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수상록은 내가 네 번이나 읽은 셈 치는 애독서 가운데 하나다.

 

맨 처음으로 읽은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기간이었다. 그때가 1980년 겨울이었으니 몽테뉴와 알고 지낸지 어언 39년이 흘렀다. 몽테뉴의 책은 어느새 '평생을 함께 하는 길동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읽은 건 군대에 있을 때였고, 세 번째로 읽은 건 6년 전쯤이다. 네 번째로는 '필사'를 하느라 꼼꼼히 다시 읽었다. 필사한 내용을 교정 보느라 또다시 '필사한 부분'을 두어 번 더 읽었고, 가끔씩 시간이 날 때는 '필사한 부분'만 따로 읽은 적도 있으니, 이래저래 따지자면 나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적어도 예닐곱 번쯤은 읽은 셈이다. 그러니 몽테뉴와 수상록에 대한 애착이 유별날 수밖에 없다.

 

그의 책을 '동영상'으로 소개하고 싶은 열망은 굴뚝같았으나,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나는 어쨌든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가, 그가 쓴 재치있는 문장들을 여럿 소개하고픈 욕심이 컸는데, 컴퓨터 화면을 켜 놓고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가 필사한 부분들을 꺼내 펼쳐서 '몽테뉴 수상록'을 설명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원고'없이 즉흥적으로 얘기하는 임기응변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시도를 여러 차례 '녹화'에 담아 봤는데, 녹화 시간만 엄청 잡아먹고, 결과물은 매번 신통찮아서, 결국 그 영상은 편집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몽테뉴의 엑기스는 필사한 부분 속에 고스란히 다 들어 있는데, 이걸 재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게 몹시도 안타까웠다.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① (1∼116쪽) 

몽테뉴 수상록 제1권_② (114∼349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① (351∼593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② (595∼728쪽) 

몽테뉴 수상록 제2권_③ (733∼865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① (870∼994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② (995∼1112쪽) 

몽테뉴 수상록 제3권_③ (1116∼1248쪽) 

 

 

그런데, 고되게 필사한 부분들을 영상에 담는 걸 포기하고 나니, 몽테뉴의 책을 소개하는 일이 갑자기 몹시 수월하게 느껴졌다. 인터넷을 뒤져 적당한 이미지들을 발굴하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25 분짜리 동영상에 일일이 자막을 다는 '친절'까지도 베풀 수 있었다.

 

그런데 유튜브 동영상들은 왜 하나같이 '친절하게도' 자막을 달아주는 것일까. '자막'을 붙이는 작업만 하더라도 꼬박 너댓 시간쯤은 더 걸렸을 듯하다. 타이핑이 문제가 아니라, 내레이션에 정확하게 맞춰서 '자막'을 딱딱 타이밍에 맞게 집어 넣는 게 '진짜 일'이다. 이렇게 목소리와 자막까지 일일이 제공하느라 '영상 제작'이 힘이 드는 것이다.

 

몽테뉴가 말한 대로 동영상 제작자는 유튜브 이용자들을 위해 '그들 대신 씹어주는' 셈이다. 시청자들은 그저 영상 제작자가 애써 여기저기서 재료를 끌어와 자근자근 씹어 놓은 것을 그저 삼키기만 하면 된다. 그만큼 영상 제작자와 소비자들은 '수고'라는 측면에서 엄청난 비대칭을 이룬다.

 

그러나 어쩌랴. 유튜브라는 엄청난(?) 시장을 생각하면 아무리 고된 작업이라도 참고 '공급'할 수밖에. 오늘 저녁 퇴근 후 자막을 1/10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딱딱 맞춰서 다는 동안 몽테뉴의 책 속에 등장하는 '대신 씹어주는' 그 구절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원한다면 그들 대신 내가 대신 씹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한 가지 위안이라면 '영상 녹음'과 '영상 편집'이 첫 번째 작업보다 한결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25분짜리 몽테뉴 수상록을 일주일 이내로 뚝딱 만들어 내는 수준까지는 온 듯하니 말이다. 게다가 지난 주엔 송년 모임을 두 번씩이나 쎄게 치렀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한 번은 토요일 하루를 몽땅 빼았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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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2-30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9년부터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셨군요. oren님의 새로운 도전 응원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9년.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에도 좋은 리뷰와 좋은 동영상으로 뵙기를 기원합니다.^^:)

oren 2019-12-30 16:26   좋아요 2 | URL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린 건 11월 초순부터였습니다. 워낙에 갑작스럽게 시작하는 바람에, 아무런 준비가 없어서 우왕좌왕, 온갖 시행착오를 겪다 보니 정신없이 연말까지 흘러온 듯하네요.

내년에는 유튜브 동영상 제작뿐만 아니라, 알라딘에 양질(?)의 글을 올리는 일도 병행했으면 싶은데, 잘 될런지 걱정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도 더욱 활기 넘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월든』의 경이로운 문장들을 읽어보십시오, 그것들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 * *

 

최근 열흘 남짓 동안에 『월든』과 뜻하지 않게 사투(?)를 벌였다. 유튜브에 올릴 『월든』동영상을 제작하는 게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의 처녀작(?)은 완성되어 오늘 저녁에 업로드 됐다.

 

여러모로 아쉽고도 후련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에 대한 소개를 흡족하리만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쉽고, 나의 처녀작 동영상임에도 욕심을 꺾지 않고 밀어부친 끝에 무려 33분짜리 동영상을 기어코 만들어 올렸다는 점에서 후련하다.

