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장미꽃 만들어 주어요. 피아노, 장미꽃으로 장식할래요."
우리 집 선화공주 말한다.
그래서 집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종이 접기 책"을 보면서 만들었다.

"아빠, 이건 장미꽃 아녜요."

사실 나도 접으면서 "이것이 진짜 장미냐?" 그렇게 느끼면서도,
"책이, 이건 장미다 하는 거니까 장미지."
해서 어렵사리 접었던데, 선화공주 못마땅해서 불만가득.

며칠 후, 우연히 chika님 서재에서 매우 멋진 장미꽃을 발견.
chika님께 장미접기 HP를 소개받았다.
밤마다 조금씩 접어 봤던데, 이것 되게 어렵고 귀찮았다.
특히 마지막 돌리는 부분에서 종이가 자꾸 찢어졌다.

그래도 실패를 몇번 거듭해서 겨우!!
짜짠!!

왼쪽 멋진 장미꽃.
오른쪽은  선화공주가 "이건 장미꽃 아녜요." 라고 한 "장미"


컬러풀 장미꽃들.


그런데 피아노를 다 메울려면 몇개 더 만들어야 하나?




선화공주도 도전하지만 아직 잘 접지 못한다.
그래서 당분간 계속 내가 접어 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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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0-09-20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근사합니다. 최고! 최고!

세실 2010-09-20 0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예뻐라. 어쩜..피아노 위가 참 깨끗해요. 흐~~

ChinPei 2010-09-20 14: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그것 정말 멋있죠?
세실님, 호호호,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손때 투성이에요. ^^;;;

chika 2010-09-20 15: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추천하다가 삭제를 클릭할뻔했어요;;;

이쁘군요. ㅎ
저는 장미접기용으로 나온 조금 두툼한 종이로 접었습니다. 선물을 하려고 생각중인데, 정말 많이 귀찮...^^;;;
(저는 TV보면서 한두개씩 접고 있어요 ㅎ)

ChinPei 2010-09-21 1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귀찮애요. 그러나 이걸 접는 시간은 매우 마음이 안착해서 좋아요. ^^

pjy 2010-09-21 18: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미를 접고 계시는군요^^ 피아노도 여백의 미가 필요합니다ㅋㅋ;

ChinPei 2010-09-21 2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딸네미가 고집이 세서,말을 듣지 않다니까요.
 

모니터쳐다보고있다가마우스잡고고개를흔들며잠이들었다.순간적으로화들짝놀라깼...다고생각했는데지금도잠시졸았다.  

순교자에대한책느낌을적으려고컴을켠거지만아무생각도나지않는다.순교자와엔도슈사쿠의침묵이떠오르고사실과진실의구분이모호해지는가운데그모든걸. 짧게메모라도해서나가야겠다 싶었는데아무생각도나지않아. 

항상시큼한맛이더강한포도주만마셔서세상모든포도주는그런가생각했었는데오늘마신포도주는달콤한향에맛자체도그리강하지않더라.그거마시 

책선물도해야하는데정리하기가딱귀찮다.내맘대로해야겠다.졸다가벌써십분을넘겨버렸다.서평은절대로못쓴다,라는확신이들고있으니그냥자야겠다.쌓여있는책이무섭다.신기하네. 

좌파들의반항,을읽었는데무슨말을하려고하는지도통모르겠다.하긴좌파가뭔지도모르면서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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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10-09-19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주무셨어요?
 

 

 

여름이 갑니다 

여기는 제주도였어요 

태은이가 물속 모래를 만졌지요 

제주도에 있었던 짧았던 시간 속에  

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생일축하드려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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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0-09-17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은에게 참 좋은 여행이었겠네요,

chika 2010-09-17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태은이 태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많이 컸네요 ^^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곳을 볼수 있는 곳에 사시는 치카님. 

치카님이 계신곳에 가려면 꼭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야만 가능한 조금은 그리운 곳에 사시는 치카님. 

