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브라더스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간 <파우스터>를 통해 알게 된 김호연 작가. 그 뒤로 완전히 반해버려서 그의 작품을 전부 완독할 예정이다. 늦었지만 그의 데뷔작을 읽으며 오랜만에 사람 냄새 팍팍 나는 따스함에 스며들었다. 인생의 지혜는 꼭 공자, 노자의 책에서만 얻는 게 다가 아니다. 이런 인간미 넘치는 책 속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억지로 감동 짜내는 휴머니즘 소설도 많은데, 이처럼 망가지다 코믹했다 한 작품은 꾸며내지 않아서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메가 히트작을 뽑아내는 유명 작가들보다 이런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잠재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들보다 예능인들이 전 국민에게 더 사랑받는 것처럼 말이다. 역시 사람은 말야 빈틈도 좀 있어줘야 하는 거야.


나름 유명했던 만화가인 주인공은 몇 달치나 월세 밀린 백수 신세이다. 나 살기도 힘든데 해외로 이민 갔던 김 부장이 갑자기 귀국하여 주인공 집에서 신세를 진다. 불쌍한 사정과 옛정 때문에 어영부영 넘어갔는데, 아는 선배가 이혼하자는 아내를 피해 본인 집으로 피신한다. 결국 갈 곳 없는 이 남자도 받아주어 같이 낑겨 살게 된다. 점점 늘어나는 이 불청객들 때문에 건물주 할아버지한테 야단 맞고 스트레스만 쌓이는 만화가 오영준. 그러다 고시 준비하는 후배를 동네에서 만났는데, 이놈마도 자기 집을 아지트처럼 들락날락하다가 거의 눌러앉다시피 한다. 문제는 이 집이 8평짜리 원룸 옥탑방이란 말이다... 아무튼 이 좁아터진 집안에서 미래가 불투명한 수컷들의 리얼 휴머니즘 동거 스토리가 시작된다.


남자 네 명이 각방 쓰고 동거해도 불편할 판에 원룸에서 동거라니 생각만 해도 토나오는데, 주인공이 진짜 인심 좋은 건지 아님 그냥 호구인 건지 모르겠다. 더 웃긴건 이 비좁은 집에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각자가 엄청 경계하고 눈치싸움을 한다. 서로 떳떳지 못하게 동거하게 된 주제에 말이다. 그러나 미친 친화력과 넉살로 무서운 집주인 할아버지까지 친해져버리는 이 남정네들. 선배가 들어오면서 에어컨을 가져오고, 후배가 TV를 가져오고, 김 부장은 요리를 하고. 그렇게 적막한 광야 같은 집안에 햇빛이 들고 바람이 분다. 옥탑방이 남들의 아지트가 되어 속상해하면서도 정 때문에 누군가 부재중이면 허전해하는 주인공. 티격태격해가면서 서로에게 기댈 곳이 되어주고 위로해주는 공생관계가 된 망원동 브라더스. 본문에 나오는 말처럼 꼭 피가 섞여야만 형제이고 가족인 게 아니다.


결국 선배는 이혼 도장을 찍었고, 후배는 고시 시험에 떨어졌고, 주인공은 썸녀와 깨졌다. 그나마 김 부장이 오픈한 해장국 가게에 희망을 걸었건만 영 신통치 않다. 그래도 고난과 역경의 터널을 지나니 마침내 양지로 나온다. 이혼한 선배도 옆집 과부와 잘 돼가고, 후배와 김 부장은 같이 장사하며 삶을 되찾고, 주인공도 새로운 인연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인간이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법인 가보다. 이 책은 입장이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뭉쳐서 으쌰 으쌰 재기하는 흔한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넘어졌을 때 스스로 툭 털고 일어나는 법을 터득시켜준다. 그래서 좋다. 둘러보면 세상은 온통 루저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살아간다. 그것이 삶의 숭고함이 아니겠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실패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넘어지고 부러지고 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란 드라마가 아닐까. 자비 없는 세상은 방패도 없고 갑옷도 안 입은 나에게 쉬지 않고 화살을 날려댄다. 내가 무슨 능력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피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평생을 상처투성이에 전의를 잃은 졸병 1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간다. 오늘보다는 나아질 언젠가를 바라며.


마지막에 이뤄진 주인공의 러브라인은 진짜 부러워서 질투날 정도였다. 연애세포가 소멸된 남자들의 로망을 작가가 제대로 알고 계신 듯? 분명 주인공을 되게 별로인 것처럼 묘사했으면서 여자가 생기다니, 뭔가 배신감 들었지만 같은 루저로써 내가 다 기쁘더라. 아 갑자기 안구에 습기가... 가끔은 꼭 영화화되었으면 싶은 소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오히려 이 책은 절대 영화로 만들지 말고 이대로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느낀 이 감동과 낭만을 영상 같은 것들로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다행히 영화는 없고 연극으로는 재구성된 적이 있었단다. 아무튼 순문학보다는 이런 대중문학이 더 잘 맞는 나는 점점 이 작가에게 반해버렸다. 나중에는 ‘망원동 시스터즈‘로 리부트 작품 하나 써주세요. 똥꼬발랄하고 엽기 백치미 가득한 언니들 잔뜩 넣어주시고요. 작가님은 MSG 가득 넣어도 이해해드리겠습니다. 배시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9-05-31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으면서 뭔가 엄마 미소를 짓게 되게요. 이 네 남자 아주아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ㅎㅎ
망원동 시스터즈 써달라에 저도 한표! ^^

물감 2019-05-31 11:30   좋아요 1 | URL
앗, 저도 엄마 미소 지었다는 내용썼다가 지웠는데ㅎㅎ 설해목님과 통하였군요^^
노래도 남자버전 여자버전 리메이크가 있듯이, 소설도 그런게 있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생각난게 망원동 시스터즈였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