 

유튜브 동영상은 누구나 만들어 올릴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시도해 보면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영상 녹화 프로그램은 어떤 걸 써야 하는지, 그 프로그램을 쓸 때 영상과 오디오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카메라와 마이크는 또 어떤 게 좋은지, 녹화 후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또 어떤 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로 '독학'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 시행착오 끝에 33분짜리 동영상을 '혼자 힘으로' 만들어 올렸다는 점에서는 뿌듯하다. 그런데, 30분짜리 동영상 하나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엄청나다. 알라딘에서 페이퍼나 리뷰를 한 편 쓰듯이 만드는 '대본 작성 작업'은 그야말로 전체 공정에서 고작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간단히 말해서, 책 소개 동영상을 하나 만들자면 알라딘에서 리뷰나 페이퍼를 쓰는 작업의 10배에 가까운 품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숙달되고 나면 그보다야 훨씬 나아지겠지만 말이다.

 

맨 처음엔 이 작업을 아주 우습게 생각했더랬다. 내가 알라딘에 올렸던 '월든 관련글'만 무려 147개나 됐고, 그 글들 속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도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글과 사진들을 적당히 재활용하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동영상을 제작하려다 보니, 불과 몇 초 동안의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이미지'로 영상이 고정되기만 하면 그 영상 자체가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30분짜리 동영상에 들어가는 이미지들이 도대체 얼마나 필요하다는 말인가. 평균 3초에 하나씩만 바꾸더라도 무려 600개의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얘긴데, 이걸 도대체 무슨 수로 충당하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하나의 이미지들을 여러 차례 재활용하는 게 불가피했다. 가령 월든 호수의 이미지라든가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이미지가 그랬다.

 

그런데 나머지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알맞는 이미지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령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할 때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하는 데도 골탕을 먹었다. '졸업장 제작에 드는 비용 1달러 납부'를 거부했다는 그 일화 때문에, 나는 하버드 대학교의 교정과 졸업식 장면과 대학 졸업장은 물론 '양'에 대한 이미지까지 찾아내야 했다! 왜냐하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졸업장'이 양피지로 만들어지는 사실을 알고 '자연보호의 선구자' 답게 그걸 다음과 같이 따끔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양가죽은 양들이 갖고 있도록 내버려둡시다."

 

이런 일화를 소개하면서 '양'을 등장시키지 않는다면 그 영상이 도대체 얼마나 썰렁하겠는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직업'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면서 겪었던 고통도 적지는 않았다.

 

소로우는 어느 날 하버드 대학교의 관리자가 '자신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저는 교사-개인 가정교사, 측량사-정원사, 농부-페인트공, 목수, 벽돌공, 일용 노동자, 연필 제조공, 사포 제조공, 작가, 때로는 삼류시인입니다"

 

소로우의 이 짧은 대답 하나에 알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서 나는 무료 이미지를 다운받을 수 있는 곳을 여러 번 들락거려야 했다. 이 짤막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는데 필요한 이미지를 구하는 데만 족히 30분은 넘게 걸렸던 듯하다.

 

가끔씩은 생각 밖으로 좋은 이미지들을 찾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소로우가 형과 함께 보트 여행을 떠났던 일화, 동물들과 어울리는 소로우의 모습, '독서'에 관한 장을 소개할 때 찾아낸 이미지 등이 그랬다.

 

(보트 여행에 대한 이미지)

 

(동물들에 대한 이미지)

 

(독서에 대한 이미지)

 

(독서에 대한 이미지)

 

몇몇 대목에서는 내가 한때 '소로우'를 떠올리면서 찍은 사진들을 쏠쏠하게 재활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호수공원의 저녁노을)

 

(영덕 칠보산에서 만난 '소나무의 죽음')

 

(호수공원의 저녁 노을)

 

내가 두 번째로 만들고 싶은 책 소개 동영상은 몽테뉴 『수상록』인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은 그나마도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이야기가 많아서 얼마든지 해당 이미지를 끌어들이는 게 가능했는데, 몽테뉴의 수상록을 소개할 때는 도대체 어떤 이미지를 골라 써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로우만큼이나 좋아하는 몽테뉴를 제쳐두고 다른 작가를 미리 소개할 수도 없고 말이다. 어쨌든 일에 맞닥뜨려 보면 적당한 타협책이 있으리라 믿는다.

 

글을 쓰는 건 이렇게도 쉬운데 영동상 만들기는 도대체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이냐?!

대본 읽는 작업이 쉽도록 하기 위해서 얼굴 동영상은 아예 제외하고 목소리만 담았는데도 말이다!

(한밤중에 식구들 몰래 녹취하느라 목소리 톤이 너무 조용스러운 것도 조금 불만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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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2-16 0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들었습니다.
목소리 더빙까지 ^^ 신경 많이 쓰셨네요. 열흘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만한 작업으로 보이는데요.
현대에도 여전히 월든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건 아직도 우리 마음 속 고향은 자연이기 때문인가봅니다.
저는 사실 월든 끝까지 다 못읽었는데 페이지 마다 줄 안긋도 넘어갈 수 없던 책이라고 하시니 다시 읽어볼 동기부여가 충분히 됩니다.

oren 2019-12-16 12:21   좋아요 2 | URL
열흘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작업으로 보셨다면, 그래도 제가 만든 동영상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이시네요. 그것만으로도 애쓴 보람을 느낍니다.^^

『월든』은 참 독특한 책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내 인생의 책‘이라고 손꼽는 책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많은 독자들은 재미가 하나도 없다거나, 읽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등 반응이 정말로 제각각이니까 말이지요.

