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
제프리 디버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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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빨간 책의 징크스는 그 대단한 제프리 디버조차도 피해 가지 못했다. 디버의 광팬이지만 이 책을 포함해 스탠드얼론 작은 대부분 그저 그런 수준이다. 이건 시리즈물을 쓰는 작가들의 고질병 같다. 마이클 코넬리, 마이클 로보텀, 요 네스뵈 등등 유독 스탠드얼론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 재료도 좋은 걸 가져다 쓰고, 조리법도 나쁘지 않고, MSG도 적당히 들어가는데 왜 결과물은 실망스러울까. 이런 기분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출판사들이 과대광고하는 책들보다야 훨씬 낫지만 워낙 기대치가 높았던 탓에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재미가 없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있는 것도 아닌 매우 어중간한 기분으로 완독했다. 이제껏 디버 작품은 편애한다고 느낄 만큼 극찬의 평을 남겼었는데, 드디어 비평을 날릴 차례가 온 것 같다. 유후후-


정보 추출가, 일명 캘꾼이 한 경관의 가족을 공격해온다. 경호팀은 가족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캘꾼을 잡고자 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이 테러와 엮여있다 판단했고, 그래서 더더욱 캘꾼이 찾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거기다 캘꾼을 고용한 청부업자, 몸통도 잡아야 한다. 여러모로 바쁜 주인공에게 임무 중단이 내려지고 옷까지 벗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대로 상층부의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이 개똥같은 판을 뒤집을 것인가.


솔직히 스릴러치고 흔한 플롯이라 설정 자체로는 매력을 못 느꼈다. 아마 디버 자신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작품의 빈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언제나 악역 캐릭터에 승부를 걸어왔다. 그래서 디버 작품의 액기스는 악역의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암튼 이번에도 화려한 악의 등장으로 스토리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셨다. 이번 프로 범죄자는 정보를 캐내기 위해 모서리, 즉 대상의 약점을 이용한다. A의 정보를 캐내려 A의 약점을 직접 건드려도 되지만, B나 C의 약점을 잡아 이용한다. 그러면 B, C들이 캘꾼대신 범죄를 저질러주기도 하고, 미끼가 되어주기도 하고, 경호팀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누구나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약점이란 바로 인질들의 가족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캘꾼에게 걸리면 누구라도 복종하도록 되어있었다. 정말 수많은 범죄자를 봐왔지만 이번 범인은 악질 중에 악질이었다. 게다가 공범들까지 있었으니 참 어지간히도 어려운 상대였다. 매번 이렇게 초 신선한 적들을 창조해내는지, 작가의 뇌구조가 알고 싶다.


지금껏 디버는 범인과의 대결구도 플롯을 고집해왔다. 주인공과 범인의 교차 시점으로 미친 속도감, 불타는 심리전, 넘치는 텐션을 잔뜩 보여주던 기존작들과 다르게 이번 작품은 주인공 일인칭 시점에 가까웠다. 카메라 열 대로 촬영하던 방송이 카메라 한 대로 줄어버리면 당연히 퀄리티가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지상파 중계방송에 가깝던 디버의 스타일은 유튜브 비제이의 일인 방송으로 전락했다. 비제이들은 혼자 방송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매우 분주하다. 그처럼 이 책의 주인공도 혼자 이끌어가느라 쉴 새 없이 바쁘다. 그러다 보니 스토리는 점점 입체감이 떨어지고, 작가의 전매특허인 디테일한 묘사들은 투머치가 돼버렸다. 그 굉장한 악역의 플레이나 매력도 일부만 보여주었고, 흐름을 비틀기 위해 넣었던 조/주연들의 서브 내용들도 흐지부지한 마무리로 끝나곤 했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조각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어 몰입이 여러 번 끊어졌다.


