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님되는 법
진산 지음 / 부키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마님 되는 법>(진산 지음/부키)을 읽다.

지난 주,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메일에 깔려 헉헉 거렸고,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에 경기를 일으켰으며,
05년 경영계획과 예산을 짜는데 기력을 탕진했다.
계속되는 야근 속에 짜증이 늘어만 갔다.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올라오다가 서점에 들렸다.
웃긴 책을 하나 사서 실컷 웃으며 퇴근길에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리번 두리번 화끈하게 웃긴 책이 없을까 둘러 보았다.
진산의 <마님 되는 법>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알라딘에서 "웃겨서 기절할 것 같은 책" 리스트에서 이 책 제목을 본 생각이 났다. 얇은 책이라 부담도 없었고, 몇장 넘겨보니 문장도 엽기적이고 신선한 것이 아주 발랄했다.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선택(사실 바빠서 더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사무실로 올라갔다.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는 기분은,
가짜 외출증을 만들어서 떡볶이 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실컷 놀다가 야간자율학습을 하러 다시 학교에 들어가는 고딩의 애처로운 심정과 같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야자가 없단다.쫌만 늦게 태어날껄...쩝)

일을 꾸역꾸역 마치고(정확히 말하면 다음날로 미루고)
퇴근하면서 이책을 읽었다.
이 책.....진짜 웃긴다.
피곤해서 택시를 탔는데, 내가 하도 낄낄거려서 아저씨가 백밀러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마님 되는 법>은 말 그대로 어떻게하면 결혼생활에서 삼월이가 되지 않고 마님이 되어,
떵떵 거리며 행복하게 사느냐 하는 법을 설파하고 있다.

"마님"이라는 호칭 때문에 거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고,
남편을 "삼돌이"라고 부르는 호칭 때문에 어찌 하늘 같은 남편을 "삼돌이"라 칭하냐며 노발대발하는 어르신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번 통쾌하게 웃기려다 보니 표현들이 가벼운건 사실이지만,
<마님 되는 법>은 웃기기만 할 뿐 속빈 강정 같은 내용 없는 책이 절대 아니다. 낄낄거리다가도 놓치기 아까운 충고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남편감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110% 동의한다.

첫째,각진 남자
누구에게나 잘 해 주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잘 못해 주는 사람이다

- 정말 맞는 말이다.불고의 진리다.
난 아무 여자한테나 잘해주고, 툭하면 오해 살 일을 하면서 자기가 뭐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고, 맺고 끊고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를 심심하다고 만나는 그런 흐리멍텅한 남자가 젤로 싫다.
진산의 첫번째 기준, 정말 110% 아니 120% 동의한다.박수!!!

둘째,거짓말 안하는 남자
이건 정말 만고의 진리다.
툭하면 거짓말 하는 남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잘났어도,아무리 집안이 뜨리뜨리해도 다 필요없다. 부부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동지적 결합이다. 툭하면 거짓말을 일삼는 남자는 만날 가치가 없다.

거짓말을 일삼는 남자.
재고할 필요가 없다. 짤라라, 단칼에!

셋째, 자존심 있는 남자.
자신의 일에 자존심과 책임감을 느끼는 남자

- 자존심 있는 사람이 상대방의 자존심도 존중할 줄 안다.
인간이 자존심을 상실할 때, 그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자존심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긴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려고 노력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사귀는 여자한테 돈 빌려 달라고 하는 넘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다 짤라라!
그런 넘들은 둘 중 하나다.
궁지에 몰려서 자존심을 이미 다 팔아버린 넘이거나,
아니면 여자를 이용하는 파렴치한이거나...

진산이 제시한 세가지 기준을 너무 열렬하게 지지하는거 아니냐구?
천만에 만만에 말씀.
각진 남자, 정직한 남자, 자존심 있는 남자.
이 세가지는 내가 항상 생각해 오던, 좀더 거창하게 말하면 나의 가치관과도 일치한다.

진산은 무협작가다.
( 난 무협지를 읽어본 적이 정말 한번도 없다.그래서 인기작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연재했던 내용들을 모아서 펴낸 책이라는데, 문장이 경쾌하고 가볍다 보니 내용도 같이 가볍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낄낄거리면서 챙기는 교훈이 쏠쏠한 책이다.

