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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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를 소재로 한 작품도 꽤 자주 출간되는 듯하다. 역사를 함부로 각색해선 안된다는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오는 걸 보면 계속 눈길이 가는 선악과 같은 소재가 분명하다. 이 책도 그렇고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도 그렇고, 작가들은 은폐 사건들을 수면 위에 드러내려는 사명으로 펜을 든다지만 솔직히 그 사명만으로 책을 썼다곤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 민감한 역사를 다룰수록 더 그러한데, 어쩌면 세상 때가 많이 묻어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현대인들은 역사 자료와 정보로 나치 정권의 폐해를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책을 쓰려거든 알려진 내용은 간소화하고 주제를 부각시키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모호하면 주제 파악은커녕 나치의 독재나 전쟁의 아픔 같은 부수적인 것에만 주목하게 된다. 아쉽지만 이 책도 엄중히 말해서 후자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제작진이 일 잘하기로 소문난 것은 주도면밀하게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서가 아니라 문제를 다각도에서 살펴보고 이해하려는 접근 방식에 답이 있다. 팩트만 전달하는 뉴스는 시청자의 생각을 가둬두기 때문에 개인의 의견을 확장시키지 못한다. 반면에 <그알>제작진은 육하원칙 중 ‘왜why‘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시청자가 자기만의 생각으로 사건에 개입할 기회를 준다. 그러면 사태를 인지한 시청자는 자연스레 문제에 참여하게 되고 각자의 생각이 모이다 보면 썩 괜찮은 해결안도 나오곤 한다. 문학도 이래야 한다. 독자가 직접 개입하도록 유도하는 저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독자는 저자가 떠먹여주는 것만 먹게 되고 그래서는 뉴스하고 다를 게 없다. 르포 형식이라면 모를까.


작가가 실제 했던 히틀러의 시식가 이야기를 각색했다. 히틀러의 음식 시식가로 강제 발탁된 열 명의 여자는 총통이 먹을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아닌지를 몸소 증명해야 한다. 죽을지도 모르는 음식 앞에서 육체의 배고픔은 너무나도 솔직하다. 이렇게 나치는 식욕이라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서 그녀들을 사형수로 만든 것이다. 나치의 추종자들은 총통의 은총이라 하겠지만 로자 일행은 생존이 더 중요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제는 욕망과 싸우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기억해두지 않으면 옆길로 샐 수 있으므로 주의할 것.


나치는 가족을 빼앗고 삶을 짓밟고 희망을 지웠다. 그 모든 일의 원흉인 총통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로자. 어떻게 하면 목숨도 지키고 적들을 이길 수 있을까. 투쟁의 대상은 나치 일원이나 배고픔이 아니라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이다. 절대 바뀌지 않을 그 상황 가운데 갑작스러운 로자의 반격이 시작된다. 남편의 실종 소식에 이성이 끊어져 버린 그녀는 죽음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든다. 친위 대원도 무섭지 않았고 총통의 음식도 거리낌 없이 삼켰다. 아이러니한 게 살고 싶다는 소망보다 죽고 싶다는 바램이 욕망과 맞서는 반작용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공포에서 해방된 로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치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중반부터는 식욕의 이야기에서 성욕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간다. 전선에 투입된 남자들의 부재로 여자들은 남자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로자 역시 친위대 장교와 몸을 섞으며 정죄를 고독과 맞바꾼다. 죽음에도 저항했던 사람이 성욕 앞에 무릎 꿇은 것이다. 그녀는 그토록 자신이 증오하는 나치의 일원과 밀회하면서 오염된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식욕은 죽음과 맞닿아있다지만 성욕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쾌락과 후회를 반복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던 그녀는 끝내 지옥을 택한다. 될 대로 돼라,가 아니라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한 것인데 앞전의 모습과 너무 상반되어서 이질감이 든다. 작가가 정녕 실존 인물을 생각하며 이런 설정을 했단 말인가. 이 책은 당사자의 일화를 빌려서 인간의 존엄성을 재조명하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작가는 목적과 주제를 방해할 만큼 선을 넘고 있다. 아무리 각색이라지만 돌아가신 분에게 큰 실례이다.


초중반의 식욕 파트에서 보여준 페이소스는 정말 대단했다. 아쉽게도 성욕 파트부터는 그 맛을 볼 수가 없었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도 이와 똑같았다. 메인 소재에서 서브 소재로 넘어가면서 방향이 틀어지고 탄력도 약해지고 재미도 급감한다. 이런 건 용두사미도 아니고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그럭저럭 끝이 났지만 김빠지도록 못 살린 스토리였다. 이러니 주제를 파악 못하는 독자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튼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한다. 우리는 여태껏 삶의 가치를 높여주는 ‘무언가‘에만 주목해왔다. 허나 삶은 그 무언가가 충족되어야만 제 역할을 하고 존엄성을 갖추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몰아내려는 필사적인 본능이, 살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있는 한 그것만으로도 삶의 가치는 주어진다. 즉 가치 없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는 얘기다.


