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좀 쓴다는 이들에게 ‘좋은 글의 요건’을 물으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습니다.
"작가의 삶과 세계관이 드러나야 하죠."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글이 좋습니다."
"글쓰기 목적을 달성하는 게 우선이죠."
이유는 간명합니다. 글쓰기 철학과 신념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죠. 일정한 경지에 오른 작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읍니다.
"글은 알면 알수록 복잡합니다. 작가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전 남보다 부지런히 읽고 열심히 쓸 뿐이죠!"
모범 답안입니다. 수능에서 수석을 차지한 학생이 “비법이 있느냐고요? 그냥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대답입니다. 하지만 진리에 가까운 얘기입니다. 품을 들이지 않고 잘 쓰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을 내려놓지 않아야 합니다.
1. 잘 선택하려면 잘 버려야 한다: 선택
불필요한 문장 성분,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본용언 뒤에 오는 보조용언 등은 잡동사니입니다. 군더더기죠. 군더더기는 ‘글쓰기의 적(敵)’입니다. 글의 논점을 흐리는 뿌연 안개와 같습니다. 군더더기는 멀쩡한 문장도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으로 만듭니다. 불필요한 성분과 비문이 많으면 독자는 문장을 곱씹느라 전체 맥락을 놓칩니다. 군더더기를 말끔하게 발라내야 메시지를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2. 글을 특별하게 대하는 의식: 제목
제목은 쉽게 말해 전체 내용의 압축입니다. 독자는 내용을 읽기 전에 제목을 읽습니다. 제목을 통해 내용을 유추하고, 주제와 흐름을 짐작합니다. 어떤 독자는 제목만 보고 글을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기도 하죠. 제목을 정할 땐 글을 관통하는 핵심 글귀를 추출하는 게 효과적입니다. 의문형 제목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딱 떨어지는 제목으로 강한 인상을 남겨도 좋습니다. 모순되는 단어를 맞세워 차이를 부각하거나 대구법 등을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테죠.
3. 칼이냐 검이냐 그것이 문제: 문체
술술 잘 읽히는 글이 있습니다. 그런 글은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읽어내려 가다 보면 '강약 중 강약' 같은 리듬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코디언 주름처럼, 주어와 서술어의 거리가 좁아졌다(단문) 넓어졌다(장문) 합니다. 단문과 장문을 적절히 혼용해서 탄력적인 문장을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어떤 비율로 섞어 쓰면 효과적일까요? 사실 이런 질문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판단은 당신 몫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내리는 판단이 당신의 문체(文體)를 좌우할 테죠.
4. 따라가는 길과 개척하는 길: 능동
우린 문장을 적을 때 습관적으로 피동문을 적곤 합니다. 피동 형식의 문장은 우리 언어생활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A 작가가 소설을 썼다'고 해도 될 것을 '그 소설은 A 작가에 의해 씌어졌다'는 식으로 적습니다. 필요한 곳에선 피동을 써야 하지만, 일정한 단락에서 빈번하게 피동문을 남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간결함이 생명인 보고서와 제안서를 피동문 위주로 작성하는 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입니다. 피동이 범람하면 글의 힘이 떨어집니다. 게다가 글쓴이의 의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담지 않고 ‘남 생각’만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글은 대개 독창성이 부족합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라는 비아냥을 피하기 어렵죠.
5. 낯선 길에서 색다른 여행을: 시작
첫 문장을 쓰는 행위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발을 딛는 것처럼 떨리는 일입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광활한 눈밭을 마음껏 뛰놀 수 있지만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작가와 기자도 힘 있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끙끙댑니다. 기자들은 기사 앞 부분에 리드(lead), 즉 첫 번째 문장을 적습니다. 취재를 통해 축적한 방대한 텍스트에서 곁가지를 쳐내고 핵심만 추려서 배치합니다.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핵심을 요약해서 서두에 제시하는 압축형, 의문형 문장을 제시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형, 관계자의 증언과 고백으로 생동감을 높이는 인용형 리드 등이 있죠.
6. 비우는 것은 곧 채우는 방법: 절제
"지옥으로 가는 길은 형용사로 포장돼 있다(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adjectives)."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한 말입니다. 명쾌한 지적입니다. 수식어가 문장에 이바지하지 않으면서 공간만 차지하는 경우가 더러 있죠. 명사와 동사가 나무의 든든한 뿌리라면, 형용사와 부사는 가지와 이파리입니다. 나무는 일정한 시기마다 잔가지를 잘라줘야 합니다. 말라비틀어진 줄기, 멋대로 뻗은 가지를 솎아내야 열매를 잘 맺고 튼실하게 자랍니다. 문장도 가지치기가 필수입니다. 특히 글쓰기 훈련을 시작하는 단계라면, 형용사와 부사를 줄이면서 문장의 근본인 명사와 동사 중심으로 쓰는 버릇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글은 포장이 아니라 알맹이로 승부해야 합니다.
