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후보자가 지명될 때부터 떠올린 우화가 하나 있었다. 전갈과 개구리에 얽힌 이야기다. 강을 건너려는 전갈이 개구리에게 '등 좀 태워 달라'고 한다. 독침이 무서운 개구리가 마다하자 '둘 다 죽는데 찌를 리 있겠느냐'고 달래 올라탄다는 얘기다. 강을 다 건너기도 전에 전갈은 결국 자신의 성질을 참지 못하고 개구리를 찌르고 만다. 원망하는 개구리에게 전갈이 한 말은 이랬다.

 

"미안해. 급하면 나오는 본능이야"

 

이 이야기는 대통령이 조국 후보자를 중간에서 철회하든 끝끝내 임명을 강행하든 둘 모두에 적용이 가능하다. 전갈이 독침을 찌른다는 점에서는 임명 철회의 경우에 들어맞을 듯하지만, 다시 한번 음미해 보면 임명을 강행하는 경우가 훨씬 더 들어맞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공생관계이던 전갈과 개구리가 둘 다 물에 빠져 죽는다는 점에서.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고 말했던 신임 법무장관과 그를 끝끝내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문대통령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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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결국 국민은 압도적인 지지로 전갈 새끼를 대통령으로 뽑은 거네요. 국민이 개눈깔이네요. 전갈을 사람으로 보았다니 말입니다.
허허허허...

oren 2019-09-09 15:13   좋아요 1 | URL
그렇게까지 비약해서 해석할 수도 있는 거로군요. 허허허허.

아무튼 제가 이 우화를 떠올린 건 단순합니다.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듯이) 그 어떤 난관이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결국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리라 예상해 왔었고, 그런 무리수가 결국은 나중에 ‘재주복주(載舟覆舟)‘의 교훈처럼 실현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지지가 현 정부를 떠받쳐 왔듯이, 이제부터는 국민들의 분노의 강물이 결국 현 정부를 뒤집어 엎을 것 같은 불행을 예감한다는 것이지요.

돌궐 2019-09-09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쉽기는 한데, 이 일로 정부가 뒤집히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지켜봐야겠죠.

oren 2019-09-09 16:04   좋아요 1 | URL
박근혜 정부처럼 배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배에 탄 사람들을 몰살시킬 정도는 아니겠지요.

그러나, 저 까마득한 군부통치 시절인 1987년의 4.13 호헌조치를 비롯해서, MB정부 때의 광우병 파동처럼 정권 자체가 휘청거릴 만큼의 ‘거센 파도‘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은 듭니다. 다만, 지금의 야당이 너무나 허약해서 국민들의 힘을 얼마만큼 결집시킬 수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은 신문기사 내용읍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교육학박사 학위 위조 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사문서 위조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8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의 경력에서 교육학박사가 삭제됐다. 가짜학위 가능성이 제기된지 얼마 안 돼서 사실상 박사학위가 허위임을 인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교육학박사가 기재된 채 발부됐던 동양대 총장 명의 상장, 표창장은 모두 허위이고 최성해 총장이야말로 사문서 위조로 처벌받아야 한다. 검찰 뭐하나˝라고 반문했다.

최근 최성해 동양대 총장은 포털사이트 프로필에서 ‘교육학박사‘ 학위가 돌연 수정되면서 학력 위조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고일석 전 중앙일보 기자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양대학교 최성해 총장, 유령 학위 의혹‘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최 총장이 학위를 취득한 미국 소재 신학대학교가 당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서도 학위 인정을 받을 수 없는 학교였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네이버 인물정보에서는 박사학위 부분이 삭제됐지만 한국대학신문에 게재된 그의 프로필에는 신학사(1991년), 교육학석사(1993년), 교육학박사(1995년)를 워싱턴침례신학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취득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며 관련 사진을 첨부했다.

이어 ˝워싱턴침례신학대학교는 알 수 없는 시기에 버지니아 워싱턴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면서 ˝문제는 최성해 총장의 프로필에 소개되어 있는 교육학석사, 교육학박사학위가 이 학교가 수여할 수 있었던 학위 목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내 학술진흥재단은 미국 소재 신학교에서 수여하는 ‘가짜 박사학위‘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미국 신학교 단체인 신학교협의회(ATS)에 가입된 신학교만 정식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최 총장이 이 학교의 학위를 취득한 1991년부터 1995년까지의 시기는 ATS 가입 이전이라는 것이 고 전 기자의 설명이다. 또 이 학교가 ATS에 가입한 뒤에도 교육학은 여전히 승인 학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같은 의혹은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누리꾼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제 최 총장의 포털사이트 네이버 등 인물정보 학력사항에서는 현재 ‘교육학박사‘가 사라진 상태다. 8일 최 총장의 포털 프로필 학력사항에는 1978년 단국대학교 무역학과 학사, 1985년 템플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수료 외에 워싱턴침례대학교 대학원 석사, 단국대학교 교육학 명예박사 등 학위가 수여 연도 없이 적힌 상태다.

동양대는 그동안 총장이 수여하는 졸업증, 장학증서, 표창장 등 상장에서 하단에 ‘동양대학교 총장 교육학박사 최성해‘라고 기재해왔다.

oren 2019-09-09 20:58   좋아요 0 | URL
저도 잘 몰랐는데, 방금 뉴스로 검색해 보니 최성해 총장은 자신의 박사 학위가 ‘명예 박사학위‘라고 솔직하게 인정했더군요. 그런데 조국 후보자의 딸이 받은 표창장은 ‘위조 의혹‘으로 법원에 기소까지 된 사안이고, 의심을 받는 쪽에서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 문제로 보입니다. 이 사안에 대해 어느 칼럼에 실린 글을 일부분만 덧붙여 놓겠습니다.

* * *

거짓말에도 예의가 있다.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하는 것이어서 거짓말하는 사람도 사실의 엄중함을 존중한다. 그래서 사실을 감추려고 기를 쓰고, 사실이 드러나면 당황하거나, 변명하거나, 사과를 하는 식으로 뒤늦게라도 사실을 인정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실을 밝힌 쪽에다 대고 거꾸로 거짓말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사기꾼이 아니면.

조국 법무부 장관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을 했다. 가장 간단한 조국 딸의 표창장 위조 건을 보자. 동양대 최성해 총장은 “(조국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가 전화해 (딸의 총장 표창장 발급을) 본인이 위임받은 것으로 해달라고 한 뒤 조국을 바꿔줬다”고 5일 언론 인터뷰에서 분명히 밝혔다.

다음날 인사 청문회에서 조국은 ‘위임’이라는 핵심단어만 뽑아내 총장이 잘못 들은 것처럼 뒤집어 씌웠다. 자기 아내는 총장에게 “위임해주신 것이 아니냐”고 했다는 거다. 전에 표창장 발행 권한을 위임해주고도 왜 딴소리를 하느냐는 뜻이다.

거짓말도 이쯤 되면 사람 잡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최 총장은 조국과의 두 번째 통화를 하며 위임했다는 보도 자료를 내라는 압박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조국은 딱 한번 통화했다고 했다. 조국의 배우자가 표창장을 위조하는 데 그쳤다면, 조국은 권력형 압력을 가하고 사실 은폐까지 했다는 얘기다.

그런 조국을 문재인 대통령은 9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이유다. 청문회 전까진 조국이 직접 위법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청문회 직전 조국이 최 총장에게 권력형 위협을 가하고 은폐 조작을 종용한 것이 위법행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 [김순덕의 도발]문 정권은 조국 식으로 국민을 속여왔나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21:08   좋아요 2 | URL
아, 그 유명한 동아일보의 김순덕 칼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소 즐겨 읽으시는군요. 반박을 하시려면 제대로 된 자료나 글을 가져오셔야죠. 알라딘 리뷰 쓰실 땐 책 인용 제대로 하시더니....