이 책도 결국 사랑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인류를 일으키고 구원하는 건 오직 사랑뿐이라는 흔한 결말. 이런 서사물들은 어쩜 그렇게 똑같은 수순을 밟는걸까. 이젠 그만 바뀔 때도 된 거 같은데 말이다. 작가들이 유연한 사고를 갖지 못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여튼 이래저래 쓴소리를 했지만 스토리텔링도 나쁘지 않았고 페이소스도 훌륭했다. 저자의 차기작이 나오길 기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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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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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독서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내 작품을 많이 읽는 거고 하나는 유명한 작품에 도전하는 것이다. 나의 청개구리 기질로 인해 남들이 다 읽는 책은 일부러 안 읽었는데, 그래도 회자되었던 작품들은 읽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읽은 책도 남녀노소 다 읽었던 김훈 작가의 대표작이다. 그의 명성은 질리도록 들었다. 일본에 하루키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훈이 있다면서. 그러면 더더욱 내 스타일은 아닐 터. 나는 필력보다 스토리텔링을 더 중시하거든. 의무적으로 읽긴 했지만 충무공의 칼이 부르는 노래를 이제라도 들어서 다행이었다. 이 책은 젊은 친구들이 넘기엔 버거운 허들이다. 산전수전을 겪지 않은 독자가 그의 생애를 과연 흡수할 수나 있을까. 이 작품의 리뷰를 이순신과의 가상 인터뷰 형식으로 옮겨본다.


* 해군으로써 먼 조상 수병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 수군의 몸은 내 몸이며 내 몸은 수군의 몸이니 나 역시 자네에게 영광이다.


* 이 책은 ‘칼의 노래‘라는 충무공 일대기 입니다. 충무공이 직접 기록한 것처럼 쓰였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신을 기리며 적은 것이니 이견은 없다. 다만 신을 얌전한 고양이처럼 적었던데 본디 나의 성정은 점잖지 않다. 말투도 저서와 전혀 다르다.


* 똑같은 말투십니다. 충무공을 성웅이라 부르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먼저 신은 충무가 아니다. 책을 살피면 알 것이다. 후세대가 떠받들 만큼 내 공로는 크지 않다. 신을 신격화하지 말라.


* 책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셨는데 정녕 임금을 원망하지 않았습니까.
- 장수를 따르지 않는 부하가 없듯 임금을 거스르는 무인이 없다. 사정이 무엇이든 명령 불복종은 임금을 기만한 죄이니 형벌은 마땅하다. 이 몸의 고통으로 병사들의 목숨을 보전했으니 그거면 되었다.


* 출옥 후의 상황을 들려주십시오.
- 히데요시가 온다는 풍문으로 임금의 죽음을 면사 받은 몸이었다. 무인에게는 치욕이었으나 사지를 고를 수 있었으니 부름에 답하였다. 임금의 관심은 오로지 죽인 적의 머릿수였다. 수군에게 육군과 합류하라는 알 수 없는 명을 내렸고, 혼란 중에도 권위를 더 찾았다. 조선의 존망은 전쟁보다 군 내의 부조리에 있었고, 신의 적은 바다 건너에만 있지 않았다. 나는 적에게도 적이요, 나라를 갉아먹는 자들에게도 적이었다.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나의 칼은 울부짖었다. 아무리 적을 베어도 칼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 작품의 제목이 심정을 잘 대변하는 듯합니다. 전쟁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 적들과 내통하는 백성, 부하를 팽개친 탈영 장수, 부녀자를 겁탈하는 군인. 전쟁은 질서를 파괴했고 조선의 성곽은 안팎으로 무너져내렸다. 해상에서 적을 베면 육상에서 피난민들이 죽었다. 적에게 죽느니 나의 칼로 죽여달라며 애곡하는 백성도 보았다. 적은 백성을 포로 삼아 조선의 정보를 훔쳤고, 포로들을 적선의 격군으로 세워 야습해왔다. 포로 된 백성은 제 손으로 본국을 쳐야 했고, 나는 적선에 있는 백성까지 멸해야 했다. 죽음은 끝이 없었다. 적을 베는 나의 칼이 죽음까지 벨 수 없음에 통탄했다. 


