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번의 정신은 모든 저명한 서구 역사가들 중에서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하고 눈부시다. 기번은 역사를 탐구하고, 구성하고, 서술하면서 역사 분야뿐 아니라 그 어느 문학 장르의 작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걸작을 만들어 냈다.

 - 아놀드 토인비

 

 * * *

 

꼬박 두 달이 넘도록 매달린 끝에『로마제국쇠망사』를 다 읽었다.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마침내 장대한 산맥 하나를, 중도에 힘에 부쳐 지레 포기할 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불안감을 지닌 채 성큼 들어섰던, 온갖 험난한 지형과 울창한 삼림들과 사나운 야생의 짐승들로 둘러싸인 그런 산맥을 용케 넘어섰다는 후련함이 왜 없겠는가. 소문으로만 익히 들어왔던 에드워드 기번의 장려한 문장들과 벌써(!) 이별이라니 진한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때로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처럼 재기발랄하고 다정다감한 문장들을 툭툭 던지면서도, 필요할 때마다 맹렬한 폭포수처럼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문장들은 얼마나 박력이 넘치고 해박하고 놀라운가. 숱한 역사가들이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모른 체 일부러 덮어버리곤 했던 역사의 진실 앞에서 그의 탐구심은 얼마나 맹렬하게 타오르고, 그의 판단력은 얼마나 날카롭고, 그의 기개는 얼마나 당찼던가. 역사가에게 주어진 자유 혹은 의무를 위해 한 치의 두려움도 없이 단호하게 써내려간 그의 붓끝은 얼마나 매섭고도 아름답게 빛나는가.

 

이 방대한 역사책을 읽고 난 감회를 쓰자니 문득 옛날이 좋았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옛날엔 책 한 권을 뚝 떼면 책거리로 '떡'을 지어 먹었다. 나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 책 덕분에 떡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형이 우리 마을에서 학식이 가장 높으신 어르신 한테서 『천자문』, 『동몽선습』, 『명심보감』 등을 배웠는데, 그 중에 어떤 책을 다 배우고 났을 무렵에 어머님께서 떡을 만들어 어르신한테 갖다 드렸고, 형 덕분에 나에게도 떡을 먹을 기회가 돌아왔던 것이다. 시쳇말로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겠지만, 책 한 권을 뗐다고 떡이 생기더라는 말을 들어보긴 처음인 알라디너도 없지는 않을 듯하다. 사실, 알라디너에겐 책을 다 떼면 짐만 생긴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괜히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마음의 짐이 생겨나니 말이다.

 

아무튼 『로마제국쇠망사』라는 책은 너무나 방대하기로 널리(!) 소문난 책인지라, 왠지 '책거리'로 떡이라도 누구한테서 받아먹고 싶어지는 그런 책임에는 틀림없다. 우선 외관 하나만 보더라도 이 책은 얼마나 우람한가.

 

(책소개에 나오는 사양은 이렇다. 양장본, 4,150쪽, 152*228mm, 6,225g. 실제로는 3,719쪽이다 )

 

 

이 방대한 저작을 읽고 난 느낌을 솔직히 어떤 방식으로 정리해야 옳을지 잘 모르겠다. 역사가나 문장가로서의 작가의 탁월함과 위대함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수도 없고, 얄팍한 독서 이력을 지닌 머나먼 변방의 일개 독자가 느끼는 경외감과 곤혹스러움과 왜소함만을 강조할 수도 없을 뿐더러, 작품 속에 담긴 온갖 엄청난 역사적 사건들이나 인물들에 대해 새삼 개괄할 수도 없고, 온갖 사료들로부터 그지없이 꼼꼼하게 발굴한 끝에 페이지마다 거장다운 솜씨로 흩뿌려놓은 그 많은 지식들을 한낱 가냘픈 조막손으로 솜씨 좋게 다시 옮기고 펼칠 재주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한 감회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남겨보고픈 욕망은 억누르기가 어렵다. 책을 읽는 동안에 수없이 자주 느꼈던 독특한 감회들을 이런 기회에 기록하지 않으면 영영 되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감회를 밝힐 때 첫 번째로 눈길을 돌려야 마땅할 방향은 당연히 작가의 서재 쪽이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꼬박 20년 이상을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온전히 다 바쳤지 싶다. 그는 아마도 이 책을 쓰기 위해 결혼도 기꺼이 포기했던 듯하다. 불후의 작품을 쓰기 위한 그의 노고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평탄한 결혼 생활과 장기간의 방대한 연구 과정을 필요로 하는 걸작의 출산이 순조롭게 병행되기는 어려웠으리라는 생각부터 앞선다.

 

그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다루는 역사의 범위는 5현제의 치세가 시작되는 서기 98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1453년까지 1,355년 동안이다. 그러나 어떤 역사가라도 이 기간 동안의 로마 역사를 깊이있게 다루기 위해서라면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서기 97년까지의 선행 역사를 도저히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가 건국된 B.C 753년부터 5현제의 치세가 시작되기 직전인 기원후 97년까지 850년의 역사가 자연스레 덧보태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로마제국 쇠망사』에는 로마 건국 초기의 역사가 상당 부분 자세하게 다뤄진다. 또한 건국 초기의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에 이를 때까지 로마의 역사를 좌지우지했던 숱한 인물들도 수없이 자주 등장한다.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가문의 영웅들을 비롯하여,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브루투스, 카토, 키케로, 아우구스투스 등이 여러 차례 기번의 붓끝에서 되살아 난다.

 

로마의 건국으로부터 제국의 멸망까지 다루는 데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또다른 역사는 수많은 이민족들의 역사다. 여기에 포함되는 국가와 민족들은 쉽게 말하자면 아메리카 신대륙을 빼고는 거의 다 포함된다고 봐도 좋다. 로마 제국의 영토와 겹쳤던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이란, 이라크, 사우디 정도로만 그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는 물론 저 멀리 볼가 강과 돈 강 너머에 살았던 러시아 대륙, 티무르가 지배했던 중앙아시아, 징기스칸의 몽골, 무굴제국의 인도, 중국은 물론 '고려(Corea)'까지도 두루 자세히 언급된다.

 

이 작품이 다루는 역사적인 무대의 시공간적인 방대함이야말로 외형적으로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봐도 좋다. 물론 아놀드 토인비가 쓴 『역사의 연구』라는 작품이 전 인류의 전 지구적인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훨씬 더 방대한 시공간을 자랑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로마의 기나긴 역사에 대한 기번 특유의 깊이 있는 고찰, 로마 제국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았던 수많은 이민족 국가들과의 경쟁에 대한 상세한 연구(게르만족, 사라센족, 페르시아, 몽골족, 타타르족, 투르크족 등), 십자군 전쟁에 관한 자세한 연구,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과 종파 간의 갈등, 그리스도교 세력들과 이슬람 세력들과의 분쟁 등을 포함하는 기번의 방대하고 깊이 있는 연구는 토인비의 작품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그 어떤 역사책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방대함과 깊이를 자랑한다.

 

기번의 역사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이 느끼게 되는 특별한 감동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저자의 방대한 독서 경험과 놀라울 정도로 비상한 기억력이다. 그는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기록해 나가는 동안에 특별히 기억할 만한 역사적 장소와 장면을 묘사할 때마다 거기에 딱 어울릴 만한 또다른 인물이나 장면들을 다른 책에서 끌어와 절묘하게 겹쳐 놓는다. 똑같은 무대에서 주인공만 바뀐 채 500년 혹은 1000년의 간극을 두고 벌어지는 '영웅들의 행위'를 비교하는 재주야말로 기번을 따를 역사가가 없을 듯하다. 그가 로마의 역사를 설명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불러 내는 인물들은 역사상으로 실재했던 영웅들도 많지만, 특별히 문학작품들로부터 인용하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이다. 단순히 로마 제국의 영토가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와 겹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번의 호메로스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웅숭깊은 데가 많다. 훗날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율리아누스를 설명하는 몇몇 대목들만 보더라도 그는 호메로스를 얼마나 자주 불러냈던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카였던 율리아누스가 제위에 오르기 전, 사실상 볼모나 마찬가지 상태에서 로마 황제였던 사촌 형님 콘스탄티우스와 함께 전차를 타고 궁정으로 귀환하는(사실상 끌려가는) 동안 마음 속으로 암송했던 싯구절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운데 어떤 대목이었다는 식의 설명은 얼마나 놀라운가. 율리아누스 황제는 특히 웅변 실력도 탁월했는데, '호메로스의 연구'를 통해 그런 실력을 갈고 닦았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메넬라우스의 단순하고 간결한 화법, 겨울의 싸락눈처럼 쏟아져 나오는 네스토로의 달변, 오뒷세우스의 감상적이면서도 호소력 있는 웅변을 모방하는 방법이야말로 율리아누스가 호메로스를 열심히 공부한 덕분이라는 식이다.

 

기번이 호메로스를 어떤 식으로 인용했는지 두 대목만 더 소개하고 넘어 가자.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경기 대회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그리스에서는 저명한 이들이 직접 경기에 참가한 반면, 로마에서는 관람객들이 저명한 이들이었다는 것이다. 올림피아 경기장은 부와 공훈, 야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었다. 경기에 출전하는 자가 스스로의 기술과 민첩함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면 디오메데스와 메넬라오스의 발자취를 따라 전차를 전속력으로 몰아 봄직도 했다.(56쪽)

 

(기번의 주석)

『일리아스』 23권을 읽어 보면 전차 경주의 방법과 예절, 그 열정과 정신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고대 올림피아 경기에 관한 학술 논문을 보면 더욱 흥미진진하고 근거가 분명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그는 거친 군대 생활을 통해 강인한 심신을 무쇠처럼 단련했다. 스뱌토슬라프는 곰 가죽으로 몸을 감싸고 말안장을 베개 삼아 땅 위에서 잠자곤 했다. 그는 먹는 음식도 거칠고 소박해서 호메로스의 영웅들처럼 고기를(주로 말고기) 석탄에 구워 먹었다. 실전을 거치면서 그의 군대는 안정되고 규율이 잡혀갔다. 대장이 누리는 것 이상의 사치를 감히 누릴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532쪽)

 

(기번의 주석)

『일리아스』 9권에 나오는 아킬레스의 식사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서사 시인이 이런 묘사를 했다면 자기 작품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독자들의 비위를 거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서사시는 조화로우며 사어(死語)라서 실감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2700년의 세월을 둔 지금으로서는 고대의 원시적인 풍습에 재미를 느낄 따름이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호메로스 다음으로 자주 인용되는 인물들은 고대의 시인, 철학자, 역사가들이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 등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와 희극을 쓴 메난드로스,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 철학자 키케로, 역사가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리비우스, 타키투스, 플루타르코스가 대표적이다. 기번과 비교적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도 자주 인용되는데, 손에 꼽을 만한 인물들은 페트라르카, 마키아벨리,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밀턴, 몽테스키외, 볼테르, 데이비드 흄, 루소, 아담 스미스 등이다.(특히 볼테르,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는 기번과 직접적으로 교류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쓴 작품 속의 내용들이 얼마만큼 정교하게 '로마제국 쇠망사'에 녹아드는지는 기번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지 모르겠다. 가령 셰익스피어가 쓴 『헨리 4세』의 주인공은 내란을 통해 권력을 찬탈했기 때문에 무너져 가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더라도 도와줄 여력이 전혀 없었다는 설명과 함께 이런 '놀라운 주석'을 덧붙인다.