대신에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만큼은 작가가 영혼을 갈아 넣었다. 경호팀의 지휘를 담당하는 그의 역할은 캘꾼의 타깃들을 보호하고 안전장소로 대피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캘꾼에게 죽은 스승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캘꾼을 잡고 싶어 했다.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하려는 현장팀과 달리 법무부는 매뉴얼대로만 움직였고, 주인공이 범인을 쫓는 게 개인적인 욕심이라고 여겼다. 본인도 스승의 복수를 위한 집착이란 걸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그럼 나머지는 무엇이냐.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었다. 카드, 체스, 퀴즈, 퍼즐 같은 게임 매니아인 주인공은 캘꾼이 자신처럼 이 사태를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고 있고, 자신들을 게임 말처럼 플레이 중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모든 게임에는 룰이 있고, 그 룰에 따라 역전도 가능하고 체크 메이트도 가능하다. 눈앞에 난관이 닥칠 때마다 게임 룰을 적용하여 판을 뒤집으려는 시도가 참 새로웠다. 내가 보드게임 세계를 잘 몰라서 그냥 넘긴 구간이 많았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여튼 냉정한 경호관에게 감정이 생겨 이성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끝까지 읽었던 작품이다. 궁시렁 대면서도 디버의 스탠드얼론 작을 벌써 90% 읽었다. 디버 작품 도장 깨기도 어느덧 끝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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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페이션트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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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나 외교 쪽 못지않게 심리전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가정이다. 그래서 가족을 소재로 한 심리소설은 첩보물만큼이나 넘쳐난다. 현실에서도 비극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독자들이 유독 심리소설에 열광하는 건 아마도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개연성 있는 막장 시나리오를 은근히 바란다는 거다. 그만큼 더 임팩트 있고 자극적인 걸 원한다는 뜻이겠다. 그런 면에서 심리 스릴러는 대중들이 원하는 조건을 모두 다 갖춘 퍼펙트 한 장르이다. 각종 비밀과 음모, 복잡한 과거, 잘못된 만남, 불편한 진실, 배신감과 수치스러움 등등 ‘막장‘하면 떠오르는 모든 게 들어있다. 그러면서 개연성도 있고 작품성도 갖췄다. 특히 작은 성냥불 하나가 점점 커져서 온 집안을 태워버리는 과정의 리얼리티가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장르는 뭐랄까, 읽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죄책감도 든다. 불안해하는 타인의 심리 상태를 보면서 스릴을 즐기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슨 변태 사이코패스같이 느껴져서 말이지. 나 같은 기분을 느껴본 독자가 또 있을지 모르겠다만, 소설인데 재미있으면 그만 아니냐라고 생각하기엔 쪼까 거시기 혀...


남편 얼굴에 총탄을 갈긴 아내는 실어증에 걸리고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심리상담사인 주인공은 모두가 포기해버린 이 환자를 치료하기로 한다. 환자의 과거를 통해 여러 가지 불행을 알게 되었지만 살인을 저지르기엔 불충분해 보인다. 남들이 말한 대로 그녀가 했던 말들이 전부 정신 나간 헛소리에 불과한 걸까. 지금의 그녀는 맛이 간 연극을 하는 것일까. 서로가 불신한다면 어떻게 심리치료를 한단 말인가.


심리 스릴러는 일반 스릴러보다는 스릴감이 약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대신 인물 간에 밀당은 정말 잘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인물관계는 전부다 일방통행이다. 매번 오른쪽은 으르렁대고 왼쪽은 깨갱거려서 팽팽한 기싸움은 볼 수 없었다. 물론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다룬 심리소설이 없지는 않으나, 대개 그런 경우는 복합장르를 다루어서 부족함을 채우곤 한다. 이 책도 나름 복합장르를 시도하긴 했다. 남편을 살해하고 벙어리가 된 아내는 미스터리 요소로 딱이지만 이전까지의 부부 이야기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건물 밖에서 아내를 구경하던 괴인의 등장으로 호러 분위기가 되었으나 정신병자 취급당한 그녀였기에 괴인의 존재는 먼지처럼 떠나갔다. 또한 아내의 주변 남자들과 복잡한 N각 관계까지 형성했지만 하나같이 엑스트라처럼 조용히 퇴장한다. 아 진짜 뭐 이러냐. 정말 용두사미라는 표현조차 아깝다잉.


두 번째로 아쉬운 건 주인공의 동기 부족이다. 심리상담사로써 환자의 실어증을 고쳐주고 싶은 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인공은 투철한 사명감이나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치료를 자원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본인의 커리어를 위함도 아니고, 유명세를 얻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무슨 목적이 있기는 할 텐데 도무지 언급된 장면이 없다 보니 점점 그러려니 하게 된다. 두 남녀는 어릴 때 가족들에게 상처 입고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동병상련의 마음이 그녀에 대한 집착으로 가는가 했는데 그것마저도 아니었다. 게다가 마리화나로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이었기에 어디까지가 본심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뚜렷한 동기가 배제되어 있다 보니 그냥 그런갑다 하고 읽게 된다. 팥이 반만 들어있는 붕어빵을 먹는 기분이랄까.


