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을 소개합니다.


찰스 다윈은 흔히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지동설을 증명한 갈릴레이와 함께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3대 과학자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다윈이 1859년에 발표한 『종의 기원』은 인류 역사를 바꾼 100권의 책 가운데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중요한 책이지요.


196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은 다윈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극찬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내 어머니보다 더 중요하다. 그가 없었다면 생명과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다윈은 청년기에는 의사가 되기 위해 에든버러 대학에 들어갔으나 도중에 그만 두고 박물학만 파고들었는데, 실망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성직자로 만들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보냈다고 하지요. 그러나 결국 그는 자연사(自然史)를 평생의 학문으로 선택하였고, 1831년에는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를 타고 5년에 걸친 '역사적인 항해'를 하게 도지요. 이 비글호가 갈라파고스 섬과 함께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유명한 배가 되리라고는 그 당시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지요.


다윈은 비글호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남미와 대서양, 태평양과 인도양을 넘나들며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채집하였으며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마침내 '종의 기원'에 대한 극적인 영감을 얻게 되지요.


다윈은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관찰 전에 추리하는 것은 필요하고 관찰 후에 추리하는 것은 유용하지만, 관찰 중에 추리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다'라고 말이지요. 그토록 신중한 그였기에 그는 비글호와 함께 했던 5년 동안의 오랜 항해 끝에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여행기인 『비글호 항해기』를 출판한 뒤 무려 20여 년 동안, 오로지 진화론을 입증할 방대한 증거와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셈이지요. 

오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마침내 그는 1859년에 인류를 미망에서 깨어나게 만든 『종의 기원』을 출판합니다. 다윈의 이론은 비록 일부의 오류는 포함하고 있지만 그의 대부분의 이론은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과학적 발전에 의해서 약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더욱 확고한 이론으로 자리를 잡고 있지요.

『종의 기원』의 핵심 내용은 간략합니다. 생물은 창조되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으며 생물이 생존하는 동안 생식과 유전을 통해 끊임없는 변이를 일으키며,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를 거친다는 것이지요. 한편 자연계의 생물은 제한적인 생존환경 때문에 서로간의 생존경쟁이 벌어지며, 결국 환경에 대하여 유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만이 생존하고 그 외에는 도태되는 ‘적자생존’이 일어나며, 이 같은 과정을 거친 생물의 형질변이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축적되어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결국 개체 뿐만 아니라 생물종 자체도 끊임없이 새로운 변종을 낳으며 오랜 기간 동안의 진화를 거치고 나면 결국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다윈이 살던 시대에만 하더라도 세계는 창조의 입김에 의해 생명이 불어넣어 졌으며, 인간은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였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윈은 자연계의 생물의 진화를 '나뭇가지'에 비유해 설명하고, 포유류나 영장류 역시(인간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생물체와 똑같이 나뭇가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다윈의 이론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정도로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다만 그러한 이론이 기존의 '창조적 세계관'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이론이었기 때문에 그는 평생에 걸쳐 '반박당하지 않을만큼 완벽한' 이론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에 매달렸으며, 그런 그의 노력이 그를 위대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과학자로서의 나의 성공은,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는 별도로 하고 ······ 복잡한 갖가지 심적 소질과 조건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과학에의 사랑 - 어떤 문제라도 오랫동안 끝까지 생각하는 무제한의 강한 인내심 - 그관찰이나 사실 수집에서의 근면함 - 그리고 창안력과 상식이 함께 부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 "

 - 다윈,『자서전』 중에서

『종의 기원』은 생물학은 물론 사상사적인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기준을 세운 고전입니다. 다윈이 생존했던 시기에도 종(種)이 진화한다는 생각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 메커니즘을 주장하고, 나무에서 뻗어가는 가지에 비유해 종의 분화를 설명했던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몰고 온 파장은 대단했으며, 신에 의한 창조설이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기에 종교계는 물론,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하는 기존 학계로부터도 심한 반박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못된 궤변”이라는 종교계의 거센 비난은 다윈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다윈의 생각과 주장에 열광하는 옹호자들도 속속 생겨났습니다. "난 정말 바보다. 이처럼 쉬운 설명을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영국 동물학자 T.H. 헉슬리의 이 탄식은 『종의 기원』의 가치를 단번에 알려줍니다.


다윈의 ‘혁명’은 이 책이 출간된 지 1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윈의 '생명은 진화한다'는 사상은 자연과학은 물론 의학.철학.심리학.문학.경제학 등 수많은 잔가지들로 계속 자라나 뻗어나가고 있으며 그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종의 기원』을 읽어 보면 생명체의 진화와 다양성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우리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듭니다. 내용이 너무 전문적일 것 같아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온갖 다양한 생명들을 왕성한 호기심으로 관찰하고 그 가운데서 진리를 찾아 내고자 했던 다윈의 열정도 느낄 수 있으며, 또 여러 동식물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가득 담겨 있습니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한지 12년 뒤에 마침내 『인간의 유래』를 발표합니다. 『종의 기원』에서 '훗날 인간의 기원과 역사에 한줄기 빛이 비춰지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대로, 인류의 조상이 과연 어디서부터 갈라져 나왔는가를 추적하는 집요한 연구가 이 책에 담기게 되지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다윈이 밝혀낸 인류의 조상은 협비원류, 일명 긴꼬리원숭이였습니다. 여기서 갈라져 나온 유인원들이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그리고 인간이었습니다. 인류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침팬지와 구분된 시기는 대략 지금으로부터 700만 년 전이었습니다.

 

다윈의 끈질긴 관찰과 추론으로 밝혀낸 심오한 생각들은 오늘날 수많은 생물학자들과 진화심리학자들을 너무나 자주 좌절시킨다고 합니다. 현대에 와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첨단 분자생물학이나 유전학 등에 힘입어 현대의 과학자들이 '인간 본성'에 관한 새롭고도 탁월한 이론을 전개해 볼 욕심으로 눈에 번쩍 뜨이는 주제를 찾아 막상 연구에 착수하려고 하더라도, 그런 시도들의 대부분은 오래 전에 찰스 다윈이 내놓은『종의 기원』이나『인간의 유래』등에 '이미 다 나와 있기 때문에' 도무지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는 일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단 하나의 기원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놀라운 생각을 떠올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갈라파고스 섬에서였습니다.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이미 남아메리카에서 많은 화석을 발견한 다윈은 과거에 멸종한 생물이 현재 살아 있는 종과 유사하고, 특히 태평양의 갈라파고스 제도에 서식하는 동식물이 기후 조건이 비슷한 남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하는 동식물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생물이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된 것이지요.