 

여러 날 런던에 머무는 동안 마누엘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영국은 성전에 참여할 준비를 하기에는 프랑스보다도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다. 이 해에 세습 국왕이 왕위에서 쫓겨나 사형을 당한 데다가, 지금의 왕 헨리 4세는 왕위를 성공적으로 찬탈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야망에 대한 벌을 받기라도 하듯이 시기심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게다가 랭커스터 가문 출신의 헨리 4세는 끊임없이 왕좌를 위협하는 음모와 반역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성전에 직접 참전하는 것은 고사하고 병력을 빌려 줄 여유조차 없었다. 헨리 4세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의 처지를 동정하고 그의 인품을 칭송하며 연일 연회를 베풀어 주기만 할 뿐이었다. 이때 만약 영국의 군주가 십자가를 메는 체 했다면, 그것은 경거한 대의명분을 따르는 시늉으로 신민들의 마음과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다.(394∼395쪽)

 

(기번의 주석)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는 왕이 십자군 서약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맨 마지막에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극을 마친다.

 

(나의 생각)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라는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나는 그 작품을 읽고 난 뒤로도 헨리 4세가 다 쓰러져 가는 동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간절한 파병 요청을 받았을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한 적이 없었다. 또한 그 작품이 시작되는 부분이 '십자군 전쟁'과 연관된 줄도 전혀 몰랐다. 또한『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으면서 헨리 4세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느끼게 될 줄도 몰랐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책의 표지를 뒤집어 펼치면 각 권마다에 해당하는 세계 지도가 펼쳐진다. 겉표지를 벗긴 책의 모습은 왠지 너무 고색창연한 색상이어서 조금은 아쉽다.)

 

이토록 많은 인물들의 작품을 『로마제국 쇠망사』에 절묘하게 버무려 녹여 낸 기번의 박학다식함과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독자가 얼마나 될까. 기번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주 느꼈던 생각 가운데 하나는 훌륭한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체력뿐만 아니라 책력(冊歷, '책을 읽은 이력'을 뜻하는 나만의 신조어)도 알맞게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기번의 책들을 읽는 동안에 내가 이미 읽었던 책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얼마나 기쁘고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걸 느꼈던가. 기번의 책들을 읽는 동안에 내가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무수한 책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얼마나 의기소침해지고 시무룩해졌던가.

 

이 책을 읽은 감회를 정리하기 위해 '기번의 서재 쪽으로' 향했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언급할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기번의 문장력이다. 기번 특유의 지독한 만연체는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가 없다. 6권을 읽는 동안에 '만연체' 때문에 문장의 정확한 뜻을 해독하는데 애를 먹은 경우가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아마도 기번에게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는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났다고 믿고 싶다. 그런 문장들만 제외한다면 기번의 독특한 만연체가 독해를 특별히 방해한다거나 작품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도리어 특유의 긴 호흡 한 번으로 유장하고도 장중하게 역사를 매조지하는 점에서는 기번의 만연체만큼 멋들어진 역사 서술도 찾기 어렵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기번의 역사책 속에서 가장 매혹적인 문장들은 아마도 '너무나 문학적이거나 철학적인 표현들'을 역사 서술에 서슴없이 과감하게 도입했다는 점일 듯하다. 그런 문장들은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자주 등장하는데, 빛나는 명문장들을 일일이 여기에 소개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수도사들은 독방에서 보내는 낮 시간에는 개개인의 신앙이나 열정에 따라 묵도나 통성 기도를 했다. 저녁이 되면 모두 모여서 밤이 되어도 자지 않고 수도원의 공공 예배에 참석했다. 이집트의 맑은 하늘에는 거의 구름이 끼는 일이 없었으므로 정확한 시간은 별의 위치로 정해졌다. 예배 시간을 알리는 신호는 투박한 모양의 뿔피리나 나팔을 두 번 울려 광활한 사막의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불행한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라 할 수 있는 수면마저도 엄격히 제한되었다. 노동도 쾌락도 없는 수도사들의 공허한 시간은 느릿느릿 무겁게 흘러갔으므로, 하루가 끝나기 전까지 그들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태양의 지루한 발걸음을 탓했다.(448∼449쪽)

 

 - 『로마제국 쇠망사_제3권』

 

 

십자군 전쟁의 일단을 소개하는 대목은 이렇게 멋지게 마무리된다.

 

왕실 역사가인 아불페다는 하마 부대에 종군하면서 성전을 직접 목격했다. 아무리 타락한 프랑크인이라 해도 열정과 절망으로 용기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들은 열일곱 명이나 되는 대장들의 불화로 갈가리 찢겨 사방에서 술탄의 병력에 제압당했다. 33ㅇ리간의 공방전 끝에 이중 성벽이 이슬람군에게 돌파당하고, 중심 탑도 그들의 공성 무기 앞에 무너졌다. 마말루크인들의 일제 공격에 도시는 초토화되고, 6만 명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죽음 아니면 노예가 디는 운명을 맞았다. 요새에 가까운 템플 기사단의 수도원은 사흘을 더 버텼으나, 대장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며 500명의 기사 중 살아남은 자는 단 열 명이었다. 그러나 부당하고 잔인한 사형 명령에 따라 교수대에서 고통을 겪었다는 점에서 칼에 찔려 죽은 자보다 운이 나빴다. 예루살렘 국왕, 총대주교, 요하네스 기사단의 대장은 해안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바다는 거칠었고 배도 부족했다. 대부분의 도망자들은 키프로스 섬에 닿지 못하고 익사했다. 술탄의 명령으로 라틴인들이 건섫나 도시의 교회와 요새들이 파괴되었다. 탐욕이나 공포심 때문에 여전히 일부 신앙심 깊은 비무장 순례자들에게 성묘로 가는 길을 열어 주기고 했으나, 세계적인 항쟁이 그토록 오랜 세월 메아리쳤던 해변에는 이제 슬픔에 잠긴 고독의 침묵만이 깔렸다.(113∼114쪽)

 

 - 『로마제국 쇠망사_제6권』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진두지휘한 끝에 완성된 성 소피아 성당을 묘사한 대목은 또 얼마나 철학적인가!

 

어느 시인은 성 소피아 성당의 초기 모습의 광휘를 보고, 10∼12종의 대리석과 벽옥, 반암의 색상과 음영 그리고 반점까지 하나하나 다 열거하면서, 특히 각 광석의 반점은 자연이 매우 열심을 다하여 다양하게 만들어 낸 것으로 마치 매우 뛰어난 화가가 배합하고 대조시킨 것 같다고 감탄했다. 그리스도의 승리로 이교도들에게서 빼앗아 온 마지막 노획품으로 이 성당을 장식하기도 했지만, 그 값비싼 돌의 대부분은 소아시아의 채석장, 그리스 본토와 여러 섬들, 이집트, 아프리카, 갈리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 둥근 천장의 빛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했다. 지성소에는 4만 파운드가 넘는 은이 사용되었고, 성스러운 물병들과 제단의 옷들은 순금으로 만들어지고 수많은 보석들로 장식되었다. 이 교회가 땅에서 위로 2큐빗의 높이가 되기 전에 이미 4만 5200파운드의 돈이 소비되었고, 결국 전체 비용은 총 32만 파운드에 이르게 되었다. …… 장엄한 성전은 그 나라의 취향과 종교를 반영하는 칭찬할 만한 기념비이다. 열렬한 신자는 성 소피아가 신의 거처이거나 심지어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건축물도 성전 바닥을 기는 가장 하찮은 벌레가 만들어 놓은 벌레집과 비교해 보면, 인간의 재주란 얼마나 둔하고 그 수고는 얼마나 하찮은지!(93∼94쪽)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장구한 세월에 걸쳐 펼쳐지는 무수한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을 두루 살펴보노라면 새삼 인간의 삶이 하찮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는 그 드넓은 공간이라고 해 봐야 기실 지구에서 충분히 멀리 벗어난 거리에서 바라보면(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그만큼 멀리 떨어진 우주탐사선에 딸린 특별한 눈으로 그런 광경을 생생하게 바라봤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빛나는 창백한 푸른 점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머나먼 우주 밖에서 보내온 한 장의 감동적인 사진에 마음을 온전히 다 빼앗긴 채 로마 제국의 드넓은 영토를 한낱 부처님의 손바닥 가운데 일부인 것처럼 하찮게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우리의 현실 공간으로 돌아 오자.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는 수많은 도시들과 바다와 강과 산맥들은 우리의 귀에 익숙한 경우보다는 낯선 경우가 훨씬 많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옛 지명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그 이름이 변치 않은 도시들, 가령 로마, 밀라노, 라벤나, 나폴리, 베네치아, 파리, 아테네,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메카, 메디나 등을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쉽지만, 그 반대인 경우에는 보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인터넷을 뒤져야 하는 번거로움도 뒤따랐다.