주인공이 환자를 치료해가는 장면과, 바람난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되며 나온다. 그래서 낮에는 세상 친절한 얼굴로 병원에서 열 일하다가 밤이 되면 아내 문제로 골머리 앓는 중증 환자가 된다. 이렇게 괴로운데 매일매일 멀쩡하게 출근을 하고 환자를 상담하는지 좀 의아했는데 그게 다 독자를 속이기 위한 연출이었다.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셔도 좋겠지만, 추천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여하튼 환자의 주변인들을 조사하면서 그녀의 침묵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친구인 화랑 대표는 그녀의 미술 재능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았고, 사촌 동생은 도박으로 탕진하고서 돈을 꿔갔고, 남편의 형은 그녀를 성추행했고, 부친은 모친 대신 그녀가 죽어야 했다며 폭언을 일삼았다. 이 정도면 정신병 걸릴만하겠다 싶었지만, 어째서 그녀는 적군이 아닌 유일한 아군인 남편을 쏴 죽였나. 얼마나 큰 배신감이 들었길래 그랬는지 아무리 추측해봐도 잘 모르겠더라. 위에서 말했듯이 심리전이 전혀 없는 작품이라서 추측이 불가합니다요. 아 놔.


등장인물마다 사연을 갖게 하여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점은 칭찬한다. 그런데 그렇게 비중 있는 역할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어떤 매듭도 없이 사라진다. 환자의 친구는 병문안 오는 것을 굉장히 꺼려 했는데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고, 남편의 형은 그녀가 죽어가자 갑자기 나타나 울며불며 속마음을 고백하는데 완전 뜬금없었고, 수간호사와 문제적 환자의 불미스러운 거래 관계의 뒤 내용도 없었고, 무엇보다 바람난 주인공의 아내의 뒷이야기가 뚝 잘린 게 가장 당황스러웠다. 아니, 메인 요리가 중요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밑반찬을 막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건 손님에 대한 성의가 없는 겁니다요. 이제 마이클리디스는 노맛집으로 등극되었습니다. 원래 맛집보다 노맛집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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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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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지길 바랬어.
온 세상이 너무나 캄캄해 매일 밤을 울던 날.
차라리 내가 사라지면 마음이 편할까.
모두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두려워…

아름답게 아름답던 그 시절을 난 아파서,
사랑받을 수 없었던 내가 너무나 싫어서,
엄마는 아빠는 다 나만 바라보는데,
내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자꾸만 멀어만 가… 

< 볼 빨간 사춘기 - 나의 사춘기에게 >


내가 요즘 가장 즐겨듣는 곡이다. 꼭 내 얘기 같아서 온몸의 신경이 멈추고 회로가 마비되는 기분이다. 힘든 가정집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다 보니 언제나 기가 죽어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친구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용돈과 학원과 쇼핑과 문화생활들이 내게는 엄청난 사치였다. 차비라도 아껴보려 초중고를 다 걸어 다녔고, 음식을 남긴다는 건 상상조차 못했으며, 생일 선물 얘기는 꺼내본 적도 없었다. 불만을 가진 적도 없는 걸 보면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좋아하는 걸 얘기하면 나는 철없는 놈이 되었고, 투정이라도 부리면 세상에 둘도 없는 불효 자식이 되곤 했다. 그래서 하나둘씩 포기하며 살다 보니 커서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가장 어려워하는 건 ‘뭐 먹고 싶냐‘라는 질문이다. 선택권 없이 주는 대로만 먹어서일까, 지금도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없다. 먹는 게 남는 거라지만 나는 식비로 나가는 돈이 너무나 아깝다. 지금의 내 모습들이 아마도 어릴 때 충분한 케어를 받지 못해서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위의 노래가 떠올랐고, 나의 소년 시절이 생각나버렸다. 아무런 꿈도 없이 저절로 성인이 되고 사회에 버려지는 게 두려웠던 과거가.