런던으로 돌아온 다윈은 표본에 대한 깊은 고찰과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결국 '진화'가 일어났으며, 이러한 변화는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일어났고, 현존하는 모든 종은 결국 하나의 생명체에서 기원했다는 이론을 세우게 됩니다. 다윈은 생물종 내의 변이가 무작위하게 일어났고, 이렇게 다양한 변이를 갖춘 개체들은 환경의 적응능력에 따라 선택되거나 소멸된다고 봤습니다. 이른바 '자연선택 이론'이 탄생한 것이지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탄생한 배경인 갈라파고스는 흔히 세상을 바꾼 섬으로 불립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난 역량을 갖춘 BBC의 자연사 프로젝트팀은 다윈이 방문했던 갈라파고스에 대해 생생한 사진과 글로 담아낸 책을 펴낸 적이 있는데, 그 책만 살펴보더라도 갈라파고스가 다윈에게 얼마나 중요한 섬이었는지를 금세 알수 있습니다.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지구상의 생명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종은 영속하지도 않으며, 지적 창조자의 완벽한 작업도 아니다.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할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은 경쟁을 통해 생존해온, 단순히 자연의 맹목적인 힘에 의해 선택된 순간적인 모습이다. 500쪽에 이르는 그 책에서 비록 갈라파고스는 단 한 줌 잠깐 언급되지만, 먼 청춘 시절 한 번 방문했던 매혹적인 작은 섬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다윈은 그곳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만큼 그 섬들은 그의 모든 견해의 기원이고, 『종의 기원』의 근원이었다.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이자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이 책의 서문에 남긴 글도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과학의 착한 요정이 전 세계를 날아다니다가 그녀의 요술지팡이로 건드리고 싶은 가장 멋진 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을 과학의 낙원이자 지리학과 생물학의 에덴동산, 진화생물학자들의 아르카디아(이상향)로 바꿔놓았다. 아마도 여러분은 요정의 의도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요정이 빛을 비춘 그곳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런 의의가 없을 것이다. 그곳은 서경 91도 남위 1도로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1,170킬로미터, 동태평양에 위치한 다윈의 '적도공화국', 바로 갈라파고스다. ······ 『갈라파고스』는 내가 다음에 이곳을 방문할 때 귀중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나는 탑승할 배의 서가에 기증하기 위해 이 책 한 권을 더 가져가려 한다. 만약 여러분이 갈라파고스를 개인적으로 방문할 수 없다면, 이 책을 읽고 감상하기를 권한다. - 리처드 도킨스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섬'에 상륙한 날은 1835년 9월 17일이었습니다. 그가 비글호에 몸을 싣고 영국 남단에 위치한 데번포트 항구를 떠난 지 4년이 다 되어가던 무렵이었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정에 복받쳐 있던 26세의 다윈'은 그날 자신의 일기에 '끊임없이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어두운 하늘'이라고 적어 놓았다고 하지요.

 

다윈이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결국 갈라파고스를 '세상을 바꾼 섬'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1835년 10월 20일에 갈라파고스를 떠났고, 이듬해 10월 2일에 영국 해안의 팰머스에 도착해서 비글호에서 내렸지만, 그가 갈라파고스에서 봤던 풍경들은 무려 24년 동안이나 '놀라운 생각과 연구를 거듭하는 밑거름' 역할을 계속 한 끝에 마침내『종의 기원』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뉴튼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유추해 낼 수 있었던 게 자신의 눈 앞에서 툭~ 떨어지는 '한 알의 사과'였다면 다윈이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찾아낸 건 멀고도 먼 항해 끝에 다다른 '갈라파고스에서 보낸 시간들'이 결정적이었던 셈이었습니다.


갈라파고스는 비록 우리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매혹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생명이 신비로운 창조주의 입김에 의해 창조된 게 아니라, 단 하나의 기원으로부터 발생하여 끊임없이 진화하는 동안에 이토록 경이로운 광경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놀랍기만 합니다. 아득한 옛날, 찰스 다윈이라는 20대의 젊은 청년의 눈앞에도 똑같이 펼쳐졌던 그 섬의 풍경들을 마저 소개하는 것으로 이 영상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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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EvH_PWB-4g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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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20년도 시간의 흐름 저 편으로 넘어갔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어느 한 해인들 격동 없이 잠잠하게 지나간 때가 있었으랴만, 2020년 한 해를 둘러보면 전인류에게 유난히 힘든 시기였음에 틀림없을 듯하다. 어느 날 소리 없이 번지기 시작한 괴질 하나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드넓은 지역으로 빠르게 번져 나가고, 사람들의 존재 방식들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 그 누가 쉽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삶을 극적으로 뒤바꿔 놓았으니, 이름하여 언택트 사회의 도래다. 어느 순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었고, 똑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야만 성립 가능한 활동이나 비즈니스는 극적으로 축소된 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활동들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똑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기반 위에서 이뤄지던 수많은 활동들이 랜선으로 연결된 가상의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학교 수업은 물론, 종교 활동, 취미 생활, 운동 까지도 학교나 교회나 운동장이 아니라 랜선으로 연결된 동영상 앞에서 이뤄졌다. 사람들이 모이는 게 필수불가결한 수많은 활동들이 강력하게 억제되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물론, 대규모 관중이나 관객을 필요로 하는 각종 문화공연이나 스포츠 활동들이 극도로 제약되었고, 수많은 종류의 '모임 비즈니스'는 한 마디로 폭망했다. 좌우지간 모이면 위험하고 흩어져야 안전했다! 먼지 때문에 가끔씩 쓰던 마스크가 생존에 필수적인 아이템으로 졸지에 격상되었다.


갑작스레 시작된 언택트 시대에도 사람들은 발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무서운 속도로 이용자를 끌어모으던 유튜브 플랫폼은 코로나의 확산 덕분에 비약적으로 팽창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물론, 필라테스 강사, 그림 선생님, 음악 선생님, 심지어 과외를 하는 대학생들까지도 유튜브로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직업을 잃어버린 관광 가이드까지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엘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유달리 느린 속도로' 변화한다고 꼬집은 학교조차도 유튜브에 의지하는 마당인데, 독서 활동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많은 작가, 수필가, 시인들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평범한 일반 독자들도 블로그 활동에서 벗어나 동영상을 만들어 채널에 올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유튜브 채널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작할 무렵만 하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현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때였다. 채널을 만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러스가 창월하기 시작했고, 언택트 시대를 맞아 유튜브 이용자들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 같은 초보 유튜버는 그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할 아무런 비전도, 능력도, 기반도 없었다. 그저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책 소개 동영상을 꾸역꾸역 만들어 올려봤다. 꽤 오랫동안 설비투자는 거의 없었다. 5년 전부터 쓰던 컴퓨터도 그대로였고, 녹음장비라고는 친구 녀석이 쓰던 1만 원짜리 핀 마이크가 주무기(!) 였다. 동영상 녹화 프로그램과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공짜' 아니면 최대한 저렴한 걸로 '1년 이용권'을 샀다. 장차 유튜브 활동을 얼마나 오래 할 지도 몰랐고, 언제 그만둘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시중엔 그런 말이 떠돌았다.


"유튜브를 시작하는 사람이 100명이면, 그만두는 사람은 150명이다."


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는 데 조금씩 재미를 붙였지만, 영상 제작과 편집에는 생각보다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었다. 알라딘에 글을 쓰는 것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영상 제작을 위해 별도로 대본을 쓰는 작업이 전체 작업 과정의 1할 정도이니 영상 제작은 똑같은 분량의 글쓰기에 비해 열 배나 힘든 작업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알라딘에서는 글을 하나 올리더라도 적당한 피드백만 있으면 그걸로 사실상(!) 끝이다. 꾸준한 조회수와 좋아요와 댓글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튜브 영상 올리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동영상을 하나 올리면 그때부터 조회수, 좋아요, 구독, 댓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잔뜩 기대했던 동영상인데도 조회수가 부진하면 허탈감이 엄습한다. 사나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구독자가 1도 늘어나지 않을 땐 심각한 좌절감이 밀려든다. 세상에! +1이 그토록 어마어마한 숫자인지도 예전엔 미처 몰랐고, -1이 그토록 아픔을 주는 숫자인지도 처음 알았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아픔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는 사이에 어느새 1년이 흘렀고, 이제야 겨우 '광고수익'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록 올린 영상의 갯수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구독자수 / 채널 조회수 / 시청시간 등등이 두루 부족하지만, 유튜브를 시작한 보람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유튜브 책소개 영상 만들기에 몰두하다 보니 당연히 알라딘에 글쓰는 일은 뒷전이다. 여러 해 동안 받아왔던 <서재의 달인> 엠블럼조차도 이젠 관심밖이 되었다. 이제는 알라딘 대신 유튜브에서 이런 메일을 보내온다. 알라딘에서 꽤나 오랫동안 접해왔던 익숙한 스타일과 닮아 있어서 깜짝 놀랐다!


