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0년도 시간의 흐름 저 편으로 넘어갔다.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어느 한 해인들 격동 없이 잠잠하게 지나간 때가 있었으랴만, 2020년 한 해를 둘러보면 전인류에게 유난히 힘든 시기였음에 틀림없을 듯하다. 어느 날 소리 없이 번지기 시작한 괴질 하나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드넓은 지역으로 빠르게 번져 나가고, 사람들의 존재 방식들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 그 누가 쉽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삶을 극적으로 뒤바꿔 놓았으니, 이름하여 언택트 사회의 도래다. 어느 순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었고, 똑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야만 성립 가능한 활동이나 비즈니스는 극적으로 축소된 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활동들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똑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기반 위에서 이뤄지던 수많은 활동들이 랜선으로 연결된 가상의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학교 수업은 물론, 종교 활동, 취미 생활, 운동 까지도 학교나 교회나 운동장이 아니라 랜선으로 연결된 동영상 앞에서 이뤄졌다. 사람들이 모이는 게 필수불가결한 수많은 활동들이 강력하게 억제되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물론, 대규모 관중이나 관객을 필요로 하는 각종 문화공연이나 스포츠 활동들이 극도로 제약되었고, 수많은 종류의 '모임 비즈니스'는 한 마디로 폭망했다. 좌우지간 모이면 위험하고 흩어져야 안전했다! 먼지 때문에 가끔씩 쓰던 마스크가 생존에 필수적인 아이템으로 졸지에 격상되었다.


갑작스레 시작된 언택트 시대에도 사람들은 발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무서운 속도로 이용자를 끌어모으던 유튜브 플랫폼은 코로나의 확산 덕분에 비약적으로 팽창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물론, 필라테스 강사, 그림 선생님, 음악 선생님, 심지어 과외를 하는 대학생들까지도 유튜브로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직업을 잃어버린 관광 가이드까지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엘빈 토플러가 『부의 미래』에서 '유달리 느린 속도로' 변화한다고 꼬집은 학교조차도 유튜브에 의지하는 마당인데, 독서 활동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많은 작가, 수필가, 시인들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평범한 일반 독자들도 블로그 활동에서 벗어나 동영상을 만들어 채널에 올리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유튜브 채널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작할 무렵만 하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현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때였다. 채널을 만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러스가 창월하기 시작했고, 언택트 시대를 맞아 유튜브 이용자들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 같은 초보 유튜버는 그런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할 아무런 비전도, 능력도, 기반도 없었다. 그저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책 소개 동영상을 꾸역꾸역 만들어 올려봤다. 꽤 오랫동안 설비투자는 거의 없었다. 5년 전부터 쓰던 컴퓨터도 그대로였고, 녹음장비라고는 친구 녀석이 쓰던 1만 원짜리 핀 마이크가 주무기(!) 였다. 동영상 녹화 프로그램과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공짜' 아니면 최대한 저렴한 걸로 '1년 이용권'을 샀다. 장차 유튜브 활동을 얼마나 오래 할 지도 몰랐고, 언제 그만둘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시중엔 그런 말이 떠돌았다.


"유튜브를 시작하는 사람이 100명이면, 그만두는 사람은 150명이다."


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는 데 조금씩 재미를 붙였지만, 영상 제작과 편집에는 생각보다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었다. 알라딘에 글을 쓰는 것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영상 제작을 위해 별도로 대본을 쓰는 작업이 전체 작업 과정의 1할 정도이니 영상 제작은 똑같은 분량의 글쓰기에 비해 열 배나 힘든 작업이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알라딘에서는 글을 하나 올리더라도 적당한 피드백만 있으면 그걸로 사실상(!) 끝이다. 꾸준한 조회수와 좋아요와 댓글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튜브 영상 올리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동영상을 하나 올리면 그때부터 조회수, 좋아요, 구독, 댓글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잔뜩 기대했던 동영상인데도 조회수가 부진하면 허탈감이 엄습한다. 사나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구독자가 1도 늘어나지 않을 땐 심각한 좌절감이 밀려든다. 세상에! +1이 그토록 어마어마한 숫자인지도 예전엔 미처 몰랐고, -1이 그토록 아픔을 주는 숫자인지도 처음 알았다.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아픔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는 사이에 어느새 1년이 흘렀고, 이제야 겨우 '광고수익'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록 올린 영상의 갯수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구독자수 / 채널 조회수 / 시청시간 등등이 두루 부족하지만, 유튜브를 시작한 보람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유튜브 책소개 영상 만들기에 몰두하다 보니 당연히 알라딘에 글쓰는 일은 뒷전이다. 여러 해 동안 받아왔던 <서재의 달인> 엠블럼조차도 이젠 관심밖이 되었다. 이제는 알라딘 대신 유튜브에서 이런 메일을 보내온다. 알라딘에서 꽤나 오랫동안 접해왔던 익숙한 스타일과 닮아 있어서 깜짝 놀랐다!


북트래블 Book travel님을 위한 2020년 결산








유튜브로부터 뜻밖의 이메일을 받은 날짜는 12월 12일이었다. 사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잘것 없는 성과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으니 하필 이 무렵에 올린 영상 하나가 부웅~~ 떴다. 영상 하나가 3주 만에 61,676조회수에 시청시간 1.2만을 기록한 것이다. 이 맛에 유튜브를 하나 보다...