진산의 남편도 무협작가다.
마님(진산)은 삼돌이(남편)의 섬김을 받으며 재미있게 산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마님을 부러워 하며,
마님이 되는 법을 전수해 달라고 졸랐단다.
그래서 이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산은 "마님"이 되기에 최적의 조건에서 살고 있다.
정말로 모든 여자들이 부러워 하는 "완벽한 조건"이다.


마님은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경기도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일층에는 부모님이, 이층에는 마님과 삼돌이가 산다.
물론 마님의 아들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넘치는 사랑으로 돌보아 주신다. 정말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조건이다.

이런 마님의 완벽한 생활환경을 읽으면서 강유원을 생각했다.

강유원이 자신의 서평집 <책>에서 조혜정을 신랄하게 비난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화>에 실린 조혜정의 글들을 읽고 강유원은 조혜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혜정은 시집살이를 하지도 않고 "일하는 아줌마"까지 있는 교수이기에, 주부의 주체적인 삶 운운하는 주장은 세상의 대다수 직장 가진 여성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서평전문가 강유원의 글을 직접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고작 '옆에서 지켜보니 안됐군.나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한번 해보면 어떨까.물론 형편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의 입바른 이야기일 뿐이다.만에 하나 조혜정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여 그걸 실천에 옮기려는 사람은 살림을 맡아 하고 아이를 돌보아 줄 '아주머니' 부터 구해야 할 것이다. 강유원의 <책> p73 인용

만약 강유원이 <마님 되는 법>을 읽고 서평을 썼다면,
조혜정에 대한 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진산은 자신의 책을 읽는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여자들에게 호소한다. 마님이 되라고!
하지만 친정부모와 함께 살고있는, 아이의 양육을 친정 부모가 책임져 주는 그의 아주 특수한 조건을 고려할 때, 진산의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대한민국에 친정 부모랑 같이 살고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도 딸,사위에게 일절 간섭하지 않으며, 어떤 권리도 주장하지 않고 손주를 키우는 의무에만 충실한 쿨한 친정 부모와 말이다.
그러니 진산이 전하는 "마님 되는 법"은 "난 이렇게 살아.부럽지?"하는 자랑일 뿐이다.


그런데....이런 "패러디"는 웃기긴 하지만 쓸데 없는 상상인 것 같다.
두꺼운 인문사회과학 서적 읽고 "논거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할 강유원이 이런 가벼운 에세이류를 읽지는 않을 테니까...

진산의 <마님 되는 법>은 표면상의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가르침"을 선사하는 책이다.
어떤 기준으로 평생을 함께할 동지를 선택하고,
또 어떻게 그 동지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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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김지룡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김지룡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김지룡이 쓴 다른 책들도 다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할 만큼, 재미있었고 또 유익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지룡에 대한 아주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 선입견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덕에 일본 성문화 어쩌고 저쩌고 썰풀며 "문화평론가"라는 이상한 타이틀까지 만들어 대접을 받는다는 거다.
다른 사람이 했으면 시시껄껄한 야한 얘기로 끝났을 얘기를,
서울대에 게이오 석박사까지 한 덕에 "문화평론"으로 둔갑하는거 아닌가 하는 불신. 그렇다. 나는 김지룡에게, 또 학벌을 마케팅으로 내세우는 세태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학벌을 마케팅 포인트로 사용하는 경우는 흔하다.
금나나가 과기고 출신에 의대생인 덕분에 좀 빠지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미스코리아 진이 된거나, 한성주가 승마특기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 정치외교학를 다니는 "재원(?)"이러고 떠들며 미스코리아 진이 된거나,서경석이 서울대 재학생이라는 이유로 개그 콘서트에서 하이라이트를 받은거나 다 같은 맥락이다.
김태희 같은 미모의 탈렌트가 서울대까지 다니면 뜰 수 밖에 없다.

나도 대학 2학년 때,
개그를 해보지 않겠냐는 KBS PD의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과후배랑 허접한 대학생 장기자랑 프로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한 개그를 눈여겨 본 PD가 한번 제대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우리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가 PD의 제안을 받은것은 우리가 특별히 웃겨서도 아니었고,
끼가 넘쳐 흘러서도 아니었고, 아이디어가 신선해서도 아니었다.

PD가 말했다.
개그맨의 고학력 시대가 온다고...
학교덕에 뜨기가 쉽겠다고....

