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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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자신과 친구 할 수 있다고 은근슬쩍 속내를 비춘 바 있다. 그에게 ‘개츠비‘가 있었듯이 나에게는 ‘돈키호테‘가 있다. 그래서 나는 하루키의 그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돈키호테>를 감명 깊게 읽어본 사람이라면, 세 번은 됐고 한 번이라도 읽고서 진정으로 가슴 벅찼다면 나와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겠다. <돈키호테>는 나의 몇 없는 인생 책 중 하나이며, 나 같은 이상주의자들의 최상급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껏 내가 쓴 글 가운데 가장 정성 들여 쓴 리뷰 역시 <돈키호테>이다. 이러한 나님의 귓가에 들려온 김호연 작가의 신작인 <나의 돈키호테>는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다. 아니, 저랑 잘 맞는 분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요...


내가 지인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우리들은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 그리고 스마트 시대까지 다 경험한 복받은 세대라고. 세기말 감성 따윈 모르고 자란 요즘 애들과 달리 우린 전부 겪어봐서 참 다행이라고. 그렇게 하나하나씩 추억 팔이 하다 보면, 그때 그 시절의 향수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현실이 미워지기도 한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는 것이 삶의 순환이라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최대한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김호연 작가에게 정말 감사하고 있다. 현재 많은 소설가들이 근미래 배경의 작품을 쓰는 반면, 김호연 작가는 근 과거에서부터 현시점의 배경을 다룬 작품을 써낸다. 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당장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위로 한 컵씩 따라주는 그런 기분이랄까. 장담컨대 이 분은 자신의 사명과 향방을 확실하게 파악하셨다.


방송 PD를 때려치운 진솔은 귀향 후 옛 아지트였던 비디오 가게를 찾아간다. 그곳의 주인장인 ‘돈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고, 건물 지하방에 텅 빈 비디오 가게만이 남아있었다. 듣자 하니 아저씨가 종적을 감춘지도 꽤 됐단다. 그렇다면 아저씨도 찾고 용돈벌이도 할 겸 유튜브 채널을 파기로 작정한 그녀. 그렇게 해서 가게명을 따라 ‘돈키호테 비디오‘ 채널이 탄생했다. 진솔은 아저씨와의 일화 및 추천 영화를 소개해가며, 아저씨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공개 수집하였다. 그러다 알게 된 아저씨의 인맥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따곤 했는데, 알고 봤더니 돈 아저씨가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네, 글쎄?


돈 아저씨의 이력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대학시절엔 학생운동으로 감옥을 다녀오고, 출소 후 학원계에서 영어 강사로 정점을 찍었다가, 출판계로 전향해서 번역을 하다가, 영화사로 들어가서 작품 시나리오를 썼단다. 그랬던 아저씨가 왜 노잼도시 대전까지 와서 곰팡내 나는 비디오방이나 차렸느냐면, 사사건건 부조리를 참지 못하고 윗선과 싸웠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든 권력자들의 행패가 뒤따랐고, 양반이 못되었던 아저씨는 남의 일까지도 대신 나서서 부딪히곤 했다. 자 그럼, 돈 아저씨의 과거 일들이 시사하는 바가 대체 무엇일까. 내게는 물불 안 가리는 도전정신보다도 신념과 반하는 현실 앞에 막 굴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모두 알다시피 돈키호테는 제 신념 앞에서 둘도 없던 막가파 오야붕 아니었던가.


정착 못하고 내내 옮겨 다녔던 아저씨의 인생이, 현대인들에게는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돈키호테를 영 이해 못 할 자들에게는 말이지. 돈 아저씨가 썩 귀감이 될만한 인물은 아니라지만 요즘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수많은 청년들이 경제활동은커녕 독립할 생각조차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주소이다. 오래전 멈춰버린 경제 성장, 탕후루만도 못한 노오력, 열정페이의 배신까지 겪은 세대들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당장 나부터도 어디에다 희망을 걸어봐야 할지 모르겠거든. 하여 지금은 무모하기 짝이 없던 돈키호테 식의 정신승리라도 가져야 하지 않나 싶네만.


