새 '핵동결 내지는 핵군축의 단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더욱 복잡하고 중차대한 문제로 변화하고 있다.

 

수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미해결인 채 남아 있고, 어떤 문제들은 처음 등장할 때만 하더라도 심각한 위기로 대두되다가(쿠바 위기 등)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내 사그라지기도 한다. 또한 과거부터 오랫동안 잠재된 갈등들이 기나긴 잠복 기간을 거쳐 일순간 거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도 더러 나타난다.(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홍콩의 격렬힌 반중 시위는 100년 동안의 서구화를 겪은 사회가 아무런 갈등도 없이 중국 본토 문명으로 재흡수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새뮤얼 헌팅턴이 제시한 '문명끼리의 충돌 관점'은 고작(?) 수십 년 동안만 존재했던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얼마만큼 허약한 기반 위에 존재했던가를 새삼 일깨우는 한편, 1,000년 혹은 2,000년 이상의 장구한 세월 동안에 걸쳐 단단하게 형성된 문명이라는 범주가 얼마만큼 강렬한 힘을 비축한 채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힘을 발휘하는가를 새삼 일깨운다. 또한 수많은 역사가들이 예견했듯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문명들은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에 축적되는 인구 증가 및 인구 구성의 변화, 경제력의 차이, 군사력의 변화 등에 따라 갈등과 충돌을 겪으면서 차츰 쇠락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 간혹 눈에 띄는 저자의 '서구 문명 우월 주의적 편견'은 생각보다 그리 심각한 게 아니다. 저자 스스로 앞장서서 서구 문명의 보편성을 적극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슐레진저는 "유럽은 개인적 자유, 정치적 민주주의 , 법치주의, 인권, 문화적 자유라는 관념의 원천, 그것도 아주 독특한 원천이다. …… 이것들은 유럽의 사상이지, 차용된 것이라면 모를까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의 사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것들이 서구 문명을 독특하게 만들어 준다. 서구 문명이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이어서가 아니라 남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 지도자들의 책무는 다른 문명들을 서구의 이상에 맞추어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다. 쇠락하는 서구로서는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서구 지도자들은 서구 문명의 고유한 특성을 견지하고 수호하고 쇄신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미국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러한 책무를 앞장서서 떠맡아야 한다.(427∼428쪽)

 

오늘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미국 우선 주의'야말로 전세계가 오랫동안 '서구 제국주의'로 일컬었던 '서구 문명 우월주의'보다 훨씬 더 해로운 이념일지 모른다. 결국 모든 문명은 출현, 상승, 쇠락의 과정을 밟게 마련이다. 이제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문명도 차츰 쇠락하고 나면 멀지 않아서 아시아 문명, 그 가운데서도 중국 문명이 지구 최강의 경제력과 인구와 여러 친족국들(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을 대동한 채 새로운 질서 재편 과정을 밟아나갈 가능성이 크다. 수천 년 동안 유교 문명권에 속해 있으면서 중국과 접촉했던 우리나라는 과연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의 핵심 우방으로 여전히 남을 것인가, 아니면 중국 문명으로 재차 복귀할 것인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우리나라가 언젠가는 그런 어려운 선택지 앞에서 의사결정을 강요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오랫동안 서구식 합리주의와 민주주의에 적응해 온 다른 문명들은 아직까지도 민주적인 선거 절차와 지도자 선출 과정조차 경험하지 못한 권위주의적인 중국 문명과 어떤 갈등과 충돌을 빚을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의 책을 읽노라면 이런 새로운 걱정들이 떠오른다. 나 같은 평범한 독자들이 이런 문제들까지 고민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이 책은 온갖 첨예한 국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정책 입안자나 학자나 정치가들이 공부삼아 읽기에 딱 좋은 그런 책이다. 지금도 우리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미중 무역 전쟁이나 한일 무역 갈등과 같은 분쟁의 근원적인 이유들이 이 책 곳곳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과연 서구 문명은 언제쯤 다른 문명에게 주도권을 내 줄 것인가? 30년 후? 100년 후?

 

모든 문명의 역사에서 적어도 한 번은, 그리고 대개는 여러 번 역사의 막을 내린다. 문명의 보편 국가가 등장하면 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토인비가 말한 대로 '영속성의 망상'에 눈이 멀어 자기네 문명이 인류 사회의 최종 형태라는 명제를 신봉하게 된다. 로마 제국이 그러했고 아바스 왕조가 그러했으며, 무굴 제국과 오스만 제국도 다를 바 없었다. 보편 국가에 거주하는 국민들은 그 보편 국가를 황야의 하룻밤 거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 인간의 궁극적 목표점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절정기의 대영 제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1897년의 영국 중산층은 역사는 종착역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그들은 이 역사의 종말이 자신듫에게 베풀어 준 영구 불면한 열락의 상태를 자축해야 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역사가 궁극점에 이르렀다고 전제하는 사회는 대체로 몰락기로 접어든 사회이다.(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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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세트 - 전6권 로마제국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 외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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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드럽게 위아래로 흔들리는 목마에 올라타 몇 시간이고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다가 어느 순간 목마가 땅을 떠났음을, 날개 달린 준마를 타고 있음을 알고 퍼뜩 놀란다. 큰 원을 그리며 하늘을 나니 아래로 유럽이 펼쳐진다.

 - 버지니아 울프

 

 

 

에드워드 기번(1737∼1794)                        

 

 

에드워드 기번은 영국이 자랑하는 역사가이자 문장가다. 그는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는 병약하여 '어머니와 간호사에 둘러싸인 불쌍한 아이'로 자랐다. 15세때 건강이 호전되어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일찍 중퇴했다. 당시 교내에서 벌어지던 종교적 논쟁에 연루된 데다가,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학교를 그만두도록 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아버지는 그를 스위스 로잔으로 보냈고, 거기서 기번은 5년 동안 열심히 고전을 읽고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를 배웠다. 로잔에 머물면서 카톨릭에서 개신교로 다시 개종한 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7년 전쟁의 발발로 보병대 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종전후 부대가 해산되자 기번은 마침내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유럽 여행을 따날 수 있었다.