김순덕 사설에서는 최총장은 조국과 두 번째 통화를 한 것으로 말하는데 사실이 전혀 아닙니다. 찾아보세요. 최총장 스스로 2번 통화했다는 말을 바꿔 1번 통화했다고 정정했습니다. 뭐, 그리 변명을 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8: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력 허위 기재로 사문서 위조한 총장, 본인이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육학 박사가 아니라 단순한 명예박사라고 시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 확정이죠 ? 그리고 조국 후보 딸의 의혹은 사실 검증이 안된 수사 중입니다. 오렌 님은 조국 딸을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총장의 사문서 위조에 대해 비판해야 되는 것 아닐까요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교육학 박사와 교육학 명예 박사의 차이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명예박사도 박사 학위라면 연예인 명예경찰도 결찰이 될 수 있죠. 참고로 박근혜도 서강대 명예 철학박사입니다.

에곤 실례 2019-09-0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께 댓글이 따로 달리지는 않는군요. 곰발님은 스스로 문빠라고 당당히 말씀하셨으니까 질문 한마디 합니다.
지금 문정부가 하는 방식이 좋은 정치입니까?
아니, 누구 때보다 낫다 그런 말은 아니고요.
정말 제대로 되어 가는 정부인것 같으냐구요.
예를 든다면 조국이 없어서 법무부 장관에 다른사람이 임명된다면 이 정부 무너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9 18:28   좋아요 2 | URL
조국이 없다고 해서 문 정부가 무너지지는 않겠죠. 이 말을 다른 식으로 말하면
조국이 있다고 해서 문 정부가 무너질까요 ?


에곤 실례 님은 같은 질문을 이 블로그 주인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 예를 든다면 조국이 있어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다면 이 정부 무너질까요 ? ˝

oren 2019-09-09 21:08   좋아요 0 | URL
조국 법무장관 한 사람 때문에 이 정부가 무너지느냐 마느냐를 단정적으로 결론내릴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고심 끝에 새로운 법무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이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너무나 많은 의혹에 휩싸여 있어서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비판과 분노를 사고 있어서, 자칫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험스러운 지경으로 치닫지나 않을까, 그게 큰 걱정이라는 말이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10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컷 뉴스 보니 최성해 총장은 최종 학력이 고졸이랍니다. 그 많은 학력이 모두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던데 오랜 님의 견해는 무엇인지요... 고졸인 최성해가 대학 총장으로 20년 넘게 좌지우지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위험한 범죄아닙니까 ?

oren 2019-09-10 22:26   좋아요 0 | URL
대학총장의 최종학력이 고졸이라면 해외토픽 감이겠지요.
 

 

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그들에 대해 당신이 읽었거나 전해들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中에서

 

 * * *

 

조국의 아내가 기소됐다.

 

범죄 혐의는 사문서 위조였다.

 

자녀 입시에 사용된 대학총장 표창장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논란 끝에 마침내 사정이 여기까지 이르렀는데도 '조국 대전'은 끝날 줄 모르고 계속 진행중이다.

 

왜 이토록 어리석은 싸움을 누가 여기까지 이끌고 왔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조국이 아니면 사법개혁은 좌초되고 만다는 식의 무서운 집착이 빚은 결과임은 분명하다.

 

사태가 이토록 악화되기 전에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대통령의 지명 철회 기회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후보 지명자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사모펀드 의혹과 사학재단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장학금 특혜 수령 의혹이 불거질 때만 하더라도 사태 전개 양상이 지금처럼 심각해질 줄은 몰랐다.

 

고교생이 의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가 아마도 맨 처음으로 찾아온 'STOP' 기회였는지 모르겠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사모펀드 투자금과 사학재단의 사회환원 카드를 내밀어 여론 반전을 시도했다. 그러나 분노한 민심은 수그러들 줄 몰랐고, 대학생들의 촛불시위로 번졌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은 청문회 개최를 둘러싸고 야당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자 난데없이 '국민 청문회'를 추진하기로 한다.

 

간난신고 끝에 이틀간의 청문회 개최가 가까스로 합의되지만 후보자 가족 등을 포함한 증인 채택 문제로 또다시 교착에 빠진다. 그러는 와중에 급기야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착수한다. 이미 사모펀드 관련 핵심 피의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해외로 도주하기 시작했으니 더 이상 수사를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 때부터 사태는 급류를 타기 시작하고 일파만파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검찰의 범죄 혐의 수사를 두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일'이라는 등 집권세력의 무모하고도 거센 비판이 마구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권여당의 첫 번째 패착으로 보인다.

 

두 번째 패착은 청문회를 둘러싼 증인 협상 결렬을 빌미로 결국 '기자 간담회'를 강행한 것이다. 원래 목 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법이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의혹에 대해 '청문회에서 소상히 밝히겠다'는 핑계로 버텨오던 후보자 입장에서는 무수한 의혹을 일거에 해소하고 싶은 갈망 때문에라도 그런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법무장관 후보자가 법에 정해진 절차까지 무시하고 기자들만 불러 '해명 간담회'를 열어봤자 악화된 여론을 되돌릴 수 없는 건 자명한 이치였다. 탄핵 직전까지 내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론이 최고조로 악화되었을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들만 불러놓고 갖은 몸짓을 다해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거짓으로 해명하는 모습의 데자뷰일 뿐이었다.

 

특수부 수사 인력을 더욱 보강한 검찰은 내친 김에 동양대와 서울대 의전원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고, 이튿날 아침에 갑작스레 터져 나온 총장 표창장 위조 의혹은 숱한 관전자들을 경악 속으로 빠트렸다. 이번 사태가 전체 몇 막의 구성으로 그 장대한 결말을 마무리할 지는 몰라도 <조국 대전> 제1막 제1장의 클라이맥스라고 부를 만한 장면이 바야흐로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후보자 부인의 다급한 전화 통화 내용과 문자 메시지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후보자와 집권세력의 유력 인사들의 의심스런 통화가 잇따라 폭로되었다. 여론이 추스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어쨌거나 데드라인을 하루 앞두고 가까스로 합의된 맹탕 청문회만 건너뛰고 나면 무사히 '임명 절차'를 밟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청와대는 스모킹 건이나 다름없는 '표창장 조작 의혹'을 덮기 위해 총력을 동원했고, 그런 무리수들이 결국 검찰과의 정면 충돌로 이어졌다. 급기야 청와대의 모 행정관은 검찰을 향해 “미쳐 날뛰는 늑대마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물어뜯겠다고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다”는 극언까지 퍼부었다. 집권 세력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겠다는 검찰의 행보에 대해 이토록 흥분하는 까닭이 도대체 무엇인가.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여권 전체가 약속이나 한 듯 검찰을 향해 온갖 험악한 비난을 퍼부은 것이 이번 사태의 세 번째 패착이었다.

 

어젯밤의 맹탕 청문회가 무미건조하게 막을 내리면서 제1막이 싱겁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곧바로 1막 이상으로 드라마틱한 제2막이 활짝 열리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다시금 사로잡았다. 후보자 아내의 소환조사 마저 건너뛴 불구속 기소가 7년이라는 기나긴 공소시효 마감을 딱 한 시간 앞두고 전격적으로 단행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조국 대전>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물론 이번 대전의 깊숙한 정치적 배경이나 등장 인물들이 쏟아낸 수많은 명대사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TV나 뉴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식상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궁금한 건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의 전망'이다.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가장 싱겁게 끝나는 해피엔딩(?)은 갑작스레 드라마가 끝나는 것이다. 조기 종영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주인공이 일신 상의 사유로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오는 경우다. 물론 감독의 교체 사인이 중도 하차의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

 

가장 불행한 네버엔딩 스토리는 드라마가 계속 이어지는 경우다. 이럴 경우에는 감독과 주인공뿐 아니라 관객들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물론 최악의 경우는 관객이 무대의 주인공뿐 아니라 감독까지 끌어내리겠다고 덤벼드는 국면이다. 그때는 말 그대로 파국으로 끝난다. 설마 그토록 흉악한 드라마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진 않다.