완전체 엄친딸인 언니는 화재 속에서 아기였던 유원을 구하고 명을 다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었고, 사람들은 유원을 통해 죽은 언니를 생각했다. 그렇게 유원에게는 언제나 죽은 언니가 따라다녔다. 살아있는 자신은 없는 존재였고, 죽은 언니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언니 자랑만 하는 모두가 지겨워 침묵을 택한 유원. 언제쯤이면 언니를 대신하는 삶이 아닌 온전한 나 자신의 삶을 살게 될까.


언니가 아파트 창밖으로 떨어뜨려준 아기 유원을 맨몸으로 받아낸 아저씨는 사회의 영웅이 되었으나 다리 한쪽을 평생 절어야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유원이지만 이야기는 이 아저씨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매번 사람 좋은 얼굴로 집엘 찾아와 걸핏하면 신세 지고 돈을 꿔가는 아저씨. 생명의 은인이라는 고마움과, 딸 때문에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죄책감에 간이고 쓸개고 다 주려는 부모님. 그러나 유원의 눈에는 깨갱하는 부모가 답답했고, 자꾸 선을 넘는 아저씨가 불편했다. 악의가 없는 것도 알고, 그를 외면할 입장도 아니기에 참아왔지만 아저씨는 더 이상 은인이 아니라 불청객이었다. 며칠씩 집에서 머물기도 하고, 부모가 없을 때 집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모든 게 내 덕분이라는 듯한 생색을 내는 아저씨를 경멸했다. 차라리 약점을 잡아서 괴롭히는 게 더 나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이 상황과 관계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란 사실이 소녀를 절망케 했다. 딸의 불편함을 시종일관 모르는 척하는 부모님은 대체 아군일까 적군일까.


기댈 곳이 없는 건 아니었다. 죽은 언니의 절친은 유원을 친동생처럼, 부모님을 친가족처럼 챙겨주었다. 언니 친구를 많이 의지하고 따랐지만, 그 언니마저도 유원의 얼굴에서 죽은 언니를 찾고 있었다. 언니 친구가 임신을 하자 유원은 아기가 태어나면 누구보다도 사랑해줄 것을 약속한다. 그 이유가 너무 슬펐는데, 죽은 언니를 모르는 사람은 그 아기밖에 없기 때문이라 했다. 언니라는 절대적인 존재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정말 오죽했으면 그런 생각을 다 할까. 자신의 인생은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였고, 이제는 죽은 언니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주고 있는 유원이었다. 왜 모두가 떠난 사람을 계속 붙잡아두려 하고, 산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 바라봐 주질 않을까. 제 잘못은 하나도 없었건만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주변인들의 태도가 소녀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언니 친구와의 거리가 생긴 뒤로 다시 혼자가 된 유원은 수현 남매를 만나면서 좁았던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공부도 못하면서 당당했고, 하고 싶은 말은 절대 참지 않았고, 봉사활동에만 에너지를 쏟는 수현. 매사에 무표정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졌고, 연기자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정현. 여태 자신은 방관하기만 했는데 수현 남매는 어떻게든 나아가려고 노력 중이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자신과는 전혀 달랐던 둘을 보며 알게 모르게 자극을 받은 유원은 알지 못했다. 이 순간이 곧 송충이에서 나비로 변하는 순간이란 것을. 평생을 송충이로 살아온 소녀는 제 몸에 돋아나는 날개가 신기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다. 복잡 미묘한 마음에 부정하고 외면했던 새 감정을 조금씩 천천히 받아들였고, 어느새 높이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집안을 쥐락펴락하는 아저씨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했고, 질긴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소녀의 첫 비행은 대성공이었다.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식으로 성장하는지 아시는 분? 정답은 롤모델을 잘 만나야 한다.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뒤따라오는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 생겨난다. 죽은 언니의 친구를, 수현과 정현을 통해 현실을 타개하고 세상 수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게 된 유원.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바뀌고 싶다면, 변화를 원한다면 움직여야 한다. 백날 시켜서 하는 행동이 아닌, 스스로 인식해서 하는 행동이 개혁을 일으킨다. 여하튼 너무 잘 읽었다. 솔직히 아몬드보다 훨씬 낫다. 지극히 청소년 문학이면서 전 연령층을 향한 이야기였다. 그 시절을 지내온 모두가 겪었던 고민과 감정들로 도배된 낡은 방속에 있다 나온 기분이다. 사랑 노래보다도 이별 노래가, 희망의 노래보다도 위로의 노래가 더 와닿듯이 주인공의 결핍과 고립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서 더 와닿고 공감이 되었다. 애잔하고 아련한 이 밤, 볼 빨간 사춘기 노래나 듣고 자야겠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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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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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셰익스피어 문학을 읽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게 다 독서모임 덕분이다. 이상하게도 고전문학은 읽고 나면 내가 지성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난 지금 스스로가 너무 대견스럽고 기특하다. 가끔은 이런 자화자찬도 필요하다고 합리화해본다. 셰익스피어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대도 그 이름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지 않을까. 간단히 소개하면 수많은 시와 극을 쓴 영국의 극작가인데, 천오백 년대에 발표한 그의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연극과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걸 보면 거장 중에 거장이 틀림없는 듯. 이 책은 극단 배우들의 대본집이다. 그래서 인물들의 대사 외에는 기타 문장이 없다. 극을 공연이 아닌 대본으로 읽는 게 얼마나 재밌겠나 싶어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재미있게 읽혔다. 역자에 말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작품은 번역의 레벨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읽기 수월하게 번역해준 덕분에 어려움 없이 읽었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베니스의 상인이 친구의 보증을 서주고 친구가 유대인에게 돈을 빌린다. 그러나 상인이 갚지 못하게 되자 유대인은 차용증서대로 상인의 살을 1파운드 가져가기로 한다. 친구가 돈을 두세 배로 갚겠다고 해도 유대인의 마음은 강경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상인에게 받았던 멸시와 천대를 드디어 갚아줄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인 상인과 친구들은 유대인의 무자비와 잔인성을 비난했다. 분명 절대 봐줄 생각이 없는 유대인의 태도는 냉혈하고 비열하다. 하지만 그를 이렇게 만든 건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까지 유대인을 욕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다. 모두가 악이라 칭하는 유대인이 기독교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칭 선이라 믿는 기독교인이 죄를 뉘우칠 줄 모르는 이 모순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선과 악의 입장은 정해져있지만 그 경계가 모호하므로 어느 한쪽만 손을 들어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무너진 선과 악은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는 뉴스가 매일 보도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법보다 빠른 주먹을 시행하는 조폭의 편을 들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판결로 배신감 들게 하는 판사를 욕하기도 한다. 이게 다 잘못된 행동일까.