 

1763년부터 시작된 유럽 대륙 여행은 그의 삶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여행 도중에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쓰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스물일곱 청년이었던 그가 이 거대한 작품을 쓰기로 마음 먹은 건 로마의 여러 유적지를 찾아 소요하던 어느 날 해질 무렵이었다. 그날의 느낌을 기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764년 10월 15일, 로마에서였다.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의 폐허에 앉아서 탁발 수도사들이 유피테르에서 저녁 기도를 올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중 처음으로 이 도시의 쇠망사를 집필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대작의 저술에 착수한 그는 로마의 폐허 위에 서 있던 때로부터 12년째 되던 해인 1776년 2월에 로잔에서 『로마 제국 쇠망사』 제1권을 출간한다. 그 책이 출간되자 말자 그는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데이비드 흄(1711~ 1776)으로부터 격찬을 받았고, 『도덕감정론』(1759년)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1723~1790)로부터는 “당신은 이 저서 하나로 유럽 문단의 최고봉에 섰다”는 칭찬을 들었다. 기번의 책에는 이제껏 그 어떤 역사가도 보여주지 못한 풍부함과 정교함과 박식함이 담겨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아하고도 세련되고 장엄한 문체로도 일찌기 그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물론 칭찬만 가득했던 건 아니었다.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를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제1권 15장, 16장)에 대해서는 거센 비난도 뒤따랐다.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우롱하고 경멸하는 듯한 대목들이 그리스도교 학자들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1권이 출간되고 나서 5년이 지난 1781년에는 제2권과 제3권이 출간되었고, 나머지 세 권은 일부러 1788년 자신의 생일에 맞추어 출간되었다. 대장정을 마무리했을 때 그의 나이는 51세였고,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기 1년 전쯤이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그는 안타깝게도 겨우 5년 동안만 자신의 학문적 성공을 누린 끝에 57세로 일찍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평소에 내장과 요도 관련 지병을 앓고 있어서 수술을 받았지만, 오염된 의료 기구에 감염된 탓에 불과 사흘 만에 사망했다고 전한다.

 

그는 비록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지만 청년 시절 로잔에 머물 때만 하더라도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 신교파 목사의 외동딸이며 동갑내기였던 그녀의 이름은 수잔 퀴르쇼였다. 부유한 정치인이었던 기번의 아버지는 아들과 그녀와의 결혼을 극력 반대했다. 그녀의 집안이 재산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일생에 단 한 번 있었던 로맨스는 허망할 만큼 짧게 끝났다. 그는 훗날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애인으로서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들로서는 복종을 했다."

 

그런데 이 불세출의 역사가를 사랑했다가 남친의 아버지 때문에 억울하게 실연을 당한 그녀는 나중에 오히려 훨씬 잘 풀렸다고 한다. 그녀는 나중에 프랑스 재무장관에 오르는 자크 네케르와 결혼했고 제르맨이라는 딸까지 낳았는데, 이 딸이 바로 당대의 유명한 지식인으로 필명을 드날렸던 네케르 수탈, 일명 '스탈 부인'이었다.

 

마담 드 스탈(1766~1817)

 

 

기번이 쓴 『로마 제국 쇠망사』는 인류의 천재가 남긴 기념비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널리 인정받는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드넓은 영토와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존속했던 로마 제국의 방대한 역사를 시종일관 정교함과 풍부함과 박식함과 유려한 문체로 장엄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토록 방대한 영토와 장대한 세월 동안 존속했던 대제국을 그 어떤 역사가가 단 하나의 작품 속에서 온전히 개괄할 수 있었겠는가.

 

기번은 『로마 제국 쇠망사』를 6권으로 나누어 출간했다. 그러자 글러스터 공이라는 사람이 이런 논평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두껍고 네모난 책이 나왔군요. 쓰고, 쓰고, 또 쓰더니. 그렇지 않아요, 기번 씨?" 정말로 그렇다. 제1권만 하더라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는 기분이 드니 말이다. 광대한 영토를 다스린 인물들은 황제들만 하더라도 일일이 다 헤아리기 어렵다. 수많은 종족들과 도시와 강들의 이름도 호메로스의 서사시 못지 않게 복잡하다. 강이나 도시의 이름도 오늘날에 쓰이는 이름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콘스탄티누스가 오래도록 머물렀던 트레베라는 고대 로마의 도시가 오늘날 '모젤 와인'으로 유명한 독일의 트리어라는 도시인 줄도 이번에야 알았다.(몇 년 전 독일 여행때 우연히 이 도시에 들러 1박 2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봤던 '고대 로마 황제의 목욕탕'이 콘스탄티누스 대제때 지어진 줄 이번에야 알았다. 그 당시 우리 일행은 그저 '모젤 와인' 생각밖에 없었다. ☞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들_모젤 강에 얽힌 짧은 추억들)

 

기번이 쓴 『로마 제국 쇠망사』는 '제국의 역사' 전체가 아닌 일부분을 다룬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건국됐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무려 1,000년 이상 존속했으며, 동로마 제국이 멸망(1453년)할 때까지로 늘려 잡으면 무려 2,000년 이상이나 존속했던 초거대 국가였다.  기번은 고대 로마의 왕정 시기와 공화정 시기는 건너 뛰고 기원후 98년때부터 동로마가 멸망할 때까지의 1400년 가까운 시간 동안의 로마 역사를 다룬다. 

 

기번이 자신의 작품에서 로마 역사의 탐구 대상을 그 시기로 국한한 건 까닭이 있었다. 로마가 건국된 이후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두 차례의 삼두정치 끝에 마침내 아우구스투스에 이르러 제정으로 통치 체제가 바뀔 때까지의 역사는 이미 로마 최고의 역사가인 티투스 리비우스(BC 59년~AD 17년)가 쓴 『로마사』로 충분했던 터였다. 또한 아우구스투스에서 시작된 제정 초기의 로마 역사는 기번이 자신의 스승으로 삼을 정도로 걸출한 역사가였던 타키투스의 『연대기』가 있었다. 기번은 로마 제국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인 저 유명한 5현제의 시대(98∼180년)로부터 시작하여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까지의 기나긴 역사를 기술해 나간다. 이를테면 '번영의 절정'에서 '쇠망사'를 시작하는 셈이다.