북트래블 Book travel님을 위한 2020년 결산








유튜브로부터 뜻밖의 이메일을 받은 날짜는 12월 12일이었다. 사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잘것 없는 성과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으니 하필 이 무렵에 올린 영상 하나가 부웅~~ 떴다. 영상 하나가 3주 만에 61,676조회수에 시청시간 1.2만을 기록한 것이다. 이 맛에 유튜브를 하나 보다...






그 덕분에 구독자수도 2,719명까지 급증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tbZg9t1yZ2THcPuf3SinHg



지난 1년 동안의 조회수도 부쩍 늘어났다...





내 동영상을 시청하는 지역도 차츰 넓어지고 있다!




가장 고무적인 건 아무래도 '광고수입'이 아닐까 싶다!

하루에도 몇 권의 책을 구입할 만큼 쑥쑥 늘어나고 있으니...





1976년에 타계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라디오 방송"을 두고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을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통찰한 적이 있었다.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


거리를 없앰은 거리를,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의 멂을 사라지게 함을, 가까워지게 함을 말한다.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거리를 없애며 존재한다. 그는 그가 무엇인 그 존재로서 그때마다 존재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해준다. 거리를 없앰은 멂을 발견한다. 이 멂은 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에 대한 범주적 규정이다. 그에 반해서 거리를 없앰은 실존범주로서 확고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도대체 존재자가 현존재에게 그것의 멂이 발견되는 한에서만 세계내부적인 존재자 자체에서 다른 것과 관련되어서 "거리"와 간격이 접근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존재자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것의 존재양식상 거리를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거리를 없앰에서 발견되는 측정 가능한 간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거리없앰은 우선 대개 둘러보는 가깝게 함, 조달함으로서의 가까이 가져옴, 예비해놓음, 손안에 가짐이다. 그런데 존재자를 순수하게 인식하며 발견하는 특정한 방식들도 가깝게 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존재에는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놓여 있다.  우리가 오늘날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속도상승은 멂을 극복하도록 몰아세운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과 함께 현존재는 오늘날 일상적 주위세계의 확장과 파괴라는 방법으로써 그것의 현존재의 의미를 아직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의 거리를 없애고 있다. (149쪽)


 -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의 표현대로, 오늘날 우리가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랜선 활동들도 결국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고안해 낸 필연적인 행동양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이런 양식들을 더욱 빠른 속도로 몰아세우고, 일상적인 주변삶을 가차없이 파괴하고 확장시켰을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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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1-01 1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oren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롭게 유튜브에서 좋은 성과를 얻으셨군요. 내년에도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oren 2021-01-01 19:30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요!!
유튜브 채널은 아직도 밑바닥을 헤매고 있습니다요.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하다 보면 차츰 나아지리라 믿고 있습니다요.

김형수 2021-01-12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렌님
알라딘과 유튜브에서의 활발한 활동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새해에도 열정적인 북여행에 동참하겠습니다.
제가 드릴 것은 구독 좋아요..공유입니다만 그래도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코로나가 조기 종식되기를 기원합니다.

oren 2021-01-12 21:34   좋아요 0 | URL
김형수 님, 반갑습니다.^^
새헤에 들어서도 더 좋은 책 소개 동영상 열심히 만들어 보겠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너무 구려서,
새로운 편집 프로그램인 <프리미어 프로>로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동영상 강의를 듣고 실습해 보고 있습니다.
머잖아 새로운 편집 프로그램으로 만든 쌈빡한 영상으로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구독, 좋아요, 응원댓글까지..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발자크의 대표작 『고리오 영감』을 소개합니다.

 

"나폴레옹이 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펜으로 정복하겠다." 이 말은 젊의 시절의 발자크가 나폴레옹의 초상화 밑에다 연필로 써 넣은 다짐이라고 하지요. 이런 결심에 걸맞게 그는 20여 년 동안 작품을 쓰고, 쓰고, 또 쓰다가 결국 51세에 과로로 죽고 말았다고 하지요. 그는 하루에 열네 시간에서 열여덟 시간을 일했다고 하는데, 20여 년 동안에 쓴 작품이 총 350권이 넘는다고 합니다.

 

발자크는 당대의 프랑스 사회에 대하여 거대한 벽화를 그리고 싶어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내 머릿속에 19세기의 사회가 들어 있소"

 

1834년에 발자크가 한스카 부인에게 보낸 편지 속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을 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연애를 하느라 엄청난 정력을 소진했고, 별 사업수완도 없으면서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느라 굉장히 많은 빚을 진 채 평생을 경제적 압박 속에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돈 문제'에 특출난 관심을 보인 작가였습니다. 발자크 이전에는 그 어떤 작가들도 그처럼 돈의 세계를 잘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까지도 현대 경제경영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지요.

 

그는 경제적인 궁핍 때문에 '집필 환경'이 몹시 열악했지만 자신의 구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 희극』이라는 거대한 벽화 속에 「풍속 연구」,「철학적 연구」,「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걸쳐서 무려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어쨌든 그는 당초의 계획을 완수하지는 못했으나 무려 91편에 달하는 작품들을 써냈습니다.

 

'한 세대의 살아 있는 벽화의 연속성'을 소설로 그려내고자 열망했던 작가는 마침내 '인물 재등장 기법'이라는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이 기법을 평생 동안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도대체 얼마쯤이나 될까요? 대략 2,00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세익스피어가 37편의 희곡 작품을 통해 대략 1,100명의 인물을 창작했다고 하는데 발자크는 그보다 한 술 더 뜬 셈이었지요. 그런데 애당초 발자크가 구상했던 인물은 무려 4,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작가의 머리속이 어떻게 구성되었길래 그 많은 인물들을 창작하고 소설에 녹여낼 생각을 했는지 기가 막힐 정도이지요.