* 충무공의 진짜 고뇌는 무엇이었습니까.
- 출옥 후 신은 더 이상 충신이 아니었다. 임금은 여전한 욕망으로 신을 주시했다. 그러나 명을 따르면 적에게 죽고 명을 어기면 임금에게 죽을 것이었다. 무사가 되어 임금의 칼에 죽을 수 없었다. 전쟁과 조정의 부조리함에 칼은 여전히 울었고 오르는 화를 억눌렀다. 민족을 구하려면 내가 죽어선 안되었다. 승리보다 백성의 안위를 위해 칼을 들었다. 군인에게 불필요한 연민이 버팀목이었다. 칼에 새긴 글자처럼 바다 위를 적의 시체와 피로 염했지만 다음날이면 바다는 흔적을 지워 태초로 돌아갔다. 적도 죽고 부하도 죽고 민족도 죽었다. 거듭된 승리가 허망함을 밀어내지 못했다. 위관들처럼 신도 헛것을 쫓았는지 모른다.


* 마지막 전투에 대해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 죽음을 예견했더라면 진즉 진린을 베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적선의 침투도 없었을 것이고 무수한 죽음도 막았을 터. 바다에서 자연사를 맞았으니 사지로는 썩 나쁘지 않았다. 다만 신의 죽음으로 장졸들이 동요되어선 안되었다. 나의 말이 지켜졌는지는 알 수 없다. 백성에게 된장을 나눠주고 온 게 다행이었다.


* 끝으로 이제라도 유언을 남기신다면.
- 이미 신의 일기로 적었으니 유언은 됐다. 다시 말하지만 신을 성웅이라 일컫지 말라. 왜군과 싸우다 죽은 수군의 하나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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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1-02-11 0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의 올해 독서 목표의 첫번째 과녁이었군요. 명성은 익히 들어보았으나 아직 안 읽어본 책입니다. 쓰신 리뷰를 보니 제 취향은 아닐 듯하네요.^^; 한 사람의 일대기 형식으로 캐릭터에 집중한 책일 듯은 하지만 총 만큼은 아니라도 피 질질 전쟁은 냄새부터 영~~ㅎㅎ 그나마 감질나는 독서 중에서 필이 꽂히지 않으면 유명한 작품이래도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평전 형식의 책은 저자의 관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 위험한 매력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 깊이가 있는 독자라면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것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느낄 텐데요,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오류가 있는 각인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감님께서도 그런 점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버거울 수 있다고 우려하신 거겠죠? 네가 그냥 커피라면 산전수전러는 티오피?ㅋㅋㅋ

예나 지금이나 내부의 적이 더 무섭네요. 리뷰에 쓰신 내용만으로도 이순신의 강한 성정, 신념, 당시 상황이 그려집니다. 명령 불복종 어쩌구와 된장 얘기를 보니 테스형이 떠오르네요.ㅎㅎ 그런데 말입니다ㅋ ‘전사‘도 ‘자연사‘라 말할 수 있는 건지요?^^;;

물감 2021-02-11 08:41   좋아요 3 | URL
저도 제 스타일은 아닌 책이었는데요, 초중반까지는 이순신의 고백록처럼 진행되다가 갈수록 특파원의 생중계처럼 공기가 변합니다. 처음처럼 분위기를 유지했다면 별5개가 아깝지 않았을건데요ㅎㅎ

한국사에 문외한인 저에게도 눈에 거슬리는 설정이 보이더라고요. 작품을 위해서 그런것이려니 하다가도, 말씀하신대로 각인될 수 있겠더군요. 그리고 평탄하게 살아온 독자가 이순신의 고뇌를 알면 얼마나 알까 싶어요. 저도 마찬가지죠^^

자연사는 작중 이순신이 직접 한 말입니다. 책을 읽어야만 공감하는 대목이죠. 된장도 그렇고요ㅎㅎ 그나저나 김훈 작가도 필력이 대단하네요. 순수하게 글맛이 당겨서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져요. ^^
 
무죄의 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2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박승후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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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입문하는 경우 무협/판타지소설 아니면 미스터리/추리소설이 가장 많을 텐데, 후자 쪽이면 다들 일본 문학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누가 일본 소설부터 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리된다. 그렇게 일본 소설만 주구장창 읽다 보면 갑자기 확 물리는 때가 오는데 이유인즉슨 재미를 떠나 글이 너무 가볍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내 소설을 읽자니 끌리는 게 없고, 서양 소설은 좀 부담스러웠던 그런 때가 있었다. 일본의 다른 장르를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처럼 고요하고 잔잔했다. 그 때문에 괜찮은 작품도 점수 주기는 애매할 때가 많았다. 그나마 만족스러운 건 일본 작가들의 사회소설이다.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을 다루다 보니 글이 가벼울 수가 없고, 주제의식과 메시지 전달을 위해 독자와의 소통도 자주 시도한다. 그래서 다른 건 안 봐도 사회소설은 즐겨본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별 다섯 개 플러스알파다. 