 

아무쪼록 사태가 여기서 더 크게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이라도 대통령이 법무장관 임명을 포기하면 그것으로 기나긴 싸움은 간단히 끝난다. 물론 그 싸움은 '집권세력의 완패'로 규정되면서 수많은 후폭풍을 불러올 게 틀림없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안 보인다는 게 진짜 문제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 되면 결국 '해피엔딩'의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이번 사태는 결국 비극으로 끝맺을 수밖에 없다. 임명 강행이 '파국' 없이 어떻게 마무리될 수 있을까. 나 또한 임명 강행=불행한 결말을 예상한다. 단지 불행의 크기만이 문제될 뿐.

 

임명 강행 이후에 전개되는 소식들은 대략 어떤 것들일까. 외신에는 아마도 이런 뉴스들로 장식되지 않을까.

 

한국 대통령, 자녀 입시 비리로 검찰에 기소된 배우자를 아내로 둔 핵심 측근을 신임 법무장관으로 임명.

한국 사회, 신임 법무장관 임명 강행을 둘러싸고 여야 극한 대치, 대학생 및 시민들 대규모 항의 집회

한국 검찰, 최근에 임명된 신임 법무장관의 부인 강제 소환(혹은 구속영장 청구)

한국 검찰, 최근에 자녀 입시부정 스캔들에 연루된 법무장관 피의자로 소환

한국 사회, 신임 법무장관 퇴진 요구 및 반정부 시위 갈수록 확산

한국 검찰, 조국 사태 관련 수사 결과 발표, 법무장관 불구속 기소

한국 정부, 법무장관 사임 발표

한국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발표

 

과연 <조국 대전>은 언제까지 전개될까. 지켜보는 관객들 가운데 극히 일부는 파국을 바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조기 종영을 바라마지 않는다. 이제껏 시달려온 내우외환만으로도 충분히 지쳤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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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9-09-08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서재에는 정말 논리적으로나 지성으로 봐서 타 사이트들 보다 뛰어난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그래서 내가 자주 와서 여러분들의 글을 흥미롭게 읽고 있답니다.
게다가 자기 자신의 주장이나 글로써 다른사람들을 설득하는 재주들도 훌륭합디다.
그런데, 서울대 환경 대학원 2학기 다 장학금을 받은 문제나 부산 의전원 등록금 수여 문제만으로도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되도 확실히 잘못된것 같은데,
이곳의 똑똑하고 젊고 깨어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조국을 염려하고 계속 지지하는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보면
도대체 이성이란 무엇인가 싶고 또 지성이란 무엇인가 싶더군요.
물론 그사안은 조국의 범법이 아니고 조국 자체로는 하자가 없다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라는게 있지않겠습니까.
과연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다는 말을 정의를 전매특허라도 받은 냥 떠버리던 사람들이 할소리입니까?
내편이니까 괜찮다고 말하고 싶을까요?
쓸데없이 댓글이 길어져 버렸네요.

oren 2019-09-08 22:44   좋아요 1 | URL
이번에 한 달 가까이 진행된 <조국 사태> 때문에 깨닫게 되는 일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가장 큰 깨달음이자 충격은 이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정부 최대의 과제이자 구호가
그 얼마나 허구에 가득 찬 ‘대국민 홍보용 선전 문구‘에 불과하였는지를
<조국 사태>만큼 상징적이고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태는 일찍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두 번째 충격은 오로지 ‘진영 논리‘에만 갇힌 채,
조국 후보자의 명백한 거짓이나 불의나 부도덕한 행태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아 버리고,
온갖 억지와 궤변을 총동원해서 무작정 그를 옹호했던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입니다.
거의 ‘인간 실격‘에 가까운 온갖 거짓 행태를 눈앞에서 셀 수도 없이 확인하고 나서도,
오로지 맹목적으로 그를 옹호하고 두둔하려는 눈물겨운 모습들 속에는
그 어떤 정당한 논리나 합리성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오로지 ‘내 편이니까 무조건 지지한다‘는 식의 ‘내로남불 사상‘밖에 찾을 수 없더군요.
출범 이후 줄곧 <국민의 정부>를 표방해온 문재인 정권이 결국 <그들만의 정부>임을
이번 사태만큼 역설적이면서도 도드라지게 드러낸 경우도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좁은 범위‘의 충격은 조국 후보자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입니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평등, 공정, 정의‘를 위해 SNS에 남겼던 그 무수한 글들이,
도리어 ‘불평등, 불공정, 불의‘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그를 공격하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이번에 한 달 내내 전국민 앞에 표정 연기까지 곁들여 쏟아낸 저 무수한 거짓말들이
앞으로 과연 얼마 동안이나 그를 끊임없이 공격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지나간 과거의 삶 속에서,
불평등하고 부도덕하고 특혜 받은 일들은 참으로 많았지만,
최소한 ‘위법 행위나 범법 행위는 없었다‘는 조국 후보의 최후의 방어막이
앞으로 얼마만큼 속절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지,
그걸 지켜볼 일만 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LAYLA 2019-09-0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극기 부대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역사에 남을 모먼트입니다.
 

 

집권당의 대표가 일식집에서 낮술을 먹은 걸 두고 논란이 뜨겁다. 그 날이 하필이면 '일본의 제2차 경제 침략'이 자행된 날이었으니 국민들의 펄펄 끓는 분노 게이지가 한 순간에 불끈 솟구치지 않았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일 터이다. 폭염만큼이나 짜증나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워낙에 시국이 엄중한 때인지라 자칫 사소한 일이 크나큰 빌미가 되어 '천하에 몹쓸 짓을 한 사람'으로 내몰려도 할 말을 찾기 어려운 형국인데, 그걸 둘러싼 공방이 더욱 한심스럽다.

 

물론 대범하게 보자면 사과 한 마디쯤 건네고 그칠 일로 치부할 수도 있을 사안이다. 그런데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비난 받아도 별로 할 말이 없지 싶은 사람을 편드느라, 물불 안 가리고 마구 뛰어들어 온갖 궤변을 늘어 놓는 사람들의 언행들이 분노를 더욱 솟구치게 만든다. 일식집에 가서 사케 한 잔 먹는 것도 못마땅하냐? 그러면 일식집은 다 망하라는 말이냐? 하고 안하무인 식으로 상대편을 무턱대고 나무라고 도리어 꾸짖는 태도를 어느 누가 곱게 봐줄 수 있겠는가. 적반하장도 유분수요, 아전인수와 견강부회가 따로 없다.

 

이번 무역 갈등 사태가 확전일로로 치달은 데에는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더라도) 현 정부와 집권당에게 일말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일본이 아무리 치졸하고 부당하게 도발했더라도 양국 사이의 갈등을 최대한으로 누그러뜨리고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정부와 여당몫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를 두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사코 갈등을 부추기고 이만큼이나 일을 키워 온 데 대해 선봉장 역할을 떠맡아온 당사자들이 '일식당에서 사케 한 잔 먹은 게 무슨 잘못이냐'는 식으로 비판자들을 향해 도리어 도끼눈을 뜨고 달려드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보다 더 황당하고 오만한 자세가 어디에 있는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에 가장 많이 언급된 '사자성어'가 하나 있다면 그게 바로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도 사자성어로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내로남불은 우리말의 '단순한 축약형'이지만,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비슷한 뜻을 지닌 말들도 아주 많다. 대표적인 게 아전인수, 견강부회, 적반하장, 지록위마 등이다. 아전인수의 반대말이 역지사지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니, 내 논에만 물을 끌어대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견강부회나 지록위마에 담긴 뜻에도 '억지를 부린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옳고,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틀렸다는 생각이야말로 초딩들에게나 어울리는 한심스런 생각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발 좀 억지와 변명은 이제 그만 부리고 대범하게 위기를 풀어내는 쪽으로 머리를 맞대 보라. 백성들의 삶은 하루 하루 나락으로 내몰리는 판국인데, '사케 한 잔' 먹고 나서도 반성할 줄은 모르고, 도리어 비판하는 국민들과 상대편들을 향해 거센 언사들을 총동원해 이토록 뻔뻔하게 우길 참인가.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는 정부의 고관대작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벼슬이 꾸며주는 위세에 도취된 채 꼴사납게 으시대는 오만방자함을 날카롭게 꾸짖는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우연히 함께 휴가를 얻어 궁궐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의 고관대작은 혹시라도 저잣거리에 '성인 같은 사람이 숨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함께 수레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때 만난 인물이 점 집 주인인 사마계주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과연 한마디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었다. 두 사람은 관의 끈을 고쳐 매고 옷깃을 여민 뒤 똑바로 앉아서 그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 * *

 

 

사마계주는 이렇게 말했다.

