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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코끼리
황경신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이름은 한입 코끼리,예요. 그런데 자꾸만 코끼리 한입,이라는 말이 먼저 나오네요. 어쩌면 내게는 코끼리가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자꾸만 코끼리에게 한입 주고 싶어 그런건지도 모르겠어요. 보아뱀에게는 한입거리밖에 안되는 코끼리인데 말이죠.
뭐 어쨌든 이건 보아뱀에게 한입에 먹혀버리게 된 코끼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코끼리를 한입에 꿀떡 먹어버리고 반년동안 꼼짝않고 소화를 해 낼 수 있는 보아뱀과 호기심많은 여덟살 꼬마 소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글입니다. 아니 도대체 여덟살짜리 꼬마와 삼백칠십셋이라는 나이를 먹은 보아뱀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비님이 오시는데 이상하게도 하늘이 맑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고개를 들어보니 우산을 쓰고 있는 내 머리 위는 온통 짙은 잿빛으로 내려앉은 구름, 아니 구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잿빛 하늘만 보이고 있는데, 겨우 십여미터 앞쪽의 요기 가까운 하늘은 새하얀 구름 사이로 새파란 하늘빛을 보이며 환하게 밝은 햇님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는거예요. 우산을 들고 있는 내게 쏟아져내린 것은 빗줄기만이 아니라 강렬한 햇살까지 함께였어요.
이런 여우같은 비는 처음이야, 생각했는데 왠지 그 느낌이 그리 싫지는 않았지요. 그러니까 내 말은... 현실같지 않은 이 환상적인 느낌이 참 좋았는데, 여덟살 꼬마와 삼백칠십세살 보아뱀의 이야기 역시 그 느낌과 똑같이 무척 좋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어렸을 때 읽은 동화 이야기는, 물론 그리 많은 동화를 읽은 것도 아니지만 그 몇 안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건 현실과는 다른 상상속의 이야기일뿐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지않겠어요? 공주나 왕자, 숲속 이야기는 내 주위에서 전혀 볼 수 없는 거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여덟살 꼬마가 하나씩 읽어나가는 그림 동화 이야기의 한토막과 그 이야기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꼬마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보아뱀이 참 좋았어요. 그러다가 둘의 만남도 부러웠고, 둘의 이야기가 너무 좋아 오히려 샘이나기 시작했고, 나는 왜 이 이야기속에 없는걸까 싶기도 했고... 그런데 보아뱀이 그렇게 얘기를 하네요. "언젠가 너도 알게 되겠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 멋진 일을 해내고 나면 말이야. 누구도 무시하지 않고 누구도 우쭐대지 않고 너 자신인 채로 그들과 어루어지는거지. 한 번 비교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아"
그다음부터는 그냥 여덟살 꼬마와 보아뱀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기 시작했지요. 내가 생각없이 읽었던 동화도 떠올려보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면서요.
"꼬마야, 많은 것을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구나. 무턱대고 질문만 하는 게 아니라, 몇 번이나 생각을 되풀이해보고, 답을 가늠해보지. 답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도,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네 말은 언제나 옳아. 네가 하는 모든 질문이 옳은 것처럼, 네가 찾아낸 모든 대답도 옳은 거야
너는.
어디로든 튈 수 있는 공처럼 둥글고 말랑말랑해. 불순물은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질문으로 무장하고 본질을 향해 덤비지. 너의 모든 문은 이미 세상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어. 구가 물질의 완전한 형태라면, 너는 생명의 완전한 형태야. 나는 그런 네가 자랑스럽고, 너의 친구가 된 것이 고맙구나."(276)
이야기 하나 하나 다 들려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이건 내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또 어쩌면 재미없게 되어버릴지도 모르겠어요.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삶의 리듬을 맞추는 일이다. 숨소리를 맞추고, 발걸음의 폭을 맞추고, 생각의 속도를 맞춘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고, 불안해하지 않고 뒤따라간다. 모자라면 채워주고, 넘치면 덜어준다. 그렇게 지냈는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줄 알았는데."(286) 뭔가 변화가 생겨요. 그게 무엇인지 직접 한입 코끼리를 펼쳐봤으면 좋겠어요. 더구나 이 책에는 이인이라는 작가님의 이야기같은 그림이 담겨있기도합니다. 처음엔 생떽쥐베리가 그렸던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의 그림을 모자라고 알았던 것처럼 이인 작가님의 그림도 무엇을 담고 있는지 바로 알아채지 못했지요. 하지만 글을 읽으며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이 말을 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 그림이 당신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 들려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