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든 우리가 있어
김혜정 지음 / 리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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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라 생각했다. 그냥 단순하게 그림이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쳤는데 그림과 내용은 그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막연하게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면으로 들이대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 알고 있어?너는 먹기 편하자고 무심코 집어든 빨대지만 그것이 바다 어딘가로 흘러가면 그 정체를 몰라 뒤적거리던 바다속 친구들이 그걸 먹고 탈이 나고 목숨을 잃는다. 정말 알고 있냐고?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며 잠깐 쓰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오래오래 산다는 플라스틱은 언젠가 꼭 다시 만난다며. 키득거리며 웃는 플라스틱 컵들은 그냥 겁을 주는 것이 아니다. 정말 무섭게 다가온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 착용을 하는데 주위에 확진자가 없던 초기에는 천 마스크를 했었지만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어쩔 수 없이 방역마스크를 하고 다닌다. 한번 쓰고 버리는 마스크는 그나마 끈을 제거하고 버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고무줄에 새 부리가 엉켜 희생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일일이 다 잘라서 버리고 있다. 

이 책에도 다리에 실이 엉켜있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새 이야기가 나온다. 다리가 기형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장애임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도 있다. 말로만 듣던 이야기들을 뉴스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르게 잠시 멈춰서 그림을 보게 된다.


갈매기입니다, 라고 말하는 검은비닐봉다리를 뒤집어 쓴, 새임을 알 수 있는 몸체와 다리가 보이지만, 우리가 하는 가면놀이처럼 새까만 비닐을 뒤집어 쓰며 놀고있는 것은 아니다. 새는 그 비닐에서 머리를 어떻게 빼내게 될까. 자꾸만 그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그림은 파스텔톤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강렬함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흑백의 그림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동물친구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에 적극 공감하게 된다.

"나답게처럼 돼지가 돼지답게 살 수 있는 곳, 아무도 아프지 않고 아무도 다치지 않을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사람도 동물도 모두 수고한 오늘, 사는 곳은 달라도 지구라는 길 위, 함께 걷는 우리"가 되기를. 정말 앞으로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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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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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의 유작이 되어버린 소설 유다,는 유작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저 막연하게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씩 더 많이 알게 된 사실들,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이 없으며 그들이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 때문에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었고 또 그 이면에는 그들의 경제적 부를 착취하기 위한 핑계였다는 이야기들은 세상의 흐름을 달라보이게 했다. 이스라엘민족이 드디어 자신들의 해방의 땅을 찾았다고 하며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정책을 펴면서 모세프로젝트라고 거창하게 들었었던 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빼앗기는 것이었다는 것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들은 아니었다.


아모스 오즈의 유다 이야기는 실제 성경에 등장하는 유다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며 유다의 삶과 아모스 오즈의 삶의 방향과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기도 하고 현재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구성은 이중으로 되어있다. 성경속에서 이야기하는 유다의 이야기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그가 진정으로 예수의 구원을 믿었다는 관점으로 진행되는 것과 슈무엘이라는 청년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진행되고 있다.

20대 청년인 슈무엘은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부모님의 사업부도로 인한 가정형편의 어려움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난 후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구인광고를 보게 된다. 칠십대 장애인을 돌보는 일인데 집이 없는 슈무엘에게 필요한 숙식제공을 하고 있어 그는 바로 그곳을 찾아간다. 슈무엘이 말벗을 하며 도움을 주게 된 칠십대 장애인은 게르숌 발드라는 논쟁을 즐기는 사람이며 슈무엘을 고용한 사람은 그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는 여인 아탈리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슈무엘은 아탈리야가 어떤 사람이며 그녀와 게르숌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데...