 

카르타고는 오늘날의 튀니스 북동쪽 도시, 틴기스는 오늘날의 탕헤르, 싱기두눔은 오늘날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베로이아는 오늘날 시리아 북부 도시인 알레포, 니시비스는 지금의 터키 누이시빈, 아미마는 지금의 터키 디얄바클, 싱가라는 지금의 이라크 신자라, 안티오크는 지금의 터키 안타키아, 나이수스는 지금의 유고슬라비아 니슈, 무르사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오시예크, 크테시폰은 지금의 이라크 테시폰, 트레브는 지금의 독일 트리어로 명칭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읽는 작업은 흥미로울 때도 있지만 독서의 흐름을 방해할 때도 많았다.

 

수많은 프랑크족과 알레만니족이 보상이나 약속을 믿고, 혹은 전리품을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혹은 그들이 정복하는 영토는 영원히 그들 소유로 해 주겠다는 보장을 믿고 라인 강을 건넜다. 그러나 임시 방편으로 이렇듯 경솔하게 야만족들의 탐욕을 부추긴 황제는 일단 로마의 비옥한 영토 맛을 본 이 막강한 야만족 동맹군들을 다시 쫓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고 후회해야만 했다. 이 제멋대로인 도적떼들은 충성과 반역도 구분하지 못하고 그들이 원하는 재산을 소유한 로마인이라면 누구든 적으로 간주했다. 통그르, 콜로뉴, 트레브, 보름스, 슈파이어, 스트라스부르크를 비롯한 마흔다섯 개 도시와 그보다 훨씬 많은 마을과 촌락들이 그들에게 약탈당해서 대부분 잿더미로 변했다. 여전히 조상들의 신조를 충실하게 지키던 게르마니아 야만족들은 벽을 쌓고 그 안에 틀어박히는 것을 혐오하면서 그런 곳을 감옥이나 무덤 등으로 불렀다. 그들은 라인 강, 모젤 강, 뫼즈 강변에서 독립 가옥들을 짓고 큰 나무를 쓰러뜨려서 길을 가로막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기습 공격의 위험에 대비했다.(134쪽)

 

(나의 생각)

통그르는 벨기에의 통게렌, 콜로뉴는 독일의 쾰른, 트레브는 독일의 트리어, 보름스와 슈파이어는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 주의 보름스와 슈파이어, 스트라스부르크는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도시로 프랑스어로는 스트라스부르, 독일어로는 스트라스부르크로 불린다. 유럽의 도시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변방의 독자들은 이들 도시가 옛 이름인지 현재 쓰이는 이름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나는 이들 도시 가운데 트리어만 가 봤고, 트리어를 떠난 뒤 스트라스부르크를 그냥 지나쳤던 일을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는 수많은 도시들과 산과 강들을 살필 때는 '구글 어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수만 혹은 수십 만의 군대가 건곤일척의 대전투를 벌였던 유명한 장소들이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폐허로 변한 곳도 드물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위치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장소라고 하더라도 그토록 유명한 전쟁이 과연 로마 제국의 어드메쯤에서 일어났는지를 지구의를 돌려 보듯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현대인들에게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다. 기번이 유럽의 온갖 도서관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켜켜이 먼지가 쌓인 채 낯선 고대의 언어들로 쓰여진 수많은 사료들을 뒤지거나, 혹은 고대 여행자들의 온갖 자질구레한 기록들과 지리지(志)들까지 꼼꼼하게 살피고 비교 검토한 끝에 최대한으로 오류를 바로 잡아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위치 정보는 오늘날의 독자들이 그냥 책상 앞에 앉아서 편리한 검색과 클릭만으로 찾아가기가 미안할 정도다.

 

아무튼 그렇게 드넓은 로마 제국의 영토들을 (기번의 문장과 구글 어스를 따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가끔씩 '나도 이미 가 봤던 장소들'을 마주치는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이탈리아의 로마,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같은 도시들은 단 한 번밖에 찾지 못했지만 그런 도시들을 가 보지 못했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은 아찔한 생각마저 들었다.(특히 '제국의 수도'로서 너무나 특별했던 도시인 로마에 대한 기번의 언급은 너무나 상세하면서도 자주 반복되기 때문에 그 도시를 미처 가 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엄청난 여행 욕구를 불러일으킬 게 틀림없다. 바티칸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들, 성 베드로 대성당,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포로 로마노 등등에 대해서 기번은 얼마나 자주 감탄하며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던가.)

 

프랑스의 경우 수도인 파리밖에 가 보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다. 아비뇽, 아를, 릴, 스트라스부르크 등등의 도시들에 대해 단 하나의 이미지조차 떠올리지 못한다는 건 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독일의 여러 도시들(뮌헨, 베를린, 드레스덴, 하이델베르크, 트리어 등)을 여행했던 경험은 기번의 책을 읽는데 특히 도움이 되었다. 이집트의 카이로, 멤피스, 아스완, 리비아 사막 등을 여행했던 경험은 그리스도교의 발달과 이집트 수도원의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데 유익했다.(알렉산드리아를 빠트린 건 두고두고 아쉽다. 기번의 책에서도 이 도시는 특별 취급을 받는다.)  저 멀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와 실크로드와 티무르의 무덤을 찾았던 여행 경험은 타타르족의 대활약을 다룬 대목들을 읽을 때 특히 유익했다. 유럽을 여행할 때 구경했던 여러 강들도 독서에 보탬이 됐다. 이집트의 나일 강, 독일의 라인 강, 모젤 강, 엘베 강, 네카 강, 동유럽을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을 여행지에서 만난 경험은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기번의 독서와 결합될 때 한층 강렬하게 되살아났다. 지중해, 아드리아해, 북해, 대서양까지도 여행지에 포함시킨다면 너무 지나친 걸까.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는 동안에 맞닥뜨리는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이 여전히 내게 단 하나의 이미지도 불러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그건 로마 제국이 그만큼 드넓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유럽권의 독자들이 유럽을 이웃나라처럼 쉽사리 드나들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라벤나, 볼로냐, 피사, 파비아, 제노아, 팔레르모 등), 스페인(바르셀로나, 톨레도, 발렌시아, 코르도바, 세르비아, 그라나다 등)과 포르투갈(리스본), 아프리카의 여러 도시들(알렉산드리아, 트리폴리, 카르타고, 탕헤르 등), 그리스(아테네, 크레테 등), 터키(콘스탄티노플, 아드리아노플, 니케아, 에페수스, 안티오크, 알레포 등),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메카, 메디나, 바그다드,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흑해, 홍해, 카스피해 등등 수많은 도시들과 강과 바다가 내겐 여전히 미답의 상태로 남아 있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이제 다시 기번의 책으로 들어가 보자.

 

『로마제국 쇠망사』에는 흔히 '기번의 잡담'이라고 불리는 저자의 각주가 엄청나게 붙어 있다. 기번이 원본에 달아놓은 깨알같은 각주는 무려 8,3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국내 완역본 기준으로 따져 보더라도 한 페이지에 평균 2개가 넘는 각주가 딸려 있는 셈이다. 영문판조차 이 방대한 주석이 부담스러워 4,700여 개로 대폭 줄인 '버리 판'이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완역본이라고 자부하는 민음사 판본 또한 이 판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아무튼 기번의 각주가 너무나 방대한 까닭에 번역자의 주석이 단 하나도 붙지 않는 건 아쉽다. 온갖 함축과 비유가 가득 담긴 기번 특유의 문장들에 대해 '번역자의 주석' 하나 없이 독자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 책을 모조리 읽어내야 한다는 사실은 그만큼 적잖은 선행 독서를 요구하는 셈인지도 모르겠다.(유럽의 지리뿐만 아니라 종교, 문화, 역사 등에 두루 생경할 수밖에 없는 비유럽권 독자들이 기번의 역사책을 능숙하게 독파하기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선행 과제로서 다음 두 가지를 권장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서유럽과 동유럽을 적어도 두세 번쯤은 여행할 것. 많을수록 좋으니 서양 고대의 이름난 고전들을 최대한 많이 읽을 것. 물론 이 책부터 먼저 읽고 난 뒤에 강렬한 자극을 받고 나서 서둘러 유럽 여행길에 오르거나, 서양 고전들을 부지런히 찾아 읽는 정반대의 접근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방대한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의 말미마다 적어 두었던 메모를 보노라니 이 책에 담긴 내용이 얼마나 풍성했던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까마득한 옛날 <세계사 수업 시간>에 주마간산 격으로 배웠던 온갖 세계사적 사건들을 기번의 책을 통해 비로소 소상하게 알게 되는 건 '기본 소득'일 뿐이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옮겨오게 되었는지, 암살자(assassin)라는 단어가 페르시아의 전멸한 종교 분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산 마르코 대성당을 장식하는 네 마리의 청동 기마상은 언제 어떤 경로로 베네치아로 옮겨 오게 되었는지, 풍차의 기원, 화약의 발명과 사용, 인쇄술의 발명, 제지술의 전파, 나침반의 발견, 전서구의 도입, 체스 게임의 기원, 결투의 기원 등에 관해 박학다식한 역사가로부터 명쾌하고도 상세한 '역사적 설명'을 듣는 건 뜻밖의 소득이다. 또한 숱한 인물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며' 남긴 촌철살인의 명연설이나 위대한 인물들이 남긴 주옥 같은 대화나 기록들은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로 교훈적이고 훌륭하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1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2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3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4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 『로마제국 쇠망사_제6권』 을 읽는 동안에 적은 메모들

 