 

발자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숫자를 세다가 세월 다 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이 애쓴 결과만 보더라도 흥미롭습니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2,000여 명이 된다. 그 가운데에서 460명이 75편의 작품들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한편 75편 가운데에서 36편의 소설은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18편은 파리와 지방을, 21편은 파리를 완전히 벗어나서 지방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무대로 삼고 있다. 또한 460명 가운데 167명은 직업이 없다. 이들 중에서 55명은 귀족 출신이거나 신사이며, 62명은 귀족 출신의 부인들이고, 나머지 50명은 부르주아 출신 부인들이다. 다른 293명의 직업은 다양하다. 공무원, 법률가, 군인, 교회에 관계하는 사람, 사업가, 예술가 등이다.(400-401쪽)

 

프랑스 문학에서 발자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문학사가들의 관심사일 뿐 평범한 독자들한테까지 흥미로운 주제는 아닐 듯합니다. 그러나 그가 많은 작가들로부터 실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그는 몇몇 저명한 작가들로부터 '엉터리 작가'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으며, 프루스트와 같은 작가로부터는 심지어 프랑스어를 더럽힌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저질 작가'라는 오명을 씌운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살아 남았습니다. 『인간 희극』의 서문에서 미리 밝혔던 '나를 공평하게 평가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조국에서 홀대받은 그는 도리어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독일, 헝가리에서 훨씬 더 나은 평가와 존경을 받습니다. 발자크만큼 예리하고도 능숙하게, 객관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떠오르는 부르주아 사회'를 그려낸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는 줄곧 예술가적 신념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발가벗겨서 독자들에게 당차게 들이댔고, 그런 진실성과 역사성이 끊임없이 독자들을 매혹시켰습니다.

 

문학계의 나폴레옹이 되려고 했던 그는 어쨌든 '고상한 문학 풍조'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꾀했으나 '황제'에 오를 만큼의 위엄과는 사뭇 동떨어진 인물이었습니다. 무한히 샘솟는 풍요로운 상상력 때문에 '작품의 구성이나 플롯의 정연한 전개'는 너무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고, 지나치게 꾸며내고 과장하는 습관 탓에 '자제력'을 발휘하여 우아하고 재치있는 솜씨를 부려야 마땅할 장면에서도 허풍을 치고 속임수를 부린다는 점 때문에 '그는 남에게 학자나 철학가의 인상을 보이려고 하는 순간에 구역질나는 사기꾼이 된다'(플로베르)는 혹평까지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없었더라면 도대체 누가 당대의 사회를 구성했던 인물들을 그토록 익살맞고 재치있으면서도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낼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는 '소설을 쓴 셰익스피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묘사의 달인'이었습니다.

 

발자크는 작가 자신이 남들로부터 '연구 대상'이 될 만큼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글쓰는 일 말고도 수많은 사업을 벌였지만 판판이 망하고 큰 빚을 졌습니다. 그 때문에 평생 '돈 문제'에 시달렸지요.그는 '돈' 때문에라도 끊임없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열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살았던 작가도 드물었습니다. 걸출한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남긴 많은 평전 가운데서도 『발자크 평전』이 유독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 또한 그의 삶이 그만큼 특출난 때문이었습니다. 작가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고리오 영감』얘기로 넘어 가지요. 

 

『고리오 영감』은 '고전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돈키호테』를 읽을 때처럼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희극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이 소설의 주된 흥미는 '인생의 출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늙은 '고리오 영감'과 '인생의 입구'에서 점점 사회 한가운데로 깊숙하게 진입하는 전도유망한 '라스티냐크 학생' 사이의 선명한 대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과부 보케르가 운영하는 파리의 고급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하지요. 이들 말고도 그 하숙집엔 하숙인이 다섯이나 더 있습니다. 그들은 장차 어떤 식으로든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하숙생들보다 훨씬 더 결정적으로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은 바로 고리오 영감이 애지중지 키워서 귀족사회로 편입시킨 두 딸이지요.

 

발자크는 이 소설을 쓸 때 '창작 노트'에 미리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하지요.

 

"의리 있는 사나이, 하숙집, 6백 프랑의 연금, 5만 프랑의 연금을 가진 딸들을 위해 스스로 한푼 없는 빈털터리가 된 남자, 개처럼 죽어가는 그 모습"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비교적 단촐하고, 장소 또한 파리의 어느 골목 하숙집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좁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몹시 재미있으면서도 불멸의 고전으로 올라선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건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발자크 특유의 놀라운 입담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당시의 사회상'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아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이지요. 특히 '돈 문제'에 관한 한 그만큼 생생하게 그려낼 작가는 찾기 어렵지요.

 

고리오 영감이 두 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퍼붓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입니다.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꼭 닮았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다 겪은 끝에 제면업자로 크게 성공해서 번 상당한 재산을 두 딸의 결혼지참금으로 다 쏟아 붓지요. 자신의 노후대책이라고 해봐야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연금이 고작이었습니다. 두 딸을 시집 보내고 아내와 사별한 그는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하숙방에서 생활하는 외롭고 불쌍한 노인입니다. 그런 그에게 화려한 몸치장을 한 젊은 귀부인이 가끔씩 몰래 드나들지요. 같은 하숙집에 사는 하숙생들은 그 노인네가 '돈'을 주고 그 여자들을 불러들인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그녀들은 파리 사교계에서도 알아주는 백작 부인과 은행가의 부인이자 영감의 사랑하는 두 딸이었습니다. 그녀들은 화려한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남편 말고 따로 사귀는 정부(情夫)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요. 딸들은 자신의 정부가 떠안은 거액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서 친정 아버지인 고리오 영감에게 끊임없이 손을 벌립니다. 영감은 그런 두 딸을 위해 은식기마저 우그러뜨려 내다팔아 돈을 보태주고 종신연금을 저당잡혀 도와주지요.

 

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희생하고 아낌없이 내주는 부성애(父性愛)가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고리오 영감은 끝내 빈털털이 신세가 되어 '두 딸 조차 외면한 상태로' 쓸쓸하게 죽게 되지만 아주 잠깐 딸들을 원망할 뿐이지요. 두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 못지않게 감동적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리어 왕은 자신의 권력과 영지를 아양 떠는 두 딸에게 내주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델리아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매몰차게 대하지요. 그런데 막대한 영지를 물려받은 두 딸은 이내 아버지를 배신하고 내쫒지만 정작 막내딸 코델리아는 불쌍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두 딸에게 버림받아 황야에 버려지다시피 한 리어 왕은 일견 고리오 영감과 닮았습니다.

 

그러나 리어 왕의 비극이 막내딸 코델리아의 죽음에 이르러 절정과 동시에 파국에 이르렀다면, 고리오 영감은 스스로 아낌없이 두 딸들을 위해 도움을 주면서도, 그런 도움을 줄 능력이 고갈되는 걸 도리어 안타까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한다는 점에서 리어 왕 보다는 훨씬 덜 비극적입니다. 그러나 두 딸들이 '파리 사교계'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났던 '익숙한 패턴'에 따라 '파멸'로 치닫는 동안, 고리오 영감의 삶 또한 서서히 막바지에 이르는데, 이 과정에서 두 딸이 끝내 아버지의 마지막 간절한 소원인 '죽기 전에 꼭 한 번' 두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을 끝끝내 외면한다는 점에서는 비정하기만 합니다.