 

『로마 제국 쇠망사』는 따지고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도 있다. 하나는 서로마 제국 쇠망사다. 대략 400년에 가까운 이 시기의 역사는 제1권부터 제3권까지에 담겼다. 여기엔 5현제의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온갖 우행과 악행들로 가득찬 악명높은 폭군 황제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자주 등장한다. 숱한 황제가 걸핏하면 암살되고 근위대장이 그 뒤를 잇자 말자 또다른 야전 사령관이 황제를 참칭하고 어느새 '1인자의 자리'에 도전한다. 얼떨결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풋내기 황제들은 머나먼 속주들을 다스리던 탁월한 야전사령관들의 거센 도전에 맞서 싸워보지만 대개는 손쉽게 굴복되고 만다. 전투 지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뒤를 이은 황제들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황제가 출현할까봐 불안에 떤다. 유능하고 노련한 인물이었던 어떤 장군이 '황제의 갈리아 원정'을 틈타 부하들로부터 '반란을 일으키도록' 내몰렸을 때 내뱉은 탄식이야말로 '황제로 등극한 바로 그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됨을 웅변하고 있다.

 

그대들은 군주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머리 위에는 언제나 검이 매달려 있다네. 군주는 자신의 근위병들마저 두려워하며 동료도 믿지 못한다네. 움직이거나 쉬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더 이상 군주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네. 또한 나이나 덕성, 품행 그 어떤 것도 질투심에서 비롯되는 비난에서 보호해 줄 수 없다네. 이렇게 나를 제위에 올려 놓았으니, 그대들은 나에게 근심 가득한 일생과 때이른 죽음이라는 운명을 안겨 준 셈이네. 다만 남아 있는 유일한 위안은 나 혼자서 죽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뿐이네.(409쪽)

 

 - 『로마 제국 쇠망사_1권』, <제12장> 중에서 

 

 

혼란의 시기를 지나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4분할 통치체제가 들어선다. 황제가 4명으로 늘어나고 잠깐 사이에 6명까지 불어나기도 한다. 그런 어수선한 시기가 지나고 나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의 재통일을 이룬다. 제2권은 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율리아누스 황제의 치세를 서로 대조하면서 비교한다. 제3권은 야만인들의 점증하는 압박을 다루는데, 알라리크의 세 차례 포위 공격 끝에 마침내 로마가 고트족에게 약탈당한다.

 

제4권부터 제6권까지는 동로마 제국 쇠망사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를 버리고 오늘날의 이스탄불에 세운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아랍인들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점령, 또다른 서로마 제국이었던 8세기의 샤를마뉴가 등장하고,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될 때까지의 '중세 암흑 시대'의 십자군 전쟁이 포함된다.

 

이토록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에드워드 기번의 솜씨는 실로 놀랍다. 그가 서술하는 역사가 단지 흥미로운 <황제 열전>의 발췌나 요약이 아니고, 저명한 <교회사>나 <기독교 박해사>의 나열이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기번은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기록한 사료들을 샅샅이 뒤진 끝에 자신만의 확고한 판단과 평가를 내린다.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심리학자에 못잖은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며, 특정한 장소에 이르면 그 장소에 얽힌 온갖 고대의 신화까지도 소개하는 걸 잊지 않는다. 고트 족의 로마 침입을 다루는 동안, 흑해 연안의 콜키스에 이르면 <아르고 원정대>의 황금 양모피를 잊지 않고, 타우리케에 이르면 고대 비극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를 상기시키고, 트레비존드에 이르면 '만인대(萬人隊)'를 이끌었던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를 언급하는 식이다.

 

흑해 동쪽끝을 돌아 피티우스에서 트레비존드까지의 항로는 대략 300마일 정도이다. 이 항로를 따라 가던 고트족은 아르고 호(號)의 모험으로 유명해진 콜키스 왕국에 접근하기도 했으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심지어 파시스 강어귀의 부유한 신전을 약탈하려 한 적도 있었다. 옛 그리스의 식민지로서 '1만 명의 피난처'로 유명한 트레비존드는 아낌없이 베풀던 하드리아누스 황제 덕분에 부와 번영을 누렸다. 안전한 항구 하나 없던 이 해안 지대에 그가 인공 항구를 조성했던 것이다.(313쪽)

 

 - 『로마 제국 쇠망사_1권』, <제10장> 중에서

 

 

방금 살펴본 것처럼 『로마 제국 쇠망사』의 특징 가운데 한 가지는 그 무엇보다도 '지식의 방대함'이다. 기번은 특이하게도 본문에 육박할 만큼의 방대한 각주를 직접 달았는데 원본에는 각주의 갯수가 무려 8,3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이 각주가 너무 방대한 까닭에 기번의 작품은 다양한 축약 편집판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 완역한 번역본(민음사)조차도 기번의 각주를 절반쯤은 포기한 채 4,700여 개로 줄여 놓은 편집판(Bury 版)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또한 기번의 각주만 하더라도 이미 차고 넘치는 까닭인지 국내 번역본에는 '번역자의 주석'이 단 하나도 없다. 이 점은 돌덩이 같은 책의 무게를 덜어주는 경쾌한 효과는 있겠지만, 박학다식함의 끝판왕이나 다름없는 기번의 문장들을 제대로 음미하는 데는 독자들마다 사정이 다를 수 있음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이왕에 에드워드 기번의 각주 얘기가 나왔으니 이쯤에서 책 속에 실린 흥미로운 대목을 하나쯤 소개해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얼떨결에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황제가 된 고르디아누스 2세의 얘기다. 

 

이 덕망 높은 총독과 함께 아버지의 부관으로서 아프리카로 따라갔던 아들도 황제로 추대되었다. 아들의 성격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온화했지만 행실은 그렇게 깨끗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에게는 스물두 명의 공식적인 첩과 6만 2000권의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의 취미가 퍽 다양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가 남긴 산물들을 보면 도서관뿐 아니라 첩들도 단순히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소유했던 것 같다.

 

 * 기번의 각주

아들 고르디아누스는 스물두 명의 첩마다 서너 명씩의 자식을 남겼다. 문학적인 산물은 그보다는 적기는 했지만 무시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처럼 기번의 작품 속엔 거대한 제국의 번영과 몰락, 광기 어린 폭군들의 만행과 기행들뿐 아니라 놀랍도록 다양한 문학 작품 속의 등장 인물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신화, 역사, 철학, 문학, 종교, 예술, 군사 등 온갖 분야에 두루 해박한 기번의 지식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의 작품 속에서 묘사된 이야기가 어느새 역사의 현장으로 틈입(入)되고, 기독교 교리와 영혼 불멸 사상을 다룰 때에는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철학자들이 우르르 한꺼번에 불려나오는 식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논, 에피쿠로스, 에픽테토스, 플루타르코스, 피론에 이어 로마의 키케로까지.