저는 『월든』이 ‘대단히 많은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는 책으로 읽혀서, 행간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찾아내는 데에도 상당한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들을 동영상에 최대한 담아보려 했으나, 능력부족을 절감할 수밖에 없어서 조금 아쉽긴 합니다.

hnine 님께서 『월든』을 다시 읽으신다면, 저로서는 그만한 보람도 없겠다 싶습니다.^^

페크(pek0501) 2019-12-18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 님의 새로운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전문성까지 갖추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멋진 작업인 것 같아요.
한 해의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달에 알차게 보내고 계신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oren 2019-12-18 12:41   좋아요 1 | URL
영상물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에 ‘책 이야기‘를 만들어 싣는 작업이 간단치가 않네요.

흔히들 하는 말로, 영상 기획, 촬영, 녹음, 음향 및 영상 편집 등등 모든 요소들을 오롯이 1인이 홀로 다 떠맡아 해야 하는 지경이니까요.

그러나 책은 영상매체를 통해서 이미지와 음성과 배경음악과 텍스트(자막)을 한꺼번에 결합했을 때, 새로운 활력을 얻는 느낌도 들더라구요.

어떤 이야기든 에세이나 소설처럼 단순히 산문으로만 표현될 수는 없고, 때로는 서사시로, 때로는 희곡과 연극으로, 때로는 오페라와 음악으로, 때로는 드라마로, 아주 다양하게 전달되듯이, 책 이야기도 영상매체를 통해 다양하게 전달될 여지는 많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어떤 이야기든 그걸 어떻게 잘 꾸미고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을 테니까요.

처음이라 아직 여러모로 정신이 없지만, 하나둘 맞닥뜨리면서 해나가다 보면 익숙해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뒤늦게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내가 2013년에 히말라야 트레킹 때 하룻밤을 묵었던 '랑탕 빌리지'라는 곳이 2015년의 네팔 대지진 때 거대한 산사태로 인해 통째로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희생된 사람만 무려 197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가 트레킹에 나섰을 당시 원정대장 역할을 맡았던 분으로부터 우연히 그런 소식을 듣고 정말인가 싶어서 유튜브를 검색해 봤더니, 엄연한 사실이었다.

 

(2013년 당시의 모습. 랑탕 빌리지는 마을 한가운데로 냇물이 졸졸 흐르는 운치 있는 마을이었다.)

 

(보도 사진에 따르면 지진 당시의 산사태로 인해 마을이 흔적도 없이 파묻혀 버렸다.)

 

2015년 4월 하순에 발생한 그 끔찍한 대지진 소식을 접했을 무렵, 나는 일부러 네팔 지진에 대한 자세한 소식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괜히 마음만 더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 머나먼 다른 나라에서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났고, 8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데도, 나는 차마 그 광경에 마음을 다칠까봐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했던 말은 얼마나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던가.

 

중국이란 대 제국이 그 무수한 주민과 함께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중국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았던 유럽의 어떤 인도주의자에게 이 가공할 만한 재앙의 보도가 전해졌을 때, 그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나의 상상으로는,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저 불행한 사람들의 액운(厄運)에 대한 그의 비애를 매우 강하게 표명할 것이고,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많은 침통한 성찰을 할 것이다. …… 그리고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 정리가 끝났을 때,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인도적 감정들이 충분히 표명된 후에는, 그는 그런 사고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때와 똑같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자기의 사업 또는 쾌락을 추구할 것이고, 휴식과 기분전환을 취할 것이다.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

 

 

뒤늦게 유튜브에 들어가서 '랑탕 빌리지'를 검색해 보니, 믿기지 않는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Nepal Earthquake 2015'로 검색되는 다양한 영상들이 넘쳐났다. 그 가운데서도 Nepal's Langtang Valley - Beauty and Destruction 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동영상을 보니, 끔찍하게 변해버린 현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아름답던 마을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저토록 허망하게 폭삭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https://youtu.be/AvAFb5Q_3zo?list=LLtbZg9t1yZ2THcPuf3SinHg

 

랑탕 계곡은 수만 년 동안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나, 영국의 오지 탐험가인 윌리엄 틸만(1898∼1978)에 의해 뒤늦게 발견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극찬을 받은 곳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만년설로 뒤덮인 설산을 배경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나서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닌가' 싶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곳이 바로 랑탕 계곡이다.

 

(2013년 봄)

 

((2013년 봄)

 

그토록 아름답고 평화롭던 곳이 어떻게 한 순간에 황무지로 변했고, 그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소박한 삶을 꾸려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어떻게 한 순간에 모조리 다 희생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랑탕 계곡을 따라 우거진 수목들조차 거대한 후폭풍에 휩쓸려 성냥개비처럼 모조리 쓰러져 버렸다고도 한다. 나무가 쓰러진 피해지역만 하더라도 길이가 10 km가 넘는다고 하니, 후폭풍의 규모와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가 트레킹을 다녀 왔던 랑탕 계곡의 피해가 네팔의 여느 피해 지역 못지 않게 극심했음에도, 나는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체로 여태까지 지내왔다. 나는 그저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의 무슨 유명한 사원이나 오래된 왕궁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고, 산간 지방에 허술하게 지어진 숱한 학교들과 돌담으로 쌓은 허술한 가옥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너졌을 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히말라야의 기나긴 역사를 되돌아 보면 우리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지도 모르곘다. 2015년의 네팔 대지진은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대재앙으로 느껴지지만 '히말라야의 입장'에서는 그저 소소한 사건에 불과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밝혀낸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억 4천만 년 전까지만 해도 오늘날의 인도는 곤드와나 초대륙의 일부였으나 떨어져 나가 연간 18~20㎝라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해 5천만 년 전 유라시아 판과 충돌했으며 이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무려 5천만 년 전에는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던 셈인가. 대륙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인도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기어들어가다가 저토록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이 생겨났으니 말이다. 그 때 일어났던 거대한 굉음과 땅의 뒤흔들림을 느꼈던 동식물들은 과연 얼마만큼 놀라야만 했던 것인가.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의 숲 속에서 살다가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보행을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만 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지난 400만 년 동안만 하더라도 랑탕 계곡의 지형은 얼마나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온 셈인가. 또한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신들이 사는 영역'으로만 알고 감히 범접하기조차 두려워했던 시대를 뒤로 하고, 나같은 일반인조차 겁도 없이 수천 미터의 봉우리를 오를 수 있게 된 우리 세대는 얼마나 엄청난 행운아인가.

