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법률,역사,철학 등을 포괄하는 엄청난 넓이와 깊이를 지닌 경제학 고전의 명저


매우 유쾌하고 아름다운 재능을 가지면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재능을 돈벌이를 위해 발휘한다면, 이성에 의한 판단이건 편견에 의한 판단이건 간에, 몸을 파는 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그 재능을 돈벌이를 위해 발휘하는 사람들의 금전상의 보수는 그 재능을 얻는 데 든 시간·노동·비용을 보상할 뿐만 아니라, 그 재능을 생활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얻게 되는 불명예를 보상하는 데 충분해야 한다. 배우·오페라 가수·오페라 댄서 등의 매우 큰 보수는 이러한 두 개의 기준, 즉 재능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것과 그 재능을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불명예스럽다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인격을 경멸하면서도 그들의 재능에 대해 이렇게 후하게 보상하는 것은 언뜻 생각하면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인격을 경멸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들의 재능에 대해 후하게 보상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직업에 대한 일반의 견해 또는 편견이 변한다면, 그들의 금전적인 보수는 곧 감소할 것이다. 

- 아담 스미스, 『국부론』 中에서(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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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사람의 묘비에 새겨진 글

역사의 기록들을 검토해 보고, 당신 자신이 경험한 범위 내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회상해 보고, 당신이 책에서 읽었거나 이야기를 들었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자신의 개인생활에서건 사회생활에서건 극히 불행했던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어떠했었는지를 주의를 기울여 고찰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그들 중 절대다수 사람들의 불행은 그들이 자신의 한창 좋은 때가 언제인지, 조용히 앉아서 만족하고 쉬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즉, 만족하고 멈추어야 할 때를 몰랐던 데 있는 것이다). 온갖 약을 복용함으로써 건강한 자신의 신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어느 한 사람의 묘비(墓碑)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나의 몸은 건강했다. 나는 더욱 건강해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에 있다"라고. (277쪽∼278쪽)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中에서


 * * *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中에서 

 - 찰스 P. 킨들버거,『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題詞 中에서



  * * *
 

과잉팽창


전쟁은 "과잉팽창", 즉 자신의 능력을 넘는 야심의 결과일 수 있다. 과잉팽창에 대해서도 애덤 스미스는 여러 격언들을 만들어냈다.

"역사기록을 살펴보라. 당신의 경험 속에서 일어난 일을 회상해 보라. 당신이 읽고 듣고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이거나 공적인 생활에서 일어났던 큰 불행을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러면 대부분의 불행은 그들이 언제 행복한지, 언제 얌전하게 자리에 앉아서 만족하고 있어야 하는지 몰라서 일어났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비참과 무질서를 초래하는 큰 원천은 부와 빈곤 사이의 차이를 너무 과도하게 평가하는 데에 있다. 또 공적인 지위와 사적인 지위 사이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데에서 야심이 나오고, 무명과 유명 사이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데에서 허욕이 나온다." (22쪽)

 - 찰스 P. 킨들버거,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90』 中에서


 * * *


승리의 한계정점


승리의 한계정점은 적의 타도가 전쟁의 목표일 수 없는 모든 미래 전쟁에서 나타날 것이며 대부분의 전쟁에서 항상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전역계획의 본질적 목표는 공격이 방어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를 초과하는 것은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는 무익한 노력일 뿐만 아니라 적의 반격을 유발하는 유해한 노력이다. 극히 보편적인 경험에 의하면 이 반격은 항상 적대적 효과를 지닌다. 이 현상은 관련 원인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필요없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자명하며 쉽게 이해될 수 있다. (357쪽)

이쯤에서 야전사령관이 결심 전에 유의해야 할 모든 요인들을 재음미해보면 야전사령관은 수많은 가능성, 즉 가깝거나 먼 가능성을 고려하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능성의 방향과 가치를 평가하고 어느 정도까지 예측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① 야전사령관은 최초 타격이 오히려 적의 결의와 저항력을 단단하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적군이 볼로냐의 유리병처럼 표면이 긁히자마자 산산이 부서질 것인지 여부를 예측해야 한다.

② 야전사령관은 적국의 보급 원천의 고갈, 연락선의 차단 등이 유발한 적군의 약화와 마비의 정도를 예측해야 한다.

③ 야전사령관은 상처 입은 적이 타는 듯한 고통 때문에 혼절하여 주저앉을 것인지 상처입은 황소처럼 광분하게 될 것인지의 여부를 예측해야 한다.