다른 내용은 벨몬트의 상속녀가 공개 구혼 자리를 마련한 것. 부친의 유언에 따라 복불복 상자 고르기에서 당첨된 자에게 운명을 맡겨야 한다. 그렇게 신세한탄하며 좌절하는 그녀를 쟁취한 용사님은 어이없게도 상인의 친구였다. 아니, 상인이 그토록 경멸하던 유대인에게 사채를 쓰게 해놓고 지는 여자를 만나러 가? 지 때문에 누구는 몸에 바람구멍 나게 생겼는데? 당장 손절해도 모자랄 놈이지만 사랑만큼이나 우정을 중요시했던 셰익스피어는 상인과 친구의 막장 브로맨스를 가지고 시청률을 최대한 뽑아내셨다. 상인에 대한 친구의 우정은 법정에서 절정을 찍는다. 아내보다도 친구가 더 중요하다고 하질 않나, 아내의 절대반지를 망설임 없이 판사에게 바치질 않나. 그 광경을 다 보고도 넘어가 준 상속녀는 진정 대인배가 아니라 지지리도 남편 복 없는 콩깍지녀에 가까웠다. 하긴, 그 어려운 복불복 테스트를 멋지게 풀었으니 반할 만도 하겠지. 어쩐지 이 작품은 사랑도 그렇고 우정도 그렇고 전혀 낭만적이지가 않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요.


