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기행 - 칭기스 칸의 땅을 가다
박찬희 지음 / 소나무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몽골기행,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초원도, 유목도 아니고 칭기스 칸도 아니었다. 살을 에는 칼바람과 양떼들도 아닌 화장실이었다. 사실 나는 언젠가부터 여행을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민망했다. 안락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라면 내 집이 가장 편할 것이고 멋진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서라면 그건 티비나 영화를 통해서도 충분할 것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느껴보고 싶다면 집과 도서관에 쌓여있는 수많은 책들을 뒤적거리면 될터이고.

그 모든 모습이 어우려진 곳에서의 날것에 대한 나의 체험이 있어야 비로소 여행자의 생활을 말할 수 있는 것일테니 나는 유목민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니까 너무 멀리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유목생활의 고단함을 견디어 낼 자신이 없는 내게 몽골기행은 극기훈련과도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몽골을 몇년동안 해마다 가는 사람이 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해야하는 생활,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되는 집이 튼튼하게 자리하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생활, 쾌적한 화장실과 맘껏 물을 쓰고 따뜻한 불을 때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하는 생활의 틀을 단번에 깨버리고 유목민의 생활이 당연한 듯 적응하며 그곳을 그리워하는 저자의 이야기이다. 칭기스 칸이라면 우리를 정복했던 이민족이라는 생각에 조금 꺼려지는 마음이 있었지만 몽골인들에게 칭기스 칸은 빼놓아서는 안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저 저자가 이끌어 가는대로 칭기스 칸의 땅으로 들어가본다.

 

역사기행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미 익숙해져 있는 몽골여행의 일정속에서 유목민들의 삶이 어떠한지, 과거의 몽골과 대도시로 변해버린 수도의 모습을 비교하기도 하면서 몽골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대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길을 찾아 떠날 때 기계의 힘을 빌어 GPS로 찾을 수 없는 길을 사람의 눈과 기억으로 더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생존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느끼게 해 준다. 드넓은 초원에서 마주치는 사람과의 인사는 정보교환의 의미가 있으며 그것은 곧 생존과도 이어지는 것이니 그들의 손님맞이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방인이 자신의 게르에 들어와 숙소를 정하고 잠을 자고 있는데도 그저 편하게 들어와 자신의 볼일을 보고 말없이 나가버리는 유목민 사냥꾼의 모습은 '소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두 가족이 저자 일행과 함께 소풍을 가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척박한 땅에서 힘들고 고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만 막연히 생각하던 내게 몽골기행에 담겨있는 몽골 유목민들의 삶은 그들 나름대로의 의미와 행복을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물론 그들의 행복한 삶의 모습이 내게도 똑같지는 않겠지만.

  

"노마디즘으로 노마드를 덧씌워 볼 때 노마드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 땅에는 이 땅에 맞는 생존방식이 있으며 여행자의 눈에 비친 초원은 낭만이지만 유목민에게는 죽음을 각오한 삶의 현장이다. 그런데 정작 몽골 사람들은 농사짓는 정주민을 뭐라고 불렀을까? '땅에서 풀 뜯어먹고 사는 가축!'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본다."(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을 찾아 떠나는 예술 산보
최예선 지음, 정구원 그림 / 지식너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오후 세 시.