④ 야전사령관은 다른 강국들이 공포에 떠는지 또는 분노하는지, 정치적 동맹관계가 해체될 것인지 또는 형성될 것인지의 여부를 예측해야 한다.

야전사령관은 이상의 모든 요인과 다른 요인들에 대해 사수가 표적에 명중시키듯이 신중한 판단력으로 적확하게 예측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인간 정신의 성취 능력이 결코 미미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방면의 수많은 질곡이 야전사령관의 판단력을 오도할 수 있다. 여러 요인들의 영향력, 혼돈, 복잡성 등이 야전사령관을 압도할 만큼 충분치 않다면 상황의 위험성과 야전사령관의 책임감은 수많은 질곡을 극복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이 대다수의 야전사령관이 목표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기 보다는 훨씬 못 미치는 곳에 남아 있기를 좋아하고, 고도의 용기와 모험정신을 지닌 야전사령관도 때때로 목표를 초과하여 목적의 달성에 실패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오직 제한된 수단으로 큰 결과를 이룰 수 있는 자만이 전정으로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360쪽)

 -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전쟁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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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2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제에 대하여, 언제 만족하고 멈추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거 같아요. 안분지족安分知足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제일 좋겠는데 말이죠,
그놈의 욕심이란게.. 아하하.

oren 2011-03-01 18:05   좋아요 0 | URL
절제의 미덕을 배우기 쉽지 않다는 게 늘 문제인 것 같아요.

"연습과 실천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것 없이는 어떠한 습관도 상당한 정도로 형성될 수 없다. 곤란, 위험, 상해, 불행 등은 우리가 그 밑에서 이러한 미덕의 실천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아무도 스스로 그 아래 들어가서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 교사들인 것이다." - 애덤 스미스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은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그가 어리석게도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적 안정을 교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만 살펴보아도, 인간생활의 일상적인 모든 상황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마찬가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상의 여러 가지 상황들 중에서 어떤 상황은 다른 상황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중(愼重: prudence) 또는 정의 (正義: justice)의 법칙들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격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는 후에 가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회상할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회한(悔恨)으로 마음의 장래의 평정까지 파괴해 가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신중(愼重)이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지도(指導)하지 않고, 정의가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는 시도를 허용하지 않는데도 그것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모든 위험한 게임들 가운데서 가장 불평등한 게임을 하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으로서, 그가 장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에피루스(Epirus) 국왕의 총애하는 신하가 국왕에게 말한 것은 인생의 일상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국왕은 그 신하에게 자신이 예정하고 있는 모든 정복 계획들을 차례대로 설명해 주었는데 그 최후의 정복계획에 이르렀을 때 그 신하가 말했다. "그런 다음에 폐하께서는 무엇을 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러자 국왕이 대답했다. "그런 다음 나는 나의 친구들과 더불어 즐겁게 지낼 거야.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과 사귀도록 노력할 거야 ······ ." 그 신하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폐하께서 지금 그렇게 하시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275쪽∼276쪽)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中에서


 * * *


여행 의욕

물론 오래오래 살아서 차비라도 벌어놓은 사람은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그때는 활동력과 여행 의욕을 잃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처럼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78쪽)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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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장 심각하고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1-12-19 16:07 
    가장 심각하고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은 '삶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든 마찬가지다. 이런 준비를 시작하며 사람들은 완벽한 삶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완벽한 삶에 이르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사람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그 계획에 비하면 삶은 너무나 짧다. 그런 계획을 실행하는 데는 짐작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또 그런 계획은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자주 좌절을 겪고 장벽에 부딪혀 목표한 대로
 
 
마녀고양이 2011-02-28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를 옮겨놓고 다시 보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를 방해하는 것은 어떤 녀석일까 생각합니다.

오렌님, 오랜만이셔요.... 늦었지만 새해 즐거운 일 가득하셔요.

oren 2011-03-01 17:33   좋아요 0 | URL
마고님의 댓글 보면서 또다시 읽어봐도 애덤 스미스의 말은 '명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많음(혹은 높음)과 적음(혹은 낮음)의 차이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은 나이를 먹는 데 따라 점진적으로 줄어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조금만 회상해 보더라도, 내 옆 짝궁이 가졌던 조금 더 멋진 많은 것들(옷,가방,신발,장난감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연필과 지우개, 딱지와 구슬까지도)에 대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할 정도니까요.