 

유튜브에서 영상들을 찾아 보니, 랑탕 계곡의 옛 마을들은 비록 한순간에 흙더미 속으로 사라졌지만, 어느새 그 위에 뉴빌리지가 형성되고 있었고, 트레커들은 불과 수년 전에 우리가 지나갔던 길보다 훨씬 더 높다랗게 흙더미가 쌓인 새로운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결국 저 울퉁불퉁한 길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 매끈한 길로 변할 것이다. 과거에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 2013년에 랑탕 계곡을 다녀온 <히말라야 트레킹> 기록이다. 언제쯤 또다시 그곳을 가볼까 하다가, 이번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지진 피해의 깊은 상흔이 어서 빨리 치유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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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251

중국이란 대 제국이 그 무수한 주민과 함께 갑자기 지진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중국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았던 유럽의 어떤 인도주의자에게 이 가공할 만한 재앙의 보도가 전해졌을 때, 그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 * *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251∼252

나의 상상으로는,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저 불행한 사람들의 액운(厄運)에 대한 그의 비애를 매우 강하게 표명할 것이고, 인생의 변화무쌍함과, 이렇게 일순간에 파멸되는 인류의 모든 노동의 창조물의 허망함에 대하여 많은 침통한 성찰을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투기업자라면, 그는 이 재난이 유럽의 상업에, 그리고 전 세계의 무역과 상업에 미칠지도 모를 효과들에 대한 많은 추측에 몰두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 정리가 끝났을 때,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인도적 감정들이 충분히 표명된 후에는, 그는 그런 사고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때와 똑같이 느긋하고 편안하게 자기의 사업 또는 쾌락을 추구할 것이고, 휴식과 기분전환을 취할 것이다.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소소한 재난이 그에게는 오히려 더욱 실질적인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그가 내일 자기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면 오늘밤 그는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1억이나 되는 이웃 형제들의 파멸이 있더라도, 만약 그가 직접 그것을 보지 않는다면, 그는 깊은 안도감을 가지고 코를 골며 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 거대한 대중의 파멸은 분명히 그 자신의 하찮은 비운보다 관심을 끌지 못하는 대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인도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자신에 대한 이 사소한 비운을 방지하기 위하여 1억이나 되는 이웃 형제의 생명을, 만약 그가 그것을 결코 보지 않아도 된다면, 기꺼이 희생시킬 것인가?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생각에 공포를 느끼며, 그리고 세상은, 아무리 부패하고 타락했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악한 사람은 결코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의 소극적인 감정들은 거의 언제나 이처럼 야비하고 이처럼 이기적일 때, 어떻게 우리의 적극적인 천성들은 흔히 그처럼 관대하고 그처럼 고귀할 수 있는가? 우리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관련된 일보다도 우리 자신에 관련된 일에 의해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무엇이 관대한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우에, 그리고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그들 자신의 이익을 희생시키도록 촉구하는가? 자애(自愛: self-love)의 가장 강한 충동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인간애(humaity), 즉 인도주의의 온화한 힘이 아니며, 조물주가 인간의 마음에 밝혀준 자애(benevolence)의 약한 불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 작용하는 것은 보다 강렬한 힘이고 보다 강제력 있는 동기이다.


 * * *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253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 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羞恥)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

많은 경우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신성한 미덕을 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인류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 통상 생기는 것은 보다 강한 사랑, 보다 강력한 애정, 즉 명예스럽고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 우리 자신의 성격의 숭고함, 존엄성, 탁월성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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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paroxysms of distress)을 당하는 경우 272∼273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paroxysms of distress)을 당하는 경우 가장 현명하고 단호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에는, 상당한 정도의,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신의 불행에 대한 그 자신의 자연스런 감정, 그 자신의 처지에 대한 그 자신의 자연스런 시각이 그를 강하게 압박하기 때문에, 그가 엄청나게 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주의력을 공정한 방관자의 시각에 집중할 수가 없다. 두 가지 종류의 시각, 즉 자신의 견해와 공정한 방관자의 견해가 동시에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의 명예감각, 그 자신의 존엄에 대한 고려는 그에게 자신의 모든 주의력을 방관자의 그것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그의 자연적인, 교육받지 않은, 훈련되지 않은 감정들은 계속 그의 주의력을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다.

