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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평점 :
"부정한 사회는 '부정적 사람'을 싫어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이 소제목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어렸을때부터 부정적인 아이,로 통했었다. 아버지도 자주 넌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냐,는 말씀을 하셨었고 학교에서도 얌전하고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지만 가끔 툭 튀어나오는 독특한 학생이기도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아니, 대학생이 되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부정적인 사람'의 개념이 조금은 달라진 것이다. 나는 내가 항상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일상에서의 비관적인 생각으로 모든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아주 작은 일례로 베트남 다낭으로 직원들끼리 휴가를 맞춰 여행을 갔었는데 여행사 가이드가 여권을 분실하면, 영사관이 있는 하노이까지 가야만 한다고 해서 모두들 걱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데 나 혼자만 여권을 잃어버리면 우리가 하노이도 여행할 수 있겠다고 좋아해서 다들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렇게 부정적인 사람이 아닌데 왜 어렸을때부터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인식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바로 이 말속에서 조금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사회에서 흔히 규정되어 관습처럼 이어져오는 것들에 대해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을 참지않고 말을 꺼내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거부하기도 하고 하는 것들이 항상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것처럼 인식되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내게 어린시절 여성성을 강요하지 않았고, 학창시절 공부만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흔히 세상에서 내게 강요되는 것들에 대한 압박이 없어서 조금 더 자유롭게 판단하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애들이 흔히 즐겨하는 놀이보다 오래비의 연습상대가 되어주느라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바둑이나 장기는 물론 태권도의 발차기 연습상대가 되어 맞기(!)까지 했던 기억은 사실 내게 특별한 것이 아니었는데 여학교에 들어가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면서 내가 좀 별나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를 읽다보면 많은 부분에 공감하면서 내가 아주 많이 잘못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 같은 느낌을 갖게 되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요즘은 저자의 표현처럼 낯뜨거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당당하다는 것이 떠올라 씁쓸하지 않을수가 없다.
사실 나는 평소에도 괜찮지 않은 것들에 대해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많이해서 - 아니, 늘 그렇게 말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관계맺음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가끔 적당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의 이익을 생각해서 부당한 것들을 적당히 넘겨버리게 되기도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는 신부님이 그런말을 했었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해야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포기하지말고 인식하고 있는 나만이라도 변화를 위해 자신들을 일깨워주며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말을 끝까지 해줬으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세상은 조금씩 바뀔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 미움받는데 왜? 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그래도 옳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용기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실려있는 이야기들이 새삼스럽지도 않고 주위에서도 흔히 듣고 접할 수 있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그냥 단순히 그런 현상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고 또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짚어주면서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어서 좋다. 솔직히 긴가민가하는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속시원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내가 아무리 잘 이야기하려고 해봐도 상대방이 이기적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자신의 관점에서만 대화를 하고 있다면 가끔은 나의 말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나을수도 있다는 것에 공감하게 되기도 한다.
차별없는 세상, 공동체 지향적인 삶을 위해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공감하면 좋겠다. 그래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 부정한 사회를 평등하고 올바른 사회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