7. 주제가 없으면 주체가 없다: 핵심
언론사에 입사한 수습기자는 주로 사회부에서 취재를 시작합니다. 경찰서 기자실 구들장 위에서 쪽잠을 청하며 취재와 글쓰기의 기본을 터득합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기사를 송고하면, 돌아오는 건 "야마가 없잖아"라는 선배의 불호령. 글에 핵심 주제가 없다는 겁니다. 참, '야마'라는 언론계 은어는'요지' 정도로 순화해서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글의 요지는 화살과 비슷합니다. 화살촉이 뭉툭하면 아무리 큰 화살을 날려도 과녁을 뚫을 수 없습니다. 독자의 머릿속에 '흐지부지' '두루뭉술' 같은 단어만 맴돈다면, 이는 작가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주제가 모호하거나 반대로 넘치는 글에서는 글을 쓴 주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글 속에 '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남의 글’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8. 서론과 본론과 결론은 잊자: 구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코끼리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고개를 내저으며 코끼리를 지우려 노력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이유는? 이미 코끼리라는 틀 안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글의 구조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편의 글=서론+본론+결론'이란 공식을 깨뜨리지 않으면 창의적인 글쓰기가 어렵습니다. 틀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얼개를 짜는 게 좋습니다. 문단을 구성하는 과정은 '퍼즐 맞추기 게임'과 닮았습니다. 둘 다 다양한 조각을 쉴 새 없이 조합해야 한다는 것. 울퉁불퉁한 퍼즐 조각을 조합하는 방법과 순서는 천차만별입니다. 단, 낯선 조각을 집어 드는 순간 머릿속으로 큰 그림을 그리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리할 테죠.
9. 글도 사람도 향기를 남긴다: 여운
좋은 글은 긴 여운을 남기는 법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가슴이 부풀고, 희망이 샘솟는 경우가 더러 있지 않습니까. 글을 마무리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우선, 마지막에서 내용을 추가하고 힘을 줘야 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힘을 준다는 건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한 번 더 강조하고 환기하는 걸 의미합니다. 야구에 빗대면, 있는 힘을 다해 강력한 돌직구를 날리는 거죠. 반면 작가가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기보다 독자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는 게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글을 아끼고 여운을 남긴다고 할까요. ‘뺄셈형 마무리’입니다. 영화의 '열린 결말'도 여기에 해당할 겁니다.
10. 글의 궤적은 곡선에 가깝다: 퇴고
퇴고는 나무를 발견하고 숲을 바라보는 행위인지도 모릅니다. 숲이라는 공간에서 예전에 심어놓은 나무를 찾으려면 사방을 샅샅이 뒤져야 합니다. 매끄럽지 못한 어절, 맞춤법과 표기법에 어긋나는 표현을 찾아 수정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죠. 반대로 숲의 생김새와 규모를 파악하려면 잠시 숲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일부가 아닌 전체를 조망(眺望)할 수 있습니다. 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글의 흐름과 구조를 검토할 때는 넓은 시각으로 글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숲 밖에서 숲을 관찰하듯 말입니다. 이때 원고와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좋습니다. 글을 마무리한 다음 곧바로 퇴고에 착수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냉정한 자세로 원고를 대하고 ‘맑은 판단’을 하는 거죠.
초고에서 퇴고로 가는 경로는 험난하고 치열합니다. 험로를 완주하려면, 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틈틈이 뒤를 돌아봐야 하죠. 어디 글만 그러할까요. 인생길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 무작정 앞만 보고 내달리는 건 그리 현명한 자세가 아닙니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지나온 길을 차분히 복기(復棋)하고 나아갈 방향을 다시 설정한 뒤 걸음을 떼야 합니다. 삶이 그리는 궤적도 곧은 직선이 아니라 둥근 곡선에 가깝습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좋은 문장은 평범한 사람의 노력으로 태어납니다. 누군가 "재능이 있어야 작가가 될 수 있나요?" 물으면, 전 이렇게 답해드릴 겁니다. "습관을 이길 수 있는 재능은 없습니다. 쓰는 습관을 기르고 생각을 멈추지 않으면, 훗날 당신이 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꼭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