 

어진 이의 행동은 도를 바르게 실천하여 바르게 충고하고, 세 차례 충고해도 듣지 않으면 [벼슬에서] 물러납니다. 남을 칭찬할 때에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남을 미워할 때에는 원망을 돌아보지 않으며, 나라에 편리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것을 임무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벼슬이 자기에게 알맞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며, 봉록이 자기 공로에 알맞지 않으면 받지 않습니다. 바르지 못한 사람을 보면 그가 비록 귀한 지위에 있더라도 존경하지 않으며, 오점이 있는 사람을 보면 비록 그 사람이 높은 신분이라도 몸을 굽히지 않습니다. 벼슬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벼슬에서 물러나도 원통해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으면 몸이 묶이는 치욕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들께서 말하는 어진 사람이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자입니다. 몸을 낮추어 앞으로 나아가고 지나치게 겸손하게 말하며, 권세로 서로 끌어들이고 이익으로 서로 이끕니다. 도당을 만들어 바른 사람을 배척함으로써 높은 영예를 구하고, 나라의 봉록을 받고 있으면서 사사로운 이익만을 꾀하며, 나라의 법을 어기고 농민들을 착취합니다. 관직을 위세 부리는 수단으로 삼고 법을 무기로 삼아 이익만을 찾아 포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자행하니, 비유하자면 흰 칼날을 잡고 사람을 위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처음 벼슬에 나갔을 때에는 교묘한 수단으로 실력을 두 배로 보이게 하고, 있지도 않은 공적을 꾸며 말하며, 있지도 않은 일을 문서로 만들어 임금을 속입니다. 다른 사람의 윗자리에 있는 것을 좋게 여겨 벼슬에 임명될 때 어진 사람에게 양보하려 하지 않습니다. 공적을 말할 때에는 거짓을 보고하기도 하고, 사실을 과장하기도 하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기도 하고, 적은 것을 많은 것처럼 꾸미기도 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권세와 높은 지위를 구합니다. 그리고 주연과 놀이를 일삼으며 미녀와 노래하는 여자를 좇느라 부모를 돌보지 않고, 법을 어겨 가며 백성을 해치고 나라를 텅 비게 합니다. 이것은 창과 활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도둑질하는 것이고, 칼을 쓰지는 않지만 남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속였지만 아직 그 벌을 받지 않고, 임금을 죽였으나 아직 그 벌을 받지 않은 것뿐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높고 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무리는] 도적이 일어나도 막을 수 없고, 오랑캐가 복종하지 않아도 평정할 수 없으며, 간사한 일이 생겨도 막지 못하고, 관직의 기강이 어지러워져도 다스릴 수 없으며, 사계절의 기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도 조절할 수 없고, 그해의 곡식이 흉년이 들어도 조절할 줄 모릅니다. 능력이 있는데도 이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국가에 대한 불충입니다. 능력도 없이 관직에 앉아 위에서 주는 봉록만을 탐하고 어진 사람을 방해한다면 이는 벼슬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도당을 거느리고 있는 자가 등용되고, 재물이 있는 자를 예우하는 것은 거짓된 행위입니다. 공들께서만 유독 올빼미(소인)와 봉황(군자)이 함께 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십니까? 난, 지, 궁, 궁藭 같은 향기로운 풀은 넓은 들판에 버려지고, 蒿와 蕭가 숲을 이룹니다. 군자가 물러나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게 만들는 자들은 바로 공들 같은 사람입니다. (773∼775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일자 열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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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슬프다! 대체로 계책의 설익음과 무르익음과 성패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깊구나!

 - 사마천, 『사기』 중에서

 

 * * *

 

까마득한 과거의 역사를 읽는 동안에 우리가 처한 눈 앞의 현실을 겹쳐 떠올리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역사의 거울'에 비춰 보면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일들이 뜻밖에도 몹시 선명하게 그 본질을 드러내 밝혀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때에도 그랬다. 그때 읽었던 역사책들 속에서 박근혜 정부의 잘못이 얼마만큼 더 뚜렷하게 드러났는지를 이제 와서 새삼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

 

박근혜 정부가 온갖 실정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다 드러나고 말았을 때, 국민들이 한겨울 추위를 마다 않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외친 단 하나의 구호는 '이게 나라냐'는 거였다. 그만큼 국민들은 대통령의 '제멋대로식 권력 행사'에 대해 거센 분노를 쏟아냈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은 통치자에게 그런 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라고 나라를 맡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명제가 그때만큼 절절하게 국민들의 가슴을 파고 든 적도 일찌기 없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끝끝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할 줄 몰랐다. 수차례에 걸친 대국민 담화와 변호인의 기자 회견과 특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국민들에게 보여준 것이라고는 '거짓과 변명' 뿐이었다.

 

요즘 푹 빠져 읽고 있는 역사책은 사마천의 『사기 열전』인데, 이 유명한 역사책을 읽는 동안에도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 속의 사건들이 너무 자주 오버랩된다. 사마천의 책은 기원전 91년에 완성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110년 전에 나온 셈이다. 이토록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인데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며, 21세기에 우리들의 목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까지도 명쾌하게 비춰주는 거울 같은 느낌을 주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숱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과 인간의 변치 않는 본성들이 그 책 속에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책은 온갖 권모술수가 '역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난무하던' 저 유명한 춘추전국시대를 주된 시대 배경으로 다루는 데다가, 그 당시 전국 7웅(戰國 七雄)이라고 일컬어지던 일곱 나라가 국가의 존망을 둘러싸고 온갖 비상한 책략과 술책을 총동원했던 까닭에, 오늘날 총성 없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국가 간의 무역 전쟁'을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 특히나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나 절박한 과제로 불쑥 떠오른 '한일 무역 전쟁'을 둘러싼 양국 사이의 치열한 다툼을 보노라면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이야기들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더군다나 이번 무역 전쟁이 어느새 '통상적인 무역 분쟁'이 아니라 '어느 한쪽은 옳고 다른 한쪽은 그르다'는 식의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중차대한 전쟁'으로 차츰 확대되고 변질되는 모습은 자못 이채롭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이같은 사건 전개 양상이 양쪽 집권 세력의 교모하고도 주도면밀한 전략 또는 다소 고의적인 상대방 무시 전략 때문에 빚어졌다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키는 형국에 이르렀고, 이번 분쟁을 둘러싼 온갖 해법과 논쟁과 해석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지는 것도 모자라, 같은 나라 안에서도 '무역 전쟁의 원인과 대응 방식'을 놓고 서로 치열한 세력 다툼까지 벌이는 지경에 이르고 보니, 이래저래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처지에 놓인 국민들로서는 그저 황망할 뿐이다.

 

이 문제가 양국 사이의 '불행한 과거사' 때문에 빚어진 일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양국 사이의 정치외교적인 갈등 때문에 빚어진 문제를 치졸한 '경제 보복'으로 옮겨 간 아베 정권의 잘못을 부인할 사람도 우리나라 국민들한테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 정부의 대응은 근본적인 사태 해결 방식인 '외교적인 접근'은 등한시한 채 '무역보복의 부당성'에만 촛점을 맞추는 것인가.