그 덕분에 구독자수도 2,719명까지 급증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tbZg9t1yZ2THcPuf3SinHg



지난 1년 동안의 조회수도 부쩍 늘어났다...





내 동영상을 시청하는 지역도 차츰 넓어지고 있다!




가장 고무적인 건 아무래도 '광고수입'이 아닐까 싶다!

하루에도 몇 권의 책을 구입할 만큼 쑥쑥 늘어나고 있으니...





1976년에 타계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라디오 방송"을 두고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을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통찰한 적이 있었다.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


거리를 없앰은 거리를,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의 멂을 사라지게 함을, 가까워지게 함을 말한다.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거리를 없애며 존재한다. 그는 그가 무엇인 그 존재로서 그때마다 존재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해준다. 거리를 없앰은 멂을 발견한다. 이 멂은 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에 대한 범주적 규정이다. 그에 반해서 거리를 없앰은 실존범주로서 확고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도대체 존재자가 현존재에게 그것의 멂이 발견되는 한에서만 세계내부적인 존재자 자체에서 다른 것과 관련되어서 "거리"와 간격이 접근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존재자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것의 존재양식상 거리를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거리를 없앰에서 발견되는 측정 가능한 간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거리없앰은 우선 대개 둘러보는 가깝게 함, 조달함으로서의 가까이 가져옴, 예비해놓음, 손안에 가짐이다. 그런데 존재자를 순수하게 인식하며 발견하는 특정한 방식들도 가깝게 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존재에는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놓여 있다.  우리가 오늘날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속도상승은 멂을 극복하도록 몰아세운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과 함께 현존재는 오늘날 일상적 주위세계의 확장과 파괴라는 방법으로써 그것의 현존재의 의미를 아직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의 거리를 없애고 있다. (149쪽)


 -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의 표현대로, 오늘날 우리가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랜선 활동들도 결국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고안해 낸 필연적인 행동양식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이런 양식들을 더욱 빠른 속도로 몰아세우고, 일상적인 주변삶을 가차없이 파괴하고 확장시켰을 뿐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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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1-01 1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oren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롭게 유튜브에서 좋은 성과를 얻으셨군요. 내년에도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oren 2021-01-01 19:30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요!!
유튜브 채널은 아직도 밑바닥을 헤매고 있습니다요.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하다 보면 차츰 나아지리라 믿고 있습니다요.

김형수 2021-01-12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렌님
알라딘과 유튜브에서의 활발한 활동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새해에도 열정적인 북여행에 동참하겠습니다.
제가 드릴 것은 구독 좋아요..공유입니다만 그래도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코로나가 조기 종식되기를 기원합니다.

oren 2021-01-12 21:34   좋아요 0 | URL
김형수 님, 반갑습니다.^^
새헤에 들어서도 더 좋은 책 소개 동영상 열심히 만들어 보겠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너무 구려서,
새로운 편집 프로그램인 <프리미어 프로>로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동영상 강의를 듣고 실습해 보고 있습니다.
머잖아 새로운 편집 프로그램으로 만든 쌈빡한 영상으로 만나뵐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구독, 좋아요, 응원댓글까지..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발자크의 대표작 『고리오 영감』을 소개합니다.

 

"나폴레옹이 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펜으로 정복하겠다." 이 말은 젊의 시절의 발자크가 나폴레옹의 초상화 밑에다 연필로 써 넣은 다짐이라고 하지요. 이런 결심에 걸맞게 그는 20여 년 동안 작품을 쓰고, 쓰고, 또 쓰다가 결국 51세에 과로로 죽고 말았다고 하지요. 그는 하루에 열네 시간에서 열여덟 시간을 일했다고 하는데, 20여 년 동안에 쓴 작품이 총 350권이 넘는다고 합니다.

 

발자크는 당대의 프랑스 사회에 대하여 거대한 벽화를 그리고 싶어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내 머릿속에 19세기의 사회가 들어 있소"

 

1834년에 발자크가 한스카 부인에게 보낸 편지 속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을 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연애를 하느라 엄청난 정력을 소진했고, 별 사업수완도 없으면서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느라 굉장히 많은 빚을 진 채 평생을 경제적 압박 속에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돈 문제'에 특출난 관심을 보인 작가였습니다. 발자크 이전에는 그 어떤 작가들도 그처럼 돈의 세계를 잘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까지도 현대 경제경영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지요.

 

그는 경제적인 궁핍 때문에 '집필 환경'이 몹시 열악했지만 자신의 구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 희극』이라는 거대한 벽화 속에 「풍속 연구」,「철학적 연구」,「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걸쳐서 무려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어쨌든 그는 당초의 계획을 완수하지는 못했으나 무려 91편에 달하는 작품들을 써냈습니다.