우리나라에 태풍이 온다 그러면 100% 그 영향을 몸으로 느끼는 곳에 사시는 치카님.  

루피의 활짝 웃는 얼굴로 이 곳 서재를 찾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시는 치카님. 

오랜 시간 알아왔다고 생각은 하지만 생전 얼굴을 안보여 주셔서 길에서 만나도 못 알아볼것 같은 치카님. 

늘 건강하시고, 언제까지나 웃는 얼굴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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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0-09-17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맘 먹기가 쉽지 않아요;;;

오늘은 어머니하고 용두암을 지나 해안도로쪽에 가서 저녁먹을꺼예요. 딱 오늘의 엽서네요. 고맙습니다 ^^
 

누렁이가 몸을 풀고 새끼 열두 마리를 낳았다. 그 중에 넷이 죽어버렸다. 걱정스러워서 매일 같이 아기들의 수를 세고 있다. 좀 상한 고기나마 푹 고아서 어미에게 먹이고 밥통에 우유도 부어준다. 왜 죽어나갔는지 가만히 들여다봤더니 젖이 여덟 개 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덟 마리만 남았을까? 나는 요즘 누렁이 친정엄마 노릇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9일 교구는 사제의 해를 마감하는 미사를 내가 살고 있는 마리아탈(Mariathal) 본당에서 봉헌하였다. 큰 주교좌성당을 두고 하필 시골에서 이런 중요한 행사가 치러졌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이곳은 남아프리카의 첫 흑인 신부가 일했던 곳이고, 그가 잠들어 묻힌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사실 이런 의미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남아프리카에서 신학생을 처음으로 로마에 보낸 것은 마리안힐수도회의 창립자인 프란치스 판너 아빠스였다. 그 때가 1887년이었고, 이후 세 명의 소년들이 차례로 로마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남아프리카의 첫 방인사제는 ‘에드워드 뮬러 음강가’였다. 그는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고 돌아왔다. 그토록 지적으로 탁월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국으로 돌아온 그 이후의 삶이 평탄하지 못했다. 백인 선교사들의 질투와 시기 때문에 그는 17년간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야했다. 깜둥이 주제에 신부면 족하지 박사학위까지 따서 돌아온 점부터 무척 못 마땅했던 모양이다. 긴 유배를 마치고 돌아왔어도 그의 인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달팠다. 나머지 세 명의 후배신부들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창립자께서는 아프리카 소년들에게 무엇을 보았기에 그를 로마로 보냈을까? 그리고 로마로 떠나던 소년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1991년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무척 절망스러웠다. 앞이 캄캄하고 하늘은 노랬다. 그 때 효선 수녀님이 찾아와 혹시 신부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효선 수녀님은 왜 나를 꼽았을까? 나에게서 무엇을 보고 어떤 마음으로 나를 아프리카로 보냈을까? 2006년 나는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미래가 막막해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박청일 신부님은 편한 마음으로 본당에 와서 나를 도와달라며 이끌어주셨다. 신부님은 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돌아보면 신기한 일들, 아니 신비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남아공 첫 흑인사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45년에 돌아가셨다. 그로부터 65년이 지나 우리는 시골의 한 구석에 묻혀 누구도 관심두지 않았던 무덤 앞에서 사제의 해를 마감하였다.

시기와 질투는 두려움의 자식들이다. 흑인 동료들의 열정과 학식이 두렵지 않았다면 백인 신부들의 시기와 질투도 없었을 것이다. 뮬러 음강가 신부를 17년씩이나 정신병원에 가둔 것은 유럽인들의 일그러진 두려움이었다. 갑자기 전종훈 신부님이 생각이 났다. 지도자들은 흔히 정의를 두려워하고 부담스럽게 여긴다. 그 대가를 마음 착한 사람들이 짊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 역사다. 교회는 ‘교사요 어머니’라고 했다. 그런데 왜 장상들은 벌주는 교사의 얼굴만 기억하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상은 잊어버렸을까? 
 


김인준 신부/남아프리카 마리안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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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6 23: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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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7 09: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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