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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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부터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게 되었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역시 보통 일이 아니지만 그 수고들이 귀여움으로 커버가 된다. 다들 이렇게 집사가 되는 것인가 보다. 아무튼 반려묘를 키우며 이 책을 읽었더니 주인공과 고양이의 공통점이 있더군. 첫째,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것. 둘째, 언제 사고 칠지 모른다는 것. 셋째, 그럼에도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볼매의 소유자라는 것... 정도쯤 되시겠다. 몇 년 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전 세계를 들었다 놨던 요나스 요나손이 후속작을 들고 컴백했다. 과거 젊은 시절, 전 세계를 점찍고 다녔던 노인은 이 책에서 또 한 번 여러 대륙을 방문하며 왈칵 뒤집어놓는다. 과연 작가의 유쾌함과 코믹함이 아직도 건재한지 한번 들여다보시라.


발리의 한 호텔에서 사기꾼 파트너와  열심히 돈 펑펑 중인 노인은, 101세 생일에 열기구를 타고 멀리 떠난다. 조종사도 없고 제동장치도 고장 난 열기구는 바다 한복판에 떨어지고, 마침 지나가던 북한의 배를 얻어 타 평양으로 들어간다. 자신을 핵 전문가로 속여서 우라늄이 든 가방을 들고 도망친 두 남자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에게 핵을 넘겨버린다. 그 후 어떤 여사님과 함께 관 사업으로 돈 좀 만져보던 이들은 웬 나치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여기에 노인들을 추격하는 독일 연방수사원까지. 갈수록 커지는 판을 과연 어떻게 감당하실려나. 


전작 100세 노인 편이 과거사에 더 많은 분량을 쏟았다면, 후속작 101세 노인 편은 현재진행형 스토리라서 좋았다. 김정은, 트럼프, 메르켈 등등 현재 활동 중인 정치가들을 다루어 팩션 장르를 선보였다. 팩션 물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룰 때보다 실존 인물을 다룰 때 작품의 리얼리티가 산다. 팩션 물의 리얼리티가 살려면 실존 인물의 특징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어중간하면 금방 몰입이 깨져버리고 만다. 현실과 허구의 균형을 잘 잡으면서 스토리도 살리는 게 진짜 쉽지 않은데, 작가는 각국의 지도자들이나 대사들의 특징을 잘 캐치해서 캐릭터에 생명력을 멋지게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데드 풀 뺨치는 성격의 매력쩌는 주인공 할배께서 미친 존재감을 쉼 없이 발산하므로 심심할 틈이 없긴 하다. 일단 캐릭터는 합격인데, 소재는 그렇지 못했다고 본다. 핵을 들고 도망치다니, 이만큼 월드클래스 뉴스감의 소재가 어디 있나. 근데 읽어보면 북한의 우라늄을 훔쳐서 이걸 가지고 뭘 어쩐다는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엿 바꿔 먹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를 잽싸게 처분한 다음 또다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유명인사들을 조우하고 온갖 위기를 겪지만, 이 땅에서 더 이상 겁날게 없는 우리의 침착맨은 ​미친 친화력과 말빨로 재치 있게 풀어나간다. 역시 인생은 이처럼 노빠꾸 라이프로 살아줘야 제맛이제.


