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왔을 때, 다케오가 전화를 받지 못할,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본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데, 먹고 있던 크림빵(다케오는 빵 중에서 크림빵을 제일 좋아한다고 언젠가 한번 지나가는 말로 한 적이 있다.)의 기름 때문에 손가락이 미끈거려 통화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못하고 헤매는 사이 그만 끊어졌다든가, 뒷주머니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꺼내려는데, 요즘 약간 살이 쪄서 엉덩이가 꽉 조이는 바람에 전화기를 제대로 뽑아내지 못했다든가, 전화벨이 울리는 찰나, 바로 코앞에서 어떤 할머니가 넘어져 그 할머니를 업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 도저히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든가, 악랄한 지하 괴물한테 발목이 잡혀 시커먼 동굴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통화 버튼을 누르려 해도 도무지 아무 것도 눈에 뵈는 게 없었다든가.
생각하는 동안에 다시 힘이 쭉 빠진다.
이놈의 휴대폰, 꼴도 보기 싫어!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 따위 물건을 발명한 걸까.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통화 가능한 전화라는 건, 연애하는데 있어서 - 원만히 진행되는 연애든 삐걱거리는 연애든 - 암적인 존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194-1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