결국 재판에서 유대인은 자멸하고 상인은 살아났다.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이었지만 찝찝함이 남는 승리였다. 판사가 준 기회들을 죄다 뿌리쳤으니 자업자득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교도 취급을 받아온 유대인의 사정을 생각한다면 그의 태도가 마냥 미련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오히려 그동안 당한 게 얼마나 억울하면 저럴까 싶었다. 그리고 아무리 해피엔딩이라지만 유대인의 증오가 베이스인 이 작품이 희극으로 분류되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다. 아무튼 짧은 분량이지만 셰익스피어의 철학도, 도덕관도, 스타일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가장 위대한 극작가라는 타이틀이 괜히 붙은 건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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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06-14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문학은 종갓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씨간장 같은 이미지가 그려져요. 여러 가지 응용 버젼이 펼쳐질 수 있기도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이게 바로 원조 클라쓰다~! 이런 거요.ㅎㅎ

잠깐, 딴지! 베니스의 상인이 친구의 보증을 서준 건 맞지만 유대인에게 돈을 빌린 건 친구라. 두 번째 단락의 두 번째 문장은 ‘베니스의 상인이 유대인에게 돈을 빌리는 친구의 보증을 서준다.‘라 쓰는 게 적합할 것 같습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대립을 보면서 물감님 말씀대로 모순점을 느꼈습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선과 악이 실은 매우 주관적일 수 있다는 점도 생각했습니다. 대다수에게 선이 되는 것을 선이라 칭하지만 그게 반드시 100% 옳은 것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아서요.

바람구멍 ㅋㅋㅋ 빵 터졌습니다~ ‘막장 브로맨스, 시청률, 절대반지, 지지리도 남편 복 없는 콩깍지녀‘ 물감님 글의 매력이 세 번째 단락에 듬뿍 담겨있네요. 글을 읽다 오랜만에 웃어보았습니다.ㅎㅎ
근데 복불복에서 은이 안되는 이유, 납득이 가시는지요? 제 리뷰에도 썼는데 정확하게 잘 모르겠어서요.^^;;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과연 희극일까 하구요. ‘역사‘의 서술에 대한 관점이 생각났습니다. 역사란 강자의 기록이죠. 강자에게는 정복이지만, 약자에게는 약탈당하여 기록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신대륙의 발견과 선주민의 피바다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뭔가를 판단하는게 조심스러워져요. 우린 너무 쉽게 판단하고 단정지어버리는 게 아닌가 해서요.^^

물감 2020-06-14 22:01   좋아요 1 | URL
원조 클라쓰! 적절한 표현입니다 ㅎㅎㅎ 지적해주신 내용도 수정했어요!
어쩌면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 없지 않을까요. 우리가 바라보는 공산주의도 그 나라들에겐 선이고 정의일테니까요. 말씀대로 절대선, 절대악은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세 상자의 대한 해석이 잘 와닿지 않아서 휙 넘겼어요 ㅋㅋㅋㅋㅋ 이 자리에서 은에 대해 생각좀 해볼까요? ‘나를 선택하는 자는 얻기에 합당한 만큼의 것을 얻으리라.‘ 여기서 키포인트는 합당하다는 건데, 귀족들은 그녀를 얻으러 왔다기 보다 그녀의 빽을 보고 왔으므로 합당치 못한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기에 얻을 것도 없다는 결론이 제 생각입니다. ^^

그런 말 있잖아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그래서 이 작품은 비극도 되고 희극도 되는 게 아닐까요? 약자로 살아온 유대인이 단 한 번 강자가 된 것인데, 만약 그의 승리로 끝났다면 이 책은 강자의 기록이 되는 걸까요? 이 역시도 쉽게 판단하기 어렵네요... ㅎㅎ

여튼 6월은 가뿐히 클리어한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올해는 어쩐지 휴가다운 휴가도 못 즐길거 같아요. 여유가 많이 생기면 실컷 독서할 수 있겠네 싶지만 막상 그렇게는 안되네요. 그냥 원래 페이스나 유지해야겠어요 ^^

나비종 2020-06-14 22:20   좋아요 1 | URL
아!!! 물감님의 ‘그녀의 빽을 보고 왔으므로‘ 덕분에 ‘그림자‘의 의미를 이제야 정확하게 알겠네요ㅎㅎ
‘그림자에 입 맞추는 자들은 그림자의 축복만을 받는다.‘의 의미요. 그림자란 배경이었군요~^^

물감 2020-06-14 22:35   좋아요 1 | URL
그렇죠. 부친은 ‘상속녀‘가 아닌 ‘딸‘을 바라봐주는 남편감을 찾아주기위해 상자의 글들을 남겼을거에요. 딸에게 대시하는 사람들은 다 잘난 신분일테니 걱정이 들었겠죠. 어쩌면 포오셔의 지혜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게 아닐까요^^
 