우린 그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지만,
그 다음해에 서경석이 뜨기 시작하면서 PD의 말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김지룡이 학벌 팔아먹고 사는 떠벌이라고 지레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성문화 얘기로 떴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안 읽었으면 억울했을 정도로, 나의 선입견은 쓸데없고도 근거없는 거였다.

책을 다 읽고난 지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김지룡은 "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명함에 넣을만 하다고...

김지룡의 에세이는 단순한 신변잡기적 고백이 아니라
다른 사회와 확연히 구별되는 일본 성문화를 거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또한 솔직하게(아내가 상당히 기분 나쁠 정도로) 자신의 체험을 얘기하므로서 읽는 이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경영학 박사까지 수료한 김지룡은 저자의 입장에서 책이 팔릴 수 있는 미끼를 충분히 제공했다.

김지룡 보고 지저분하다, 이런 사생활을 고백하는게 부끄럽지도 않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또는 이것도 책이냐? 등등....
김지룡도 충분히 교양있고 어렵게 책을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김지룡의 책을 읽어보면 일본성문화에 대한 그의 지식이 결코 녹녹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지룡은 이 책을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들을 조사했다는 것을, 결코 자신의 체험에만 의존하여 근거없는 썰을 푸는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누가 일본에서 겪은 자신의 무용담을 말하며
나 온갖 업소에 다 가봤고, 원조교제도 해봤다 하며 잘난 척을 한다면 그건 시시껄껄한 얘기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 왜 이런 차별화된 성문화가 형성되었을까를 고찰하고
그것을 비판한다면 그건 "문화비평"이다.
책을 솔직하고 가볍게 썼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별것도 아닌 얘기를 참고문헌 잔뜩 붙여서 어렵게 쓰는 것 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면서 "섹스산업"과 "풍속산업"의 차이를 처음으로 알았다.
"섹스산업"은 여성의 섹스를 팔고,"풍속산업"은 남자의 "사정"을 보조하는 산업이란다. 즉,일본은 "삽입에 이르는 과정"을 파는 풍속산업이 "삽입"을 파는 "섹스산업"보다 훨씬 호황을 누리는 유일한 국가라는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의 풍속산업은 더욱더 발전했는데,
혁신적인 변화라면 "사정조차 원하지 않는 남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풍속업소를 찾아오는 남자의 10퍼센트는 사정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피곤에 지친 이들이 원하는건 단지 "대화"라고 한다.

그들은 위로를 원한다.따뜻한 말 한마디를 원한다.그렇다고 '남자라는 알랑한 자존심'이 있는데 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죽어도 싫다.그래서 풍속업소의 여자를 찾는다.그러면서 풍속산업은 힐링(치유) 산업,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신과 병동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애인 플레이"다.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정말로 애인이 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며 일상적인 행동을 한다."자기 오늘 회사에서 뭐했어?","나 보고 싶었어?","자기 나 얼마만큼 사랑해?" 등등.애인들이 나누는 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다......... 그렇지만 대화 이외의 서비스는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남자들은 15만원 이상을 주고 60분 플레이를 신청하고는 서비스 걸과 잡담을 나누다 돌아간다.
(p176)

이 부분을 읽다가 울뻔했다.
얼마나 외로우면 그럴까?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면....
오죽 얘기할 사람이 없으면.....
왜 그렇게 강한 척 센 척해야 할까?
왜 가족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서비스 걸한테 비싼 돈 주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걸까?

이들이 대화를 하려고 서비스 걸들을 찾는 심리는,
카운셀러를 찾은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부장제의 폐단을 절실하게 느꼈다.
가부장제의 피해자는 여자, 남자 모두이다.
가족 앞에서 힘들다고 말도 못하는 남자들,
남자는 "강해야 한다", "울면 병신이다" 라고 어렸을 때 부터 교육 받은 불쌍한 남자들....
가부장제의 교육이 이들을 서비스걸들에게 보낸다.
모르고 만만한 여자에게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고나서 집에서는 위엄을 갖추고 부인이 한 밥을 먹는다.
" 애들은 자나?" 목소리를 깔고 말하면서....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가부장을 하고 있는 남자도 결국 가부장제의 희생자인 것이다.

곧 김지룡의 <나는 일본문화가 재미있다>를 읽을 예정이다.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김지룡, 상당히 쿨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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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2004-10-04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문화 평론가로 알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를 다시금 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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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11분>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를 일본 출장길에 읽었다.
출장이 8/30~9/1이었으니까, 벌써 한달 전이다.