이런 경우, 그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가슴 속의 가상의 인간과 일치시킬 수 없고, 스스로 자기 행위의 공정한 방관자가 될 수도 없다. 양자의 서로 다른 성격의 시각이 그의 마음속에 서로 분리되고 구분되어 존재하고, 각각은 그에게 서로 다른 행위를 하도록 지시한다. 그가 명예심과 자존심이 그에게 지시하는 시각에 따를 때, 사실 조물주는 그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는 상태로 남겨두지는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의 완전한 자기시인(自己是認)과 동시에 정직하고 공정한 모든 방관자들의 갈채를 누리게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조물주의 만고불변의 법칙에 따라서, 그는 여전히 고통을 당한다. 조물주가 수여하는 보상이 매우 크기는 하지만, 이러한 법칙이 그가 당한 고통을 완전히 보상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조물주의 보상과 그의 고통의 크기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조물주의 보상이 그가 받는 고통을 완전히 보상해 준다면, 자신의 이기적인 고려에서, 그는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효용을 필연적으로 감소시킬 우발적 사고를 회피하려는 동기를 전혀 갖지 않을 것이다(완전히 보상받는다면 사고를 피하는 것과 피하지 않는 것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물주는 양자에 대한 부모다운 배려에서 그가 가능한 한 모든 우발적 사고들을 피하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리고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 중에서도, 자신의 사내다운 모습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판단의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는 최대의 가장 고된 노력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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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274

그러나 인성(人性)의 구조적 특성상, 고통은 결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을 견뎌내기만 한다면, 그는 곧 크게 어렵지 않게 일상의 평정을 즐기게 된다. 나무 의족(義足)을 한 사람은 고통을 겪으면서, 틀림없이 자신의 남은 전 생애 동안 매우 큰 불편을 계속 겪어야만 할 것으로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의족을 한 자신의 모습을 모든 공정한 방관자가 그것을 보는 것과 정확히 동일하게 보게 된다. 즉, 그는 이 불편함을, 그런 중에서도 혼자서 혹은 여럿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모든 통상의 기쁨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는 곧 자신을 자기 가슴 속의 가상의 인간과 일치시키고,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공정한 방관자로 된다. 약한 사람들은 처음에 때때로 그렇게 하듯이, 그는 울거나 탄식하거나 그것에 대해 비관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는 공정한 방관자의 시각에 완전히 익숙해져서 더 이상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어떤 몸부림도 치지 않고, 자신의 불행을 다른 어떤 시각에서 관찰하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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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
275∼276

인간생활의 불행과 혼란의 최대 원천은 하나의 영속적 상황과 다른 영속적 상황과의 차이를 과대평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탐욕(貪慾: avarice)은 가난과 부유함 사이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야심(野心: ambition)은 개인적 지위와 공적 지위의 차이를 과대평가하고, 허영(虛榮: vain-glory)은 무명(無名)의 상태와 유명(有名)한 상태의 차이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사치스런 격정의 영향하에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처해 있는 실제 환경에서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흔히 그가 어리석게도 감탄하는 처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회적 안정을 교란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조금만 살펴보아도, 인간생활의 일상적인 모든 상황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마찬가지로 기뻐하고, 마찬가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통상의 여러 가지 상황들 중에서 어떤 상황은 다른 상황보다 더욱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떤 것도 신중(愼重: prudence) 또는 정의 (正義: justice)의 법칙들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격정적인 열의를 가지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는 후에 가서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회상할 때 느끼게 될 수치심과, 자신의 부정한 행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회한(悔恨)으로 마음의 장래의 평정까지 파괴해 가면서까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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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라는 위대하고 보편적인 위안자
278∼279

다음의 관찰은 특별한 상황에 대한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은 올바른 결론이라고 믿는다. 즉, 다소라도 구제(救濟)의 여지가 있는 불행 중에 처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제의 여지가 전혀 없는 불행 중에 처해 있는 사람들처럼 일반적으로 그렇게 쉽게 자신들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평정을 회복하지 못한다. 후자의 종류에 속하는 구제의 여지가 없는 불행에 처한 사람들의 경우, 총명한 사람의 감정 및 행위와 연약한 사람의 감정 및 행위 사이에 어떤 눈에 띄는 차이점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발작처럼 돌연히 발생한 불행의 경우 또는 불행이 최초에 엄습한 때이다. 그러나 최후에 가서는 시간(時間)이라는 위대하고 보편적인 위안자(慰安者)가 점차 저 연약한 사람으로 하여금 총명한 사람이 최초에 자존심과 사내다운 기개의 교도(敎導)에 의해 도달하였던 그런 수준의 마음의 평정에 도달하게 된다.

나무 의족(義足)을 한 사람의 경우가 이런 사정에 대한 분명한 예이다. 자식의 죽음, 친구나 친척의 죽음 등처럼 회복할 수 없는 불행을 당한 경우에는 총명한 사람이라도 일정한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슬픔에 빠질 수 있다. 다정다감하고 연약한 여성은 그런 경우 흔히 거의 완전히 미쳐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길든 짧든 시간이 지나면 예외 없이 이런 가장 연약한 여성까지도 가장 강인한 남성과 같이 어느 정도의 평정을 회복하게 된다. 그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회복 불가능한 재난 가운데서도, 총명한 사람은 몇 달 또는 몇 년 후에는 결국 회복될 것이 틀림없는 마음의 평정을 처음부터 예상하고 그것을 미리 즐기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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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역경에 처해 있는가? 284

당신은 역경에 처해 있는가? 고독의 어둠 속에서 탄식하지 말고, 당신의 친한 친구들의 관대한 동감에 맞추어 당신의 슬픔을 조정하지 말 것이며, 가능한 한 빨리 세상과 사회의 일광(日光) 속으로 돌아가라. 그리고는 낯선 사람들, 당신의 불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적들과 사귀는 것조차 회피하지 말고, 당신의 적들로 하여금 당신이 당신의 재난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적게 받았는지, 얼마나 그것을 초월해 있는지를 느끼도록 하고, 당신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그들의 악의(惡意)에 굴욕감을 안겨줌으로써 당신 스스로 기뻐하라.