유키노는 애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그의 집을 찾아가 방화 사건을 일으킨다. 이 일로 남자의 아내와 두 딸이 죽었고, 유키노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변명도 저항도 없이 죄를 인정하는 그녀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드는 교도관. 어째서 사형은 살인죄에 해당되지 않는 걸까. 그리고 유키노는 어째서 사형 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화두가 뚜렷한 기존의 사회소설과는 다른 종류의 작품이었다. 하나하나 진실이 밝혀질수록 사형수를 옹호해야 할 것만 같은데, 그렇다고 저지른 범죄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당사자가 사형 받기를 원한다. 정녕 그녀는 이대로 죽어야만 할까. 재판장은 그녀의 인생사가 적힌 사형 판결문으로 사형수가 죽어마땅함을 공포한다. 하나같이 전부 왜곡된 사실뿐이었으나, 재판장이 그렇다 하면 거짓도 진실이 되었다. 이제 판결문의 내용이 작품의 목차가 되어 각 사건과 연관된 인물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무죄의 죄를 짊어지게 되었는지도.


그녀의 죄목은 부모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은 호스티스가 무책임하게 그녀를 낳은 것부터가 죄의 신호탄이라고 했다. 태어나서 죄송하다던 그녀였지만, 호스티스의 딸로 태어난 건 결코 그녀의 죄가 아니었다. 유키노를 낙태하려던 엄마를 갑자기 거절한 산부인과 의사의 변심이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재판장은 양부의 학대도 언급했다.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어 미쳐버린 새아빠는 술 먹고 유키노를 손찌검한다. 그 단 한 번의 만행이 유키노가 줄곧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자라온 배경으로 둔갑해있었다. 또한 중학시절, 일진들과 어울리며 강도 사건을 벌인 것도 사형의 이유였다. 사실은 절친을 위해 일진들과 맞서다 강제로 엮였던 것이고, 절친의 강도죄를 대신 뒤집어썼던 거였다. 사건의 내막들이 온통 왜곡되고 부풀려져서 억울할 법도 한데도 해명하지 않는 유키노.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될수록 독자는 동정심보다 그 일관된 태도에 더 관심이 생긴다. 미끼가 제법 맛있네요, 작가님.


성인이 된 유키노는 한 남자와 동거를 시작한다. 늘 버림받고 살아온 그녀는, 그가 온갖 쓰레기 짓을 해도 자신을 받아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나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고, 유키노가 방화로 복수했다는 것이 메인 사건의 전말이다. 이로써 남자는 여자한테 잘못 걸린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 유일하게 남자의 만행을 알고 있던 친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쨌거나 유키노는 무고한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왜곡된 내막이 있다는 의심이 들지만 독자는 작가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건 목격자들도 있고, 본인도 제 잘못이라고 하니까. 이렇게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의 내공에 다 같이 물개박수를.


작가의 밀당은 계속된다. 유키노가 매스컴을 타고부터 소꿉친구 두 남자가 등장한다. A는 변호사가 되어 가진 능력으로 수감 중인 유키노를 꺼내고자 한다. 그러나 친구의 제안과 설득을 깡무시하는 그녀. 반면 유키노처럼 풍파 속에 루저로 살아온 B는 그녀의 일기장에서 힌트를 얻는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었던 유키노의 마음을 모르는 A의 설득이 실패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B는 유키노가 단순한 인과관계로 사형을 원한 게 아니라,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게 이유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B도 그 입장이었다가 겨우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므로. 그제서야 법정에서 그녀가 B에게 보인 미소의 의미를 알겠더군. 자신이 누명을 쓸 수 있게 해줘서,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는 인사가 아니었을까.


등장인물이 온통 강자와 약자의 수직관계로 되어 있다. 약자는 매번 강자에게 짓눌리고 휘둘렸으며, 그 약자도 강자가 되면 똑같아지곤 했다. 그런 식으로 유키노를 아꼈던 사람들이 전부 그녀의 위기를 보고도 방관했었고, 이제 와서 자책하며 후회 중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녀의 삶을 망쳐버렸단 사실이 가장 아이러니하다. 정작 그녀를 괴롭혔던 인물들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다. 여튼 결말은 이변 없는 새드 엔딩이다. 유키노의 죽음이 방관자들 때문만은 아니니까. 오히려 해피엔딩이었으면 몰입이 다 깨지고 여운도 안 남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웃어준 단 한 사람, B를 통해서 A의 할아버지인 산부인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 사람에게라도 큰 사랑을 받는다면 그 아이는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 이 말이 작품을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더럽게 꼬여버린 인생에도 후회한 점 없었던 건, 늦게라도 참된 사랑을 받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그래도 괜찮은 삶이었다고 여긴 게 아닐까 한다. 진짜 이 책은 독자 스스로 문제 만들고 답을 찾게 하는 뭔가가 있음. 이러다 체하겄습니다요.