언제나 그 시간쯤 나는 사무실 책상 모니터 뒤에 숨어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을 찾아 떠나는 예술 산보라니. 식사 후 식곤증을 느끼며 졸거나 가끔은 건강을 생각한답시고 동네 주변을 어그적거리며 걸어다니곤 했던 나와는 너무나 차원이 다른 동네마실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도 어느정도는 가벼움으로 책을 집어들기는 했다. 예술 산보,라고 해서 특별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 깔려있었는지도 모른다. 옛 추억에 잠기며 과거를 떠올리고 사람들과 삶의 다양함을 이야기하는, 그런 동네 마실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어릴 적 뛰어놀던 복개천이 어디쯤이고 저녁 그림자에 귀신을 떠올리게 하는 흐늘거림으로 기억되지만 그조차 그리움으로 남는 수양버들 거리는 저쯤이고, 내가 태어난 집은 저 안쪽의 저 집이고...이런 것처럼 누군가의 삶의 시간들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은 크고 깊었다. 검은 강물 같은 이 도시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자꾸만 일깨웠다. ... 처참하게 피폐해질 때건, 말끔하게 평온할 때건 이 도시에서는 예술가들의 이야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다. 내 삶은 이 도시의 길 위에 있었고 내 정신은 그들의 수많은 걸작들에 큰 빚을 졌다. 나는 그들을 예찬하지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들어가는 말)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공존, 애도, 사유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기록하게 하고 있다. 서울에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그 곳곳에 스며든 이야기들이 생소할 뿐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번쯤은 들여다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윤동주 시인이 올려다 본 하늘과 별과 바람의 느낌은 다르겠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의 시를 새기며 느끼는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는 그에 대한 기억을 내 마음에 새겨넣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화가, 시인, 작가, 건축가...그들의 삶은 시대와 무관하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속에서 조금씩 그들의 삶의 흔적이 스며든 공간 역시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며 변형되어가고 사라져가고 있지만 우리의 기억과 기록속에 살아남아 그 의미를 전하고 있을 것이다.

 

"풍경을 본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풍경의 질문은 나의 온 마음과 닿아있습니다. ......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 거리에 가득한 빛과 먼지와 소음과 눈물과 이름들에 대해서. 계절이 수십 번 수백 번 지나가느라 흐려지고 지워진 이 땅 위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힘주어 불러보고 싶습니다"(2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1 - 눈동자의 집, 개정판 위험한 대결
레모니 스니켓 지음, 한지희 옮김, 브렛 헬퀴스트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언젠가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소설들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좀 더 어린 친구들의 성장소설이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이야기의 흐름과 결말이 빤히 보이는 듯 해 재미없기도 했지만 이제는 나의 관심 대상이 그들에게서 멀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가 읽기 위해 레모니 스니켓의 위대한 대결을 구입한다는 것은 정말 여러번 심사숙고해야했다. 읽고 싶은 책도 읽어봐야 할 책도 많은데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어린이용 도서를 구입한다니.

위험한 대결에 대한 평가는 그리 많지 않은데 소설을 읽기 전에 그 내용이나 평에 대해 되도록이면 보지 않으려는 내 습관때문에 그저 누군가 믿을만한 사람이 이 책을 추천했다,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첫째권을 읽으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받으면 가장 먼저 저자 레모니 스니켓이 독자에게 드리는 글을 접하게 된다. '단순하고 신나는 이야기를 바라는지? 그러면 이 책을 집어든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며 행복한 해피엔드를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이 책을 내려놓고 다른 가벼운 책을 집어들라'고 권하고 있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오히려 그래서 더 이 책에 흥미를 느꼈다. 아이들의 인생이라고 언제나 즐겁고 신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가벼운 것도 좋지만 한없이 가볍기만 하다면 책을 읽는 즐거움은 금세 질려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드디어 위험한 대결의 첫번째 장면을 펼치게 되었다.

 

어느날 갑작스러운 화재로 부모님과 집을 잃어버린 보들레어 가의 세 남매, 바이올렛과 클로스, 서니는 부모님의 유언에 따라 그들을 키워 줄 친척집에 가게 된다. 세 남매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친척 올라프 백작의 집으로 가는데, 그곳의 곳곳에는 눈동자 그림이 그려져있다. 마치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다는 듯.

그렇게 눈동자의 집에 살게 된 세 남매의 고난과 그들의 유산을 가로채려는 올라프 백작의 정면 대결이 위험한 대결의 첫번째 이야기이다.

 

이야기에서는 전반적으로 음산하고 어둡고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위험한 대결은 어쩌면 팀 버튼이 그려내는 이야기의 아동용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서운 느낌이 들지만 익숙해지면 그것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리와 아주 조금 다른 느낌이라는 것 정도? 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상력이나 판타지가 담겨있는 모험 이야기가 아니라 지독하게 현실적인 느낌이 들지만 위험한 대결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하는 세남매의 활약을 통해 내 앞에 닥친 모든 문제를 피하지 말고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싶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첫번째 대결이야기에서 조금 더 흥미로움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른인 내가 읽기에 세 남매의 모험은 그만큼 크고 무겁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이 위험한 대결의 끝은 무엇일까... 조금씩 더 궁금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입 코끼리
황경신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이름은 한입 코끼리,예요. 그런데 자꾸만 코끼리 한입,이라는 말이 먼저 나오네요. 어쩌면 내게는 코끼리가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자꾸만 코끼리에게 한입 주고 싶어 그런건지도 모르겠어요. 보아뱀에게는 한입거리밖에 안되는 코끼리인데 말이죠.

