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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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의 유작이 되어버린 소설 유다,는 유작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저 막연하게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금씩 더 많이 알게 된 사실들,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약이 없으며 그들이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 때문에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었고 또 그 이면에는 그들의 경제적 부를 착취하기 위한 핑계였다는 이야기들은 세상의 흐름을 달라보이게 했다. 이스라엘민족이 드디어 자신들의 해방의 땅을 찾았다고 하며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정책을 펴면서 모세프로젝트라고 거창하게 들었었던 것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빼앗기는 것이었다는 것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들은 아니었다.


아모스 오즈의 유다 이야기는 실제 성경에 등장하는 유다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며 유다의 삶과 아모스 오즈의 삶의 방향과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기도 하고 현재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구성은 이중으로 되어있다. 성경속에서 이야기하는 유다의 이야기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그가 진정으로 예수의 구원을 믿었다는 관점으로 진행되는 것과 슈무엘이라는 청년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진행되고 있다.

20대 청년인 슈무엘은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부모님의 사업부도로 인한 가정형편의 어려움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난 후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구인광고를 보게 된다. 칠십대 장애인을 돌보는 일인데 집이 없는 슈무엘에게 필요한 숙식제공을 하고 있어 그는 바로 그곳을 찾아간다. 슈무엘이 말벗을 하며 도움을 주게 된 칠십대 장애인은 게르숌 발드라는 논쟁을 즐기는 사람이며 슈무엘을 고용한 사람은 그와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는 여인 아탈리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슈무엘은 아탈리야가 어떤 사람이며 그녀와 게르숌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데...

이들의 가족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엇갈리며 유다의 믿음과 배신에 대한 평가가 현재의 역사와 겹쳐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솔직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역주에 의존한 부분도 많고 이스라엘의 전쟁과 역사적 평가에 대한 내용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어서 소설을 읽으며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할수는 없었다. 소설의 앞부분에 슈마엘이 말라 죽어가는 무화과 나무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가 게르숌의 집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때 다시 무화과 나무를 언급한다. 성경에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고 평생 열매 맺지 못하리라는 저주를 받는 무화과나무 일화가 나오는데 제철도 아닌때에 열매를 맺지 않음에 대한 축복이 아닌 저주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무화과나무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그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는 뜻,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한 해석이 되는 것일까?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했다,라는 말 한마디로 규정되는 유다가 혁명당원이라거나 겨우 은세겔 30전이 필요해 예수를 팔아먹은 것이 아니라 그가 진정 그리스도임을 믿었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준것이라거나... 신앙과 신학적 해석은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고 그런 내용들이 놀랍지는 않으나 이스라엘의 역사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놀랍다. 수많은 전쟁과 테러, 학살이 유다, 유대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배신이라는 것은 일종의 타협,일수도 있다는 아모스 오즈의 말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있다. 나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타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 평화를 위해 타협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지금 현재의 팔레스타인 지역 분쟁 해결을 위한 행동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말 어쩌면 유다의 배신이 아니라 유다의 믿음과 같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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