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월든』을 만날 시간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4장 <잠언과 간주곡> 중에서

 

 * * *

 

 

 

 

 

 

 

 

 

 

 

 

 

 

내가 이 소설을 만난 건 대략 31년 전쯤이다. 물론 그 때 내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받았던 대단한 감동은 오랜 세월 탓에 그저 희뿌연 안개 너머로 보이는 풍경처럼 어슴푸레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이 걸작에 대해 느꼈던 감정들과 소설의 줄거리들을 다시 되살려 여기에 내놓는다는 건 몹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왜 나는 지금 이 거대한 소설을 두고 턱없이 무모한 글쓰기에 나서게 되었을까? 그건 언젠가 한번은 그 멋진 소설을 다시금 읽어보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희미하게나마 내 마음 속에서 계속 이어져왔던 때문이고, 그 느낌이 어젯밤에 느닷없이 보게 된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때문에 마침내 수면 위로 불쑥 솟아올랐기 때문이리라. 그랬다. 어젯밤에 내가 본 영화 속에는 거대한 흰 고래뿐만 아니라 <모비딕>이라는 그 유명한 소설을 쓴 '허먼 멜빌'이 몸소 나타났던 것이다!

 

 - 허먼 멜빌(1819∼1891) 

 

영화가 시작되면 '무명 작가 허먼 멜빌'은 어떤 노부부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간절히 쓰고 싶었던 소설의 밑바탕이 되는 이야기, 곧 오래 전에 있었던 '전설적인 고래 사냥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그 늙은 노인에게 간청한다. 그 남자야말로 풍문으로만 들리던 '거대한 흰 고래'를 직접 봤던 마지막 생존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영화는 '진짜 고래 사냥 이야기'로 불쑥 뛰어든다. 허먼 멜빌의 소설을 통해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바로 그 전설적인 고래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는 게 이번 영화의 서사 구조였다.

 

물론 이 영화의 재미는 그 노인이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이 글을 통해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건 직접 바다 속으로, 말하자면 영화 속으로 풍덩 빠져봐야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는 일이다. 나 역시 이 영화를 보면서 까마득한 옛날에 <모비딕>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느꼈던 그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들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이 영화 속 '바다 이야기' 보다는 이 소설가가 단단히 발을 딛고 살았으며, 기나긴 밤 동안 어둠을 밝히며 글을 썼던 바로 그 무대인 '육지 이야기'에 좀 더 흥미를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소설가를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아주 엉뚱하게도『월든』이라는 책 속에서, 말하자면 거센 바람과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다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로 둘러싸인 아주 고요하고 아늑한 숲 속 풍경 속에서 그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바다가 아니라 육지라고?『월든』이라고? 그렇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써내려갔던 바로 그 『월든』 속에 허먼 멜빌이 불쑥불쑥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타났던 기억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불현듯 내게 되살아난 것이다.

 