기나긴 추적 끝에 돈 아저씨와 상봉한 주인공. 여전히 꿈을 좇는 돈키호테의 면모였건만 이제 아저씨는 자신을 ‘산초‘로 불러달란다. 돈키호테와는 정반대 캐릭터인 극 현실주의자 산초라니, 이게 다 무슨 말인가. 결국 아저씨도 매몰찬 현실에 한 수 접으셨단 말인가. 정신이 멀쩡해져서 일상으로 돌아간 돈키호테처럼? 아저씨는 자신의 옛 칭호를 진솔에게 물려주고, 저 대신 돈키호테의 후예로 살아가주길 바란다. 산초처럼 먹고사니즘이 다였던 진솔은 지인 한 명 찾겠다고 ‘유튜버‘라는 레드오션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쑤셔댄 덕분에 목적은 달성했으나 그길로 유튜브 채널 또한 수명이 다해버렸다. 또다시 먹고사니즘을 걱정해야 할 노릇인데,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끌리는 대로 무작정 돌진해댔으니. 진정 그녀는 영락없는 돈키호테의 후예였다.


세상 명랑했다가 사회에 찌들어 점차 조용한 성격으로 바뀐 케이스가 수두룩 빽빽하다. 열정이 고갈된 순간, 우리는 돈키호테에서 산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산초는 산초만의 인생을 살면 된다. 그러나 세상을 뒤집는 일들은 예로부터 또라이 담당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들 모두가 곧 돈키호테의 후예 아닐런가.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안의 세계를 뒤집으려면, 눈앞의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돈키호테 같은 광기를 품어야 한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끝으로, 책에는 없는 작가의 말을 대신 적어본다.


나댄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from. 정신승리 수석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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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11 1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마지막 글이 참!
글치않아도 돈키호테를 좋아하시는 물감님께서 이 책을 읽을까 했더니 정말 읽으셨네요. 주로 세계문학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말이죠. ㅎ
그 아저씨라는 분은 작가 자신을 변주한 것 같네요.
울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모험을 안하고 모난돌 안되려는 경향이 있긴하죠. 실패할 수 있는 기회도 있어야 하는데 그럼 인생 끝인줄 알잖아요. 나대는 거 자체보단 그걸 제거대상으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고. 암튼 잘 읽었습니다. 얼마전 박균호 작가님도 돈키호테 극찬하셨는데 언제고 꼭 읽어보겠습니다. 그때까지 물감님과 제가 친구가 되는 건 보류하는 걸로. ㅋㅋㅋ

물감 2024-05-11 11:18   좋아요 2 | URL
제 취향이 세계문학이라고 한 번도 생각을 못해봤는데, 돌아보니 제가 고전만 읽고 있었네요? 지금 알았습니다 ㅋㅋㅋㅋㅋ 여름이 오니까 슬슬 장르소설 몰아 읽어야겠어요.
작가님이 항상 신간을 보내주셔서 안 읽을수가 없습니다. 물론 안보내주셔도 찾아 읽었을테지만요. 스텔라 님에게 천명관 작가가 있듯이, 제게는 김호연 작가가 있습니다 ㅋ

저는 아저씨처럼 화려한 이력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행보를 걸어왔어요. 물질을 쫓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어쩌면 남들 눈에는 제가 모난돌이었겠다 싶습니다. 그래도 신념대로 살았기에 후회는 없어요 하하핳.

제 예상에 스텔라 님도 돈키호테 좋아하실 거 같아요. 막 열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젊은 세대들은 별 감흥이 없을테지만, 인생 선배님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거로 생각되고요. 이건 제 사견인데요. 생활에 딱히 불편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이런 휴머니즘에 시큰둥 하더라고요. 제가 친구가 적은 이유를 알겠네요 .... ㅋㅋㅋㅋ 그러니 어서 제 친구가 되어주십쇼!

구단씨 2024-05-12 2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마낫, 이 리뷰를 이제야 봤어요.
정말로 마지막 단락에서의 문장이 꽉 박히네요.
광기를 품어야 한다. ^-----^

사실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계속 읽게 되는 게 아니라,
알 것 같으면서도 종종 모르게 되는 인생의 순간순간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듯했어요.
멈추지 않을 용기, 님 말씀처럼 광기를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 작가 신작 알림해놓고 있다가 읽게 되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재미와 감동이네요.

물감 2024-05-12 23:49   좋아요 1 | URL
막 김호연 작가님의 페이퍼를 작성했는데, 그 사이에 댓글을 써주셨네요 ㅎㅎㅎ
광기를 품어야 한다! 요즘 시대에 딱 들어맞는 슬로건 같지 않나요 ^^
구단씨 님도 김호연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시는 거 잘 알고 있었지요~~ 이번에도 즐겁게 읽으셨다니 제가 다 기분 좋습니다 ㅎㅎㅎ 부디 구단씨 님도 멈추지 않을 용기를 간직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