지금도 나는 유키노가 죽어야 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유를 발견하신 분은 댓글을 부탁드린다. 요즘 화제인 정인이 양부모나 조두순을 사형하라는 네티즌의 청원이 뜨겁다. 그게 이뤄지든 아니든 반대할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통해 사형 또한 살인이요, 부추기거나 방관하는 입장도 같은 행위란 걸 알게 되었다. 사회소설이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들을 알게 해줘서 좋기는 한데, 워낙 후유증이 커서 연달아 읽을만한 장르는 못된다. 그래서 다음은 개운하게 스릴러나 한편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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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1-02-03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으로 읽었던 소설이 뭐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50권 한 질로 된 동화책을 사주셨는데 몇 번씩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무협이나 판타지는 읽어본 적이 없고 추리소설은 루팡이나 셜록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일본 문학은 제게는 여전히 생소한 장르입니다. 글의 적절한 무게라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너무 무거워도 거부감이 들고 너무 가벼워도 허탈감이 들어버리니 말이죠.
사회소설은 부담감에 쉽게 손이 가지 않지만 <댓글부대>에 몰입해서 빠져들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사형 제도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지금은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건 막상 제가 아끼는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게 된다 해도 이런 입장을 견지할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 떨어진 시각에서 판단한다면,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죽이는 데 100%의 정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곡된 사실로 이루어진 진실이라는 문구를 보니 <인간짐승>의 재판 장면이 떠오르네요. 결론을 정해놓고 짜맞추어가는 거짓의 퍼즐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잖아요. 오히려 진실이란 게 너무도 허술해보이구요.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모순투성이라 그런 걸까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고 싶었다는 말이 마음아프네요. 스스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없었던 주인공의 마음은 얼마나 황량했을까요.
한 사람에게라도 사랑을 받았다면 적어도 그녀가 스스로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 같군요. 생명존중교육을 받으면 많은 강사들이 경험담으로 하는 말이거든요. 생명의 전화를 받으면서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막았던 경험담을 얘기해주면서 한 사람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거든요. 세상에 사람들이 얼마나 넘쳐나는데 나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눌 단 한 사람을 찾지 못한다는 게 이리도 어려운 걸까요.

저는 여주인공이 죽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죽고 싶었던 이유만 있었던 거라고. 죽음에 이유를 붙일 수 있는 이는 당사자 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생각이 많아지는 밤입니다.

물감 2021-02-03 22:38   좋아요 1 | URL
어릴때 읽은 동화책은 제외입니다. 저도 많이 읽어서 ㅎㅎㅎ 일본소설의 가벼움은 글만이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도 포함입니다. 잔잔한 바다로 표현한 것은 텐션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책이 많았어요. 순문학 같은 경우라면 모를까, 그런 성격이 아닌 장르들도 좀 그래요. 같이 읽었던 ‘모래 그릇‘의 마쓰모토 세이초는 어떠셨나요? 저는 저음 구간에서만 노래부르는 가수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반대로 일본에서는 한국문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네요^^

내가 피해자라고 가정해보면 사형제도를 절사반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나를 죽도록 괴롭게 한 가해자가 와서 용서를 구한다면 난 용서 못할거 같거든요. 근데 사형을 생각하면 죄수보다도 집행자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것 때문에 사형제도를 반대하게 되었어요.

여주인공은 전장에 나가는 마음으로 죽음을 원했던 게 아닐까요.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니 독자가 생각해볼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여튼 너무 무거운 작품이었지만 지극히 제 취향이었습니다^^

나비종 2021-02-03 23:26   좋아요 1 | URL
동화책, 가볍게 까인 건가요?ㅋㅋ 생각해보니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일본소설을 몇 권 읽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제목도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가볍긴 가벼웠나 봅니다.ㅎㅎ
헉! 여기서 <모래그릇>이! 꾸역꾸역 읽느라 체할 것 같았는데 스르르 빠져나간 모래 글처럼 막상 모래알갱이 몇 개의 꿉꿉한 존재감만 남았던 그 소설이요?ㅋㅋ
그러게요. 일본에서 바라본 한국 문학의 빛깔이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그러네요. 제가 피해 당사자라면 더더욱 그렇겠습니다.
집행자의 입장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물감님의 이유에 공감이 가네요.

여주인공이 죽음을 원했던 이유는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의견을 말하기가 어렵네요.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하시니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상황인가 봅니다. 무거운 작품일 것 같아서 나중에라도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읽어보지도 않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말한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워 물감님의 공간에서 주로 함께 읽은 책에 관해서만 댓글을 적으려고 했는데요, 어쩌다 이 리뷰를 몰입해서 끝까지 읽어버리는 바람에^^;
무슨 글이든 일단 읽었으면 저의 생각을 적기로 했거든요. 정성껏 리뷰를 써서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신 분에 대한 작은 감사의 표현으로 한 줄이라도 소감을 남겨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 ㅋㅋ