 

백작 부인과 남작 부인인 두 딸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인 '죽기 전에 꼭 한 번 봤으면'하는 희망조차도 외면한 이유 또한 너무나 사소하면서도 어이없는 이유들일 뿐이었습니다. 큰 딸은 정부(情夫)와 함께 저지른 대형 사고가 들통나는 바람에 남편으로부터 '외부인 접견 금지'를 당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 딸은 자신의 크나큰 목표였던 '더 큰 사교모임'에 진출하기 위해 기필코 그날 밤 초대장을 받은 '무도회'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리오 영감과 두 딸과의 관계가 이 소설의 밑바닥을 흐르는 주조저음(主調低音)이라면, 시골 출신의 가난한 대학생인 라스티냐크는 이제 막 인생의 출발점에 서서 꿈에 부풀어 '파리 생활'을 배우느라 몹시 바쁜 학생이라는 점에서 고리오 영감과는 사뭇 대조적인 울림을 줍니다. 시골에서 얼마 안 되는 밭뙈기를 붙이는 부모님이 보내 주는 빠듯한 돈으로는 보케르 아줌마에게 하숙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지요. 훗날의 '성공'을 위해 지금 당장은 밤을 새워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지만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모습을 슬쩍 엿보게 된 이 청년은 그만 마음이 세차게 흔들려 곧장 그리로 뛰어들고픈 충동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라스티냐크는 온갖 수소문을 다해 집안의 친척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파리의 부유한 주택가에 사는 먼 친척인 '자작 부인'에게 찾아가지요. 그는 대저택에 출입할 때 마땅히 타고 가야 할 '이륜 마차'는 커녕, 마부에게 줄 몇 푼 안 되는 '택시비'마저도 아껴야 할 형편입니다. 사교계에 드나들 때 갖춰야 할 맞춤복이나 구두나 장갑을 마련할 비용은 꿈도 꾸기 어려웠지요. 그래서 그는 고향의 부모님 앞으로 '눈물 겨운' 편지를 씁니다. 이유는 제발 묻지 마시고 최대한으로 돈을 마련해서 보내주시라고 말이지요. 나중에 기필코 성공해서 꼭 보답하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을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마침내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으로부터 쥐어짜낸 거금 1,550프랑이 그의 주머니에 미끄러져 떨어지자 그가 보인 반응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발자크의 천재적 재능은 바로 이런 곳에서 유감없이 빛나지요.

 

그의 내부에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원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제멋대로 모든 것을 갈망했다. 그는 쾌활하고 너그러우며 감정이 풍부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는 날개가 없던 새가 크게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뼈다귀 하나를 훔쳐낸 개처럼, 돈 없는 이 학생은 한 가닥의 쾌락을 꽉 붙잡았다. ……

 

파리 전부가 그의 것이었다. 모든 게 빛나고 번쩍이며 이글거리면서 불타는 나이이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젊은 사람 아니고는 아무도 맛볼 수 없는 기쁨과 힘이 넘쳐흐르는 나이!  빛과 격렬한 격정마저도 모든 기쁨을 열 배로 만들어줄 수 있는 나이! 센 강 왼쪽 언덕배기와 생 자크 거리로부터 생 페르 거리 사이를 지나다녀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 파리 여성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사랑을 구걸하려고 달려올 텐데!> (133∼134쪽)

 

청년 라스티냐크가 '인생의 출발점'에서 겪는 고뇌와 방황은 시골에서 도회지로 '청운의 꿈'을 안고 진학했던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읽었으니까요. 시골에서 한 해 동안 땀흘려 농사 지어서 버는 돈이라는 건 전세계 어디에서나 늘 액수가 빤하지요. 그런 사정을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4년간 등록금 전액 면제'를 받고 대학을 다녔어도 '비밀 과외'를 해서라도 하숙비를 보태야만 했지요. 그런데 촌놈이 대도시 서울에 올라와 보니 과연 서울은 거대하고도 휘황찬란했었습니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상경한 첫날 저녁에 대뜸 '명동'으로 '시내 구경'을 나갔는데 롯데쇼핑센터에서 번쩍거리는 휘황찬란한 불빛만 봐도 정신이 아득했고, 명동 일대의 고층 빌딩들을 쳐다보느라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젖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가끔씩 영화를 보러 시내의 개봉관을 찾을라치면 초대형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돌비 사운드 시스템에 넋이 나갈 정도였지요. 어쩌다 시내에서 직접 보게 된 여배우들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잠시 과외를 했던 중학생 녀석의 집도 마침 커다란 대문에 정원이 딸린 저택이었습니다. 아이를 가르칠 때마다 항상 귀한 과일을 내주시던 학생의 어머님은 TV 연속극에서나 봐왔던 사모님 같았었지요. 8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그 집안이 아직도 국내에서 내노라 하는 재벌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소설 속의 또다른 주인공인 라스티냐크도 시골에서 상경하여 '파리 생활'을 익히느라 몹시 바빴습니다. 그가 머무는 하숙집엔 수백만 프랑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처녀인 빅토린 양도 있었지요. 그녀는 평소에 은근히 라스티냐크에게 호감어린 눈길을 자주 보내온 터였습니다. 보케르 아줌마네 하숙집에서 지내는 가장 독특한 인물인 보트랭이 어느 날 라스티냐크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합니다. 빅토린 양이 '수백만 프랑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그녀의 오빠를 제거해 줄 테니 나중에 그녀와 결혼해서 갑부가 되고 나면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지요. 라스티냐크는 보트랭의 제안에 몹시 마음이 흔들리지만 용케 자신의 신념이나 도덕관념을 지켜내면서 보트랭의 제안에 굴복하지 않고 견뎌냅니다. 보트랭이 제안의 말미에 라스티냐크에게 '한 수' 가르치는 기분으로 들려주는 '세상 사는 이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인간이란 전부냐 아니면 전무냐, 어느 한쪽이지. 단 푸아레라고 불릴 때는 전무이지. 그런 놈은 빈대 새끼처럼 짓이겨 놓지. 그야말로 납작해져 냄새를 풍기겠지. 하지만 인간도 자네를 닮은 경우에는 하나님이지. 이젠 인간 가죽을 쓴 기계가 아니고 아름다운 감정이 약동하는 하나의 무대라네. 그리고 나는 그런 감정으로만 살고 있네. 하지만 감정은 사상 속에 있는 세계가 아닐까? 고리오 영감을 보게나. 그의 두 딸은 노인에게 우주 전체이지. 그녀들은 실이지. 그 실로 노인은 만물에 파고들 수가 있지. 자, 그런데, 인간을 깊이 파고들어 가본 내겐 단 하나의 현실적 감정만이 존재하네. 즉 남자와 남자 사이의 우정이지. 」

 

보트랭의 '인생 강의'는 여러 날에 걸쳐 라스티냐크를 계속 흔들어 댑니다. 파리에서 출세하는 법, 좋은 자리가 오만 개밖에 없는 사정, 파리 사회를 이루는 계층 구조, 파리에 도사린 온갖 지옥 같은 함정들까지도 보트랭은 훤히 꿰고 있지요. 라스티냐크가 뛰어들고 싶은 백 가지 직업에서 재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열 명쯤 있다면 바로 그 사람들을 '도둑놈'으로 부른다는 말까지, 그의 강의는 참으로 친절한 데가 있었습니다.