 

'한 세대의 살아 있는 벽화의 연속성'을 소설로 그려내고자 열망했던 작가는 마침내 '인물 재등장 기법'이라는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이 기법을 평생 동안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도대체 얼마쯤이나 될까요? 대략 2,000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세익스피어가 37편의 희곡 작품을 통해 대략 1,100명의 인물을 창작했다고 하는데 발자크는 그보다 한 술 더 뜬 셈이었지요. 그런데 애당초 발자크가 구상했던 인물은 무려 4,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작가의 머리속이 어떻게 구성되었길래 그 많은 인물들을 창작하고 소설에 녹여낼 생각을 했는지 기가 막힐 정도이지요.

 

발자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숫자를 세다가 세월 다 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이 애쓴 결과만 보더라도 흥미롭습니다.

『인간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개 2,000여 명이 된다. 그 가운데에서 460명이 75편의 작품들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한편 75편 가운데에서 36편의 소설은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18편은 파리와 지방을, 21편은 파리를 완전히 벗어나서 지방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무대로 삼고 있다. 또한 460명 가운데 167명은 직업이 없다. 이들 중에서 55명은 귀족 출신이거나 신사이며, 62명은 귀족 출신의 부인들이고, 나머지 50명은 부르주아 출신 부인들이다. 다른 293명의 직업은 다양하다. 공무원, 법률가, 군인, 교회에 관계하는 사람, 사업가, 예술가 등이다.(400-401쪽)

 

프랑스 문학에서 발자크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문학사가들의 관심사일 뿐 평범한 독자들한테까지 흥미로운 주제는 아닐 듯합니다. 그러나 그가 많은 작가들로부터 실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그는 몇몇 저명한 작가들로부터 '엉터리 작가'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으며, 프루스트와 같은 작가로부터는 심지어 프랑스어를 더럽힌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저질 작가'라는 오명을 씌운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살아 남았습니다. 『인간 희극』의 서문에서 미리 밝혔던 '나를 공평하게 평가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조국에서 홀대받은 그는 도리어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독일, 헝가리에서 훨씬 더 나은 평가와 존경을 받습니다. 발자크만큼 예리하고도 능숙하게, 객관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떠오르는 부르주아 사회'를 그려낸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는 줄곧 예술가적 신념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발가벗겨서 독자들에게 당차게 들이댔고, 그런 진실성과 역사성이 끊임없이 독자들을 매혹시켰습니다.

 

문학계의 나폴레옹이 되려고 했던 그는 어쨌든 '고상한 문학 풍조'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꾀했으나 '황제'에 오를 만큼의 위엄과는 사뭇 동떨어진 인물이었습니다. 무한히 샘솟는 풍요로운 상상력 때문에 '작품의 구성이나 플롯의 정연한 전개'는 너무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고, 지나치게 꾸며내고 과장하는 습관 탓에 '자제력'을 발휘하여 우아하고 재치있는 솜씨를 부려야 마땅할 장면에서도 허풍을 치고 속임수를 부린다는 점 때문에 '그는 남에게 학자나 철학가의 인상을 보이려고 하는 순간에 구역질나는 사기꾼이 된다'(플로베르)는 혹평까지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없었더라면 도대체 누가 당대의 사회를 구성했던 인물들을 그토록 익살맞고 재치있으면서도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게 그려낼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는 '소설을 쓴 셰익스피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묘사의 달인'이었습니다.

 

발자크는 작가 자신이 남들로부터 '연구 대상'이 될 만큼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글쓰는 일 말고도 수많은 사업을 벌였지만 판판이 망하고 큰 빚을 졌습니다. 그 때문에 평생 '돈 문제'에 시달렸지요.그는 '돈' 때문에라도 끊임없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열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살았던 작가도 드물었습니다. 걸출한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남긴 많은 평전 가운데서도 『발자크 평전』이 유독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 또한 그의 삶이 그만큼 특출난 때문이었습니다. 작가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고리오 영감』얘기로 넘어 가지요. 

 

『고리오 영감』은 '고전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돈키호테』를 읽을 때처럼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희극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이 소설의 주된 흥미는 '인생의 출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늙은 '고리오 영감'과 '인생의 입구'에서 점점 사회 한가운데로 깊숙하게 진입하는 전도유망한 '라스티냐크 학생' 사이의 선명한 대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과부 보케르가 운영하는 파리의 고급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하지요. 이들 말고도 그 하숙집엔 하숙인이 다섯이나 더 있습니다. 그들은 장차 어떤 식으로든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하숙생들보다 훨씬 더 결정적으로 고리오 영감과 라스티냐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은 바로 고리오 영감이 애지중지 키워서 귀족사회로 편입시킨 두 딸이지요.

 

발자크는 이 소설을 쓸 때 '창작 노트'에 미리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하지요.

 

"의리 있는 사나이, 하숙집, 6백 프랑의 연금, 5만 프랑의 연금을 가진 딸들을 위해 스스로 한푼 없는 빈털터리가 된 남자, 개처럼 죽어가는 그 모습"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비교적 단촐하고, 장소 또한 파리의 어느 골목 하숙집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좁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몹시 재미있으면서도 불멸의 고전으로 올라선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건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발자크 특유의 놀라운 입담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당시의 사회상'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아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이지요. 특히 '돈 문제'에 관한 한 그만큼 생생하게 그려낼 작가는 찾기 어렵지요.

