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장편소설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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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의 본좌, 김호연 작가가 돌아왔다. 뜨뜻한 귀뚜라미 보일러 감성의 작품을 가지고서. 단군 이래 경제가 늘 위기였다던 대한민국은 코로나 창궐 이후 역대급의 불황을 앓고 있다. 이제 일확천금이 삶의 목표가 된 국민들은 행복의 부재를 주식과 도박으로 대신하는 추세다. 그러든 말든 목표도 의욕도 없는 나는 저텐션의 일상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원래 내 성격이 그런 건지 사회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인생에 아무런 낙이 없다. 독서가 취미라면서 책을 구매하는 즐거움도 잘 못 느낀다. 내 안의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가 제대로 고장 났는지 사계절 내내 겨울처럼 살아간다. 그러던 내가 이 책으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은 걸 보면 사람 냄새가 그립긴 했나 보다. 웃음이 사라진 판국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가의 수고가 고마울 따름.


김호연 작가의 팬이 된 것은 그가 슬픔을 읽을 줄 알고 작가의 소명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라서다. 그의 작품은 엔터테인먼트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가면 속에는 곳곳에 삶의 애환이 새겨져있다. 시종일관 코믹했던 <망원동 브라더스>도 그렇고,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는 슬픔을 노래하였다. 우리는 수많은 책을 읽고서 리뷰까지 남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기억에서 지워져버린다. 그건 내 머리가 나쁜 탓도 아니고 작품성의 문제도 아니다. 저자가 독자를 생각지 않고 일방통행의 글을 써서 그렇다. 반대로 양방통행의 글은 이렇게 리뷰를 쓰지 않아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명백한 후자인 김호연 작가는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독자와의 핑퐁을 시도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재미있고 여운이 오래간다.


여사님의 잃어버린 가방을 서울역의 한 노숙자가 되찾아준다. 잽싸게 노숙자를 스캔한 여사님은 그를 자신의 편의점 야간 알바로 고용한다. 이 신입 편돌이의 충격적인 비주얼은 직원도 손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어딘가 나사 빠진듯한 의사소통은 편의점을 불편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그는 뼈 있는 오지랖과 전지적 참견으로 타인의 고민을 해결하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였다. 암튼 여러 유형의 손님들을 만나면서 잃어버렸던 기억이 돌아와 부쩍 심란해진 편돌이. 대체 그는 어쩌다가 기억을 잃고 노숙자가 된 걸까. 그를 괴롭게 하는 과거는 또 무엇일까.


이 작품은 뭐랄까,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소설로 만든 인상을 받았다. 회차마다 다른 게스트가 나와서 이런저런 토크 좀 하다가 노래가 끝나면 유유히 퇴장하는. 순서나 분위기가 비슷해서인지 처음 읽는데도 친숙하게 느껴졌다. 작중의 손님들은 각자 아픈 개인사를 들고 주인공을 거쳐간다. 참 많이 모자라 보이지만 사실 그는 관심법 장인이다. 손님들이 생판 모르는 편돌이에게 주절주절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는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얕잡아봤던 편돌이가 꼰대짓을 하자 하나같이 발톱을 드러내는 사람들. 그럼에도 주인공은 한결같은 진정성으로 남들을 대했고, 사람들은 그의 오지랖 속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고 고마워한다. 타인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주인공도 같은 고민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실패자로 살아온 덕분에 타인의 아픔을 읽을 수가 있었다. 이처럼 세상이 경력자를 선호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을 포함해 여러 인물들은 갖가지 패널티로 힘들어한다. 그러나 생계가 걸린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바로 무너진 관계망이었다. 가정과 사회에서 맺어진 인연들이 끊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외톨이가 되었으나 먹고살기 바빴던 현대인들은 알지 못했다. 실패한 인간관계가 곧 패가망신의 시발점이었음을. 그래서 작가는 인물들의 고민 해결방안으로 ‘관계 회복‘을 택했다. 관계가 틀어지는 원인은 이해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존중받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 인과관계를 지난날의 죄와 벌로 똑똑히 알게 된 주인공은 남들을 존중하며 공감했다. 그렇게 닫혔던 마음 문들이 열리자 가정을 되찾고 일자리를 얻는 등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망원동 브라더스>의 핵심이 희망이라면, 이 책은 위로가 핵심이다. 위로의 순기능은 솔루션 제공이 아니라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다. 멀어져 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이어주고픈 주인공의 바람이 곧 작가의 바람일 테다. 주인공으로 인해 흩어진 마음들이 제자리를 찾아간 것처럼, 이 작품으로 코로나에 지친 이들의 격분과 우울함이 잠시나마 진정되기를.


작가는 현재 국내에서 마주하는 온갖 불편한 상황과 감정들을, 편의점이라는 좁디좁은 공간 속에 압축해놓았다. 코로나로 예민해진 사람들은 작은 피해조차 용납하지 않고 피해주는 사람을 극도로 혐오하게 되었다.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서로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어느덧 혼자만의 시간이 익숙해져 버렸고 남을 신경 쓸 여유조차 잃어버렸다. 근데 이 나라가 헬조선이 돼버린 건 단지 코로나 때문만이 아니다. 취업과 경제와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사람들은 자발적 아싸가 되었고 일인 가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불편한 사회의 시스템을 감수하느니 포기하고 맘 편히 살겠다는 뜻이렸다. 나 역시 병든 이 나라에 희망을 버린 지 오래인데 김호연 작가는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책은 기억이 돌아온 주인공이 코로나 피해지역에 의료봉사를 하러 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결말에 내포된 메시지는 직접 읽고 파악하길 바란다. 끝으로, 다 좋은데 분량이 너무 짧은 게 흠이다. 이런 작품은 분량 조절 실패로 한 사백 페이지 정도는 써줘야 했다. 차기작은 그런 미덕을 가져주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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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1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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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1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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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16: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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