『월든』속에 허먼 멜빌이 나타난다고? 많은 사람들은 내 얘기를 믿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월든』을 아무리 여러 차례 읽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정작 그 책 속에서 진짜로 허먼 멜빌을 만난 사람들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를 어디에서 찾아냈을까? 그는 바로『주석달린 월든 』속에 숨어 있었던 사람이었고, 나는 거기서 비로소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석달린 월든 』속에는 허먼 멜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또 한 사람의 소설가 너대니얼 호손까지도 등장한다. 물론 이 소설가도 주석이 달리지 않은『월든』에서는 결코 찾아낼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사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소설'을 그리 많이 읽지는 않았던 인물이다. 『주석달린 월든』을 통해서 명백히 드러났듯이 그는 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들'을 아주 열심히 읽었던 인물이다. 호메로스가 쓴『일리아스』와『오뒷세이아』는 너무나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어서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궁금해서 견디지 못할 정도다. 고대 그리스 비극이나 신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이솝, 플루타르코스, 오비디우스, 헤로도토스가 쓴 작품 속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그가 꼭 고대의 인물들이 쓴 책에만 열중했던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주석달린 월든』속에서 우리는 셰익스피어, 프랜시스 베이컨, 몽테뉴, 존 버니언, 토머스 칼라일, 단테, 밀턴 말고도 비교적 그와 가까운 시대 혹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애덤 스미스, 찰스 다윈, 벤저민 프랭클린, 에머슨을 비롯해서 소설가였던 조너선 스위프트, 다니엘 디포, 너대니얼 호손, 허먼 멜빌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 글에서 정작 말하고 싶은 세 사람의 인물들, 즉 허먼 멜빌과 너대니얼 호손 그리고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사실 거의 동시대의 사람들이다. 살았던 동네조차 매우 가까웠다. 그래서 그들은 작품을 통해서도 만났고 혹은 직접적으로도 만났다. 게다가 그들이 발표한 주요 작품들은 발표 시기조차 비슷할 정도다. 허먼 멜빌은 1850년 8월에 너대니얼 호손과 만났고, 『모비딕』의 발표 연도는 1851년이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1849년에 쓴 야심적인 첫 작품(『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이 실패한 뒤 월든 호숫가로 들어갔고, 거기서 그는『월든』을 썼고, 그 작품을 1854에 발표했다. 너대니얼 호손의 걸작 소설인『주홍글씨』는 그보다 조금 앞선 1850년에 발표됐다. 세 작품이 그렇게 공간적으로 잇닿은 좁은 육지에서, 또한 시간적으로도 그렇게 잇따라 나왔다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자세히 알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집에 오자 말자 『주석달린 월든 』을 서둘러 꺼내 펼쳤다. 내가 그 책 속에서 발견했던 허먼 멜빌에 대해 분명히 뭔가를 끄적거려 놓았던 기억이 났고, 그 내용이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엔딩 장면에 나오던 '인상적인 자막'에 대한 확실한 내용 또한 그 속에 분명히 있을 터였다. 과연 그랬다. 『주석달린 월든 』에 달아 놓은 나의 주석은 다음과 같았다.

 

허먼 멜빌 소개. 1850년 당시 최고의 작가였던 너대니얼 호손과 친분을 쌓았고, 이듬해 『모비딕』을 출간하며 호손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였다.

 

사실『주석달린 월든』에서 내가 찾아낸 '두 소설가'의 흔적은 결코 적지 않았다. 대략 훑어봐도 무려 일곱 군데에 이를 정도다. 나는 그 '주석'들을 차마 여기에 모조리 옮겨 놓지는 못하겠다. 비록 그러고는 싶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가 허먼 멜빌에 대해 '주석'을 달아놓은 바로 대목에 대해서만은 여기에 꼭 옮겨 보고 싶다.

 

내 생각에는 의상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어느 나라에서나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듯하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구할 수 있으면 어떤 옷이든 입으려고 안달하지 않는가. 난파선의 선원들처럼 그들은 해변에서 눈에 띄는 것이면 어떤 옷이나 걸치지만, 시간이나 공간에서 약간의 거리가 생기면 서로 상대의 거짓된 모습을 비웃는다. 어느 세대나 과거의 유행을 비웃으며 새로운 유행에 충실히 따른다. 우리는 헨리 8세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의상을 보고는 식인종 섬143의 왕과 왕비의 의상을 본 것처럼 재미있어 한다. 사람이 벗어 놓은 옷은 안쓰럽고 기괴하기도 하다. 사람이 입은 옷에 비웃음을 억누르고 신성함을 더해주는 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이 쏟아내는 진지한 눈빛과 그 사람의 내면에서 흐르는 진실한 생명이다

주석

143. 문명화되지 않은 원주민이 사는 섬을 통칭하는 뜻으로 사용됐지만, 특히 피지 섬을 가리킨 것으로 추측된다. 소로가 허먼 멜빌의 『타이피족Typee』1장에서 읽은 19세기의 노래 <식인종 섬의 왕>을 빗댄 표현일 가능성도 있다. 『타이피족』을 잘 알았던 세 친구 중 하나를 통해 소로는 이 작품을 알게 됐을 거라고 추정된다. 호손은 1846년 3월 25일 《세일럼 어드버타이저》에 이 작품을 호의적으로 평가한 서평을 기고했고, 브론슨 올컷은 1846년 12월에 이 소설을 읽었으며, 엘러리 채닝은 타이피족에 대한 「누구헤바 섬」이라는 시를 지었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 <경제> 중에서

 

 