 

그렇다고 해서 기번이 『로마 제국 쇠망사』를 통해서 까마득한 고대의 역사에만 시선을 고정시키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살고 있던 계몽주의 시대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기번은 특히 볼테르(1694∼1778)와의 친교 덕분에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번이 그리스도교와 중세 시대에 대해 볼테르의 비판을 공유하는 것도 우연이 아닌 셈이었다. 기번은 또한 스스로 '최초의 역사가'로 칭송했던 마키아벨리의 영향도 받아들였다.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시대의 문제점들을 얘기하던 방식 말이다. 과거는 살아 있으며 항상 현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기번의 역사 인식이었다.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훌륭한 설명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서술인 듯하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신학적인 입장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각으로 다룸으로써 '그리스도교를 철저하게 분석한 최초의 역사가'가 되었다. 그는 교회 조직을 마치 행정 조직이나 제도의 발전 과정을 다루듯이 분석했으며, 그리스도교의 등장이 로마 제국의 흥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자세히 분석했다. 비평가들은 기번이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유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불평하지만, 제국의 멸망 이유는 기번의 작품 전편에 걸쳐 거듭 제시되어 있다. 부패한 정부(모든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문제), 용병에 의존한 국방 시스템, 야만인들의 지속적인 공격, 기독교 문제 등이 주요인이었다. 기번은 특히 로마 제국이 느슨한 종교적 절충주의 대신 완고하고 비세속적인 기독교로 대체된 점을 지적했다. 기독교가 끊임없는 파당과 신학적 논쟁으로 사분오열된 상태였기 때문이다.(그는 특히 수도원을 싫어했다. 거기에 기생하는 무수한 기생충이 비생산적 · 광신적 · 반사회적인 자들이라고 공격했다.)

 

『로마 제국 쇠망사』는 흔히 로마 제국의 역사를 학문적으로 개관한 최초의 역사서로 평가받는다. 그런 평가에 걸맞게 기번의 역사 서술은 해박한 고증이나 정확한 사실에 대한 꼼꼼하고 집요한 추적들로 가득하다. 그건 바로 에드워드 기번이 그만큼 성실하고 공정하면서도 결백했음을 드러내는 증거다. 또한 기번의 작품은 그 어떤 문학 작품 못지 않은 탁월하고 세련된 작가의 문장력으로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온갖 분야의 책들을 두루 섭렵한 듯 자유자재로 물 흐르듯 서술하는 그의 문장들을 따라 읽노라면 독자들은 순식간에 '역사의 현장'에서 훌쩍 벗어나 어느새 '날개 달린 준마를 타고' 고대의 영웅들이 활약하던 신화의 무대 속을 누비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굽이진 해협을 통해 흑해의 물이 빠르게 쉼없이 지중해까지 흘러가는데, 이 해협이 고대 설화와 역사에 등장하는 유명한 보스포루스이다. 가파르고 숲이 우거진 기슭을 따라 흩어져 있는 수많은 신전과 제단은 서투른 그리스 항해자들이 아르고 호 선원들의 길을 따라 험난하고 위험한 흑해를 탐험하면서 품었던 공포심과 신앙심을 보여 주었다. 이 기슭들에는 오랜 전설이 전해 오는데, 추잡한 하피들(harpies)이 몰려와 더럽힌 피네우스의 궁정 이야기, 레다의 아들과 권투 시합을 하여 패배한 숲의 신인 아미쿠스 이야기 등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키아네아 암초들이 한계선을 이루는데, 시인들이 묘사한 바에 따르면 이 암초들은 한때 수면까지 떠올랐다가 흑해의 출입구를 속세의 호기심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신들에 의해 다시 잠겼다고 한다. (…) 이 요새들은 마호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면서 보수하고 강화했다. 그러나 터키의 정복가도 자신이 통치하기 거의 2,000년 전에 다리우스가 이 대륙을 선교(船橋)로 연결하기 위해 이 지역을 택했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3∼4쪽)

 

 - 에드워드 기번, 『로마 제국 쇠망사_2권』, <제17장> 중에서

 

 * 이 짧은 문장에 딸린 '기번의 각주'는 4개다. 그런데 각주마다에 담긴 내용들이 너무나도 상세하고 풍부해서 독자들을 놀라게 만든다. 기번이 '추잡한 하피들(harpies)'이라고 표현한 동물은 일명 '마녀새'로도 불리는 '괴조(怪鳥)'다. 이 새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신화 <아르고 호 원정대>에도 등장하고, 셰익스피어어의 작품 <템페스트>에도 등장한다.셰익스피어의 『태풍』속에 나오는 마녀새 이야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출간된 지 200년 이상 지나는 동안 역사학 분야만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종교학 등 다양한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완간되던 해인 1788년에 태어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을 매혹시킨 나머지 그 시인으로 하여금 『로마 제국 쇠망사』를 마지막으로 집필했던 스위스의 로잔을 방문하도록 만들었고, 기번보다 한 세대쯤 늦게 태어난 나폴레옹으로 하여금 '대제국 건설의 야망'을 품게 만들었으며,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처칠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어릴 때부터 『로마 제국 쇠망사』를 여러 번 거듭해서 읽는 동안에 어떤 문장이 어느 페이지에 있는지조차 금방 찾아낼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애덤 스미스도 『로마 제국 쇠망사』의 애독자였고, 『프랑스 혁명사』를 쓴 토머스 칼라일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의 연구』라는 방대한 역사책을 쓴 아놀드 토인비도 이 책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소설가 E. M. 포스터와 버지니아 울프도 이 책의 애독자였다. 두서 없이 쓴 어설픈 리뷰보다는 그들이 남긴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말들을 통해 이 책의 가치를 가늠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 * *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는 동안 에드워드 기번은 언제나 나에게 북극성 같은 길잡이였다. 기번의 정신은 모든 저명한 서구 역사가들 중에서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하고 눈부시다. 기번은 역사를 탐구하고, 구성하고, 서술하면서 역사 분야뿐 아니라 그 어느 문학 장르의 작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걸작을 만들어 냈다.