뭐 어쨌든 이건 보아뱀에게 한입에 먹혀버리게 된 코끼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코끼리를 한입에 꿀떡 먹어버리고 반년동안 꼼짝않고 소화를 해 낼 수 있는 보아뱀과 호기심많은 여덟살 꼬마 소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글입니다. 아니 도대체 여덟살짜리 꼬마와 삼백칠십셋이라는 나이를 먹은 보아뱀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비님이 오시는데 이상하게도 하늘이 맑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고개를 들어보니 우산을 쓰고 있는 내 머리 위는 온통 짙은 잿빛으로 내려앉은 구름, 아니 구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잿빛 하늘만 보이고 있는데, 겨우 십여미터 앞쪽의 요기 가까운 하늘은 새하얀 구름 사이로 새파란 하늘빛을 보이며 환하게 밝은 햇님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는거예요. 우산을 들고 있는 내게 쏟아져내린 것은 빗줄기만이 아니라 강렬한 햇살까지 함께였어요. 

이런 여우같은 비는 처음이야, 생각했는데 왠지 그 느낌이 그리 싫지는 않았지요. 그러니까 내 말은... 현실같지 않은 이 환상적인 느낌이 참 좋았는데, 여덟살 꼬마와 삼백칠십세살 보아뱀의 이야기 역시 그 느낌과 똑같이 무척 좋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어렸을 때 읽은 동화 이야기는, 물론 그리 많은 동화를 읽은 것도 아니지만 그 몇 안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건 현실과는 다른 상상속의 이야기일뿐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지않겠어요? 공주나 왕자, 숲속 이야기는 내 주위에서 전혀 볼 수 없는 거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여덟살 꼬마가 하나씩 읽어나가는 그림 동화 이야기의 한토막과 그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꼬마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보아뱀이 참 좋았어요. 그러다가 둘의 만남도 부러웠고, 둘의 이야기가 너무 좋아 오히려 샘이나기 시작했고, 나는 왜 이 이야기속에 없는걸까 싶기도 했고... 그런데 보아뱀이 그렇게 얘기를 하네요.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 멋진 일을 해내고 나면 말이야. 누구도 무시하지 않고 누구도 우쭐대지 않고 너 자신인 채로 그들과 어루어지는거지. 한 번 비교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아"

그다음부터는 그냥 여덟살 꼬마와 보아뱀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기 시작했지요. 내가 생각없이 읽었던 동화도 떠올려보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면서요.

"꼬마야, 많은 것을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구나. 무턱대고 질문만 하는 게 아니라, 몇 번이나 생각을 되풀이해보고, 답을 가늠해보지. 답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도,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네 말은 언제나 옳아. 네가 하는 모든 질문이 옳은 것처럼, 네가 찾아낸 모든 대답도 옳은 거야

너는.

어디로든 튈 수 있는 공처럼 둥글고 말랑말랑해. 불순물은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질문으로 무장하고 본질을 향해 덤비지. 너의 모든 문은 이미 세상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어. 구가 물질의 완전한 형태라면, 너는 생명의 완전한 형태야. 나는 그런 네가 자랑스럽고, 너의 친구가 된 것이 고맙구나."(276)

이야기 하나 하나 다 들려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이건 내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또 어쩌면 재미없게 되어버릴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삶의 리듬을 맞추는 일이다. 숨소리를 맞추고, 발걸음의 폭을 맞추고, 생각의 속도를 맞춘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불안해하지 않고 뒤따라간다. 모자라면 채워주고, 넘치면 덜어준다. 그렇게 지냈는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줄 알았는데."(286) 뭔가 변화가 생겨요. 그게 무엇인지 직접 한입 코끼리를 펼쳐봤으면 좋겠어요. 더구나 이 책에는 이인이라는 작가님의 이야기같은 그림이 담겨있기도합니다. 처음엔 생떽쥐베리가 그렸던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의 그림을 모자라고 알았던 것처럼 이인 작가님의 그림도 무엇을 담고 있는지 바로 알아채지 못했지요. 하지만 글을 읽으며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이 말을 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 그림이 당신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 들려줄 수 있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가 돌아왔다
티무르 베르메스 지음, 송경은 옮김, 김태권 부록만화 / 마시멜로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다시 깨어난 히틀러, 유튜브 스타가 되다!