『로마제국 쇠망사』는 단지 우리가 교실에서 배웠던 역사의 큰 물줄기들에 관한 역사적 고증과 고찰만 다루는 책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로마제국 쇠망사』에 담긴 무수한 대사건들만 따로 떼놓고 보면 오늘날의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을지도 모른다. 고대 로마가 웅장한 건축물들로 장식된 과정,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로마제국 재통일과 그리스도교 공인 과정, 그리스도교의 발전 과정에 나타난 다양한 분파들간의 분쟁,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 과정,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법전 편찬과 정복 사업들, 이슬람교의 발생과 전파 과정, 십자군 전쟁의 발생 원인과 진행 경과, 징기스칸의 몽골족과 티무르의 타타르족 서정(西征), 동로마 제국의 쇠락과 오스만 제국의 부상,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제국의 소멸 등은 그 자체로 인류 역사의 대사건들임엔 틀림없지만, 하루 하루를 바삐 살아가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는 그저 머나먼 과거에 일어났던 온갖 거창한 사건들을 명명하는 타이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낸 건 결국 사람이었다. 그들이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 자신의 시대를 영광스럽게 장식했는지 혹은 오욕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는지를 살피는 일이야말로 역사를 읽는 또다른 중요한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욕망 가운데 가장 강렬하다는 권력욕과 성욕과 재물욕을 위해 제위 찬탈은 물론 골육상쟁을 마다않는 온갖 인간 군상들의 우행과 만행, 황제가 지닌 무소불위의 권력을 오로지 개인의 뒤틀린 욕망에만 허비해 버린 한심스런 제왕들의 언행들을 통해 기번은 끊임없이 인간 행위의 불완전성과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인류의 위대한 예술혼들이 빚어낸 온갖 찬란한 예술품들과 저작들과 건축물들이 한낱 종교적 편견과 무지 때문에 마구 짓밟히고 불태워지고 폐허로 변한 모습 앞에서 기번은 얼마나 탄식했던가. 인간의 무지와 맹목과 편견으로 빚어진 어리석은 행위들을 이만큼 장구한 세월에 걸쳐 빠짐없이 끌어모은 역사책도 다시는 구경하기 어렵지 싶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에드워드 기번이 일반인들로서는 감히 상상으로도 접근하기가 어려운 '칼리프의 삶'을 역사 연구에만 몰두했던 자신의 삶과 대비해 놓은 다음 이야기는 누구라도 한번쯤 곱씹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압달라만 3세 대왕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왕후 제흐라를 위해 코르도바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 도시와 궁전, 정원을 조성하였다. 모든 것을 완성하는 데 25년이라는 세월과 300만 파운드 이상의 돈을 썼는데, 인색함 없이 자신의 취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왕은 당대 최고 기술의 조각가와 건축가인 콘스탄티노플의 예술가들을 초빙했다. 스페인, 아프리카,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만든 1200개의 기둥은 장식적인 기능까지 하고 있었다. 알현실의 벽면은 황금과 진주로 장식되어 있었고, 중앙에 있던 거대한 연못 주위는 동물과 새의 진기하고 값비싼 조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 그런데 압달라만의 궁전에는 왕후와 후궁, 흑인 환관의 수가 무려 6300명에 달했다. 압달라만이 출정할 때면 1만 2000명의 기병이 그를 호위했는데 병사들의 언월도와 허리띠에는 금이 박혀 있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우리의 욕망은 가난과 종속으로 끊임없이 억압을 받지만 전제 군주에게는 무수히 많은 목숨과 노동력이 바쳐지는데, 전제 군주가 세운 법은 맹목적으로 집행되며 그가 바라는 것은 즉시 충족된다. 그 화려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대로 압도된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냉정하게 판단한다 해도 당시 왕족들이 누리던 보살핌과 안락함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완강하게 거절할 수 있는 이가 지극히 드물 것이다. 그래서 압달라만의 경험을 빌려 보는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가 선보인 호사스러움은 우리의 감탄과 선망을 자아낼 것이다. 그러면 이 칼리프가 죽은 뒤 그의 개인 방에서 발견된 믿을 만한 문서를 여기에 옮겨 보겠다.

 

나는 지금까지 약 50년 동안 평화와 승리 속에서 제국을 통치해 왔다. 백성들은 나를 사랑하고 적들은 나를 두려워하며 동맹국은 나를 존경한다. 부, 명예, 권력, 쾌락은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어서 지극히 행복하니, 지상에는 내가 누리지 못할 그 어떤 축복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온전히 내 몫이라 할 수 있는 진정으로 행복했던 날을 꼽아 보았더니 겨우 14일이었다. 오, 사람들이여! 현세의 것에 대해서 그 어떤 확신도 갖지 말지어다!

 

(390∼391쪽)

 

(기번의 주석)

솔로몬이 이 세상의 덧없음에 대하여 한탄했던 이 고백과(수도원장의 장황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시를 읽어 보라.) 세그헤드 황제의 행복했던 열흘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의 삶에 대해 중상모략하려는 자들에 의해 자랑스레 인용될 것이다. 이들의 기대는 과도하고 이들이 어림하는 정도는 공정하지 않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예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했던 시간은 스페인의 칼리프가 계산한 얼마 안 되는 숫자보다는 훨썬 더 많다. 그리고 나는 주저함 없이 덧붙여 말할 수 있는데, 그 시간 중 상당 부분이 지금의 글을 쓰는 동안에 느꼈던 행복이다.

 

 - 『로마제국 쇠망사_제5권』

 

 

오래 전부터 읽기를 열망했던 『로마제국 쇠망사』는 어느덧 다시 책장으로 되돌아갔고, 이 책을 읽은 감회를 쓰는 작업도 이제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아무리 고생스럽게 이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나에게 떡 하나 사 주지 않았다.'고 장난스럽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기번이 자신의 온 생애를 다 바쳐 그토록 힘겹게 연구하고 노력하여 웅편거작을 완성하는 동안에 '칼리프의 삶'보다 훨씬 더 많은 날들을 행복을 느꼈듯이, 쉽사리 읽기 힘든 기번의 대작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들은 다른 책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남모르는 희열을 느끼며 그런 즐거움을 오래도록 간직할지도 모르겠다.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오래도록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꿋꿋이 버티던 『로마제국 쇠망사』가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에서 어느덧 '이미 읽은 책'으로 변신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흐뭇해지니 말이다.

 

 - 내가 처음으로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은 건 2005년 무렵 대광서림판 축약본을 통해서였다.

    ☞ https://blog.aladin.co.kr/oren/624784

 

에드워드 기번은 이 대작을 끝맺는 글에서조차 '자신의 불완전함'과 자료 부족'을 탓했다. 로마 제국과는 너무나 먼 데서 태어나고 자란 일개 변방의 독자로서는 '지리적 불리함'과 더불어 '이해력 부족'과 '기억력 부족'을 탓하고 싶은 생각부터 앞선다. 이토록 방대한 내용을 담은 역사서를 단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제대로 이해했으며 또 앞으로 얼마만큼이나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 대작을 읽고 나면 다른 작품들이 일순간 얄팍해 보이는 듯한 착시 현상이 생긴다.

   이렇게 힘이 불끈 치솟을 때 해치울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리비우스의 로마사? 몸젠의 로마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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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6-29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정말 oren님의 치열한 독서는 귀감이 됩니다..... 절로 고개가 다 숙여지네요. 진짜 숙였어요....

oren 2019-06-29 13:54   좋아요 0 | URL
어떤 작품이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완성시킨 걸작들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두고두고 변치 않는 듯합니다.^^ 기번이 기울였던 엄청난 노력들에 비하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노고쯤이야 너무나 조촐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볼 때마다 기번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Angela 2019-06-29 0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쾌한 정리와 설명까지~대단하십니다. 몸젠의 로마사는 금방 해치우시겠어요~^^

oren 2019-06-29 14:06   좋아요 0 | URL
몸젠의 로마사는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아우구스투스 시대까지‘ 다룬 역사책이어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와는 시대적으로 전혀 겹치지 않아서 언젠가는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입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도 조만간 읽어볼 작정인데, 오래 전부터 숱한 인물들이 리비우스를 두고두고 칭송한 걸 보더라도(플루타르코스, 몽테뉴, 기번, 마키아벨리 등등) 그를 오래도록 외면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Nussbaum 2019-06-29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 님 ! 일단 엄청난 인내의 시간에 박수를 드립니다. 길고 긴 텍스트와 함께한 시간과 마음의 공간은 많은 것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

조만간 저도 뭔가를 정리하려고 하는데 약간의 두려움이 앞서네요 ^^

oren 2019-06-29 14:15   좋아요 1 | URL
Nussbaum 님 반갑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생각보다는 진도가 너무 잘 나가는 책이었답니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을 알고 싶어 인터넷을 뒤지느라 상당한 시간들이 소요되긴 했지만요. 아무래도 기번의 책에는 그 흔한 지도 한 장이나 그림 하나 곁들여진 게 없으니까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읽은 작품들을 제때 정리하지 않고 그냥 넘기고 나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가 되더라고요. 아무쪼록 Nussbaum 님께서도 뭔가 정리하시고자 계획중인 일을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카알벨루치 2019-06-30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작을 치열하게 읽으시고 대작같은 페이퍼를 쓰셨네욧! 와우! 오렌님 근데 서재에 묵직한 두개의 그 무엇은 스피커인거죠???

oren 2019-06-30 09:53   좋아요 1 | URL
상상력도 놀라우셔라! 저 외관만 그럴싸한 수납장 문짝을 스피커로 둔갑시키다니요!

저 두 문짝은 책장 수납장과 문짝 꼭다리일 뿐입니다요.

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저 문을 열어봤더니 온갖 잡동사니가 한가득이네요..

썬글라스, 벨트, 명함, 여행용 트렁크 자물쇠, 옛날 사진, 워크맨, 잡주머니, 경조사용 봉투, 연하장, 공학용 샤프 계산기, 필통, 수첩, 화투 2목, 알라딘 도서구입 영수증, 책 띠지 수백 개, 볼펜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잘한 것들이 들어앉아 있네요. ㅎㅎ

FLAKSUIT 2023-06-13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 나군요! 사서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망설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
 

유전적 낭떠러지 764

또한 당구장의 살인자들과 그 희생자들은 무지하고, 가난하고, 미혼이고, 종종 직업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인간들처럼 일부다처로 사는 포유동물 사이에서 번식 성공률은 수컷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가장 치열한 경쟁은 성공 가능치가 0명에서 1명 사이를 오가는 수컷들이 몰려 있는 밑바닥에서 벌어진다. 남자들은 부와 지위로 여자를 유혹하기 때문에, 부와 지위가 없어서 여자를 얻을 방도가 없는 남자는 유전적 낭떠러지로 내몰리게 된다. 굶주림이 극에 달하면 위험한 영토로 뛰어 들어가는 새들이나, 1점 차이로 지고 있고 1분 후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에서 골키퍼를 빼고 공격 선수를 집어넣은 아이스하키 감독처럼, 미래가 없는 미혼 남자는 어떤 위험도 감수할 것이다. 밥 딜런이 노래했듯이,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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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데, 역사상 사건에서 이른바 위대한 인물은 그 의미가 작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실로 비극적이고 방대한 사건들로 넘쳐나며, 우리에게 친근하고 다양한 구전이 아직 생생한 시대를 연구하는 가운데, 나는 역사상 사건의 원인에 우리의 이성적 이해가 미치지 않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1812년에 일어난 여러 사건의 원인이 나폴레옹의 침략 야욕이나 알렉산드르 황제의 애국심 때문이라는 말은 (이는 누구라도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데), 로마제국의 몰락 원인이 이런저런 야만인이 자신의 민족을 서쪽으로 이끌고 온 데다 이러이러한 로마황제의 국가 통치가 나빴기 때문이라든가, 파내려가던 거대한 산이 무너진 것은 노동자가 삽으로 마지막 일격을 가했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무의미하다.