 - 아놀드 토인비

 

기번은 역사의 바다를 항해하는 항해사이다. 아마도 영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일 것이다. 그의 글은 마치 잘 건조된 배를 보듯 웅장하고 정교하고 듬직하다. 200년 전에 출간되었음에도 『로마제국쇠망사』는 지금도 여전히 우뚝 서 있다. …… 그는 인간 성취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으며, 그가 서술한 로마 제국의 쇠망은 작금의 세상을 뒤흔들 격렬한 변화를 암시하고 예고한다는 점에서 그는 표지판이기도 하다,

 - E. M. 포스터

 

기번은 고대와 근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그는 이 야만의 세기들이 보여 주는 음울함과 무질서함의 깊고 넓은 수렁을 눈부시게 오간다.

 - 토머스 칼라일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기 시작한 순간 나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문장에 즉시 압도당했다. 나는 게걸스럽게 기번의 책을 탐독했다. 한 장을 다 읽으면 뿌듯한 마음에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아주 즐겁게 읽었다. 심지어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주석에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 윈스턴 처칠

 

기번과 함께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위대한 예술가를 잘 보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기번은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들을 균형 감각을 잘 갖추어 가며 볼 수 있게 해 준다. 여기서는 압축하고 저기서는 확장한다. 그는 순서와 사건을 바꾸어 놓고, 강조하고, 생략하기도 한다 …… 그는 가장 많은 자원을 가진 엔터테이너이다 …… 우리는 부드럽게 위아래로 흔들리는 목마에 올라타 몇 시간이고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다가 어느 순간 목마가 땅을 떠났음을, 날개 달린 준마를 타고 있음을 알고 퍼뜩 놀란다. 큰 원을 그리며 하늘을 나니 아래로 유럽이 펼쳐진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간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 버지니아 울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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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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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1932∼2016)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기호학자이며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였다. 이만큼 특이한 이력을 지난 그가 최초로 쓴 소설이 1980년에 출판된 『장미의 이름』이었고, 이 책은 이내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여기에 크게 고무된 에코는 『바우돌리노』, 『전날의 섬』, 『푸코의 진자』, 『프라하의 묘지』 등을 연이어 쏟아냈고, 소설 말고도 『미의 역사』, 『추의 역사』, 『궁극의 리스트』 등 많은 책들을 써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여러 언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최고의 석학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엄청난 지식을 쌓은 인물이었다.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를 일약 세계적인 소설가의 반열에 불쑥 올려 놓은 작품이다. 도대체 그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겼길래 전세계의 독자들이 그토록 이 작품에 환호했을까. 장미의 이름들로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뜻밖에도 『장미의 이름』에는 장미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짧게 비유적으로 잠깐 등장할 뿐이다. 쉽게 말해서 장미의 이름 속엔 그 어떤 장미의 이름조차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말 뜻밖에도 이 책 속엔 장미가 아닌 기묘한 책 한 권이 등장한다. '장미의 이름' 속에 아침에 피었다가 이내 시들고 마는 장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결코 시들지 않는 희귀한 책이 한 권 등장한다는 사실로부터 실로 수많은 상상이 자연스레 뒤따른다.

 

게다가 그 한 권의 책이 참으로 절묘하다. 가령, 그 책이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책이라면? 또한 발견된 적도 없는 그 책이 이미 금서로 지정할 정도로 위험한 책이라면? 더군다나 그 책이 중세의 어느 철옹성처럼 당당한 수도원의 미궁 같은 장서관에 깊숙히 숨겨져 있다면? 더군다나 그 책을 둘러싼 수도원 내부의 갈등 때문에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더군다나 그 연쇄 살인 사건이 《요한의 묵시록》에 따라 7일 동안 단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착착 진행된다면?

 

어쨌든 이 책은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과는 사뭇 동떨어진 이야기를 담은 책일 수밖에 없다. 지난 날의 장미는 얼마나 빨리 시들고 마는가.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그러나 한 권의 책은 얼마나 끈질기게 오래 살아 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가. 비록 그 책이 그토록 연약하고 가냘픈 종위 위에 쓰여졌음에도 말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책에 얽힌 이야기임을 새삼 강조한다. 그것도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던 14세기에 실존했던 어느 인물의 입을 빌어서.

 

누항(陋巷)의 일상 잡사가 아닌, 책에 얽힌 이야기여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저 모방의 도사 아켐피스의 다음과 같은 명언이 한숨에 섞여 나올지도 모르겠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이쯤되면 이 작품에 담긴 책이 얼마나 흥미로울지는 거의 보장된 셈이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그 책이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임에랴. 그런데 움베르토 에코는 이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을 중세의 요새 같은 수도원에 단단히 고정시켜 놓은 채, 장서관의 희귀한 금서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빚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당대의 수도원이 품고 있음직한 온갖 음험한 분위기와 상징들과 함께 절묘하게 버무려 놓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어느새 까마득한 과거의 그 낯선 시공간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도록 옭아맨다.

 

중세 유럽 수도원이 지니고 있는 음험한 상징들은 무엇일까. 그곳은 단지 탈속한 수도사들이 죽어서조차 거기서 뼈를 묻어야만 하는 영구히 속박된 기도원으로만 기능하지는 않았다. 그곳은 대학을 대신해서 인류의 지혜가 보존되고 전승되는 지식의 요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황으로 대표되는 교권 옹호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는 정신적 · 물질적 토대였고, 수도사들의 온갖 인간적 번민과 고뇌가 교차하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또한 당시의 수도원은 '감히 하느님 말씀을 지키는 성채의 표징'으로 성별(聖別)될 만한 어마어마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산허리로 감겨드는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나는 수도원을 보았다. 그러고는 놀라고 말았다. 기독교 세계에서 흔히 보아 왔던, 수도원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벽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 벽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엄청나게 큰 건물에 놀란 것이었다. 뒤에 알았지만 그 건물은 바로 수도원의 본관이었다. 이 본관은 8각 기둥 건물이었지만, 멀리서는 4각 기둥 건물(성도의 위엄과 금성철벽을 그대로 나타내 보이는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였다. 남쪽은 수도원이 앉은 고원과 닿아 있었고, 북쪽은 산의 가파른 사면에서 솟은 듯이 불겨져 있었다. 아래쪽에서 본 광경도 소개해야겠다. 아래쪽에서 보면 가파른 석벽이 하늘에 닿을 듯이 솟아 있는데, 색깔이나 재질이 한결같은 이 석벽의 정점은 그대로 탑과 관망대(하늘과 땅을 두루 아는 대가의 작품임에 분명한)였다. …… 크기나 형태로 보아 본관은 뒷날 내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서 보았던 카스텔 우르시노, 카스텔 데 몬테와 흡사했다. 그러나 그 범접하기 어렵게 하는 위용이나, 거기 다가가는 행자에게 불러일으키는 위구심(危懼心)으로 말하면, 후일에 내가 보게 되는 어떤 수도원이나 성채도 이와 같지 못했다.