너대니얼 호손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심지어 함께 배를 타고 여행도 했던 모양이다. 나중엔 배를 팔고 사는 '거래'까지 할 만큼 '일찍부터' 가까이 지냈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보트를 제외하고 내가 전에 내 것으로 소유했던 유일한 집은 천막이었다. 이것은 내가 여름에 여행할 때 가끔 사용했던 것으로 둘둘 말려 지금도 내 다락방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보트는 몇 사람의 손을 거친 후에 이제는 시간의 강을 따라 멀리 사라졌다.28 그런데 모든 면에서 알찬 집을 마련했으니 나도 세상에 정착하기 위해 상당히 진전한 셈이었다. 외장을 거의 입히지 않은 이 집은 나를 에워싼 일종의 결정체였고, 내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집이었다. 또한 윤곽만 그린 그림처럼 많은 의미가 함축된 집이었다. 나는 바람을 쐬려고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집 안의 공기는 언제나 신선한 기운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 안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문 바로 뒤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리반사」에서는 "새가 없는 집은 간을 맞추지 않은 고기와 같다"라고 말한다. 내 집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새들의 이웃이 되어 있었다. ……

주석

28. 너대니얼 호손은 1842년 9월 1일의 기록에서, "그 가난한 친구(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돈이 없어 배를 팔고 싶어했다. 그는 그 배를 직접 건조한 사람답게 능숙하게 운전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원하는 값을 주려고 했지만, 그는 고작 7달러를 불렀다. 그리하여 나는 머스케타퀴드의 주인이 됐다"라고 썼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달린 월든』 ,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중에서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은 '풍부한 바다 경험'을 쌓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19세 때 여객선의 '수습 선원'으로 취직하여 리버풀까지 항해했고, 스물두 살 되던 1840년에는 포경선을 타고 태평양으로 나갔다가 혹독한 선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항해 18개월 만에 마라케스 제도의 누크히바에서 도망쳐 원주민 부족인 타이피족들과 함께 살기도 했다. 따뜻한 환대를 받았던 식인종 섬에서의 평온함과 무료함마저 견디지 못한 그는 마침 정박해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포경선으로 다시 도주했고, 그렇게 바꿔 탄 배에서 그는 승조원 폭행 사건에 휘말려 체포되었다가 또다시 도주하게 된다. 그는 미국 포경선에 의해 구조된 후 하와이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미군 수병으로 채용된 끝에 이듬해에 마침내 '육지'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그는 이미 말 그대로 천신만고를 다 겪은 인물이 된 셈이었다.

 

그런 만큼 허먼 멜빌이 쓴『모비딕』이 고래잡이에 나선 인물들의 성격 묘사뿐 아니라 '바다 위에서의 실제 상황'에 대해서도 얼마만큼 자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을지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비딕』이 그저 흥미진진한 모험 해양 소설에만 그쳤다면 이 작품이 훗날 그토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평가를 얻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번에 개봉중인 영화 엔딩 장면에서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듯이, 이미 동시대의 최고 작가였던 너대니얼 호손으로부터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오뒷세이아』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소설은 발표 당시만 하더라도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허먼 멜빌은 몇몇 작품을 발표한 이후 안정된 수입으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공직'을 끊임없이 찾아 헤맸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바램은 매번 수포로 돌아갔고 뒤늦게 얻은 자리 또한 보잘 것 없었다. 그는『모비딕』을 발표하고도 그에 걸맞는 '문인'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궁핍하게 지내다가, 이 걸작 소설을 발표한 지 무려 15년이나 지난 1866년에야 비로소 안정된 공직인 '뉴욕 세관의 하급관리'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무려 20여 년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생활하다가 은퇴한 이후에는 뉴욕의 은둔자로 지내다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설『모비딕』은 어느덧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에 꼽힐 정도가 되었다. 이 소설이 얼마만큼 비극적이면서도 깊은 철학적 의미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는지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세하게 고찰한 바가 있다. 『모비딕 - 진실을 말하는 위대한 기예』라는 책을 펴낸 신문수 교수가 소설 배경인 '낸터키트'를 직접 다녀온 뒤에 쓴 답사기도 참고할 만하다.

