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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하지만 뾰족한 -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그림 같은 대화
박재규 지음, 수명 그림 / 지콜론북 / 2017년 10월
평점 :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그림 같은 대화'라는 부제가 뾰족함을 뭉툭하게 해 주는 느낌이다. 담담한 하지만 뾰족한,이라는 책의 제목은 섬세하지만 예민함으로 인해 신경질적일 수도 있다는 첫느낌을 갖게 했다. 아니, 사실은 나 자신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더욱 더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무던해 보이지만 뾰족한 나의 모습을 투영하며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될지.
"평범한 그림이나 사진도 액자 속에 놓이면 근사해 보이잖아요? ...... 반드시 있어요. 당신이라는 그림을 더 멋지게 만들어줄 액자 같은 사람은... 반드시"(60)
뭐라고 해야할까. 잔잔하게 조곤조곤 말하고 있는 많은 글들은 일상의 모습에서 기적을 발견하는 느낌을 보고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정수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의 진심이 느껴지고 글을 단숨에 덥석 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한 문장씩 읽어가면서 문장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버리고 있어서 야금야금 책장 넘어가는 것이 너무 아쉽다. 그리고 그 아쉬움에 한몫을 하는 것은 바로 책에 실려있는 삽화들이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 가제본같은 느낌과 뭔가 허술하게 편집된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한꼭지씩 책을 읽다보니 글과 어울리는 흑백의 삽화는 무덤덤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글을 더욱 빛나게 해 주는 그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짧은 문장으로 삶의 핵심을 뽑아 보여주고 있는 듯한 이 에세이는 어떠어떠한 글이 담겨있고 그 글의 의미가 무엇이다, 라는 설명이 아니라 그냥 이 책 한 권을 통째로 보여주고 추천하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
"점프를 하면 세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아요. 어릴 적엔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잖아요? ......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늘 일정한 각도로만 세상을 바라봤던 것 같아요. ... 시선이 고정되면 사고도 고정되죠. 싫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는 것이..."(91-92)
그래서 저자는 스카이다이빙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직된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곤 했었는데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다양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음이 서글퍼졌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지 않은가.
나도 그냥 아이처럼 하하하, 하고 웃고 점프를 하고 눕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면서 세상의 모습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금의 나는 고정된 시선, 고정된 사고방식이 가장 싫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뒤적거려봐도 이 글이 눈에 띄는 걸 보면.
한번 읽고 다시 읽어도 자꾸만 글의 내용이 좋다면서도 그걸 자꾸 까먹어버려서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겠다. 책을 잡은 첫 날 단숨에 반 이상을 읽어버리고 다시 되돌아가 읽어봐도 그때마다 다 좋으니 일단은 좋은 것이라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