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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평점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라니. 실제로 지금의 시대에 이것이 가능할까? 왠지 근거없는 불신이 스멀거리며 치고 올라오는데 잠깐 책에 대한 정보를 뒤적거려보니 그 불신을 잠식시킬만한 내용들이 톡톡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저자가 적어도 그러한 부패한 돈을 벌고 이윤을 추구하지는 않는다는 뜻일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내가 빵집 주인에게서 한 수 배워볼 수 있겠구나 싶어 책을 펼쳤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시골빵집 주인에게 감탄하게 되었고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우리동네에도 천연발효빵이 인기를 끌고 있어서 빵집이 몇군데 생겼는데 오후에는 빵이 없을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솔직히 빵이 맛있기는 하지만 빵값이 너무 비싸서 나같은 애가 쉽게 사먹을 수 있지는 않다고 했더니 제빵에 관심이 있어 그쪽으로 진로를 잡고 있는 그 친구는 대뜸 천연발효인데 빵값이 왜 그리 비싼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어차피 국산밀도 아니고 수입산 재료를 쓴다면 원재료비가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고, 단지 시간과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몇몇 빵집의 빵은 지나치게 비싸다며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빵만드는데 원재료의 단가가 얼마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현금으로 구입을 하면 회원적립을 해주는데 또 현금영수증은 해주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고 있는 빵집의 세금을 내보지 않으려는 그 얄팍한 상술은 괜히 빵값을 이유없이 비싸게 받는 것 같아 불쾌한 마음이 슬금슬금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시간과 함게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 '발효'와 '부패'를 통해서다. 그리고 이 두가지 현상은 균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
재료가 사람의 생명을 키우는 힘을 갖추고 있으면, 균은 빵이나 와인처럼 인간을 즐겁게 하는 음식으로 그것을 변화시킨다. 이런 재료에 균의 작용이 일어나면 음식은 더 맛있어지고 영양가와 보존성이 높아진다.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도 한다. 이것이 바로 발효 작용이다.
한편 생명을 키우는 힘이 없는 재료라면, 균은 그것을 안 먹는 게 좋다는 신호를 사람에게 보낸다. 말하자면 재료를 무참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때는 사람이 먹으면 해가 되는데 '부패' 작용이 바로 그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발효도 부패에 포함되며, 이 두가지 모두 무생물에 의한 유기물의 분해현상이지만, 인간에게 유용한 경우에는 발효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부패라고 부른다. 발효와 부패는 모두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이 균의 작용을 통해 자연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스트처럼 인공적으로 배양된 균은 원래 부패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물질마저도 억지로 일정 기간 썩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균은 균인데 자연의 섭리를 일탈한 '부패하지 않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균인 것이다.
첨가물과 농약같은 식품가공 분야의 기술혁신도 마찬가지 작용을 일으킨다. 시간과 함께 변화하기를 거부하고 자연의 섭리에 반해 부패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이같은 부패하지 않는 음식이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다. 나아가 싸구려 먹거리는 먹거리의 안전을 희생시키고 사용가치를 위장함으로서 먹거리를 만드는 사람에게 귀속되어야 할 기술과 존엄을 빼앗아간다. 실상은 지금까지 본 그대로다.
시간에 의한 변화의 섭리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돈이다. 돈은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패는커녕 오히려 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과 대금업을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 곰곰이 따져보면 참 이상하지 않은가?
바로 이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았다는 내용이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의 절반을 차지한다. (79-80)
좀 긴 본문의 글을 인용했는데, 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제목이 나오고 빵을 굽는 저자가 자본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어서 좀 길지만 굳이 인용하고 싶었다. 자연적인것을 거부하는 것, 그래서 발효가 되든 부패하게 되든 모든 것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부패하지 않는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인공첨가물, 농약같은 것들이 인간을 병들게 하고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시간이 지나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이며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력과 생산력의 관계에서 저자는 노동력 착취를 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소규모 작업장에서 더 이상의 확장을 하지 않음으로써 현상 유지를 해 나간다면 필요이상의 노동과 생산은 필요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번 투자를 위해 이윤은 꼭 필요하다' 라고들 하는데 그것은 결국 생산규모를 키워서 자본을 늘리려는 목적 때문에 나온 말이다. 동일한 규모로 경영을 지속하는데에는 이윤이 필요치 않다."(193)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며 자본의 축적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자본제 사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이다.
처음엔 그저 몸에 좋다는 천연발효종 빵에 대한 이야기에 어줍잖은 자본론에 대한 이야기를 끼워넣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삐딱하게 책을 집어들었지만, 자연과 공존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맞게 자연의 섭리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겨보게 하는 이 책은 빵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사람에게도 꼭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