곰탕 (1, 2권 합본 리커버 에디션) -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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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나오자마자 히트를 치고 독자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하여 나도 한 번 읽어볼까 했다가 분권이라서 미루고 미룬 게 벌써 2년이나 지났더군. 나중에 합본으로 나오면 읽어야지 했는데 그 바램이 드디어 이뤄졌다. 꽤나 분량이 많은데도 합본으로 만들 줄이야. 출판사가 센스 좀 있네, 그래. 남들은 다 읽고 시들시들해진 이 작품을 이제야 본 나님은 격한 감동을 입고서 뒤늦게 폭풍 리뷰를 쓰고 있다. 이제껏 책을 읽으면 좋든 싫든 내 감정과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었는데, 이 책은 그 반대이다. 지금의 여운을 글로 남기지 않고 그냥 이대로 간직하고 싶다. 이 감동은 글로 표현하기 힘든 데다, 나의 감정들이 소리 없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그만큼 이 책은 깊고 진한 울림을 가졌다. 작품성도 그렇지만 저자의 간결한 문체나, 활자로 소화해낸 영상 기법에도 여러 번 감탄했다. 역시 영화감독 출신이라 감각이 다르긴 하더라. 영화화되면 꼭 보러 가야겠다.


초간단 줄거리. 식당의 주방보조로 살아온 고아원 출신의 주인공은 사장님의 권유로 20년 전 부산의 한 곰탕집을 방문한다. 미래엔 없는 이 곰탕의 레시피를 빼내기 위해 곰탕집 주방보조를 자청한 그는 놀랍게도 곰탕집 아들과 여자친구가 자신의 부모라는 사실을 알고 극대노한다. 한편 옆구리에 구멍 뚫린 시신이 등장하여 난리가 난 부산 경찰들은 갈수록 똥줄이 탄다. 그리고 순간이동으로 부산 곳곳에 출몰하는 의문의 남자는 뭐 때문에 주인공을 추격하는가.


인간이 과거로 가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맺힌 한을 풀기 위해 가는 거다. 그 말인즉슨 100% 순수한 사유는 없다는 뜻인데,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라도 사심을 채울 수 있다면야. 헌데 부탁받은 거라지만 겨우 곰탕 레시피라는 소박한 욕망이라니. 감도 안 오는 설정이지만 초반부터 떼죽음 당한 여행자들을 볼 때 결코 유쾌한 판타지 소설은 아니란 걸 직감했다. 과거와 달리 현대의 타임슬립 작품들은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내용과 대단히 거리가 멀다. 대표적으로 마블 영화 중 ‘엔드게임‘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런 다크하고 시리어스한 분위기가 언제부턴지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여하튼 식상하게 또 타임슬립인가 했는데 타 작품과 달리 과거에서 현재로 복귀하질 않았다. 그래서 주 무대는 과거가 되고, 그 과거는 이제 현재의 이야기가 돼버린다. 게다가 곰탕 한 그릇처럼 따뜻한 정이 담긴 내용보다는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몰락을 다루는 내용이 더 많았다. 이렇게 흔한 장르의 뻔한 설정을 뻔하지 않게 쓰는 것도 진짜 능력이다.


작가가 스토리만큼이나 캐릭터 설정에 공들인 게 느껴진다. 특히 인물의 감정 변화가 이 책의 액기스라 할 수 있는데, 먼저 주인공부터 살펴보면 그는 삶에 미련 하나 없는 상태로 과거에 왔다. 그 후 친부모를 만나 공허했던 마음이 분노에서 연민으로, 그리고 애정으로 채워진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가족이라는 것과 그것이 주는 특별한 감정이 건조한 사막에 빛과 생기를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래서 과거에 남는 길을 택했지만 그로 인해 다른 여행자들을 죽게 만들었고 자신은 제거 대상이 되었다. 순리를 거스려서 얻는 행복의 대가가 이렇게나 위험하단 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곰탕집 아들 순희도 감정 선의 변화가 다이나믹하다. 엄마를 여의고 문제아로 자란 순희는 주인공에게 부모의 자식 사랑 비슷한 걸 느낀다. 소년의 닫혀있던 마음은 점점 열렸고 어느새 친부보다 주인공을 더 좋아하게 된 순희가 후에는 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주인공을 살리려고 한다. 순희의 아버지이자 주인공의 할아버지인 곰탕집 주인의 감정 변화도 볼만하다. 주방 일을 시켜달라는 주인공을 경계하면서도 아들을 챙기는 모습에 맘을 열고, 자신을 대신해 아버지의 역할을 하도록 뒤를 맡겼다. 심지어 주인공이 신원불명의 이방인이란 걸 알고도 경찰에게 가족이라고 거짓말까지 해주었다. 이렇게 얼어붙어있던 모두의 심장은 사랑으로 녹아내리고 펌프질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의 넘치는 인간미를 볼 수 있었고, 역시 사랑에는 적이 없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다.