 

 

소설의 시간적인 배경이 때마침 1327년 11월이라는 사실은 교권과 속권의 권력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았던 저 유명한 <아비뇽의 유수>와 직접 연결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교황인 요한 22세는 당연히(!) 프랑스 남부지방 소도시인 아비뇽에 있는 교황청에 머물고 있었으며, 당시의 황제인 루트비히와는 그리스도의 청빈 논쟁 등을 빌미로 격렬하게 대립했다. 급기야 교황 요한은 루트비히 황제를 파문하기에 이르렀고, 황제는 교황을 배교자(背敎者)로 비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교황과 황제 사이에서 벌어졌던 극렬한 권력 다툼은 소위 <프란체스코회 청빈 논쟁>으로 번졌고, 수많은 카톨릭의 신학자와 사제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 싸움에 휘말려들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시대 배경을 소설의 시간적인 배경으로 골라잡은 것이다.

 

1322년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황제는 정적(政敵)이었던 프리드리히를 거세했다. 황제가 둘일 때보다는 하나 있을 때를 더욱 두려워한 교황 요한은 승리자인 루트비히 황제를 파문했다. 우리 황제는 자신을 파문한 교황을 배교자(背敎者)로 비방했다. 바로 이 해에 프란체스코 참사회가 페루자에서 소집되었고 총회장이었던 체세나의 미켈레(1270∼1342)는 엄격주의파의 절충안을 받아들이고, 신앙과 교리에 관련된 문제로서의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해, 그리스도가 사도들과 더불어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usus facti(사용권, 이용권)에 의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교단의 가치와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이 귀중한 헌장은, 교황의 비위를 몹시 상하게 했다. 이는 교회의 우두머리로서, 주교를 임명하는 황제의 권리를 부인하고, 교황이 황제에게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고 했던 교황 자신의 주장에 위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요한 22세는 1323년 회칙(回勅) <쿰 인테르 논눌로스>를 통하여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선언을 묵살해 버렸다.(33∼34쪽)

 

마침 이럴 때 소설의 주무대인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교황과 황제의 첨예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고위급 실무회담이 열린다. 이 회담에 참석하는 주요 인물들인 카잘레 사람 우베르티노, 체세나의 미켈레, 베르나르 기 등은 모두 당시 카톨릭 세계를 대표하던 실존인물들이다. 이들이 황제와 교황을 대신해서 '그리스도의 청빈'과 '이단 논쟁'을 둘러싸고 벌이는 불꽃 튀는 논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더없이 흥미롭다. 그런데 이들이 격렬하게 맞붙어 자신들의 논리를 치열하게 전개하는 와중에도 연쇄 살인 사건은 계속 진행되고, 이단 조사관을 지낸 양 진영의 고위급 핵심 멤버들은 이 살인 사건조차도 자신들의 영역 확대를 위한 싸움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파고들수록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공간은 뜻밖에도 본관에 있는 장서관으로 모아진다. 연쇄 살인 사건의 희생자들이 한결같이 장서관의 사서나 보조 사서 혹은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특명을 받고 수도원에서 열리는 실무 회담에 파견된 윌리엄 수도사는 그 수도원에 도착하던 당일부터 비범한 추리력을 발휘하면서 단숨에 수도원장의 신임을 받고 살인 사건의 조사를 떠맡는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유난히 실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14세기 초반의 교황파와 황제파의 권력 다툼을 조정하기 위한 고위급 실무회담에 어찌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불려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위 '프란체스코회 청빈 논쟁'을 둘러싼 치열한 논리 싸움에서 황제파에 가담한 인물들은 체세나의 미켈레(1270∼1342), 오컴의 윌리엄(1280∼1349), 카잘레의 우베르티노(1259년~1329년) 등이 대표적이었고, 교황파를 대표한 인물들은 중세의 악명 높은 이단 심문관이었던 베르나르 기가 주축이었다.

 

이들이 주고 받는 날선 논쟁들은 중세의 이단 논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양 진영은 '그리스도의 청빈'을 본받아 교회의 재산권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황제파와 그에 반대하는 교황파로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했고, 교황파 인물들은 마침내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이단으로 몰고 간다. 그들이 논리 싸움에서 밀리는 순간 상대방에 의해 순식간에 이단으로 내몰리고 결국은 화형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들 사이의 타협점은 좀체로 찾기 어려웠고, 소설 속에서도 그 회담은 결렬된다. 먹을 게 부족해서 밤마다 수도원을 들락거리며 몸을 팔며 주방의 식재료를 얻어가던 애꿎은 사하촌 처녀 하나만을 희생물로 삼은 채.

 

이 작품이 책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실존하는 많은 책들이 수많은 등장인물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가운데 주인공 격인 책은 단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시학』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과 서사시에 대해서는 자세하고 충분한 설명이 담겨 있지만 희극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는 말만 나올 뿐인데, 이를 바탕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에 대해 쓴 『시학 2편』이 망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움베르토 에코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장미의 이름』속에 '희극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을 '책 속의 책'이자 수도원 연쇄 살인 사건의 핵심적인 사물로 재등장시키고 있다. 망실된 줄로만 알았던 바로 그 책이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의 미궁 같은 장서관에 깊숙히 숨겨져 있었고, 이 책을 둘러싼 모종의 암투가 수도원 연쇄 살인 사건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밝혀진다는 얘기다. 이 얼마나 기발한 착상인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시학』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망실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증거로 『시학』1449b 21을 보면 희극에 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그 후로는 희극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으며, 『정치학』 1341b 38을 보면 '카타르시스'에 관한 자세한 설명에 관해서는 『시학』을 참조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학』에는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 천병희 옮김, 『시학』, <옮긴이 서문> 중에서

 

 

이 소설의 첫 문장은 더할 나위 없이 간결하다.