 

고리오 영감이 두 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퍼붓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입니다.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꼭 닮았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다 겪은 끝에 제면업자로 크게 성공해서 번 상당한 재산을 두 딸의 결혼지참금으로 다 쏟아 붓지요. 자신의 노후대책이라고 해봐야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연금이 고작이었습니다. 두 딸을 시집 보내고 아내와 사별한 그는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하숙방에서 생활하는 외롭고 불쌍한 노인입니다. 그런 그에게 화려한 몸치장을 한 젊은 귀부인이 가끔씩 몰래 드나들지요. 같은 하숙집에 사는 하숙생들은 그 노인네가 '돈'을 주고 그 여자들을 불러들인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그녀들은 파리 사교계에서도 알아주는 백작 부인과 은행가의 부인이자 영감의 사랑하는 두 딸이었습니다. 그녀들은 화려한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남편 말고 따로 사귀는 정부(情夫)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지요. 딸들은 자신의 정부가 떠안은 거액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서 친정 아버지인 고리오 영감에게 끊임없이 손을 벌립니다. 영감은 그런 두 딸을 위해 은식기마저 우그러뜨려 내다팔아 돈을 보태주고 종신연금을 저당잡혀 도와주지요.

 

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걸 희생하고 아낌없이 내주는 부성애(父性愛)가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고리오 영감은 끝내 빈털털이 신세가 되어 '두 딸 조차 외면한 상태로' 쓸쓸하게 죽게 되지만 아주 잠깐 딸들을 원망할 뿐이지요. 두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 못지않게 감동적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리어 왕은 자신의 권력과 영지를 아양 떠는 두 딸에게 내주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델리아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매몰차게 대하지요. 그런데 막대한 영지를 물려받은 두 딸은 이내 아버지를 배신하고 내쫒지만 정작 막내딸 코델리아는 불쌍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두 딸에게 버림받아 황야에 버려지다시피 한 리어 왕은 일견 고리오 영감과 닮았습니다.

 

그러나 리어 왕의 비극이 막내딸 코델리아의 죽음에 이르러 절정과 동시에 파국에 이르렀다면, 고리오 영감은 스스로 아낌없이 두 딸들을 위해 도움을 주면서도, 그런 도움을 줄 능력이 고갈되는 걸 도리어 안타까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한다는 점에서 리어 왕 보다는 훨씬 덜 비극적입니다. 그러나 두 딸들이 '파리 사교계'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났던 '익숙한 패턴'에 따라 '파멸'로 치닫는 동안, 고리오 영감의 삶 또한 서서히 막바지에 이르는데, 이 과정에서 두 딸이 끝내 아버지의 마지막 간절한 소원인 '죽기 전에 꼭 한 번' 두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을 끝끝내 외면한다는 점에서는 비정하기만 합니다.

 

백작 부인과 남작 부인인 두 딸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인 '죽기 전에 꼭 한 번 봤으면'하는 희망조차도 외면한 이유 또한 너무나 사소하면서도 어이없는 이유들일 뿐이었습니다. 큰 딸은 정부(情夫)와 함께 저지른 대형 사고가 들통나는 바람에 남편으로부터 '외부인 접견 금지'를 당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 딸은 자신의 크나큰 목표였던 '더 큰 사교모임'에 진출하기 위해 기필코 그날 밤 초대장을 받은 '무도회'에 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리오 영감과 두 딸과의 관계가 이 소설의 밑바닥을 흐르는 주조저음(主調低音)이라면, 시골 출신의 가난한 대학생인 라스티냐크는 이제 막 인생의 출발점에 서서 꿈에 부풀어 '파리 생활'을 배우느라 몹시 바쁜 학생이라는 점에서 고리오 영감과는 사뭇 대조적인 울림을 줍니다. 시골에서 얼마 안 되는 밭뙈기를 붙이는 부모님이 보내 주는 빠듯한 돈으로는 보케르 아줌마에게 하숙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지요. 훗날의 '성공'을 위해 지금 당장은 밤을 새워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지만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모습을 슬쩍 엿보게 된 이 청년은 그만 마음이 세차게 흔들려 곧장 그리로 뛰어들고픈 충동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라스티냐크는 온갖 수소문을 다해 집안의 친척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파리의 부유한 주택가에 사는 먼 친척인 '자작 부인'에게 찾아가지요. 그는 대저택에 출입할 때 마땅히 타고 가야 할 '이륜 마차'는 커녕, 마부에게 줄 몇 푼 안 되는 '택시비'마저도 아껴야 할 형편입니다. 사교계에 드나들 때 갖춰야 할 맞춤복이나 구두나 장갑을 마련할 비용은 꿈도 꾸기 어려웠지요. 그래서 그는 고향의 부모님 앞으로 '눈물 겨운' 편지를 씁니다. 이유는 제발 묻지 마시고 최대한으로 돈을 마련해서 보내주시라고 말이지요. 나중에 기필코 성공해서 꼭 보답하겠다는 철석같은 약속을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마침내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으로부터 쥐어짜낸 거금 1,550프랑이 그의 주머니에 미끄러져 떨어지자 그가 보인 반응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발자크의 천재적 재능은 바로 이런 곳에서 유감없이 빛나지요.