출장 준비를 하느라 8월 29일 일요일에 12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아침 비행기였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자고 부랴부랴 나갔다. 오후에 상당히 중요한 미팅이 있었기 때문에, 또 상무님이랑 같이 가는 출장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미팅 자료들을 검토하다가,
피곤하기도 하고 좀 졸리기도 하고 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차원에서 핸드백에 있던 <11분>을 꺼냈다.
작가의 말 정도만 읽고, 다시 미팅 자료를 검토하려 했는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재미있어서 하네다 공항에 도착할 때 까지 쭉 읽어 버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1달 전 쯤 읽은 <씨네 21>의 칼럼이 생각난다.
누가 썼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자기는 사람들이 다 욕하는, 모두가 욕하는 형편 없는 영화
<여친소>와 <긴급조치 19호>를 참 재미있게 봤다는 것이다.
평론가로서 <긴급조치 19호>를 보고 재미있다고 말하기가 참 어려웠단다. 그런 말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서 그냥 자기가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여친소>의 어떤 한장면이 자기에게 와닿았기 때문에 자기는 두 영화에 대해서 참 좋은 감정을 가지고 극장을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
책이건 영화건 연극이건 콘서트건 뭐건
자기가 재미있으면 되는 거다.

평론가들이 "문제의식" "실험성" 들먹이며 아무리 극찬을 해도
나한테 재미 없으면 그만이다.
<긴급조치 19호> 처럼 극장 가서 돈내고 봤다고 말하기 조차 쩍팔린 영화를 보더라도, 내가 보고 좋았으면 된거다.

왜 허접한 <긴급조치 19호>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냐구?
<11분>읽고 실망한 사람들이 주위에 참 많다.
알라딘 리뷰들을 읽어보니 "명랑 창녀 성공기"라는 리뷰 제목도 있었다. 그 리뷰 읽으면서 한참을 깔깔거렸다. 사실 마리아가 명랑하지는 않지만, 말 그대로 11분의 줄거리는 창녀 성공기다. 줄거리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똑똑한 창녀 성공기?".

사실 <연금술사>를 읽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그 다음 작품으로 <11분>을 읽었다면, 실망하기에 딱이다,딱.
주인공이 창녀라 처음 부터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고, 읽기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고, "똑똑한 창녀 성공기"로 끝나는 허리우드 영화식 결말은 읽는 사람들을 딸국질 멎을 만큼 놀래킨다.

사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도 실망을 했다.
왜 코엘료의 줄거리는 항상 이다지도 상투적일까?
누가 봐도 허리우드 영화 같은 줄거리.
<프리티 우먼> 보다 더 허리우드틱하다.
한술 더 떠 랄프는 이런 말까지 한다.
" 영화에서 처럼 낭만적이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오,그렇지 않소?"

그런데.....
<11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오후에 미팅하는 동안 그 다음 내용이 뭘까 궁금할 만큼....
2박 3일의 그 바쁜 일정에 틈틈히 짬을 내어 다 읽었다.
정말....재미있었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야기꾼으로서의 코엘료는 그리 대단하지 못하다.
참신하지도 않고, 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것 같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포착해 내는 능력에 있어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능력에 있어서 파울료는 대단한 작가다.

<11분>을 읽으면서 내가 밑줄을 그은 구절 중 두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육체가 서로를 보기도 전에 영혼에 의해 준비되는 것이니까.
그러한 만남들은 우리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우리가 감정적으로 죽어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 만남들은 우리를 기다리지만,우리는 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피한다.하지만 우리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우리에게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아니면 우리가 삶에 열광해 있을 때,미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세계는 흐름의 방향을 바꾼다.
(p183)

두려움보다도 더 못한 거요.그들은 노이로제에 걸려 있어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사회가,친구들이,여자들이 섹스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섹스,섹스,섹스,이것에 생활의 소금이다',
광고,영화,책들이 끊임없이 외쳐대니까.
하지만 자신이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본능이 우리 모두 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 짓을 하긴 해야 한다는 걸 알 뿐이오.
(p 333)

<연금술사>를 자아를 향한 여행이라고 한다면,
<11분>은 섹스를 통한 자기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한테는 그런한 만남들이 언제 나타나는 걸까?
아직 한계에 도달하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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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팀의 한 선배가 회사를 떠난다.
저녁에는 환송회가 있을 예정이다.