-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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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11-27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아름다운 곳인데 지진으로 저렇게 변했으니 갔다오신 입장에서 상당히 마음이 아프시겠네요ㅜ.ㅜ

oren 2019-11-27 20:5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아직까지 히말라야를 가 보지 못한 친구들한테도 ˝우리 언제 꼭 한번 히말라야 같이 가 보자. 랑탕계곡이라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라고 말할 정도로, 저로서는 정말 좋은 기억들이 많은 곳이었지요.

이번에 랑탕계곡이 저렇게 망가진 걸 알고 이런 저런 뉴스를 찾아보니, 저처럼 가슴아파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10년 혹은 20년째 랑탕 계곡을 찾곤 했던 사람들이 일부러 ‘추모‘를 위해 다시 그곳을 찾는 경우도 많고요.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 차츰 아픔은 잊혀지고, 과거의 아름다움을 되찾으리라 믿습니다.^^
 

 

인간에게 전후를 살피도록 풍부한 판별력을 부여하신 분이,
그런 능력과 존엄한 이성을 주었을 땐,
사용도 못해본 채 곰팡이가 생기도록
하시려 함은 확실히 아니렷다.

<햄릿> 4막 4장, 36-39

 

 * * *

 

이제는 지겨울 만하지만, 그래도 또다시 유튜브 이야기를 쓰고 싶다.

 

책들을 소개해서 올리는 '북튜버들'이 어떤 책을 올리는가를 대략적으로나마 관찰해 보니, 크게 두세 가지 분파로 분류할 수 있을 듯했다. 첫째는 이름난 서양 문학 고전파, 둘째는 소위 자기계발서(성공 노하우, 돈 버는 법, 부동산 등 재테크 서적 안내), 셋째는 힐링파(감성적인 시나 에세이 위주의 소개) 등이었다.

 

동서양의 이름난 고전을 소개해 주는 채널들 가운데서는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나 사마천의 <사기>뿐 아니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을 소개하는 분들도 눈에 띄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작품> 등을 소개하는 채널도 살필 수 있었다.

 

한 가지 특별한 예외라면, 인류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무명의 독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컨텐츠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해당 분야의 전문 교수나 문학평론가 등이 참여하여 제작한 'TV 방송용 컨텐츠' 말고는 정말로 눈에 띄지 않았다. 옳커니! 여기가 '사각지대'구나, 싶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는 동안에 미리 수집해 둔 100장에 가까운 '사진이나 그림'들을 이용해서 '동영상 컨텐츠'를 하나 만들어 보기로 했다. 기존의 자료에 새로 추가할 내용도 거의 없었고(심지어 헨리5세, 헨리8세, 리처드 2세, 리처드 3세 등의 이미지까지 두루 확보되어 있었다!), 영상물에 얹을 컨텐츠도 별로 새로 보탤 게 없었다.

 

해당 이미지에 알맞은 '간략한 해설'만 덧붙이면 되는데, 그걸 최대한 압축하는 데만 힘이 들었을 뿐이다. 가끔씩 니체가 했던 말들을 찾아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아주 그럴싸' 했다. 배경음악은 둘 가운데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잔잔한 쪽으로' 결말을 보았다. 셰익스피어야말로 영국이 자랑하는 대문호이니, 그에 걸맞게 영국의 국민 작곡가인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써서 만들었더니, 영상물과 겉도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리어 왕>이나 <오셀로>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얘기하는데 어찌 <위풍당당 행진곡>이 어울리겠는가.)

 

두 번째로는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배경음악으로 넣고 만들어 봤는데, 이 또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분위기가 너무 강렬하여, 템페스트 이외의 다른 작품들에 해당하는 영상이 지나갈 땐 음악이 약간씩 겉도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행진곡'보다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훨씬 더 낫겠다 싶어, 결국 베토벤의 곡으로 결말을 봤다.

 

다 만들고 나서 '업로드'한 뒤에 영상물을 틀어 보니,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내용을 코멘트에 담은 게 아닌가 싶은 후회가 뒤따랐다.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만 해도 무려 37편이나 되는데, 일반 독자들이 과연 구석 구석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까지 해설한다고 해서 얼마나 피부에 와 닿는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이나, 작품이 쓰여진 배경 지식까지 설명하느라 괜히 쓸 데 없이 다른 고전들을 지나치게 자주 거명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고작 10분 남짓한 영상인 데다가, 거기에 무려 스무 편 이상의 작품에 대한 설명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속에 굳이 셰익스피어 작품과 연관된 다른 책들까지 소개하는 과욕을 부렸으니,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셰익스피어를 더 알아보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지나 않을까 도리어 걱정이 될 정도였다.

 

내가 이 짧은 영상에서 들먹거린 고전이 과연 몇 권이나 될까 싶어 다시 한번 찬찬이 세어 보니, 무려 열 권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만 해도 벌써 숨이 차오르는데,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책들을 거기다가 잔뜩 덧보탰으니, 일반 독자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을 게 불보듯 뻔하다.

 

(이 영상물에서 언급된 또다른 책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올라누스>와 관련이 있다.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의 출처와 관련이 있다.

T.S. 엘리엇, <황무지>, <코리올라누스>와 관련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들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특히 <코리올라누스>와 관련이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_셰익스피어 편>, 셰익스피어의 인물평과 관련이 있다.

