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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 - 내 이름은 르네 타르디 슈탈라크ⅡB 수용소의 전쟁 포로였다
자크 타르디 지음, 박홍진 옮김 / 길찾기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바로 직전에 너무 강렬한 그래픽 노블을 읽어서 그런가...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의 느낌은 그냥 평범한 그래픽 노블이라는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글자도 너무 많았고. 그래서 처음엔 내용을 인지하느라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포로 수용소'라는 제목이 던져주는 그 의미심장함과 깊이때문에 너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어서 그런거였는지 이 책은 전후 세대인 아들이 전쟁을 경험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회고록처럼 기록한 것 정도로만 생각하기 시작할즈음, 중간중간 등장하는 아들의 질문과 끼어들기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 역시 많은 책과 기록물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포로수용소의 비인권적인 행태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이 담담하게 그려진 그림과 이야기들은 되짚어 볼수록 놀랍다.
그림체 역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래도 단순함쪽에 조금 가까운 그림의 형태인데 나는 이런 명확한 그림이 좋다. 그래서 그저 술렁거리며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아버지 타르디가 결국 전차를 두고 잡혀가게 되었을 때 저자는 전차 그리는 것이 힘들었었는데 다행이다,라는 표현을 넣는다. 아들의 그런 말은, 어쩌면 전쟁 이야기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하고 있다. 또 참혹하고 인권이 무너지는 전투의 현장뿐 아니라 포로 수용소의 끔찍한 실상과는 상관없이 유머러스하거나 영웅의 탄생을 볼 수 있을것 같은 현장으로 묘사되고 있는 영화의 이야기는 영화일뿐이라는 아버지의 항변은 전쟁을 겪은 세대가 니들은 아무것도 몰라,라고 툭 내뱉는 말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나이 든 분들의 넋두리같은 이야기려니 하며 흘려버렸던 나 자신을 반성해보게 된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이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포로 수용소의 실상에 대한 몇가지의 이야기들은 다른 문학작품을 통해 접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문학적인 표현방법과 그래픽 노블의 표현, 그리고 이 책 '포로 수용소'는 실제 르네 타르디가 19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를 하고 2차 대전때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생활하며 겪은 사실을 기록한 기록문학이라는 생각은 이 책에 실려있는 에피소드들을 그저 쉽게 넘기며 볼 수는 없게 하고 있다.
"난 모든 게 미웠다. 병사들이 한탄하는 소리도 지겨웠어. 기운빠진 병사들은 하루 종일 궁시렁거렸지. 하긴 그 사람들은 징집돼 전쟁을 했으니 자원 입대한 내 입장은 뭐가 되겠니.... 내가 남들 못지 않게 서글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들은 날 비웃었겠지. 그래서 절망스러워 보이지 않으려고 더 애썼어. 비웃음거리가 될 순 없잖니. 나 역시 전쟁을 원한 건 아니었으니..."(72)
그렇게 원하지 않던 전쟁을 겪고 5년여의 수용소 생활로 인해 르네 타르디의 일상은 바뀌어버렸다.
아, 이건 이렇게 한 문장, 한 단어로 그의 삶은 바뀌어버렸다, 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엉켜버리고 무너져내려버렸음을 알 수 있는 것들은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깊이 새겨져있을뿐만 아니라 표현되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에도 담겨있으리라 예상하게 된다.
"먹물 깨나 먹었다고 거들먹거리던 놈들은 자기들이 전쟁만 끝나면 국가의 부름을 받고, 무너져버린 프랑스의 자긍심을 재건하는 일에 한몫 끼게 될 거라고 믿었어. 그러면서 독일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모델이라고 주장했지. 벌써 장관 자리 차지할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거야. 이 비겁한 자식들이 어쩌다 장관이라도 된다면 국가의 자긍심을 세운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없이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낼 거야. 지금은 바지에 오줌이나 싸는 주제에." (71-72)
하지만 현실은 르네 타르디와 같은 사람들을 비난으로 내몰고 있을 뿐이다. 조국은 그들을 존경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라고 표현하지만 조국뿐이겠는가. 아들조차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원입대했음을 상기시키며 그를 궁지로 내몰고 있을뿐이다.
화장실도 없는 열차 한 칸에 40명이 들어가 손발이 저릴만큼 움직이지도 못하고 빼곡하니 몸을 굳히고 있어야하고 10cm가 넘는 열차 밑바닥에 겨우 조그만 구멍을 내고 볼일을 봐야하고, 수용소에서는 굶주림이 일상이었는데 그마저도 니히트 아르바이트 니히트 에센, 그러니까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이야기로 수용소안에서도 노동력착취가 횡행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의식주를 꿈꾸기는 커녕 굶지않고 죽음을 비껴가며 살아가고 있음을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도 의문인 생활을 한 아버지에게 말이다.
그리고 아들은 자꾸만 아버지에게 탈출시도를 하지는 않느냐고 캐묻는다. 탈출이 여의치않았다는 아버지의 대답을 왠지 그 일에 대한 회피를 짐작하게만 하는데, 결국 친구 샤르도네와 탈출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순찰을 돌던 독일군 병사가 이유없이 쏜 총에 그 친구는 죽임을 당하고 탈출계획은 무산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친구의 죽음은 독일군의 명백한 살인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묻혀버리고 만다.
다큐멘터리 기록같은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형식으로 이어져가는 이야기는 조금 어색했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꾸 추궁을 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던 아들의 질문은 책을 덮을 즈음에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한 대화를 통해 아들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버지를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했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더 깊이있게 만들어주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게 비난받을 일이냐? 전쟁이 일어날 걸 짐작했고, 싸워야 한다는 걸 이해했던 거야. 우리 지휘관들이 전투를 이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겠지. 하지만 난 같은 상황이 오면 똑같은 결정을 내릴 거다. 어쨌든 난 싸웠고, 게다가 나 혼자 싸운 건 아니었어! 전쟁의 위협을 느꼈기에 난 학교를 떠나 군대에 들어간 거야"(171)
아들이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할수는 없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더 확장해서는 국민으로서 전세대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그래서 지금 읽은 르네 타르디의 기나긴 이야기의 첫 부분보다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무척 기다려지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아주 강렬한 그래픽노블을 읽었다고 했는데, 자크 타르디의 포로수용소는 무채색인 듯했던 첫느낌과는 달리 서서히 스며들며 자신의 색을 깊이 새겨놓은 듯한 느낌에 다른 책과는 또 다른 강렬한 그래픽노블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