 

당연히, 이것은 수기(手記)이다.

 

장장 9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의 추리 소설이 이렇게 단촐한 문장으로 시작해도 좋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독자들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 수기(手記)인 이유 자체가 미궁을 헤메는 것처럼 몹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작가는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이야기가 결코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교묘한 장치'를 통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1968년 8월 16일, 작가는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손에 넣었는데, 그 책의 저자는 당연히(!) 실존인물이었던 발레(1754∼1824)라는 프랑스의 수도원장이 펴낸 책이었다. 출판사는 1842년 파리의 라 수르스 수도원 출판부였다. 책의 제목은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였다. 이 책 이름에 등장하는 마비용 수도사 역시 실존 인물이고 멜크 수도원 역시 지금까지도 현존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원이다. 더군다나 이 수도원은 90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실제로' 로마 가톨릭의 본거지였으며, 때로는 종교개혁에 대항하는 요새이기도 했다.

 

멜크 수도원(출처:위키백과)

(멜크 수도원은 1089년 최초로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으로 건축되어 1297년 대화재로 완전히 불타버렸다고 한다. 에코가 이 수도원을 소설의 배경 가운데 일부로 삼은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닌 셈이다.)

 

그 책에는 18세기의 석학 마비용(1632∼1707)이 멜크 수도원에서 발견한 14세기의 수기를 충실하게 복원한 것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작가는 멜크의 수도사 아드소의 이야기를 순식간에 독파한 뒤 단숨에 대학 노트에다가 이 책을 번역한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이 탄 배는 다뉴브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멜크에 닿는다. 작가는 멜크 수도원의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아드소 수기의 사본을 찾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러다가 그만 그 중요한 책을 잃고 만다. 연인과 함께 이동중이던 작가가 몬트제 호반에서 짧게 1박할 때 그들의 관계가 끝장 났는데, 뒤늦게 알고 보니 그 비극적인 밤에 연인과 헤어질 때 그 소중한 책마저 상대방의 짐에 휩쓸려 사라지고 만 것이다.

 

작가는 그 책의 존재를 찾아내기 위해 파리의 생트 주느비에브 도서관을 뒤지는가 하면 유명한 중세학자와도 상의해 보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다. 라 수르스 수도원으로 달려가도 그런 책을 낸 적이 없다는 대답만 듣는다. 그래서 작가는 이런 생각마저 품는다. 어쩌면 그 책이 위조된 유령 도서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던 중에 작가는 197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코리엔테스 거리에서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작은 고서점의 서가를 뒤지다가 우연히 밀로 테메스바르라는 사람이 쓴 카스틸리아어판 소책자 『장기 놀이에서의 거울 이용법』을 찾아낸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 책에 아드소의 수기로부터 인용된 대목이 상당수 있는데다가, 그 내용 또한 발레 수도사가 불역한 수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까마득한 옛날 '프랑스 접경에 있는 아페니노 산맥 중앙부 기슭쯤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수도원에서 일어난 '7일 동안의 기록'인 아드소의 수기가 전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움베르토 에코가 책에 대한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뒤섞어 '아드소의 수기'에 대한 실재성을 강조하는 수법은 곧바로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처럼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 전달 방식은 일찌감치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속에서 능청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내보인 솜씨이기도 하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이야기는 결코 자신이 지어낸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원래 아랍 사람인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쓴 책이며, 자신은 어느 날 톨레도의 알카나 시장에 나갔다가 어느 소년이 팔겠다고 하는 잡기장 한 권 속에서 그 이야기를 우연히 발견했다는 식이다.(☞ 다시 읽는 돈키호테)

 

움베르토 에코는 '아드소의 수기'를 소개하는 방식에서만 보르헤스에게 빚진 게 아니었다. 그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갔다. 보르헤스의 이미지를 그대로 본 딴 늙은 수도사를 소설 속에 직접 등장시킨 것이다. 『장미의 이름』을 단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결코 그 이름을 잊을 수 없는 '책에 미친' 늙은 수도사의 이름은 부르고스의 호르헤였다! 그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수도사인데, 젊어서 한 때 수도원 장서관의 사서를 맡았지만 너무 일찍 '암흑의 세계'로 들어가고 만다. 그러나 그는 눈이 멀었어도 머리 속에 담긴 기억만으로 장서관에 보관된 수많은 책들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그렇지만 그 눈 먼 수도사에 대한 얘기는 이쯤에서 멈추는 게 마땅하다. 『장미의 이름』은 지적 호기심을 만낄할 수 있는 드물게 뛰어난 추리 소설인데, 호르헤의 비밀을 이런 글에서 너무 자세히 드러내는 것은 미지의 독자들에게 결코 유익할 리 없기 때문이다.

 

비록 7일 동안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뜻밖에도 이 소설은 엄청나게 길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에 작가가 미리 세심하게 마련해 놓은 여러 장치들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프롤로그이다. 거기엔 '늙고 병든 몸으로 멜크 수도원의 독방에 갇힌' 아드소가 젊어서 수련사로 지낼 때 경험했던 '7일간의 기록'을 어떤 심정을 담아 썼는가가 절절히 베어 있다.

 

가련한 죄인의 삶이 이윽고 막바지에 이르고 보니 이제 내 머리는 백발…… . 바야흐로 바닥 모를 심연, 고요와 적막의 신성(神性)이 가득한 그 심연을 헤맬 날을 기다리는 한편 천사의 은혜인 지성의 광명에 의지하고 세상과 더불어 나이를 먹는다. 늙고 병든 육신을 여기 안온한 멜크 수도원의 욕망에 가둔 나는 지금 소싯적에 우연히 체험하게 된 저 놀랍고도 엄청난 사건의 기록을 이 양피지에다 남겨 놓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나는 보고 들은 바를 한 순간 산 순간, 한마디 한마디를 그대로 옮기되 굳이 어떤 구상의 형식을 세우지 않으려 한다. 뒤에 오는 이들(가짜 그리스도가 먼저 오지 않는다면)에게 표적을 표적으로만 남기는 뜻은 글을 아는 교우로하여금 이를 음미하게 하기 위함이다.