이들의 가족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엇갈리며 유다의 믿음과 배신에 대한 평가가 현재의 역사와 겹쳐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솔직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역주에 의존한 부분도 많고 이스라엘의 전쟁과 역사적 평가에 대한 내용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어서 소설을 읽으며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할수는 없었다. 소설의 앞부분에 슈마엘이 말라 죽어가는 무화과 나무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가 게르숌의 집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때 다시 무화과 나무를 언급한다. 성경에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고 평생 열매 맺지 못하리라는 저주를 받는 무화과나무 일화가 나오는데 제철도 아닌때에 열매를 맺지 않음에 대한 축복이 아닌 저주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무화과나무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그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는 뜻,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한 해석이 되는 것일까?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했다,라는 말 한마디로 규정되는 유다가 혁명당원이라거나 겨우 은세겔 30전이 필요해 예수를 팔아먹은 것이 아니라 그가 진정 그리스도임을 믿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준것이라거나... 신앙과 신학적 해석은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고 그런 내용들이 놀랍지는 않으나 이스라엘의 역사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놀랍다. 수많은 전쟁과 테러, 학살이 유다, 유대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배신이라는 것은 일종의 타협,일수도 있다는 아모스 오즈의 말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있다. 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타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 평화를 위해 타협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지금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역 분쟁 해결을 위한 행동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말 어쩌면 유다의 배신이 아니라 유다의 믿음과 같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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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부터 자기 힘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정확하게 잘 알고 있었는데 나는 몰랐었지. 나는 그가 자기 자신을 믿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를 믿었어. 내가 그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도록 밀어붙였어. 이 세상에는 없는 나라를, 구원을 약속하라고. 영생을 약속하라고. 그렇지만 그는 조금 더 땅 위를 돌아다니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며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과 연민의 씨를 뿌리고 싶어 했지. 그 이상을원치 않았어.
나는 그를 내 목숨처럼 사랑했고 나는 그를 완벽하게 믿었지. 그것은 단지 자기보다 훌륭한 동생을 사랑하는 맏형의 사랑이 아니었고, 단지 여린 청년을 향해 품는 나이 지긋한 연륜 있는 남자의 사랑이 아니었으며, 단지 자기보다 위대한 젊은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의 사랑도 아니었고, 충성스러운 신도가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는 자를 향해 품는 사랑은 더더욱 아니었어. 아니야. 나는 그를 하느님처럼 사랑했어. 그리고 사실 나는 내가 하느님을 사랑했던 것보다 그를 더 많이 사랑했어. 그리고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을 사랑한 적이 없었지. 심지어 그를 혐오했어, 질투하고 복수하고 원한을 품는하느님이며, 아버지들의 죄를 아들들에게서 찾고, 잔인하고분노하며 억울해하고 보복하며 유치하고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하느님을, 그러나 그의 아들은 내가 보기에 사랑이 넘치고자비롭고 용서하며 동정심이 많고 또, 자기가 원할 때는, 재치 - P404

 있고, 신랄하며, 가슴이 따뜻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지. 그는 내 마음 속에서 하느님의 자리를 물려받았던 거야. 그는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이었어. 나는 죽음도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할거라고 믿었지. 나는 바로 오늘 예루살렘에서 가장 위대한 기 적이 일어날 거라고 믿었어. 그 기적이 일어나면 이후로는 이 세상에서 죽음이 사라질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기적 말이야.
이후로는 더는 아무런 기적도 필요 없는, 이후로 하늘나라가 도래하고 사랑만이 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 그런 기적 말이야.
- P405

자네가 머지않아 자네의 길을 가고 나면 나는 여기서 가끔은 자네를 그리워하겠지, 주로 빛이 빠르게 스러지고 저녁이 뼛속으로 스며들 무렵,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을 말일세.
나는 이별과 이별 사이를 살고 있군."
- P434

그 안에 변화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어떤 변화도 인정할 수 없고 변화가 생기는 것을 죽을 만큼 무서워하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변화를 혐오하는 사람들 눈에 언제나 배신자로 간주될 수밖에 없어요. 쉐알티에 아브라바넬은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그의 꿈 때문에 그들이 그를 배신자라고 부른 거예요."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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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읽어야지, 하며 책을 구입했다기보다는. 