나이가 들수록 주위를 살펴보면 '돈이 많거나 적거나' 혹은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하는 문제에 대해 갈수록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걸 훨씬 더 자주 보게 됩니다. 살면서 나이를 먹다보니, 수백억 혹은 수천억이나 수조원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과도 가끔씩(혹은 자주) 만나서 어울릴 기회가 있는데, 그 사람들도 나이가 들수록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오히려 각자의 건강에 대한 차이가 훨씬 더 중요하고, 각자의 자식에 대한 문제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오고,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누구나 완전히 똑같게 된다는 사실 등)을 점점 더 깊이 인식하는 것 같아요.

역설이긴 하겠지만, 그런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일수록 그 자신이 그만큼 젊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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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③
불멸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필연적으로 남겨진 믿기 힘든 결과물들 ④
백두산에 한 번 올라가 보세요~


DSLR에 처음 입문하면서 만났던 서른디(Canon EOS 30D)와는 이제 오늘밤이 마지막이다. 얼마 전에 갑자기 오두막(Canon 5D Mark II)으로 용감하게(?) 갈아타기로 작정하면서 30D는 처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른디는 2007년 7월에 구입했는데, 최근 몇 년간 가까이 지내왔던 지인분께 그 당시 구입원가의 약 1/3 가격에 뚝~~ 잘라서 팔게 되었다. 30D와는 그동안 얼마만큼 정도 들었고, 웬만하면 'two body'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오두막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팔기로 한 지인분께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분은 오래 전에 필카를 제법 오랫동안 다뤘던 경험이 있으신 분인데, 나이를 들면서 카메라가 DSLR 중심으로 변하는 바람에 이 쪽으로는 전혀 관심을 끊고 지내 오다가, 내가 이번에 오두막으로 갈아탄다는 얘기를 듣고선 선뜻 '나한테 팔라'고 말씀하시길래 서로 주저없이 단돈 ***만원에 물건을 매매하기로 의견일치를 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그분과 함께 국내의 여러 곳을 놀러 다니면서 '서른디'와 제법 함께 했던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참 잘된 일이다 싶다.

2007년 여름에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아들 녀석과 함께 백두산 종주 산행을 갔다온 적이 있는데,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급작스럽게 '카메라를 아주 잘 다루는 고교 동창생'의 권유로 이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친구 덕분에 DSLR이 뭔지도 알게 되었고, 그 친구와 함께 '모델 출사'에도 참석해 보고, 또 무엇보다도 여행을 다닐 때마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 덕분에 나의 삶이 옛날보다 조금이나마 더 풍성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싶다. 


* 이미지 위에 '마우스클릭'하면 더 큰 이지미를 볼 수 있습니다


(손때가 묻은 Canon EOS 30D의 모습)



카메라와 관련해서 내가 늘 안타깝게 느끼는 점 한 가지부터 미리 얘기해야 겠다.

DSLR에 입문한지 어언 4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여전히 '적정 노출'과 '화이트 밸런스'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스트로보는 갖췄어도 선막동조와 후막동조를 구분해서 사용할 줄도 모른다.

더욱 한심스러운 일은 귀찮고 무겁다는 핑계 등으로 '삼각대'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똑딱이 수준의 막샷을 남발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어디든 길을 나설때면 용감무쌍하게도 무거운 카메라 가방은 꼬박 꼬박 챙겨서 집을 나선다는 점일 것이다. 어쨌든 사진을 조금이라도 더 찍어보고 배워볼려는 의지는 충만한데, 도대체 실력이 늘지 않는 게 언제나 문제이다.


(기본인 50mm 단렌즈조차 생략한 채 거의 언제나 표준줌렌즈를 장착한 Canon EOS 30D)



(그동안 열심히 메고 다닌 덕분에 스트랩이 제법 낡았다)



(2009년 봄에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기에 앞서 용감하게도 '아빠백통'까지 마련했다.)



(부드러운 융으로 닦아놓고 봤더니 아직까지도 새 물건 같다)



(렌즈를 제거하고 바디캡을 닫은 모습)



(2.5" LCD 창을 가진 후면부)



어쨌든 30D와 함께 한 약 4년 동안 어설픈 솜씨로 사진을 열심히 찍긴 했는데, 여태껏 제대로 찍은 '사진다운 사진' 한 장 없어서 그 흔한 디카사진 인쇄조차 맡겨본 기억이 없는 점은 무척 아쉽다.