대대댓글은 네버엔딩스토리로 이어질까 자제하는 편인데요, 적어주신 대댓글의 첫 단락에서 물음표를 보는 바람에 그게 또 직업병이라 질문이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줘야 마음이 편안해져서요, 쩝. ‘답변: 그지 같았습니다.‘ 이 한 마디가 저토록 길어졌네요^^;;

*가래떡 댓글의 튕김으로 인한 빡침을 방지하는 법
: 일단 댓글저장을 하기 전에 블록설정을 하여 복사를 해놓습니다. 나물 모임의 댓글에서는 항상 이런 방법을 쓰지요.ㅎㅎㅎ
 
인간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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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는 졸라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의 문학은 졸라 재밌고 졸라 어렵다. 해설까지 총 600장이 넘는 이 책을 미친 듯이 흡입하며 읽어버렸다. 작가주의와 장르문학이 결합된 고전소설인데, 이렇게 작품성에 대중성까지 갖춘 케이스는 정말 보기 드물다. 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문과와 이과를 제패하고 예체능까지 마스터한 엄친아, 엄친딸인 셈이지. 이런 천재들이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부담인 건, 그들만의 세계를 아무나 이해할 수 없기 때문. 아무튼 에밀 졸라는 천재다. 나로서는 플롯을 소화하는 것만도 벅찬, 감당 안 되는 사이즈의 작품이어서 부분 리뷰만 간단하게 쓰기로 한다.


철도회사 부역장은 아내의 정부였던 법원장을 살해했고, 그 광경을 기관사 자크가 목격한다. 법원장의 죽음은 지역에서 큰 화제였고, 부역장과 기관사는 법원에 소환된다. 부역장의 거짓 진술로 위기를 넘겼지만, 법무부의 고위 관료는 루보 부부의 짓임을 알고 있었다. 근데도 눈감아준 것은 법원장의 과거로 인해 법원이 성추문 소굴로 찍히는 걸 피해야 했으니까. 총선을 앞둔 야당의 압박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법무부의 체제 유지를 택한 관료의 입장을 통해, 정계와 법계의 부조리 및 부패함을 꼬집는 작가의 의도를 볼 수 있다. 루보의 아내 세브린은 관료를 찾아가 아첨하면서 관료가 부부의 짓을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눈치챈다. 이런 식으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을 농락하는 놈을 갖고 노는 놈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그냥 미쳤다.


부역장은 그의 범행을 모른척해 준 기관사를 아군으로 만들기로 한다. 식사도 자주 하며, 아내의 에스코트를 부탁하는 등 필사적으로 자크와 친해진 부부. 남편은 아내와 멀어져 도박에 빠지고, 세브린과 자크는 곧 정분이 나버린다. 이 남자에게는 살육을 갈망하는 짐승의 자아가 있었고, 그것은 성욕과 함께 증상을 보여왔다. 그 이유로 여자를 멀리해온 그가 세브린에게는 무증상을 보였고, 드디어 구원받은 기분으로 신나게 밀회를 즐긴다. 그의 전부였던 기관차 라리종호는 세브린에게 밀려났고, 눈폭풍을 겪은 뒤로 상태가 점점 나빠진다. 어느덧 잠잠하던 짐승이 깨어나 그녀를 죽이려 하는 자신을 통제하느라 죽을 맛인 자크.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려고만 하는데, 사랑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절규하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짠하던지. 이렇게 살바에는 차라리 모태솔로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짐승과 싸우던 자크는 직접 짐승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루보를 살해하고 세브린과의 살림을 계획한 것이다. 거기에는 자신들이 걷게 될 꽃길뿐 아니라, 그의 고질병이 고쳐질까 하는 기대감도 한몫했다. 하지만 짐승이 본능대로 하는 살인과, 인간이 의도대로 하는 살인의 차이를 깨닫고 또다시 절규하는 자크. 짐승에게 이성을 뺏기지 않으려는 장면들은, 작가가 말하는 ‘인간다움‘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루보와 자크 말고도 짐승이 된 여러 인물 중에서 자크를 사랑한 플로르의 짐승화도 볼만했다. 자신을 버린 남자에 대한 복수심은 라리종호를 전복시킴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승객들의 떼죽음 광경에 정신이 든 플로르는 괴로워하고 결국 자살해버린다. 이렇듯 달콤한 욕망의 속삭임에 굴복하면 그 결과는 파멸뿐임을 작가는 다각도로 증명하였다. 시대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욕망을 좇아 짐승의 탈을 쓴다. 반대로 인간의 탈을 벗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건 이 책은 인간의 타락을 방지하기보다 인간이길 거부한 자들에 대한 경고로 쓰인 작품 같았다. 다 같이 반성합시다.