저자 사인본,이라는 것에 홀린듯이 구입을 서두르기는 했는데. 어쩌면 그 이유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받고 나니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

책 박스가 찍혀서 구겨지고 파손된 것과는 상관없이 책과 딸려온 실제본 노트가 구겨진 상태로 왔기때문. 박스 귀퉁이는 말짱한거 보면 처음 상품을 넣을때부터 구겨진 것을 넣은 것이 맞는 듯 하다.

어쩌면 스무 번,이라는 책 제목이 괜히 스무 번 쯤 구겨진 책을 받은 걸 떠올리게 한다는.

고객센터로 몇 번 항의성 불편사항 접수를 해야 좀 신경써서 포장하고 상품을 담는다는 느낌은 나만 갖고 있는것일까. 한두번은 이럴 수 있겠지 하고 그냥 두면 계속 이런 상품이 온다. 내가 교환하면 이 책은 리펀드제품으로 혹은 그냥 그렇게 창고에서 쓸쓸한 죽음(헉;;;;)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나 역시 자본제 사회에서 살고 있기때문에 혹여나 책을 읽고난 후 중고서적으로 재판매를 하게 되면 이렇게 구겨진 책은 상품등급을 후려(!)친다. 지들이 팔때는 요런 걸 제값 다 받고 팔았으면서 내가 고대로 돌리면 그걸 깎아내리는 것에는 좀 화가난다. 알라딘의 얘기만은 아니다. 여기나 저기나 다 똑같...

아무튼. 한국소설, 저자사인. 그래서 소장할 생각이니 반품은 안하겠다만. 그래서 더 마음이 쓰리다고나 할까.


















해가 길어지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빨라졌는데 오후에 노곤해지는 것 역시 심해지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마스크를 하고 앉아있으니 답답함은 더 강해지고 있고. 할일은 있지만 답답함이 밀려와 일에 집중하기가.

그래서 서강명강에 이어 인생명강 시리즈가 나온다는 소식에 찾아봤다. 책표지가 참 알록달록이라는.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있으면 모두 다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지만 특히 제목 하나만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의욕 따위 필요없는' 레시피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인 날들에 딱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얼마전 읽은 고전 읽기는 - 서가명강 시리즈의 하나로 고전읽기가 나왔지만 이건 독일고전문학에 한정된 것이라서. 우리시대고전읽기는 79권의 책을 문학, 역사, 근대, 유토피아, 과학, 인간, 정치 등 7개의 카테고리고 묶어 소개한 책이라고 하니. "고전 읽기는 인류의 고전을 음미하는 동시에 현시대의 고민과 문제의식에 합당한 책들을 골라 의미를 부여하고 읽음으로써 낯설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행위"다 라고하니. 

















낯익은 책은 조용한 희망, 하나려나.

오늘부터 돈독하게. 내용설명을 보고 책제목을 보니 정말 돈독,하다. "돈은 단순히 교환가치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는 것"

대문호를 꿈꾸며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저자는 은행앞에서 좌절한다. 연소득 489만원은 믿기힘들지만 사실이었다. 대출을 거절당하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대문호 전에 대부호가 되겠다'고 결심한 저자의 1년만의 월소득은 예전 연소득에 가까워졌다,라고 하니. 이거 실화인가? 하게 된다.

아무튼, 반려병. 건강이 내게서 멀어질 때 내가 느끼는 감각은 이긴다/진다가 아니라 견딘다, 혹은 기다린다에 가깝다.

근황이 아픈 몸일 때 대화는 난망해진다. 건강을 이겨서 쟁취해야하는 사회에서 아픈 몸은 어쩐지 매일 진다. 건강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다. '아픔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반응의 대상이라는 게 그간의 깨달음, 이라니. 그래도 저자의 주위 사람들은 반응이라도 해주니.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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