 

물론 처음엔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기습적으로, 그것도 몹시 치졸한 방식으로 '급소'를 아주 세게 얻어맞았으므로 거기에 마땅한 거센 분노를 터뜨리고, 일본을 부리나케 찾아가서라도 따지고 항의하고, 국제 여론에도 이번 조치의 부당성을 구구절절 호소하고, 세계 만방에 우리의 억울함을 알리는 게 지극히 당연하고도 마땅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일본의 기습적인 '무역 보복' 조치가 발표되고도 무려 일주일 가까이 침묵했더랬다. 몹시 기이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기나긴 침묵' 자체가 이번 사태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한편의 무언극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몹시 걱정하고 우려하던 일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는데, 정작 그 일을 당하고 나니 너무나 당혹스러운데다가 막상 뚜렷한 대응방법조차 없어서 몹시 당황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과연 그랬다. 대통령도 일본의 보복 조치 이후 최초의 공식적인 대응에서 분명하게 밝혔듯이, 이번 문제는 결국 외교적으로 푸는 게 최선인데도, 도무지 그 해법이 마땅치 않아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번 사태가 치졸한 무역 보복으로까지 비화한 데는 우리에게도 몇 가지 귀책 사유가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마땅한 어휘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귀책 사유'라고 표현했지만 우리에게 무슨 크나큰 잘못이 있다기보다는 상대방이 강력하게 항의할 만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의미로 쓴 단어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귀책 사유란 폭넓게는 1965년의 한일협정까지도 포함될 수 있으며, 좁게 보자면 박근혜 정부에서 졸속으로 처리한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 2018년 10월에 내려진 대법원의 배상 판결, 대법원의 판결이 필연적으로 몰고 올 '일본과의 외교 마찰'에 대한 대처 부족, 문재인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 등까지도 두루 포함시킬 수 있을 듯하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귀책 사유가 없었더라면 일본이 어떻게 저토록 무모하게 '반도체 핵심 소재'를 무기 삼아 우리의 목줄을 비틀듯이 대담하게 공격할 수 있었겠으며, 우리 정부 또한 기습 공격을 당하고도 무려 일주일 가까이 침묵한 끝에 '외교적인 해법이 최선'이라는 말부터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겠는가.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이번 사태가 갑자기 엉뚱한 쪽으로 비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길래 (아무리 비난하고 욕을 해도 시원찮을 족속인) 일본이 감히 우리에게 부당한 '경제 침략'을 벌일 수 있느냐는 격앙된 반응이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다짜고짜로 일본을 향해 거세게 덤벼드는 '총반격 모드'로 돌변했다는 게 오히려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의병 운동이 일어나야 마땅하다'는 격한 반응이 뒤따랐고(도대체 '관군'은 어디서 무슨 전투를 벌이고 있었길래!), 청와대 핵심 참모의 SNS에서는 '죽창가'가 올라오더니, 국가 안보실 고위관계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언급할 정도로 사태가 급박하게 '항일 운동'으로 비화되었다. 때마침 지방행사에 참석했던 대통령은 '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까지 불러냈다. 그러나 이토록 가열차게 전쟁을 독려하는데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점점 더 요원해 보이고, 날이 갈수록 이번 무역전쟁이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꼬여가는 까닭은 무엇인가. 마땅히 정치외교적으로 풀어야 마땅할 문제임은 누구라도 빤히 아는 상식일진데, 정부 당국자들의 입에서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공허한 얘기만 쏟아져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오랜 원한 관계가 쌓인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은 통치자들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부침을 겪게 마련이다. 때로는 누그러지고 때로는 격화된다. 이건 동서고금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가 그랬고, 춘추전국시대의 수많은 제후국들이 그랬다. 섶에 누워 자거나 쓸개를 씹으면서 복수심을 키우다가도(와신상담) 같은 배를 타고(오월동주) 다른 나라를 치기 위해 동맹을 맺는 게 일상 다반사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에서야 한일 사이의 갈등이 언필칭 해방 이후 최고조로 나빠졌을까.

 

나는 그 원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양국 통치자의 상반된 이념적 편향성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극우 성향의 아베 정권은 헌법을 고쳐서라도 전쟁 가능 국가가 되려고 혈안이다. 문재인 정권은 진보 정권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좌파 정권에 가깝다. 일본에 대해서는 엄연한 안보 우방국임에도 불구하고 '반일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 비해 중국과 북한에 대해서는 한없이 나약하거나 지나치게 너그럽다. 우리의 정당한 안보 주권에 관한 문제엿던 '사드 배치' 때만 보더라도 그렇다.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자 주권 포기에 가까운 '삼불 정책'을 선뜻 약속했기 때문이다.

 

양국의 지도자 사이는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대법원 판결' 이후로 얼마든지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할 수 있었을 테고, 아베 정권이 저토록 치졸한 '무역 보복'을 감행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문재인 정권에서도 이토록 가열차게 앞뒤 가리지 않고 '반일 투쟁'을 독려하지도 않았을 테고, 심지어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을 파기하겠다는 식의 '자해 소동'에 가까운 무리수를 꺼내들지도 않았을 테고, 이번 무역 보복의 궁극적인 목적이 '문재인 정권 끌어내리기'라는 섬뜩한 주장이 우리의 귀에까지 들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상관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 문제가 풀릴 테고, 그때 아무쪼록 우리가 보란듯이 일본을 확실하게 눌러 이겼으면 좋겠다. 어쨌든 일본은 우리로서는 용서하기 힘든 끔찍한 죄악을 저지른 '역사의 죄인'이자 불구대천의 원수임이 명백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꺼림칙한 의문은 남는다. 이번 사태가 악화되면 될수록 가장 큰 피해는 결국 우리나라의 기업들과 국민들에게로 귀착될 게 너무나 빤한 데도 도대체 왜 집권 여당에서는 '궁극적인 해법'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피하면서 오로지 '반일 운동'으로 똘똘 뭉치는 것만이 최선책인 것처럼 이번 사태를 호도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조항이 그토록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지는 데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의 피해가 날이 갈수록 확산될 게 뻔한 데도, 이번 사태를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서둘러 해결하려는 노력은 갈수록 뒷전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사태가 자꾸만 이상하게 꼬이다 보니 기어이 엉뚱한 데서 '큰 일'이 터지고 말았다. 현 정권의 2인자나 마찬가지인 청와대 핵심 참모가 이번 대법원 배상 판결에 비판적인 국민들을 모조리 '친일파'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어느 국민이 자기 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부당한 보복을 당하는 처지를 진심으로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현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국민들을 하루 아침에 '친일파'로 몰아 세우고, '애국자' 아니면 '매국노'일 수밖에 없다고 규정해 버리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당장이라도 죽창가를 부르며 일본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어 싸워야만 '애국자'인가. 차분하고도 냉정하게 양국의 갈등을 해소할 묘책은 없을까 고민하고 모색하는 사람들까지도 한사코 '친일파'로 규정하고 낙인찍어야 옳을 일인가. 국민들은 다만 양국 사이의 싸움이 커질수록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게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일본이 저토록 길길이 날뛰는 까닭이 무엇인지 그 연유를 살펴 보고, 혹여 우리가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라도 찾아낼 수 없을까 하고 살필 따름이다. 그래서 사법부의 판단이나 정부의 후속 대응에 대해서도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살피면서 이런 저런 견해를 밝힐 뿐이다. 그런데 정권의 2인자가 '죽창가'를 내세우면서까지 전투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도 부족해서, 현정부의 대처 방식을 비판하는 국민들을 모조리 '친일파'로 규정하겠다니 이런 억지와 오만이 어디 있는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고달프고 힘겨워 하루라도 빨리 궁극적인 해법을 모색해 달라거나, 일본과 정치적으로 서로 양보하고 타협할 여지는 없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봐 달라는 요구가 그렇게도 못마땅한가. 현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는 국민들을 모조리 '친일파'로 낙인찍고 한켠으로 따돌린다고 해서 도대체 사태 해결에 무슨 보탬이 되는가.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고 그저 매국노일 뿐인가. 느닷없는 무역 보복 때문에 날로 시름이 깊어가는 데도 그저 가만히 앉아서 피해만 당하는 국민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비록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훗날의 역사가들은 청와대 민정 수석의 이번 '친일파' 발언을 '문재인 정권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망언'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왠지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토록 황당한 주장이 뉴스를 장식할 무렵에 내가 펼쳐든 역사책의 대목이 하필이면 <이사 열전>이었다. 이 열전은 사기에 담긴 70편의 열전 가운데서도 특히나 명문으로 꼽힌다. 이 열전의 핵심은 둘이다. 그 중 하나는 육경(六經)에 통달할 정도로 탁월한 인물이었던 승상(권력의 2인자) 이사가 황제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선비들을 탄압하는 계책을 올린 데서 비롯된 '분서갱유' 이야기다. 두 번째는 경쟁자이던 이사를 모함하고 제거한 끝에 2인자로 등극한 '환관 조고'가 무소불위의 권력에 취해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지경에 이른 '지록위마'에 얽힌 이야기다. 진시황때 일어난 이 유명한 일화가 오늘날의 사태에 비춰봐서도 그리 동떨어진 얘기는 아니라는 느낌은 나만의 지나친 비약일까. 혹시나 싶어 '지록위마'의 뜻을 다시 찾아봤다. 이 말은 윗사람을 농락하여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도 있고, 억지를 부림으로써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도 있단다. 청와대 핵심 참모가 이번 사태에 비판적인 국민들을 '친일파'로 불러야 마땅하다는 주장이야말로 '억지'를 부림으로써 국민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 *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사람은 그 유명한 진시황이었다. 진나라가 나머지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널리 인재를 구한 덕분이었다. 그런 인재들 가운데에는 진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음모를 꾸미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나중에 승상에 올라 진시황의 핵심 참모로 일했던 이사도 한때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들어 있었다. 그때 이사는 진시황에게 장문의 글을 올려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대변했다.(이것이 저 유명한 「간축객서()」다. 「간축객서」는 간절한 구직서일 뿐 아니라 이사의 재능과 모략과 지혜가 담긴 명문이다.)