 

이제 자네가 결론을 끌어내 보게! 인생이란 지금까지 얘기한 그대로야.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 나는 세상을 알고 있네.(149쪽)

 

다시 고리오 영감 이야기로 되돌아 오지요. 두 딸을 아낌없이 도와주다가 끝내 완전한 빈털털이가 된 노인의 장례를 치를 인물은 이제 라스티냐크 밖에는 없었습니다. 고리오 영감은 일가친척도 없이 해가 질 무렵에서야 간신히 페르 라셰즈의 묘지에 안장되지요. 아주 헐값으로 사들인 극빈자용 관을 덮으려고 흙을 몇 삽 퍼서 던지던 두 명의 매장꾼이 라스티냐크에게 돈을 요구했지만, 학생의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지요. 하숙집에서 영구차가 떠날 때부터 동행했던 사람이라고는 하숙집 심부름꾼인 크리스토프 밖에 없었지요. 라스티냐크는 그에게 일 프랑을 빌려 매장꾼에게 건네줍니다. 그는 너무나 슬퍼서 발작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지요. 그가 고리오 영감을 매장한 후 어둑어둑해진 묘지의 언덕에 올라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 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이 소설의 결말입니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제가 오래 전에 대학을 다니던 무렵이 불현듯 다시 떠올랐습니다.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하여튼 이맘때처럼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시골 고향에서 낮에는 농사일을 거들고 밤에는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맘껏 술을 마시며 놀던 방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기 위해 하루 온종일 걸리는 버스를 탔었더랬지요. 꾸벅꾸벅 졸다가 문득 눈을 떠 보니 어느새 거대한 도시가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한강을 따라 온갖 불빛들이 거대한 띠를 이루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시골 고향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저는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몸을 고쳐 앉았습니다.

 

"여기가 바로 서울이군,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군."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때 속으로 떠올린 혼잣말 속에는 분명 '서울과 나와의 대결'이라는 뜻도 아예 없지는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다가 그토록 오래 전에 제가 직접 경험했던 젊은 날의 희미한 기억과 풍경과 다짐들을 되살려낼 줄 그 누가 알았을까요.

 

이것으로 『고리오 영감』에 대한 작품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 * *


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N3yl7lCoq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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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필사하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필사하기 좋은 책들이 필사 노트와 함께 팔리기도 했었다. 나도 이미 오래 전부터 필사의 유익함을 체험한 터여서 내심 그런 분위기가 반가웠더랬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밑줄 하나 긋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게으른 태도인가. 또한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을 단 한 줄도 옮겨 쓰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심한 태도인가.

 

나는 책을 읽는 동안에 노트에 뭐라도 좀 끄적거려야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근사한 대학 노트를 마련하는 걸 무슨 낙으로 삼을 정도였다. 아래 사진만 봐도 그렇다. 이 노트는 군복무 시절에 PX에서 구입했는데, 합성수지 커버에 중간 중간에 색깔이 다른 컬러 내지도 딸려 있는 걸 보면 (병사 월급에) 돈푼깨나 줬던 듯하다.



이 노트를 보노라면 무슨 습작이라도 한 권 쓸 것처럼 자못 거창하게 어쩌구 저쩌구 장식을 해 놓았지만, 사실 그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별다른 건 없다. 그저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남긴 잡다한 흔적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게 어디랴 싶긴 하다. 만약에 내가 이런 독서 노트조차 남겨 놓지 않았더라면 내가 까뮈를 1984년 9월 15일에 만났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또한 그해 9월에 읽었던 몽테뉴의 수상록이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알라딘 서재에 터를 잡고 이런 저런 리뷰나 페이퍼를 쓰기 시작했을 때에도 당연히(!) '독서 노트'를 새로 마련했었다. 그런데 그 때는 독서노트를 한꺼번에 좀 많이 샀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책을 읽겠노라 다짐했기 때문에 독서노트 몇 권쯤은 금방 채울 듯했고, 여러 해 동안 책을 읽자면 다량의 독서노트가 필요할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꺼번에 왕창 구입한 독서 노트를 쓴 지 여러 해가 지나자 차츰 독서 노트에 책 속의 내용을 옮겨쓰는 분량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헀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독서 노트를 디지털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독서 노트도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불편해졌다. 책 속의 문장들을 독서 노트에 옮겨 적고, 그 문장들 사이로 내 생각을 마음껏 적어 넣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어느 정도 분량이 쌓이기 시작하니 도무지 '검색'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간신히 내가 원하는 문장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일일이 다시 타이핑을 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습관화되었던 '아날로그 필사'도 차츰 '디지털 필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제서야 겨우 깨달은 사실이지만, 아날로그 독서 노트는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로 변했다. 한때는 이 노트 속에 담긴 내용들까지 몽땅 디지털화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새로운 책들도 읽어야 했고, 새롭게 읽은 책 속에 담긴 좋은 문장들도 부지런히 타이핑해서 갈무리하기 벅찼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해 왔던 독서 노트들도 차츰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기를! 또한 너희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일은 결코 없을 테니 너무 겁먹지도 말기를.





지난 연휴 동안에 <밑줄긋기와 필사에 대하여>라는 동영상을 하나 만들면서 그 동안 내가 필사에 힘을 기울였던 책들을 한꺼번에 불러 내서 책장 앞에 쌓아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발췌 필사를 마무리한 책이 대략 서른 여섯 권이고, 필사를 절반 혹은 1/3쯤 진행했던 책들도 열 권 남짓 되었다. 이 책들의 쪽수를 다 더해봤더니 무려 29,341쪽이나 되었다!(필사를 마친 책이 22,222쪽, 필사를 중도 포기한 책이 7,119쪽이었다.)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고 난 뒤에 유튜브 검색창에서 '필사'를 검색해 봤더니 의외로 필사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깜짝 놀랐다. 감성이 중요시되는 흐름 때문인지 펜으로 또박또박 써나가는 필사 영상이 의외로 어필하는 듯하다. 내가 독서 노트를 버리고 디지털 필사로 갈아탄 것이 도리어 시대 흐름에 역행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는 더이상 아날로그 필사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PGOAnsodd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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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5-05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사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되는지는 몰라도 그래도 뭔가를 적으며 읽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은 벌써 제 기억에서 차이가 나더라구요^^
그 많은 기록의 산물이 oren님을 유투버로 이끌지않았나 생각됩니다^^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oren 2020-05-05 13:51   좋아요 1 | URL
필사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기 보다는 아날로그 필사에서 디지털 필사로 ‘진화‘했다고 보는 게 더 좋을 듯해요. 물론 ‘필사‘라는 말 그대로, 펜을 들고 종이에 꾹꾹 눌러 쓰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필사가 맞겠지만, 베껴쓰기에 방점을 찍게 되면 타이핑해서 옮겨 적는 행위도 필사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요. 이 시대 최고의 독서가인 알베르토 망겔 역시 ‘디지털 필사‘를 강조했고요.

저는 오늘에서야 문득 ‘필사의 놀라운 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필사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표현력, 어휘력, 설득력‘ 등이 향상되었다는 걸 알았거든요. <필사 인생 12년>이라는 타이틀로 영상을 만든 김시현 작가님의 영상을 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저는 필사 경력이 17년씩이나 되니, 그 세월 동안 천재 작가들의 문장을 끊임없이 베끼고, 교정하면서 다시 읽고, 갈무리한 필사 내용을 수시로 꺼내 반복해서 읽고 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그런 능력들이 향상된 것일 테지요. 몽테뉴, 헨리 데이빗 소로우, 쇼펜하우어, 니체, 호메로스, 플루타르코스, 오비디우스, 키케로, 애덤 스미스, 세르반테스, 톨스토이, 베르그송 등등을 만난 것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인데, 그들의 문장을 베끼고 다시 읽고 하는 사이에 그들의 멋진 문장력까지도 알게 모르게 모방하게 되니, 필사만큼 좋은 독서법도 드물지 않나 생각합니다.