 

‘모비딕’은 이제 미국 소설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인간 사유의 깊이와 광활한 상상력의 한 정점을 표상하는 대작으로서 세계문학의 판테온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은 ‘모비딕’을 세계 10대 소설의 하나로 꼽은 바 있고, 최근에는 모리스 블랑쇼, 호르헤 보르헤스, 질 들뢰즈와 같은 사색가들 또한 ‘모비딕’을 길잡이로 하여 그들 자신의 독특한 사색의 지평을 열어 보였다.

 

 - 新東亞, 2007년 1월호, 신문수, <‘모비딕’ 사냥의 출항지 뉴베드퍼드·낸터키트> 중에서

 

이 소설이 지닌 비극적인 면모의 깊이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문장들'을 여기서 당장 직접 살펴볼 수도 있다. 그 대목은 방금 내가 인용했던 그 월간지 기사 속에도 오롯이 담겨 있었다. 마침 이번에 개봉된 영화 '하트 오브 더 씨'의 배경이 된 여러 장소들에 대한 생생한 '현장 답사 보고'가 상세히 담긴 그 글 속에서 느닷없이 허먼 멜빌의 장중하면서도 처절하도록 슬픈 비극시 한 토막을 발견한다는 건 몹시도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들 가운데 저토록 가슴 아픈 대목을 읽고도 그저 태연히 포경선을 탔던 먼 나라의 고래잡이들만 떠올릴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왼편 끝줄의 좌석 가장자리 벽면에 ‘허먼 멜빌의 자리(Herman Melville’s pew)’라는 명판이 부착되어 있다. 교회는 그렇게 그가 이곳을 방문한 자취를 남겨 후인들의 호기심을 달래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벽면에 새겨진, 검은 테를 두른 대리석 비명이다. 바다에 수장되어 사체를 찾을 길이 없는 선원들의 유족들은 지상의 무덤 대신 이곳 교회당의 벽면에 묘비명을 새겨 상실의 허망함을 달랬다. 이스마엘은 ‘교회’라는 제목이 붙은 소설의 7장에서 그들의 심사를 이렇게 대신 전한다.


아아 망자를 푸른 땅에 모신 사람들이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꽃밭 속에 잠들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여기 이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황량한 추억을 알 수 있겠는가. 한 줌의 유골도 거기에 없는, 저 검은 테 속의 대리석이 주는 가슴을 치는 공허감! 움직이지 않는 저 묘비명들이 상기시키는 절망감! 모든 신앙심을 무화시키는 저 글귀들 속에 스며 있는 공포 어린 허무감과 불신의 마음. 그것은 무덤도 없이 죽어간 이 귀속할 곳 없는 사람들의 부활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모비딕’ 전체에서 이보다 절절한 문장을 나는 찾지 못한다. 갓 20대에 들어선 젊은이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절규가 쏟아져 나올 수 있을까. 그것은 삶의 벼랑 끝에서 죽음을 온몸으로 느껴본 자가 아니고서는 토로할 수 없는 외침이다. 삶의 한가운데로 짓쳐들어와 모든 것을 부질없는 환영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싸늘한 부동의 침묵. 이것이 또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 新東亞, 2007년 1월호, 신문수, <‘모비딕’ 사냥의 출항지 뉴베드퍼드·낸터키트> 중에서

 

바다야말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숱한 인물들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찾아 자신의 삶 전부를 걸고 정든 고향을 떠나 자신의 몸을 실었던 무대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신의 육지'로 되돌아오리라는 굳은 확신과 맹세를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숱하게 보고 들어왔다. 그 가운데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육지에서의 맹세와 확신'이 결국 어느 한 순간 '바다'에서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스러지고 마는 걸 목도하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일찌기 니체가 적확하게 지적했듯이,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다 속에서 그저 평화롭게 살아갈 뿐인 '하얀 고래'를 '괴물'로 여긴 우리 인간이야말로 '진짜 괴물'은 아닌지를 한번쯤 되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 바로 『모비딕』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물론 여기서 '하얀 고래'는 '자연'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상징들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내 말이 궁금한 사람들은 이번 기회에 한번쯤 『모비딕』을 읽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지 싶다. 이미 그 소설을 감명깊게 읽은 독자라면 이번에 개봉된 영화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모비딕』을 읽지 못한 예비 독자들에겐 허먼 멜빌의 '걸작소설'로 이끄는 더없이 친절한 안내 영화가 지금도 극장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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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속에 포함시키려다 글이 너무 길어질까 싶어 포기한 '내용들'도 없지는 않았다. 일부는 여기에 남겨본다.

