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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평점 :
'그렇게 쓰여 있었다'는 오래전 일기장에 씌여있는 글을 말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어느새 나도 '어릴 적에...'라는 말을 하게 된 나이를 넘어 때로는 '젊은 시절'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그때는 은근슬쩍 말을 바꿔 학창시절에는..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마음이 따끔하다,라는 그녀의 말에 완전공감하게 되는 그런 기분.
마스다 미리의 일상 에세이를 중독처럼 계속 읽게 되는 건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 때로 나 자신의 일상이 한심해 보일 때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특별함이 없는 평범하고 소소한 여성의 일상의 삶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아니 어쩌면 그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편안함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루하루의 일상, 일때문에 만나는 사람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요즘 유행한다는 것을 해보고 싶어하는 마음, 디저트에 열광하면서 일부러 유명한 가게에 찾아가 먹어보기도 하고 나이를 먹으며 살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역시 먹는 것을 끊기는 힘들어하는 마스다 미리의 일상은 마음을 가볍게 해 주고 때로는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고 나도 그녀처럼 행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뿐이라면 나는 이미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에 반복되는 듯한 이야기에 질려 더이상 그녀의 이야기는 읽지 않았을 것이다. - 아, 그러고보니 정말 그녀의 수많은 이야기를 읽었지만 똑같은 느낌은 없네. 이것도 어쩌면 신기한 일이지 않을까? 그녀의 많은 에세이를 읽으며 느끼는 유일한 공통점은 정말 '공감'이라는 것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그 안에서 누구나 똑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고민과 비슷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또한 비슷한 삶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서로의 모습에 공감한다는 것이 신기할뿐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은 행복에 잠겨들게하기도 하고 때로 부끄러움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추억'이라는 것을 떠올리는 시간은 좋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마스다 미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아름다운 꿈'으로 연결하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고타쓰의 덧댄 부분에 쌓인 먼지를 이쑤시개로 청소하는 것이 재밌어서 크면 고타쓰 먼지 제거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거나 우동면을 자르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꿈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마스다 미리는 "하지만 떠올릴때마다, 정말로 아름다운 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런 그녀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듣다가 멈칫,하게 되는 부분이다. '정말로 아름다운 꿈'을 꿨던 나의 어린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어떤 꿈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우아하고 품위있게 밥을 사는 일은 어렵다,라거나 아는 척 자신있게 포어 로제스를 주문했다가 여러종류의 포어 로제스가 있다는 것을 몰라 당황하거나 무한리필되는 홍차를 주문할 때 가게에서 가장 비싼 것을 주문하고, 버터조차 평소 잘 먹지 못하는 가장 비싼 것을 고르는 아줌마(!) 같은 모습을 보이며 살짝 부끄럽고 민망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어린적에는...'이라고 말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좋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지만 마스다 미리만의 고유한 표현으로 글을 읽는 재미와는 다르기때문에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슬금슬금 읽다보니 금세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버렸지만 이 가벼운 책 한 권을 바라보는 내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내 안의 어른아이를 보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은, 나이를 먹어가는 내 모습이 그리 나쁜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때문이기도 하고, 또 뭐 이쁜 파란 하늘색 표지와 꽃분홍의 색색이 맘에 들어서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