1편과 가장 다른 점은 늘 유유자적하던 노인이 태블릿에 빠져서 전 세계 소식에 감동받아 찬호박도 고개를 절레절레할 정도로 그레이트 한 투머치토커가 돼버린 것이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의 평이 좀 갈리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캐릭터의 설정보다 작품에 메시지를 담으려 한 시도에서 평이 갈리지 않나 싶다. 작중의 실존 인물들이 다 정계 쪽 사람들이고 총선을 앞둔 시기인 걸 보면, 작가가 그쪽 세계에 대해서 할 말이 꽤 많아 보였는데 역자 해설을 보니 과연 그러했다. 세상이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은지 아닌지를 말하고 싶어 했단다. 제 입장과 밥그릇만 신경 쓰기 바쁜 각국의 지도자들은, 노인이 고민거리를 안겨줄 때마다 아주 바람직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역시 세계 평화를 위하는 사람도 핵폭탄 급 멘붕에 빠지면 인간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마도 작가는 이 점을 꼬집고 싶어 한 건 아니었을까. 다 좋은데 예전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쓴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풍자하려는 게 느껴졌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지 못한 장면도 꽤 많아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편이 더 나은 점은 멤버들 간의 케미가 너무나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킬러 안데르스‘에서도 멤버들의 케미를 보며 감탄했었는데, 그 기쁨을 여기서도 볼 수 있어서 감동이었다. 이렇게 서브 캐릭터들이 열 일을 해줄수록 작품은 생기가 돋고 유연성이 더해진다. 딱 내 스타일이야.


요나손이 즐겨 사용하는 패턴이 있다. 먼저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 캐릭터와, 사고 회로는 나름 멀쩡한 허당 캐릭터가 기본 세트이다. 여기에 플러스알파가 있고. 일단 기쁘게 시작했던 일이 나중에 꼭 심각한 문제로 진화한다. 그러면 주인공이 재치와 운빨로 위기를 모면하는 방식인데, 중요한 건 절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없고 그저 회피만 하다 보니 꼬리를 문 사건들을 끝까지 가져간다. 그러나 위기감 따위 물 말아 밥 드시는 주인공들은 인생 뭐 있냐며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노래 부른다. 위기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말아라... 뭐 이런 건가? <킬러 안데르스>에서는 목사가 사람을 죽여주는 킬러 사업으로 막장의 끝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박람회에 가서 관을 판매하는 개노답의 끝을 선보인다. 이야, 진짜 뇌구조가 어떻게 된 건지 감도 안 잡히는 작가이다. 관 사업이 망한 일행들은 죽은 자들과 교신하는 영매 사업을 한다며 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닌단다.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파악 좀 하던 중 훔쳐 온 핵 가방 얘기는 쏙 들어가 버린 걸 깨달았다. 끝에 가서는 다시 핵 얘기가 등장했지만 결국 이 책은 처분하기 난감한 애물단지로 인해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아니었고, 그냥 1편처럼 운빨포텐 펑펑 터지는 노인의 해프닝에 가까웠다. 확실히 이번에는 너무 산으로 가긴 했습디다.


이번 편에서 킬링 포인트는 충전하지도 않은 태블릿 pc의 절대 줄지 않는 배터리라 하겠다. 1편과 2편에서 눈에 띄게 다른 점은 노인의 설정 변화이다. 전작에서는 직접 몸소 전 세계를 탐방하고 다녔다면 이제는 태블릿으로 전 세계 소식을 듣는다는 것인데, 안 그래도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은 그가 지독한 오지라퍼 수다맨이 되어 액션의 비중은 줄고 입으로만 분량을 채우고 있다. 그래서 율리우스와 사비네의 역할이 노인만큼이나 중요했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이렇게 끝내주는 멤버 조합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요즘 참 사는게 쉽지 않아 기분이 안좋은데 이렇게라도 피식하게 만들어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계속해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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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11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름 현실 고증하고 싶어서 백한살짜리 노인을 밖으로 돌리는 대신 태블릿을 들려주었나 봐요ㅎㅎ 요나스 요나손 앞 세 권은 다 읽었는데 이 책은 망설이는 중이었어요. 리뷰 쓰신 걸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ㅎㅎ 감사합니다.

물감 2020-02-11 10:42   좋아요 1 | URL
기존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아서 괜찮게 읽었습니다 ㅎㅎ 머리좀 식혀야할때 보시길 권장할게요^^

페크pek0501 2020-02-11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기가 있으면 꼭 후속작이 나와요. 근데 후속작이 더 괜찮은 경우는 드물지 않나요?

물감 2020-02-11 12: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처음부터 시리즈 기획이 아니면 후속작은 실망이 크더라고요. 근데 실망하더라도 작가가 좋으면 그냥 읽게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