 

수백만 명이 서로 죽이려 들었고, 그 가운데 오십만이 죽은 사건의 원인이 한 사람의 의지일 리 없다. 한 사람이 산을 파서 무너뜨릴 수 없듯이, 한 사람이 오십만 명을 죽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원인일까? 일부 역사가는 그 원인이 프랑스인의 침략 야욕과 러시아인의 애국심이라고 한다. 또 다른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의 대군이 퍼뜨린 민주적 요소나, 러시아가 유럽과 연대해야 했던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왜 수백만 명이 서로 죽이기 시작하였으며 누가 그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는가? 이 무의미한 사건의 원인에 대해 과거를 더듬어 무수한 사변(思辨)이 가능하며 그 작업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방대한 양에 이르는 설명과 그 모든 설명이 단 하나의 목적에 맞춰지고 있는 점은, 그 원인이 무수히 많아서 단 하나만 지적할 수 없음을 반증한다.

 

무엇 때문에 수백만 명이 서로를 죽였을까?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그것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악행임을 알면서도 …….

 

그것이 필연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가을이 될 무렵의 꿀벌처럼, 혹은 동물의 수컷들처럼 서로를 죽이는 저 자연의 동물학적 법칙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는 이 두려운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진리로서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그러하다. 만약 어떤 행위를 할 때마다 자신이 자유롭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또 하나의 감각과 의식이 인간에게 없었다면 이 진리는 증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전체적인 견지에서 역사를 고찰하면, 우리는 다양한 사건의 발생 원인인 태고의 법칙을 의심 없이 확신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견지에서 보면 우리의 믿음은 정반대이다.

 

타인을 죽이는 인간, 네만 강을 건너라고 명령하는 나폴레옹, 직원으로 채용해 달라고 청원하거나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할 때의 당신이나 나 ㅡ 우리는 모두 우리의 행위 하나하나가 이성적인 원인과 자유의지를 기초로 하며 어떤 행동을 할지 우리 나름대로 결정한다고 확신한다. 이 확신은 누구에게나 본질적이고 소중하여, 행위의 부자유성에 관한 확실한 논거나 범죄 통계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자유로운 의식이 모든 행위에 미치게 한다.

 

이 모순은 해결할 수 없을 듯하다. 우리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어떤 행위를 한다고 확신한다. 이 행위를 전 인류의 생활에 참여하는 의미(그 역사적 의이)로 고찰하면 나는 그 행위가 미리 결정되었으며 필연적이었음을 확신한다. 어디에 잘못이 숨어 있을까?

 

발생한 사실에 적합하도록, 존재하지도 않는 수많은 자유로운 사변을 한 순간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억지로 갖다 붙이는 인간의 능력을 심리학적으로 관찰하면(이에 대해 나는 다른 곳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다), 어떤 행위를 할 때의 인간의 자유로운 의식은 잘못되었다는 추측이 확실해진다. 그러나 역시 심리학적 관찰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자유로운 의식이 과거로 거슬러 오르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의심을 물리치는 다른 종류의 행위가 있다. 나는 의심 없이, 예컨대 유물주의자가 뭐라고 하든, 오직 나에게 관련된 행위라면 당장 그것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의심 없이 내 의지만으로 방금 손을 올리고 내렸다. 나는 당장 글쓰기를 중단할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즉시 읽기를 중단할 수 있다. 의심 없이 내 의지 만으로 모든 장애를 넘어 지금 즉시 머릿속으로 미국에 갔다가 어떤 수학 문제를 떠올렸다. 나는 자유를 시험하면서 손을 올려 힘껏 우주로 내리쳤다. 나는 정말 그렇게 했다. 그러나 내 옆에 아이가 서 있다. 그 아이의 머리 위로 손을 치켜들어 방금처럼 아이에게 내리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 아이에게 개가 달려든다. 나는 개를 향해 손을 치켜들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내가 전선에 서 있다면 연대의 움직임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나는 전쟁터에서 연대와 함께 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고, 모두가 도망칠 때는 나도 도망칠 수밖에 없다. 내가 피고의 변호인으로서 법정에 서 있다면 말을 하지 않거나 내가 떠드는 말을 모르면 안 된다. 무언가가 내 눈앞을 스치면 눈을 깜박이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두 종류의 행위가 있다. 하나는 내 의지의 지배를 받고 다른 하나는 받지 않는다. 그리고 모순을 야기하는 잘못이 생기는 이유는 '자아', 즉 가장 고도로 추상화된 내 존재와 관련된 모든 행위에 당연히 뒤따르는 자유로운 의식이 나와 타인의 자유의지를 일치시키려는 행위에까지 잘못 미치기 때문임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와 부자유의 경계를 밝히기란 심히 어려우며, 그것이 곧 심리학의 본질적이고 유일한 과제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유와 부자유의 조건을 관찰해 보면 우리 행위가 추상적일수록, 즉 타인의 행위와 결부되지 않을수록 자유에 가깝고, 반대로 우리의 행위가 타인과 결부되면 결부될수록 부자유에 가까워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도저히 떼어낼 수 없으며 답답하고 부단한 타인과의 결부는 타인에 대한 권력이라 일컬어질 뿐, 그 참된 의미는 단지 타인에게 가장 많이 속박되는 것이다.

 

집필하는 동안 시비를 불문하고 나는 이상과 같은 것을 확신했다. 이에 이 예정된 법칙이 가장 또렷이 나타나는 1807년, 특히 1812년의 역사적인 여러 사건의 묘사에 즈음하여, 사건을 지배하는 듯 보이지만 다른 관련자에 비해 자유로운 인간적 행위를 그다지 보여주지 못한 사람들의 행동에 의의를 부여할 수 없었다. 그들의 행동이 내 흥미를 끈 것은 역사를 지배하는 예정된 법칙의 예증이라는 의미, 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무수한 사변을 공상 속에 만들어내는 심리적 법칙의 예증이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더할 나위 없이 부자유스러운 행위를 하는 인간에게 나는 내 자유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1714∼1717쪽)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에 대한 몇 마디 말들>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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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자유와 힘을 밑천으로 하나의 살아 있는 것,

아름답고 신비한 불멸의 새 비상체(飛翔體)를 오만하게 창조해 보리라.

 

 -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중에서

 

 * * *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T. S. 엘리엇의『황무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아홉 번째 권 『소돔과 고모라Ⅱ』,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두이노의 비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이런 걸작들 사이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들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해에 쏟아져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94년 전인 1922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해 5월 18일 저녁에 파리에서 있었던 놀라운 에피소드 하나가 후세 사람들의 흥미를 더욱 자극한다. 그날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는 우연히 '난생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만났다.

 

두 작가는 그날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초연을 축하하는 파리의 저녁 만찬에 우연히 함께 참석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두 사람이 만찬 주최자로부터 서로 소개를 받은 뒤에 벌어진 일에 대해 훗날 조이스가 친구에게 밝힌 내용이 어딘지 모르게 심상치 않다.

 

우리의 대화는 "아니요"라는 말로만 이루어졌네. 프루스트는 나더러 아무개 공작을 아느냐고 묻더군. 내가 그랬지. "아니요." 여주인은 프루스트에게 『율리시스(Ulysses)』의 이런저런 대목을 읽어보았는지 물어보더군. 그러자 프루스트가 말했지. "아니요." 이런 식이었지.(154쪽)

 

 -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중에서

 

 

물론 두 사람의 만남은 이런 식의 대화로 싱겁게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 두 사람은 그날 저녁에 택시까지 함께 타고 귀가할 정도로 잠시나마 무척 가까워졌던 모양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좀 더 끌어와 보자.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는 1922년 5월 18일 처음 만났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여우』초연이 끝난 날 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를 위한 파티에서였다. 무대 장식을 맡은 파블로 피카소도 참석한 자리였다. 나중에 프루스트는 택시로 조이스를 집에까지 태워다줬다. 가는 길에 술에 취한 아일랜드 작가는 프루스트에게 그가 쓴 것은 단 한 단어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떠들었다. 프루스트는 대단히 불쾌해서 차에서 내려 리츠 호텔로 갔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프루스트에게는 식사가 되는 곳이었다.

 

 - 피터 왓슨, 『생각의 탄생Ⅱ』중에서

 

이들 두 사람의 이야기에 얽힌 공통점은 무엇을까. 결국 둘 모두 공교롭게도 '서로의 작품을 전혀 읽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는 1922년 2월 2일에 파리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프루스트는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1922년 11월 18일에 영면했다.) 당시 두 사람은 모두 파리에서 살았고, 그들이 발표한 걸작들이 당연히 온통 '파리의 화제'였을 터인데도 왜 그들은 상대방의 걸작을 읽지 않았을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를 다시 오늘날로 되돌려 보자.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 이들 두 작가들을 두고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공통점은 어떤 게 있을까. 문학 고전에 얼마쯤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방 세 가지 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으리라. 첫째, 둘 다 문학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소설을 썼다는 점. 둘째, 두 작품 모두 그 어떤 작품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대단한 분량을 지닌 소설이라는 점, 셋째, 두 작품 모두 읽기 힘든 작품이어서 아무에게나 쉽게 읽히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

 

나도 여태껏 두 작가의 걸작들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부터 읽기 시작했다. 과연 익히 알려진 그대로였다. 벼르고 별러서 집어든 책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어느 독서 대가의 충고대로, 나는 이 책을 읽기에 앞서『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더블린 사람들』을 먼저 읽었고 그 직후에 곧바로 『율리시스』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하지만 독서 대가의 충고가 무색하리만치 '제임스 조이스의 앞선 두 작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율리시스』는 '너무나 방대하고도 난해한' 책이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천재성이 이토록 놀랍고도 비상(非常)한 것이었던가를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나 할까.