 

그의 내부에서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즉 그는 모든 것을 원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제멋대로 모든 것을 갈망했다. 그는 쾌활하고 너그러우며 감정이 풍부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는 날개가 없던 새가 크게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뼈다귀 하나를 훔쳐낸 개처럼, 돈 없는 이 학생은 한 가닥의 쾌락을 꽉 붙잡았다. ……

 

파리 전부가 그의 것이었다. 모든 게 빛나고 번쩍이며 이글거리면서 불타는 나이이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간에 젊은 사람 아니고는 아무도 맛볼 수 없는 기쁨과 힘이 넘쳐흐르는 나이!  빛과 격렬한 격정마저도 모든 기쁨을 열 배로 만들어줄 수 있는 나이! 센 강 왼쪽 언덕배기와 생 자크 거리로부터 생 페르 거리 사이를 지나다녀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 파리 여성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사랑을 구걸하려고 달려올 텐데!> (133∼134쪽)

 

청년 라스티냐크가 '인생의 출발점'에서 겪는 고뇌와 방황은 시골에서 도회지로 '청운의 꿈'을 안고 진학했던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젊은 날의 초상'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읽었으니까요. 시골에서 한 해 동안 땀흘려 농사 지어서 버는 돈이라는 건 전세계 어디에서나 늘 액수가 빤하지요. 그런 사정을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4년간 등록금 전액 면제'를 받고 대학을 다녔어도 '비밀 과외'를 해서라도 하숙비를 보태야만 했지요. 그런데 촌놈이 대도시 서울에 올라와 보니 과연 서울은 거대하고도 휘황찬란했었습니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상경한 첫날 저녁에 대뜸 '명동'으로 '시내 구경'을 나갔는데 롯데쇼핑센터에서 번쩍거리는 휘황찬란한 불빛만 봐도 정신이 아득했고, 명동 일대의 고층 빌딩들을 쳐다보느라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젖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가끔씩 영화를 보러 시내의 개봉관을 찾을라치면 초대형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돌비 사운드 시스템에 넋이 나갈 정도였지요. 어쩌다 시내에서 직접 보게 된 여배우들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잠시 과외를 했던 중학생 녀석의 집도 마침 커다란 대문에 정원이 딸린 저택이었습니다. 아이를 가르칠 때마다 항상 귀한 과일을 내주시던 학생의 어머님은 TV 연속극에서나 봐왔던 사모님 같았었지요. 8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그 집안이 아직도 국내에서 내노라 하는 재벌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소설 속의 또다른 주인공인 라스티냐크도 시골에서 상경하여 '파리 생활'을 익히느라 몹시 바빴습니다. 그가 머무는 하숙집엔 수백만 프랑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처녀인 빅토린 양도 있었지요. 그녀는 평소에 은근히 라스티냐크에게 호감어린 눈길을 자주 보내온 터였습니다. 보케르 아줌마네 하숙집에서 지내는 가장 독특한 인물인 보트랭이 어느 날 라스티냐크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합니다. 빅토린 양이 '수백만 프랑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그녀의 오빠를 제거해 줄 테니 나중에 그녀와 결혼해서 갑부가 되고 나면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지요. 라스티냐크는 보트랭의 제안에 몹시 마음이 흔들리지만 용케 자신의 신념이나 도덕관념을 지켜내면서 보트랭의 제안에 굴복하지 않고 견뎌냅니다. 보트랭이 제안의 말미에 라스티냐크에게 '한 수' 가르치는 기분으로 들려주는 '세상 사는 이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인간이란 전부냐 아니면 전무냐, 어느 한쪽이지. 단 푸아레라고 불릴 때는 전무이지. 그런 놈은 빈대 새끼처럼 짓이겨 놓지. 그야말로 납작해져 냄새를 풍기겠지. 하지만 인간도 자네를 닮은 경우에는 하나님이지. 이젠 인간 가죽을 쓴 기계가 아니고 아름다운 감정이 약동하는 하나의 무대라네. 그리고 나는 그런 감정으로만 살고 있네. 하지만 감정은 사상 속에 있는 세계가 아닐까? 고리오 영감을 보게나. 그의 두 딸은 노인에게 우주 전체이지. 그녀들은 실이지. 그 실로 노인은 만물에 파고들 수가 있지. 자, 그런데, 인간을 깊이 파고들어 가본 내겐 단 하나의 현실적 감정만이 존재하네. 즉 남자와 남자 사이의 우정이지. 」

 

보트랭의 '인생 강의'는 여러 날에 걸쳐 라스티냐크를 계속 흔들어 댑니다. 파리에서 출세하는 법, 좋은 자리가 오만 개밖에 없는 사정, 파리 사회를 이루는 계층 구조, 파리에 도사린 온갖 지옥 같은 함정들까지도 보트랭은 훤히 꿰고 있지요. 라스티냐크가 뛰어들고 싶은 백 가지 직업에서 재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열 명쯤 있다면 바로 그 사람들을 '도둑놈'으로 부른다는 말까지, 그의 강의는 참으로 친절한 데가 있었습니다.