니체, <선악의 저편>, <햄릿>과 관련이 있다.

니체, <이 사람을 보라>, <햄릿>과 관련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오셀로>와 관련이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 <루크리스의 능욕>과 관련이 있다.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루크리스의 능욕>과 관련이 있다.

파스퇴르나크, <닥터 지바고>, <로미오와 줄리엣> 설명에 동원되었다.

헤럴드 불름, <교양인의 책읽기>, <햄릿>과 관련이 있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헨리 4세>에 등장하는 '폴스타프'와 관련이 있다.

 

이렇게, '동영상 카메라 한 대' 없이 꾸역꾸역 유튜브 영상물을 어거지로 만들어 내고는 있지만, 구독자는 생각보다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구독버튼 하나 누르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알라딘 서재에서 2003년부터 활동해 왔지만 내 서재를 즐겨찿기 등록한 서재인이 무려(!) 1,321명에 달하는데, 유튜브에서 내 채널을 구독하겠다는 사람은 고작 40명에 불과하다. 구독자를 100명 혹은 1,000명 모으는 일이 이렇게나 힘이 들 줄은 차마 몰랐다! 그런데, 구독자를 수만 혹은 수십 만씩이나 거느린 괴물들은 도대체 무슨 재주를 타고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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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2019-11-23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상물 틀(framework)에 영상물을 텍스트물로 차원 축소해서 보여주는 건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동영상이 대세인 초영상 시대에 말이죠. 영상적 틀에 동영상 없는 텍스트물은 기존 텍스트물과 크게 다르지 않아, 호흡 짧고 지극히 감각적이고 자극-반응적인 요즘 세대들한테는 잘 먹히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유튜브 채널에선 동영상을 보여줘야 구독자가 늘어날 것입니다. oren 님이 직접 출연하거나 대타를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초기 단계로서 목소리만 넣어주는 것도 방법이죠. 목소리 또한 대역을 쓰는 것도 괜찮고요. 직접 출연하지 않고 동영상+목소리 혹은 정지 영상 텍스트물+목소리 형식도 잘만 만들면 구독자를 꽤 많이 늘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① 호흡이 무척 짧다. ② 무척 감각적이다. ③ 무척 자극-반응적이다. ④ 생각이 피상적이고 충동적이다. ⑤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유튜브 시청자층 분포에서 ①~④의 부류가 가장 많다는 것입니다. 책/독서 영상 시청자층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나름 생각 깊고 점잖은 독서층도 영상물로 감각이 이동하면 대부분 ①~④의 속성을 가장 주된 속성으로 드러내게 돼 있다는 것이죠. 해서 이런 영상 세대들한테 oren 님은 책/독서 영상물을 어떻게 제작해 올린 것인가 전략적으로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한데 셰익스피어(쉐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Henry VIII』가 상당 부분 셰익스피어가 아닌 다른 작가가(혹은 다른 작가들이) 썼다는 것이 잘 알려진 사실이라는데요. 최근 체코의 Petr Plecháč라는 수리언어학자 · 문헌학자 · 문학 연구자가 그 사실을 인공지능(AI)의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기법을 써서 구체적으로 밝혀냈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 인터넷 주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Machine learning has revealed exactly how much of a Shakespeare play was written by someone else
https://www.technologyreview.com/s/614742/machine-learning-has-revealed-exactly-how-much-of-a-shakespeare-play-was-written-by-someone/

Relative contributions of Shakespeare and Fletcher in Henry VIII: An Analysis Based on Most Frequent Words and Most Frequent Rhythmic Patterns
https://arxiv.org/abs/1911.05652

oren 2019-11-25 21:51   좋아요 1 | URL
우선, 귀중한 조언 남겨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군요.

제가 지금까지 시도하는 동영상물은 사실 ‘어거지 동영상‘일 뿐인 게 사실입니다. 핑계입니다만, 저는 아직 ‘동영상 카메라‘와 마이크 등 기본적인 장비조차 없이, 기존에 찍어 놓은 사진들을 이용해서 억지로 동영상화 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동영상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절름발이식의 이상한 동영상물이 만들어지게 되었고요. 이 부분이 어색하다는 건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저 스스로도 절감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안 그래도 어제 친한 선배분과 넌지시 얘기를 나눠봤더랬습니다. 유튜브에 ‘보이스 없는 동영상‘을 올리는 중인데, 보이스의 중요성, 발음의 정확성, 억양의 변화 등등이 얼마만큼 중요하냐 하는 식으로 좀 물어봤더랬지요. 그분은 메인 TV의 보도본부 기자를 오래도록 했던 분이어서 도움이 되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 선배는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면서 컨텐츠의 진정성만 있으면 극복되는 문제고, ‘니 정도의 발음이나 설명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더군요. ‘니가 무슨 메인 TV 방송하고 경쟁할 것도 아니고‘ 하면서요.

어젯밤에는 또다른 친구한테 한번 물어봤더랬지요. 그 친구는 예전에 같은 회사에 다녔던 동기인데, ‘홍보담당 임원‘을 오래 했고, 마침 올해 4월부터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을 운용 중이고, 다양한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태에 있는 친구죠.