30D를 들고서 여기 저기 무척이나 열심히 쏘다녔던 것 같은데, 결과물은 거의 언제나 다음 카페나 네이버 카페에 올리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도 '어설픈 사진'에 대해서도 후하게 봐주는 친구들 덕분에 각종 동문회, 동문 체육대회, 사은회, 추억의 수학여행, 철마다 다녔던 산행(북한산,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 청옥산, 덕유산 등등), 각종 축제와 행사 등등에 카메라를 지참하고 별다른 부담감없이 '스냅사진들'을 중심으로 열심히 막샷을 찍어온 것 같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출장'도 심심찮게 다녀온 것 같은데, 대충 꼽아보면, 백두산(2007년 8월), 이집트(2008년 2월), 필리핀(2007년 11월, 2008년 5월, 2010년 1월), 중국, 미국·캐나다(2009년 5월) 등지를 이 녀석과 함께 다녀온 것 같다.

얼마 전에 급작스럽게 오두막(Canon 5D Mark II)으로 바꾼 건 '고교동창들과의 해외전지훈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언젠가는 오두막으로 갈아탈 작정을 내심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르면 올해나 내년쯤에 '중남미 여행'을 꼭 가볼 예정인데, 그 여행길에 실제 오르게 되면 틀림없이 오두막으로 바꾸기로 미리부터 내심 단단히 작정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번에 '고교동창들과의 짧은 해외전지훈련'에 함께 가기로 한 동창생 녀석의 은근한 꼬드김에 넘어가는 바람에 예상보다 너무 성급하게 결국 오두막으로 갈아타고 말았다.

2007년 여름에 나에게 DSLR로 입문하게 해준 그 동창생 녀석은 카메라 경력만 20년이 넘는 데다가, 몇 년 전에 있었던 'Canon 캄차카 출사대'에도 당당히 차출될 만큼 검증된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 친구가 이번 '전지훈련'에 함께 가기로 하면서 나보고 '한 수 가르쳐 줄테니 카메라 장비를 오두막으로 업그레이드'해 오라는 권유 때문에 결국 기기 변경을 앞당기게 되었다.


(Canon 5D Mark II에 망원줌렌즈인 아빠백통을 장착한 모습)



(바디네임인 EOS 5D Mark II가 새겨진 스트랩)



(PC 모니터 앞에 놓인 오두막)



(풀프레임 바디에 어울리는 24-70mm f/2.8 L 렌즈를 장착한 오두막)



(3" LCD 모니터를 갖춘 후면부)



(표준줌렌즈인 24-70mm f/2.8 L 렌즈를 장착한 모습)



(아빠백통으로 불리느 망원줌 70-200mm f/2.8 L IS USM 렌즈)



(바디캡을 닫은 오두막의 전면부)



(표준줌렌즈 : 풀프레임 바디용 24-70mm 렌즈 vs 크롭바디용 EFS 17-55mm 렌즈)



(후드를 장착한 아빠백통)



(후드를 장착한 24-70mm f/2.8 L 렌즈)



(후드를 뺀 24-70mm f/2.8 L 렌즈)



(중고거래가 활발한 카메라의 특성상 훗날을 위해 보관중인 '박스')


지난주 목요일(2/10)은 전국적으로 졸업식이 열린 날이었던 모양이다. 오두막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나서 처음으로 딸아이의 졸업식에 갔으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저렇게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빼곡히 들어차 앉은 졸업식장에서 딸을 찾아냈지만 후래쉬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다고 딸아이의 '핸드폰 문자'를 통해 '구박'만 실컷 듣고 왔다.

(모처럼 화기애애하게 동생의 졸업앨범을 함께 살펴보는 남매, Shooting Date/Time 2011-02-08 오후 9:15:26)



(2/10, 목요일 오후 2시에 있었던 딸아이의 졸업식 모습)



(딸아이의 졸업식이 있던 날 저녁 비행기로 간신히 합류한 태국 전지훈련코스, SIR JAMES COUNTRY CLUB)



(귀국길에 찍은 방콕 수바르나부미 국제공항)



(방콕 수바르나부미 국제공항, Shooting Date/Time 2011-02-14 오전 1:42:56)



(인천국제공항 도착을 앞두고 떠오르는 태양, Shooting Date/Time 2011-02-14 오전 7:09:57)


