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빠꾸와 오라이 - 황대권의 우리말 속 일본말 여행
황대권 글.그림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요즘은 타이어가 빵꾸났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다들 펑크났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그런데 아홉살에 미국에 가서 사느라 우리말을 잘 못한다는 영어강사가 갑자기 그런말을 한다. '아니, 빵꾸났다 라고 쓰지 않나요? 실제로 뭐라 말해요?'
그 한마디에 사람들이 중중거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강사는 '펑꾸?'라고 들린다면서 말을 섞지 말고 원래 하던 대로 말해달라더니 강조를 한다. '빵꾸났다'라고 하지 않냐고. 그때 사람들이 슬쩍 웃다가 '빵꾸'로 통일시킨다. 그래, 우리 세대는 빵꾸가 더 편한 세대지....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우습게도 '빠꾸와 오라이'라는 책을 받았다. 처음엔 저자를 보지 않고 '제목이 왜 이래?'라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 황대권님의 글은 재미있으면서 뭔가 생각하게 만들어버린다.
책에 실려있는 일본말은 내게도 꽤 친숙한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상생활에서 난 내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일본말을 잘 모르는 편에 속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건 굳이 일본말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언젠가 아는 애가 뜬금없이 '생기리'가 뭔지 아냐고 물어봤다. 무우말랭이,라는 대답을 했더니 곧바로 그러면 생기리라는 말이 어떻게 나온 말인지 아냐고 물어봤다. 글쎄...제주도 사투리일까? 라는 내게 결코 사투리가 아니라며 자신의 의견을 술술 이야기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낸 후 제주에 정착한 그녀석은 '생기리'가 일본의 무우채절임 비슷한 것을 뜻하는 거라면서 한참을 설명해줬다. 물론 나는 일본어를 모르기때문에 설명을 장황하게 들어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지만 거의 확실히 일본말인 것 같은 느낌은 들었다. 이정도 되는 말이라면 정말 일본말이라면서 쓰지 말아야 하는 말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무우말랭이를 뜻하는 우리말화 된 우리말이라고 해도 되는 것일까?
책을 읽어갈수록 점점 더 생각이 혼란스러워진다. 물론 그 말에 얽힌 추억과 생활이야기는 무척 재미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읽다보면 책 한 권이 끝나가고 있을만큼 재미있게 읽힌다.
물론 옛날말이 되어버린 일본말을 생소하게 느낄 요즘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또 어떻게 느껴지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쓰는 말 중에서 어떤 것이 일본말인지, 우리말인지, 표준어인지 사투리인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마구 쓴다.
사실 '도랏짱'같은 말은 누구나 다 아는 일상용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말을 못알아 듣는 사람이 나타난 것 아닌가! 난 사실 내가 쓰는 사투리도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듣는다고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 생각이 무너지게 되면서 지금 더 혼란스러워졌는지도 모르지. 워낙에 일본말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고, 사투리가 어찌 들으면 일본말 같기도 하고, 사투리같기도 하지만 표준어 같기도 하고.....
'도랏짱'은 미친사람의 낮춤말이다. - 혹시 도랏짱 자체가 일본말은 아니겠지? - (머리가) 돌았다,라는 말과 일본에서 애칭처럼 붙이는 '짱'을 합한 말이 '도랏짱'일꺼야, 라는 말을 우리끼리 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언어는 정말 풍부하고 무한하게 변화되고 변화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황대권님의 '빠꾸와 오라이'는 그와 비슷하게 우리의 일상에서 쓰이는 일본말을 정리하고, 그에 얽힌 추억이 한가득 담겨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그저 재미있다라고만 하면서 읽고 끝내면 안될 것 같다.
"외래어일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우리말이 없고, 대중 속에서 어느 정도 역사성을 획득한 말은 적극적으로 살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149)
"내가 이 작업을 하게 된 동기도 단순히 일본말을 추방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언어란 것은 어차피 역사의 부침 속에서 인접한 다른 언어로부터 끊임없이 간섭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간섭을 받더라도 주체가 올바로 서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먼저 내 안에 녹아 있는 일본어의 잔재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외래어들이 나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가늠해 보고 그들의 문화와 우리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216)
저자의 이야기처럼 요즘은 일본어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다시 영어가 더 깊숙하게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 새로운 언어 식민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 우리는 우리의 주체를 올바로 세우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