 

(나는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판본으로 읽다가, '제4개역판'이 나오자 말자 서둘러 새로 나온 책으로 바꿔서 읽고 있다. 솔직히 두 판본 간의 번역의 차이는 잘 느끼기 어렵다. 새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책의 무게'가 훨씬 거벼워졌다는 점이다. 이제야 비로소 겨우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도대체『율리시스』읽기의 난해함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들은 대략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겠지 싶다. 우선, 이른바 에피파니로 불리는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른 서술 방식이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의 '의식' 속에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혹은 '하루 종일 의식을 적시고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아무 데서나 작가가 불쑥불쑥 꺼내 놓기 때문에, 등장 인물들의 '의식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가 보지 못하는 독자들로서는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는 수많은 다른 작품 속에 담긴 내용들에 대한 '인유' 때문에 겪는 난해함이다. 사실 제임스 조이스는 '독자의 평균적인 독서 형편'을 거의 또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니 이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숱한 문학작품들이나 음악(주로 오페라 또는 민요)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이 겪을 고충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중될 게 뻔하다.

 

세 번째로는 숱한 언어 유희를 포함한 '언어의 창의적 표현 기법'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엔 물론 원작에 쓰인 다양한 언어 유희를 적당한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번역의 근본적인 한계' 또한 포함된다. 이외에도 이 작품을 읽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를 몇 가지 더 내세울 수 있겠지만(가령, 숱한 성경 대목에 대한 인유를 통한 다양한 종교적·신학적 문제 제기와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에 얽힌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 부족 등) 그런 점들은 어느 작품에서든 흔히 대두될 수 있는 일반적인 문제로 볼 수도 있기에,『율리시스』만의 고유한 난해성으로 언급하기에는 다소 부적절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간과하는 게 좋을 듯하다.

 

이런 '다양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여전히 독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주제'가 누구에게라도 예외없이 적용할 수 있는 '인생의 온갖 문제들'을 엄청나게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주제는 어쩌면 '우리의 놀랍도록 다채로운 삶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싶다. '인간 삶의 온갖 다양하고 풍요로운 모습들'이 총망라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우리의 삶의 본질을 구성하는 온갖 생리적이고도 심리적인 요소들 가운데 이 소설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가 과연 있기나 할까 싶을 만큼 풍성하다. 그러니 제임스 조이스가 그 방대한 '인간 삶의 온갖 요소들'을 이 작품 속에 모조리 쏟아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이 작품 속에 끌어들이기 위해 애를 썼을지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일지 모르겠다.

 

소설의 외관상의 형식은 어쩌면 극히 단순하다. 주인공인 신문 광고업자 블룸이 1904년 6월 16일 하루(이른바 '블룸스데이') 동안 더블린에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겪는 일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뒤따라가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블룸의 하루'가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것도 아니다. 비록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 등장하는 '오뒷세우스의 놀라운 방황과 극적인 귀환'에 그 구조를 빌린 형식이긴 하지만, 블룸의 일상은 영웅 오뒷세우스보다는 훨씬 더 일상적이고 평화스럽고 평범하기만 하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친구의 장례식에 들렀다가, 사회생활(신문 광고업)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만나고, 주점에 들러 술을 마시기도 하고, 해변에서 산책도 하고, 밤늦게 다시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와 아내가 깰까 봐 살며시 침대로 기어들어가 그 옆에 눕는 것으로 블룸의 하루는 끝난다. 거기서 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유명한 마지막 장이 길게 이어지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그건 바로 블룸의 아내 '몰리의 독백'이다. 몰리가 서서히 잠에 빠져들기 전에 그녀의 '의식' 속에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묘사하는 부분은 구두점 하나 없는 단 하나의 문장이다. Yes로 시작하여 Yes로 끝날 때까지 무려 4만 단어가 끝없이 펼쳐진다. 결국 이 방대한 작품을 통해 제임스 조이스가 마음껏 표현하고자 했던 건 '하루하루의 삶 속에 담긴 놀라운 인생의 풍요 그 자체'였다.

 

(쉼표나 마침표 하나 없이 깨알같은 글씨가 끝없이 이어지는 '몰리의 독백' 부분. 제4개역판으로 37쪽 분량.)

 

작품 속의 두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과 시인이 되기를 지망하는 스티븐 데덜러스(『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동일 인물이며 작가 자신의 분신)의 '눈'과 '의식'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계는 가히 '요지경'이라 부를 만큼 풍성하지만, 작가가 드러내고자 했던 그런 '삶의 풍요'와 '삶의 다양한 외관과 내면'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물론 앞서서 미리 언급했던 '율리시스 읽기의 난해함'을 끊임없이 극복하기 위해 독자가 끙끙거리며 애를 쓰는 수고가 따를 수밖에 없다. 나도 아직 이 난해하고도 풍성한 소설을 미처 다 읽지 못했지만 여태까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끄적거린 노트 몇 쪽만 보더라도 이 작품이 지닌 방대한 넓이와 깊이에 대해 거듭 감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총 18장으로 이뤄진 이 작품을 11장까지 읽은 뒤에 잠시 본문 읽기를 멈췄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12장 이후부터의 '주석'부터 끝까지 미리 읽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특징이 주로 '본문 읽기의 어려움'에 있고, 그 이유 또한 어떤 장은 주석이 '본문'보다 더 길이가 길 정도로, '본문과 주석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갔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결국 '본문을 한꺼번에 쭈욱 읽어나가는 맛'을 도대체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울러, '주석'을 통해 끊임없이 샘솟는 듯한 '조이스의 풍성한 정신 세계'를 계속 뒤적이고 추적하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았기에, 차라리 '주석'부터 미리 예습삼아 읽고 난 뒤에 나중에 본문을 좀 더 경쾌한 호흡으로 읽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물론 '주석'을 한번 미리 읽었다고 해서 나중엔 본문만 쭈욱 읽겠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주석'을 미리 '예습' 삼아 한번 읽고 나서 본문을 읽으면 아무래도 '본문'과 '주석'을 번갈아 읽느라 너무나 쉽게 끊기고 마는 책읽는 호흡이 그보다는 훨씬 덜 끊기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스티븐 데덜러스가 '국립도서관'에서 자신의 '셰익스피어 이론'을 펼치는 제9장의 대목들)

 

(제9장은 본문이 29쪽이지만 주석은 무려 34쪽에 달한다. 제9장에 딸린 주석만 613개.)

 

이렇게 '주석'을 미리 끝까지 다 읽고 나니 과연『율리시스』라는 작품 하나에 녹여낸 제임스 조이스의 '리스트'가 어느 정도는 윤곽이 잡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따로 독서노트에 끄적거린 내용들도 결국 작가가 수도 없이 끌어들인 '다른 작품들의 목록과 해당 쪽수'였다. 그 내용 가운데 제임스 조이스가 '인유'한 작품 리스트만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물론 내게 지나치게 낯선 작가와 작품들은 물론 대거 생략했다.)

 

 * *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일리아스』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농경시』,『목가(Eclogue)』

오비디우스, 『변신』

크세노폰, 『아바나시스』

니체,『안티 크리스트』,『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밀턴,『실락원』,『리시다스』

셰익스피어, 『햄릿』,『템페스트』,『줄리어스 시저』,『멕베드』,『리어왕』,『헨리 4세』,『로미오와 줄리엣』,

                  『오셀로』,『심벨린』,『12야()』,『헨리 8세』,『페리클레스』,『사랑의 헛수고』,

                  『비너스와 아도니스』,『말괄량이 길들이기』,『뜻대로 하세요』,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루크리스의 강간』,『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겨울 이야기』,『베니스의 상인』,『헨리 5세』,

                  『과오의 희극』,『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리처드 2세』,『리처드 3세』,『한여름밤의 꿈』,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헨리 6세』, 『소네트』

테니슨, 『5월의 여왕』,『이녹 아든』,『경기병의 공격』,『인 메모리엄』,『담 틈에 핀 꽃』,『율리시스』

매튜 아놀드, 『교양과 무질서』

성 아우구스티누스, 『참회록』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물리학』,『시학』,『영혼에 관하여』,『감각과 지각에 관하여』,『걸작』

월트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 『11월의 나뭇가지들』, <셰익스피어에 관한 고찰>

단테, 『신곡』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전 아일랜드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 <예의 바른 대화>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모차르트, 오페라『돈지오반니』, 『마술피리』

플라톤, 『국가』, 『소크라테스의 변명』,『파이돈』

에밀 졸라, 『대지』

도니제티, 오페라 『루치아』

찰스 디킨즈, 『올리버 트위스트』,『피크윅 클럽의 사후의 문서』, 『데이비드 코퍼필드』,『두 도시 이야기』

아이소포스, 『이솝우화』

마이클 발프, 오페라 『카스틸의 장미』, 『보헤미아의 처녀』, 『로첼의 포위』

토머스 무어, 『아일랜드 노래』, 『노예는 어디에』,『에린이여 옛시절을 기억하라』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파우스트』,『시와 진실』

예이츠,『퍼거스와 함께 가는 자 누구냐』,『장미』, 『이니스프리 호수』, 『캐슬린 백작부인』,『오이신 방랑기』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복카치오, 『데카메론』

조지 버나드 쇼, 『소네트의 흑부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들의 생애』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조르주 비제, 오페라 『카르멘』