(상공을 가득 메운 구름바다, Shooting Date/Time 2011-02-14 오전 7:24:2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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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2-1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십니다.
근데 오렌님 학부모셨군요.
저렇게 큰 자제분이 계시다니...!
카메라 멋집니다.^^

oren 2011-02-16 22:4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오랜만입니다.
새해 들어선 알라딘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더니, 댓글 달기도 어색할 지경이네요. ㅎㅎ
stella09님께서도 그동안 잘 지내셨겠지요?
울 아들은 덩치만 컸지(금년 3월에 고2 올라가는데 키가 180cm 쯤...),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거나 아직까지도 여러모로 '애'랍니다.ㅎㅎ
 


















백두산 정계비에 관한 마지막 현장고증!
조선의 오천년 역사와 백두산의 생태를 함께 담은 안재홍 선생의 대작을
원전의 맛을 그대로 살린 정민 교수의 현대적인 풀어 읽기로 새롭게 만난다


역사의식의 부재로 민족에 대한 자긍심은 물론이고 개개인의 자존감마저 희박해진 듯한 시대, 진정 우리의 가능성은 무엇이며 갈등의 질곡을 넘어 사회를 통합해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이념과 계급을 초월한 통합사회를 꿈꾼 민세 안재홍

국학 연구와 신민족주의를 주창하며 핍박받는 민족에게 자랑스런 역사를 일깨우고 미래의 전망을 제시한 독립운동가 민세(民世) 안재홍 선생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홉 번의 투옥에도 일제와의 타협을 끝내 거부했고, 신문사 8년 재직 중 사설 980편, 시평 470편을 집필하며 이념과 계급을 초월한 통합사회를 이루기 위해 일생을 바친 민족지성, 안재홍 선생을 되새겨보자는 흐름이 곳곳에서 일어나는 때, 문장가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그의 역사의식과 민족애 등을 다각적으로 엿볼 수 있는 책 <백두산 등척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뜻깊은 저서이다. 작품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30년대 문투 때문에 독자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많았기에 새로이 한문학자 정민 교수가 풀어 읽고 자료사진을 함께 수록한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백두산 등척기』로 세상에 내놓는다.

16일간의 백두산 여행을 담은‘한국의 명산서’

우리 민족의 성스러운 장소라는 점에서 백두산에 오른다는 것은 일제에 맞서 민족혼을 고취한다는 의도가 담긴 행위로 해석되었기 때문에 당시 많은 지식인 계층에서 백두산을 찾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민세 안재홍 선생은 변영로, 김상용 및 식물학자, 곤충학자 등과 함께 16일 동안 여행했는데, 1930년 7월 23일 경성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을 등정하고 8월 7일 북청으로 내려온 뒤 바로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저자 스스로도 “『백두산 등척기』의 저술은 기타 일반적인 기행에 비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이 책과 함께 백두산에 올라보기를 망설임없이 권하는 바이다”고 했다. 이 작품은 연재한 이듬해인 1931년에 유성사서점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고, 2006년에는 한국산서회 선정 ‘한국의 명산서 베스트 20’에 올랐다.

이 책은 백두산의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뿐 아니라 저자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통찰을 바탕으로 백두산 정계비에 얽힌 국경문제, 간도를 둘러싼 분쟁의 역사적 이력, 변경 곳곳에 서린 각종 전설과 풍문, 동식물의 생태 등을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문체 안에 균형감 있게 담아내 기행문으로서의 감동뿐 아니라 사료적인 가치도 큰 작품이다. 특히 백두산 정계비는 이듬해(1931년) 만주사변으로 소실됨으로써 저자가 남긴 당시의 위치 실측과 비석의 모습 등이 마지막 현장 고증 자료가 되었다.

