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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2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구판절판


거울은 사람을 비춘다. 얼굴을 비추고 눈동자를 비춘다. 그것은 단지 물리적인 작용일 뿐, 그 사람의 내면을 비추는 것은 아니다. 거울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 놓고 그 앞에 서서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것이다. 기쁨이나 자랑스러움을, 세상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일 수있는 것이다. 만일 이 세상에 거울이 존재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점검해주고 자신이 자신을 관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철저하게 자신을 점검해야 할 것이고,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99쪽

진정한 악이란 이런 거야. 이유 따위는 없어. 그러므로 피해자는 자기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거야. 원한, 애증, 돈, 그런 이유가 있다면 피해자도 납득을 할 수 있겠지. 자신을 위로하거나 범인을 미워하거나 사회를 원망할 때는 그 근거가 필요한거야. 범인이 그 근거를 제시해주면 대처할 방법이라도 있지. 그러나 애당초 근거 같은 건 없었어. 그거야말로 완벽한 '악'이야.-203쪽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를 도울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손을 내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었어. 그렇지만 그건 잘못이야. 나는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고 내가 곁에 있으니 괜찮다고 말을 거는 순간에, 그는 다른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처음부터 듬직한 인간은 없다. 처음부터 힘있는 인간은 없다. 누구든 상대를 받아들일 결심을 하는 순간에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3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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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품절


거울을 봐라. 지금 자기가 얼마나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잘 봐둬. 자기가 지금 얼마나 시시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지? 응? 안그러냐? 그야 세상에는 시시한 사람이 수두룩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네가 불쾌한 일을 많이 당한 것도 인정하마.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시시한 사람이 되어도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그런 건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냐?-150쪽

우리는 빛의 아이들이다.
빛은 어디에나 든다. 빛이 드는 곳에는 풀이 나고, 바람이 불고, 생명이 있는 것은 숨을 쉰다. 그것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누구 덕도 아니다.
우리는 억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실수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빛이 드는 것처럼, 이윽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풀에 볼을 비비고, 바람에 머리칼을 나부끼며, 열매를 따서 먹고, 별과 새벽을 꿈꾸면서 이 세상에서 살자. 그리고 언젠가 이 눈부신 빛이 태어난 곳으로 다 함께 손을 잡고 돌아가자.-153쪽

매일을 소중하게 살아. 눈을 크게 뜨고, 귓속도 깨끗하게 후비고, 시야 끄트머리에서 일어나는 일도 놓치지 마. 그러면 자네 등에는 잡초가 안 나. 잡초가 안 나는 사람이 세상에 난 잡초를 뽑을 거야.-215쪽

자신이 서서히 어떤 힘에 밀려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완만한 흐름 한가운데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자신이 어떤 중대한 일을 하지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을 아키코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그 외에도 깨달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커다란 흐름 속에 살고 있다는 것. 아득한 시간과 사람들의 행위가 켜켜이 쌓인 위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기라는 존재를 허비할 수 없다는 것.
이 흐름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나는 어디에 이르게 될까....
언젠가 그 흐름에 공포를 느끼고 멈춰설 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연신 뒤를 돌아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돌아가면 된다. 모두가 기다리는 그 너른 세계, 모두가 과거에 흩어져나갔던, 그리고 이제 다시 모여들려 하는 들판, 그리운 사람들이 기다리는 도코노에.-279쪽

음악으로 표현하면 모든 게 아름답대. 미움도, 질투도, 경멸도, 아무리 추하고 불쾌한 감정이라도, 그걸 음악으로 표현하면 예술이 되니까. 그래서 음악은 언제나 자기편이래. 무기래. 변심하지 않아, 바람도 피우지 않아, 없어지거나 죽지도 않아.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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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도코노'라는 말의 유래를 아세요? 권력을 갖지 말고, 무리를 짓지 말고, 늘 재야의 존재로 있어라. 그런 의미라고 하더군요.(278)

'빛의 제국'이라는 다소 거대함이 느껴지는 책의 제목에서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뿜어져 나올까 예상을 못했다. 더구나 열개의 '단편'이라니. 아니, 그런데 여기서 잠깐만. 이걸 단편이라고 해도 되는걸까?
무심결에 책을 펴들고 읽다가 첫 이야기에서부터 찌르르 하는 감동이 와 버렸다.
아, 온다 리쿠는 정말 '훈훈한'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작가가 맞는거야. 그래서 나는 미야베 미유키를 좋아하 듯 온다 리쿠가 좋다. 그들의 이야기속 깊은 곳에는 따뜻한 맘이 몽실 퍼져나오는 것이 느껴지니까.