20년 전의 부산은 오래전에 과거로 넘어온 자들이 먼저 터를 닦고 자리를 잡아 대한민국을 삼키려는 계획을 실행 중이다. 이들은 전부 신분을 훔쳐서 살아간다. 미래인들이 과거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신분으로 사는 것은 여러모로 리스크가 따른다. 그렇기에 이들은 훔친 신분이 지니고 있던 지위와 권력을 써서 서로를 보호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가짜 신분으로 산다는 건 평생을 야비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현실로 바꿔서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잘 나가는 연예인이나 강남 건물주의 삶을 부러워하고, 너도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시켜주면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힘쓰고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가 아닌 삶은 절대 내 것이 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네 인생이나 잘 챙겨라‘가 아닐까 한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전부 반영한 걸 보면 작가의 예술 감각이 타고난 게 분명하다. 불필요한 씬은 잘라내어 스피디한 전개를 보여주었고, 타임슬립과 순간이동 같은 판타지 요소도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범죄와 음모로 가득 찬 무대 위에 휴머니즘까지 녹여냈다. 무엇보다 멍청하고 답답한 캐릭터가 한 명도 없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반대로 감초 역할이 없다 보니 다소 어두운 분위기였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잘 조율했다. 이 책도 하루키 책들처럼 칭찬 일색의 리뷰만 가득하므로 간단히 비평글만 쓰려 했는데, 비평할 껀덕지가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이제는 국내 스릴러문학의 수준이 엄청나게 올라간 게 느껴져 참 뿌듯하다. 개인적으로 영미권보다는 아직 약하지만 북유럽권보다는 낫다고 본다. 자 그럼, 어서 영화화를 해주시고 다음 차기작으로 컴백해주시길 간절히 비나이다, 비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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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06-13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부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대화 주제 중 하나가 1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바꾸거나 하고 싶은가 였어요. 바꾸고 싶은 한 가지가 바로 떠올랐어요. 차마 말하지 못해 오카리나를 배우고 싶다는 둥 책을 좀 더 많이 읽고 싶다는 둥 겉도는 얘기만 했었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그림자와 같은 감정들을 많이 경험한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극한의 감정과 지독한 외로움이 글을 쓰는 자양분이 된다는 건 글쓰는 이에게 축복일까요 불운일까요. 판타지와 같은 일이 제게도 일어난다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를 바꾸고 싶어질까요. 햇살같은 길만을 걸었어도 여전히 글쓰기를 갈망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물감 2020-06-13 22:16   좋아요 1 | URL
결국 나비종님의 과거는 지금의 글을 쓰는 양분이 되었군요. 마치 가수들이 감정을 담아 부르기 위해 일부러 이별을 겪듯이요. 근데 저는 반대로 생각을 해봐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 내 감정이 다치고 슬퍼야만 하는가 하고요. 저도 사실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로 인해 더 성장하고 발전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선택권이 있다면 그런 성장들 다 필요없으니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래요. 그리고 좀 더 제자신을 아끼고 위할래요... ㅎㅎㅎ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하고 희생하며 살아온 게 후회가 되서요. 어차피 저나 나비종님같은 글쟁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어도 결국 독서하고 글쓰며 살았을꺼에요. 왕자가 옥상에서 보는 태양이나, 거지가 1층에서 보는 태양이나 다 똑같으니까요^^

나와같다면 2020-06-13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과거로 가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맺힌 한을 풀기 위해 가는 거다

그래서 모든 타임슬립은 안타까워요
그때 그랬더라면

물감 2020-06-13 22:19   좋아요 1 | URL
그때 그랬더라면. 맞아요.
산다는 건 언제나 후회만 남는 일방통행의 길을 걷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지금을, 오늘을 잘 지내야하는데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