참고로, 김시현 작가님의 <필사 인생 12년> 동영상도 한번 살펴보세요~
https://youtu.be/G3WYhlO5_Bs

막시무스 2020-05-05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첩과 함께 백두산, 이집트 여행!
너무 인상적입니다! 이번 영상도 잘 보았고 많이 배웠어요!ㅎ 감사합니다!

oren 2020-05-05 13:48   좋아요 0 | URL
산행수첩에는 정말 많은 땀이 베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는 순간을 넘어 탁 트인 능선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행수첩‘을 꺼내 자그마한 기록을 남기는 기쁨을 쉽게 포기하진 못하겠더라구요.^^ 제 영상 애시청해 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5-06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뛰는 놈 위에 날으시는 분이십니당~~
저도 한때 노트에 열심히 필사했었는데... 요즘은 가끔 노트북으로 좋은 글을 옮겨 적습니다.
볼펜보다 자판이 편해서요. 그리고 오디오북을 애용하고 있어요.
오렌 님의 유튜브를 들을 때도 있어요. 눈이 피로하니 귀를 사용하게 되네요.
의외로 듣는 재미가 있어요.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합니다만...

오렌 님의 글씨체를 보니 주관이 뚜렷하고 의지가 강하고 바른생활 아저씨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네요.
느낌이 그렇습니다. ㅋ

oren 2020-05-09 15:28   좋아요 1 | URL
페크 님께서도 필사를 좋아하시는 줄은 예전부터 잘 알고 았었지요.^^
책 속의 좋은 문장들을 정말 많이 알고 계시는 분 가운데 한 분이 페크 님이셨으니까요.
밑줄긋기와 필사는 어쩌면 <능동적인 독서>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늘 해 왔던 숙제가 바로 ‘어디서 어디까지 베껴 오라‘는 거였으니까 말이지요.
제 글씨체는 정성들여 쓸 때는 봐줄 만하다 싶어도, 바쁘게 대충 쓰면 이내 흐트러지고 마는 듯해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답니다. 잘 차려 입었던 옷도 벗어놓으면 꼴사납게 변하듯,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아무튼 제 글씨체도 좋게 봐주시고, 제 영상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페크 님~~

초록별 2020-05-10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유튜브 시청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블로그도 하시나요?

oren 2020-05-10 22: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초록별 님~
블로그는 알라딘 서재 블로그가 메인입니다.^^
네이버 블로그도 있긴 하지만,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있답니다.
https://blog.naver.com/ojcojj
유튜브에 올리는 제 영상 봐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marine 2020-06-1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씨를 잘 못 써서 필사 대신 자판으로 치는데 문제는 손가락이 아프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어려운 책도 옮겨 적다 보면 이해가 확실히 잘 되는 것 같긴 한데 중요한 부분만 옮기는데도 시간이 너무 걸려 그 시간에 책을 더 읽는 게 나은가 늘 고민이 됩니다.

oren 2020-06-20 00:2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필사‘는 예로부터 아주 고된 작업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 고된 일을 통해서 뛰어난 작가의 문장들이 내 몸 속으로 조금씩 들어와 앉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 빌어먹을 보바리 때문에 나는 괴롭다 못해 죽을 지경이다 …… 나는 지겹고 절망적이다 …… 기진맥진한 상태다 …… 보바리가 나를 때려눕힌다 …… 태산을 굴리는 듯 지겹다 …… 정말이지 보바리는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 플로베르, 1852년 6월에 쓴 <편지> 중에서

 

 * * *

 

유튜브 동영상을 만드는 데도 '창작의 고통' 같은 게 있을까?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떠한 동영상이든 이제껏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새로운 동영상을 만든다는 점에서, 유튜브 영상들은 기실 대부분이 창작물들이다. 그 창작물의 재료들이 상당 부분 이미 존재해 있는 것들을 이리저리 끌어모으고 재조합했다고 하더라도, 창작물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가.

 

그런데, 책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라치면 솔직히 겁이 좀 난다. 텍스트로 이뤄진 대본이야 얼마든지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텍스트를 영상으로 변환하는 데에는 수많은 선택지가 뒤따를 수밖에 없으며, 도저히 만족스러운 영상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경우를 만날 때마다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하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대표작인 『댈러웨이 부인』이나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마담 보바리』와 같은 작품도 마찬가지다. 텍스트로는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그 설명을 뒷받침하는 영상 컨텐츠를 찾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이들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예전에 써 둔 서평글을 살피는 동안 그런 생각부터 앞섰다. 이들 작품을 동영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끝내 중도에 좌절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왜 없겠는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작가 특유의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한'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을 영상으로 표출하는 데 상당한 한계가 있었다.(보석 같은 물방울들을 잔뜩 매달고 영롱하게 빛나는 거미줄의 이미지가 나를 도와주었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미지를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어느 정도 스스로 타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영상 컨텐츠가 확보되는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 어머니, 언니, 남편의 이미지를 찾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작가의 삶과 연관된 사진 자료들이 풍성할수록 동영상 작업은 탄력을 받는다.

   『댈러웨이 부인』을 바탕으로 쓴 『디 아워스』라는 작품의 작가 얼굴도 이번에 처음 만났다.

 

 

 -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는 학자이자 문필가였다.

   왕립학회 회장을 지낸 토머스 헉슬리도 아버지의 친구였다.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는 토머스 헉슬리의 손자였다.

 

 

  -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다.

    『일반이론』을 쓴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버지니아 울프의 '블룸즈버리 그룹' 멤버였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 확보된 이미지 자료는 플로베르의 얼굴 사진 한 장과 크루아세를 묘사한 그림 한 장이 전부였다. 과연 이렇게 허술한 기초 자료 위에서도 『마담 보바리』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텍스트를 대본 삼아 녹음한 분량만 해도 20분이 훌쩍 넘는데, 이 새까만 바탕 위에 1,200초(20분×60초)나 되는 기나긴 시간을 어떤 이미지로 채워나갈 수 있을지 참 막막했다. 그런데 계속 고민하고, 찾고, 끌어 모으고 하다 보니 결국 빈 틈들을 어떤 식으로든 채울 수 있었다. 한 장밖에 없던 플로베르의 사진도 예닐곱 장이나 마련할 수 있었다.

 

 

 - 엠마 보바리의 첫 번째 외간 남자였던 청년 레옹의 이미지는 너무 근사한 반면,

    엠마 보바리는 소설에서 그려진 것처럼 그렇게 뛰어난 미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 엠마 보바리의 남편인 샤를르 보바리는 시골 의사 답지 않게 무척 세련된 모습이다.

   소설을 읽을 땐 아무런 이미지도 떠올리지 못했던 포목상 뢰르, 바람둥이 로돌프의 이미지도 찾아냈다.

 

 

 - 플로베르는 루앙 태생이고, 소설 속에서도 루앙이 자주 언급된다.