 

이제 자네가 결론을 끌어내 보게! 인생이란 지금까지 얘기한 그대로야.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 나는 세상을 알고 있네.(149쪽)

 

다시 고리오 영감 이야기로 되돌아 오지요. 두 딸을 아낌없이 도와주다가 끝내 완전한 빈털털이가 된 노인의 장례를 치를 인물은 이제 라스티냐크 밖에는 없었습니다. 고리오 영감은 일가친척도 없이 해가 질 무렵에서야 간신히 페르 라셰즈의 묘지에 안장되지요. 아주 헐값으로 사들인 극빈자용 관을 덮으려고 흙을 몇 삽 퍼서 던지던 두 명의 매장꾼이 라스티냐크에게 돈을 요구했지만, 학생의 주머니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지요. 하숙집에서 영구차가 떠날 때부터 동행했던 사람이라고는 하숙집 심부름꾼인 크리스토프 밖에 없었지요. 라스티냐크는 그에게 일 프랑을 빌려 매장꾼에게 건네줍니다. 그는 너무나 슬퍼서 발작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지요. 그가 고리오 영감을 매장한 후 어둑어둑해진 묘지의 언덕에 올라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 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이 소설의 결말입니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제가 오래 전에 대학을 다니던 무렵이 불현듯 다시 떠올랐습니다. 1학년이었는지 2학년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하여튼 이맘때처럼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시골 고향에서 낮에는 농사일을 거들고 밤에는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맘껏 술을 마시며 놀던 방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기 위해 하루 온종일 걸리는 버스를 탔었더랬지요. 꾸벅꾸벅 졸다가 문득 눈을 떠 보니 어느새 거대한 도시가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한강을 따라 온갖 불빛들이 거대한 띠를 이루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시골 고향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저는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몸을 고쳐 앉았습니다.

 

"여기가 바로 서울이군,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군."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그때 속으로 떠올린 혼잣말 속에는 분명 '서울과 나와의 대결'이라는 뜻도 아예 없지는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읽다가 그토록 오래 전에 제가 직접 경험했던 젊은 날의 희미한 기억과 풍경과 다짐들을 되살려낼 줄 그 누가 알았을까요.

 

이것으로 『고리오 영감』에 대한 작품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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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TV를 별로 시청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미스터 트롯 열풍이 대단한 듯하다.

 

나와 거의 똑같은 날에 구독자 1,000명을 돌파한 어떤 유튜버 분은 <정동원의 인기 비결 3가지> 영상 하나가 대히트를 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구독자 8,000명을 돌파했다. 요즘 그 유튜버 분을 흉내내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 <신라의 달밤>을 부른 조명섭 씨를 소개하는 유튜버 분들도 부쩍 늘어났다. 고민고민 끝에 나도 하나 만들어봤다.

 

<막걸리 한 잔>, <찐이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노래로 오랜 세월 동안 겪었던 무명 가수의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린 가수 영탁이 마침 고교 후배여서, 그런 인연에 기대어 만들어본 영상이다.

 

이 영상이 업로드 하루 만에 조회수 1,000회를 가뿐하게 넘기는 걸 보면, 대중들의 인기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걸 절감한다. 동영상 내용 중에 모교를 너무 미화하는 듯한 내용이 담기는 바람에 '자뻑이 흠'이라는 댓글도 받았는데, 기분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봐도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게 보는 사물들도 남들이 보면 도리어 기분 나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 댓글에 공감한다는 댓글을 달아드렸다. 진짜로 공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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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6-25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영상을 재밌게 봤습니다. 이렇게 안동과 영탁 가수를 연결해서 잘 설명해 주신 오렌 님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네요.
굿 아이디어였어요. 안동의 자랑은 곧 우리나라의 자랑으로 들었습니다. 베리 굿!!! 입니당~~

oren 2020-06-29 16:37   좋아요 1 | URL
영상 재미있게 보셨나요?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에 비해 이런 영상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어요. 뜻밖에도,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 만들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네요. 지금도 조지 오웰의 <1984>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드는데, 힘들어 죽을 지경입니다요. ㅎㅎ
 

 

4년 전쯤에 우연히 발견한 글 한 편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붉은돼지 님께서 올리신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에 관한 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불현듯 아토스에 대한 기억들이 몇몇 떠올라, 아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이 책 저 책을 마구 뒤져봤더니 놀랍게도 무려 일곱 권에서 '아토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한 때는 그저 아토스가 무슨 자동차 이름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수다에 관하여』라는 책에도 아토스가 언급되어 있다. 사진에서는 그 책이 빠져있다.)

 

그 때 쓴 글을 바탕으로 아토스에 대한 영상을 하나 만들어봤다. 그런데 그 영상을 악전고투 끝에 다 만들고 나서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난 뒤 영상 공개 시간까지 예약해 둔 사이에, 저작권 침해 경고가 날라왔다. 자세히 알고 보니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주제가인 '조르바의 춤'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기껏 만들어 놓은 영상을 다시 해체하고 수정하는데 꼬박 하루가 더 걸렸다. 영화 《300》과 《제국의 부활》에 이어 《그리스인 조르바》로 영상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내 야무진 꿈은 저작권이라는 드높은 장벽 앞에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아직도 남아 있다. 유튜브 영상들을 조회해 보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그 멋진 장면과 음악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왜 하필 내가 만든 영상에 담은 2분 남짓한 영상만이 문제라는 것인가. 아무튼 그 영상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 여기서라도 다시 올려놓아야 겠다.