 

 

* 소포클레스는 '인간의 위험천만한 위대성'을 이미 수천 년 전에『안티고네』를 통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코로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다 하여도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네.

사람은 사나운 겨울 남풍 속에서도
잿빛 바다를 건너며 내리 덮치는
파도 아래로 길을 연다네.
그리고 신들 가운데 가장 신성하고
무진장하며 지칠 줄 모르는 대지를
사람은 말馬의 후손으로
갈아엎으며 해마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서는 쟁기로 못살게 군다네.

그리고 마음이 가벼운 새의
부족들과 야수의 종족들과
심해 속의 바다 족속들을
촘촘한 그물코 안으로 유인하여
잡아간다네. 총명한 사람은.
사람은 또 산속을 헤매는 들짐승들을
책략으로 제압하고,
갈기가 텁수룩한 말을 길들여
그 목에 멍에를 얹는가 하면,
지칠 줄 모르는 산山소를 길들인다네.

또한 언어와 바람처럼 날랜 생각과,
도시에 질서를 부여하는 심성을 사람은 독학으로
배웠다네, 그리고 맑은 하늘 아래서 노숙하기가
싫어지자 서리와 폭우의 화살을 피하는 법도.
사람이 대비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 대비 없이 사람이 미래사를 맞이하는 일은
결코 없다네. 다만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수단을 손에 넣지 못했을 뿐이라네.

하지만 사람은 고통스런 질병에서
도망치는 방법은 이미 궁리해냈다네.

 - 《안티고네》332∼364행

 

 

 

 

 

 

 

 

 

 

 

 

 

 

 

 * 군 복무(83.6∼85.10) 시절에 읽었던 책들은 지금 '실물'로는 단 한 권도 남아 있지 않지만, 독서노트에 볼펜으로 부지런히 기록해 둔 덕분에 그 때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

독서노트에 적어 놓은 책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보다 토인비의《역사의 연구》였던 것 같고, 토머스 홉즈의《리바이어던》과 막스 베버의《사회경제사》도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문학작품으로는 괴테의《파우스트》, 上,中,下 3권으로 된 상당한 분량의 멜빌의《백경》과 당시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이었던 마르께스의《백년 동안의 고독》,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등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작품들인 것 같다. ……

http://blog.aladin.co.kr/oren/4070322

 

 

 

* 이 자리에서 청춘을 생각하면서 나는 외친다. 육지! 육지! 어둡고 낯선 대양 위에서 열정적으로 찾아 헤매는 항해는 이제 너무나 충분하다! 이제 드디어 해변 하나가 보인다. 그것이 어떻든 거기에 상륙해야 한다. 최악의 피난항일지라도 절망적이고 회의적인 무한함으로 비틀거리며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 낫다. 우리 우선 육지를 단단히 붙잡자.

 

 - 니체, 『반시대적 고찰 』,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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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5-12-12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읽었습니다. 혹시 멜빌 평전류 중 읽을만한 책 추천해주실 수 있으신지.. 꽤 오래전에 누군가 멜빌 평전을 읽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젠 그 글을 인용한 저자도, 누가 쓴 평전이었는지도 알 수가 없네요. 당시엔 꽤나 인상적으로 본터라 그 평전을 찾아봤었는데 번역이 안됐더군요. 멜빌 평전을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oren 2015-12-12 12:45   좋아요 1 | URL
제가 허먼 멜빌에 대해 쓴 평전류에 대해선 아는 게 너무 없어서 추천할 만한 책조차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다만, 신문수 교수님(서울대 영어교육과 미국문학 교수)이 쓰신 책『모비딕 - 진실을 말하는 위대한 기예』는 권할 만하다 싶어요. 저도 읽어보진 못했지만 책의 `목차`만 대략 훑어봐도 알찬 내용이 많이 담긴 듯해요. `허먼 멜빌`을 연구해서 학위까지 받으셨으니 믿을 만하다 싶고요... 그 분이 쓰신 <‘모비딕’ 사냥의 출항지 뉴베드퍼드·낸터키트> 가운데 일부 내용을 참고삼아 조금 덧붙여봅니다.
* * *
멜빌과 ‘모비딕’의 자취를 찾는 여정은 나에겐 언제나 각별한 설렘을 동반했다. 한때 온 시간을 바쳐 씨름하던 학위 논문의 대상이었기에 내 젊은 날의 잔영이 늘 앞장을 서곤 했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 서쪽 피츠필드의 생가에서도, 뉴욕 이스트 26번가 104번지, 멜빌이 숨을 거둔 옛 집터에서도, 브롱스의 우드론 묘지의 멜빌 무덤에서도, 그의 모습을 불러내고자 하면 거의 언제나 그의 소설과 힘겨운 대화를 나누던 시절의 내 영상이 겹쳐졌다.