그 친구왈, 지금 하고 있는 ‘절름발이식 동영상‘을 도대체 왜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설마 그런 방식이 유튜브 세계에서 통하리라고 믿고 시도해 보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빨리 ‘제대로 된 동영상, 말하자면 니 얼굴과 목소리가 담긴 생생한 동영상을 만들어라, 지금과 같은 동영상은 아무도 안 본다, 요즘 젊은이들은 핸드폰은 주머니에 집어 넣고 이어폰으로 듣기만 한다, 심지어 영상을 꺼도 음악이나 음성은 나오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유로‘로 제공하는 서비스도 확산 중이다, 등등 많은 조언을 해 주더군요. 솔직히 뜨끔했습니다. 구차한 변명으로 얼버무렸지만, 조만간 동영상 카메라 하나 갖춰서 진짜 동영상을 만들어 보겠다, 그런데 지금은 ‘본업‘이 뻔히 있는데. 동영상 카메라에 마이크까지 새로 갖춰서 ‘방송 녹화하는 꼴‘을 보이다가 집안에서 들키면 곤란하지 싶다, 이런저런 테스트 내지는 연습을 몰래몰래 좀 더 해보다가, 도저히 못 참겠으면(사실 지금 무지 답답한 것도 사실이거든요. 스틸컷 50장 내지 100장을 어거지 동영상으로 만들면, 컷당 5초 혹은 10초씩 강제 배분을 하는 데다가, 강약이나 완급조절도 어렵고, 기승전결식 구조도 생각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때 본격적으로 만들어 보겠다, 그러면서 얼버무렸지요.

아무튼, 제 친구의 결론인즉, 유튜브 시장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질 게 불보듯 뻔한 상황‘이니, 너무 머뭇거리지 말고, 이왕에 시작할 거면 지금처럼 장난삼아 쪼물딱거리지 말고,남들처럼 제대로 얼굴 내밀고 프로페셔널하게 덤벼 보라고 하더군요. 저는 ‘본업‘을 그만두면 맹렬하게 한번 매달리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지금은 솔직히 어정쩡한 상태다, 그런데 결국은 북튜브를 하지 않을까 싶다, 책 읽는 게 즐겁고, (비록 글로 쓰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내가 책을 읽고 나서 깨닫고 느꼈던 점들을 남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하나로 유튜브를 선택한다면, 그것도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라는 식으로 얘기했더랬습니다.

아무리 유튜브가 펄펄 끓는 시장이라고 해도, 팬티도 안 입고 수영장으로 냅다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 하면서 고민은 해보고 있답니다. 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 ‘영상 컨텐츠의 핵심 경쟁력‘이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은 영상 컨텐츠의 무엇에 그토록 열광하는지를 심사숙고해 봐야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핸리 8세>의 작가가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는 설은 예전부터 있어 왔던 ‘오래된 문제‘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전예원 세계문학선> 신정옥 번역본(1999년)에서도 그런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고요. 아무튼 유익한 정보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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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은 과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냐 아니냐가 의문이다. 셰익스피어의 것이 아니면 누가 썼는가? 다른 작가와의 합작이면 누구와 함께 썼는가. 쓴 사람은 두 사람인가 아니면 세 사람의 합작인가.

무려 23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5막 17장으로 압축하여 극화한 <헨리 8세>는 셰익스피어의 만년의 작품인데 집필자 문제에 대해서는 설이 구구하다.

그 중에서도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는 설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연구가인 제임스 스페딩이 주장하는 합작설이다. 그는 <잰틀맨 매거진>지에 ˝누가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를 썼는가?˝ 라는 글에서 시의 형태와 운률 등의 분석에 의한 증명을 하며 셰익스피어와 존 플레쳐의 합작이라는 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운률의 검증에 의해 작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는 듯하지만 그것으로 작가를 결정함은 위험스럽기 그지없다. 스페딩은 <헨리 8세> 중 많은 유명한 대사를 플레쳐가 썼다고 했다. 그 많은 아름다운 대사를 셰익스피어 작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겐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맥스웰이나 틸랴드는 셰익스피어 그리고 후배작가들 플레쳐와 필립 매신져가 합작했다는 것이다. 또 한 설로는 셰익스피어와 무관한 것으로 플레쳐와 매신져의 합작이라는 설도 있다. 합작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시형의 특이성 외에도 연극이 에피소드 식으로 전개되어 전체의 통일이 없다는 점, 또 유명한 대사가 너무도 수려하여 셰익스피어다운 독특한 동력이 없다는 점, 인물의 묘사에도 일관성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찍이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서인지 커모드는 <헨리 8세>를 ‘에피소드의 극˝이라 평한 바 있다.

이들 설이 확실한 증거로서는 미약하여 이설도 분분한 <헨리 8세>의 작가문제에 대해 결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셰익스피어가 단독으로 집필하였다는 설이 지배적이고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

- 신정옥 번역, 『헨리 8세』, <작품해설> 중에서
 

 

결론은 물론 '됩니다.' 입니다만,

실제로 작업을 해 보니 그 과정이 무척이나 힘이 드네요.

 

물론 대본을 새로 쓸 필요는 전혀 없는데,

텍스트에는 없었던 '알맞은 영상'을 새로 마련하는 게 진짜 일이네요.

 

게다가 거기에 알맞는 배경 음악도 찾아 넣어야 되고요.

실험삼아 작업을 해 보니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웬만하면 포기하시는 게 나을 듯하네요.

 

알라딘 서재에 어울리는 글과 유튜브 동영상에 알맞는 영상물은

비록 일맥상통하는 면은 있지만 곧바로' 변환'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두 플랫폼의 성격 자체도 상당히 다른 면이 많고요.

 

저도 유튜브 초보이고, 아직까지 동영상 카메라도 없이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는데,

알라딘 서재글을 유튜브化 하는 문제로 고민 중인 분들은 참고하세요~

 

알라딘 서재글 ☞ https://blog.aladin.co.kr/oren/10636948

유튜브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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