요즘 가뜩이나 팀 분위기도 안 좋았는데,
날씨도 흐린 것이 구질구질 하고,
금요일이라 부담도 없고,
항상 그렇듯이 다른 사람이 회사를 그만 둔다고 하면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슬쩍 떠올리는 사람들의 특성상
오늘밤은 결코 가볍지 않은 술자리가 될 것이며, 전사자가 속출할 확률이 높다.
특히, 오늘의 주인공은 업혀갈 가능성이 크다.

오늘 회사를 떠나는 선배는 나랑 같은 대학을 나왔다.
얼마 전 한 리크루트 회사의 이직률 조사 결과를 보니
주요(?) 대학 중 서강대가 이직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얼마나 신뢰성 있는 조사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세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고
선배는 오늘 세 번째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회사를 떠난다.

설렁설렁 다닐 수 있는 문과대를 졸업한 나와 달리,
선배는 빡센 화학과를 졸업했다.
서강대가 흔히 서강고등학교라 불리는데,
설렁설렁하게 졸업할 수 있는(그래도 다른 학교 보다는 훨 빡빡하지만) 문과대와 달리,
이공계는 정말 고등학교 같다.
토요일에 실험을 일상다반사로 하며, 애들은 학교에 살다시피 한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 전에 잠깐 운동장에서 몸을 푸는 고딩들 처럼
저녁을 먹으면 우유팩 차기를 한다.
(물론 허접한 차림으로 우유팩을 차는 사람들은 대부분 복학생들이다.)
선배는 대학원도 나왔으니까,고등학교를 6년 더 다닌 샘이다.

선배는 참 끼가 많은 사람이다.
노래방에 가면 혼자 마이크를 먹다시피 노래를 한다.
정말 노래를 잘한다. 특히 발라드에 강하다.
기타도 잘 치는데 팀 야유회 갔을 때 기타를 들고 와서,
90년대 초 엠티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도 잘 찍는다. 매뉴얼 기능 빵빵한 디카를 하나 사사 매일 들고 다닌다.
디카 동호회 같은데도 자주 사진을 올린다.
가끔은 점심시간에 덕수궁에 가서 사진을 찍고 오기도 한다.

선배는 참 술을 좋아한다.
술 마실 사람이 없으면 혼자 가서도 술을 마신다.
분위기도 좋아해서 바에서 술 마시는걸 좋아한다.
여자도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다.
밝힌다기 보다는 그냥 편하게 앉아서 농담 따먹기 하는 걸 좋아한다.
조용조용하게 얘기하는걸 좋아한다.
선배는 쇼핑을 좋아한다.
백화점도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남자들과 달리 온라인 쇼핑을 좋아한다.
옥션 같은데 자주 들어가고, 간간히 소품들을 산다.
몇 번씩이나 옥션에서 소포가 배달되는 걸 봤다.
시계, 명함첩, 운동기구 이런 잔잔한 물건들이다.

선배와 16개월 동안 앞뒤로 앉아서 근무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선배와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작년 겨울에 한번 껄끄러운 일이 있었는데
그 다음부터 서로 조심하며 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선배가 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끔씩은 선배를 의식적으로 피하기도 했다.

선배가 회사를 그만 둔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
" 성대리 안테나가 왜 이리 느려요?" 하며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선배가 밉기도 했고 서운하기도 했다.
벌써 3주 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선배가 회사를 떠난다.
추석 전 선배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PC에 있던 폴더들을 통째로 넘겨 주었다.
거래선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retire announcement를 하고,
Susan Sung을 소개했다.
거래선들은 그 동안 고마웠다는 짤막한 답장을 보냄과 동시에,
Susan에게는 인사 메일을 보내고, 선적 일정을 챙기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일상적으로 돌아간다.
나는 정신 없이 수많은 메일들에 채이면서, 답장을 한다.
" Happy to work with you".

오늘 회사를 떠나는 선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너무 상투적인 말이지만
꼭 행복하라고.....

선배는 30대 후반의 다른 남자들과 달리
여리고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감정 기복도 커서 곧잘 우울해 지기도 한다.
언젠가 선배가 건축가나 교수가 되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아니면 작곡가?
어쨌든 선배는 텁텁한 조직 보다는 자유로운 일, 뭔가를 create하는 일이 잘 어울릴 것 같다.
사진을 찍는 것 처럼....
선배가 가는 회사가 좀 설렁서렁, 헐렁헐렁 했으면 좋겠다.