 

신이 듣건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이 나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군대가 강하면 병사도 용감하다."라고 합니다.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는 사방의 구분이 없고 백성에게는 다른 나라의 차별이 없으며, 사계절이 조화되어 아름답고, 귀신은 복을 내립니다. 이것이 오제와 삼왕에게 적이 없었던 까닭입니다.(666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진시황은 빈객을 내쫓으라는 명령을 거둬 들이고, 이사의 관직을 회복시켜 그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에 진나라는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고, 이사는 승상이 되었다.

 

시황제 34년에 함양궁에서 주연을 베풀었을 때, 순우월이 황제에게 간언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일이든 옛것을 본받지 않고 오랜 시일 이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옛날의 좋은 제도는 다시 되살려 복원하자는 말이었다. 시황제는 이 건의를 승상 이사에게 검토하도록 했다. 이사는 순우월의 견해가 황당하다며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옛날에는 천하가 흩어지고 어지러워도 아무도 이를 통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후들이 나란히 일어났고, 말하는 것마다 옛것을 끌어내어 지금의 것을 해롭게 하고, 헛된 말을 꾸며서 실제를 어지럽혔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배운 것을 옳다고 여기고 조정에서 세운 제도를 비난하였습니다. …… 그들은 군주를 비방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다른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고상한 것으로 여겨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어 비방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금지하지 않으면 위로는 군주의 권위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당파가 이루어질 테니 금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청컨대 모든 문학과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것을 없애도록 하고 이 금지령을 내린 지 삼십 일이 지나도 없애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여 성단(사 년 동안 새벽부터 일어나 성 쌓는 일을 하는 죄수)으로 삼으십시오.(668∼669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시황제는 그 제안을 옳다고 여겨 제자백가의 책들을 몰수하고 모든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천하에 그 누구도 옛것을 끌여들여 지금 세상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이른바 분서갱유의 시작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난 이듬해(BC 212년) 시황제는 함양에 있는 유생을 체포하여 결국 460여 명이 구덩이에 매장되는 형을 받았다.

 

그로부터 2년 뒤 시황제는 세상을 두루 돌아보러 궁궐을 떠났다가 그만 객사하고 만다. 시황제가 병이 위독할 때 환관 조고에게 부탁한 일은 '맏아들 부소에게 후사를 맡기노라'는 편지를 맏아들에게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황제의 곁에는 막내 아들 호해와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가 있었다. 이들은 갑작스런 황제의 죽음을 한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일을 꾸몄다. 환관 조고의 주도 하에 맏아들 호해가 태자로 오르게 만든 것이다. 시황제가 맏아들 부소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조작됐다.

 

"지금 너는 장군 몽염과 함께 군사 수십만 명을 이끌고 국경 지방에 두준한 지 십여 년이 지났으나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병졸을 많이 잃었을 뿐 한 치의 공로도 세운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글을 올려 직언하고 비방하고, 지금의 직분을 그만두고 돌아와 태자의 지위에 되돌아갈 수 없음을 원망하고 있다. 너는 아들로서 불효하여 칼을 내리니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든 부소는 사람됨이 어질었기 때문에 부하 장수인 몽염이 말리는데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태자는 2세 황제로 즉위하였고, 조고는 2세 황제를 모시고 정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어린 황제는 한가한 틈에 조고를 불러 물어보았다.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준마 여섯 필이 이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오. 이제 황제로서 천하에 군림하게 되었으니 귀로 듣고 싶고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을 모두 즐기고, 종묘를 편안히 하고 많은 백성을 즐겁게 하고 천하를 길이 소유하고, 타고난 내 수명을 누리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겠소?"

 

조고가 대답했다.

 

"법을 준업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며, 죄 있는 자는 연좌제를 실시하여 죄를 지으면 그 일족을 모조리 죽이고, 선제 때의 대신들을 물러나게 하고 폐하의 형제들을 멀리하며,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고 천한 자를 높여 주십시오. 선제의 옛 신하를 모두 제거하고 폐하께서 믿을 수 있는 자를 새로 두어 가까이 하십시오. 이렇게 하신다면 숨어 있던 덕이 폐하에게로 모이고 해로운 것이 없어지며, 간사한 음모는 막히고 신하들은 폐하의 은택을 입고 두터운 덕을 입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며,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베고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습니다."(679∼680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2세 황제는 조고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죄를 짓는 자가 있으면 조고에게 맡겨 조사하도록 했고, 왕자 열두 명을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죽이고, 공주 열 명을 두에서 기둥에 묶어 놓고 창으로 찔러 죽였으며, 그들의 재산은 모두 거둬들였다.