후반부에 석공의 재판 자리에서 작가는 미친 듯이 상황을 비틀고 비틀었다. 정황상 살인자가 된 석공과, 그를 히든카드로 이용한 부역장. 두 사람은 서로 진실을 말하나, 그럴수록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된다. 이제 거짓은 참이 되고, 선은 악이 되었으며, 짐승이 인간을 지배하는, 믿고 싶지 않은 결말이 되었다. 비록 권선징악은 아니었지만 그게 더 현실적이라서 여운이 남았다. 특히 폭주하는 기관차를 짐승으로 표현한 마지막 장면은 최고였다. 마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감상한 기분이다. 에밀 졸라는 ‘루공 마카르 총서‘라 하는 스무 편의 작품을 썼다는데, 국내에는 미출간된 책이 너무 많아서 짜잉난다. 빨리빨리 좀 출간해주쇼, 현기증 나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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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1-01-31 0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과와 이과를 제패하고 예체능까지 마스터했다‘는 데 격하게 공감합니다!ㅎㅎ 탄탄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힘, 이토록 칙칙할 수 있을까 짐승의 스멜이 훅훅 뿜어지는 배경묘사, 사실적인 표현,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인 듯 곳곳에 널려있는 생동감있는 캐릭터까지 뭐하나 버릴 게 없더군요. 엄지척!하며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을 농락하는 놈을 갖고 노는 놈‘이라는 표현은 어떻게 해야 나오는 건가요!ㅋㅋ 맞아, 맞아!하며 뿜었습니다.ㅎㅎ

자크라는 캐릭터를 보고 소름이 돋았거든요. 뉴스 기사에 올라오는 인간들 중 저런 인간들이 몇 명쯤은 되는 것 같아서요. 무려 1890년의 작품인데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걸 보면, 이런 기질은 DNA를 통해 대대손손 전달이 되는 걸까요.
모태솔로도 믿을 게 못되는게 드러나지 않는 휴화산일지 몰라서ㅋㅋ

인간의 탈을 벗는다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성악설의 탈피 버전인 듯하여ㅎ

저도 마지막 장면이 정말 좋았습니다. 작가의 메시지가 폭발하는 것 같았거든요. 드문드문 묘사한 짐승스런 인간들에서 ‘에브리바디 짐승‘을 외치는 것처럼. 기차 안에 실린 군인들이 짐승처럼 느껴졌거든요.
23년 동안 20편이니 총서를 뽑아내는 수준이 거의 자판기급이라 졸라의 다른 작품도 전부 이런 고퀄일까 싶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참 좋았습니다.^^

물감 2021-01-31 11:28   좋아요 1 | URL
정말 놀라운 작품이었고, 놀라운 작가였습니다ㅎㅎㅎ 새로운 거장을 알게 되어 기쁨을 느낀 게 얼마만인지요 ^^ 스토리며 캐릭터에 연출, 구성, 주제의식에 글맛까지 뭐하나 빠지지 않는 팔방미인의 작품이더랬죠! 진짜 엄친아 엄친딸 포스였습니다. 크으.

보통 인간의 괴물/짐승 자아를 다루는 작품들은 모 아니면 도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표현하냐에 따라 흐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상황에 집중하도록 하고 주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필수장치가 되기도 하는데, 자크는 후자였던 것 같아요. 또한 짐승의 기질은 과연 유전인건지, 환경적 요인인건지 궁금하네요. 그러고보니 휴화산의 모태솔로가 언제 활화산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점으로 볼 때 환경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ㅎㅎㅎ

다들 마지막 씬을 극찬하더군요. 저역시 놀랐어요. 어떻게 쇳덩어리 기차를 생명있는 짐승으로 생각을 했는지, 타고있던 군인들도 똑같이 묘사를 했는지. 이런 천재 작가들을 접할 때마다 과거에 다 쏟아져나와서 이제는 더이상 천재가 없는걸까 싶어져요^^;; 작가를 좀 더 조사해보니까 루공 마카르 총서 말고도 꽤 많이 썼더라고요. 국내에는 거의 없지만. 여튼 그 천재성을 썪히지 않고 부지런히 활동한 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ㅎㅎㅎㅎ 에밀 졸라의 작품은 나중에 또 선정해볼까 합니다. 벌써 1월도 다 갔네요. 여전히 바쁘시죠? 어째 두꺼운 책을 선정하기가 죄송하네요ㅋㅋㅋ그래도 짬내서 파이팅 하는걸로!
 