20세기 초반에 쓰여진 자료에 대한 현재적 해석이 돋보이는 책


<백두산 등척기>뿐 아니라 20세기 초반의 쓰여진 작품들 중 한문투가 지극히 많아 한글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은 것에 대해 풀어 읽은 정민 교수는 “근대 시기의 글이 오늘의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번역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한자어를 풀이하거나 주석을 다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문장의 결까지 바꿔 그 알맹이를 알차게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그는 1940년에 발간된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현대어로 풀어 2005년『꽃밭 속의 생각』으로 펴낸 바 있다. 이번 『백두산 등척기』를 풀어 읽기 위해 “내용은 빼거나 보태지 않는다. 한자말은 풀어쓴다. 긴 글은 짧게 끊는다. 구문은 현대어법에 맞게 바꾼다. 한 문장도 남김없이 다 바꾸고 하나도 빠뜨림 없이 그대로 실었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80년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장의 제목인 “定界碑邊山海悲”는 “정계비 곁 산해의 슬픔”으로, 본문 중에 있는 “갓모峯 雪嶺等 諸山에까지 雄大壯麗하게 擁立된 한 中間에 無盡藏으로 展開된 蒼蒼한 大樹海가 一碧萬頃 純一히 쭉 늘어서서 森森肅肅渺渺茫茫하고 蕩蕩悠悠玄玄寂寂하야”는 “갓모봉과 설령(雪嶺) 등 여러 산에까지 웅대하고 장려하게 둘러선 한 중간에 무진장으로 펼쳐진 창창한 대수해가 온통 푸르게 만경(萬頃)이나 한결같이 쭈욱 늘어섰다. 빼곡하고 엄숙하고 아스라하고 아마득하며 거침없고 유유하고 신비하고 고요하다”로 풀어 성인 독자뿐 아니라 청소년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어로 읽어냈다.

민족의 정신적 동력이었던 백두산이 중국의 부당한 영유권 주장으로 그 이름을 지키는 일마저 위태로워진 지금, 민족 지성으로 불려온 민세 안재홍 선생의 <백두산 등척기>의 새로운 출간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백두산의 의미를 환기하고 무뎌진 우리의 역사의식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 * * * *

오늘 알라딘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를 통해서 이름만 들어봤던 안재홍의 '백두산 등척기'라는 책이 정민 교수님의 번역으로 이미 두 달 전쯤 나왔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2007년 여름에 백두산을 다녀왔는데,  백두산을 너무 가보고 싶어서 (남한에 있는 백두대간을 다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백두산을 오른 게 아니라) 백두대간 산행을 전문으로 하는 산악회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그 당시 급하게 DSLR 카메라를 처음으로 장만해서 갔는데,  사진 솜씨는 영 볼품없지만 '민족의 영산'을 대략 살펴볼 수는 있을 것 같아 그 당시 올려둔 사진을 링크해 봅니다. (백두산, 일송정, 해란강, 용정시내 대성중학교, 윤동주 시비 등 포함)

백두산 종주산행 사진 ① 
http://cafe.daum.net/freeMT/Nwh/66
백두산 종주산행 사진 ② http://cafe.daum.net/freeMT/Nwh/67
백두산 종주산행 사진 ③ http://cafe.daum.net/freeMT/Nwh/68
백두산 종주산행 사진 ④ http://cafe.daum.net/freeMT/Nwh/69
백두산 종주산행 사진 ⑤ http://cafe.daum.net/freeMT/Nwh/70
백두산 종주산행 사진 ⑥ http://cafe.daum.net/freeMT/Nwh/71
백두산 종주산행 사진 ⑦ http://cafe.daum.net/freeMT/Nwh/72
백두산 종주산행 사진 ⑧ http://cafe.daum.net/freeMT/Nwh/73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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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른디와의 이별.. 그리고 오두막과 함께 할 나날들에 대한 기대....
    from Value Investing 2011-02-16 13:22 
    DSLR에 처음 입문하면서 만났던 서른디(Canon EOS 30D)와는 이제 오늘밤이 마지막이다. 얼마 전에 갑자기 오두막(Canon 5D Mark II)으로 용감하게(?)갈아타기로 작정하면서 30D는 처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서른디는 2007년 7월에 구입했는데, 최근 몇 년간 가까이 지내왔던 지인분께 그 당시 구입원가의 약 1/3 가격에 뚝~~ 잘라서팔게 되었다.30D와는 그동안 얼마만큼 정도 들었고, 웬만하면 'two body'도 나쁘지 않겠다 싶
 
 
양철나무꾼 2010-12-0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두산 등척기,찜해놨어요.
전 '신들의 봉우리' 후유증이라고 자위하지만 말예요.

DSLR카메라 처음이시라는 엄살과는 달리 사진이 예술인걸요~
낯선 카메라여도 들이대는 곳마다 에술이며 작품인 풍경들이어서 인가요~?^^

oren 2010-12-08 11:04   좋아요 0 | URL
'신들의 봉우리'를 오르는 건 아무에게나 쉽게 허락되는 일이 아닐텐데, 백두산 만큼은 그래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니만큼 많은 분들이 직접 가보셨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생각 같아서는 '백두산 탐방 지원 프로젝트' 같은 거라도 누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그 이전에《백두산 등척기》라도 제발 두루 널리 좀 읽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