   이번에 동영상을 만들면서 비로소 '루앙'이 어떤 곳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소설가 플로베르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센 강변의 크루아세'라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지 석 달이 훌쩍 지났다. 내 채널의 구독자 수도 400명을 훌쩍 넘기고 보니, 영상 하나를 만들어 올리고 나면 이내 다음 영상을 만들어 올릴 궁리에 바쁘다. 동영상의 업로드 주기가 하루, 이틀만 늘어나도 나 스스로 '마감'에 쫓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 *

 

동영상 링크 주소는  https://youtu.be/MTUYTbjXDbA


 

 

동영상 링크 주소는 https://youtu.be/awC0tN9mW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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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3-28 2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울프와 헉슬리의 관계가 친구 이빠의 선자!!! 우아
저 운전하먄서 유터브 들을래요~!
전자책 읽기는 넘 느려 거민중이었거든요 :-)

oren 2020-03-28 23:25   좋아요 2 | URL
학자이자 비평가였고 이름난 문필가였던 부친 덕분에, 버지니아 울프는 어려서부터 지적인 자극을 흠뻑 받으며 성장했지요. 당연히, 버지니아 울프의 집엔 당대를 대표하는 문사들의 출입이 잦았고요.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였던 토머스 헉슬리도 부친과 가까운 친구 사이였을 정도죠. 왕립학회 회장을 지낸 토머스 헉슬리는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 서문에도 등장하고요.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는 바로 토머스 헉슬리의 손자였죠.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도 실존 인물이었던 찰스 다윈과 토머스 헉슬리가 잠깐 등장하는 걸 보면, 버지니아 울프가 아빠의 친구였던 토머스 헉슬리로부터 ‘찰스 다윈‘의 이야기를 엄청 들었지 싶은 추측도 듭니다.^^

초딩 2020-03-29 00:26   좋아요 2 | URL


아 ~ 그리고 댈러웨이 부인 역자가 최애리님이네요 ^^ 열린책들이고요.
열린책들의 최애리님의 ‘등대로‘를 읽을 때, 역자분이 너무너무 너무너무 좋았답니다. ‘글이 곱다‘라고 생각했어요 ^^
같은 출판사 같은 역자로 댈러웨이 부인도 읽어봐야겠어요 ^^
그리고 예전에 미국 ‘델라웨어‘ 운전하고 지나다 거기 휴계소에서 잠시 쉬었는데, 순간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랑 무슨 상관일까 한참 생각했던 기억이 있네요 :-)

oren 2020-03-29 02:08   좋아요 2 | URL
<댈러웨이 부인>의 역자인 최애리 님은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에서 발간한 버지니아 울프의 <밤과 낮>도 번역하신 분이네요. 아카넷의 ‘학술명저번역 시리즈‘까지 맡은 분이니, 번역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서도 나름 조예가 깊으신 분 같고요.

미국의 ‘델라웨어‘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떠올리셨다니, 초딩 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이 유명한 책을 맘 속에 담아놓고 계셨었군요. 저는 델라웨어가 어드메쯤에 있는 줄도 모릅니다. 미국은 서부로 한 번, 동부로 한 번, 딱 두 번밖에 가보질 못해서, 한 번쯤은 내륙쪽으로 좀 더 들어가 보고 싶어요.. 세인트루이스라든지, 네브라스카 라든지... 내슈빌이라든지.. 델라웨어라든지 말이지요..

초록별 2020-03-28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책읽는 기쁨이 배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

oren 2020-03-28 23:24   좋아요 2 | URL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시는 분들 중엔 진짜로 책에 관심이 있어서 일부러 검색해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책과는 담을 쌓고 지내온 분들이 그냥 심심풀이로 영상을 열어보는 경우도 있는 듯해요. 그 대신 알라디너 분들은 진짜로(!) 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고, 이미 소개된 작품을 읽고 나서 ‘이 양반은 또 무슨 객쩍은 소리를 늘어놓을까‘ 궁금해서 영상을 보시는 분들도 있지 싶어요. 암튼 제 영상 덕분에 책 읽는 기쁨이 배가 되었다니, 제게는 그보다 더한 보람이 없습니다.^^

라로 2020-03-29 06: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익하고 즐거운 감상이었습니다! 오렌 님 정말 대단하세요!! 매번 감탄사가 나오네요~~~. 감사합니다!!! ^^

oren 2020-03-29 12:38   좋아요 0 | URL
라로 님께서도 제가 만든 영상을 봐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구글의 인공지능이 워낙에 똑똑해서 영상의 시청시간, 시청횟수, 좋아요, 댓글 등등을 일일이 점수화해서 ‘영상 노출 빈도‘를 결정한다고 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상 시청이 모두 소중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라로 님의 영상 시청에는 인공지능조차 결코 알아채지 못하는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늘 성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초딩 2020-04-02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 님 안녕하세요~
오늘 출근하면서 유투브 만드신 안나 카레니나와 톨스토이 소개 영상 봤습니다~
완전 감동했했습니다. 레빈, 키티 등의 등장 인물 이름을 영상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을 때의 감상이 돋았습니다.
책과 톨스토이에 대한 통계, 당대의 말들 그리고 마담 보바리와 디킨스 소설을 이용한 비교 설명.
그리고 oren님의 통찰력 넘치는 서평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잘 준비하신 것이 묻어나는 영상을 보고, oren님에게 큰 감사 드립니다.

영상 주소
https://youtu.be/3rMl-7frvAc

oren 2020-04-03 00:58   좋아요 2 | URL
제가 만든 영상을 그 바쁜 출근 시간에 보셨다니, 초딩 님의 시간 활용법도 대단하시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사실 제가 만든 영상은 거의 대부분이 25분 가까운 러닝 타임을 갖는 긴 영상들이어서, 좀처럼 ‘풀시청‘하기가 어려운데, 출근 시간에 제 영상을 보셨다면 당연히(!) 풀시청이 가능했을 테고, 남겨주신 댓글만 보더라도 초딩 님께서 제 영상을 얼마나 꼼꼼하게 집중해서 보셨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듯합니다.

제가 무슨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저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일하는 분야도 제 전공에 맞는 쪽이고요.), 유튜브 활동을 위해 무슨 오랜 준비를 한 것도 아닌데, 말 그대로 ‘어쩌다 유튜버‘가 되어,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능력껏 동영상을 만들 뿐입니다. 그런데, 동영상은 한 번 만들어 올리면 수정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한 번 유튜버에 올려 놓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접근할 수 있고, 또 (일부러 삭제하지만 않는다면) 오래도록 유튜브 플랫폼에 남아 있을 터이기 때문에, 온갖 부족한 지식이나마 마른 수건을 짜듯 최선을 다해 동영상을 만들게 되는 듯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매주 1회‘ 정도로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풍성한 영상들이 쌓일 테고, 뛰어난 작가들이 남긴 걸작들을 소개하는 동영상들이 50개, 100개, 200개, 차근차근 계속 쌓이다 보면, 하나의 ‘디지털 도서관‘처럼 제 채널에 오셔서 ‘책 읽는 재미‘에 빠질 수도 있으리라는, 그런 발칙한 상상도 해 보고 있습니다. 늘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시고, 성원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020-04-07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07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20-05-31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 생각난 아이디어 인데 텍스트 (대본) 을 보고 알아서 유사 이미지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작성하면 편할것 같 습니다. 잘 찾아보면 나와 있는 것도 있을수 있고요. 한번 찾아보고 없으면 만들수 있나 봐야 겠어 요.

oren 2020-05-31 18:45   좋아요 0 | URL
그런 놀라운 아이디어도 있군요. 정말로 그런 게 있다면 영상 만드는 일이 한결 수월할 것 같기도 합니다. 문학작품의 경우에는 텍스트에 알맞는 영상들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철학이나 역사 또는 과학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책들을 소개할 때는 관련 영상들을 찾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에 가까운 영상들을 구경하기 어려울 때가 많거든요. 좋은 아이디어나 방법이 있으면 제게도 꼭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