 

원컨데 주님께서, 이름이야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는 편이 온당하고 크신 뜻에 합당할 터인 저 대수도원 일을 투명하게 그려 낼 권능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때는 주후(主後) 1327년 말, 루트비히 황제가 전능하신 분의 뜻에 따라, 아비뇽에 진치고 앉아 사악한 왕위 찬탈과 성직 매매를 일삼으며 사도를 욕되게 한 저 사교(邪敎)의 우두머리를 척결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로 온 해이다(죄 많은 사교의 우두머리가 누구던가? 믿음이 없는 자들이 교황 요한 22세라고 부른 카오르의 자크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 수많은 다른 책들을 마주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책들이 거의 대부분 까마득한 옛날에 쓰여진 너무 희귀한 책들이어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독서욕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대 배경이 14세기 초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에, 정말 뜻밖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이미 읽은 책들 가운데 '다시 한번' 펼쳐 읽고 싶은 책들을 재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 책들은 주로 희극과 웃음과 책과 도서관과 수도원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을 만한 책은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그 다음으로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들』이다. 도대체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눈 먼 수도사인 호르헤는 왜 그토록 '웃음'을 죄악시했던가를 그 책을 통해서나마 다시 한번 음미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플라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의 임종의 베개 밑에서 발견한 것은 《성서》도, 이집트의 책도, 피타고라스의 책도, 플라톤의 책도 아닌, ㅡ 아리스토파네스의 책이다. 플라톤 또한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는가, ㅡ 아리스토파네스가 없었다면 말이다!" 웃음을 사랑한 니체의 보다 결정적인 말은 이랬다. "신들도 위버멘쉬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 그들은 신성한 행위를 할 때조차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책은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이 쓴 『웃음』이라는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어느 누구도 그 본질을 제대로 건드려보지 못했다던 '웃음의 비밀'을 그 철학자가 무려 2,000여 년 만에 다시금 들춰봤으니 말이다. 그 책에서 베르그송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웃음 연구'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다시금 찾아 읽어보고 싶다.(베르그송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전공한 철학자다.) 그 다음으로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다. 미궁처럼 끝없이 펼쳐진 바벨의 도서관 이미지야말로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수도원의 장서관 모습을 가장 닮았을 테니. 마지막으로 꼽고 싶은 책은 뜻밖에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이 책을 꼽은 이유가 그저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인물과 같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인 조르바도 젊어서 한 때 그리스의 아토스 산자락에 위치한 수도원에 머문 적이 있었고, 케이블 고가 선로 계약서에 서명을 받으러 찾아간 수도원에서는 마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것처럼 '기묘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려낸 수도원 살인사건이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속 '살인 사건'과 얼마나 닮았을지 괜스레 궁금해진다.(☞ 아토스에 대하여...)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이 책의 두께 때문에라도 끝까지 읽지 못한 독자들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괴롭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왜냐하면 이 책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전해진 놀라운 소식 하나도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덴마크의 어느 대학 지하실에 보관된 수백년 전 고서 가운데 희귀서적 3권에 맹독이 묻어 있었다는 뉴스였다. 중세시대 양피지에 적힌 라틴어 글자 판독을 위해 분석한 결과 고농도의 비소 성분이 거기서 검출됐다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을까. 아니다, 어쩌면 움베르토 에코는 이 정도의 뉴스로는 크게 동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로서는 아무래도 궁극의 빅뉴스를 기다릴 테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고 약속했던 시학 제2권이 정말로 유럽의 어느 수도원의 장서관에서 발견되는 대사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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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3-12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고전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중에서는 가장 지루하지 않고 흥미있게 읽었던 것이 <장미의 이름>이 아닐까 해요. 물론 앞부분은 읽으면서 어디까지가 사실 기록이고 어느 것이 소설로서의 내용인지 혼동되어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읽어야했지만 그러면서까지 읽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게 한 매력이 있던 작품이었어요.
덴마크 고서의 맹독 소식은 오싹하네요. 그리고 곧 드는 생각은 그 희귀서적 세권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요! ^^

oren 2019-03-12 16:37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오래 전에 사 놓고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답니다. 언젠가 읽을 기회가 오겠지, 하고 때를 기다렸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며칠 전에 우연히 다른 분의 서재에서 <소설의 도입부, 최고의 첫 문장 Best 10>이라는 글을 봤어요(☞ http://blog.aladin.co.kr/caspi/10693048) 그 열 권의 책 가운데 제가 여태껏 안 읽은 책이 딱 두 권 있었는데, 그 중의 한 권이 바로 <장미의 이름>이었지요. 그래서, 올커니, 이제야 마침내 읽을 때가 찾아왔군, 하고 마음 먹은 후로 틈을 엿보기 시작했더랬지요. 사실, 이 책이 너무 유명한 데다가, 나름대로 기대가 컸던 탓인지 엄청 재미있지는 않더라구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자주 떠올렸는데, 똑같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그 소설이 저는 훨씬 재미있더라구요.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날 정도였으니까요.(그 책도 몹시 방대하고 복잡한 데다가, 소설의 초반과 중반과 후반에 나오는 인물들이 후반부로 갈수록 안개가 걷히듯이 마침내 하나 하나 촘촘히 연결되어 드러날 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동적이더군요.) 그에 비하면 <장미의 이름>은 ‘결말 부분이 너무 많이 노출된 탓인지‘ 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추리소설의 결말을 미리 안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 약점인지를 그 때 절절히 느끼겠더군요.

그리고, 이 소설의 도입 부분에 사용된 트릭은 보르헤스의 소설들, 가령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나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등에서 이미 봐왔던 터라 ‘작가가 일부러 이러는구나‘ 하고 재빨리 눈치를 챘었지요. 미처 보르헤스의 소설들을 읽지 않은 상태로 이 책을 먼저 붙잡았더라면 저도 엄청 헤맬 뻔 했지요. 그런데, 일반 독자들이 의외로 이런 데서 많이 당하면서(?) 중도에 너무 일찍 책 읽기를 포기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하더군요. 그게 다 작가가 일부러 독자들과 함께 잠시 장난을 즐기자고 하는 수법인데 말이죠. 실컷 뺑뺑이를 돌리고 나서, 나 잡아 봐라~, 어디 있게? 하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