 

 

맨 처음 영상은 이렇다. 그 멋진 《조르바의 춤》과 음악이 등장해야 할 대목에 그게 안 나온다!

https://youtu.be/u-U19KvREPw

 

 

두 번째 영상은 '아토스'를 담은 수많은 영상 중에 하나 골라본 것이다.

 

세 번째 영상은 흑백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하이라이트다.

이토록 멋진 영상과 음악을 내 영상에 담지 못한 아쉬움이 참으로 크다.

 

 

네 번째 영상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소개하는 어느 북튜버의 최신 영상이다.

아직은 채널의 구독자수도 얼마 되지 않고 영상도 몇 개 없지만,

꼼꼼한 영상 제작과 똑 부러지는 나래이션 때문에 즐겨 찾는 채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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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필사하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필사하기 좋은 책들이 필사 노트와 함께 팔리기도 했었다. 나도 이미 오래 전부터 필사의 유익함을 체험한 터여서 내심 그런 분위기가 반가웠더랬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밑줄 하나 긋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게으른 태도인가. 또한 한 권의 책을 읽고 나서도 그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을 단 한 줄도 옮겨 쓰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심한 태도인가.

 

나는 책을 읽는 동안에 노트에 뭐라도 좀 끄적거려야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근사한 대학 노트를 마련하는 걸 무슨 낙으로 삼을 정도였다. 아래 사진만 봐도 그렇다. 이 노트는 군복무 시절에 PX에서 구입했는데, 합성수지 커버에 중간 중간에 색깔이 다른 컬러 내지도 딸려 있는 걸 보면 (병사 월급에) 돈푼깨나 줬던 듯하다.



이 노트를 보노라면 무슨 습작이라도 한 권 쓸 것처럼 자못 거창하게 어쩌구 저쩌구 장식을 해 놓았지만, 사실 그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 보면 별다른 건 없다. 그저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남긴 잡다한 흔적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그게 어디랴 싶긴 하다. 만약에 내가 이런 독서 노트조차 남겨 놓지 않았더라면 내가 까뮈를 1984년 9월 15일에 만났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또한 그해 9월에 읽었던 몽테뉴의 수상록이 내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알라딘 서재에 터를 잡고 이런 저런 리뷰나 페이퍼를 쓰기 시작했을 때에도 당연히(!) '독서 노트'를 새로 마련했었다. 그런데 그 때는 독서노트를 한꺼번에 좀 많이 샀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책을 읽겠노라 다짐했기 때문에 독서노트 몇 권쯤은 금방 채울 듯했고, 여러 해 동안 책을 읽자면 다량의 독서노트가 필요할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꺼번에 왕창 구입한 독서 노트를 쓴 지 여러 해가 지나자 차츰 독서 노트에 책 속의 내용을 옮겨쓰는 분량이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헀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독서 노트를 디지털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독서 노트도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불편해졌다. 책 속의 문장들을 독서 노트에 옮겨 적고, 그 문장들 사이로 내 생각을 마음껏 적어 넣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어느 정도 분량이 쌓이기 시작하니 도무지 '검색'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간신히 내가 원하는 문장을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일일이 다시 타이핑을 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습관화되었던 '아날로그 필사'도 차츰 '디지털 필사'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제서야 겨우 깨달은 사실이지만, 아날로그 독서 노트는 어느덧 구시대의 유물로 변했다. 한때는 이 노트 속에 담긴 내용들까지 몽땅 디지털화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새로운 책들도 읽어야 했고, 새롭게 읽은 책 속에 담긴 좋은 문장들도 부지런히 타이핑해서 갈무리하기 벅찼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해 왔던 독서 노트들도 차츰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기를! 또한 너희들을 불구덩이에 던져 넣을 일은 결코 없을 테니 너무 겁먹지도 말기를.





지난 연휴 동안에 <밑줄긋기와 필사에 대하여>라는 동영상을 하나 만들면서 그 동안 내가 필사에 힘을 기울였던 책들을 한꺼번에 불러 내서 책장 앞에 쌓아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발췌 필사를 마무리한 책이 대략 서른 여섯 권이고, 필사를 절반 혹은 1/3쯤 진행했던 책들도 열 권 남짓 되었다. 이 책들의 쪽수를 다 더해봤더니 무려 29,341쪽이나 되었다!(필사를 마친 책이 22,222쪽, 필사를 중도 포기한 책이 7,119쪽이었다.)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고 난 뒤에 유튜브 검색창에서 '필사'를 검색해 봤더니 의외로 필사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깜짝 놀랐다. 감성이 중요시되는 흐름 때문인지 펜으로 또박또박 써나가는 필사 영상이 의외로 어필하는 듯하다. 내가 독서 노트를 버리고 디지털 필사로 갈아탄 것이 도리어 시대 흐름에 역행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는 더이상 아날로그 필사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동영상 링크 주소는 https://youtu.be/PGOAnsodd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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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5-05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사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되는지는 몰라도 그래도 뭔가를 적으며 읽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은 벌써 제 기억에서 차이가 나더라구요^^
그 많은 기록의 산물이 oren님을 유투버로 이끌지않았나 생각됩니다^^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oren 2020-05-05 13:51   좋아요 1 | URL
필사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기 보다는 아날로그 필사에서 디지털 필사로 ‘진화‘했다고 보는 게 더 좋을 듯해요. 물론 ‘필사‘라는 말 그대로, 펜을 들고 종이에 꾹꾹 눌러 쓰는 행위야말로 진정한 필사가 맞겠지만, 베껴쓰기에 방점을 찍게 되면 타이핑해서 옮겨 적는 행위도 필사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요. 이 시대 최고의 독서가인 알베르토 망겔 역시 ‘디지털 필사‘를 강조했고요.