뒤마, 『나는 어떻게 극작가가 되었던가』, 『몽테크리스토 백작』

플로토, 오페라 『마르타』

하이드, 『코노트의 연가』

스피노자, 『스피노자 사상집』

베네딕트, 오페라 『베니스의 신부』

메르카단테, 오라토리오 <일곱 가지 최후의 말>

알렉산더 포프, 『도덕 수필』,『머리카락 약탈』,『최초의 풍자』,『비평에 관한 에세이』

잉그럼, <사자의 기억>

새무얼 로버, <등 낮은 마차>

토머스 그레이, <비가(Elegy)>

타키투스, 『아그리콜라』

에드가 앨런 포우, <헬렌에게>

『아라비안 나이트』

벤 존슨, 『연금술사』

바이런, <차일드 헤럴드의 순례>, <돈 주앙>

놀리즈, 비극『윌리엄 텔』

워싱턴 어빙, 『스케치 북』,『졸리는 골짜기의 전설』

쥘 베른, 『80일간의 세계일주』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도』, 『풍자시』

키케로, 『투스쿨룸 논쟁』

조지 무어, 『젊은이의 고백』

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종의 기원』

마크 트웨인, 『미시시피강의 생활』

플로베르,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보바리 부인』

피츠제럴드,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아트』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제신의 황혼』,『전쟁의 여신』,『니벨룽겐의 반지』

빅토르 위고, 『원시의 인간』

뒤 모리에, 『트릴비』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을 통하여』

입센, 『사랑의 희극』, 『인형의 집』

프란츠 레하르, 『유쾌한 과부』

존 드라이든, 『알렉산더의 향연』

월리스, 오페라 『마리타나』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즈』

T. C. 콜리지, <노수부의 노래>

제임스 쿠퍼, 『모히칸 족의 최후』

롯시니, <성모가 일어섰도다>

찰스 구노, 『아베마리아』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유명한 몰 플랑드르의 행운과 불행』

로렌스 스턴, 『트리스트람 샨디』

폰키엘리, 오페라 <지오콘다>

안티스테네스, 『헬렌과 페넬로페에 관하여』

윌리엄 새커리, 『펜데니스의 역사』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더블린 사람들』, 『영웅 스티븐』, 『피네간의 경야』

그밖에 (특별한 작품을 지칭하지 않고) 이름만 인용된 인물들

소크라테스, 테렌티우스, 칼 마르크스, 에드워드 기번, 윌리엄 블레이크, 월터 페이터, 존 러스킨, 로스차일드,

맬더스, 파스퇴르, 메치니코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멘델스존, 존 다울랜드, 로스챠일드, 구겐하임, 록펠러 등

 

 * * *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 동안 '뜻밖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더러 '내가 읽은 책들'이 심심찮게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는 현장을 발견하는 재미 덕분이었다. 위에서 나열한 '리스트'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분량이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정리할 수 있을까 싶어 그런 책들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담긴 '다이달로스 신화'는『젊은 예술가의 초상』뿐만 아니라 『율리시스』에서도 여러 곳에서 거듭 인유된다. '예술가로 비상하려는' 스티븐 데덜러스의 의식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이미지가 곧바로 '다이달로스의 날개'와 '이카루스의 비상'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진에 담긴 책들은 일부러 작가의 생몰연대 순으로 오래된 책들부터 맨 아래에 놓고 쌓았는데, 이들 중엔『변신』이 '최신작'이다.)

 

 

(단테의『신곡』은 '인유 횟수'로만 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여러 대목에서 거듭 자주 인유되는 중요한 책이다. 그에 비하면 『돈키호테』는 세 번,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은 한 번 인유될 뿐이다.)

 

 

(나는 엉뚱하게도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나서 드디어 '제임스 조이스'에 다가갈 때가 왔음을 느꼈다. 둘 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임스 조이스는 조너선 스위프트로부터 실제로 아주 깊은 영향을 받은 인물이었다. 테니슨의 경우, 대표작『율리시스』(詩)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도 많이 인유된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녹아든 작품들을 일일이 모두 찾아내는 일만 하더라도 크나큰 '문학적 연구과제'가 된 지 오래다. 나로서는 이 사진에 담긴 작품들이나마 '조이스'와 함께 읽었다는 사실만 하더라도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 사진에서 눈에 띄는 가장 큰 결핍은 아무래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통독해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내 제임스 조이스가 그 길로 통하는 훌륭한 안내자로 분명하게 내 앞에 다가온 느낌이 든다. 뜻밖의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어느날 제임스 조이스에게 『율리시스』는 읽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제임스 조이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율리시스』읽기가 어렵다면, 인생 자체가 불합리한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인생이 불합리하다고 느낄수록 우리는 더욱더『율리시스』읽기에 도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것은 인생~' 이라는 걸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을 얻을 듯한 느낌은 확실히 든다. 아무튼 대단히 흥미롭고 놀라운 소설임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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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테니슨의「율리시스」와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
    from Value Investing 2017-04-22 23:27 
    "그들은 말한다, 오디세우스, 놀라움에 지친 그가사랑 때문에 곧장 다시 울었다고. 그의 이타카가소박하고 푸르른 걸 보고서, 예술이란 마치 이타카,단순한 놀라움이 아닌, 영원한 푸르름의 이타카 같은 것."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학』(1958)에서 * * *책을 읽다가 반가운 작가와 작품을 만나면 옛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반갑다. 작품 속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문학작품이 꾸며낸 놀라운 주인공들은 사실 작가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고 다채롭다
 
 
boooo 2016-08-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개역판이 새로 출간되었네요. 전 생각의나무 책이 있는데 아직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ㅎ

oren 2016-08-11 23:50   좋아요 0 | URL
4개역판과 `생각의 나무` 판본의 `번역상의 차이`는 크게 없는 듯해요. 심지어 주석의 갯수까지 정확히 일치하니까요. 다만, `생각의 나무` 판은 각주 형식이어서 읽기는 편한데, 책 자체가 `너무나 무거워서` 한 손으로 받치고 책장을 넘기기가 너무나 힘든 단점이 있더군요. 저는 그 점 때문에 제4개역판으로 읽게 되었구요. boooo 님께서도 나중에 기회가 닿는 대로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cyrus 2016-08-1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정판이 나왔어도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ㅎㅎㅎ <율리시스> 절반까지 읽는 것도 대단한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

oren 2016-08-11 23:58   좋아요 0 | URL
스티븐 데덜러스라는 이름 자체가 `다이달로스`에서 따왔듯이, `미궁(迷宮) 속에 갇혀서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암담한 기분`을 자주 절감하게 되면 또다시 그리로 선뜻 뛰어들어갈 용기를 쉽게 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겠지요. 그래도 책을 거듭 읽다 보면 가끔씩 `아하, 작가가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싶은 대목을 발견하면 짜릿한 희열 같은 걸 느낄 때도 더러 있더라구요. ㅎㅎ
* * *
˝나는 『율리시스』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 제임스 조이스

yamoo 2016-08-11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악! 저 빽빽한 <율리시스>를 읽으셨습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제 <잃어버린시간을 찾아서>만 읽으시면 범접할 수 없는 문학텍스트의 봉우리를 오르시겠네요. 뭐, 그 등극은 시간 문제로 보입니다. 이런 텍스트을 꾸준히 읽으시는 오렌 님이 진정한 그레이트북스 매니아십니다!

전 몇 페이지 읽어봤는데, 다시는 읽고 싶지 않더이다..ㅎ 영문판도 있습니다만...어디다 쳐박아 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ㅎㅎ

oren 2016-08-12 00:03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랫동안 벼르다가 덜컥 『율리시스』에 뛰어들었는데, 미궁 속을 계속 더듬거리며 헤매다 보니 차츰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희미하게나마 `조이스의 문체`에 차츰 적응되는 느낌도 슬쩍슬쩍 찾아오더군요. 그럴 땐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짜릿한 희열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마치 `희박한 공기` 속을 뚫고 가쁜 숨을 물아쉬며 오르는 히말라야의 고봉을 올랐을 때 맛봤던 그런 심정 비스무리한 감정 말이지요.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그런 짜릿한 쾌감을 맛보기 위해 이 책에 도전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포스트잇 2016-08-1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천개드리고 싶네요. ㅎㅎ 워낙 기본(?)이 탄탄하시니 미로를 따라 출구를 찾을 수 있으셨을 듯 싶어요. 앞으로 기대하겠습니다. 율리시스에 담긴 다채로운 삶의 모습들을 하나씩 풀어주실거죠?
1920년대 파리에는 프루스트, 조이스, 라캉, 피카소, 카뮈... 또 기억은 안나지만 초현실주의자들도 함께 모여 연극도 하고 그랬다지요. 지금도 예술가들은 어딘가에서 서로 스치고 협연도 하고 함께 겪고... 그러고 있겠죠. .....

oren 2016-08-23 16:04   좋아요 1 | URL
포스트잇 님 반갑습니다. 제게 `좋아요`를 무려 천 개나 선사해주고 싶어하시는 크나큰 호의를 외면한 채 무려 일주일이나 흘렀군요. 제가 이 글을 올리고 난 뒤에 곧바로 바다 건너 `제주도`로 건너가서 휴가를 즐기느라 알라딘에 너무 신경을 쓰지 못했나 봅니다. 부디 너그러이 봐 주시길 바랄께요~

그런데 `프랑스 파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깊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놀라운 그 무엇인가가 늘 감도는 도시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거기서 직접 생활해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말이지요..