이 광고문구를 읽으면서도 나는 실감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가 유튜브의 스타가 될 수 있지? 농담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독일에서 히틀러를 풍자한 소설이 나왔다니. 이게 정말 재미있겠나? 이렇게 온통 불신과 의혹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일단 '소설'이니 조금은 맘 편히 읽어보자고 책을 펴들었다. 아니, 그런데 정말 재미있다. 독일의 사회와 정치 상황을 자세히 모른다고 해도 (이 책에는 역자 주가 - 특별히 언급되지 않아서 정확히 역주인지 편집주인지는 잘모르겠지만 -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물 흐르듯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솔직히 이 책이 어떤 책일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을 때, 한정판 특별부록으로 책의 말미에 들어있는 김태권 작가의 스페셜만화 '그가 돌아왔다 in 서울'만으로도 이 책은 이미 재미를 기대해 볼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는 했다.

 

2011년 어느 날, 아무런 앞뒤 정황도 없이 불쑥 베를린의 한 공원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깨어난다. 그것도 제복을 입은 채로 말이다. 히틀러 본인은 어리둥절해 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그를 히틀러 자신이 아닌 히틀러와 닮은꼴인 희극배우로 받아들인다. 히틀러는 자신의 생각 그대로를 드러내지만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을 온전한 풍자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 자체가 이 소설의 이야기를 블랙코미디로 이끌어가고 있다.

오늘 밥을 먹으며 티비를 보고 있는데 물류창고의 스마트화로 인력이 4배이상 줄어들고 사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점점 더 취업난이 심각해지는 이유중의 하나,라는 생각과 인건비를 줄이게 된 대기업에서는 그 이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경제와 자본제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자꾸만 확대되어가고 있었는데 '그가 돌아왔다'에도 이처럼 같은 현상을 두고 서로 다른 시각과 관점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뉴스의 내용과 똑같이 상점주인이 손님에게 물건을 찾아주기보다는 손님이 직접 매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아 오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감탄을 하지만 궁극적으로 히틀러가 감동을 하는 것은 그만큼 매장의 인력을 줄이면 동원할 수 있는 군병력이 늘어나기 때문에 감탄하며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히틀러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른다. 이 모든것들이 다 정치적인 풍자일뿐이고, 동상이몽이 아니라 같은 지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웃고 있는 것이다.

지구환경과 평화를 위한 녹색당의 궁극 목표와 전쟁을 목적으로 에너지나 천연자언을 국내에서 해결하려는 에너지 정책은 결코 같을수가 없는데 드러나는 현상은 같아보이는 것이다. 히틀러는 그것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조롱하듯 시종일관 진지하게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드러내고 있다.

기발한 생각에, 풍자하고 비꼬는 그의 모습과 행동, 언변에 소설속의 사람들처럼 나도 웃으며 '돌아온 그'에게 열광하며 재미있어 하지만 과거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웃기만 했다는 일침에 잠시 멈칫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매우 코믹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이 웃음은 매우 씁쓸하다고 평한 슈테른지의 글에 동감하게 되는 이유다.

 

실제로 히틀러가 이 시대에 나타난다면 그는 광적인 나치즘과 유대인 학살, 민족우월주의에 대한 지탄을 받으며 매장을 당하게 될까, 아니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지지와 환호를 받으며 권력을 휘어잡게 될까?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잠시 상상에 생각을 맡기고 있자니 조금 불안해지기는 한다. 지금 웃고만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현실이 말도 안되게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에 나타난 아돌프 히틀러가 히틀러를 추종하는 나치즘 청년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이야기처럼 말도 안되는 것 같지만 지극히 설득력있게 보이는 이야기를 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혹시 또다른 히틀러를 보면서 그저 웃고만 있는 것을 아닐지... 웃으면서 심각해져 볼 필요를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