Go Go J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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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10-01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적추적 비도 내리는데 우울하게 술 퍼마시는 자리가 아니라 새길 찾아 떠나는 분 축하해 주는 들뜬 자리를 가지시길 빕니다. 라고 말하면 아직 "사회물"을 제대로 먹어보지 않은 학생의 눈높이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일까요. 비오는 날 오전내내 들떠 있었으니 비도 그쳐가겠다, 대강 마음 가다듬어야겠어요.

아, 늦게나마 다시 인사드립니다. 매너, 대중입니다. 반가워요. 숨책, 리더스가이드, 그리고 이곳까지. 각종 리뷰와 리스트 섭렵하셔서 사랑받는 서재 꾸미시길 빌어요. ^_^o-

22zero 2004-10-1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 일까 궁금했는데....^^ 잘보고 갑니다...
 
눈물의 편지
이진경 / 넥서스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눈물의 편지>(글쓴이 고인을 기리는 사람들,그린이 이진경,넥서스 출판)을 읽다.

이 책을 읽고 정말 펑펑 울었다.
새 책이 눈물 범벅이 되었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훌쩍이는 바람에 사람들이 쳐다 보기도 했다.
(마스카라 번지고 반짝이가 눈물을 타고 흐르고 난리났다.)

이 책 정말 정말 슬프다.
읽으면서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또한 울면서 마음이 순화되는 것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사람들의 간절한 그리움을 활자로 느끼며...

용미리와 벽제에 있는 '추모의 집'(납골시설)에 비치된 '고인에게 쓰는 편지'라는 비망록에 유족들이 남긴 편지들을 발췌해서 한권의 책이 되었다. 정말 제목 그대로 <눈물의 편지>다.
글들이 하나하나 너무도 진실하고 절절하다.울지 않고 읽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유족들의 한결 같은 말,
"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게 끝끝내 후회된다"는 말이 떨림으로 다가온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공기 처럼 그냥 항상 곁에 있을 거 같기에, 사랑한다고 말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던, 못했던 유족들의 절절한 후회와 안타까움.

이 책을 읽으면서 절절히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한순간 한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그 시간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내가 흐느끼며 읽었던 편지를 하나 소개한다.
먼저간 아내를 기억하며, 남편이 쓴 편지 중 일부다.

정미야!영원히 널 사랑할거야.생전에 내가 너에게 못해준 게 너무 많아.지금도 좋은 것 다 해주고 싶어.좋은 곳 너에게 보여주고 싶고.
정말 미안해.하지만 이건 기억해줘.내 죽어도 널 만너러 갈거고 영원히 널 사랑할거야.영원히.
미안해.나 혼자 이렇게 살아 있어서...


정말 이 페이지는 쭈글쭈글 하다. 너무 눈물 방울을 흘려 버려서...

손녀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를 하나 더 소개한다.이 편지 읽으면서 지하철에서 실연당한 여자 처럼 엉엉 울었다.

우리 할머닌 글을 못 읽어요.그러니 글 읽을 수 있는 다른 어르신이 대신 좀 읽어주세요.
그리고 할머니를 많이 사랑하고 있는 군혜라고 해주세요.
우리 할머니 이 글 읽고 울면 울지 말라고도 해주세요.
사랑해,할머니.보고 싶어.그리고 너무 많이 감사해.또 올께요.할머니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답장 받을 수 없는 편지를 쓰면서,
글씨 못읽는 할머니에게 대신 읽어 달라고 부탁하는,
할머니가 편지를 읽고 울까봐 걱정하는 어린 손녀의 맘.

이 글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서
정말이지 엉엉 울어 버렸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니,
내 가족들이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내게 절대적인 가치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바쁜 일상중에 잊고 살아가는,
너무도 큰 진실을 직면하게 된다.

우리 모두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한번이라도 더 안고 싶고,
한번이라도 더 손내밀고 싶고,
한번이라도 더 웃고 싶고,
한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내가 잘못했을 땐 그 때 그 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매일 말하고 싶다.
고맙다고....

순간의 소중함을 절절히 전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사소한 일로 가족들과 신경전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수선이의 도서관

www.kleinsu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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