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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먹고살기 힘들 때마다 알약 하나로 배가 채워질 미래를 갈망하게 된다. 인생의 피곤함을 말로 다 할 수 없다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모든 종목을 뛰어야 하는 운동회를 날마다 참가하는 기분이랄까. 수십 차례의 경기를 치르면서 의욕과 정력은 고갈되고 육신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렇게 벚꽃 필 때 열렸던 운동회는 흰 서리가 내릴 즈음에 끝이 난다. 이제 주름진 가을나무는 싱그러움을 자랑하던 여름날을 그리워하고, 생기 잃은 겨울나무는 따사로움을 노래하던 가을날을 추억한다. 그리하여 공평하게 흐르는 인생의 사계에서는 뛴다고 좋은 게 아니었고, 느려서 기죽을 필요도 없었음을 겨우 깨닫는다. 결국엔 부지런한 개미도 후회하고 띵가띵가 베짱이도 후회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미련 없이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이 시대의 수많은 개미들에게 이번에 읽은 <스토너>를 추천해본다. 백날 유튜브로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보느니, 이 책으로 인생의 소소한 해답을 얻었으면 한다.
가난한 농부의 외동아들인 스토너는 부모 권유에 따라 농과대학을 들어갔으나, 적성을 찾고 문학도가 되어 교육자의 길을 간다. 매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나름 절친도 생기고 멘토 같은 교수도 만나고 원하는 이성과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부부생활은 원만하지 못했고 직장생활은 평탄치가 않았다. 무수한 압박에도 묵묵히 상황을 통제하며 죽는 날까지 제 본분을 다 하는 스토너. 인생은 정녕 버팀만이 전부였던가.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직장 다니는 내용이 다인, 누구나 살면서 겪는 일들을 덤덤하게 그려나간 작품이다. 별사건도 없이 잔잔하기만 해서 소설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나 주인공의 일생이 나와 너무도 닮아있어 계속 지켜보게 된다. 대학생의 스토너는 참 목표 없이 성실했다. 장래도 생각지 않고 그저 문학 수업을 따라가는 게 좋았다. 맘에 드는 여자에게도 앞뒤 재지 않았다. 직진 밖에 몰랐던 그에게 있어 순수함은 결코 좋은 게 아니었지만 본인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결혼한 후에도 예민한 아내의 성질을 다 받아주었고, 교수가 되고도 동료와 학생들의 조롱에 맞서지 않았다. 힘들면 힘든 대로, 불행하면 불행한 대로 어떤 시련과 불이익도 전부 감수하고 수용하는 보살 같은 태도의 스토너. 이렇게 융통성 없고 손해 보는 성격이지만 그에게는 후회나 뒤끝이 없었다. 그것은 타고난 성정이나 어떤 신념 때문이 아니고 겁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생존 철칙이었을 뿐.
직장에 후배들이 꽤 많아졌다. 지내보니 치열한 노력파와 무기력한 잉여파로 나뉘는데 불투명한 앞날 걱정은 피차일반이었다. 하긴 뭐 안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학생도 힘들고 취준생도 괴롭고 사회인도 죽어난다. 최소한의 루트만으로도 이렇게나 고생인데 여기에 뭔가를 더하려니 감당 못할 부담만 적립된다. 그 부담들을 줄이고 줄이다가 결국 N포세대가 되었다지. 이쯤 되면 사는 것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나는 어떤 대단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거든. 어차피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고, 그럼에도 일생을 살아야 한다면 스토너처럼 초연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한 사람이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생존을 따지다 보니 개인의 목표와 행복은 한참 뒷전이 돼버렸다. 남들이 다 하는 건 나도 좀 하고 싶은데 녹록지 못한 내 삶은 뭘 해도 욕심 같고, 자존감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다. 이제는 개미처럼 되기도 쉽지 않거니와, 죽도록 노력해도 얻지 못할 기회를 손쉽게 거머쥐는 누군가를 보며 결국 될 놈은 된다고 믿어버린다. 이 같은 사회에서 더 이상 개인의 불행은 불행이 아니게 되었다. 차라리 본래 내 그릇이 작은 거라 생각하고 마는 거지. 나도 그 마음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정 괴롭고 답답할 때면 우주를 떠올린다. 저 광활한 세계에서 먼지만도 못한 존재의 고민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생각해보면 비교적 회복이 빨라진다. 그러므로 삶에 일일이 의미 부여하지 말고,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