관통하는 마음 - 제7회 스토리공모전 대상 수상작
전우진 지음 / 마카롱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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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은 나와 맞지 않아서 거의 손대지 않았으나 이제는 편식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는 한국 고유의 고리타분함을 찾아보기가 힘들던데, 과연 문학계도 세대교체가 되긴 했나 보다. 암튼 내년에는 국내 문학을 많이 읽는 것이 목표이다. 이번 리뷰의 책은 있는 줄도 몰랐던 교보문고 문학 시상제의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식상해 하는 타임슬립 드라마였다. 개인적으로 먼 과거로 가는 설정보다 짧은 시간을 돌리는 편을 선호한다. 능력 발동시 곧바로 리스크가 생기는 후자의 경우가 전자보다 몰입이 잘 되기 때문. 단점은 능력을 쓰는 횟수가 잦다 보니 같은 장면 반복해서 틀어주는 예능 프로처럼 느껴진다는 거. 그래도 대상작이면 이름값할 거라고 믿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스토리는 좋았는데 주인공이 밥맛이다. 읽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나는 추천하지 않겠다.


주인공 정숙은 손바닥을 찔러 관통하면 15분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능력자이다. 약간의 과거로 돌아가도 손의 통증은 그대로 남기에 어지간해서는 능력 없이 살아왔다. 남편의 퇴직금으로 편의점을 차린 그녀는 초 잘생긴 신입 알바생하고 바람난다. 난생처음 겪는 사랑 감정에 정신 못 차리는 정숙은 알바생 때문에 여러 번 손을 뚫고 시간을 돌린다. 그렇게 사랑에 눈먼 정숙은 알바생의 먹구름을 보지 못했고, 소나기에 온몸이 젖었을 때쯤 정신이 든다. 그러나 더 큰 먹구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숙은 주책의 아이콘이다. 그리고 감정 컨트롤이 전혀 안되는 사람이다. 이기적이다가 급 인간적으로 변하고, 화났다가 금방 시들어버리는 참 피곤한 유형이다. 그 때문에 온갖 해프닝을 겪는 그녀가 큐피드 화살까지 맞았으니 책 제목을 ‘정숙은 못 말려‘로 수정해야 할 판이다. 알바생과의 만남으로부터 가족보다는 자신을 위한, 아니 알바생을 위한 삶으로 전환한 정숙. 그녀의 늦바람을 보면서도 그러려니 한 것은 나름의 소녀감성 때문이었다. 순수함과 순진함 사이에서 나온 그녀의 행동들이 그나마 내 이해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러나 풋풋한 감정들이 끈적끈적한 더티 러브로 바뀌면서 이해 범위를 넘어섰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작품의 모티브인 듯? 심지어 남편의 외도로 가정이 무너진 미용실 언니를 매일같이 보고서도 외도를 한다는 게 문화충격이었다. 그러면서도 괜히 찔려가지고 남편에게 짜증과 면박 주기를 반복하는 정숙. 그래도 중반까진 인간미가 있었는데 어쩌다 인성 파탄 비호감이 되었을까.


늦깎이 사랑꾼으로 거듭난 정숙은 알바생 때문에 수차례 손을 찌른다. 문제는 본인과 링크되어있는 딸에게도 고통이 간다는 사실. 엄마가 손을 찌를 때마다 딸은 갑자기 찾아든 고통을 참아야 했다. 그러지 말라는 딸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정숙은 시간을 돌리며 제 갈 길을 간다. 그러다가 미용실 언니에게 외도를 들키고, 유부남과 연애하는 언니의 딸을 알게 되고, 갑자기 임신 고백을 하는 정숙의 딸과, 편의점에서 터진 대형사고까지. 잇따라 발생한 사건들에 정신줄을 놓다가 마침내 콩깍지가 벗겨진 정숙. 이제 알바생은 퇴장하고, 정숙의 가족은 비정상회담을 시작한다. 아내의 바람을 알고도 모른척해왔던 남편은 정숙이 반성하길 바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반성하기는커녕 끝까지 당당한 그녀를 보면서, 이건 정숙보다 작가가 욕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인데 성깔을 고쳐주던가, 아님 참교육을 해주던가 뭐라도 했어야지. 아니면 반전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나. 더 허무했던 건 내쫓자마자 바로 떠난 알바생이었다. 왜 작가는 그렇게나 비중 있는 인물을 단칼에 잘라버린 걸까. 배드 엔딩이면 캐릭터를 막 다뤄도 되는 건가.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혹시나 제 글을 읽고 계신다면 댓글 좀 달아주시길.


이 작품이 왜 스토리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는지 알겠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몰라 지루할 새가 없는 플롯이다. 개인적으로 작가 본인을 완급조절 담당 캐릭터로 만든 설정이 신선했다. 작품 속 우진은 실제 작가의 프로필과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칠칠맞은 정숙을 잡아주기도 하고, 알바생의 묘한 냄새를 감지해내는 등 분위기가 고조될 때면 한 번씩 등장해 교통정리를 해준다. 그런 역할이구나 하고 넘길 수 있지만, 우진의 개인사를 통해 작가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심정으로 버텨왔는지를 알게 한다. 이 분도 고생을 많이 하셨더만. 여튼 늦게나마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차기작은 제발 멀쩡한 캐릭터로 커밍해주세요.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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