예컨대 이 글을 준비하기 위해 그가 ‘모비딕’을 쓰던 무렵의 행장을 되짚어 보면서 나는 1850년 12월13일자, 뉴욕의 편집자 에버트 다익킹크(Evert Duyckinck)에게 보낸 그의 편지 속 다음의 구절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여기 시골에서 바다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군요. 아침에 일어나면 마치 대서양 상의 배에서 현창으로 밖을 내다보는 듯이 밖을 내다봅니다. 이곳 내 방은 배의 선실 같습니다. 밤중에 잠이 깨기라도 하면 삐걱이는 바람 소리를 듣습니다. 집에 돛을 너무 많이 달았다고 상상합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지붕 위로 올라가 굴뚝에 색구를 쳐야겠다고 생각하지요.

멜빌은 ‘모비딕’을 쓰면서 이렇게 고래잡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거기에 몰입해 살고 있었다. 그해 추수감사절에는 식구들을 모두 보스턴 처가로 보내고 피츠필드에 일부러 혼자 남아서 원고를 쓰기도 했다. 그는 머리에 솟구치는 생각과 이미지들이 언어로 형상화되기 전에 사라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서 늘 시간이 아까웠다. 그는 다익킹크에게 이렇게 써보내기도 했다.

“나에게 쉬운 문체로 글을 잘 쓰는 50여 명의 젊은이를 보내줄 수 있겠습니까…? 그만한 수의 작품을 계획하고 있지만 그것을 따로따로 생각해볼 충분한 시간을 마련할 수가 없군요.”

멜빌은 이렇게 2년여를 오로지 모비딕에 매달려 쓰고 또 썼다. 멜빌 덕분에 나 또한 이 순수한 열정의 시간들을 음미할 행운을 누렸기에 이런 구절들에 새삼 눈길이 가는 것이다.

포스트잇 2015-12-12 13:05   좋아요 1 | URL
이렇게 상세하고 호의넘치시는 답변을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멜빌 작품이든 관련 글이든 읽다보면 평전이나 주요 참고도서 소개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천하신 신문수 교수님 책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답변 고맙습니다.

kj_Shin 2015-12-15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자기의 능력에 맞지도 않고 이긴다고 하여도 필요도 없는것을 가질려고 하고 이길려고 한다. 이것이 욕망이 아닐까?
우리는 많은것에서 느끼고 볼수있다. 욕망은 또다른 욕망을 낳고 나중에는 그 욕망에서 헤어날수가 없다. 그 끝은 파멸이라는 것을.....

일전에 저도 책을 읽고 난뒤 머라고 적었던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네요...
이 영화 보고 싶습니다~

잘봤습니다^^





oren 2015-12-15 16:06   좋아요 1 | URL
투자 님 반갑습니다. 니체가 남긴 저 명언은 마치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읽고 난 직후에 떠올린 감상처럼 느껴지더군요. `괴물`과 싸우는 수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에겐 니체의 말보다 더 어울리는 말도 찾기 어려울 듯싶어요. <하트 오브 더 씨>는 이야기 전개 방식도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차분해서 좋더군요. 꼭 한번 보세요~

syz0725 2016-10-24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연히 들어왔다가 이렇게 허먼 멜빌과 다른 작가들의 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을 보게될 줄은 몰랐습니다.
작성자님의 글을 보니 앞으로도 더욱 글 쓰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6-11-03 16:05   좋아요 1 | URL
syz0725님 안녕하세요? 너무나 늦게 댓글을 달게 되어 죄송하고, 오래 전에 쓴 글에까지 찾아오셔서 고마운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즐거운 나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