 

법령에 따라 죽이고 벌하는 일이 날로 더욱더 가혹해지자 여러 신하가 스스로 위험을 느껴 모반하려는 자가 많아졌다. 또 황제를 위하여 아방궁을 짓고 곧게 뻗은 큰길과 넓은 길을 만드느라 세금이 더 무거워지고 변방 부역에 징발이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초나라 수비병 진승과 오광 등이 반란을 일으켜 산동에서 일어나니 호걸과 날랜 사람들이 다 일어나 스스로 제후가 되고 왕이 되어 배반했다. 그 반란군은 홍문까지 진격했다가 물러날 정도로 거셌다.(681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승상 이사는 여러 번 황제에게 시국 수습책을 간언하려 했지만 황제는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이사를 문책했다. 이사는 벼슬과 봉록을 소중히 여겨 황제의 비위만 맞출 뿐이었다. 이리하여 처벌을 더욱더 엄격히 하고, 백성으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는 자를 현명한 관리라고 했다. 2세 황제가 말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처벌을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길에 다니는 사람 중 절반은 형벌을 받은 자이고, 형벌을 받아 죽은 자가 날마다 시장 바닥에 쌓여 갔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죽인 관리를 충신이라고 했다. 2세 황제는 말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처벌을 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87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승상은 나중에 조고를 견제하기 위한 계책을 꾸미다가 도리어 환관 조고로부터 역습을 당해 황제로부터 신임을 잃고 만다. "조고가 아니었다면 승상에게 속을 뻔했소." 조고는 이사와 그의 아들 이유의 모반에 관한 진술서를 마음대로 꾸몄고, 황제는 이사에게 오형을 갖추어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를 자르도록 하였다. 이사가 죽고 나자 조고는 중승상으로 승진했고, 크든 작든 모든 일은 조고가 결정했다. 이 당시 조고의 위세를 상징하는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지록위마' 사건이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이 무거운 줄을 알고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2세 황제가 좌우에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이것은 사슴이지?"

 

좌우에 있던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말입니다."

 

2세 황제는 놀라서 스스로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태복(점을 치는 관리)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그러자 태복은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봄가을로 교사(제왕이 교외에서 천지에 올리는 제사)를 지낼 때 종묘 귀신을 모시면서 재계가 석연치 못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덕을 많이 쌓아 재계를 충분히 하셔야 합니다."(696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2세 황제는 나중에 환관 조고가 꾸민 일에 속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고는 황제의 옥새를 꺼내어 찼지만 곁에 있던 신하 가운데 아무도 따르는 자가 없어 시황제의 손자 자영을 불러 옥새를 주었다. 자영은 즉위한 지 세달 만에 유방의 군대가 쳐들어 오자 옥새가 달린 끈을 목에 걸고 항복했다. 유방은 자영을 관리에게 넘겼으나 초나라 항우가 와서 목을 베었다. 태사공(사마천을 말함)은 말한다.

 

이사는 삼공의 지위에 올랐으므로 높은 자리에 등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는 육경의 근본 뜻을 잘 알면서도 공명정대하게 정치를 하여 군주의 결점을 메워 주려 힘쓰지 않고, 높은 작위와 봉록을 누리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군주에게 아첨아고 좇으며 구차하게 비위를 맞추기만 했다. 조칙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였으며, 조고의 간사한 의견을 따라 적자를 폐하고 첩의 자식을 제위에 오르게 했다. 제후들이 이미 뒤돌아선 뒤에야 비로소 군주에게 충고하려 했으니 때가 너무 늦었구나! 세상 사람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아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698쪽)

 

 - 사마천, 『사기 열전_1』 , <이사 열전> 중에서 

 

 

 * * *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읽는 동안에 자주 떠올린 말은 '무엇이 중헌디?'라는 말이었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지 불과 15년 만에 멸망하고 난 뒤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툴 때의 일화 하나가 그걸 깨우친다. 한나라 고조 유방을 도와 초나라 항우를 무찌른 데에는 역이기(역생)의 공도 컸다. 그는 초나라 왕이 오창(오산에 세워진 식량 창고)을 소홀히 다루는 걸 보고 항우가 천자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고조 유방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 듣건대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왕의 일을 이룰 수 있고, 하늘이 하늘 된 까닭을 모르는 사람은 왕의 일을 이룰 수 없다. 왕 노릇 하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알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 라고 합니다. 오창에는 천하의 곡식을 날라다 놓은 지 오래되었는데, 신은 그곳에 쌓아 놓은 식량이 매우 많다고 들었습니다. 초나라 군대가 형양을 함락시키고도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오히려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가면서 죄를 지어 변방으로 쫓겨나 병사가 된 자들에게 성고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있으니, 이는 하늘이 한나라를 돕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초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쉽게 취할 수 있을 때인데, 한나라가 도리어 물러나는 것은 스스로 좋은 기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64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역생 · 육고 열전> 중에서

 

또한 사마천의 책에는 정치와 외교와 군사뿐만 아니라 '경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화식 열전>이다. 화식 열전의 핵심 사상 또한 '입고 먹는 것이 다스림의 근원이다'라는 것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극히 잘 다르려지는 시대는 이웃 나라끼리 바라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은 제각기 자신들의 음식을 달게 먹고, 자기 나라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자기 나라의 습속을 편히 여기고, 자신들의 일을 즐기며,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837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화식 열전> 중에서

 

 

태사공(사마천을 말함)은 말한다.

 

"신농씨 이전의 일에 대해 나는 알지 못한다. 『시경』과 『서경』에서 말하는 우나 하나라 이래의 것을 보면 귀와 눈은 아름다운 소리와 아름다운 모습을 한껏 즐기려 하고, 입은 소와 양 따위의 좋은 맛을 다 보려 하며, 몸은 편하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마음은 권세와 유능하다는 영예를 자랑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풍속은 백성의 마음속까지 파고든 지 이미 오래여서 미묘한 이론을 가지고 집집마다 깨우치려 해도 도저히 교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이용하여 이끄는 것이며, 그 다음은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백성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고, 가장 정치를 못하는 것은 백성과 다투는 것이다."(837∼838쪽)

 

 - 사마천, 『사기 열전_2』, <화식 열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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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간축국서(諫逐國書)
    from Value Investing 2019-08-25 16:58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간축객서[諫逐客書]를 빗대어 '간축국서'라는 제목을 달아봤다. 온통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법무장관 후보자인 조국 전 수석을 이제는 과감하게 물리치고 보다 널리 새로운 인재를 구하라는 철없이 순진한(?) 바램으로 써 본 글이다.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중국 진시황 시대에 활약했던 승상 이사가 쓴 명문장이다. 왕에게 올리는 건의를 담은 서간문 형식의 상서上書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역사는
 
 
 

 

가장 좋은 직무는 강제가 가장 적은 직무이다. 예지가 자기 힘에 맞춰서 욕망을 조절해 주는 자들에게는 그 예지가 얼마나 좋은 일을 해 주는 것일까! 그보다 더 유용한 지식은 없다. 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늘 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해야 한다.

 - 몽테뉴

 

 * * *

4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이벤트가 있었다.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찾아봤다. 그때와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당신과 알라딘에 관한 16가지 기록>

https://www.aladin.co.kr/events/eventbook.aspx?pn=150701_16th_records&custno=642151

 

 

알라딘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독서 활동에 대한 칼 같은 통계'를 자주 보여준다는 점이다. 잊을 만하면 요술램프에서 기어 나와 '결코 잊지는 말라'고 애써 우리에게 알려준다. 램프를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게 상술임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기꺼이 그 '순위표'를 들여다보며 즐거워하거나 혹은 실망한다. 설마 거기에 분노하는 사람들까지야 없으리라 믿고 하는 얘기다.

'책읽기'를 둘러싼 제반 활동에 대한 '종합 명세서'는 아무래도 연말이 가장 알찬(?) 듯하다. 엠블럼도 따라 붙고. 그렇다고 알라딘의 생일날에 슬며시 내미는 한여름 중간 명세서가 그리 허접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이 되기도 전에 뜬금없이 펼쳐보게 된 '중간 정산 내역'이 무려 13개 항목에 이른다. 그 가운데 내게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항목 몇 가지만 '나'를 기준으로 간략히 살펴보고 싶다.


 

 

①  891권, 초등학교 교실 250개?

 

 

891권의 책으로 어떻게 초등학교 교실 250개를 채울 수 있다는 건지 솔직히 이해가 좀 안 된다. 책의 낱장을 모두 펼쳐서 교실 바닥을 빈틈없이 이어 붙여서 채운다는 가정일까.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책을 낱장으로 분해한다는 가정부터가 너무 비현실적이다. 아무튼, 4년 전에는 책의 권수와 함께 합산 페이지 숫자까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번엔 그런 중요한 정보가 빠져서 조금 아쉽다.