* * *

프랑스인들이 자랑스럽게 제시할 수 있는 세 가지

자의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은 온갖 취미의 독일화나 천박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프랑스인들이 자신의 유산이나 소유물로, 그리고 유럽에 대한 옛 문화적 우월함의 없어지지 않은 증거로 자랑스럽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가 있다 : 그 하나는 예술가적 정열을 지닐 수 있는 능력과 `형식`에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인데, 그것을 표시하기 위해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용어를 비롯하여 그 밖에 무수히 많은 다른 용어들이 창안되었다 : ㅡ 이와 같은 능력은 프랑스에서 지난 3세기 동안 결핍된 적이 없으며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 덕분에 항상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다시 구할 수 있게 된 일종의 문학의 실내음악을 가능하게 했다 ㅡ. 프랑스인들이 유럽에 대한 우월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두 번째 것은 그들의 오래되고 다양한 도덕주의적 문화다. 이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신문의 하찮은 소설가나 우연히 마주친 파리의 한량들에게서조차 심리적인 자극이나 호기심을 찾게 하는데, 예를 들면 독일에서는 이에 대한 어떤 개념도 없다(하물며 그러한 사실이 있단 말인가!). 그러한 것을 찾기에는 도덕주의적 방식의 몇 세기가 독일인들에게는 결핍되어 있는데, 이미 말했듯이 프랑스는 그것을 찾는 노력을 아낀 적이 없다. 그 때문에 독일인을 `소박`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독일인의 결점을 칭찬하는 것이 된다. 또한 우월함을 주장하는 세 번째 요구가 있다 : 프랑스인들의 본질에는 반쯤 성공한 북방과 남방의 종합이 있어, 이것이 그들에게 영국인들이라면 결코 파악하지 못하는 많은 일을 이해하게 만들며 다른 일들을 행하도록 만든다. {프랑스인에게는} 주기적으로 남방으로 향하거나 등을 돌리는 기질이 있으며, 거기에는 때때로 프로방스나 리그리아해(海)의 피가 가득 넘쳐 흐르는데, 이 기질은 소름끼치는 북방의 잿빛 음울함과 햇빛을 받지 못하는 개념의 유령과 빈혈증에 그들이 빠지지 않도록 방지한다. ㅡ 즉 우리의 독일적인 취미의 병에 걸리지 않도록 방지하는데, 그 병이 널리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순간적으로 피와 철이라는 큰 결단으로, 말하자면 (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게 했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위험한 치료법에 따라서 ㅡ) `큰 정책`이 처방되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프랑스에서는 어떤 조국애에서 만족을 찾기에는 그리고 북방에 있을 때는 남방을, 남방에 있을 때는 북방을 사랑할 줄 알기에는 너무 폭이 넓은, 아주 드물고 거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ㅡ 즉 타고난 내륙인과 `훌륭한 유럽인` ㅡ 에 대한 사전 이해와 호의가 있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8장 민족과 조국>, 254절

aria 2016-09-0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동서문화사판이 가독성이 더 좋다는데 어느게 더 좋은 번역일까요?

oren 2016-09-11 13:43   좋아요 0 | URL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율리시스』판본도 있었군요. 저는 실물을 살펴보지 못해서 그 책의 번역이나 주석이 어떤지를 감히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다만, 동서문화사 판본의 번역을 맡으신 분이 김성숙 님으로 나오던데, 그 분은 제가 예전에『아우렐리우스 명상록/키케로 인생론』(동서문화사)이라는 책을 통해 접해본 바로는 번역이 매우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김종건 님 번역본이 비문이 다소 많다는 얘기도 간혹 있는 모양이던데, 제가 읽은 바로는 `번역상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번역한 문장 말고, 실제로 비문인지도 모르고 비문으로 번역한 곳은 딱 한 곳 정도로밖에는 발견할 수 없었답니다.『율리시스』는 워낙 `언어유희`와 `문체실험`이 가득한 작품이라 `매끄러운 의역`이 오히려 조이스가 의도한 `형식이 주는 미학` 자체를 무너뜨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튼 `동서문화사 판`을 기회가 닿으면 한번 구해서 살펴보고 싶네요. 가령 Nes, Yo(김종건 님은 `아래, 그니`로 번역)를 김성숙 님은 과연 어떻게 번역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해서요.. 그리고 제임스 조이스가 15장에서 `God`를 뒤집어 (제 생각으로는 분명히 하느님을 욕하는 뜻으로 표현한) Dooooooooooog!를 김종건 님은 `하느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님`으로 번역했는데 그런 부분도 어떻게 번역했는지 서로 비교해서 살펴보면 재미있을 듯해서요~ 우리말로는 `개새애애애애끼이이이이이!` 가 훨씬 더 알맞은 번역일 듯한데 말이지요. ㅎㅎㅎ
* * *
이러한 언어의 초현실주의적(of surrealism) 중첩은, 언어 ˝잡채(chop suey)˝로서, 그것의 함축어의 실체는 모체(matrix)와 그 측음적(側音的)(부차적) 요소(later element)로 구성되는 동음이의(homonym)이요, 표의문자(ideogrm)이다. 이는 『피네간의 경야』언어의 구성상 주맥을 이룬다. ˝치즈˝란 말의 ˝불가피한 가청성˝(귀)과 ˝불가피한 가시성˝(눈)이 상호 동시에 여기 작용한다. ˝Who`s is getting up(누가 그의 주최하는가)˝는 비어(卑語)로서, 기호상 ˝성적으로 발기시키다˝가 되는데, 문맥상으로 하자가 없다. 『율리시스』의 「키르케」장에서 사냥꾼이 매(鳥)를 유혹하기 위해 ˝Hola! Hillyho˝를 외친다. 이는 부왕의 비밀을 듣고, 햄릿이 갖는 실신의 아우성과 일치한다. ˝Hillo, ho, ho…….˝는 또한 스티븐의 부친과의 부정(父情) (paternity, consubstantiality)을 암시하는 신호이다.(『율리시스』, <역자 후기> 중에서)

나뭇잎처럼 2016-09-0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퍽 재미나게 읽고 덜컥 <율리시스>를 사놨는데 그게 벌써 십여 년이 흐른 것 같네요. 늘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한 호흡으로 읽고 싶어서 어디가 부러지지 않는 한 (알랭 드 보통도 푸르스트를 어딘가 아프지 않으면 완독하기 어려운 책이라고 했던 것 같네요 ㅋㅋ) 언제 끝낼까 싶었는데. <율리시스>와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어느 쪽을 먼저 읽을까 늘 고민 아닌 고민을 하고 있어요. ㅋㅋㅋ 윌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를 무척 재미나게 읽어서 <율리시스>가 겁나진 않지만 시간, 늘 시간이 난제네요. 참고로 태평양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 율리시스를 오래된 흑백 영화로 봤는데, 무지 재밌었어요!

oren 2016-09-11 13:36   좋아요 0 | URL
나뭇잎처럼 님 반갑습니다. 『율리시스』를 사 놓고서도 죽을 때까지 영영 다시는 꺼내 읽지 않는 사람들도 정말 많을 테지요. 저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여태 읽어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분량상으로는 『율리시스』가 더 읽기 쉽지 않을까요? 『율리시스』를 마침 다 읽고 난 저로서는 당연히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부터 읽어보시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네요. 『율리시스』엔 <더블린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도 정말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 어쨌든 `진입장벽`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관문만 잘 참고 지나가면 아주 기기묘묘한 요지경들을 실컷 만끽할 수 있는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거든요.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더더욱 『율리시스』를 아주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듯합니다~
* * *
제네트의 구조주의 분석은, 예를 들면,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Sound and Fury)』에서 대표적 모더니스트요, `인공두뇌학적 주인공(Cybermetic hero)`인 퀸틴(Quentin)의 의식의 구조를 닮았다. 이런 주인공은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스티븐이나, 『피네간의 경야』의 회고적(Shem)도 마찬가지다. 프루스트의 숙명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Marcel)은 그가 메더란(madeleine) 케이크를 먹은 이래로 잃어버린 과거의 회고적 영웅(retrospective hero)이 된다..(『율리시스』, <역자 후기> 중에서)
 

 

(밑줄긋기)

 

가장 정선된 귀를 가진 자들에게 한마디

 

 ㅡ 가장 정선된 귀를 가진 자들에게 한마디 더 하겠다 : 내가 음악에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에 대해. 나는 음악이 10월의 오후처럼 청명하고 깊이 있기를 바란다. 음악이 개성 있고 자유분방하며 부드럽기를, 비열과 기품을 모두 갖춘 달콤한 어린 여자이기를 바란다 ······ 음악이 무엇인지를 독일인이 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독일 음악가라고 불리는 자들, 특히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은 외국인들이다. 슬라브인, 크로아티아인, 이탈리아인, 네덜란드인이며 ㅡ 아니면 유대인이다 ; 그렇지 않으면 하인리히 쉬츠, 바흐, 헨델과 같은 이미 소멸되어버린 강한 종족의 피가 흐르는 독일인이다. 나 스스로도 언제나 쇼팽을 위해서라면 나머지 음악들은 다 포기할 정도인 폴란드인이다 :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바그너의 지크프리트-목가는 예외로 한다. 그리고 그 고귀한 오케스트라적 악센트가 모든 음악가보다 앞서는 리스트도 예외로 한다 ; 마지막으로 알프스 너머에서 성장한 모든 것도 ㅡ 말하자면 지금 내가 있는 이쪽에서 성장한 모든 것도 예외로 한다 ······ 나는 로시니 없이 지낼 수는 없다. 음악에서의 나의 남쪽, 즉 내 베네치아의 거장인 피에트로 가스티의 음악 없이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내가 알프스 너머라고 말할 때는, 나는 진정 베네치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표현할 다른 단어를 찾아보면, 나는 언제나 베네치아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눈물과 음악을 구별할 수 없다. 나는 행복과 남쪽을 공포의 전율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제7 

 

 * * *

 

누군가가 그어주어야만 하는 성냥개비였던 것

 

또 다른 현명함과 자기 방어는 가능한 한 드물게 반응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의 '자유'를, 자기의 주도권을 말하자면 떼어내어 한갓 시약으로 만들어버리게 하는 상태와 조건들을 피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비유로 서적을 대하는 법을 들어보겠다. 근본적으로 서적을 그냥 '뒤적거리는' 학자는 ㅡ 하루에 대략 200권 정도가 적당하다고 하는 문헌학자 ㅡ 결국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만다. 책을 뒤적거리지 않으면, 그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할 때는, 특정 자극에(ㅡ읽은 생각들에) 응답하는 것이다 ㅡ 결국 그는 반응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학자는 자기의 전 힘을 기존의 사고들을 긍정하거나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데에 다 쏟아붓는다 ㅡ 스스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 자기 방어 본능이 그에게서는 약할 대로 약해져버리고 만다 ; 그렇지 않다면 그는 책들에 저항할 것이다. 학자 ㅡ 일종의 데카당. ㅡ 나는 내 눈으로 보았다 : 천부적 소질을 지니고 있고, 풍부하며 자유롭게 태어난 본성의 소유자들이 30대에 이미 '망쳐질 정도로 독서'했던 것을.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서 ㅡ '생각'을 주기 위해서 ㅡ 누군가가 그어주어야만 하는 성냥개비였던 것을. ㅡ 아침 일찍 날이 밝을 때, 모든 것이 신선할 때, 자기 자신의 힘이 아침놀을 맞을 때, 한 권을 읽는다는 것 ㅡ 이것을 나는 못된 습관이라고 부른다! ㅡ ㅡ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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