저는 오늘에서야 문득 ‘필사의 놀라운 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필사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표현력, 어휘력, 설득력‘ 등이 향상되었다는 걸 알았거든요. <필사 인생 12년>이라는 타이틀로 영상을 만든 김시현 작가님의 영상을 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저는 필사 경력이 17년씩이나 되니, 그 세월 동안 천재 작가들의 문장을 끊임없이 베끼고, 교정하면서 다시 읽고, 갈무리한 필사 내용을 수시로 꺼내 반복해서 읽고 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그런 능력들이 향상된 것일 테지요. 몽테뉴, 헨리 데이빗 소로우, 쇼펜하우어, 니체, 호메로스, 플루타르코스, 오비디우스, 키케로, 애덤 스미스, 세르반테스, 톨스토이, 베르그송 등등을 만난 것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인데, 그들의 문장을 베끼고 다시 읽고 하는 사이에 그들의 멋진 문장력까지도 알게 모르게 모방하게 되니, 필사만큼 좋은 독서법도 드물지 않나 생각합니다.

참고로, 김시현 작가님의 <필사 인생 12년> 동영상도 한번 살펴보세요~
https://youtu.be/G3WYhlO5_Bs

막시무스 2020-05-05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첩과 함께 백두산, 이집트 여행!
너무 인상적입니다! 이번 영상도 잘 보았고 많이 배웠어요!ㅎ 감사합니다!

oren 2020-05-05 13:48   좋아요 0 | URL
산행수첩에는 정말 많은 땀이 베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는 순간을 넘어 탁 트인 능선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행수첩‘을 꺼내 자그마한 기록을 남기는 기쁨을 쉽게 포기하진 못하겠더라구요.^^ 제 영상 애시청해 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5-06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뛰는 놈 위에 날으시는 분이십니당~~
저도 한때 노트에 열심히 필사했었는데... 요즘은 가끔 노트북으로 좋은 글을 옮겨 적습니다.
볼펜보다 자판이 편해서요. 그리고 오디오북을 애용하고 있어요.
오렌 님의 유튜브를 들을 때도 있어요. 눈이 피로하니 귀를 사용하게 되네요.
의외로 듣는 재미가 있어요. 여전히 종이책을 좋아합니다만...

오렌 님의 글씨체를 보니 주관이 뚜렷하고 의지가 강하고 바른생활 아저씨 같습니다. 제가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네요.
느낌이 그렇습니다. ㅋ

oren 2020-05-09 15:28   좋아요 1 | URL
페크 님께서도 필사를 좋아하시는 줄은 예전부터 잘 알고 았었지요.^^
책 속의 좋은 문장들을 정말 많이 알고 계시는 분 가운데 한 분이 페크 님이셨으니까요.
밑줄긋기와 필사는 어쩌면 <능동적인 독서>의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늘 해 왔던 숙제가 바로 ‘어디서 어디까지 베껴 오라‘는 거였으니까 말이지요.
제 글씨체는 정성들여 쓸 때는 봐줄 만하다 싶어도, 바쁘게 대충 쓰면 이내 흐트러지고 마는 듯해서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답니다. 잘 차려 입었던 옷도 벗어놓으면 꼴사납게 변하듯,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아무튼 제 글씨체도 좋게 봐주시고, 제 영상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페크 님~~

초록별 2020-05-10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유튜브 시청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블로그도 하시나요?

oren 2020-05-10 22: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초록별 님~
블로그는 알라딘 서재 블로그가 메인입니다.^^
네이버 블로그도 있긴 하지만,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있답니다.
https://blog.naver.com/ojcojj
유튜브에 올리는 제 영상 봐주셔서 늘 고맙습니다.^^

marine 2020-06-1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씨를 잘 못 써서 필사 대신 자판으로 치는데 문제는 손가락이 아프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어려운 책도 옮겨 적다 보면 이해가 확실히 잘 되는 것 같긴 한데 중요한 부분만 옮기는데도 시간이 너무 걸려 그 시간에 책을 더 읽는 게 나은가 늘 고민이 됩니다.

oren 2020-06-20 00:2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필사‘는 예로부터 아주 고된 작업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 고된 일을 통해서 뛰어난 작가의 문장들이 내 몸 속으로 조금씩 들어와 앉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