 

 

대략 2003년에 알라딘에 둥지를 튼 셈 치고는 그리 많은 책을 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사들인 책을 모조리 다 읽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름대로는 책을 사는 데 꽤나 신중한 편이어서 '읽지도 않을 책'을 마구잡이로 사들인 경우는 거의 없었던 듯하다.(4년 전에는 구매한 책들의 평균 쪽수가 412쪽라는 점이 유난히 눈에 띄었었다.)

 

 

② 12,325,340원, 15,393째

 

 

 

4년 전에는 이랬다. 4년 동안 400만 원 가까이 추가로 지출했는데, 전체 순위는 대폭 하락했다.

 

 


책을 사들인 금액이 '많다'는 생각은 여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늘 적으면 적었지 많다는 쪽으로는 좀처럼 생각이 미치지 않는 것이 책에 대해 지출하는 비용이라 여긴다. 그러니 저 금액이 내게 무슨 특별한 느낌을 줄 리도 없다. 그런데 15,393번째라는 숫자에 대해서는 묘한 감정이 생겨난다. 누군가는 1번째(전국 수석?)일 테고, 또 분명 어느 누군가는 50,000번째 혹은 100,000번째일 텐데, 각자 자신의 '순위'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궁금하다. 나는? 글쎄? 이제는 순위에 무덤덤해진 나이가 된 걸까? 아무런 감흥이 없다.


③ 북플 마니아 

 

 

4년 전에는 이랬다. 4년 전에 비해 서양고전문학에서 조금 더 올라섰고, 서양철학에서 여러 단계 올라선 점이 눈에 들어온다. 서양고전사상, 교양 인문학, 영미소설에서 마니아 지수가 많이 향상된 점도 나에겐 이채롭다.

 

 

 

 


④ 80세까지 540권

 

 

4년 전에는 이랬다. 80세까지 1,590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던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가 인심이 매우 박해졌나 보다. 아니면 나의 독서 활동이 4년 동안에 현저하게 둔화되었거나. 어쩄든 감소폭이 매우 크다!

 


나는 대략 앞으로 (남은 여생 동안) 500권의 책도 읽기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굳이 자세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보다도 '독서 의욕'이 차츰 떨어질 테고, 언젠가는 눈도 침침해 질 게 뻔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계속 책을 읽는다면 아직도(!) 540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다니! 여전히 희망적이다. 아직도 너무 늦지는 않았구나, 앞으로 죽기 전까지 '이름만 들었던' 숱한 명저들을 좀 더 섭렵해 보자, 이런 생각부터 앞선다. 알라딘이 아니라면 쉽게 내밀 수 없는 '잔존 독서량 예측'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은 매번 뻔한 데도 이렇게 불쑥 내미는 명세서가 매번 궁금하니 나 원 참...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은 『고백록』의 어느 중요한 단락에서 두 가지 방식의 독서법-소리를 내는 방법과 소리를 내지 않는 방법-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화가 난 나머지, 또 자신의 과거 죄에 분노를 느끼면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그때까지 자신의 여름 정원에서 (큰 소리로) 함께 책을 읽고 있던 친구 알리피우스 곁을 빠져 나와 무화과 나무 밑으로 몸을 던져 흐느껴 울었다. 바로 그때 근처의 어느 집에서 어린이(소년인지 소녀인지, 그는 밝히지 않았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노래의 후렴이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였다. 그 노랫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 믿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리피우스가 아직도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곳으로 다시 달려가 미처 다 읽지 못했던 바울의 『사도행전』한 권을 집어들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그 책을 집어 펼친 뒤 시선이 가장 먼저 닿은 첫 부분을 소리내지 않고 읽었다"고 말한다. 그가 소리내지 않고 읽은 단락은 로마서 13장으로, "육신을 위해 양식을 준비하지 말고 그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갑옷처럼' 걸쳐라"라는 훈계였다. 혼비백산한 그는 문장의 끝에 이른다. '믿음의 빛'이 그의 가슴에 충만하고 '회의의 어둠'은 말끔히 걷힌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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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7-02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순위에는 관심이 없으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집중해서 꽤 두꺼운 책을 읽었는데, 며칠 전 숙제 하나를 끝내서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활자들이 좀 더 잘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마음˝ 아닐까 싶네요. 저마다 책을 읽는 까닭은 다르겠지만 그 행위가 각자의 의미로 남았으면 그걸로 되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

oren 2019-07-02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초창기에는 서재지수라든가, 즐겨찾기 등록 숫자, 심지어 일일 방문자수 등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던 듯한데, 이제는 알라딘에서 보여주는 각종 통계에 대해서도 갈수록 무덤덤해졌음을 확실히 느끼게 되네요. 어느덧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쑥스러울 지경인데, 마침 4년 전에 써 놓은 글이 있어서, 이번에 새롭게 바뀐 그림 몇 개만 더 얹어보았답니다.^^

이제는 알라딘에 적립금도 꽤나 쌓여 있는데(145,170원) 무슨 책을 사야 좋을지 계속 망설이기만 하고 선뜻 사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반드시 읽을 책들‘만 골라서 사야겠다는 마음만 앞서네요.^^

겨울호랑이 2019-07-03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알라딘의 독서 통계 데이터를 보면서 ‘과연 독서를 잘 했나?‘라는 물음을 가졌습니다. 숫자 이면에 나타나지 않는 독서의 깊이를 얼마만큼 가져갔나 생각하면 부족함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한 걸음씩 깊이 있게 책을 읽으시는 oren님께 많이 배웁니다^^:)

oren 2019-07-03 01:03   좋아요 1 | URL
사람들마다 독서의 목적도 제각각이고 취향이나 성격 또한 제각각이니만큼 ‘독서 활동에 대한 각자의 알라딘 독서 통계‘ 또한 천차만별로 나타나리라 능히 짐작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도 미리 ‘몽테뉴의 글‘을 인용하면서 강조했듯이(소크라테스가 입버릇처럼 늘 하던 ‘자기 힘에 맞게‘라는 말은 대단히 알찬 말이다. 우리 욕망을 가장 쉽고 가까운 것으로 설정하여 거기에 멈추게 해야 한다.) 그저 제 힘에 맞게 책을 읽을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독서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를 두고 가치판단을 내리기는 꽤나 까다로운 문제로도 여겨지고요.

엄청나게 많은, 그리고 엄청나게 좋은 책들을 엄청나게 깊게 읽었고, 또 그렇게 읽은 책들을 엄청나게 풍부하고도 재치있게 글로 써 낸 몽테뉴가 ‘자기 힘에 맞게‘를 유달리 강조하는 걸 보면, 각자에게 딸린 ‘자기 힘‘이라는 것도 엄청나게 다르구나 싶은 생각도 하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님께서 읽으시는 책들의 독특한 넓이와 깊이를 보노라면 저는 늘 겨울호랑이 님께서 갖고 계신 ‘자기 힘‘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알고 놀라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19-07-03 08:53   좋아요 1 | URL
독서를 할 때마다 오히려 늘어나는 읽어야할 목록에 때로는 질식할 것 같지만, oren님 말씀을 듣고 보니 자신의 보폭에 맞게 꾸준히 가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9-07-03 12:35   좋아요 1 | URL
책을 읽는 동안에 더욱 더 많은 책들을 만나고 그런 책들을 탐하는 건 먹을수록 더욱 더 많은 식욕을 느끼는 에뤼식톤을 닮았다고도 보여집니다. 그래서 현자들이 말한 대로 ‘자기 힘에 맞게‘ 읽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도 보여지고요. 책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자칫 익사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긴 있더라구요. ㅎㅎ
* * *
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많은 진리가 거대한 바다처럼 내 앞에 일렁이고 있다.(아이작 뉴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