그건 그렇고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빛의 제국은 '도코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일종의 '제국'이라는 어감에 대한 발발작용으로 도코노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선입견이 생겨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의 전개가 오히려 당황스럽기보다는 더 따뜻하게 느껴져 좋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넣어두거나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거나 회오리바람 다리를 가졌다거나 먼 곳을 볼 수 있다거나... 그러한 것은 인간적이지 않은 '환상'의 이야기로만 넘겨버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들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보면 어느새 순수하고 맑은 영혼에 감화되어버린다. 우리 인간들은 도코노의 일족인지도 몰라... 우린 탁한 세상에서 점점 더 그 순수하고 맑은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게 된다. 거짓된 환상의 세계가 아닌 실존하는 우리의 세계 이야기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탁월한 온다 리쿠의 이야기 솜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맑은 영혼을 믿고 싶은 내 마음이 그렇게 향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도코노 일족의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겠다.
작가는 어렸을 때 읽은 제나 헨더슨의 SF소설 <피플> 시리즈의 온화하고 품위있는 터치가 인상적이었다고, 단지 그런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피플 시리즈는 우주를 여행하는 중에 지구에 표류해서 고도의 지성과 능력을 감추고 시골에 묻혀 조용히 사는 사람들을 그곳에 부임한 여교사의 시점에서 그리는 단편 연작이라고 한다.
자, 흥미를 느끼신다면 당장 읽어보시길. 도코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리라.
역시, 도코노를 모르면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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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1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절판


나는 90퍼센트가 페르시아인인 이란에서 아랍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란에서는 아랍인으로 불리고, 다른 나라에 가면 페르시아인으로 불립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그쪽 사람들은 밖에 세운 메르세데스 안에서 경적을 울릴 뿐입니다. 우리가 직접 밖으로 나가서 주문을 받고, 상품을 갖다 줘야 합니다. 바깥 기온은 40도가 넘어요. 차 안에는 에어컨이 있어서 시원해요. 내가 땀 범벅이 되어도 그 사람들은 신경도 안써요. 주스를 건네주면 예의 없는 사람들은 살짝 연 창문으로 돈을 바닥에 내던집니다. 그러면서 가난뱅이 외국인이라고 말하곤 그냥 가 버립니다. 그래서 도로에 떨어진 돈을 땀을 뻘뻘 흘리며 주운 적도 많습니다."
부자와 가난뱅이, 어느 나라든 다 비슷한 모양이다.-187-188쪽

나는 그 무렵 조금씩 글자만 차 있는 책(!)을 읽고 있었다. 알고 싶은 것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가르쳐 주는 녀석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전에는 책방에 가더라도 만화나 잡지 코너만 얼쩡거렸다. 처음에는 활자가 꾹꾹 채워진 책을 읽는 것이 수영장 바닥을 잠수로 헤엄치는 것만큼 괴로웠다. 하지만 호흡은 조금씩 길어지기 마련이다. -233쪽

당신이 삶의 의욕을 잃는다든지 학교나 회사가 못 견딜 만큼 싫어졌다면 한 번쯤 이케부쿠로로 와 보는 게 어떨까. 처음에는 용기가 약간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넥타이나 교복의 호크를 풀고 길가에 앉아보자. 그러면 틀림없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
거리는 굉장히 재미있는 무대이자 엄격한 학교다. 우리는 거기에서 부딪치고 상처입고 배우며 조금씩 성장한다. 거리의 이야기에는 끝이 없다. -377-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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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5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묘 2017-09-09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무슨 책인가요? 읽어보고싶음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1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좀 고민스럽기는 했다. 이시다 이라를 떠올리면 여전히 먼저 라스트가 떠올라버리니까 말이다. 그 충격이 어지간히 크긴 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라스트에서의 충격이 아주 컸던 것은 내가 현실감있게 느끼지 못했던 것을 적나라한 현실로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이케부쿠로에서의 마코토의 이야기는 그래서 선뜻 읽기 망설여지기도 했다. 폭력과 섹스가 난무할 것 같은, 피가 낭자하게 거리를 끈적이며 흐르고 폭주가 있고 눈 풀리는 약물중독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일본의 이케부쿠로 거리 이야기. 이 책을 읽기 전의 느낌은 딱 이것뿐이었다.

아, 그 느낌만으로 이 책을 멀리 했다면 나는 계속 이시다 이라의 라스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케부쿠로의 꽤나 멋진 녀석인 마코토도 만나지 못했겠지.
이케부쿠로에서 느낄 수 있는 평화와 공존, 자유로움이 넘쳐나는 삶도 알 수 없었겠지.
아니, 그래 쉽게 얘기하자. 사실 평화라느니 공존이라느니 하는 멋진 말을 선뜻 들이댈 수 있을 만큼의 밝은 곳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더 현실감있게 살아움직이는 것 같지 않은가?
한때 로마의 평화,라는 말이 떠돌았었는데 그것이 로마의 군사력에 의한 힘의 지배로 평화를 유지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건 더이상 평화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케부쿠로에서의 평화는 그런 거짓된, 박제된 듯한 평화로움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고 각자의 다양한 삶과 날뜀(!)이 있는 평화로움이다. 

이시다 이라는 그렇게 허를 찌르며 내게 이케부쿠로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조금씩 이시다 이라의 이야기가 맘에 들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이케부쿠로의 이야기는 더욱더 맘에 들어버리고 있다.

"당신이 삶의 의욕을 잃는다든지 학교나 회사가 못 견딜 만큼 싫어졌다면 한 번쯤 이케부쿠로로 와 보는 게 어떨까. 처음에는 용기가 약간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넥타이나 교복의 호크를 풀고 길가에 앉아 보자. 그러면 틀림없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
거리는 굉장히 재미있는 무대이자 엄격한 학교다. 우리는 거기에서 부딪치고 상처입고 배우며 조금씩 성장한다. 거리의 이야기는 끝이없다.
그러니까 나도 안녕이라고 말하진 않겠어.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만나자고. 그때까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잔뜩 찾아 놓을 테니까. ......."

나는 그가 잔뜩 찾아놓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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